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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인간'에 해당되는 글 92건

제목 날짜
  • 황폐화된 나와 욕망과 세상에 맞대면할 용기가 있는가? <스위트홈> 2020.12.28
  •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아주 작은 단면을 들여다보다 <블러드 오브 제우스> 2020.11.16
  • 미미하지만 경이로운 '인간'과 '우주'의 연결을 찬란한 작화로 표현한 수작 <해수의 아이> 2020.10.02
  • 경이로운 야생동물 '문어'와의 특별한 교감이 선물하는 감동! <나의 문어 선생님> 2020.09.16
  • 우리를 보다 인간답게 하는 반려동물의 죽음에 관하여 <우리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 2020.07.22
  • 전쟁의 참상에서 후대에게 전하는 절절하고 진솔한 편지 <사마에게> 2020.05.01
  • 제대로 들여다보는,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순간 <아폴로 11> 2020.04.10
  • 블록버스터로 들여다보는, 재난 대처의 모습과 자세와 방법 <열화영웅> 2020.03.23
  • 고흐라는 인간의 내면과 고흐가 바라보는 자연의 세계 <고흐, 영원의 문에서> 2019.12.31
  • 경계를 넘나들고, 경계가 무너지는 대단하고 충격적인 경험 <경계선> 2019.11.04

황폐화된 나와 욕망과 세상에 맞대면할 용기가 있는가? <스위트홈>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2. 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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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스위트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 포스터. ⓒ넷플릭스



2020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 수상작 중 하나인 네이버 웹툰 <스위트홈>, 2017년 10월에 시작해 2020년 7월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연재 기간 내내 꾸준히 금요 웹툰의 절대 강자 중 하나로 군림했는데, 스릴러 웹툰의 원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칸비 작가의 작품인 만큼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의 작품들은 다분히 저연령층 대상이지만 사람의 심리를 파고들어 들춰 내는 데 탁월하다. 


<스위트홈>은 그 인기를 실감하듯, 크리처 기반 스릴러물임에도 영화 아닌 드라마로 재생산되기에 이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공개된 드라마 <스위트홈>, 신예 송강을 비롯해 이진욱과 이시영 등의 캐스팅보다 더 눈이 가는 사람이 있었으니 연출을 맡은 이응복 PD다. 그의 연출작을 보면, 최근작부터 <미스터 션샤인> <도깨비> <태양의 후예> <비밀> <드림하이> 등으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음직한 타이틀들을 만들었다. 


믿고 보는 스타 드라마 PD의 한국 최초 크리처물 드라마라니, 그것도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인기 명작 웹툰을 원작으로 했다니, 더 이상의 이슈몰이는 의미가 없을 것이고 그에 걸맞는 흥행도 의미가 없을 테다. 원작과 따로 또 같이 발 맞추며, 최초의 시도인 만큼 '볼 만한'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은 어떤 모양새로 우리를 찾아왔을까?


괴물 천지가 된 세상의 사람들


2020년 8월, 다 무너져 가는 듯한 아파트 '그린홈'에 고등학생 차현수가 입주한다. 그는 학교폭력에 연루되어 마음을 다쳐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다가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어 삶의 의미를 잃어 버렸다. 상습적으로 자해를 하기도 했고 말이다. 옥상에서 뛰어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찰나 발레를 연습하는 이은유의 모습을 보고 또 그녀의 시크한 말에 포기하고 집으로 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여자네 집에서 이상한 낌새가 있어 갔다가 괴물을 본다. 바로 나타난 옆집 여자가 문을 열어 달라고 하는데, 차현수가 열어 주지 않자 괴물로 변한다. 


한편, 입주민들은 1층으로 모여 든다. 아무도 모르게 서터가 닫혀서 아무도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들 밖에 나가고자 1층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 난데없이 괴물 하나가 믿을 수 없는 모습을 한 채 들이 닥친다. 입주민들을 위협하는 사이, 침착하고 똑똑한 의대생 이은혁과 무적 포스를 뽐내는 특전사 출신 소방관 서이경의 활약으로 큰 피해를 입지 않고 괴물을 물리쳤다. 하지만, 입주민들은 실감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그린홈에 갇혔고, 세상은 망했으며, 괴물들이 시시각각으로 위협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진짜 문제는 내부에 있었다. 괴물의 원인은 사람의 욕망이었기에 그린홈 내부에서도 괴물이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차현수는 무기 제작에 특화된 기술자이지만 다리를 쓸 수 없는 한두식의 도움으로 1210호 아이들을 구하는 한편, 전직 살인청부업자로 802호 최윤재를 찾아 그린홈에 들어왔다가 갇힌 편상욱과 차현수의 윗집 베이시스트 윤지수 그리고 칼잡이 국어 교사 정재헌은 1층 아닌 곳들에서 따로 또 같이 괴물들과 대치하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린홈의 모든 입주민은 1층으로 집결해 살아날 방도를 구하는데... 


인간군상물+크리처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은 원작과 큰 틀에서 결을 같이 하지만 세부적인 면들에서 상당히, 아니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작을 보지 않고 드라마를 먼저 보는 걸 추천한다. 드라마를 보면 반드시 원작을 보고 싶어질 텐데, 원작을 보면 드라마까지 굳이 보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원작을 봤다면, 아예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드라마를 보는 게 좋을 테다. 


원작이 크리처 스릴러 장르를 중심에 둔 성장물이라고 할 수 있다면, 드라마 <스위트홈>은 크게 인간군상물과 크리처물의 양단을 모두 지니고 있다. 즉, 스릴러와 성장을 지양한 대신 극한의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군상을 지향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간군상물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큰 인사이트를 얻지 못했다. 크리처물이라는 강력하면서도 큰 개념을 온전히 담는 것도 벅찰 텐데, 역시나 큰 개념인 인간군상물까지 온전히 담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50여 분짜리 10부작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분량에서 말이다. 


원작대로 '크리처' '스릴러' '성장'의 세 키워드를 유기적으로 보여 주려는 데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드라마로 재구성하면서 변화를 줘야 한다는 고민의 흔적이 보였다. 아무래도 원작 웹툰의 독자 대상이 청소년이라면, 드라마의 독자 대상은 성인이니까 말이다. 원작의 주요 키워드를 그대로 성인 대상 드라마로 옮겨 오는 건 무리였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드라마로 옮겨와서 만들어 낸 만듦새에 미진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의 욕망에 맞대면할 용기


드라마 <스위트홈>을 보면서 연발했던 게 "재밌다, 빨리 다음 편 보자!"였다. 원작과 비교했을 때의 단점과 작품 그 자체로의 단점을 모두 알고 있으니, 대중이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 정확하게 아는 이응복 PD의 연출력이 대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적어도 작품을 보고 있는 그 시간엔, 작품만 생각하며 보고 듣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대중의 '욕망'이 그의 작품들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게 아닐까. <스위트홈>도 마찬가지.


원작의 대단한 점이겠지만, 기존에 수없이 선보였던 유사 크리처물과 차별점을 두는 게 바로 인간의 '욕망'이다. 무엇을 원하는 게 틀리거나 나쁜 건 아닐진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을 뜻하는 '욕망'은 선하거나 긍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또 한편 욕망을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괴물로 형상화된 욕망의 모습은 인간이 언젠가 맞딱뜨려야 할 현실일지 모른다. 인간의 욕망은 때론 긍정적으로 발현되어 지금의 문명을 이룩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끝엔 파괴와 말살만 있어 왔다. 


괴물이 끔찍하면 할수록, 우리의 내면과 욕망 그리고 우리가 만든 세상이 딱 그만큼 황폐화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 괴물을 제대로 대하기 어렵다면, 우리는 우리의 진짜 모습을 맞대면할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위트홈>은 역설적이고 상징적인 제목으로, 우리를 잡아 끌어 다름 아닌 우리 자신과 대면하게 한다. 나는 나를 마주 볼 수 있는가? 진짜 나를 맞대면할 용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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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나, 스위트홈, 욕망, 원작, 이응복, 인간, 인간군상물, 크리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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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의 아주 작은 단면을 들여다보다 <블러드 오브 제우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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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블러드 오브 제우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 <블러드 오브 제우스> 포스터. ⓒ넷플릭스



원 소스 멀티 유즈의 가장 대표적 사례라 하면 단연 '그리스 로마 신화'를 들 수 있겠다. 다분히 판타지가 가미된 배경에, 신이 중심이 되어 괴물과 반인반신과 반인반괴와 인간 등 온갖 존재가 출현하여 전쟁, 사랑, 배신, 모험, 암투, 욕망 등 온갖 것이 뒤섞여 수많은 갈래로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특히 영감을 주는 건 최고 신 제우스의 사생아 이야기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구상 모든 신화와 전설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헤라클레스'가 있다. 그는 제우스가 "거인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서는 위대한 인간 영웅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운명의 세 여신의 예언에 따라, 티린스 왕 암피트리온의 부인 알크메네와 동침해 낳은 아들이다. 헤라클레스는 평생 시련을 겪었는데, 올림푸스의 존망이 걸린 거인족과 신의 전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며 사후 신이 되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 <블러드 오브 제우스>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티브로 했는데, 제우스의 피를 물려받은 반인반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구전으로 전해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지워진 이야기 중 하나라고 운을 떼는 걸 보니, 상당 부분 창작을 한 것으로 보인다. 헤라클레스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연출과 각본과 제작을 도맡은 찰리 팔라파니데스와 블라스 팔라파니데스 형제는 10여 년 전에 영화 <신들의 전쟁>의 각본을 맡았는데, 흥행에선 성공했지만 평단의 혹평을 면치 못했던 이 작품에서도 제우스의 사생아인 테세우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바 있다. 이 작품의 좋지 않은 전력을 <블러드 오브 제우스>에선 어떤 식으로 매꿨을 지도 감상 포인트가 되겠다. 


제우스가 잘못 뿌린 것들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이 갑자기 마을을 습격한다. 여전사 대집정관 알렉시아가 막아 보지만 역부족인 듯하다. 사생아라는 이유로 어머니와 함께 마을 밖 외딴 곳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청년 헤론, 오랫동안 그들을 챙겨 준 지혜로운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 준다. 태초에 있었던 신과 티탄족의 싸움에서 신이 최후의 티탄족을 물리치자 저주로 태어난 거인족, 다시 시작한 전쟁에서 거인족을 물리친 신, 거인족의 영혼을 봉하고 시신은 대양 깊숙이 보낸다. 시간이 흘러 시신 중 한 구가 해안가로 나온다. 한 사내가 시신을 대면하고 급기야 먹고선 악마가 된 것이다. 


헤론의 기막힌 출생 비밀이 곧 밝혀진다. 제우스는 코린토스의 왕비 엘렉트라를 사랑해, 왕의 모습으로 변신해선 그녀와 사랑을 나눴고 아들이 태어난 것이다. 문제는 제우스의 정부인 헤라, 그녀는 제우스의 일곱 번째 사생아가 태어나는 걸 두고볼 수 없었다. 꿈의 신한테 도움을 청해 왕으로 하여금 곧 태어날 자식 중 다른 남자의 아들이 있다면 죽일 것을 맹세하게 한다. 하지만 제우스가 나타나 본인의 아들, 즉 헤론과 엘렉트라를 구해 낸다. 그것도 모자라, 할아버지로 변신해 모녀를 곁에서 꾸준히 챙겨 왔다. 


한편, 막강한 힘을 앞세운 악마의 침공에 폴리스는 무너지고 주민들은 살해되거나 포로가 된다. 헤론은 알렉시아와 따로 또 같이 맞서다가 출생 비밀을 알게 되고 할아버지의 존재도 알게 되며 어머니의 죽음도 목격한다. 그리고 악마의 수장 세라핌의 정체까지 알게 된다. 그는 다름 아닌 쌍둥이 형으로, 어머니 엘렉트라와 코린토스 왕의 아들이었다. 그는 간낫아기일 때 삼촌한테 버림받아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가다 거인족의 시신을 먹고 악마가 된 것이다. 


지상에서의 전쟁과 맞물려 개입하려는 남편 제우스가 못마땅하기도 하지만 자신보다 헤론을 더 챙기며 신들의 왕으로서 제대로 된 권위를 세우지 않는 제우스가 못마땅하기도 한 헤라는, 제우스와의 전쟁을 선언한다. 그녀는 세라핌을 움직여 헤론을 처단하려는 한편 그로 하여금 거인족의 봉인을 풀어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의 재창작


신과 인간 세상의 욕망이 뒤섞인 애니메이션 대서사시 <블러드 오브 제우스>는, 잘 알려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들을 상당 부분 가져와 재창작하였다. 어느 하나 원인 없는 결과가 아니고, 운명과 자유의지가 촘촘하고 복잡하게 엮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 또는 비극의 시작엔 단연 '제우스'가 있었다는 게 아이러니하고 분개스럽고 황당하고 흥미로운 점이라 하겠다. 


최고 신이자 신들의 왕답게(?) 만물의 변화를 직접 관장하고 그 원인 또한 직접 제공하는 것인가 싶다가도, 신화 밖에서 들여다보면 '완벽한' 신의 위상을 일개 인간보다 못하게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작업의 일환이구나 싶기도 한 것이다. 작품에서 나쁜 쪽 신의 대표격으로 나와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게 자못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헤라가, 사실은 대인배이자 정의를 구현하는 당사자이다. 제우스라는 작자,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 저지른 짓거리들을 보면 '과연 신이라고 할 수 있나' 싶어진다. 


이 작품은 원래 <신들과 영웅들(GODS & HEROS)>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나 <블러드 오브 제우스>로 바뀌었다고 한다. 앞엣것은 본격적인 거시적 이야기인 듯 보이고, 뒤엣것은 제우스의 혈통을 지닌 헤론 이야기에 천착한 이야기인 듯 보인다. 작품을 대해 보니, 확실히 둘이 섞인 이야기인데 뒤엣것이 조금 더 알맞아 보인다. 앞엣것의 제목과 콘셉트라면, 보다 훨씬 장대한 이야기였어야 할 것이다. 하여, 작품은 제우스가 잘못 뿌린 것들을 헤론과 세라핌이라는 피해자들이 온몸을 바쳐 헤쳐나가는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크 애니메이션


<블러드 오브 제우스>는 전체적으로 다크 아우라가 넘쳐 흐른다. 신이 티탄족에 이어 거인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평화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다름 아닌 신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인간 세계에 평화 아닌 파멸이 들이닥치려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죽음'이 하찮게 보이기도 한다. 미시적인 죽음 또는 삶이 거시적인 죽음들의 원인이 되는데, 거시적인 죽음들의 합당한 이유가 되진 않는다. 다분히 신의 입장과 시선을 대변하는 면모가 긍정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신과 인간 들의 이야기가 휘몰아 치는 가운데 특별한 메시지가 전달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이건 비단 이 작품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 자체에 느끼는 바인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의 원형이 거기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이 작품 속 다양한 이야기와 메시지 하나로도 수많은 콘텐츠를 양산할 수 있을 정도이니 그 수많은 이야기와 메시지가 조금씩 들어앉아 있으면 정작 건질 게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예를 들어 타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악마가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는 세라핌의 사연을 통해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다크 애니메이션의 만듦새로선 흠 잡을 데가 없다시피 한 <블러드 오브 제우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잘 안다고 해서 더 재밌게 보거나 숨어 있는 이야기를 통해 보다 흥미로울지는 미지수이다. 오히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잘 모르고, 몇몇 신과 영웅 그리고 유명하디 유명한 이야기의 얼개 정도만 알고 나서 보는 게 더 재밌고 흥미로울 수 있겠다. 애니메이션 시리즈 치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길이로, 빠르게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아주 작은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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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다크 애니메이션, 블러드 오브 제우스, 비극, 신, 운명, 인간, 자유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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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하지만 경이로운 '인간'과 '우주'의 연결을 찬란한 작화로 표현한 수작 <해수의 아이>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0. 2.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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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해수의 아이>


영화 <해수의 아이> 포스터 ⓒ (주)영화사 오원



포구 마을에 사는 소녀 루카, 핸드볼 동아리에 속한 그녀는 기대하던 방학 첫날 훈련 도중 선배를 팔꿈치로 가격해 팀에서 제외된다. 사실, 선배가 먼저 그녀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지만... 선생님도 동료들도 그녀를 믿어 주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외로운 루카, 술캔이 수북한 집에 엄마가 있지만 그녀를 반겨 주지 못한다. 루카는 마음을 달래려 어릴적 추억이 깃든 도쿄의 수족관으로 향한다. 그곳엔 아빠도 있었다. 


수족관 관계자 구역에 들어갈 수 있는 루카는 그곳에서 특별하고 신비한 바다 소년 우미(바다)를 만난다. 그는 필리핀 앞바다에서 발견되었는데, 당시 바닷속에서 듀공과 함께 자랐다고 한다. 그에겐 형 소라(하늘)도 있는데, 그들은 지금은 루카의 아빠가 일하는 수족관에서 임시로 지내고 있지만 해양학자 짐 그리고 그의 조수 앙글라드와 함께 전 세계를 여행 중이다. 루카와 우미 그리고 소라는 급속히 친해진다. 


한편, 바다의 축제가 다가오는 듯 운석이 떨어지고 거대 고래가 출현하는 것도 모자라 보기 힘든 심해어가 뭍으로 나와 떼죽음을 당하는 등 이상한 현상이 계속된다. 우미와 소라 또한 바다의 축제에 연관이 있는 듯, 알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보인다. 바다 소년 형제를 이용해 축제의 실체를 밝히고 메커니즘을 알고자 하는 과학자와 권력자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와중, 운석아을 품고 있던 소라는 루카에게 입을 맞추며 그녀에게 운석을 전하고 사라진다. 우미와 함께 소라를 찾아나선 루카,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특별하고 신비한 경험을 만끽한다. 


'드림팀'이 모여 만든 수작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해수의 아이>는 <리틀 포레스트> 원작자로 유명한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또 다른 유명작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도라에몽> 극장판 시리즈로 유명한 와타나베 아유무가 연출을 맡았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음악을 전적으로 맡다시피 했던 20세기 일본 최고의 아티스트 히사이시 조가 음악을 맡았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싱어송라이터 요네즈 켄시가 주제곡을 맡기도 했다. 


여러 모로 '드림팀'의 면모를 보인 작품인데, 그에 걸맞게 큼지막한 상을 탔다. 일명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로 아트, 엔터테인먼트, 만화,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대상과 우수상을 선정해 시상한다. 2000년대 들어 심사위원 추천작이 신설되었고 5년여 전부턴 신인상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해수의 아이>는 2009년 만화 부문 우수상을 탔고, 2019년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을 탔다.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작 중 알 만한 작품으로는,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크레용 신짱>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 정도가 있겠다. 


반면 박스오피스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후술하겠지만, 보는 이에 따라 모 아니면 도 정도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서 기대하는 난이도의 한계를 훌쩍 넘어선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는커녕 어른이 보아도 결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가 하면, 이 작품이 보여 준 작화의 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역대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본 애니메이션=신카이 마코토'였던 이유 중 하나가 빛을 적재적소에 이용한 작화였는데, <해수의 아이> 앞에선 명함을 내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온갖 상징과 은유로 뒤섞인 대향연


애니메이션 영화 <해수의 아이>를 제대로 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원작 만화를 접해 스토리와 메시지에 대한 보다 깊고 넓은 견해를 갖추고 영화를 보는 방법이 가장 좋을 텐데, 막바로 영화를 접하게 되면 스토리나 메시지나 대사를 해석하고 분석하며 머리로 받아들이려 하지 말고 가슴으로 흘러가듯 받아들이되 최대한 아름다운 작화를 감상하는 데 집중하는 게 좋을 듯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으로 시작해 우주적인 이벤트의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가는 이야기는, '별의 탄생'이라는 거시적 측면이 주를 이룬다. 태곳적부터 반복되어 온 바다의 축제는 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로, 때마침 떨어진 운석이 '씨앗'이고 운석을 품은 소라가 루카를 '게스트'로 선택해 씨앗을 전한다. 그녀는 축제에 참여해 별의 탄생을 견인하는데, 몸 속에서 운석 씨앗을 깨워서는 우미에게 전한다. 우미는 별로 재탄생하여 세상 밖으로 나간다. 일련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곳은 바닷속 거대 고래의 뱃속이다. 


한 번에 절대 이해하기 힘든 온갖 상징과 은유로 뒤섞인 대향연을 보고 있노라면, 그러나 '별의 탄생'이라는 거시적 측면 외에 외로웠던 사춘기 소녀 루카의 '성장'이라는 개인적 측면도 함께 보인다. 스스로를 하찮고 나약하고 우울하며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던 그녀였는데, 범우주적으로 가장 특별한 축제를 한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함께했으니 이후 스스로를 '경이'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게 되었을 거라고 본다. 


또한 영화를 보는 우리들한테는 '우주=인간'이라는 공식을 여러 가지 측면과 대사로 전한다. 특별한 바다 소년 형제 소라와 우미가 별로 재탄생하는 것이나 한낱 어린 인간 소녀에 불과한 루카가 별의 탄생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이 우주의 탄생에 일조하는 한편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대우주의 극히 미미한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우주의 일부분인 경이로운 존재 인간, 우주의 일부분일 뿐인 미미한 존재 인간. 


이 작품을 제대로 보는 방법


이 영화의 백미이자 압권인 아름답고 찬란한 작화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매순간 반짝이는 순간,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스토리, 별의 탄생을 통해 인간과 자연과 우주의 연결을 전하는 메시지를 사진을 찍은 듯 보이면서도 한편 만화적인 작화로 선보이려 하는 건 가히 신의 영역이 아닌가 싶다.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근접한 답을 보여 준 것이다. 작화가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영상 매체가 대중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는 둘 모두의 입맛까지 잡아야 하게 된 현대 어느 때 이후, 영상 매체는 가장 기본이 되는 '보이는 것' 못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생각하는 것은 스토리와 다름 아니겠다. 그럼에도, <해수의 아이>의 경우 스토리를 저멀리 보내 버리고 보이는 것에만 열중해도 충분하다는 걸 입증했다. 비록 스토리 또한 아름답기 짝이 없지만 말이다. 


이 작품을 제대로 보는 진짜 방법, 즉 세 번째 방법은 두세 번 보면서 한 번은 작화를 감상하고 한 번은 스토리와 메시지에 집중하고 한 번은 모든 걸 아우르면서 감탄하는 것이겠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굳이 몇 번 돌려 보면서까지 이해해야 하는가 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해한 만큼 머리와 가슴과 마음으로 많은 걸 받을 수 있을 거라 단언한다. 감성과 이성의 면면을 두루두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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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야생동물 '문어'와의 특별한 교감이 선물하는 감동! <나의 문어 선생님>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9. 1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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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나의 문어 선생님>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포스터. ⓒ넷플릭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웨스턴 케이프 주, 남대서양과 맞닿아 있는 아프리카 끝자락 해변가에 영화감독 크레이그 포스터가 기거한다. 그곳은 '폭풍의 곶' 또는 '희망봉'으로 유명한데, 포스터의 어린 시절은 그곳의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다. 바다 그리고 물과 친숙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특히 다시마숲에서의 생활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하지만, 커서는 그 생활과 멀어졌다.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며 처음에는 덤덤하게 지내다가 20년 전 아프리카 남서쪽 칼라하리 사막에서 심경의 변화를 느낀다. 최고의 사냥꾼들을 촬영하며, 그들이 자연과 치밀하게 공조하며 자연의 경이롭고 미묘한 징후를 포착하는 모습을 지켜 보게 된 것이다. 자연 안에서 사는 놀라운 광경, 이후 2년간 힘들어하고,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는, 대서양 즉 자연 속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다시마숲으로 돌아간 크레이그, 산소통도 잠수복도 없이 진정한 자유를 만끽한다. 심정적으로 편안해진 그, 잘할 수 있는 걸 가져온다. 바닷속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차 암컷 '왜문어' 한 마리와 조우한다. 그녀에게서 특별한 걸 느낀 그, 하루도 빠짐없이 와서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그렇게 인간과 문어의 특별하고 경이롭고 감동적인 1년이 시작된다. 


자연과 인간의 조우, 교감, 관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은 문어로 대표되는 '자연'과 크레이그 포스터로 대표되는 '인간'의 진실된 조우가 어디까지 나아가고 어떤 식으로 발현되며 무슨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완벽에 가까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야생동물, 그것도 가장 낯을 가리는 종의 하나인 문어가 다름 아닌 인간과 교감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하는 망상에 가까운 의문과 질문에 훌륭하게 답한다. 


동물, 특히 야생동물은 오직 본능에 따라 행동할 뿐 사고하지 않고 감정도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야생동물과 교감한 사례는 종종 발견된다. 교감, 즉 'animal communication'으로 영역할 수 있는 이 단어의 뜻으로 비춰 볼 때 동물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이 사고하고 또 감정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나의 문어 선생님>의 사례뿐만 아니라 다른 사례를 통해 이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 


동물도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세계적인 동물학자 제프리 마송의 책 <우리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유노북스)를 보면, 6장 '인간과 마음을 나누는 야생의 친구들'에서 다양한 사례가 나온다. 사자, 악어, 곰, 칠면조 심지어 고래 하고도 실제적인 교감을 나눈 실제 사례가 우리를 놀랍게 만든다. 그들은 인간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고서 자신의 행동을 바꿨고 인간에게 표현한다. 


문어의 경이로움과 특별함


이번에는 '문어', 야생동물과 교감한 다양한 사례를 먼저 대하고 보다 크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문어'만의 경이로움과 특별함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자연'의 경이로움과 특별함이 보이는 것이다. 이 작품도 종국에는 문어 아닌 자연의 위대함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을 테다. 그럼에도, 우린 이 작품에 나오는 암컷 왜문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녀만의 경이로움과 특별함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니까 말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같이 물속으로 들어가 왜문어를 들여다보는 크레이그의 정성에 감동했을까 익숙했을까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문어는 별것 아닌 듯하지만 그 무엇과도 비교하기 힘든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마음을 열고(?) 크레이그에게 먼저 다가와 신체적 접촉을 한 것이다. 보고도 믿기 힘든,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문어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이 사건(?)이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건 문어라는 동물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문어는 굉장히 똑똑하고 재빠르며 임기응변에 능하게 진화했다. 마치 달팽이가 껍데기 없이 돌아다니는 것과 매한가지다. 몸을 보호할 그 무엇도 없는 것이다. 하여, 문어는 좀처럼 몸을 드러내는 일이 없고 아주 빠르며 순식간에 보호색을 띄기도 하고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조개껍데기 등으로 방패와 갑옷처럼 온몸을 감쌀 줄도 안다. 


모두가 봐야 할 '자연 교과서'


왜문어의 천적 중 천적이라 할 만한 파자마상어가 출몰해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결국 다리 하나를 잃고 마는 과정을 지켜 보고 있노라면, 만만치 않은 긴장감이 전해진다. 크레이그의 말마따나 지극히 평화로워 보이는 바닷속 세상이 세상에 둘도 없는 양육강식의 결정판과 다름 없지 않은가 하는 깨달음도 함께 전해진다. 나도 모르게 왜문어를 응원하고 있지만, 그녀 또한 다른 동물들을 잡아 먹으며 이 자리까지 왔고 파자마상어 또한 대자연의 지극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크레이그 포스터 덕분에 만들어져 우리에게로 왔지만, 그는 절대 주인공일 수가 없다.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암컷 왜문어가 될 테고, 그녀와 함께 바닷속 세상을 풍요롭게 이끄는 수많은 해양야생동물이 조연이라면 조연이라 하겠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주체가 아닌 대자연의 객체에 불과하다는 걸 굳이 말로 전하지 않고도 전해져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나의 문어 선생님>은 실로 모든 인간이 봐야 할 자연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 하겠다. 그렇게 되길 바라본다. 


개인적으로 결혼 후 4년 차쯤부터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녀와 교감을 할 때면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또 바꿀 수 없는 독보적인 행복감이 전해지는 걸 느낀다. 인간과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그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작품에서 크레이그와 암컷 왜문어가 교감하는 장면을 보면서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을 느낄 게 분명하다. 그 장면 하나로도 이 작품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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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보다 인간답게 하는 반려동물의 죽음에 관하여 <우리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20. 7. 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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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도서 리뷰] <우리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


<우리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 표지. ⓒ유노북스



지난 1월, 세종시의 어느 가정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분양받았다. 아내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고양이를 데려오기 위해 알아보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가, 운명의 아이를 발견해 아내가 직접 먼 길을 다녀온 것이었다. 암컷으로, 복 복에 기쁠 희로 '복희'라 이름짓고 한 가족이 되었다. 아내는 살아오며 반려동물을 길렀는데, 나로서는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금붕어나 거북이 정도만 길러왔으니 말이다.


처음엔 아이를 제대로 만지기는커녕 쳐다보지도 못했다. 강아지라면 그나마 친근하겠지만 고양이라면 그렇지 못한 탓일까. 이후 조금씩 다가갔고 아이도 조금씩 다가온다는 걸 느꼈다. 나도 아내도 복희도 적응 기간이 필요했을까, 힘든 기간이 있었다. 우리가 자야 할 때 복희는 잠들지 않고 복희가 잘 때 우리는 깨어 있기로서니, 바이오리듬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맞춰갔다. 


이제는 복희의 '골골송'을 들으며 잠들고 복희가 아침 먹고 싶다고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새롭게 정립된 일상에서 인생에서 처음 느끼는 행복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걱정이 생기고 말았다. 의학이 발전함에 따라 사람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의 수명도 늘어났는데, 집고양이의 경우 15~20년을 산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람보단 훨씬 수명이 짧은 건 당연지사, 한 가족이 되면서 마지막을 준비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은 먼 이야기이지만, 복희와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가슴을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끼곤 한다.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지켜본다는 것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픈 반려동물의 죽음, '펫로스'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펫로스 증후군'이라 하여, 가족처럼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죽은 후 겪는 상실감과 우울감 증세를 일컬는다. 반려인 1000만 가구 시대, 몇 년 전부터 펫로스 관련된 책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개인의 경험을 살린 슬프고 아련한 이야기 또는 펫로스 후 실용적인 대처 방법이 주를 이루는 와중에, <우리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유노북스)이라는 책이 출간되어 이목을 끈다. 저자의 이력과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작용하지 않는가 싶다. 


제프리 마송, 프로이트 정신분석 학계의 논란적이면서 세계적인 권위자였다가 일약 모든 걸 내려놓고 동물의 감정 세계로 눈을 돌렸다. 관련 서적을 다수 출간하고 200만 부 이상을 팔아 국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동물의 정서적 삶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마지막을 향해 가는 반려견 벤지를 대하는 와중에 '반려동물의 죽음'에 관한 책을 쓰게 된 것이다. 반려인이라면, 그가 마주한 반려동물과의 마지막을 함께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에겐 다른 종의 동물과 유대감을 느끼고 싶다는 깊고 오래된 열망이 있다.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일까, 동물을 대함에 있어 가축->애완동물->반려동물->가족으로 변하는 과정이 당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나아가 생명체들은 죽음이 다가온 순간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말로 설명하거나 묘사하긴 어렵지만,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지켜본 이라면 알 것이라 말한다. 


<우리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은 마지막을 지켜본다는 것, 다름 아닌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지켜본다는 것에 관한 책이다. 왜 우리는 마지막을 지켜볼 뿐인가? 그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가? 저자는 반려동물과의 마지막 순간뿐만 아니라, 반려동물과의 삶과 반려동물을 떠나보내고 난 후의 삶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 


반려동물과 함께한 시간,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후


반려동물과의 마지막을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그때 '슬픔'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온전히 느낀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이가 반려동물의 죽음 앞에서 부모나 자식의 죽음만큼 또는 그보다 더한 슬픔을 보이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슬픔을 느끼는 스스로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반려인들도 많다. 저자는, 충분히 마음 놓고 슬퍼하라고 말한다. 반려동물도 사람만큼 소중할 수 있고, 사람보다 더 소중할 수도 있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전제함에 있어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그러기 위해선 반려동물 살아생전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여겨야 한다. 반려동물은 더 이상 우리 인간만을 향하지 않는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태어나 살아갈 의미가 있고 우리에게로 와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저자가 평생에 걸쳐 주장해 온 '동물에게도 존재하는 감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겠다. 그들과 함께할 때,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할 때, 우리 인간도 비로소 인간다워진다. 그들 덕분에 온전히 사랑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내고 난 후 느끼는 상실감과 우울감과 고통의 '펫로스 증후군'에 함몰되지 말고, 충분히 슬퍼하되 그들의 죽음을 기리고 애도하며 그들이 남긴 선물을 기념하고 간직하라고 말한다. 저자는 지속적인 선행을 베푸는 것이야말로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기리는 가장 좋은 일인 것 같다고 한다. 여러 방법과 방식으로 사람과 동물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헌신하는 것 말이다. 


사실, 죽음과 죽음이 남긴 슬픔과 고통은 절대로 다른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하여, 책으로 말해본들 책을 통해 위로를 받아본들 소용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 책이 유익하고 또 필요한 건 수많은 사례와 함께 동물 중심의 이론이 주는 합리적 편안함 때문이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걸 반려동물도 똑같이 또는 더 강렬하게 보고 듣고 느낀다는 걸 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테다. 언젠가 눈앞으로 다가올 마지막 순간에도 함께 느끼는 감정의 기반 위에서 오롯이 서로만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 - 10점
제프리 마송 지음, 서종민 옮김/유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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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상에서 후대에게 전하는 절절하고 진솔한 편지 <사마에게>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5. 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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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사마에게>


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 포스터. ⓒ(주)엣나인필름



2010~11년에 걸쳐 아랍권 민주화 운동이 폭풍처럼 불어닥쳤다. 이른바 '아랍의 봄'이라 이름 붙여진 이 사건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며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개중 가장 늦게, 그러나 가장 오래 계속되고 있는 나라가 있으니 '시리아'이다. 시작은, 여타 나라들과 다를 바 없이 2011년 1월 말경의 '시리아 민주화 운동'이었다. 장장 40여 년 동안 독재가 계속되고 있는 아사드 가문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이후 아사드 정권의 강경 대응과 함께 다양한 원인이 복잡다단하게 얽히고 국제 사회도 개입하면서 '시리아 내전'으로 치달았다. 말 그대로 정부군과 반군과의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전쟁으로 옮겨간 다양한 역사적 사례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 시리아 내전 또한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지 알기가 힘들어졌다. 와중에 애꿎은 이들만 피해를 보기 마련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는 시리아 내전의 최전선, '알레포'에서 대학을 나오고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전쟁으로 휩쓸려 버린 어린 감독 와드 알-카팁이 딸 사마에게 보내는 절절한 편지와 다름 아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폭격이 이는 전장의 도시에서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 키우고 의사 남편과 함께 시민들을 돌보면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5년 후 알레포에서 쫓겨나갈 수밖에 없을 때까지의 기록이다. 


폐허의 도시를 지키는 이들, 참상에서 태어난 '사마'


2011년, 와드는 시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알레포 대학교 학생이었다. 그녀는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은 채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걸 영상으로 남기려 했다. 시리아 민주화 운동의 희망찬 시작도 담았다. 세상이 긍정적으로 바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정부의 강경 대응이 이어졌다.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어나갔다. 많은 이가 도시를 떠났지만, 그녀는 떠나지 않고 오히려 친구 함자와 결혼해 뜻을 굳건히 했다. 


연일 폭격이 이어졌다. 자유를 지키는 것도, 도시를 지키는 것도 힘들었다. 자신 한 몸 지키기도 힘들었지만, 와드는 함자와 함께 무너진 병원을 다시 세우고 다친 사람들을 돌보고 치료했다. 와중에 천사같은 딸 사마가 태어났다. 이런 세상에, 이런 곳에서 태어나게 해서 한없이 미안했지만 그녀는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고 그는 사람들을 돌보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들은 도시를 떠날 수 없었다. 


어른은 물론 아이들까지 손 써볼 시간도 없이 죽었다. 그들은 사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마도 언제든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었던 것이다. 불안하고 무섭고 두렵고 치가 떨렸지만, 그래도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그들은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실존적으로 싸움을 계속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2016년 코앞까지 다가온 정부군의 무차별 공격에 그들도 알레포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반군 소속이라 할 순 없겠지만, 반 정부군의 중요인물인 그들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들의 딸 사마의 운명은?


일찍이 보기 힘든, 전쟁의 진면목


작품은 일찍이 보기 힘들었던 전쟁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동안 수많은 전쟁 영화가 나왔고, 그중 대부분이 '리얼리즘'에 천착해 최대한 사실에 가까운 참상을 가장 참혹한 형식으로 보여주려 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리얼이 될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다큐멘터리적일 수 있었을지 모르나, 다큐멘터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 작품은 전쟁의 한가운데를 여과없이 내보인다. 


그렇다고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려는 데 의의가 있는 작품은 아니다. 나아가, 전쟁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려는 목적이 투철한 것도 아니다. 비록 감독이 반독재·반정부군의 편에 서 있는 건 맞지만 말이다. 이 작품이 진정 전하려는 건 인도적인 차원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딸로 대변되는 후대에게 진솔한 편지인 것이다. 우리가 목숨을 담보로 이 도시를 떠나지 않았던 이유가 있다고. 


독재 정부에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여긴 우리(국민) 땅이지, 너희(정부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아사드 가문) 땅이 아니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총과 포에 총과 포로 대응할 순 없지만 온몸으로 버티며 만방에 보이고 있다. 그런 한편, 사마에게는 사람이 태어나 사람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해 주려 하는 것 같다. 누리기 위해 행하고, 행하기 위해 누리는 것. 올바른 길을 알고 올바른 길로 가려는 건 너무나도 어렵고 힘겹고 두렵지만, 썪어 빠진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인간의 시간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기 싫어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부터도 그런데, 우리에겐 미래의 나를 포함한 인류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아니, 노력이라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이 그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도리는 무엇인가


작품을 보다 보면, '인도(人道)' 즉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시리아 내전의 복잡다단한 성격에서 기인해 너무 정치적 면모를 띄면 안 되겠다는 전략적 선택에 의한 처리일지 모르겠으나, 작품의 시선이 초반 민주화 운동에의 정치적 목소리와 행동 실천에서 점차 인도적 차원의 참상 그리고 삶과 죽음의 차원으로 변한다. 영화 내외적으로, 시선의 올바른 변화라고 생각한다. 


전쟁에서, 특히 내전에서 옳고 그름이 흐려질 때 시선이 가 닿아야 할 건 반드시 '인간'이어야만 한다. 스페인 내전이나 베트남 전쟁 관련 콘텐츠들이 점차 인간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는 게 그 이유이다. 시리아 내전도 그 연장선상에 있고, <사마에게>는 훗날 깨닫게 될지 모를 흐름을 아주 빨리 포착해냈다. 감독의 남편 함자와 감독은 함께 병원을 세워 자신들을 돌아보지 않은 채 모든 다친 사람들을 보살피고 치료했다. 그 과정을 감독은 고스란히 영상에 담아 목숨 걸고 지켜냈고 말이다. 그곳에서 누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무슨 행동을 했는지 알리는 게 그녀의 의무였다.


전쟁 콘텐츠가 결국 가닿아야 할 최후의 목적지는 '반전(反戰)'일 테다. 이런 비(非)인간적인 작태가 반드시 없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끔찍함과 무서움으로 전쟁을 멀리하고 인간의 숭고함을 가까이 하며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게 무엇인지 실질적으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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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들여다보는,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순간 <아폴로 11>

오래된 리뷰 2020. 4.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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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아폴로 11>


다큐멘터리 <아폴로 11> 포스터. ⓒ넷플릭스



1957년 10월 소련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우주로 쏘아올리는 데 성공한다. 한 달 후엔 살아 있는 개 라이카를 스푸트니크 2호에 실어 보냈다. 이에 미국은 이듬해 초 익스플로러 1호 발사에 성공했다. 이에 질세라 소련은 익스플로러 1호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능가하는 크기와 무게의 스푸트니크 3호를 발사했다. 때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한창이었을 때, 무대는 지구에서 우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전쟁은 10년이 넘게 완전한 소련의 승리였다. 최초란 최초는 모조리 가져갔던 것이다. 이를 무기화하면 절대 미국이 이길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5월 국회에서 "60년대 안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 살아돌아오게 하겠다"는 요지의 연설을 한다. 이에 미국의 NASA(미국항공우주국)는 유인 달탐사 계획인 '아폴로 계획'에 착수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케네디가 공언한 대로 60년대가 저물기 직전인 1969년 7월 미국의 NASA는 아폴로 11호를 쏘아올리며 인류가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디게 하였다. 지구 아닌 곳에 최초로 발을 디딘 것이다. 지난 2019년이 50주년 되는 해로, 미국을 비롯 전 세계적으로 많이 기념하였는데 다큐멘터리 <아폴로 11>이 방점을 찍지 않았나 싶다. 오다 가다 엿보는 수준의 '아폴로 11호'를 아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당시 그대로의 영상으로도 충분하다


<아폴로 11>은 우주 전쟁이라든지 아폴로 계획이라든지 심지어 아폴로 11호 준비 과정도 완전히라고 할 만큼 제외시키고, 온전히 '아폴로 11호' 임무 과정에 몰두한다. 더불어 작품을 이루는 거의 모든 영상은 오롯이 발사 당시 공개 및 미공개 영상과 우주선에 설치된 카메라 영상과 우주인들이 찍은 영상들로만 꾸려져 있다. 심지어 내레이션도 당시 공개되었던 그대로의 목소리다. 


추가로 덧붙인 것 없이 기존에 존재했던 것만으로 어떻게 다큐멘터리 작품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신선하고도 흥미로운 시각과 지식을 제공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게 분명하다.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있을 텐데,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지난 50년 동안 수없이 봐왔던 왠만한 우주 영화들을 훨씬 상회하는 스펙터클과 그를 뒷받침하는 믿기 힘들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모순적 리얼리티. 


지나간 사건의 단면을 나름의 문제의식과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흥미로운 문제제기를 가하는 게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의 의의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어도 충분하고도 남을 사건이 주제이자 소재이기에 특단의 선택을 한 것이리라 본다. 선택은 적중했고, 작품을 보게 된 우리는 마치 50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도취하게 되었다.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인간


아폴로 11호에는, 누구라도 이름을 들어 보지 않을 수 없는 '닐 암스트롱'과 '마이클 콜린스'와 '에드윈 버즈 올드린'이 탑승했다. 각각 맡은 임무는 사령관, 사령선 컬럼비아호 조종사, 달착륙선 이글호 조종사였다. 1969년 7월 16일 오전에 출발했고, 달로 향하는 3일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달로 향하는 동안 우주선 안의 우주인 이야기는 텔레비전 방송으로 전 세계에 송출되었는데, 이보다 신기한 일이 있었나 싶었을 것이다. 


7월 20일, 달착륙선 이글호는 사령선 컬럼비아호와 분리되어서 달 착륙 궤도에 진입한다. 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생겨 예상보다 4초 빠른 위치에 착륙이 예상되었다. 잠시 후 계속 에러가 뜨니 모두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컴퓨터 엔지니어가 착륙해도 좋다는 말을 전한다. 닐 암스트롱은 착륙을 강행하고, 무사히 달의 '고요의 바다'에 착륙할 수 있었다. 


마이클 콜린스가 지구와의 교신이 끊긴 채로 홀로 컬럼비아호에서 달 궤도를 도는 사이,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디며 그 유명한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이어 에드윈 버즈 올드린이 달에 발을 디딘다. 그들은 기념판을 설치하고 성조기를 꽂아 '미국의 달 정복'을 명확히 한다. 2시간 반 이후 착륙선으로 복귀한다. 


컬럼비아호와 도킹한 이글호, 세 비행사는 다시 지구로 향한다. 달에 발을 디디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중요할 지구 귀환은 무사히 진행된다. 1969년 7월 24일 오후 태평양에 착륙했고, 항공모함 호넷이 그들을 맞이했다.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 때문에 2주간 격리되었고, 이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국과 지구를 대표할 영웅으로 환영·칭송받았다. 그야말로 아폴로 11호의 깔끔하기 이를 데 없는 전말이다. 


아폴로 11호의 실질적 주체를 향한 헌사


<아폴로 11>는 50년 전 영상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선명하게 복원되고 보정된 화질을 자랑한다. 사실 자체만으로도, 여전히 믿기 힘든 인류의 달 착륙에 더불어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여, 1960년대 후반 당시 미국의 긴장과 희망을 자세히 엿볼 수 있던 게 아닐까 싶다. 2차 대전과 한국 전쟁을 지나 베트남 전쟁 한가운데에 있던 당시 미국, 세계 최고의 국가로 기세와 영향력을 한껏 뽐내고 있었을 테다. 하지만 미국의 곁에는 항상 소련이 있었던 바, 아폴로 11호는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던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일반 국민으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나른한 일상에 아폴로 11호가 한 줄기 빛과 같이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대부분은 '아폴로 11호' '케네디 대통령' '미국 NASA' '인류 최초의 달 착륙' '닐 암스트롱' 정도로 요약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자세히 알 수도 없었고, 사실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았었다. 그러다가 이 다큐멘터리로 새롭다고 해야 할지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알게 된 건, 하나의 프로젝트에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아낸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이다. 한 명의 이름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수백 수천 명의 관계자 및 담당자들 말이다. 


이 작품은 아폴로 11호가 아닌 아폴로 11호를 만들고 뒷받침하며 실질적으로 운용한 주체들을 향해 보내는 헌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가 계속되며 기억해야 할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만큼 축소되고 요약되어 한마디로 알려지곤 하는데, 아폴로 11호 50주년을 맞이해 다시금 알려지지 않은 진짜 주인공이자 영웅들을 되새겨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비단 아폴로 11호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난 역사와 다가올 역사 모두에 해당한다. 더 많이 기억하고, 더 다양하게 기억하고, 더 오래토록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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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로 들여다보는, 재난 대처의 모습과 자세와 방법 <열화영웅>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3. 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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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열화영웅>


영화 <열화영웅> 포스터. ⓒ 레인주니어 픽쳐스



2019년 중국 영화 시장은 어느 때보다 중국 영화의 힘과 영향력이 컸었다. 흥행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상위 10걸에 중국 영화가 아닌 작품은 할리우드 대작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분노의 질주: 홉&쇼>만 있을 뿐이었다. 흥행 규모도 막강했는데,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월드와이드 성적 1/5를 책임진 중국 시장에서 그보다 높은 성적을 기록한 중국 영화가 2편이나 있었던 것이다. 


중국 영화 시장이 더 이상 내수용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 급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와중, 2019년 중국 영화 시장 10걸에 정통파 영화 하나가 눈에 띈다. <열화영웅>이 그 작품이다. 중국 영화의 흥행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게 몇 가지 있는데 영웅적 이야기에 발을 걸친 '국뽕', 참신한 소재,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은 블록버스터 등이다. 이 작품은 영웅적 이야기에 발을 걸친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열화영웅>은 지난 2010년 한국 서해에 인접한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에서 일어난 송유관 폭발사고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 원작으로 했다. 이 사고는 소방관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추가 사망자가 없던 걸로 유명한대, 영화도 소방관들에 포커스를 맞췄다. 하지만 국가재난급 위기 상황은 개개인의 희생만으로 헤쳐나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 영화로 말미암아 재난에 대처하는 모습과 자세와 방법을 들여다보자. 


'기본'이라는 재난 대처 자세


건물 화재 현장으로 출동한 특근1중대, 불은 끄면 되는 것이지만 3층에 있다는 여자아이 구출이 급선무다. 장리웨이 대장은 부하 한 명을 대동해 직접 구하러 간다. 무사히 여자아이를 구하지만 불길이 갑자기 3층을 급습한다. 장리웨이는 급히 방을 열고 창문을 깨선 모든 불이 그쪽을 향햐게 하여 탈출할 수 있었다. 모든 불을 진화하고 후속 조치를 취하는데, 신참들을 보낸다. 하지만, 창고에 수많은 LPG 가스통이 모여 있었으니... 2차 폭발로 건물 전체가 박살나고 만다. 신참은 사망하고, 장리웨이는 대장직에서 직위해제된다. 


재난급에 해당하는 사고는 아니지만, 재난에 대처하는 아주 중요한 자세를 보여준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고 했던가, 장리웨이 대장은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는 데 솔선수범하며 완벽하게 대처했지만 꺼진 불을 다시 보는 데에는 소홀히 한 감이 컸다. 눈에 보이는 난제를 해결하고는 마음을 놓고 신참으로 하여금 후속조치를 취하게 한 것이다. 잘못을 저질렀다기보다는 기본을 충실히 행하지 않았다. 


재난에 대처하는 가장 중요한 자세는 '기본'이다. 당연하고 식상할지 모르지만, 반드시 숙지하고 지키고 마지막까지 따라야 한다. 재난이라는 게 방심을 먹고 사는 괴물이기도 한 바, 기본과 원칙을 지키면 언젠가 이겨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후속조치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항 중 하나이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긴장이 풀려 기본이 흐트러지기 마련인데, 그때 재난은 다시금 머리를 든다. 


재난 대처에서 가장 중요한, 예방과 조치


특근1중대에서 둥산중대로 발령이 난 장리웨이, 하지만 그는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로 소방관으로서 더 이상 적격인 상태가 아니었다. 머지 않아 제대를 해야 하는 상황, 그때 중국 최대 항만 도시 빈하이 시에서 사상 최대의 송유관 폭발 사고가 발생한다. 시의 거의 모든 소방관들이 출동해 진입 작전에 돌입하지만, 쉽게 잡히기는커녕 부상자만 속출한다. A01 탱크가 불길의 원흉이자 중심부인 줄 알았지만, 더 중요한 건 길 건너편 화학 탱크 집합소이다. 알고 보니 A01 탱크와 화학 탱크 집합소 사이가 잠궈지지 않았다는 것. 800만 시민의 목숨이 위험하다. 


현대에서 재난은 인재(人災)라고들 한다. 기술이 기술인 만큼 예방할 수 있고 예상할 수 있고 대처할 수 있음에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거나 실수하곤 하는 것이다. 재난에는 예방과 조치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후속조치야말로 그 다음의 사고를 예방하는 수순과 다름 없으니, 예방의 일환이겠다. 이 영화에서도 밸브가 고장인데 중국 쪽에 알리지도 않고 그저 바꾸라고만 명령했을 뿐이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아 보이거니와 사명의식 또한 가지고 있지 않아 보인다. 


수많은 소방관이 출동해서 진압작전을 시행하고 있는 와중 현장 책임자는 계속 뭔가를 숨기려 든다. 그는 불이 쉽게 잡힐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도 집에는 빨리 탈출하라고 하고는 뒤늦게 지휘관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린다. 그것도 모자라 또다시 더 늦게 보다 중요한 사실을 알린다. 부상당하고 죽어가는 소방관들은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헛고생만 하고 있을 뿐이다. 늦게나마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고자 하니 희생이 필수적으로 동반되게 되었다. 


올바른 조치를 위해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계획과 실천뿐만 아니라 모든 사실의 공유가 수반되어야 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본인의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건 당연한 것일 테고, 본인만의 생각으로 행동하거나 작은 거 하나라도 은폐하려 해선 안 된다. 불행의 씨앗이 바로 거기에 있다. 현장 책임자가 본인의 생각만 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빨리 사실을 공유했으면 훨씬 적은 희생으로 훨씬 빨리 진압했을 것이다. 


재난 대처의 주체는 역시 '인간'


A01 탱크와 화학 탱크 집합소를 연결하는 밸브를 잠그기 위해선, 죽음을 각오한 개인의 희생적 행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너무 늦은 것이다. 장리웨이가 부하 한 명을 데리고 출동한다. 와중에, 특근1중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화학 탱크 집합소 앞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고 펑린중대는 역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물이 떨어지지 않고 급수를 책임지는 임무를 맡았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다다르는 소방관들, 각각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며 피할 수 없는 희생을 마주하는데... 과연 사상 최대 폭발 사고를 진압할 수 있을까?


재난에 대처하는 주체는 역시 인간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들을 재난에서 구해내어 다시 인간에게 돌려놓기 위해 인간이 대처하는 것이다. <열화영웅>은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 재난에 대처함에 있어 임무와 희생을 주(主)로 삼았다. 그렇다, 재난을 대처하는 데 희생이 없을 수 없다. 꼭 죽음에 이르지 않더라도, 개인의 삶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나 언제 자신에게도 닥칠지 모를 위험을 무릎쓰는 것이나 모두 희생의 모습이다.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된 게 시스템이다. 


시스템 또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돌아가는 것이지만,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기 위해 평상시에도 훈련을 거듭한다. 일반인도 기본적인 대피요령이나 응급처치요령을 숙지하는 것도 이와 같다. 유사시엔 일사분란하게 몸에 각인된 시스템의 일부로서 움직이며 상황에 대처한다. 그럴 때 중앙통제의 힘이 발휘된다. 통제란 평상시엔 발휘되어서는 안 되지만 유사시엔 그 무엇보다 잘 발휘되어야만 한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건, 인간으로서의 온정이다. 재난이 들이닥치면 진짜 모습이 나온다고 하는데,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인간만의 마음을 간직하고 또 베풀어야 한다. 물론, 주지한 재난 대처의 모든 자세와 방법들과 달리 터무니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인간만의 온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난 이후를 위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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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대처, 방법, 시스템, 열화영웅, 예방, 온정, 인간, 자세, 재난,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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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라는 인간의 내면과 고흐가 바라보는 자연의 세계 <고흐, 영원의 문에서>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12. 3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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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고흐, 영원의 문에서>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 포스터. ⓒ팝엔터테인먼트



줄리안 슈나벨 감독, 미술 학도들에겐 유명한 미술가로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세간에선 미국 신표현주의 운동을 이끌며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 더불어 미국 현대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 중 한 명으로 칭송받는다. 즉, 전 세계 미술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미술가라는 얘기다. 그건 그가 감독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1990년대 후반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다. 


1996년 <바스키아>로 영화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후 20년 넘게 4편의 극작품만을 내놓았다. 하나같이 '좋은' 작품이었음은 분명한대, <비포 나잇 폴스>로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대상을 수상했고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잠수종과 나비>로 칸영화제 감독상과 골든글로브 감독상, 외국어영화상 등을 수상했다. 이후 연출한 두 작품도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그의 최신작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바스키아> 이후 실로 오랜만에 돌아온 본업이었던 미술 관련 영화이다. 그가 진가를 발휘하고 우린 그 진가를 발견할 수 있는 이 작품으로 주연 고흐로 분한 윌렘 대포가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영화는 고흐의 시선으로 본 세상과 고흐를 보는 시선의 훌륭하고도 조화로운 양립을 구축했다. 북미에서는 2018년 11월에 개봉했으니 우리나라로 건너오는 데 1년 넘게 걸렸다.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 마지막


프랑스 파리,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테오와 함께 예술가 공동체를 꾸리려는 모임에 참가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고 행하고자 하는 것들이 정작 예술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그 자리에서 폴 고갱이 일갈하고는 뛰쳐 나온다. 평소 고갱을 존경하던 고흐는 그 모습을 보고 같이 나와 고갱의 의견을 경청한다. 고갱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자 마스가스카르로 향하고, 고흐는 새로운 빛을 찾아 프랑스 남쪽으로 향한다. 


프랑스 아를, 고흐는 파리에서의 우중충한 빛을 뒤로 하고 노란집에서 생활하며 청량한 빛 아래의 진정 원하던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사람들은 알아봐주지 않았다. 아를 사람들은 그를 멸시하고 멀리했다. 그는 정신이 아프기도 했다. 가끔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잊었다. 언젠가 아이들이 그를 해코지하자 맞대응했다가 어른들한테 맞고 정신병원에 갇힌다. 테오가 해결해주며 앞으로의 고흐를 위해 고갱을 불러들인다. 정기적으로 그림을 사고 돈을 지불해주는 명목이었다. 


고갱과 함께 생활해 너무나도 좋은 고흐, 비록 둘의 작품 성향은 정반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지만 다음 세대의 선두주자라는 자기확신으로 서로 통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고갱이 많이 유명해졌거니와 고흐와는 작품 보는 눈이 너무나도 달랐기에 파리로 떠나게 된 것이다. 고흐는 계속 되는 환청을 어쩌지 못한 채 고갱에게 주려는 의도로 자신의 귀를 잘라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는데... 


고흐의 비극과 일화와 명작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미술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화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 마지막을 그린다.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불과 37세 나이로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마지막 3년여가 특히 유명한 건 비극으로 점철된 그의 나날들과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들 그리고 그의 현재를 있게 하고 미래를 있게 할 명작들에 있다. 영화는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두루두루 살핀다. 


고흐의 비극과 일화와 명작들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인정하지 않았고, 가난했으며 정처없이 떠돌았고,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했고,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했던 대화가 고갱과 함께 지냈고, 그가 떠나자 자신의 귀를 잘라 보내려고 했고, 결국 권총으로 자살 또는 타살되어 생을 마감했다. <노란 집> <카페 테라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자화상>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의 명작이 그의 말년에 만들어졌다. 영화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영화는 상당히 불친절하다. 아무리 유명한 이의 길지 않은 말년을 축약해서 보여준다지만, 날짜나 지명도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채 시간과 장소를 멋대로 건너뛰어 버리는 것이다. 안 그래도 전체적으로 흐르는 예술적 시선과 기풍으로 제대로 된 공감을 보내기 힘든 와중에 말이다. 차라리 실제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괜찮을 편집방향이었을 테다. 


고흐라는 인간, 고흐가 바라보는 자연


영화는 이해를 돕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려는 데엔 큰 관심이 없어보인다. 대신, 고흐라는 '인간'과 고흐가 바라보는 '자연'을 담으려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고흐의 내면이 얼마나 황폐했는지, 윌렘 데포의 연기와 때론 격하게 때론 미세하게 흔들리는 카메라워킹으로 알아챌 수 있다. 특히 절대적으로 차지하는 건 윌렘 데포일 것이다. 자못 식상하지만 달리 할 말이 없을, '고흐보다 더 고흐 같은' 연기로 극을 이끄는 동시에 압도했다. 고흐가 추구했던 예술관, 고흐가 자연을 통해 불러일으킨 영감, 고흐가 자신을 동일시한 그림에 대한 지론을 그가 대신 완벽하게 전한다. 


그런가 하면, 일필휘지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게 그림이라고 여긴 고흐가 바라보는 자연의 면면을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 자체에도 박수를 보내야 마땅하다. 미술가 출신의 감독인 만큼, 화가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세상을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 너무나도 잘 표현되어 있다 하겠다. 그걸 다시 우리와 같은 일반 관객이 어떻게 바라볼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고흐라는 대화가와 그가 그린 명작들이 아닌, 고흐라는 처량하고 불쌍하기까지 한 '인간'을 들여다보는 데, 이 영화는 수많은 콘텐츠들 중 한 자리를 차지할 게 분명하다. 제대로 된 고증뿐만 아니라 독창적 해석도 넘치도록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영화로 뭔가를 할 순 없을 것이다. 우린 이 영화에 한없이 다가갈 수 있을 뿐이고, 이 영화에서 우리를 향해 뭔가가 나오진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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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영원의 문에서, 마지막, 명작, 비극, 빈센트 반 고흐, 인간, 일화, 자연, 테오, 폴 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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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나들고, 경계가 무너지는 대단하고 충격적인 경험 <경계선>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11.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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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경계선>


영화 <경계선> 포스터.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스웨덴 출입국 세관원으로 일하는 티나, 그녀는 냄새로 감정을 읽어내어 손쉽게 불법 입국자를 적발한다. 일 잘하고 신뢰 가는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괴물 같은 외형을 가져 스스로를 타인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킨다. 차를 타고 한참을 들어간 숲 속에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도박꾼과 함께 살아가는 게 그 일환이라 할 만하다. 


그녀는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출근해 불법 입국자 적발에 여념이 없다. SD카드에 아동 포르노를 잔뜩 넣은 멀쑥한 남자 한 명을 잡고는, 또 한 명의 남자를 잡고자 한다. 그런데, 그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음 날 또 만난 그, 역시 잡아들였지만 문제가 없었다. 분명, 불법의 냄새가 났는데 말이다. 사실 그에게서 나는 냄새에는 알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뭔가 본능적으로 끌리는... 그리고 그의 외모 또한 자신과 비슷했다. 


한편, 티나는 아동 포르노 사건의 뒤를 캐는 데 그녀만의 능력으로 도와준다. 그런가 하면, 알 수 없는 그 보레가 기거하는 호스텔로 찾아가선 얘기하다가 벌레를 먹게 된다. 이제까지 살아오며 아리송했던 자신의 정체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급기야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선 함께 살자고 제안하는 티나, 그들은 곧 사랑에 빠진다. 보레와의 사랑은 티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티나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동 포르노 사건 뒤에 보레가 있다는 걸 알고 고민에 빠진다. 그녀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경계를 넘나들다


영화 <경계선>은 이란 출신의 스웨덴 감독 알리 아바시의 2018년작으로, 제71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의 쾌거를 이룩했다. 한국엔 2019년 10월 말에야 개봉되었으니, 최초 개봉 이후 1년 반만에 늦게 소개된 것이리라. 뛰어난 작품성과는 별개로, 쉬이 가시지 않는 충격이 작품을 휘감고 있기 때문에 수입하기까지 오랜 고심이 필요했으리라고 추측해본다. 


영화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거니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한 명작 스웨덴 영화 <렛 미 인>의 원작자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동명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북유럽 특유의 자연 경관 배경, 기기묘묘한 스토리, 아름답고 슬픈 서정적 로맨스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경계선> 또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보다 심도 깊게 생각할 거리가 넘치고 넘치는 게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괴물의 외형을 한 티나와 보레를 중심으로, 영화 내적으론 인간과 비인간, 남성과 여성, 아름다움과 추함,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의 경계를 넘나들고 영화 외적으론 신화와 현실, 판타지와 스릴러를 넘나든다. 그런가 하면, 경계에 대해 정답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는 나름대로의 해답을 내놓기도 한다. 


스웨덴 난민 문제로의 확장


티나로 말할 것 같으면, '못생겼다' 정도가 아닌 '괴물 같다' 정도의 외형을 가졌다. 냄새로 감정을 읽고, 사람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며, 숲속에서 평안을 찾고, 동물과 가까이 지낸다. 보레가 말하길 티나는 인간이 아닌 멸종 위기에 처한 종족 '트롤'이라는데, 사실이라면 티나의 모든 걸 합당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그녀' 티나는 여성으로서의 성관계를 할 수 없었던 게 남성의 생식기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티나라는 존재 자체가 경계선을 말한다. 태생으로 저쪽에 속하지만 후천적으로 이쪽에서 지내왔기에, 뭐라고 한마디로 지칭할 수가 없다. 어떤 존재를 두고 반드시 한마디로 지칭해야만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게 만드는 게 이 영화의 목적일 텐데, 100%에 가깝게 달성했다 해도 무방하다. 티나는 그도 그녀도 되고 인간도 트롤도 된다. 티나와 보레는 추하지만 아름답다. 보레는 옮지 않은 일을 하지만, 인간의 시선에서일 뿐이다. 


영화 밖으로 확장시켜 보면, 이란 태생으로 스웨덴에서 활동하고 있는 알리 아바시 감독이 보이고 나아가 스웨덴의 난민 수용 갈등이 보인다. 알리 아바시 감독에 대해선 잘 모르니 뭐라 말할 순 없겠으나, 스웨덴의 경우 문제시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북유럽하면 떠오르는 포용, 화합, 융합의 정책이 최근 몇 년간 유럽을 강타한 난민 문제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모로 흔들리는 사회와 경제의 원인을 이민자와 난민자들에게 전가시키는 모양새라고 한다. <경계선>을 스웨덴의 현실에 적용시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미묘한 경계 도는 경계의 미묘함


문제작으로서의 작품 외향적 분석과 함께, 작품성으로서의 내면 분석도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영화는 뇌리에서 쉬이 지워질 것 같지 않은 굉장한 캐릭터성이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런데, 정작 활동성 있고 와일드한 액션을 취하지 않는 정적 연기를 펼친다. 와중에 카메라는 주인공의 표정과 움직임을 살피는 데 수시로 클로즈업을 사용하는데, 그 미묘함을 포착하고자 한 것 같다. 미묘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경계'를 표현하는 주된 소재가 아닐까 싶다. 알게 모르게 '미묘한 경계' 또는 '경계의 미묘함'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비록 한순간일지도 모르지만 한 발 떨어져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오직 나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순식간에 차원과 시간과 공간을 넘어 통합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바라본 인간은 '한낱'이라고 표현해도 과분한 존재가 아닐까.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본 수많은 경계들이 허물어지는 대단한 경험을 한다. 곧 극중 티나의 경험이다. 


영화의 중반, 가히 충격적이고 불쾌하기까지 하지만 일면 이해가 되는 순간 아름다운 광경으로 재탄생하는 장면을 목격할 것이다. 영화가 끝날 때쯤엔 괴물 같이 추했던 티나가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영화의 모든 면면들이, 우리의 시선을 강탈하고 머릿속을 헤집어놓으려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열어주기 위한 것임을 깨닫길 바란다. 물론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각의 몫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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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경계선, 난민, 모모 큐레이터, 미묘, 스웨덴, 시선, 아름다움, 인간, 충격, 트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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