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일찍이 본 적 없는 섹시하고 농염하고 화려한 15세 영화

반응형


[신작 영화 리뷰] <챌린저스>

 

영화 <챌린저스> 포스터.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아트 도널드슨은 유명 테니스 선수로 US오픈만 제외하곤 다른 그랜드 슬램 대회를 모두 석권한 슈퍼스타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의 아내이자 코치 타시 덩컨이 제안 하나를 한다. 자신감을 회복하고자 소규모 챌린저스 대회에 출전해 보란 듯이 우승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뉴욕의 뉴로셀 챌린저스 대회에 참여하는 아트, 그런데 그 대회에 하필 패트릭 즈바이크가 출전한 게 아닌가? 그로 말할 것 같으면 비록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선수에 불과하지만 십수 년 전에 아트와 함께 주니어 US오픈 복식 우승을 달성하고 아트와 맞붙어 단식 우승도 달성했던 (걸로 예상되는) 초특급 영재 출신이다.

아트와 패트릭은 12살 때 테니스를 함께 시작해 18살 때 주니어 US오픈 복식을 함께 제패하고 당대 최고의 주니어 선수 타시 덩컨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후 아트와 타시는 함께 스탠퍼드 대학교에 진학했고 패트릭은 프로로 전향해 투어를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타시와 패트릭은 사귀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랑과 욕망 그리고 테니스의 완벽한 결합

 

현시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중 하나인 루카 구아다니노는 2017년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그전에도 꾸준히 작품을 내놓았았고 그 이후에도 꾸준해서 3편의 영화를 더 내놓았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표현하려 애쓰는 편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후 3번째 작품이 로맨틱 코미디와 스포츠를 결합한 장르인 <챌린저스>로 그는 영화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영화 자체로 각인되길 바란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영화로 뭔가를 얻긴 힘들 테지만 영화적 체험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과 욕망 그리고 테니스라는 스포츠의 완벽한 결합으로.

테니스가 오롯이 코트 위의 둘(또는 넷)이 대결하는 스포츠라서 그런지 영화로 만들기 제격인 데가 있다. 하여 종종 만들어지는데 테니스보다 로맨스 <윔블던>, 역사적인 성 대결 <빌리 진 킹>, 숙명의 대결 <보리 vs 매켄로>, 전설들의 아버지 <킹 리차드> 등이 대표적이다. 사랑과 욕망의 테니스 <챌린저스>도 테니스 영화 대표로 자리 잡을 것 같다.

 

극도로 구조화된 영화

 

<챌린저스>는 극도로 구조화된 영화다. 대사 하나, 표정 하나, 장면 하나 허투루 쓰지 않았다. 앞의 수많은 것이 뒤엣것의 복선으로 작용하고 뒤의 수많은 것이 앞엣것을 설명한다. 그런 기조로 영화를 보면 타시 덩컨의 입장에서, 패트릭 즈바이크와 아트 도널드슨의 입장으로 나뉜다. 물론 셋은 서로 얽히고설킨다.

우선 타시 덩컨의 입장에서 둘은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 욕망의 대상이다. 일찍이 최고의 선수였으나 부상으로 꺾여버린 사상 최강의 꿈을 둘 또는 한 명을 통해 이루고자 한다. 그래서 그녀는 현재 아트의 아내 이전에 매니저이자 코치로 자신을 규정하고 관계를 정립한 것이다. 못다 이룬 꿈에의 욕망을 대신 실천해 주는 용도라고 할까.

그러니 비록 꼴도 보기 싫지만 패트릭이 필요하다. 오직 패트릭만이 아트의 슬럼프를 극복하게끔 도울 수 있다. 아트와 패트릭의 관계 정립과 관련이 있다. 한편 타시 입장에서도 과거 한때 사람 자체로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에 사랑했던 패트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의 문제도 얽혀 있다. 매우 복잡다단하다. 그래서 제목이 '챌린저'가 아닌 '챌린저스'일 것이다.

 

관계야말로 키포인트

 

타시는 일찍이 테니스가 '관계'의 스포츠라는 걸 알아차렸다. 코트 위의 두 선수, 그리고 매우 가까이서 관전하는 관객. 끊임없이 소통하며 관계를 다져가는 것이다. 어느덧 승부가 아니라 시합 자체에 몰두하게 되는데 그때의 희열이야말로 테니스의 정수다. 이 영화의 핵심과 맞닿아 있기도 한 바 패트릭과 아트, 아트와 타시, 타시와 패트릭 사이의 계속되는 관계도 말이다.

와중에 아트와 패트릭의 관계가 이 영화의 키포인트다. 그들은 어렸을 적부터 정녕 모든 걸 함께했는데 그들 사이의 친밀도가 얼마나 농염한지 그 둘을 제외하곤 모두 아는 것 같다. 그들은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애써 부정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표정과 몸짓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는 테니스 시합으로 그들이 서로를 향해 극강의 희열을 맛본다고 은유한다.

그렇다, 아트는 비록 타시와 결혼해 아이까지 있지만 그녀를 엄마처럼 대한다. 애초에 그녀를 사랑했던 게 아니라 그녀의 황홀한 테니스 실력에 빠졌을 것이다. 그녀를 사랑한 건 패트릭이었을 테다. 그녀가 내뿜는 황홀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패트릭과 아트야말로 서로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또 욕망했을 테다. 하지만 그걸 표현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동시에 타시에게로 시선이 쏠렸으나 꼭 들어맞지 않았다. 일찍이 본 적 없는 섹시하고 농염하고 화려한 15세 영화였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