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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청춘'에 해당되는 글 22건

제목 날짜
  • 2010년대 후반 일본 청춘영화계의 적통 명작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2020.05.22
  • 마침내 시작되었지만 금세 끝나 버린, 나의 전쟁 <자헤드> 2020.03.27
  • 색채를 더해가는, 미국 대중문화 센세이션의 신화 <졸업> 2020.03.11
  • 흑백의 성혜를 통해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직시하는 청춘 <성혜의 나라> 2020.02.24
  • 90년대 한국을 상징하고 대표한 컬트작 <태양은 없다> 2019.10.06
  • 상실, 불안, 고독으로 점철된 삶에서 사랑으로 힘내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2019.02.20
  • '입시' 아닌 '인생'에 도움이 되는 교육, '카르페 디엠'! <죽은 시인의 사회> 2019.01.23
  • 결국, 다시, 사랑이라고 말하는 러브 스토리 <먼 훗날 우리>(1) 2019.01.14
  • 장르 폭풍이 전하는 재미와 질문 '누가 진짜 괴물인가' <몬몬몬 몬스터> 2018.08.15
  • 속절없이 빠르게 지고 마는 청춘에 대한 찬미와 안타까움, 영화 <아웃사이더> 2018.07.27

2010년대 후반 일본 청춘영화계의 적통 명작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5.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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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포스터. ⓒ(주)디오시네마



동양 대표 3국, 한국 일본 중국(대만)의 청춘영화 최근 동향을 되뇌어 본다. 이중 의외로 최근 가장 활발하고 핫한 나라는 중국 아니, 대만이다. 2007년 혜성 같이 등장한 <말할 수 없는 비밀> 이후 2010년대 꾸준히 비슷한 느낌의 청춘영화들이 찾아왔다. 고등학생 나이, 풋풋한 사랑, 약간의 코미디 등이 뒤섞여 우리네 8~90년대를 연상시키는 화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한국의 경우, 청춘영화라고 할 만한 장르적 집합체가 사라진 것 같다. 학원물, 로맨스, 액션, 공포 등의 확고한 장르가 청춘이라는 장르와 겹치면서 힘을 더했던 예가 많아, 오롯이 청춘 소재만으로는 영화를 만들지 않게 된 것이다. 아니, 만들지 못하게 되었을 수도. 영화를 '잘' 만듦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되었지만, 장르적 다양성에서는 후퇴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런가 하면, 일본 청춘영화는 점점 멜랑꼴리해지는 것 같다. 무기력하고 무심하고 무료하고 애매하다. 상실과 허무를 동반하기도 한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발설하기가 두려운 듯하다. '오그라드는' 대사와 상황연출이 주를 이루기도 했던 일본영화의 기조에서 조금씩 탈피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 청춘영화만의 느낌이 확실히 나타나면서 기대하게 된다. 일본 현지에선 지난 2018년 개봉했지만, 우리나라엔 2년이 지난 후 소개된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일본 청춘영화에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것을 갖췄다고 할 수 있겠다. 


세 친구의 우정과 사랑


일본 홋카이도 하코다테, 한 여름, 서점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나'는 친구 시즈오와 같이 산다. 어느 날 나는 무단결석을 하곤 밤에 서점으로 찾아와 아르바이트 동료 사치코와 데이트 약속을 잡는다. 그러곤 시즈오와 놀다가 사치코와의 약속을 잊어 버린다. 다음 날 민망하지만 민망하지 않은 척 사치코와 재회하는 나, 이내 질척거리지 않는 쿨한 관계로 진척된다. 함께 다니고 몸을 섞지만 사귀는 사이는 아닌 관계.


나와 사치코 그리고 시즈오, 세 명이 친해진다. 셋이서 함께 당구도 치고 클럽에도 가고 집에서 술도 마시며 논다. 예기치 않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시즈오가 사치코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나는 괜찮다고, 그렇게 하라고 한다. 시즈오와 사치코는, 영화도 보고 노래방도 가고 급기야 둘만 캠핑에 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셋은 함께 놀고 먹고 웃고 떠드며 시간을 보낸다. 


사건이 하나둘 발생한다. 사치코는 점장과의 관계를 정리하려 한다. 사치코와 점장 관계를 눈치챈 서점 아르바이트 동료 모리구치의 눈치 없는 발언에 발끈한 나는 모리구치를 구타한다. 시즈오는 엄마가 갑자기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엄마에게로 향한다. 나의 심경에 변화가 생기려고 한다. 무심한 나는 어떻게 대처해 행동해야 하는가. 


청춘, 청춘, 청춘!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41세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일본의 천재 작가 사토 야스시의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원작의 70년대 도쿄 배경에서 현재 하코다테 배경으로 옮겨왔음에도, 전혀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청춘'이라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하고 불안한 객체를 완벽히 표현해낸 원작자의 천재성 덕분인지, 50여 년의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표현해낸 연출가의 천재성 덕분인지. 누구 덕분인지는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결과물이 하염없이 좋다는 게 중요하지 않겠는가. 


영화의 원제가 'And Your Bird Can Sing'이다. 원제를 충실히 옮긴 제목이구나 싶겠지만, 원제가 다름 아닌 비틀즈의 노래 제목이다. 1966년에 발표한 노래로, 유튜브를 통해 들어보면 전형적인 비틀즈 팝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영화와는 분위기나 결이 다르지만, 표현하는 방식만 다를 뿐 '청춘'이라는 범 주제의 유추가 가능하다. 청춘을 생각하고 표현하고 보여주고 노래하고 고찰하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이들이 관심을 가진 게 확실하다. 그리고 비슷비슷하다, 청춘도 청춘을 바라보는 시선도.


청춘은 방황하며 혼란스럽기 마련, 돌이켜 보면 한없이 돌아가고 싶은 그때이지만 정작 그때엔 너무 힘들어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청춘 이야기는 대부분 청춘이 지난 세대가 얘기하기 마련이다. 그럴 땐 '청춘'이 아닌 '꼰대'의 이야기가 될 것이기에, 청춘이 청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문제는, 청춘은 정작 청춘의 '진짜' 가치를 알기 힘들다는 아이러니다. 그걸 해낸 이들이야말로 정녕 위대하다. 


무심하고 무기력하고 무료하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무(無)'의 아우라를 풀풀 풍긴다. 나는 누가 뭘하든 관심없다는 '무심'을, 시즈오는 무엇도 하기 싫은 '무기력'을, 사치코는 심심하고 지루해 보이는 '무료'를 상징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불완전하고 불안정하고 불안한 객체로서의 흔들리는 청춘에서, 무심하고 무기력하고 무료하게 흐르는 청춘으로서의 변화된 모습이다. 일본 청춘만의 모습일지 모르겠으나, 청춘을 바라보는 시선과 표현 방식이 다를 뿐 청춘의 본질은 똑같다는 걸 상기한다면 비단 일본 청춘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영화의 세 주인공 중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는 '나'야말로 청춘의 핵심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우리로선 알 수 없는 본심을 감춘 채 그 무엇과도 '연결'되는 걸 꺼려하는 것 같다. 연결되어 관계를 형성시킨 후,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상실과 허무가 두려운 것이리라. 이 시대의 청춘으로선 그런 류의 감정 소모를 받아들이고 헤쳐나갈 여유도 용기도 없다. 적어도, 청춘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역사상 최악의 청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이때, 벌어먹고 살기도 힘든데 우정과 사랑의 금자탑을 쌓으라니?


그런데, 사람이 왜 사람인가. 오가는 감정으로 연결되고 관계를 형성하며, 지지고볶고 살아가는 게 인간 세상과 인생 아닌가. 청춘영화가 존재하는 이유, 청춘영화가 해야 할 일이 그것이다. '청춘은 이래야만 한다'고 선언하는 게 아니라, '청춘들아, 많이 힘들지?'라고 위로하는 게 아니라, 청춘들이 이렇다는 걸 그저 보여주는 것이다. 본질은 같지만, 시대마다 장소마다 다른 청춘의 모습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를 잇는 2010년대 후반 일본 청춘영화계의 적통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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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무기력, 무료, 무심, 변화, 사랑, 일본청춘영화,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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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시작되었지만 금세 끝나 버린, 나의 전쟁 <자헤드>

오래된 리뷰 2020. 3.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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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자헤드-그들만의 전쟁>


영화 <자헤드-그들만의 전쟁> 포스터. ⓒ넷플릭스



20년 연출 경력의 샘 멘데스 감독 여덟 작품 중 유일하게 국내에서 정식 개봉되지 않은 작품이 있다. 탄탄한 필모로 소문난 그이기에 의아할 수 있겠으나, <007 스펙터>처럼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좋지 못한 적도 있기 때문에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2005년에 개봉된 그 작품은 <자헤드-그들만의 전쟁>(이하, "자헤드")으로, 샘 멘데스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보면 제이크 질렌할, 제이미 폭스, 피터 사스가드 등 출연자들도 괜찮다 못해 화려하다. 걸프전 소재의 드라마가 중심이 되는 전쟁 이야기라는 점이 조금 생뚱맞기는 하나, 당시에도 이미 드높았던 감독의 이름값으로 충분히 기대가 가고도 남음이지 않은가. 한 번쯤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재미를 찾는다기보단 의미를 찾아 보려 한다. 


영화 <자헤드>는 전쟁영화가 아니다, 청춘영화에 가깝다. 전쟁을 들여다보려 하기보다 해병대의 실체를 들여다보려 하고, 해병대의 실체를 들여다보려 하기보다 청춘 군인들을 들여다보려 하기 때문이다. 왜 해병대에 지원하게 되었고 걸프전에선 어떤 일을 했는가. 실제 참전한 해병대 출신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만큼, 군대와 군인과 걸프전의 사실적인 묘사와 진짜 내면을 엿볼 수 있을 테다. 


할 일 없어 해병대에 지원했지만...


대학 진학에 실패하곤 할 일도 없고 해서 해병대에 지원하게 된 20살의 스워포드, 즉시 후회할 정도의 갈굼을 받으며 훈련소를 지나 자대에 배치받는다. 역시 녹록치 않은 생활, 군악대가 되려다가 크게 된통을 맞고 지난한 훈련 끝에 저격수로 발탁된다. 비로소 완연한 군인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 그때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걸프전이 시작된다. 스워포드가 속한 중대도 '본때를 보여 주고자' 참전한다. 


스워포드가 도착한 곳은 사막 한 가운데, 본때를 보여 주고자 왔지만 끝없는 훈련만 이어질 뿐이다. 2달쯤 되어서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부턴 권태와 고독을 이겨내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를 의심하며 미쳐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또 본인의 잘못에서 시작된 후임의 실수로 큰 벌을 받고 강등까지 되자 후임을 죽이려드는 등 미쳐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그마치 6달이 지나 점점 미쳐가며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싶을 때쯤, 지상군 투입작전인 '사막의 폭풍' 작전이 시작된다. 처음의 5천 명 병력은 어느새 60만 명에 육박해 있었다. 드디어 적을 쏴죽일 시간, 나를 보여 줄 시간이 온 것이다. 하늘에선 허구헌 날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최첨단 미사일이 준비되어 있지만, 그래도 전쟁의 승패는 지상군 최강인 자신들에 달렸다고 말이다. 그때 스워포드와 함께 중대 최고참 격인 트로이가 초를 친다. 현대전은 공습 10초면 모든 게 끝난다고, 지상군은 총 한 발 못 쏴볼 거라고. 어떻게 되는 걸까. 


존재증명과 인정투쟁


영화 <자헤드>는 걸프전에 참전한 해병대원들의 이야기이지만, 사회에서 할 일이 없어 군대에 들어와 참전까지 했지만 총 한 번 쏴보지 못하고 훈련만 받고 있는 '할 일 없는' 청춘 군인들의 이야기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할 일 없는 청춘들이겠다. 물론 전쟁에 내몰려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돌아오고 마는 청춘들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모습도 중요하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나라는 존재 그 자체이다. 그 중요한 나는 증명해야 하고 인정받아야 하는 숙명에 처해 있다. 영화에서, 해병대에 온 대다수의 청춘들이 사회에선 스스로를 증명하는 데도 인정받는 데도 실패했다. 입대하고서 피나는 훈련을 받고 참전하며 비로소 존재를 증명할 수 있고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장 한 가운데에서 훈련만 할 뿐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대기만 할 뿐이다. 힘들고 긴장되고 죽음까지 불사할지언정, 전쟁에서 총 한 발 쏴보지 못하면 그게 말이 되느냔 말이다. 겁쟁이인지 전쟁기계인지, 적과 대치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냔 말이다. 드디어 지상군 투입작전으로 적과 조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그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그마저도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 어떻게 존재를 증명하고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으로, 내가 나로 거듭날 때가 오긴 할까. 


마침내 시작된 나의 전쟁, 4일 4시간 1분뿐이었다


영화는 화끈한 액션을 기대하는 이에겐 크나큰 실망을 안길 테고 철학적 메시지를 얻고 싶은 이에겐 자못 큰 실망을 안길 테다. 메시지를 던지기 하되 인생을 결정짓거나 뒤흔들지는 못하며, 무엇보다 영화가 지루하기 짝이 없다. 던지는 메시지 자체가 지루한 청춘들의 못다 이룬 존재 증명과 인정투쟁이 아닌가. 즉, 전쟁이 아니었더라도 충분히 흥미로운 다른 많은 소재가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샘 멘데스 감독도 많이 아쉬웠는지, 15여 년이 지난 후 <1917>로 완벽하게 돌아온 바 있다. 일개 개인의 확실하고도 위대한 존재증명으로 말이다. 


<자헤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단 두 마디로 압축할 명대사가 있다. 영화가 절반도 한참 지난 후에 비로소 전쟁다운 모습이 비추는데, 와중에 스워포드는 사방에 포탄이 터지는 한 가운데에 서서 "마침내 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라고 말한다. 오래지 않아 고작 4일이 지났을 무렵 저격수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 채 귀대했을 때 전쟁이 끝나 버리곤 "4일 4시간 1분이 나의 전쟁이었다"라고 말한다. 


생각해 본다. 나는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또 증명받고 있는가. 일터에서? 집에서? 만남에서? 온라인에서? 영화를 보며? 책을 읽으며? 글을 쓰며? 대화를 나누며? 운동을 하며? 산책을 하며? 중요한 건, 존재증명이라는 거창한 말보다 나를 챙긴다는 소박한 말로 인지하여 다방면에 조금씩 걸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한 가지에 매몰되어 올인하면, 이후를 기약하기가 힘들지 않겠는가. 


이건 개인에게 중요한 것일 테고, 그만큼 중요한 건 사회가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일 테다. 사회가 개인을 품기 위해서는 개인을 위해 해주어야 할 게 많다. 다만, 개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허투루된 장에 내몰려선 안 되겠다. 그 끝은 비극적일 게 분명하다. 그들만의 전쟁을 치르지 않게, 제대로된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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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걸프전, 그들만의 전쟁, 사회, 인정투쟁, 자헤드, 전쟁, 존재증명, 청춘,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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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를 더해가는, 미국 대중문화 센세이션의 신화 <졸업>

모모 큐레이터'S PICK 2020. 3.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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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졸업>


영화 <졸업> 포스터. ⓒ 시네마 뉴원



EGOT라고 하면, 미국 대중문화계를 대표하는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 네 개를 지칭한다. 텔레비전의 에미상(Emmy), 청각 매체의 그래미상(Gramy), 영화의 오스카상(Oscars), 극예술의 토니상(Tony)까지. 이중 2~3개를 수상한 사람은 발에 차일 만큼 많지만, 4개 모두를 수상한 이른바 '그랜드슬래머'는 현재까지 15명뿐이라고 한다. 우리도 알 만한 사람을 뽑자면, 오드리 헵번, 우피 골드버그, 존 레전드 정도가 아닐까 싶다. 


상들의 특성상 배우나 작곡가가 많은데 딱 한 명만 정체성이 '감독'인 이가 있으니 '마이크 니콜스'이다. 특이하게, 1960년대에 에미상을 제외한 세 부분의 상을 석권하며 명성을 누렸던 그는 40여 년이 지난 2000년대에 이르러 에미상을 수상했다. 1931년에 태어나 2014년에 작고했고 2007년 <찰리 윌슨의 전쟁>이 마지막 연출이었다는 점을 보면, 인생 마지막 혼신의 힘을 쏟아 결실을 보았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우린 마이크 니콜스라는 이름을 잘 알진 못한다. 그만큼 그가 작품으로만 자신의 대중문화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사실 우린 그의 작품을 아주 잘 안다. 196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두 작품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라> <졸업>만으로 충분하겠지만, 2004년 <클로저>도 절대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다. 지난 2월, 졸업의 계절에 <졸업>이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찾아왔다. 근래 수없이 많은 고전들이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우리를 다시 찾아오고 있는데, 걔중 단연 압권이랄 만하다. 


믿기 싫은 기이한 삼각 관계


우수한 성적과 모범적인 생활로 훌륭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온 벤자민(더스틴 호프만 분), 부모는 온갖 지인들을 불러모아 환영파티를 열어 벤자민의 앞날을 기획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부담스럽고 당혹스럽고 불안하기만 할 뿐, 이 자리를 한시라도 빨리 피하고 싶다. 여기저기 붙잡여서 당황하던 찰나, 다행히 자리를 피했는데 로빈슨 부인과 맞딱뜨린다. 그녀의 가족과는 예전부터 잘 알고 친하게 지내온 사이. 


로빈슨 부인은 벤자민에서 집에 데려달라고 한다. 낌새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못할 건 없으니 로빈슨 부인을 집으로 데려다주는 벤자민, 하지만 로빈슨 부인은 노골적이다시피 벤자민을 유혹한다. 다행히(?) 로빈슨 부인 남편이 집에 돌아와 위기를 모면하는 벤자민, 하지만 머릿속에서 로빈슨 부인을 떨쳐내지 못하곤 결국 호텔로 불러내 육체적 관계를 맺기까지 한다. 그녀는 결혼생활의 싫증으로 그를 탐한 것이겠지만, 그는 그녀를 어떻게 생각했던 걸까?


밀회를 이어가던 벤자민과 로빈슨 부인, 와중에 로빈슨 부인의 딸 일레인이 방학을 맞아 집에 온다. 사실, 벤자민 부모님과 로빈슨 부인 남편은 벤자민과 일레인이 좋은 관계로 발전하길 바랐다. 일레인을 본 이후 그녀에게 끌리기 시작한 벤자민, 하지만 로빈슨 부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결국 일레인은 벤자민과 로빈슨 부인의 관계를 알게 되고, 집을 떠나 학교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과연, 벤자민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로빈슨 부인인가, 일레인인가? 꼭 둘 중에 한 명이어야 하는가?


청춘의 방황, 미국의 일탈


영화 <졸업>은 족히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봐도 막장이랄 만한 삼각 관계를 정면으로 내세운다. 정극 기반의 코미디로,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웃음을 유발하는데 개그보다는 유머에 가깝다. 사이먼 앤 가펑클이 책임진 희대의 OST들은 영원히 청춘들의 심금을 흔들 만하다. 여러 모로 이 영화는 영화계 센세이션 따위를 뛰어넘은 대중문화 센세이션의 신화라 할 것이다. 영원히 계속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색채를 더해가는.


지극히 일차원적으로 들여다보자면, 하라는 대로만 정신없이 달려온 대학 졸업생 청춘의 방황을 보여준다. 하여, '청춘'이 주요 모토이다. 환영파티에서 어느 분이 '플라스틱!'이라고 외치며 그의 미래를 자본과 물질 세계의 훌륭한 부품으로 재단하듯 단정한 행동에, 반감이 아닌 당혹을 비추는 모습이 가련하기까지 하다. 부모는 벤자민이 자신의 뜻대로 계속 길을 가지 않을 뿐더러 뭐라도 하지 않는 날들이 길어지면서 불평이 쌓이는데, '졸업'이라는 말의 함의가 주는 가련함도 함께 쌓이는 듯하다. 끝과 동시에 시작해야 하는 인간의 삶이란. 


이차원, 삼차원을 건너띄고 사차원적으로 들여다보자면, 벤자민에 미국을 껴맞춰 볼 수 있겠다. 1960년 중반 미국이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만큼 전방위적으로 절대적 힘과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거인이자 괴물이었다. 대공황의 위기를 지나, 2차 대전과 한국 전쟁을 치르고, 베트남 전쟁과 냉전이 한창인 상황으로, 해야 할 게 많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깊숙이에선 허무의 기운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와중에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건, 도피와 위안과 자극으로서의 일탈이다. 


전설로 회자되는 장면들


비록 일차원과 사차원적이지만 개인적인 차원과 국가적인 차원에서 들여다봐도 큰 위화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영화 <졸업>의 스펙트럼은 어마어마하다. 즉, 이 영화에 그 어떤 걸 들이대도 전부 흡수하고는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으로서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완벽히 갖췄다고 할 수 있는 바, 우리는 이 작품을 가지고 각자에 맞게 이리저리 가지고 놀 수 있다. 


이 영화는 전설로 회자되는 몇몇 장면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압권이 세 군데 정도 있다. 영화를 본 이라면 누구든 예상할 수 있을 테고, 심지어 본 적이 없던 이라도 연상할 수 있을 테다. 메인 포스터로도 볼 수 있는, 로빈슨 부인이 스타킹을 신는 장면. 그야말로 평범하고 탈 없고 재미도 없을 것 같은 중산층의 혁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후, 수많은 영화에서 미국의 중산층을 표현하려 해 왔지만 <아메리칸 뷰티> 정도를 제외하곤 필적할 만한 작품이 없다. 


다른 두 장면은 영화 막바지에 몰려 있다.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50년이 넘는 작품에 스포일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벤자민이 초대받지 못한 일레인의 결혼식에 쳐들어가 일레인을 목놓아 부른다. 이에 응답하는 일레인, 벤자민은 교회 십자가를 뽑아들어 하객들을 물리치고는(?) 함께 도망친다. 수없이 패러디되고 오마주되었을 교회 결혼식장 도주 장면은, 유쾌 상쾌 통쾌한 혁명적 일탈을 시원스럽게 보여 준다. 혼돈스러울 정도로 자유분방한 '미국'이라는 나라를 선전하고 있다고까지 느낄 정도이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 장면은 이를 한순간에 뒤집는다. 


결혼식 도중 호기롭게 도망친 벤자민과 일레인, 함박웃음을 지으며 버스를 타고는 어딘가로 향한다. 하지만 곧바로 들이닥친 현실, 딱 들어 맞는 신조어가 하나 있다. 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 '현타', 함박웃음에서 일순간 당혹과 허무와 걱정이 오묘하게 뒤섞인 표정으로 돌아선 그들을 보고 있기로서니 준비와 계획 없는 미래가 얼마나 무시무시할 수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NG로 우연히 만들어진 걸로 유명한 이 장면 하나로, <졸업>은 이미 충분한 전설적 퍼포먼스를 한 차원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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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성혜를 통해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직시하는 청춘 <성혜의 나라>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2. 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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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성혜의 나라>


영화 <성혜의 나라> 포스터. ⓒ아이 엠



스물아홉 성혜는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새벽 신문배달 일을 하는 공무원 준비생이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바 앞날이 창창했다. 하지만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하곤 신고 절차를 밟았는데, 반강제로 퇴사당하고 말았다. 이후 그녀는 회사 면접에서 족족 떨어졌는데, 성추행 사건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걸로 생각된다. 


한편, 그녀에겐 7년 동안 사귀고 있는 찌질한 남자친구 승환이 있다. 그도 그녀처럼 공무원 준비생인데, 바쁜 성혜를 훼방놓질 않나 구차하게 모텔비 얘기를 꺼내질 않나, 하등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녀는 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매달 돈을 부치는데, 용돈이 아니라 아버지의 병원비이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먹는 거라곤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뿐인 성혜가 힘든 이유들이랄까. 


친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다녀온 성혜, 알 수 없는 복통에 시달리다가 병원을 찾으니 공황장애일 수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갑자기 숨이 가쁘고 머리가 어질하고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도무지 답이 없는 세상살이에 지쳐가고 있을 때 집에서도 쫓겨나게 된다. 그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며 사망보험금으로 5억이 생기는데... 그녀의 선택은 가히 충격적일 수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에 빛나는...


영화 <성혜의 나라>는 2018년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차지한 작품이다. 영화판에서는 1990년대부터 주로 단역으로 출연해 왔지만, 연극판에서는 2010년대부터 연출과 각본으로 잔뼈가 굵은 정형석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주연으로도 분한 데뷔작 <여수 밤바다>로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진출한 바 있다. 차기작 <앙상블>도 전주국제영화제에 소개되어 인연이 깊다. 


전주 한국경쟁 대상 작품임에도, 자그마치 2년만에 정식 개봉에 성공한 <성혜의 나라>는 독립영화의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작년 이른바 대형 독립영화들이 많은 관객들을 불러 모으며 이슈를 일으켰는데, 그 틈바구니에서 예년보다 못한 성적표를 받아본 독립영화들이 더 많아졌다는 아이러니가 함께했다. 소수의 성공작들이 전체 파이를 키우진 못했기로서니 역효과를 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혜로 분한 배우 송지인은 낯이 익을 만하다. 2008년부터 영화와 드라마, 단역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해 오다가 <성혜의 나라>에서 첫 주연으로 활약했다. 표정이 지워진 현시대의 청춘을 상징하는 '성혜'로 제 역할을 다했다. 사실, 그녀보다 눈에 띄는 이는 승환으로 분한 배우 강두이다. 어느새 배우로 변신해 재작년 <대관람차>에서 주연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강두, 이 영화에서도 캐릭터를 정확히 캐치한 물 오른 연기로 입체적 활기를 불어넣었다. 어서 빨리 그의 다음 영화를 보고 싶다.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직시하는 청춘의 현실


영화는 컬러 아닌 흑백을 택했다. 명백히 대놓고 의도한 바가 있는 듯, 성혜의 지난하고 짠내나고 한숨나는 삶의 면면에 너무 감정이입하여 깊숙이 들어갈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일면 객관적으로, 최소 한 발자국 이상은 떨어진 곳에서 바라볼 수 있게 말이다. 감독은 그런 방식으로 바라보는 게, 현시대 청춘을 보다 정확하게 직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테다. 


하여,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책감 또는 공감의 마음이 덜 느껴진다. 시선이 나로 향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시선이 영화로 향하는 영화가 있는데, <성혜의 나라>는 비록 겉모양은 마음을 움직이는 청춘 이야기로서니 감정을 뒤흔들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명제가 철저히 통용되어지는 느낌이다.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청춘 영화이다. 


시선이 감독에게로 향한다. 감독은 왜 이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청춘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직시하려는 의도가 전부였을까? 아니면 그 자신이 기성세대 남성으로, 당연히 현시대 여성의 청춘을 전혀 겪어보지 못한 채 그저 보고 듣고 느낀 것만 영화로 옮긴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영화는 너무 좋았지만, 더 깊고 세밀하고 마음을 두드리는 무엇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랬기에 이 영화가 좋았다는 걸 부인할 수 없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성혜의 선택을 아무도 탓할 수 없다


매년, 매 십년, 매 세대마다 청춘은 당연히 존재했다. 그리고, 청춘은 언제나 힘들었다. 비록, 지나가면 한없이 소중하고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로 남아 '그땐 그랬지' 정도로 치부되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청춘과 앞으로의 청춘은 다를 것 같다. 적어도 <성혜의 나라> 속 성혜를 보면 차원이 다르다. 더 이상 '청춘'이라는 단어에 모든 걸 때려넣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회사에서 성추행을 당해 정당한 절차를 밟았더니, 돌아오는 게 보복 차원의 퇴사와 계속되는 면접 탈락이란 말인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며 밤낮 없이 일해서 번 돈으로 자기 몸 하나 뉠 집 하나 찾기 힘들단 말인가. 돈 없고 백 없어도 몸 하나로 버티고 이겨낼 수 있다는 청춘은 옛말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 견고하게 망가진 시스템에서 청춘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 영화의 결말이 충격적이고 황당하고 안타깝기까지 하지만 한편으론 너무나도 이해 가능하게 다가오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겠다. 그 누구도 성혜의 선택에 왈가왈부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많은 청춘들이 그녀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그런 선택을 하면, 이 시대가 이 사회가 이 나라가 발전은커녕 제자리걸음도 힘들게 될 테지만 절대 청춘들을 탓할 수 없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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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두, 독립영화, 선택, 성혜의 나라, 송지인, 전주국제영화제, 정형석, 청춘, 현실, 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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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한국을 상징하고 대표한 컬트작 <태양은 없다>

오래된 리뷰 2019. 10.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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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태양은 없다>


영화 <태양은 없다> 포스터. ⓒ삼성영상사업단



3년 전 <아수라>로 영화 안팎으로 유명세를 치른 김성수 감독,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인지 시대를 잘못 읽었기 때문인지 그의 10편도 채 되지 않은 장편연출작들 중 많은 작품들이 뒤늦게 진가를 발휘하곤 했다. <아수라>가 대표적이라 할 만하고, 비교적 최신의 <감기>나 20여 년 전 <무사>도 그러했다. 그만큼 그만의 스타일이 확고하다는 반증일 수 있겠다. 


그의 연출작 7편 중 배우 정우성이 차지하는 바가 절대적이다. 초기 3편과 최근작 1편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이정도면 페르소나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인데, 정우성의 말없는 눈빛 연기가 주는 절대적 강렬함이 김성수 감독의 영화 스타일과 맞아떨어졌다고 하겠다. 이 조합에 대중들은 열광했고 <비트>와 <태양은 없다>는 자타공인 성공에 <무사>와 <아수라>는 겉보기에는 실패지만 사후비평과 2차판권에서 성공했다. 


나아가 이 영화들은 당대를 상징하는 컬트적 인기를 도맡아 했으니, 단순히 성공과 실패라는 도식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가치를 만들어낸 것에 모든 의미를 부여해도 충분하다. 적절한 흥행작은 남지 못해도 컬트 인기작은 영원히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20년 전 1999년 개봉작 <태양은 없다>는 김성수 감독과 정우성 배우의 전작 <비트>에 이어 90년대를 대표하는 컬트작으로 남아 있다. 


가진 것도 미래도 없는 청춘들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의 자질을 가진 도철(정우성 분), 후배한테 지고선 권투를 그만둬버린다. 펀치 드렁크 증후군을 앓게 된 그는 돈이 성공의 전부는 아니라고 믿는다. 관장 소개로 흥신소에서 일하게 되고 또래 홍기(이정재 분)를 만난다. 돈이 성공의 전부라고 믿는 그는 6년 만 있으면 30억 짜리 빌딩을 살 거라고 떠벌리지만 현실은 도박을 일삼으며 동네깡패 병국 일당에게 쫓기는 신세일 뿐이다. 


한편 도철은 홍기가 매니저 일을 봐주고 있다는 내레이터 모델 배우 지망생 미미에게 끌린다. 그녀도 도철과 홍기와 마찬가지로 가진 것 없이 꿈을 꾸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청춘이다. 홍기가 흥신소 돈을 빼돌리는 바람에 도철까지 함께 그만둔다. 되는 일 하나 없던 그들에게 우연치 않게 돈이 생기는데 홍기가 가지고 도망가 버린다. 도철은 그만두었지만 계속 마음이 가던 권투를 다시 시작한다. 


도철과 홍기와 미미는 따로 또 같이 분란을 일으키면서도 관심을 가지고 만나고 챙기고 각자의 꿈을 향한다. 하지만 홍기는 도박에서 계속되는 실패와 무시무시하게 조여오는 병국 일당의 압박에 못 이겨 또 다른 도둑질까지 한다.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홍기, 그의 태양은 떠오르지 않을 건가. 도철과 미미는 권투선수와 배우라는 꿈을 버리지 않고 계속 꾸며 거머쥘 수 있을 건가. 


영화를 넘어 문화로 자리잡다


영화 <태양은 없다>는 가진 것 하나 없는 청춘들의 되는 일 하나 없이 나날들을 담아냈다. 되는 일이 없더라도 착실하면 언젠가 자리를 잡을 수 있겠지만, 청춘에게 방황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듯 그들은 너나없이 비틀거리기만 할 뿐이다. 영화 자체가 상당히 두서 없는 줄거리를 자랑(?)하는데, 청춘의 방황을 표현하려는 의도라면 굉장하다 할 것이고 그저 각본의 한계라면 실망일 것이다. 


영화는 청춘을 방황과 함께 멋진 한때로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정우성과 이정재라는 2020년대에도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지킬 것 같은 배우들의 20년 전 '리즈 시절'을 완벽히 보여주는데, 영화 안 캐릭터가 아닌 영화 밖 배우에 집중한 세련되고 화려한 구도와 영상을 선보인다. 이는 영화가 영화로 끝나지 않고 문화로 자리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물론, 영화를 문화가 아닌 예술의 한 영역으로 보기도 하기에 <태양은 없다>는 비판 당할 요소가 차고도 넘친다. 도식적이고 관습적이며 개연성을 찾아볼 수 없거니와 중심이 잡히지 않는 영화로서, 끝까지 '참고' 봐주기가 힘든 것이다. 거기에 생각지도 못하게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는 이정재의 홍기를 제외하곤 하나같이 웃음을 자아낼 만한 연기를 내보이는 주조연들이 볼썽사나울 뿐이다. 


이는 영화를 보는 시선의 호불호 문제가 아닌 영화를 대하는 방법론의 차이라는 게 위로라면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 이 작품이 불과 몇 년만 늦게 나왔다면 어떤 취급을 받았을지 안 봐도 뻔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김성수 감독의 시대 선구안이 탁월했다고 할 수 있으니 20세기 마지막의 그때 그시절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한 것일 테다. 


IMF 시대의 청춘을 그린 컬트작


<태양은 없다>가 개봉한 건 1999년 1월이니 제작한 건 1998년일 테다. 당시 한국사회의 시대상을 간략히나마 조명해 보면 이 영화가 왜 그때 그시절에 가능했는지 영화 밖 또 다른 시선으로 유추해볼 수있다. 다름 아닌 1997년 11월의 IMF 외환위기이다.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한 한국 사회는 모든 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청춘들의 방황은 희망을 찾을 수 없는 미래로 귀결된다. 


사회에 발을 디디고 합당한 미래를 꿈꾸어야 할 청춘들은 이미 방황을 끝냈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받아줄 준비는커녕 언제 끝날지 모를 오리무중 상황에 진입했고 청춘들은 일찍이 찾아보기 힘든 미증유의 사태에 직면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태양은 없다>가 보여주는 청춘은, 그래서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니라 유임되고 있는 것이리라. 그들이 하는 일련의 '나쁜 짓'들로 그들을 가해자 취급해선 안 되며 그들이야말로 피해자이기도 한 것이리라. 


이 영화를 바라보는 또 다른 방법론으로 IMF 시대의 청춘이라는 도식을 대입해 보았는데, 영화에서 내보이는 현실과 그리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진 않다. 감독이 의도한 것이라면 영화를 영화적으로만 봐야 한다는 건대, 그러기엔 영화 자체만으론 별로인 게 어리둥절한 것이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었을지, 영화는 왜 이렇게 만든 건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90년대 한국사회 아닌 한국문화를 상징하고 대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표 컬트작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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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불안, 고독으로 점철된 삶에서 사랑으로 힘내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2.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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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포스터. ⓒ(주)디오시네마



영화를 즐겨 보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이야깃거리가 있는 영화는 리뷰를 써서 소개하고 기억에 남기려고 애쓰다 보면, 종종 나도 모르게 '군(群)'이 형성되는 걸 느낀다. 소설을 자주 접하다 보면 좋아하는 작가군이 형성되는 것처럼, 영화는 감독군이 형성된다. 


믿고 보는 배우가 있듯이 믿고 보는 감독도 있을 텐데, 영화에서 배우에 비해 감독은 상대적으로 덜 드러나기에 그냥 지나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감독군이 형성될 때 말 그대로 '나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일본에서는 2017년에 개봉했지만 한국에는 이제야 상륙한, 그동안 제목과 포스터, 최소한의 스틸컷과 내용 등의 단편지엽적인 정보만으로 기대를 품고 있었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이하 '도쿄의 밤하늘')도 그중 하나다. 


한국 개봉이 확정되고 찾아보기 시작하기 전엔 전혀 몰랐다. 감독 이시이 유야가 <행복한 사전> <이별까지 7일>을 연출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2000년대 중순부터 꾸준히 작품을 내왔던 그의 유이한 한국 개봉작인 두 편 모두 필자가 굉장히 잘 보았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도쿄의 밤하늘>을 인상 깊게 보고 이렇게 리뷰를 남긴다. 


상실로 점철된 삶들의 만남


상실로 점철된 청춘의 삶들이 도쿄의 하늘 아래에서 만난다.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한 장면. ⓒ(주)디오시네마



일본 도쿄, 미카(이시바시 시즈카 분)는 시골에서 홀로 상경해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고 아빠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낮에는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고 밤에는 '걸즈 바'에서 일한다. 그녀는 연애에 대해 비관주의적이고 염세주의적이다. 


신지(이케마츠 소스케 분)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공사판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게 자신에게 알맞다고 생각하는, 한 쪽 눈이 잘 안 보이는 말 많고 책 열심히 보는 청년이다. 그는 그저 절대적 절망 없이 막연한 희망으로 살아갈 뿐이다. 


미카와 신지는 우연히 만난다. 이 천 만 명이 넘게 사는 세계적인 대도시에서 몇 번이고 우연히 마주친다는 건 참으로 기막힌 우연, 이를 필연으로 이어가는 건 그들의 선택이자 몫이다. 


한편, 그들은 삶은 '상실'로 점철되어 있다. 미카는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셨고 지금은 매일매일 사람이 죽어나가는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미카는 친구 아닌 친구 같은 공사판 친구였던 토모유키(마츠다 류헤이 분)가 갑자기 죽는 걸 시작으로 하나둘씩 자신의 곁을 떠나는 걸 막지 못하고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받아들이고 느끼고 즐기는 영화


이 영화는 시에서 감성을 빌려온 만큼, 받아들이고 느끼고 즐기자.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한 장면. ⓒ(주)디오시네마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는 쉽지 않은 원작인 사이하테 다히의 시집 <밤하늘은 항상 최고 밀도의 푸른색이다>를 모티브로 삼았다. 시에서 감성을 빌려온 만큼, 영화는 가히 몽환적이고 이미지적이고 그래서 불친절하다. 이야기 서사가 없다시피 하고 대신 그 자리를 여러 영화적 기법과 시적 대사가 차지하니, 누군가는 보기가 쉽지 않을 수 있겠다. 


반면, 누군가는 시쳇말로 '마약에 절은 것 마냥' 이 영화에 심취할 것이다. 머리를 싸매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나름의 결론까지 지어야 하는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즐겨도 괜찮기 때문이다. 감독의 메시지나 의도가 심오하고 현실적이기까지 하다고 해도 말이다. 도쿄의 밤하늘이 '왜' 푸른지 알고 싶은 게 아니라, '푸른 밤하늘'을 감상하는 데 방점을 두는 것이다. 


필자는 사실, 후자 아닌 전자 타입이다. 생전 시라는 걸 거의 읽어본 적 없고, 소설도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서사의 깊이가 어마어마한 대하소설만 읽었다. 그런데, 위에서 주지했다시피 아무런 정보 없이 이런 시적인 영화를 봤으니 어떻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론까지 짓는 와중에도 나름 충분히 받아들이고 느끼고 즐겼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화 전반부는 도쿄 특유의 동경할 수밖에 없는 도시적 풍모와 더불어 한없이 고독하고 불안하고 단편적이고 진정성 없는 다층적 매력을 잘 표현해냈다. 그게 매력이라고 하기 힘들지라도 매력이라도 느끼게끔 말이다. '블루'는 많은 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슬픔'을 상징한다. 도쿄의 밤하늘이 항상 가장 짙은 블루라는 건 도쿄가, 도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항상 슬프다는 것, 슬픔을 느낀다는 것...


'도쿄'를 서울로 바꿔보자. 혹은, 베이징으로 뉴욕으로 런던으로 파리로 바꿔보자. 서울은 왠지 잘 어울릴 것 같다. 다른 대도시들은? 역시 어울린다. 도시의 슬픔은 누구도 극복하기 힘든 삶과 죽음의 간극을 비정하게 담고 있다. 


죽음의 공포와 불안, 그래도 힘내요


상실뿐만 아니라,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떠는 삶. 그래도 힘내라고 말한다.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한 장면. ⓒ(주)디오시네마



영화는, 그러나 일본 도쿄가 배경이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종종 '튀어나오는' 불안들 중 '지진'이 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잊혀지지 않는 그 사고 그리고 사건 말이다. 인간의 태생적인 불안 중 가장 심오한 건 역시 '죽음'이다. 살면서 항시 죽음의 공포와 불안을 안고살 수밖에 없는데, 일본 도쿄라는 세계적인 대도시에는 직접적인 죽음이 함께 하는 것이다. 


더불어 영화는 여러 뜻하지 않는, 의도하지 않는, 예측할 수 없는 죽음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 단순히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영화는 또 한 번 더 들어가 빈곤과 단절로 방황하고 힘들어 하는 이 시대 청춘들의 삶에 얹힌다. 도쿄, 청춘, 죽음의 세 키워드가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삶 위에 턱 하니 주저앉아버린 형국이다. 


어찌해야 하나, 삶과 죽음이 구분 없이 명멸하는 이곳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직면해 살 수밖에 없이 만들어진 이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그러나 사실 시종일관 굉장히 낙관론적인 비전을 내보인다. '힘내요', 여긴 도쿄지만 그래도 '힘내요'라고 말이다. 


결국 사랑이다. 죽음이 바로 내 옆으로 다가와 손짓해도 사랑이 있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곳곳에서 이 모습을, '사랑밖에 난 몰라' 하는 모습을 공감력 있게 보여준다. 그때 잊을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그래서 나아갈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 힘내라는 건 사랑하라는 말과 한 치의 오차 없이 같다. 삶과 죽음의 모습이 모두 같다면 불행하지만, 사랑의 모습은 모두 같더라도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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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아닌 '인생'에 도움이 되는 교육, '카르페 디엠'! <죽은 시인의 사회>

오래된 리뷰 2019. 1. 2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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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교육 1]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포스터.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명품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세상에 나온 지 올해로 30년, 중고등학생일 때 최소 한 번 이상 대학교에서도 최소 한 번 이상 완연한 어른이 되어서도 최소 한 번 이상 봤던 작품이다. 그리고 이렇게 또 보았다. 앞으로도 종종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영화는 북미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특히 유명한대, 필자처럼 학창 시절 선생님이 한 번쯤은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인공 키팅 선생님의 교육 방식은 그야말로 '이상(理想)' 그 자체이다. 


누가 이 작품을 만들고 연기했나 간략히 살펴보자. 호주 출신의 피터 위어 감독으로, 이 작품 전부터 유명했지만 이 작품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으며 후에 <트루먼 쇼> <마스터 앤드 커맨더> 등의 두고두고 회자될 명작을 남겼다. 


그리고 5년 전 세상을 뜬 로빈 윌리엄스가 있다. 그는 수많은 유명 작품과 좋은 작품에 출현하여 수많은 상을 휩쓸고 적절한 흥행을 선사한 대배우로, 비록 2000년대 이후 좋지만은 않은 모습을 보였지만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영원히 남을 배우다. 최근 몇 년새 완연한 연기파 배우로 우뚝 선 에단 호크의 앳된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아카데미 각본상에 빛날 만큼 빈틈 없이 탄탄한 이야기를 자랑한다. 1950년대말 미국, 졸업생의 75% 이상이 아이비리그에 진학한다는 명문 웰튼 아카데미 입학식이 열린다. 여지없이 훌륭한 인재들이 입학하고, 퇴임한 영어 선생의 후임으로 키팅 선생이 부임한다. 


빡빡한 스케줄로 입학 초기의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 가운데 닐, 녹스, 토드, 찰리 등 친한 7명이 있다. 이들은 '전통, 명예, 규율, 최고'라는 학교의 교훈을 '익살, 공포, 타락, 배설'로 고쳐 부르며 담배도 꼬나무는 악동들이지만 저녁이면 어김없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함께 공부하는 모범생이기도 하다. 아중에 키팅 선생의 수업은 이들로 하여금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키팅 선생은 '시(詩)'를 점수 매기려는 시 교과목 교재의 서문을 찢어버리고 직접 자작시를 지어오게 하고 통일되게 걷지 말고 제멋대로 걸어보라는 등 파격적 수업을 이어간다. 그 모체에는 '카르페 디엠' 즉, 현재를 즐기라는 말이 있다. 


급기야 그가 웰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을 때 만든 비밀 회합 '죽은 시인의 모임'이 7인의 손에 부활된다. 그 여파로 닐은 연극을 시작하고 녹스는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에게 솔직한 마음을 구애하며 찰리는 회합에 여자를 데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닐이 아버지의 극심하고 완고한 반대에 부딪혀 괴로워하다 결국... 생애 처음으로 진정 자신을 알게 된 행복한 시절을 보낸 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입시' 아닌 '인생'에 도움이 되는 교육


키팅 선생은 학교가 추구하는 '입시'가 아닌 학생들을 위한 '인생' 교육을 실시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오 캡틴, 마이 캡틴'이라 부르며 책상 위로 올라가는 명대사와 명장면으로 유명한 이 영화, 비단 미국이 아닌 한국의 수십 년 교육 역사와 현실에 정확히 반(反)하는 이상향을 내보이기에 판타지로 읽히면서 시원한 과정과 씁쓸한 결말을 안긴다. 


영화가 말하는 교육의 이상향은 키팅 선생으로부터 발현된다. 그는 외우는 법 아닌 생각하는 법, 점수 매기는 법 아닌 판단하는 법,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법, 다른 각도에서 보는 법, 신념을 기르고 유지하는 법 등 '입시'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가르친다. 


반면 그것들은 '인생'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일 테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인생에서 입시가 차지하는 비율을 생각해볼 때 도움이 되어야 하는 그것들은 도움은커녕 오히려 방해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게 현실이고, 그래서 하염없이 안타깝다. 


키팅 선생과 아이들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해고, 퇴학 또는 복종.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고 바뀌는 것 또한 없다. '죽은 시인의 모임'은 말 그대로 죽은 시인의 모임일 뿐이다. 죽은 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으랴. 그렇다고 살아 있다 해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다. 


시와 미, 낭만, 사랑


시와 미, 낭만, 사랑이 지향하는 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들과의 조화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건 사실일지 모르지만 진실은 아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건,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건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믿고 그게 사실이라고 굳건히 생각하는 이들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바꿀 수 있다.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들이 신봉해 마지 않는 '교육'적 방법으로. 그건 바로 영화 속 키팅 선생이 말하는 시와 미, 낭만, 사랑이다. 


여기서 쉽게 착각할 수 있는 지점은 시와 미, 낭만, 사랑이 지향하는 바이다. 그것들은 '예술'과 '예술가'만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다름 아닌 삶의 목적이자 삶에 예술적이고 낭만적 감수성을 품게 하는 게 목적임으로, '모 아니면 도' 식의 극단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등 삶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것들과 대척점을 이루지 않고 조화를 이루면 되는 것이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현재를 잡아라 등의 뜻을 지녔다. 한 번 지나간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 법, 그때만 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영화가 말하는 교육의 이상향, 그것은 다분히 교육의 대상을 향한다. 교육의 대상인 학생들이, 청춘들이 주체가 된다. 한 명 한 명 모두 이성과 감성을 두루 갖춘 삶의 주인이 된다.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영화가 교육 현장에서 주요한 교재로 사용되면 좋겠다. 하지만 앞으로는 제발 이 영화가 그렇게 사용되지 않으면 좋겠다. 교육의 방향과 방법이 바뀌어, 학생들의 삶이 주체가 되고 우리 모두 아주 잘 알고 있는 교육적 이상에 조금이라도 다가가 수많은 종류의 비극이 청춘의 한 가운데에서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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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로빈 윌리엄스, 인생, 입시, 죽은 시인의 사회, 청춘,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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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시, 사랑이라고 말하는 러브 스토리 <먼 훗날 우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1. 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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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먼 훗날 우리>


영화 <먼 훗날 우리> 포스터. ⓒ넷플릭스



2007년 춘절, 고향으로 귀향하는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된 린젠칭(징보란 분)과 팡샤오샤오(저우둥위 분), 알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그들은 베이징에서 함께 지내며 꿈을 키운다. 린젠칭은 게임 개발자의 꿈을 키우는 반면, 팡샤오샤오는 잘 나가는 베이징 남자와 결혼할 때까지는 그저 먹고 사는 데만 치중할 뿐이다. 


린젠칭은 팡샤오샤오를 좋아한다. 팡도 린을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그들은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렇게 시작되는 다시 없을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너무나도 팍팍하다. 


언제 꿈을 이룰지 알 수 없지만, 꿈을 이루기 노력하는 한편 현실을 살아가려고 발버둥 쳐야 하는 린. 팡은 그런 린을 응원하며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계속할 뿐이다. 그들의 사랑은 삐걱대기 시작한다. 


영화는 동시에 10년이 흐른 후 린과 팡이 우연히 베이징행 비행기에서 만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담담히 서로를 응시하며 조용히 대화를 이어가는 두 사람, 분위기로 봐서 그들은 헤어졌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들에게 어떤 일이 닥쳤던 것일까. 


중국 멜로의 대세이자 현재


이 영화는 단연코 중국 멜로의 현재이자 대세이다. 영화 <먼 훗날 우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 <먼 훗날 우리>는 중국 현지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흥행성적을 내고는 북미와 한국엔 넷플릭스로 공개되었었다. 중국 대세 배우들인 징보란과 저우둥위가 함께 한 청춘 감성 멜로로, 대만 출신의 만능 엔터테이너 류뤄잉의 첫 연출작이다. 


류뤄잉을 간단히나마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녀는 수많은 상을 휩쓴 영화배우, 대박 음반을 낸 가수, 10권이 넘는 책을 낸 작가, 그리고 이젠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이밖에 작사와 작곡도 하고 뮤지컬도 하고 다양한 사회활동도 한다. 


그런 감독의 작품이다 보니 영화도 지루하지 않고 빠르고 다채롭게 진행될 것 같고, 다방면의 이야깃거리들이 한데 잘 뭉칠 것 같다. 정통 멜로에 한 발만 걸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 했던 것을 훨씬 웃도는 만듦새를 보여주었다. 단연코 이 영화는 중국 멜로의 현재이자 대세이고, 당분간 '중국 멜로' 하면 이 영화를 떠올릴 듯하다. 재미와 감동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고, 현재의 청춘을 보여주는 데도 성공했다. 


첫사랑 지침서


첫사랑 지침서 <건축학개론>을 생각나게 하는 외관을 지녔다. 영화 <먼 훗날 우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는 우리나라의 첫사랑 지침서 <건축학개론>을 생각나게 하는 외관을 보인다. '그때 우린 왜 그랬을까' '그때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린 달라졌을까' 하는 덧없지만 할 수밖에 없는 질문들. 정처없다. 


보다 깊이 들어가보면, 밖으로만 도는 팡을 향한 린의 일편단심과 그 일편단심의 소소하고 디테일한 면면들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호감인지 사랑인지 모를 미묘함이 웃음 아닌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게 또 그럴 수밖에 없다'라고, 누군가는 말하게 만들고 또 그 말이 맞을 때가 있는 법. 사실, 팡이야말로 린을 계속 사랑해오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고는 그들의 연애와 사랑의 모습들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울 수 있겠는가. 


팍팍한 현실이라는 벽 또는 핑계는 그들로 하여금 아니 팡 아닌 린으로 하여금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마치, 운명 같다.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건, 운명 같다. 영화는 이 운명의 거시적 관점을 현재의 시점에서 풀어내고, 이 사랑의 미시적 관점을 과거들의 시점에서 풀어낸다. 우린 영화의 시작부터 결말을 다 알고 있지만 과정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의 과거, 현재, 미래가 빠짐없이 녹아 있기에.


결국, 다시, 사랑.


중국 청춘들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데 사랑과 연애를 수단으로 사용한 것 같지만, 결국 다시 사랑이라고 말한다. 영화 <먼 훗날 우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중국은 이제 명실상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지만, 실상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중앙 통제의 공산주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세계 최고의 빈부격차를 '자랑'하는 나라가 아닌가. 성공을 위해서라면 도시에서의 집도 절도 없는 생활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린과 팡의 베이징 나날들이야말로 그 자체이다. 


영화는 중국이, 중국 청춘들이 처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정공법을 택하면서, 사랑과 연애를 표나지 않게 어우르는 데 성공한다. 이 영화가 명작의 면모를 갖추었다는 게 바로 그 부분인데, 홍콩 반환기의 혼란과 10년 동안의 사랑을 절묘하고 절절하게 그린 20여 년 전 진가신 감독의 <첨밀밀>과 궤를 같이 한다. <건축학개론>보단 <첨밀밀>이 연상된다. 


그런 면에서 <먼 훗날 우리>는 단순명쾌한 영화는 아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시골 청춘의 도시 상경기 또는 성장기 그리고 회상기인 건 맞지만, 영화를 온전히 품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개인 아픔, 사회 현실, 시대 정신까지 차례대로 두루두루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과 인생이 그들만의 것이 아닌 게 가슴 아프다. 그렇다고 다른 무엇의 것이라고 한다면 더욱 가슴 아프다.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사랑에서 오는 아픔과 슬픔이라면 공감에의 '치유'가 가능했을 텐데, 이 영화의 사랑이 낳은 아픔과 슬픔은 끼어드는 것들이 너무 많고 일개 개인으로선 어찌 해볼 수 없는 것들이라 형용하기 힘든 감정을 유발시킨다. 하지만 영화는, 그럼에도 사랑이라면 다 이길 수 있고 이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다시, 사랑이라고 말하니 이 영화는 러브 스토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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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류뤄잉, 먼 훗날 우리, 사랑, 중국, 중국 멜로, 청춘,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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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4 17:12

    좋은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찾아서 감상해 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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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폭풍이 전하는 재미와 질문 '누가 진짜 괴물인가' <몬몬몬 몬스터>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8.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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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몬몬몬 몬스터>


영화 <몬몬몬 몬스터> 포스터. ⓒ더쿱



'대만영화', 어느새 우리에게도 익숙해졌다. 2000년대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필두로, 2010년대 괜찮은 청춘영화가 우후죽순 우리를 찾아왔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 등, 우리나라 감성과 맞닿아 있는 대만 감성이 두드러진 작품들이다. 


하지만, '진짜' 대만영화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대만 출신의 세계적인 감독들과 작품들이 있다. 허우 샤오시엔의 <비정성시>,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 리안 감독의 <결혼 피로연>, 차이밍량의 <애정만세> 등. 이들은 1980~90년대 대만영화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 일명 '뉴 웨이브'의 기수들이다. 이들의 감각적이고 예술적인 경향이 지금의 대만영화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비단 대만청춘영화뿐만 아니라. 


최근에 우리를 찾아온 강렬한 영화 <몬몬몬 몬스터> 또한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2010년대 대만청춘영화의 시작을 알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감독이자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의 원작, 각본, 제작을 맡았던 이른바, '대만청춘영화'의 기수 구파도의 신작이다. 젊은 감독의 '청춘' 사랑은 여전하지만,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수단과 방법이 이채롭다. 거기엔 청춘은 물론 공포, 스릴러, 코믹까지 있다. 


괴물 같은 인간과 괴물의 한판


영화 <몬몬몬 몬스터>의 한 장면. ⓒ더쿱



린슈웨이는 런하오 일당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거기에 반 친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동조한다. 심지어 담임 선생님도 피해자 린슈웨이가 아닌 가해자 런하오를 두둔한다. 복도에서 홀로 수업을 듣고 밥을 먹는 왕따이자 아웃 오브 안중인 여자 학생만 그를 위할 뿐이다. 자기처럼 되지 말라고. 하지만 린슈웨이 또한 그녀를 왕따시키는 학생일 테니, 그녀의 위로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한편 노숙자들과 독거노인들만 사는 곳엔 '괴물 자매'가 산다. 그들은 사람을 잡아먹는데, 어느 날 사냥하러 나왔다고 차에 치이고는 우연히 근처에 있던 런하오 일당에게 붙잡힌다. 그때 거기엔 린슈웨이도 있었다. 그들은 동생 괴물을 자신들의 아지트로 데려와서는 하염없이 괴롭힌다. 린슈웨이가 찾아보니 그 괴물들은 원래 사람이었다. 돈을 노린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런하오 일당과 언니 괴물은 한판 붙어야 한다. 사람을 잡아먹고 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괴물과 사람을 죽도록 괴롭히면서 사람이었던 괴물을 아무 이유 없이 잡아와 한없이 괴롭히는 사람. 사람으로서 사람을 응원하지만, 사람이니까 괴물을 응원해야 할 것도 같다. 


장르 폭풍이 선사하는 재미


영화 <몬몬몬 몬스터>의 한 장면. ⓒ더쿱



영화 <몬몬몬 몬스터>는 생각지도 못한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로만 느낄 수 있을 쾌감 어린 재미는 물론,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를 묻는 은근 철학적 질문으로 재미를 반감시키는 게 아닌 배가시킨다. 우선 재미 요소에는 위에서도 언급한 이 영화의 장르 폭풍이 있다. 청춘, 코믹, 공포, 스릴러 등. 


학교에서 벌어지는 왕따 이야기, 흔히 거기에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가 있고 다시 가해자가 되는 피해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는 또 다른 피해자를 물색하거나, 간혹 다른 루트로 본래의 가해자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가 명백한 가해자인 괴물을 상대로 가해자가 된다는 설정이 특이하다. 


괴물이 나오면서 장르는 자연스레 공포와 스릴러로 옮겨간다. 혐오스러운 몰골은 존재 자체로만으로도 공포를 유발하며, 언제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르는 긴장감 어린 순간들은 스릴러의 세계에 한 발을 들여다놓게 한다. 


구파도 감독의 전매특허인 청춘과 더불어 코믹이 빠질 수 없다. 특히 그가 제작, 원작, 각본을 맡은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의 황당무계한 판타지 코믹이 이 영화에도 살짝살짝 묻어난다. 그런 코믹들이 공인된 청춘 장르는 물론 공포와 스릴러와도 잘 어울리니 더할 나위 없이 잘 빠진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누가 진짜 괴물인가


영화 <몬몬몬 몬스터>의 한 장면. ⓒ더쿱



런하오 일당은 이 영화의 공공의 적이자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들의 궁극적 원인이다. 왠지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고 싸그리 죽을 것만 같은 느낌을 풍기는 영화에서, 런하오 일당이 린슈웨이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또 동생 괴물을 납치해오지 않았다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겉 아닌 속은 어떨까. 결국 런하오 일당 또한 언젠가 피해자였을 테고 언젠가 피해자가 될 운명이 아닐까. 그들도 이 강자와 약자가 나뉘어져 있는 거대한 시스템의 약자 측에 속해 더 절대적 약자를 괴롭히고 있는 게 아닐까. 약자들의 세계에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피눈물 나는 모습들을 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접할 수 있다. 


영화의 시작, 정신지체아와 가게를 꾸려 나가는 노인에게 물세례를 맞은 노숙자는 다른 노숙자와 경찰의 눈을 피해 더 깊숙히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갔다가 괴물 자매에게 잡아먹힌다. 하지만 정작 괴물 자매는 그보다 더 깊숙한 곳에서 박스 하나에 의존한 채 살아간다. 그런 괴물이 런하오 일당에게 잡히고, 런하오 일당은 린슈웨이를 괴롭히는 한편 함께 하는데, 린슈웨이는 다시 가게의 정신지체아를 향해 폭언을 하고... 


'누가 진짜 가해자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누가 진짜 괴물인가'를 말하려는 이 영화, 런하오 일당이 어떤 식으로든 '괴물'이라는 건 인정한다. 그렇다면, 린슈웨이는? 그 사이를 오가며 자신하지 못하는 그는, 어찌 보면 정녕 인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리 저리 휘둘리고 끝없이 고민하지만 결정하지 못하는 인간적인 인간. 하지만 그는 명백히 런하오 일당에 동조하고 함께 행동했다. 런하오 일당이 괴물이라면 그도 괴물이 아닌가? 영화가 질문하는 '누가 진짜 괴물인가'의 대상은 런하오 일당이 아닌 린슈웨이다. 그리고 우린 대부분 린슈웨이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렇다면 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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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절없이 빠르게 지고 마는 청춘에 대한 찬미와 안타까움, 영화 <아웃사이더>

오래된 리뷰 2018. 7.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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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아웃사이더>


영화 <아웃사이더> 포스터. ⓒ워너브라더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1970년대 미국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이다. 당시 <대부>, <컨버세이션>, <대부 2>, <지옥의 묵시록>을 연달아 내놓으며 그야말로 영화 세계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어 <카게뮤샤>도 기획 제작했으니 뭘 더 말할 수 있으랴. 


8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영화를 찍었지만 70년대만 못했다. 최근까지도 주로 기획과 제작에 참여해왔고 괜찮은 작품이 적지 않다. 그의 영화 연출, 그 빛나는 재능은 비록 한때였지만 그 한때가 남긴 흔적이 영원할 것이기에 아쉬움은 적다. 


여기 그의 1983년도 작품 <아웃사이더>가 있다. 아마도 코폴라 전성기 끝자락에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호밀밭의 파수꾼>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성장소설 중 하나인 S. E. 힌턴의 1967년 소설 <아웃사이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범상치 않은 스토리 구도에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들이 대거 출연해 흥미로운 조화를 이루었다. 물론 정점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일 것이다. 


부자와 빈민


영화 <아웃사이더>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미국 오클라호마의 어느 마을, 남쪽에는 백인 부자가 북쪽에는 백인 빈민이 살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쏘시와 그리저라 부르며 적대시한다. 그리저 포니보이는 어려서 부모님을 사고로 잃고 큰형 대릴, 작은형 소다팝과 함께 산다. 그는 감옥까지 다녀온 댈러스 무리와 함께 다니며 비행을 일삼지만, 소설과 시를 좋아하는 감수성 어린 열네 살 소년이기도 하다. 


위에서 언급하기도 했던 영화의 원작은 S. E. 힌턴의 자전적 이야기로, 그녀가 열일곱 살에 집필했다는 사실로도 유명하다. 한 소년의 성장 이전에 부자와 빈민 마을로 나뉘어진 배경이 인상적이다. 인상적이다 못해 기괴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자유라는 것이 명백히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는 벽도 존재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


서울의 강남,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몇몇 구는 우리나라 전체 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 갈수록 그런 사실 하에서 '계급'의 존재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부자들이 돈을 많이 버는 이유와 돈을 많이 벌고 나서 하는 일이 교육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릴 때 갖는 상대적 박탈감이다. 그건 시작될 당대에도 자신의 세계를 부정으로 잠식하는 심각한 영향을 끼치지만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결코 좋을 수 없는 영향을 끼친다. 상대적 우월감도 좋을 수만은 없다. 한 인간을 구성하는 건 결코 한 가지만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영화의 재미들


영화 <아웃사이더>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포니보이에게는 친한 친구 쟈니가 있다. 그는 매일 같이 싸우는 부모님 때문에 집에 들어가기 싫어한다. 어느 날, 그 둘이 새벽에 밖에서 배회할 때 쏘시들이 덮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포니보이를 죽일 듯이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쟈니는 칼을 꺼내든다. 정신을 차려 보니 쏘시의 한 아이를 죽인 것이 아닌가. 


영화는 데뷔한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여전히 탑배우의 자리에 있는 톰 크루즈와 지난 2009년 세상을 떠난 90년대 최고의 스타 패트릭 스웨이지, 80년대 최고의 청춘 스타 맷 딜런을 비롯, 지금까지도 꾸준히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했다. 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재미는 쏠쏠하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시의적절한 OST들이다. 영화의 주제를 완벽히 구현하는 스티브 원더의 <Stay Gold>(황금빛 시절)을 필두로 제리 리 루이스, 엘비스 프레슬리, 칼 퍼킨스의 노래들이 영화를 수놓는다. 


그 정점은 노래가 아닌 시인데, 포니보이가 존경해 마지 않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금빛은 오래 가지 않는다'이다. '청춘은 오래 가지 않는다'라고 바꿔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 영화의 재미, 그 기저에는 속절없이 빠르고 속절없이 지고 마는 청춘에 대한 찬미와 안타까움이 있는 것이다. 


자연의 첫 푸름은 금빛//붙잡아두기 가장 어려운 빛깔.//자연의 첫 번째 잎사귀는 꽃.//하지만 한 시간은 피어있을까요.//에덴은 슬픔에 잠겨버렸고//새벽은 낮으로 퇴색하는 것.//금빛은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속절없이 흘러가는 황금시절, 청춘


영화 <아웃사이더>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포니보이와 쟈니는 이런 일에 도가 텄을 것 같은 댈러스에게 도움을 청하고, 댈러스는 그들에게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버려진 교회 건물에 숨어 있을 것을 추천한다. 그들은 곧 야영을 시작한다. 얼마 후에 찾아온 댈러스와 함께 오랜만에 시내에 나가 맛있는 것도 먹고 앞으로의 일을 의논한다. 그리고 돌아왔는데, 교회 건물이 불타고 있는 게 아닌가. 그곳에는 견학온 어린 아이 몇몇이 갇혀 있었다. 포니보이와 쟈니는 주저없이 들어가 아이들을 구하는데, 쟈니는 그만 크게 다치고 만다. 


갈 곳 없는 포니보이와 쟈니에게 도망쳐 온 버려진 교회 건물은 역설적으로 파라다이스에 가깝다. 무엇보다 절대 헤어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계급적 배분의 하위 단계 삶에서 멀리 빠져나왔다는 생각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새롭게 부과된 굴레는 또다른 되돌릴 수 없는 상황 '살인'. 


그들의 절대 되돌릴 수 없는 또다른 '청춘'은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갈 뿐이다. 영화는 현실에서 절대 달아날 수 없이 두 발을 디디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선보이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굉장히 문학적이다. 현실과 맞닿아 있다고 보기에 좀 어려운 면이 있는데, 이는 아이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함이라기 보다 문학적으로 승화 내지는 비참한 현실에 당당히 맞서기 위함이라고 보는 게 맞다. 


쟈니가 포니보이에게 남긴 편지가 이를 증명한다. '황금은 어린 시절을 말하는 것 같아, 우리처럼. 어릴 때는 모든 것이 새롭잖아 새벽처럼. 네가 석양을 보며 생각하는 것이 바로 황금이야. 계속 그렇게 사는 게 좋은 것 같아. 아직도 세상엔 좋은 것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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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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