책으로 책하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욕망'에 해당되는 글 28건

제목 날짜
  • 황폐화된 나와 욕망과 세상에 맞대면할 용기가 있는가? <스위트홈> 2020.12.28
  • 옥토버페스트를 두고 벌어지는 욕망과 욕망의 치열한 부딪힘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 2020.10.23
  •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문제들로 '욕창'이 생긴 이 가족 <욕창> 2020.08.03
  • 욕망에 사로잡혀 극단으로 치달은, 한통속 인간군상 <타이거 킹: 무법지대> 2020.05.10
  • 가공할 만하게 보여 주는 '돈으로 흥한 자 돈으로 망한다' <언컷 젬스> 2020.02.19
  • 1026 사건 리메이크... 역사를 우리 곁으로 끌어내리는 작업 <남산의 부장들>(2) 2020.01.28
  • 근래 보기 드문 완벽한 오리지널 미스터리 탐정물 <나이브스 아웃> 2020.01.13
  • 욕망으로 점철된 속물들, '진짜' 속물은 누구인가? <속물들> 2020.01.08
  • 스페인이 인기 있는 이유, 스페인을 알아야 하는 이유 2019.12.23
  • 온갖 은유와 상징으로 점철된, 난해한 우주 스릴러 <하이 라이프> 2019.10.31

황폐화된 나와 욕망과 세상에 맞대면할 용기가 있는가? <스위트홈>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2. 28. 12:00
728x90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스위트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 포스터. ⓒ넷플릭스



2020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 수상작 중 하나인 네이버 웹툰 <스위트홈>, 2017년 10월에 시작해 2020년 7월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연재 기간 내내 꾸준히 금요 웹툰의 절대 강자 중 하나로 군림했는데, 스릴러 웹툰의 원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칸비 작가의 작품인 만큼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의 작품들은 다분히 저연령층 대상이지만 사람의 심리를 파고들어 들춰 내는 데 탁월하다. 


<스위트홈>은 그 인기를 실감하듯, 크리처 기반 스릴러물임에도 영화 아닌 드라마로 재생산되기에 이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공개된 드라마 <스위트홈>, 신예 송강을 비롯해 이진욱과 이시영 등의 캐스팅보다 더 눈이 가는 사람이 있었으니 연출을 맡은 이응복 PD다. 그의 연출작을 보면, 최근작부터 <미스터 션샤인> <도깨비> <태양의 후예> <비밀> <드림하이> 등으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음직한 타이틀들을 만들었다. 


믿고 보는 스타 드라마 PD의 한국 최초 크리처물 드라마라니, 그것도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인기 명작 웹툰을 원작으로 했다니, 더 이상의 이슈몰이는 의미가 없을 것이고 그에 걸맞는 흥행도 의미가 없을 테다. 원작과 따로 또 같이 발 맞추며, 최초의 시도인 만큼 '볼 만한'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은 어떤 모양새로 우리를 찾아왔을까?


괴물 천지가 된 세상의 사람들


2020년 8월, 다 무너져 가는 듯한 아파트 '그린홈'에 고등학생 차현수가 입주한다. 그는 학교폭력에 연루되어 마음을 다쳐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다가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어 삶의 의미를 잃어 버렸다. 상습적으로 자해를 하기도 했고 말이다. 옥상에서 뛰어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찰나 발레를 연습하는 이은유의 모습을 보고 또 그녀의 시크한 말에 포기하고 집으로 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여자네 집에서 이상한 낌새가 있어 갔다가 괴물을 본다. 바로 나타난 옆집 여자가 문을 열어 달라고 하는데, 차현수가 열어 주지 않자 괴물로 변한다. 


한편, 입주민들은 1층으로 모여 든다. 아무도 모르게 서터가 닫혀서 아무도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들 밖에 나가고자 1층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 난데없이 괴물 하나가 믿을 수 없는 모습을 한 채 들이 닥친다. 입주민들을 위협하는 사이, 침착하고 똑똑한 의대생 이은혁과 무적 포스를 뽐내는 특전사 출신 소방관 서이경의 활약으로 큰 피해를 입지 않고 괴물을 물리쳤다. 하지만, 입주민들은 실감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그린홈에 갇혔고, 세상은 망했으며, 괴물들이 시시각각으로 위협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진짜 문제는 내부에 있었다. 괴물의 원인은 사람의 욕망이었기에 그린홈 내부에서도 괴물이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차현수는 무기 제작에 특화된 기술자이지만 다리를 쓸 수 없는 한두식의 도움으로 1210호 아이들을 구하는 한편, 전직 살인청부업자로 802호 최윤재를 찾아 그린홈에 들어왔다가 갇힌 편상욱과 차현수의 윗집 베이시스트 윤지수 그리고 칼잡이 국어 교사 정재헌은 1층 아닌 곳들에서 따로 또 같이 괴물들과 대치하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린홈의 모든 입주민은 1층으로 집결해 살아날 방도를 구하는데... 


인간군상물+크리처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은 원작과 큰 틀에서 결을 같이 하지만 세부적인 면들에서 상당히, 아니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작을 보지 않고 드라마를 먼저 보는 걸 추천한다. 드라마를 보면 반드시 원작을 보고 싶어질 텐데, 원작을 보면 드라마까지 굳이 보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원작을 봤다면, 아예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드라마를 보는 게 좋을 테다. 


원작이 크리처 스릴러 장르를 중심에 둔 성장물이라고 할 수 있다면, 드라마 <스위트홈>은 크게 인간군상물과 크리처물의 양단을 모두 지니고 있다. 즉, 스릴러와 성장을 지양한 대신 극한의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군상을 지향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간군상물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큰 인사이트를 얻지 못했다. 크리처물이라는 강력하면서도 큰 개념을 온전히 담는 것도 벅찰 텐데, 역시나 큰 개념인 인간군상물까지 온전히 담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50여 분짜리 10부작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분량에서 말이다. 


원작대로 '크리처' '스릴러' '성장'의 세 키워드를 유기적으로 보여 주려는 데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드라마로 재구성하면서 변화를 줘야 한다는 고민의 흔적이 보였다. 아무래도 원작 웹툰의 독자 대상이 청소년이라면, 드라마의 독자 대상은 성인이니까 말이다. 원작의 주요 키워드를 그대로 성인 대상 드라마로 옮겨 오는 건 무리였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드라마로 옮겨와서 만들어 낸 만듦새에 미진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의 욕망에 맞대면할 용기


드라마 <스위트홈>을 보면서 연발했던 게 "재밌다, 빨리 다음 편 보자!"였다. 원작과 비교했을 때의 단점과 작품 그 자체로의 단점을 모두 알고 있으니, 대중이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 정확하게 아는 이응복 PD의 연출력이 대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적어도 작품을 보고 있는 그 시간엔, 작품만 생각하며 보고 듣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대중의 '욕망'이 그의 작품들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게 아닐까. <스위트홈>도 마찬가지.


원작의 대단한 점이겠지만, 기존에 수없이 선보였던 유사 크리처물과 차별점을 두는 게 바로 인간의 '욕망'이다. 무엇을 원하는 게 틀리거나 나쁜 건 아닐진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을 뜻하는 '욕망'은 선하거나 긍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또 한편 욕망을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괴물로 형상화된 욕망의 모습은 인간이 언젠가 맞딱뜨려야 할 현실일지 모른다. 인간의 욕망은 때론 긍정적으로 발현되어 지금의 문명을 이룩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끝엔 파괴와 말살만 있어 왔다. 


괴물이 끔찍하면 할수록, 우리의 내면과 욕망 그리고 우리가 만든 세상이 딱 그만큼 황폐화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 괴물을 제대로 대하기 어렵다면, 우리는 우리의 진짜 모습을 맞대면할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위트홈>은 역설적이고 상징적인 제목으로, 우리를 잡아 끌어 다름 아닌 우리 자신과 대면하게 한다. 나는 나를 마주 볼 수 있는가? 진짜 나를 맞대면할 용기가 있는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괴물, 나, 스위트홈, 욕망, 원작, 이응복, 인간, 인간군상물, 크리처물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옥토버페스트를 두고 벌어지는 욕망과 욕망의 치열한 부딪힘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0. 23. 15:00
728x90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 포스터. ⓒ넷플릭스



'옥토버페스트',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시 테레지엔비제에서 매년 9월 말경부터 10월 초까지 대략 2주간 열리는 맥주 축제로 족히 5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해 1조 원이 훌쩍 넘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로 유명하다. 지금은 9월에 열리지만, 200여 년 전 최초엔 10월에 열려 'Octorber(10월)'+'Fest(축제)'의 개념으로 옥토버페스트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역사상 25번째로 축제가 취소되었다. 

 

이 축제에는 뮌헨 시내에 위치한 맥주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6개 브랜드의 맥주만 유통된다. 순혈주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인데, 그중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파울라너'도 있다. 순혈주의임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라는 점에서 그 인기도와 유명세를 실감할 수 있다. 올해 축제가 취소되어 관계자들은 경제적 손실을, 관광객들은 실망감을 떠앉았을 것이다. 와중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달래 줄 콘텐츠가 나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 1900년 옥토버페스트를 배경으로 현재의 옥토버페스트 모습을 갖추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실존인물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욕망과 욕망이 부딪히는 치열한 암투와 목숨을 건 사랑과 배신 등 화려한 축제의 비열한 뒷이야기를 보여 준다. 단백하고 직선적이며 단단한 느낌을 주는 '독일'의 드라마라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오며 색다른 재미도 준다. 


옥토버페스트를 둘러싼 운명의 소용돌이


1900년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 옥토버페스트를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뉘른베르크에서 성공한 사업가라 자처하는 커트 프랑크가 나타난다. 그는 옥토버페스트 운영위원을 찾아와서는 옥토버페스트 때 족히 수천 명은 들어갈 거대한 텐트를 만들 청사진을 건넨다. 하지만 옥토버페스트는 전통적으로 바이에른주 순혈주의, 뉘른베르크 사업가에게 내 줄 자리 따위는 없다. 프랑크는 운영위원의 가정사 치부를 빌미로 그를 부려 먹기 시작한다. 그렇게 5개 부지에 해당하는 자리를 거대한 텐트로 채우려 한다. 하지만 프랑크의 계획은 차질을 빚는다. 


4개의 부지 자리의 양조장들은 모두 넘어왔는데, 마지막 하나의 양조장 '다이벨 양조장'의 호플링거 가문 사람들은 넘어오지 않고 있다. 그들은 몇 대에 걸쳐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해 오며 왕실에도 맥주를 납품하는지라 아무리 좋은 제안에도 넘어갈 수 없었다. 프랑크는 사람을 시켜 호플링거 가문의 다이벨 양조장을 파멸에 이르게 하려 한다. 와중에, 호플링거 가문의 장자 로만과 프랑크의 딸 클라라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옥토버페스트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뮌헨 양조장협회장이 클라라에 반해 프랑크에 접근하고 프랑크는 클라라를 그에게 시집가게 하려 하지만, 그녀에겐 로만이 있었던 터 양조장협회장은 프랑크를 적대시하기 시작한다. 


그런가 하면, 클라라의 샤프롱으로 들어온 콜리나는 클라라가 임신하는 바람에 쫓겨나 다시 힘겨운 생활을 시작하고 다이벨 양조장의 안주인 마리아는 점점 더 힘겨워지는 삶을 간신히 부여 잡으며 나아가려 했으며 로만의 남동생 루트비히는 양조장과 여관 운영이 아닌 그림에 관심을 가진다. 결국 옥토버페스트가 열린다. 프랑크는 야망을 이룰 수 있을까? 클라라와 로만을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콜리나와 마리아는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얽히고설킨 운명의 소용돌이는 이들을 어디로 어떻게 이끌 것인가.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갈망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는 원제 'Oktoberfest: Beer & Blood'에서 유추할 수 있듯 맥주와 피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진중하고 긴장감 넘치는 시대극이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라고 해도 무방하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갈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00년이라 하면 굉장히 오래 되어 보이지만, 20세기를 여는 해로 불과 지난 세기이다. 사람들은 머리로는 몰라도 마음으론 알고 있었을 테다, 새로운 시대의 당위를. 


옥토버페스트가 1900년 경에도 물론 유명하고 큰 축제였겠지만, 지금의 세계 3대 축제로 발돋움했던 건 분명 혁명에 가까운 혁신이 있었을 테다. 작품은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창조한 인물인 프랑크가 그 시작을 알리며 물꼬를 텄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봤다시피 그 이면에서 수많은 피를 흘렸지만 말이다. 그는 파멸할 듯 결코 파멸하지 않는다. 


이쯤에서 다시 원제를 보면, 맥주가 '혁신'을 피가 '혁신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희생을 상징하고 있지 않는가 싶다. 그래서인지,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사람 목숨을 대하는 게 보통과는 다르다. 마냥 슬퍼하지도 마냥 당연한 듯 대하지도 않는다. 슬퍼하면서도 이용하는 것 같았다. 죽음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한다고 할까. 욕망과 희생 위에 혁신이 위태롭게 쌓아지지만 결국 단단하게 굳혀진다. 생소한 독일 드라마의 특징일까, 독일인과 독일 문화의 특징일까,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라는 드라마만의 특징일까. 궁금하다. 


긴장감 어린 스토리가 단단하게 이어진다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한 채 적절히 퍼지고 합하는 스토리의 가지까지 아우르는 능력이 상당한 작품이다. 어느 한 스토리의 가지는 재미없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선 그러지 않았다. 모든 작은 스토리들이 나름의 합리적 생명력과 상징성을 지닌 채 존재하며 메인 스토리를 뒷받침했다. 하여, 작품 자체가 재미있을 수 있었다. 특히, 프랑크와 호플링거 가문의 얽히고설킨 감정과 관계들. 프랑크의 딸 클라라와 호플링거 가문의 장남 로만의 '로미오와 줄리엣' 버금 가는 사랑조차 철 지난 로맨스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이권다툼의 한 방면으로 편입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야망 어린 거짓말로 클라라의 샤프롱으로 들어갔지만 그녀가 임신하는 바람에 쫓겨 나서는 다시 웨이트리스로 일하다가 기지를 발휘해 수석 웨이트리스이자 아이콘으로 거듭나는 콜리나는 '새로운 시대의 성공적인 여권 신장'이라는 서브 스토리의 메인 캐릭터로 충분히 제 몫을 했다. 한편, 호플링거 가문의 둘째이자 여관 운영자로 살 운명이었지만 그림을 좇아 당시 금지되어 있던 동성애까지 나아갔다가 자살하고 마는 루트비히는 '새로운 시대가 받아들이지 못한 비극의 희생자'라는 서브 스토리의 메인 캐릭터로 한몫했다. 


화당 평균 50분이 채 되지 않는 6화 분량이 짧은 드라마가 장대한 시대극을 온전히 담는 건 무리가 있었을 테다. 하여, 이 작품 자체로는 완벽한 작품성을 담보하진 못하지만 시즌제로 갈 만한 이야깃거리들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고 본다. 격동하는 시대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은가. 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옥토버페스트에 어떤 이야기와 인물과 상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갈망, 긴장감, 독일 드라마, 맥주 축제, 스토리, 시대극,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 욕망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문제들로 '욕창'이 생긴 이 가족 <욕창>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8. 3. 12:00
728x90



[신작 영화 리뷰] <욕창>


영화 <욕창> 포스터. ⓒ필름다빈



퇴직 공무원 창식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내 길순을 집에서 돌보고 있다. 그 둘을 모두 챙기는 이가 있으니 수옥이다. 조선족 불법체류자 수옥은 월 200만 원을 받으며, 창식을 대신해 길순을 돌보고 집안일을 한다. 언뜻 보기에는, 병든 노모 길순을 모시는 중년 부부 창식과 수옥인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길순의 등 아래 부분에 욕창이 생긴다. 창식은 큰 아들 문수와 막내 딸 지수에게 알린다. 


지수가 와서 엄마의 욕창을 들여다보았더니 자못 심각한 상태였다. 수옥에게 크게 나무라고 돌아간다. 반면 문수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한편, 수옥은 일요일마다 길순의 옷을 잘 차려 입고 외출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 수옥에게 이성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던 창식은, 그녀를 미행하기에 이른다. 알고 보니 그녀는 연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식은 수옥에게 무뚝뚝하게 굴기 시작한다. 


수옥의 뒤를 밟고 돌아온 창식은 피인지 똥인지 알 수 없는 것들로 칠갑이 되어 있는 아내를 발견하고 오열한다. 다음 날 그는 사소한 이유로 수옥을 나무라고는 뺨을 때리고 쫓아낸다. 큰 며느리와 막내 딸이 집으로 와 대책을 논의한다. 길순이 요양시설로 가길 바라는 그들, 하지만 창식은 극구 반대한다. 결국 수옥을 다시 집으로 들이는 수밖에 없는데... 하지만 곧 수옥의 불법체류자 문제가 터지고, 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가족의 곪은 상처도 터져 버린다. 그들에겐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이 시대 평범한 가족들의 고민


영화 <욕창>은 생각하면 할수록 들여다보면 볼수록 살 떨리게 두렵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사는 이 시대 평범한 가족들을 적확하게 그려냈다. 제목 하나 기가 막히게 지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욕창'이 단순히 다쳐서 나는 상처가 아닌 한 곳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압박으로 혈액순환 장애가 생겨 조직이 괴사되어 생기는 궤양이기 때문이다. 가족 관계에 생기는 문제를 비유적으로 말하는 데 적합하다. 


이 영화로 장편 데뷔를 한 심혜정 감독은, 독문학을 전공하고 엄마의 삶을 살다가 40세를 목전에 두고 늦깎이 미술학도가 되었지만 쉽지 않아 실험 작업을 하며 영상·사운드 쪽에서 길을 찾았다.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를 찾았다가 페르소나가 될 김도영 배우를 만났다고 한다. <욕창>에서 지수 역으로 분한 그는 20여 년간 크고 작은 영화에서 단조주연으로 활동해 오다가 영화 <82년생 김지영>으로 장편 연출 데뷔를 했다.


감독 본인이 오랫동안 병든 어머니를 간병하며 돌봄 노동을 했고 2013년 다큐멘터리 <아라비아인과 낙타>로 돌봄 노동에 단면을 심도 있게 비춘 바 있는 심혜정 감독, 그 경험과 감정을 살려 <욕창> 작업을 했을 터다. 덕분에 우린, 내가 속한 가족의 면면을 다시 돌아보게 됨과 정체되어 있는 '가족'의 모습 그리고 '돌봄 노동'의 모습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욕망과 갈등과 대립의 가족


영화엔 많은 인물이 출현하진 않는다. 직접적 당사자라고 할 만한 이는, 창식과 수옥과 지수 그리고 길순 정도일 뿐이다. 그러니, 이 관계도에서 무엇을 어떻게 뽑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작 영화는 '욕창'을 시발점으로 하여 이들 각각의 욕망을 끄집어 내어서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갈등을 보여준다. 영화적인 걱정은 접어두고, 영화 밖에서 대면하게 될지 모를 우리를 걱정해야 하겠다. 


창식은 병든 길순을 두고 수옥에게 남모를 연정을 품고 있다. 수옥은 불법체류자로 불안에 떨면서도 중국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창식의 집안인을 책임지고 병든 길순을 보살피며 먹고 자고 돈을 받고 있다. 지수는 막내 딸임에도 불구하고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해 부모님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문수는 아버지가 미국에 가 있는 둘째 아들 용수에게만 퍼주고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가 하면, 지수에겐 자신을 돌 보듯 하는 남편과 딸이 있다. 그녀는 집이 불편하고 일터인 목공소가 편한 듯하다. 


수옥의 불법체류자 문제가 터져 위장결혼이 필요하다 하니 나가야겠다고 하자, 창식이 자신과 결혼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로선 병든 아내를 돌보기 위해 그녀와 이혼하고 수옥과 결혼하려 한 것이다. 가족들이 모여 대책 회의를 갖는다. 자식들은 창식과 수옥의 결혼을 반대하며, 길순은 요양시설로 보내고 창식은 실버타운으로 갈 것을 제안한다. 


가족들은 오랫동안 생각하고 묵혀두고 말하지 못했던 욕망을 꺼내며 갈등의 불을 지피고는 첨예하게 대립한다. 각자의 크고 작은 속사정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들 또한 상처 받는다. 봉합되어 지지도 아물지도 못할 것 같다. 영화는 팽팽하게 당겨져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실을 보여주듯 긴장된 가슴을 부여잡고 놓지 못하게 한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에 가닿는 문제의 근원


<욕창>을 가족 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만 끝내면 섭섭할 수 있다. 들여다보면 또 다른 생각거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족의 문제에 크게 일조하고 있기도 하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 자신 또한 문제의 발화점으로 상징되고 있는 '수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일가족 누구도 하지 못하는 두 가지 일을 나름대로 해내고 있다. 길순을 돌보고, 창식을 돌보고. 창식을 포함해, 자식들 모두 돈으로 참으로 엄청난 일을 대체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식들 중 유일하게 막내 딸 지수만이 매우 일요일마다 와서 부모님을 챙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수옥을 포함해 '왜 여자들만 돌봄 노동을 하는가' 하는 물음에 가닿게 된다. 큰아들 문수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고, 오히려 큰며느리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결론적으로, 병든 아내 길순을 돌보는 건 창식의 일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자식들이 부모님의 죽음 이후를 생각하는 게 섬뜩하지만 현실적이라고 한다면, 창식이 아내를 외면한 채 수옥에게 마음이 가닿고 또 표현하는 건 불쾌하기만 할 뿐이다. 


이 가족의 문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길순이 아프지 않았으면 괜찮았을까, 수옥을 들여놓지 않았으면 괜찮았을까, 문수에게도 둘째만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으면 괜찮았을까, 지수로 하여금 자식이 자신 하나뿐인 것인가 하는 마음을 들지 않게 잘 했으면 괜찮았을까. 이 모든 걸 하면서 하지 않았으면 괜찮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조건 다른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가족이라면 반드시 그랬을 테다. 


문제는, 바람과 불만이 욕망으로 변해 가는 와중에 가족들끼리 서로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그 상당 부분은 가장인 창식으로 향했을 터, 가부장제의 원제까지 가야 문제의 근원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욕창'은 겉으로 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하듯, 가부장제 하의 가족도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고 근원을 맞딱뜨린 후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야 한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가부장제, 가족, 갈등, 대립, 돌봄노동, 문제, 욕망, 욕창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욕망에 사로잡혀 극단으로 치달은, 한통속 인간군상 <타이거 킹: 무법지대>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5. 10. 14:50
728x90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타이거 킹: 무법지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타이거 킹: 무법지대> 포스터. ⓒ넷플릭스



지난 3월 중하순,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시리즈 하나가 공개되었다. 영화나 드라마보다 다큐멘터리에 역량을 쏟는 넷플릭스는 점차 다큐멘터리 명가가 되어가고 있는데, <타이거 킹: 무법지대>(이하, '타이거 킹')는 그중에서도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바, 동물에 관련된 다큐 또는 동물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다룬 다큐 정도라고 생각했다. 


작품을 연출한 두 감독 중 한 명인 에릭 구드는 5년 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도 5년이나 걸릴 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렇게나 끔찍할 줄도 몰랐고 말이다. 플로리다 남부에서 악명 높은 파충류 중개인을 조사하다가 시작되었다는 <타이거 킹>, 감독은 우연히 눈표범을 샀다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흥미를 가지게 된다. 이후 감독은 '미국에서 대형 고양잇과 동물을 키우는 사람'에 관한 다큐를 제작하고자 한다. 


그렇게 공간은 플로리다주에서 오클라마호마주로 옮겨지고, 세계 최대 규모 대형 고양잇과 공원이라는 '그레이터 윈우드 이그조틱 동물원'을 찾게 된다. 그곳의 주인, 조 이그조틱이 다큐의 주인공이다. 그로 말하자면, 청부 살인 혐의와 대형 고양잇과 살해와 판매 혐의로 2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미친놈에 동성애자에 총기를 소지했으며 마약에 중독된 광신도였다. 대형 고양잇과 200여 마리와 함께 생활했고, 3명의 남편과 결혼했으며, 대통령 선거와 주지자 선거에도 나간, 세상에 둘도 없는 아니 신화 속에서도 존재할 것 같은 인물이다.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 있으랴, 어찌 이 다큐를 보지 않을 수 있으랴.


빌런들이 판 치는 욕망의 소용돌이


최근 10년 넘게 전 세계 영화계를 '슈퍼히어로 영화'가 점령하다시피 하게 되면서, 악당을 뜻하는 '빌런'이 덩달아 중요성을 띄기 시작했다. 빌런은 극의 재미를 위해 슈퍼히어로만큼 강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타이거 킹>은 주인공부터가 빌런의 모든 요소를 갖추었다. 세상의 중심이 본인이고 온갖 희한한 짓은 다 하고 다니지만, 마냥 욕만 할 수 없는 매력 덩어리로 응원까지 하게 된다. 


다큐 초반을 장식하는 게 G.W.동물원과 이그조틱을 향한 직원들의 숭배에 가까운 충성심이다. 호랑이에게 손목을 뜯기는 중상을 입고도 입원 5일만에 복귀하는 이유가 언론에게서 동물원을 지키기 위함이었다는 직원을 비롯, 직원 대부분이 돈을 거의 받지 못하고 쉬는 날 없이 엄청난 중노동에 시달리거니와 상사에게 학대까지 당하면서도 충성을 다해 일을 한다. 


한편, 이그조틱의 롤모델로 지목되는 머틀비치 사파리의 닥 앤틀과 이그조틱이 청부 살인을 하려 했다는 동물구조대 빅 캣 레스큐의 캐롤 베스킨이 있다.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 수많은 여자들과 함께 산다는 닥 앤틀이나 수백 억 자산가였던 남편의 실종 사망 처리 과정에 연류되었다는 말이 무성한 캐롤 베스킨이나 범상치 않은 빌런들이다. 


동물권을 둘러싸고 끝없이 대립하는 이그조틱, 앤틀과 베스킨이지만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숨길 수 없는 끼를 지닌 '관종'이라는 점과 사람을 부려 먹을 때 사이비종교가 연상되는 수법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매한가지로 일치단결한다. 더군다나, 그들끼리 비방을 서슴지 않는 부분에 다름 아닌 '동물'이 있다. 동물을 사랑한다는 그들이 동물을 착취해 돈을 벌고 명성을 얻고 있는 것이다. 빌런들이 판 치는 욕망의 소용돌이이다. 누구 하나 이긴 '사람'들 하나 없고 주인공이어야 할 '동물'들만 피해를 봤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할까


다큐 중반을 장식하는 건 이그조틱과 베스킨의 끝없는 상호 비방과 협박과 소송이다. 베스킨의 빅 캣 레스큐는 동물권을 앞세워 동물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이그조틱의 G.W.동물원은 빅 캣 레스큐야말로 동물을 착취하며 돈을 벌고 베스킨 본인은 남편을 죽여 토막내 호랑이에게 먹힌 파렴치한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돈이 훨씬 많고 이미지도 좋은 베스킨이 이그조틱에게 승리해 거금의 돈이 오가게 된다. 


하지만, 이그조틱으로선 그만한 돈을 줄 여력이 없다. 와중에 라스베이거스에서 구원자가 등장한다. 남는 건 돈밖에 없다는 대형 고양잇과 애호가이자 사업가 제프 로우이다. 언급한 세 명에 버금가는 또 다른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그는, 본격적으로 G.W.동물원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와중에, 이그조틱은 관종끼를 최대한 발휘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당연히 떨어지지만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다. 


이미 이그조틱은 인터넷 방송과 TV 출연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명성, 즉 '악명'을 떨치고자 노력(?)해 왔는데 한술 더 뜬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일인이 떠오르는데 굳이 언급하진 않겠다만, 단순한 어그로꾼은 아닌 듯하니 그들의 생각방식과 생활방식이 그렇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잘못을 저지르면 범의 심판을 받을 테고, 그렇지 않으면 선 안에서 최대한의 비상식적 기행을 일삼으며 살아갈 것이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또 그들을 따르는 이들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한통속,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군상


다큐는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점입가경이다. 이그조틱은 자신이 만든 동물원에서 쫓겨나고, 제임스 개럿슨이라는 이그조틱의 조력자는 뜻밖의 FBI 스파이였으며, 로우가 G.W.동물원을 완전히 장악하다시피 하지만 순탄하지만은 않고, 이그조틱은 결국 온갖 협의로 법정에 서게 된다. 어느 누구 하나 승리자가 없는 아수라, 끝에 웃는 자는 이그조틱일까 베스킨일까 앤틀일까 로우일까. 제5자일까.


<타이거 킹>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대형 고양잇과를 사랑하고 가까이하고 키운다. 일반인이라면 오금이 저려 눈을 쳐다 보지도 못할 최강의 육식동물들과 함께한다니, 범상치 않은 기이한 이들임에 분명하다. 그들 간의 아수라인 만큼, 우리네 일반 상식을 지니고 일반적 생각과 생활을 해 온 이들이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 어떻게 봐도 그들 모두 한통속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우리를 엿보긴 힘들 테지만, '인간'을 엿보긴 어렵지 않다. 인간의 극단 말이다. 인간이 극단으로 치달으려면 끊임없이 들끓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어야 하는데, 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게 바로 욕망밖에 없다. 이 다큐는, '그들은 왜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라는 의문 대신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거지?' 또는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거지?'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한편 그 궁금증에 대한 일면의 답을 제시한다. 다양한 인간군상 대신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군상을 내보이면서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다큐 시리즈가 큰 인기를 계속해서 끌고 있는 건, 비단 자극적인 면면들에서 기인한 재미와 흥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다큐를 이끄는 '빌런' 급의 주요 인물들이 보여 주는 바가 막연히 희미하게 상상 정도만 해 보았지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 싶은 방식 그 자체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극히 리얼이지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다큐멘터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극단, 대형 고양잇과 동물원, 빌런, 소송, 욕망, 이그조틱, 인간군상, 타이거 킹: 무법지대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가공할 만하게 보여 주는 '돈으로 흥한 자 돈으로 망한다' <언컷 젬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2. 19. 08:00
728x90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언컷 젬스>


영화 <언컷 젬스> 포스터. ⓒ 넷플릭스



사프디 형제(조슈아 사프디, 벤저민 사프디), 2008년 형 조슈아가 단독 장편으로 데뷔한 후 이듬해 형제 명의로 데뷔한다. 데뷔하자마자 평단의 지지를 받은 사프디 형제, 이후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2017년(한국 개봉은 2018년), 우리에게도 알려진 <굿타임>으로 평단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거니와 일반 대중의 눈에도 들었다. 로버트 패틴슨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굿타임>에서 엿볼 수 있는 사프디 형제'만'의 연출 특징이라 한다면, 거칠고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와 몽환적인 OST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대사라 하겠다. 호불호가 갈릴 만한 특징들이다. 2년 만에 돌아온 <언컷 젬스>, 결론부터 말하면 사프디 형제만의 특징이 극대화된 작품이라 하겠다. 이번엔 아담 샌들러의 진면목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아담 샌들러를 말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는 것이, 그를 코미디 전문 배우로만 인식하고 있는 분들이 절대적으로 많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SNL의 최대 수혜자로, 분명 코미디 전문 배우이다. 하지만, <펀치 드렁크 러브> <레인 오버 미>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등의 명작들은 그의 연기력이 극을 이끌어가는 데 절대적 역할을 했다. 감독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을 오가는 묘한 배우란 얘기다. <언컷 젬스>는 아담 샌들러 배우 인생에 길이 남을 명연기로 찬사 받을 것이다. 


돈으로 꼬여 버린 뉴욕 보석상의 인생


2012년 미국 뉴욕의 보석상 하워드 래트너(아담 샌들러 분), 그의 인생은 하루라도 평탄하지 못하다. 매일매일 빚쟁이들한테 쫓기기 때문인데, 왜 그리 많은 빚을 계속 지느냐 하면 그는 돌이킬 수 없는 도박 중독자이다. 그는 모든 빚을 청산할 큰 건을 극비리에 노린다. 2년 전 에티오피아 광산에서 채굴한 오팔 원석이 그것이었다. 하워드는 경매로 최대 100만 달러의 수익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때 가게로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들이닥친다. 보스턴 셀틱스 소속 최고의 농구스타 케빈 가넷(본인 분), 그를 놓칠 수 없었던 하워드는 막 도착한 오팔 원석을 마지 못해 빌려준다. 가넷은 왕과 황제들도 열광했다는 오팔 원석에서 어떤 영험함을 엿보았을 테다. 대신 받은 건 가넷의 2008년 우승 반지, 하워드는 득달같이 달려가 돈으로 바꿔서는 가넷의 경기에 모조리 때려넣어 버린다. 그는 돈을 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도박업자가 중간에서 취소해 버린 것, 그는 빚을 청산하기는커녕 인생이 더 꼬여 버렸다. 


하워드에게 남은 건 오팔 원석, 가넷에게서 되찾아와야 한다. 근데, 오팔의 영험함에 넋이 나갔는지 그냥 한없이 바쁜 것인지 가넷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와중에 수시로 찾아오는 빚쟁이들에게서 협박과 모욕을 당한다. 지난한 우여곡절 끝에 가넷에게서 오팔을 되찾는 하워드, 이제 오팔 원석 경매로 엄청난 돈을 만지기만 하면 된다. 과연 그는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을까? 도박 중독에서 헤어나올 수 있을까? 꼬인 인생의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을까? 왠지 요원한 듯하다...


블랙 코미디로 내보이는 자본주의 욕망


영화 <언컷 젬스>는 겉보기에 그저 하염없이 정신 없는 막장 블랙 코미디라고 느껴진다. 틀린 말은 아니다. 돈에 환장하다 못해,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바치는 하워드라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블랙 코미디의 화신과도 같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대사, 허세 가득한 몸짓과 욕설과는 반비례하는 카리스마가 이를 뒷받침한다. 아담 샌들러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출중한' 연기를 펼쳤고 사디프 형제가 극대화시켰다. 


하워드는 자본주의 욕망의 화신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추구하는 블랙 코미디가 지향하는 곳이다. 돈으로 흥한 자 돈으로 망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돈이 있을까, 무(無)가 있을까. 아니, 공허·허무가 있을 테다. 애초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무의 상태가 아닌, 끝없이 탐하다가 한순간 사라져 버린 무의 상태 말이다. 자본주의가 폐퇴하고 있다는 외형적 현실보다, 알게 모르게 원론적 사상의 현실을 보여준다.


사프디 형제의 스타일이 극대화된 이 영화의 연출을 같이 들여다보면 더욱 확연하다. 현실인 듯 꿈인 듯 알 수 없게 만드는 몽환적인 OST, 공허나 허무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듯한 정신 없는 대사, '가공되지 않은 보배'라는 뜻의 제목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한 거친 카메라 워크까지. 무언가를 끝없이 해야 하는 현대 사회의 불안을 형상화시키려 했고, 가열차게 성공했다. 그 처음과 끝을 하워드가 함께한다. 


사프디 형제와 아담 샌들러


어렵게, 깊숙이 들어가면 한없이 파고들어 자본주의의 욕망까지 가 닿을 수 있겠지만, 영화적으로만 한정하여 본다면 <언컷 젬스>는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을 순삭할 수 있는 재밌는 영화이다. 그런가 하면 주지했듯 사프디 형제의 연출 스타일은 호불호가 갈릴 만한 것이, 정신없이 그리고 하염없이 영화에 '끌려 다니다' 보면 어느새 끝나 남는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이 일반 대중보다 평단에게 호불호 없는 지지를 받는 요소일 텐데, 메시지를 전함에 있어 절대 대놓지 않고 전반에 깔리도록 장치를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찾아 보고 해석하게끔 하는 것이다. 감각적이고 직관적으로 빠르게 보여주되, 그 안 굉장히 이성적이고 개념적인 이론을 장착시켜 놓았다. 겉으로 보기엔 지루함과는 하등 거리가 먼 듯하지만, 들여다보면 지루함과 너무나 가까운 것들이 도사리고 있는 격이다. 


<언컷 젬스>를 통해 사프디 형제의 호불호가 확연히 갈렸을 테고, 기존의 지지층은 더욱 견고해 졌을 테다. 개인적으로 그들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들의 연출 스타일이 다시 한 번 극대화될 작품을 각본 작업 중이라고 한다. 한편, 아담 샌들러는 희한하고 묘한 '명품' 배우라는 인식이 확고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아담 샌들러밖에 할 수 없는 배역이 그를 계속 찾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강력히 든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블랙 코미디, 사프디 형제, 아담 샌들러, 언컷 젬스, 연출 스타일, 욕망, 자본주의, 허무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1026 사건 리메이크... 역사를 우리 곁으로 끌어내리는 작업 <남산의 부장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 28. 12:00
728x90



[신작 영화 리뷰] <남산의 부장들>


영화 <남산의 부장들> 포스터. ⓒ쇼박스



1979년 10월 26일 저녁,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 분)이 박통(이성민 분)과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 분)을 암살한다. 부하들도 경호원들을 제압해 장악에 성공한다. 시간은 40일 전 미국으로 돌아간다.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 분)이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박통의 실체를 까발리며 전 세계 특히 한국에 큰 충격을 안긴다. 청문회도 청문회였지만, 진짜 문제는 박용각의 회고록이었다. 기록으로 남긴 박통의 실체 말이다.


김규평이 긴급히 파견되어 박용각을 만나 회고록을 회수한다. 하지만, 박용각의 말에 김규평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명실상부 자타공인 중앙정보부장이 대한민국의 2인자이지만, 박통의 스위스 비밀계좌의 실체를 알고 직접 관리하는 '진짜 2인자'가 따로 있다는 말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규평, 청와대에선 곽상천이 박통을 신처럼 생각하며 기어오르고 미국 대사는 박통의 스위스 비밀계좌 실체를 캐어 폭로하겠다며 협박하며 전국적으로 반(反) 박통 시위가 불을 붙고 있다. 와중에 급기야 박용각의 회고록이 발간된다. 


박통이 자신을 멀리하는 듯, 박용각의 말이 계속 생각나, 괴로워하는 김규평. 박통은 그에게 묻는다. 이제 내려와야 하느냐고, 언제 내려왔으면 좋겠냐고. 이에 그는 언제나 박통 곁을 지키겠다는 대답을 할 뿐이다. 하지만 쉬워 보이진 않는다. 박용각에서 시작된 코리아게이트의 파장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박용각은 역으로 김규평에게 제안한다. 함께 박통을 끌어내리자고 말이다. 김규평은 선택해야 했다. 박용각인가, 박통인가. 박통인가, 박용각인가. 


실화 사건에 미시적이고 개인적 의미를 부여하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지난 2015년 <내부자들>로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는 우민호 감독의 2020년 첫번째 웰메이드 한국영화 기대작이다. 그는 2010년과 2012년에 김명민을 내세운 두 편으로 적절히 성공과 실패를 오가고, <내부자들>로 1000만 명 가까이 동원하며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성공을 거둔 후 <마약왕>으로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망하고 말았다. 그의 롤러코스터 필모를 보면 <남산의 부장들>은 <내부자들>처럼 흥행과 비평 양면의 성공을 예상할 수 있다. 


영화는 동아일보에서 30여 년간 기자로 일했던 김충식 현 가천대학교 부총장이 1990년부터 2년 여간 동아일보에 연재해 책으로 내놓아 베스트셀러가 된 <남산의 부장들>을 원작으로 한다. 책은 제목처럼 남산의 부장들, 즉 박정희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부장들 이야기를 전한다. 반면, 영화는 각색을 거쳐 축약되고 변경되어 박정희 시절의 마지막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이야기를 전한다. 


당연한듯 1026 사건을 메인으로 내세웠는데, 그 의미와 논란의 영향력이 타 사건들과의 비교를 불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면 사건의 파급력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이, 영화적 상상력이 사건의 핵심과 주위를 파고들어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영화는 그 상상력에 사건의 거시적이고 사회 역사적 의미 대신 미시적이고 개인적 의미를 부여했다. 


대사건의 이면, 한낱 개인의 욕망


1026 사건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김재규 부장이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직접 죽였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참모총장을 데리고 남산이 아닌 육군본부로 향해 체포당하고 만 역사적 유턴의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재판에서의 최후진술에 따르면 거사의 이유가 민주주의에 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수많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가 충실하게 이 사건을 다루었다. 개인적으로 임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 그사람들>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사건에 관계된 이들 모두가 거기서 거기인 쓸모 없는 인간군상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시선. 


<남산의 부장들>은 어떨까. 박통을 두고 세 명이 전 정보부장 박용각과 현 정보부장 김규평과 현 경호실장 곽상천이 엎치락뒤치락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양새이다. 거기엔 대국적이고 거시적인 정치 소양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욕망이 자리잡았다. 한 나라의 역사를 뒤흔들고 뒤엎을 만한 대사건의 이면에 한낱 개인의 치졸하기까지 한 욕망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는 상상력 어린 사실이 흥미로운 한편 씁쓸하다. 


영화는 씁쓸함보다 흥미로움이 보다 크게 작용하게 하였다. 전체적인 기조는 김규평이 올바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행한 여러 선택과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그 또한 박용각이나 곽성천과 다를 바 없는 욕망의 하수인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통이야말로 욕망의 하수인이 아닌 화신이다. 그는 지극히 하찮은 욕망을 발산하는 데 있어 2인자 부장들을 철저히 이용해 마치 대국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절대적 1인자의 욕망 앞에 2인자들이 할 수 있는 건, 헤어나올 수 없는 충성경쟁뿐이다. 


인물 지향의 개인적 이야기


영화에서 눈여겨 볼 건, 사건 아닌 인물이다. 즉, 영화가 다루는 사건 아닌 사건을 다루는 영화 자체인 것이다. 영화의 상상력이 향하는 곳은 의외로 사건이 아닌 인물이기에, 특히 김규평의 변화를 들여다보면 흥미롭다. 박통을 향한 흔들림 없던 눈빛이 박용각의 말과 곽상천의 행동과 비서실장의 부추김으로 흔들리고,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고조되며, 결국 박통 때문에 폭발한다. 어떻게 보면, 충성경쟁도 아닌 권력다툼도 아닌 어린애들끼리 치고박는 다툼으로밖에 보이지 않기도 한다. 몇몇 친구들이서 한 명을 왕따시키는 모양새이기도 하다. 


모두가 아는 사건의 이면을 설득력 있는 상상력으로 복원하는 작업은 오로지 픽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영화의 기본이 픽션이라고 한다면, 영화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거니와 영화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아주 잘 해내었다고 생각한다. '사건' 정황상 "그럴 수도 있겠구나"가 아닌 '인간'이라면 아무렴 "그랬겠다"라는 확신이 드는 것이다. 


이런 식의 리메이크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역사를 바꾼 주요한 사건들의, 인물 지향의 개인적인 이야기 말이다. 결국 역사는 인간의,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흘러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역사는 인간이 쏙 빠지고 대신 사건과 인간에의 상징이 자리를 대신한다. 하여, 우리들의 역사가 아닌 그들만의 역사가 되고 만다. 역사를 우리들 곁으로 끌어내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보다 하찮고 의미 없이 계획 없이 명분 없이 저질러버린 역사의 진면목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또 다른 <남산의 부장들>을 기대해본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1026사건, 개인, 남산의 부장들, 욕망, 우민호, 인물, 중앙정보부장
  • BlogIcon 여강여호
    2020.01.28 13:11 신고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singenv
      2020.01.28 23:18 신고

      감사합니다^^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근래 보기 드문 완벽한 오리지널 미스터리 탐정물 <나이브스 아웃>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 13. 12:00
728x90



[신작 영화 리뷰] <나이브스 아웃>


영화 <나이브스 아웃> 포스터. ⓒ올스타엔터테인먼트



라이언 존슨 감독, 70년대생의 젊은 감독으로 일찌감치 2000년대에 훌륭한 장편 데뷔식을 치렀다. 이후에도 장르에 천착한 작품을 내놓던 그는, 2010년과 2012년 미국 역사상 최고의 드라마로 손꼽히는 <브레이킹 배드> 시즌 3과 5에 참여했다. 그러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2017년에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로 혹독한 블록버스터 데뷔식을 치렀다. 


그에겐 장르물을 세련되게 직조할 재능이 있었고, 미스터리물로 장편 데뷔를 했던 만큼 관심 또한 많았다. 평소 미스터리 탐정물에 지극히 천착하고 탐닉했다고 하는데, 실로 오랜만에 돌아왔다. 2019년 후반기 북미 개봉작 중 <포드 V 페라리>와 더불어, 평단과 대중 할 것 없이 호평일색임에도 상응하는 폭발적 흥행을 하진 못한 작품 <나이브스 아웃>이다. 상징적인 1억 달러 돌파는 이뤄냈지만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왜 이 영화가 호평일색이었는지 아주 잘 알 것 같은 한편 왜 흥행을 하지 못했는지도 역시 아주 잘 알 것 같다. 기막힌 캐스팅은 차치하고서라도 시종일관 빈 곳 없이 꽉 차고 알찬 스토리가 영화를 접한 모든 이들을 잡아 끌 것이다. 반면, 영화로 이끄는 힘은 부족할 수 있다. 미스터리 탐정물 영화 흥행의 역사가 방증하지 않는가. 물론 근래 보기 드문 완벽한 오리지널 미스터리 탐정물임에는 분명하다. 


대저택에서 사망한 베스트셀러 추리소설가


85세 생일을 맞은 베스트셀러 추리소설가 할런 트롬비는 모든 가족을 불러 대저택에서 파티를 연다. 손자 랜섬과의 다툼이 있었다곤 하지만 별 탈 없이 끝난 파티, 하지만 할런은 다음 날 목의 자상에 따른 과다출혈로 방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다. 장례식을 치른 일주일 후 추도식을 위해 모인 가족들에게 경찰과 사립탐정 블랑이 들이닥친다. 자살이 아닌 범죄사건일 수 있다며 가족들 하나하나를 심문한다. 


가족들 모두 뭔가 이상하다. 경찰과 블랑의 심문에, 문제 될 소지가 있지만 중요한 할런과의 대화를 숨기는 게 아닌가. 하나같이 돈에 관련된 것이다. 합리적 의심으로, 가족 중 누군가가 돈 때문에 할런을 살해 또는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겠다 싶지 않은가. 그런데 생각 외로 범인이 금방 밝혀진다. 다름 아닌 할런의 간병인 마르타로, 그녀는 거짓말을 생각만 해도 토를 하는 질환을 앓고 있었다. 


원래는 경찰과 블랑이 거짓말을 못하니 믿음이 가고 가족처럼 지냈지만 가족은 아니니 유산이나 돈을 탐낼 이유도 없는 마르타를 데리고 다니며 저택과 가족을 탐문했는데, 유언장 낭독식에서 가족 중 누구도 아닌 마르타가 모든 유산을 받게 되며 가족들에게 온갖 욕과 시달림을 받아 밖으로 도망친 것이다. 그녀가 도망치게 도운 이가 있으니, 할런의 개망나니 손자 랜섬이다. 그녀는 범죄 사실을 그에게 털어놓고 이상한 동행을 하며, 랜섬이 유언을 그대로 집행하게 도우는 대신 랜섬에게 랜섬 몫의 유산을 주기로 한다. 이 동행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스토리, 반전, 분위기까지 완벽에 가깝게 내보이다


영화는 정통 고전 추리물의 형태를 완벽에 가깝게 내보인다. 이런 말을 굳이 왜 하는고 하니, <나이브스 아웃>은 흔치 않게도 원작이나 실화를 모티브로 재탄생시킨 작품이 아니라 라이언 존슨 감독의 오리지널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단한 원작을 옮긴 영화들도 해내지 못한 걸 이 영화는 해냈다.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 이 감독이 범상치 않은 이유이다. 


이 영화가 해낸 건, 빈틈 없이 짜맞춘 스토리와 알면서도 당하는 반전과 추리 작품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전하는 사회 비판적 메세지까지 거의 모든 것이다. 스토리는 추리 과정과 다름 아니다. 사립탐정 블랑의 위주로 세밀하게 펼쳐지는 추리 이면에는 심문 당하는 이들의 일그러진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추리 하면 으레 생각나는 반전도 깔끔하다. 마지막에 모든 걸 뒤엎는 반전의 시대도, 시종일관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는 시대도 갔다. 수준이 한껏 높아진 지금은 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의 반석 위에 깨달음과 통찰이 오가는 반전의 시대인데, 이 영화가 보기 좋게 해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심의 시선을 합리적으로 여기저기 향하게 만드는 데 도가 튼 느낌이다. 


분위기야말로 추리 콘텐츠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설정과 매우 맞닿아 있다. 대저택에서 벌어진 가족의 절대적 가장에게 벌어진 석연치 않은 죽음이라는 설정이 분위기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하겠다. 심상치 않은 캐릭터들도 한몫하는데, 여지없이 돈으로 똘똘 뭉친 가족들과 돈에는 관심없는 듯한 개망나니와 모든 가족들의 신뢰 또는 무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외부인까지 말이다. 


가족과 욕망과 돈, 그리고 불법체류자의 현실


추리 콘텐츠가 대망의 빛을 발하는 부분은 의외로 메시지에 있다. <나이브스 아웃>은 누구나 느꼈을 만한 가족과 욕망과 돈이라는 명백한 키워드가 있다. 천륜으로 이어진 가족, 각각의 욕망은 다를 테지만, 하나같이 시선이 향하는 건 돈이다. 사실, 영화의 시작과 끝도 이 키워드들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거기에 얹혀지는 건, 얹혀져야 하는 건 당대의 현실이다. 


영화는 지금 가장 첨예한 문제 중 하나인 불법체류자의 현실을 다룬다. 할런의 간병인 마르타는 남미 어딘가의 출신으로, 가족 전체가 불법체류 중이다. 영화 중반도 되지 않아 이미 마르타가 범인이라는 걸 알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스토리에서는 그녀가 거짓말을 못하는 설정 때문이라고 하지만, 메시지에서는 그녀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작중 인물들 중 그녀가 파라과이 출신인지 우루과이 출신인지 에콰도르 출신인지 브라질 출신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 그녀가 라틴계 남미 사람인 것만 알 뿐 나머진 상관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할런이 자살 아닌 타살 가능성이 높다고 결정되고 나서도 사실상 그녀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해버린다. 이는 그녀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행위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여 그녀가 할런의 모든 유산을 받게 되었을 때 가족들은 황당, 당황, 분노를 금치 못하지만 보는 이는 통쾌하다. 부정(不正)되었던 존재의 합당한 부상(浮上)은 항상 그러하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가족, 나이브스 아웃, 돈, 라이언 존슨, 미스터리 추리, 반전, 분위기, 불법체류자, 스토리, 욕망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욕망으로 점철된 속물들, '진짜' 속물은 누구인가? <속물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 8. 08:00
728x90



[신작 영화 리뷰] <속물들>


영화 <속물들> 포스터. ⓒ(주)삼백상회



유명 팝아트 작가 찰스 장의 작품을 대놓고 차용한 '차용미술'로 당당하게 활동하는 미술가 선우정, 제목도 <표절 1> <표절 2> 등이다. 참신하다면 참신하달 수 있는, 나름의 전통과 계보가 있는 미술 방법이랄 수도 있겠지만, 누가 봐도 모사이고 표절이고 베낀 것이다. 결국 그녀는 어렵게 잡은 전시회에 방문한 찰스 장을 가격해 고소를 당한다. 


한편 그녀는 애인 김형중와 동거 중인데, 사실 돈이 없어 얹혀사는 거나 다름 없었다. 고소를 당하든 말든 주저앉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녀 앞에 유민 미술관 큐레이터 팀장 서진호가 나타나 촉망받는 신진 작가들 특별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받아들이는 선우정, 그들은 잠자리까지 갖고 가까워진다. 와중에 느닷없이 선우정의 고교 동창 탁소영이 나타나 선우정, 김형중, 탁소영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유민 미술관 총감독 유지현은 서진호를 내치고 그 자리에 후배 김형중을 앉히려 한다. 기자로 일하고 있는 김형중은 그 제안을 받아 들인다. 서진호는 극구 버티며 김형중과의 기묘한 투 팀장 체제를 이어간다. 선우정은 찰스 장과의 재판에서 패하며 전시회도 끊겨 서진호에게 기댈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하필 서진호와 경쟁하는 이가 애인 김형중이라니... 탁소영은 김형중을 유혹하고, 선우정은 유지현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려 하는데... 이 5명 안에 도사린 욕망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들 관계의 앞날은?


신정아 사건을 모티브로 


영화 <속물들>은 신아가, 이상철 감독 콤비의 2번째 장편영화이다. 2011년 <밍크코트>로 장편 데뷔를 한 그들은, 이듬해 박정범 감독과 함께 옴니버스 영화 <어떤 시선>을 내놓고 실로 오랜만에 뭉친 것이다. 독립영화 치곤 꽤 이름이 있는 배우들이 이름을 올렸는데 유재명, 유다인, 송재림, 심희섭 등이 그들이다. 영화를 향한 신뢰요소를 상당 부분 충족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가 하면,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사건 또한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2007년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신정아 사건'이다. 동국대 교수였던 그녀는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하며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불렸는데, 하루아침에 학력 위조와 공금 횡령과 정계로비 스캔들로 무너져 모든 걸 잃고 감옥에 간다. 석방 후 자전 에세이 <4001>을 써내 다시 한 번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영화 속 선우정이라는 캐릭터가 신정아에서 나왔을 것이다. 큰 틀에선 미술계 이야기이지만, 다른 건 선우정은 큐레이터가 아닌 미술작가라는 것. 오히려 실제보다 범죄에 중하는 짓을 한 가지 더 붙여놨다. '차용미술'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차용미술은 엄연히 존재하는 방법론이자 사조이다. 단, 그 과정의 끝에 명명백백한 새로운 가치가 생겨나야 하겠다. 영화에선 선우정의 일방적이고 무가치한 주장으로 보인다. 


진짜 속물은 누구인가


영화는 차용미술이라는 이름의 표절 작가 선우정의 우여곡절 치열하고 아득바득 치졸한 욕망의 무분별한 발산과 그녀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보다 더럽고 비열한 욕망의 분출이 큰 두 축을 이룬다. 선우정을 향한 이해불가의 물음과 인색한 조롱의 시선이 점차 여타 인물들을 향한 한숨과 욕지거리로 변하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레 진짜 '속물'은 누구인가 찾게 된다. 


사실 영화에서 차용미술이니 표절이니 하는 건 수단에 불과하다.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능력이 모자란 미술작가 선우정이라는 캐릭터가 욕망을 발산하는 방법의 하나로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리라. 그녀의 목적은 오직 하나, 미술계에서 살아남아 명성을 얻고 돈을 많이 벌어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발버둥 치는 모습이 남일처럼 느껴지거나 보이지만은 않는다. 


비록 방법은 잘못 되었지만 그녀의 모습은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도와줄 사람도, 끌어줄 사람도, 꽂아줄 사람도 없이 그저 열심히 하며 버티고 있을 뿐, 다른 방도가 없다. 하여, 현실적으론 선우정을 비호할 수 없기는커녕 강력히 매도해야 하지만 영화적으론 왠지 짠해 응원하고 싶어진다. 태생부터 대놓고 속물인 그녀가 다른 속물들보단 차라리 낫지 않겠나 하면서 말이다.


욕망으로 점철된 인물들의 면면


'약자' 선우정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면면을 들여다 보면 가관도 아니다. 두두러지진 않지만 속물의 최종보소와 같은 유지현은 진정 '나쁜 놈'이 아닐까 싶다. 그는 저 위에서 모든 걸 좌지우지하며 본인 손엔 똥도 피도 묻히지 않는다. 성인군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잘 숨겨왔던 선우정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듯한 탁소영 또한 한몫하는 속물이다. 선우정이 본인 스스로 속물임을 드러낸다면, 탁소영은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두고 속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다. 하여, 선우정의 욕망은 탁소영을 향하지 않지만 탁소영의 욕망은 선우정을 향한다. 


여기 은근슬쩍 속물인 두 사람이 있다. 선우정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듯하지만, 유지현에게 놀아나기도 한 김형중과 서진호이다. 그들은 선우정과 연인과 내연 관계로 얽혀 있지만, 사실 유지현의 대변인이자 적대 관계로 얽혀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유지현의 유민 미술관 팀장 자리를 두고 척을 둔 두 사람은, 유지현의 미술 권력 유지 대리전을 치르는 것이다. 


영화는 진중한 드라마로 욕망의 치열함을 최대한 발휘시키는 대신, 블랙코미디 요소를 적절히 섞어 욕망의 치졸함을 최대한 발휘시킨다. 고로,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으니 의도는 성공적으로 보였다고 할 수 있겠다. 허무하면서도 찰진 대사와 보는 사람만 웃기게 하는 무표정한 표정이 압권이다. 욕망이란 게 하등 진지할 것 없이 이리도 하찮은 것이구나 하고 저절로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린 누구나 속물일 테지만 누구도 스스로 인지하고 있지 못하지 않나. 이 욕망의 화신인 속물들의 면면들을 재밌게 대하며 은근히 인지하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권력, 미술계, 속물들, 신정아, 욕망, 차용미술, 표절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스페인이 인기 있는 이유, 스페인을 알아야 하는 이유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9. 12. 23. 11:30
728x90


[편집자가 독자에게] <세계사를 뒤흔든 스페인의 다섯 가지 힘>

 

<세계사를 뒤흔든 스페인의 다섯 가지 힘> 표지. ⓒ유노북스



2014년이었던 것 같아요. <꽃보다 할배> 시리즈 두 번째로 '스페인편'이 선보였죠. 이후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동안 스페인이 나오지 않다가 2018년부터 블루칩으로 급부상합니다. <윤식당 2>를 시작으로, <같이 걸을까> <스페인 하숙> <세빌리아의 이발사>까지 2018~19년을 관통합니다. 특히 <윤식당 2>와 <스페인 하숙>은 최고 시청률 10%가 넘는 엄청난 기록을 남겼죠.

 

스페인을 향한 관심이 이리도 집중된 건 어떤 이유일까요. 열정과 태양과 다채로움으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스페인의 매력도 큰 몫을 차지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스페인은 세계 최고의 관광대국으로 유명하니까요. 압축된 힘이 언제든 폭발해도 이상할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요? 좀 더 들여다보니 매력뿐 아니라 '힘'이 작용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 책 <세계사를 뒤흔든 스페인의 다섯 가지 힘>(유노북스)은 그런 의문에 이은 확신에서 비롯된 기획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기획 시작 단계에선 '스페인어'가 중심이었습니다. 유명한 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흐름출판)의 라틴어처럼, 해당 언어의 상징적인 문장으로 그 나라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이죠.

 

하지만, <라틴어 수업>은 '라틴어'가 지금은 쓰이지 않는 사어이자 옛날 고어인 동시에 서양 문화의 주춧돌이라 할 만한 언어였기에 가능한 기획이었고 '스페인어'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여, 스페인을 상징하는 키워드별로 구성을 바꾸었고 최종적으로 힘을 중심으로 한 것입니다.

 

쉽지 않았지만 보람 있었던 편집 작업

 

개인적으로 스페인을 잘 알지 못합니다. 태어나 자란 한국도 잘 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없는 만큼, 다른 나라를 잘 안다는 건 어불성설이겠죠. 그래서일까요. 이 책의 편집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아니, 매우 어려웠죠. 주지했듯 애초의 기획과는 너무나도 다른 결과물이 되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답니다. 스페인어가 원고의 중심이었던 만큼, 문법과 회화 파트가 큰 부분을 차지했었는데 모두 삭제했을 때가 고민이었죠.

 

'스페인 파워', 그중에서도 '다섯 가지'를 메인으로 내세우고 나서도 진행이 쉽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상(像)이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그 안에만 갇혀 생각하게 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더 많은 걸 담아 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벗어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려져 있어 한계가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너무 많은 걸 담아내면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모든 걸' 전해줄 수 없다는 확신 하에, '거의 모든 걸' 전해주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생각의 전환 후 저자와의 합의 하에 오히려 더 삭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재구성, 재배열, 재교정된 목차에 따라 불필요한 정보와 생각의 조각들을 최대한 삭제하고 핵심만을 남겨 이어 붙였습니다. 저자는 당연히 많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표하셨지만, 보다 나은 책을 위해 흔쾌히 허락해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편집자로서 보람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잘 알지 못하지만 흥미를 끌 만한 사실들

 

이 책의 부제는 '스페인어, 활력, 유산, 제국주의, 욕망'입니다. 이른바 '세계사를 뒤흔든 스페인의 다섯 가지 힘'을 가리키죠.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각각의 힘을 대표하는 것들에는, 우리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돈키호테, 츄파춥스, 순례길, 무적함대, 콜럼버스'가 있습니다. 모두 각 분야 즉, 문학, 브랜드, 문화유산, 세계사, 인물에서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책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할 만한 한편 흥미를 끌 만한 사실들이 추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스페인어는 중국어에 이어 세계 2위의 사용인구를 자랑합니다. 자그마치 전 세계 21개국의 모국어이죠.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와 포르투갈어와 루마니아어 등과 함께 라틴어의 후예라고 할 수 있죠. 그런가 하면, 스페인은 현재 건강국가지수 1위, 근 미래 기대수명 1위, 세계 관광경쟁력 평가 1위, 태양열 발전 세계 1위, 세계 3위의 세계문화유산 보유국이자 와인 생산국이기도 합니다.

 

스페인 해군의 무적함대는 제국주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역사상 유명세를 떨쳤지만, 스페인이 장장 800년 동안 이슬람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도 스페인의 제국주의가 시작되기 직전까지였습니다. 콜럼버스는 정작 스페인이 아닌 이탈리아 태생입니다. 한편, 스페인에는 코르테스와 피사로, 피카소와 달리, 가우디, 프랑코 등의 세계사적 인물들이 수두룩하죠. 정녕 세계사를 뒤흔든 힘이라고 할 만합니다.

 

다가올 2020년, 진전될 한국-스페인 관계에 보탬이 되길

 

곧 다가올 2020년은 한국과 스페인 양국 관계에 특별한 해가 될 것입니다. 한국-스페인 수교 7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죠. 그와 더불어 2020~21년 2년간은 '한국-스페인 상호 방문의 해'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긴밀하고 풍성한 한국-스페인 관계가 2020년부터 계속될 예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낌새가 보이는 건, 주지한 2018년 이후의 한국 예능 프로그램 스페인 블루칩뿐만이 아닙니다. 2019년 한해에만 스페인의 한국인 방문자가 50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지난 7년간 7배가 는 수치라고 합니다. 스페인을 알아야 할 이유로 손색없다고 봅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단순히 스페인을 아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스페인을 아는 게 곧 세계를 보는 것과 다름 아니라는 깨달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스페인과 한국은 여러 모로 닮은꼴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반도 국가이고, 역사적으로 구체제 유지를 위해 나라를 고립시켰고 무능한 정부가 빼앗긴 주권을 국민들이 되찾기도 했으며 피 비린내 나는 내전 후에 독재 정권이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선 경제 위기를 겪은 것도 닮았죠. 이 책 <세계사를 뒤흔든 스페인의 다섯 가지 힘>으로 스페인을 아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돈키호테, 무적함대, 세계사를 뒤흔든 스페인의 다섯 가지 힘, 순례길, 스페인어, 욕망, 유산, 제국주의, 츄파춥스, 콜럼버스, 활력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온갖 은유와 상징으로 점철된, 난해한 우주 스릴러 <하이 라이프>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10. 31. 08:00
728x90



[모모 큐레이터'S PICK] <하이 라이프>


영화 <하이 라이프> 포스터. ⓒ올스타엔터테인먼트



아무것도 모른 채 감독과 배우들의 면면만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여성 감독이자 북미의 대표 영화제인 뉴욕영화제의 총아라고 할 만한 클레어 드니 감독의 신작, 로버트 패틴슨과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을 맡은 <하이 라이프>도 그런 경우였다. 지난 6월말에 개봉한 <마담 싸이코>도 그러했는데, 영화가 상당히 기대에 못 미쳤었다. 


줄리엣 비노쉬라고 하면, 이자벨 위페르와 더불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세계 3대 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미국 영국 여우조연상을 최초로 석권한 걸로 유명하다. 그도 그렇지만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의 면면을 보면 '영화 보는 눈이 탁월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로버트 패틴슨은, 그 유명한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2000년대 말에서 2010년대 초를 화려하게 수놓고는 예술영화로 노선을 틀어 연기력을 뽐냈다.


<하이 라이프>는 사실 로버트 패틴슨이 원탑 주연에 가까운 영화인데, 보다 진중하고 누가 봐도 연기에 도가 텄다고 생각할 만한 배우를 염두에 뒀다는 클레어 드니 감독의 심중을 로버트 패틴슨이 열렬한 구애로 움직였다고 한다. 영화를 즐김에 있어 그의 연기를 일순위로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그런 그가 매달렸다는 영화의 면면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양계 밖, 지구의 범죄자들


태양계 너머 우주 어딘가, 몬테는 우주선 안에서 홀로 아기 보이스를 키우고 있다. 태양계를 지나온 후부턴 지구와 통신이 되질 않는다. 원래부터 혼자였던 건 아니었는지 죽은 걸로 보이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는 우주복을 입혀 그들을 우주선 밖으로 하나하나 내보낸다. 몬테를 포함, 그들 모두는 사형수에 준하는 범죄자들이다. 그들은 블랙홀에서 에너지를 추출해오는 임무를 띄고 있다. 


사실 그들은 지구에서 행한 실험의 일환으로 우주선을 탔다. 금기를 범하고 사형수가 된 범죄자들을 우주로 버려 사실상 사형시킨 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체크하는 것이다. 하여 그들은 의무적으로 지구와의 통신을 이어가야 했다. 문제는, 우주선 안에서 행해진 또 다른 실험이다. 아이를 죽이고 우주선에 타게 된 딥스 박사는 우주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게 가능할지 자신의 욕망을 투영해 실험을 강행한다. 


하나둘 씩 죽어가는 범죄자들, 추악한 욕망과 본성을 오가며 서로가 서로를 탐하고 죽이며 자신이 자신을 죽인다. 와중에 태어난 아기 보이스, 욕망과 본성을 억제하며 살아간 몬테. 하지만 포기 없이 살아가려 해도 희망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지구와의 통신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구로 돌아갈 순 없을 테고 돌아간다 해도 사형수를 면치 못한다. 그렇다고 임무를 행하기에도 힘들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우주의 망망대해를 하염없이 돌아다닐 뿐이다. 


금기와 욕망


영화 <하이 라이프>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SF라고 하기엔 힘들고 긴장감을 유발하는 분위기를 형성하지만 스릴러라고 하기에도 힘들다. 장르적으론 여기 한 발 저기 한 발을 걸치곤, 온갖 은유와 상징으로 다양하고 난해한 질문을 던지며, '있어 보이는' 영화를 내놓았다. 어정쩡한 우주SF보단 괜찮을 수 있겠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화가 되어버린 느낌이 강하다. 


'금기'가 영화를 관통한다. 몬테가 아기에게 타부 인형을 건네며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려준다. '금기'라는 뜻의 타부, 몬테는 여동생을 살해했고 딥스 박사는 남편과 자식을 살해했다. 딥스는 우주선에서도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행하는데, 방사능으로 죽을 게 뻔한 상황에서도 여자 탑승자들에게 계속 임신 실험을 강행하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몬테에게 약을 먹여 정신을 못 차리게 한 후 그를 강간해 정액을 빼내어 보이시를 억지로 임신시킨다. 


금기된 행동의 결과로 결국 우주선에 타게 된 범죄자 탑승자들, '욕망'이 그들을 휘몰아친다. 자위방에서 욕정을 푸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강제로 이성을 탐하다가 비극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고, 갑작스런 뇌종양으로 죽어가면서도 마지막으로 갖는 생각이 이성을 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딥스는 모든 행동이 욕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 결과,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자신이 자신을 죽이는 금기에의 욕망이 고개를 든다. 


효율적이지 못한 은유와 상징


범죄자 탑승자들을 상징하는 게 금기와 욕망이라는 단순 추상 개념뿐만은 아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들을, 특히 몬테와 딥스를 지칭하는 개념이 존재한다. 욕망의 화신과도 같은 딥스와 달리, 몬테는 적어도 우주선에선 욕망과는 거리가 멀다. 극중에서 몬테가 직접적으로 언급하듯, 자신은 수도승이고 딥스는 마녀이자 주술사인 것이다. 욕망은 타락하고 타락한 욕망은 파멸에 이르는가. 


몬테, 딥스와 더불어 극중 중요인물 중 하나라고 할 만한 보이시 또한 분명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을 테다. 그녀는 관계를 가지지 않고 임신하였다. 동정녀 마리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의 집으로 찾아가 그녀가 성령의 아이를 잉태했음을 알리는 '수태고지' 후, 성모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 수도승, 주술사, 마리아 등의 상징으로 보아 영화를 종교적으로 해석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영화는, 그러나 주지한 은유나 상징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그저 늘어놓기만 하고는 제대로 연결시켜 의미 있는 무엇을 내놓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희망을 찾을 길 없는 상황에서 선택을 하는데, 그것이 희망일지 허무일지 보는 이들마다 다를 것이라는 열린 결말과 해석 정도? 결국 해석을 요하는 또는 강제하는 서사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금기, 로버트 패틴슨, 범죄자, 본성, 상징, 실험, 욕망, 우주, 은유, 하이 라이프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블로그 이미지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by singenv

공지사항

  • 댓글에 대한 공지
  • [책으로 책하다 도서 목록]
  • <오마이뉴스> 서평/리뷰 송고 방침
  • 모든 이미지는 인용 목적으로 사용⋯

    최근...

  • 포스트
  • 댓글
  • 트랙백
  • '효율'이라는 괴물 앞에 모든 게⋯
  •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 그럼에도⋯
  • 관능적인 동작으로 몸과 다시 교감⋯
  • 포기하고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 의사 작가가 훑어내린 내 몸 구석⋯
  • 더 보기
  • 감사합니다~ 시즌3를 기대하고 있⋯
    singenv ㆍ 2020
  • 재미있게 읽었어요 지금 시즌2 보⋯
    개구리 ㆍ 2020
  • 감사합니다! 맞구독합니다~
    singenv ㆍ 2020
  • 구독과 하트 누르고 갑니다 맞구독⋯
    아마추어 리뷰어 ㆍ 2020
  •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래 전 서평⋯
    singenv ㆍ 2020

태그

  • 넷플릭스
  • 현실
  • 성장
  • 일본
  • 희망
  • 책으로 책하다
  • 책
  • 피해자
  • 아포리즘
  • 소설
  • 가족
  • 중국
  • 캐릭터
  • 재미
  • 역사
  • 삶
  • 죽음
  • 관계
  • 인간
  • 욕망
  • 제2차 세계대전
  • 미국
  • 변화
  • 사랑
  • 전쟁
  • 천재
  • 연기
  • 만화
  • 여성
  • 영화

글 보관함


  • 2021/03
    (2)

  • 2021/02
    (11)

  • 2021/01
    (12)
«   2021/03   »
일 월 화 수 목 금 토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링크

카테고리

다양한 시선 (1428)N
신작 열전 (609)N
신작 도서 (304)
신작 영화 (305) N
넷플릭스 오리지널 (142)
모모 큐레이터'S PICK (36)
지나간 책 다시읽기 (108)
한국 대표 소설 읽기 (11)
오래된 리뷰 (202)
생각하다 (231)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 연재 (5)
그대 그리고 나 (17)
서양 음악 사조 (8)
인권 선언 문서 (4)
조선경국전 (5)
중국 영화사 개괄 (5)
출판계 살리기 프로젝트 (3)
카프카의 편지 (6)
팡세 다시읽기 (14)
명상록 다시읽기 (12)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46)
감독과 배우 콤비 (10)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6)
궁극의 리스트 (8)
제9의 예술, 만화 (14)
독립영화의 힘 (4)
생생 스포츠 (10)
내맘대로 신작 수다 (17)
첫 문장-아포리즘 (8)

카운터

Total
2,077,856
Today
65
Yesterday
148
방명록 : 관리자 : 글쓰기
singenv's Blog is powered by daumkakao
Skin info material T Mark3 by 뭐하라
favicon

책으로 책하다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 태그
  • 링크 추가
  • 방명록

관리자 메뉴

  • 관리자 모드
  • 글쓰기
  • 다양한 시선 (1428) N
    • 신작 열전 (609) N
      • 신작 도서 (304)
      • 신작 영화 (305) N
    • 넷플릭스 오리지널 (142)
    • 모모 큐레이터'S PICK (36)
    • 지나간 책 다시읽기 (108)
      • 한국 대표 소설 읽기 (11)
    • 오래된 리뷰 (202)
    • 생각하다 (231)
      •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 연재 (5)
      • 그대 그리고 나 (17)
      • 서양 음악 사조 (8)
      • 인권 선언 문서 (4)
      • 조선경국전 (5)
      • 중국 영화사 개괄 (5)
      • 출판계 살리기 프로젝트 (3)
      • 카프카의 편지 (6)
      • 팡세 다시읽기 (14)
      • 명상록 다시읽기 (12)
    •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46)
      • 감독과 배우 콤비 (10)
      •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6)
      • 궁극의 리스트 (8)
    • 제9의 예술, 만화 (14)
    • 독립영화의 힘 (4)
    • 생생 스포츠 (10)
    • 내맘대로 신작 수다 (17)
    • 첫 문장-아포리즘 (8)

카테고리

PC화면 보기 티스토리 Daum

티스토리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