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애비게일>
남녀 6명이 완벽한 작전 계획 하에 부잣집 발레리나 소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납치하려 한다. 그녀의 이름은 애비게일, 발레 연습을 끝내고 기사가 최고급 롤스로이스로 데려다줄 정도의 재력가 집안이다. 그 정도의 재력가 집으론 허술한 것 같지만 소녀를 납치하는 데 성공해 어딘가로 향한다. 그들은 어느 저택에서 소녀를 24시간 동안 보살피면 각각 수백만 달러를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이르러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납치범 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더니 이내 목이 잘린 채로 죽어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 목이 잘린 흔적이 찢긴 듯 처참하다는 것, 그들은 소녀의 아빠가 악마와 다름없는 마피아 두목이라 추측하고 납치범 중 하나를 죽인 이가 그의 전설적인 부하라고 추측한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생각지도 못한 전개로 나아간다. 애비게일이 다름 아닌 뱀파이어였다는 것, 그녀가 남치범들을 하나둘씩 죽이고 있었다. 남치범들은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거액을 얻을 생각은 뒤로하고 24시간 동안 뱀파이어의 위협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신선함이 눈에 띄는 뱀파이어 영화
대략의 줄거리로도 신선하기 이를 데 없는 뱀파이어 영화다. 납치한 소녀가 뱀파이어고 남치범들이 그녀의 손에서 살아남고자 분투하는 이야기라니, 25년여 전에 나온 <황혼에서 새벽까지>가 떠오른다. 탈옥범 형제가 어느 술집에 들어갔다가 뱀파이어들의 습격에서 '황혼에서 새벽까지' 버텨야 한다는 이야기. 영화 <애비게일>은 일단 설정에서 큰 점수를 따고 들어간다.
하지만 유니버설 픽처스의 잇따른 뱀파이어 영화들 실패가 눈에 띈다. 작년 2023년에만 <렌필드> <테메테르호의 마지막 항해>를 연달아 내놓았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두 작품의 장점은 <애비게일>처럼 '신선함'에 있었다. 결과적으로 <애비게일>도 북미 개봉 당시 나름 호평을 받았지만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진 못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재밌다. 긴장감이 흐르다가 흥미롭다가 공포스럽다가 코믹스러우며 액션이 볼 만하다가 피칠갑에 내장이 사방에 튀며 반전에 반전에 반전이 뒤따른다. 그야말로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몰아친다. 호러 액션의 기본 장르에 세부 장르가 튀어나오길 반복한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코믹한 말들이 웃음을 유발한다.
일찍이 본 적 없을 신박한 설정과 쉴 새 없이 진행되면서도 깨알 같은 개그가 강력한 호(好)를 불러일으킬 것이나, 오히려 그 지점들이 난잡하게 느껴져 불호(不好)를 유발할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개인적 취향에 따라 다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잘 만든 킬링타임 영화인 것 같다.
죽어 마땅한 납치범이 피해자로?
살다 보면 역할이 뒤바뀌거나 상황이 전복되거나 심지어 함정에 빠질 때가 있다. 당황스럽기 이를 데 없을 테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외치는 이가 있다. "바뀌는 건 없어!"라고 말이다. 당연히 천지가 개벽할 수준으로 모든 게 바뀌었지만 마음을 다잡는 말일 것이다. <애비게일> 속 납치범들이 되새겨야 할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말 그대로 '납치범'이다. 거액을 단번에 얻으려고 무고한 이를 납치한 범죄자다. 그것도 아이 납치는 최악 중 최악이라 하겠다. 그러니 '죽어 마땅한 놈들'이라는 이미지가 새겨진다. 분명 피해자가 가해자로, 가해자가 피해자로 뒤바뀐 형상이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납치범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죽는지 지켜보게 된다. 그게 이 영화의 묘미겠다.
영화는 공포스럽게 잔인하게 처참하게 코믹하게 처절하게 온갖 방식으로 우리 소녀 발레리나 뱀파이어가 납치범들을 죽이게끔 하여 영화 밖 관객들의 자신도 모르는 욕망을 채워준다. 다만 그 지점이 그리 대중적이지는 않아 보여 호평의 여부와 별개로 흥행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요즘은 OTT로 수작 킬링타임 영화를 보고 영화에선 대작 킬링타임 영화를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뱀파이어 영화'가 계속 나와야 하는 이유로 작용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혹평보다 많은 호평 속에서 흥행전선에 빨간불이 켜지진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그래야 이런 류의 작은 장르 영화를 계속 볼 수 있지 않겠나. 일정 정도 이상의 재미는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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