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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피해자'에 해당되는 글 2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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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길이 남을 연쇄 살인마 '요크셔 리퍼' 이야기의 기막힌 이면 <더 리퍼>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1. 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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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 리퍼>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 리퍼> 포스터. ⓒ넷플릭스



지난해 11월 13일 영국에서 소식이 날라왔다. 일명 '요크셔 리퍼'라고 불렸던 피터 서트클리프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치료를 거부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이미 심근경색과 당뇨 등 기저질환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요크셔 리퍼는 영국 역사상 최악의 살인범으로 손꼽히며, 19세기 전설의 살인마 '잭 더 리퍼'에서 이름을 따올 정도의 악명을 떨쳤다. 


1970년대 영국 북부의 웨스트요크셔, 한때 부유했던 그곳은 외부 산업의 유입으로 급속한 쇠퇴를 거듭해 몰락의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 1975년 10월 끔찍한 범죄 사건이 일어난다. 28살의 이혼여성으로 네 아이를 키우고 있던 '윌마 매캔'이 불과 집에서 140m 떨어진 곳에서 살해당한 것이었다. 살인범은 망치로 그녀의 뒤통수를 가격하곤 칼로 복부를 수 차례 찔렀다. 현장에는 범인을 유추할 만한 단서가 전혀 없었다.


경찰과 언론은 사건의 또 다른 면에 주목한다. 피해자의 시체가 발견된 곳이 채플타운 홍등가 근처라는 점과 그녀의 평소 행실을 추적한 결과, 윌마 매캔이 매춘부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매춘부 살인'은 아무에게도 큰 관심을 끌지 않고 지나가는 사건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지나가고 있던 살인 사건은, 이듬해 1월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측되는 살인 사건이 또다시 일어나면서 부상하는 듯했으나 역시 단서를 찾을 수 없었거니와 '매춘부 살인'이었기에 묻히고 말았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1977년부터 시작된다. 


'요크셔 리퍼'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 리퍼>는 1970년대 후반 영국 북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희대의 살인마 '요크셔 리퍼' 이야기를 심도 깊게 다룬다. 넷플릭스는 그동안 여러 범죄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가해자, 피해자, 언론, 재판, 경찰, 검찰 등에 포커스를 맞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확실히 했던 바 이번엔 어떤 시선으로 독보적인 관점을 전할까 기대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찰 그리고 피해자에 포커스를 맞췄다. 너무나도 유명한 살인마 요크셔 리퍼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여러 모로 유익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겠다. 요크셔 리퍼가 너무나도 '교과서적'으로 완벽한 살인 행각을 저지른 것도 있지만, 경찰의 대처가 가히 세계 경찰 역사상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경찰의 오판으로 피해자들은 이중 삼중의 피해를 봤다. 


1977년 2월과 4월 동일범의 소행이 확실한 매춘부 대상 살인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경찰은 인력을 두 배 이상으로 늘려 범인 추적에 속도를 낸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 사이, 6월과 10월에 또다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다른 점이 있었다. 6월의 피해자 제인 맥도널드는 매춘부가 아닌 미성년자였고, 10월의 피해자 진 조던은 리즈와 브래드포드가 아닌 거리가 먼 맨체스터에서 당했던 것이었다. 6월의 충격적 미성년자 살인 사건 후, 언론에서도 본격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 웨스트요크셔 지방 소도시들에 퍼져 있던 경찰 본부가 웨스트요크셔 경찰청으로 흡수통합된다. 이후 긴밀감은 줄어들고 지역 공동체에 관한 세세한 파악과 정보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당시 영국 경찰 수뇌부의 거시적인 오판도 이 희대의 연쇄 살인 사건에 큰 몫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게 전부라면 섭섭하다. 경찰은 요크셔 리퍼를 쫓는 과정에서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미시적인 오판들을 수없이 저지른다. 이 연쇄 살인은, 요크셔 리퍼와 웨스트요크셔 경찰청의 합작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1977년이 가고 1978년이 밝았다. 요크셔 리퍼의 살인 행각은 끊기지 않고 1980년까지 다양한 곳에서 이어진다. 1978년 1월 두 명 그리고 5월, 1979년 5월과 9월, 1980년 8월과 11월... 요크셔 리퍼 피터 서트클리프의 손에 살해당한 이가 13명, 살인 미수로 그친 이가 7명이었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 햇수로 6년이 지나는 동안 경찰은 요크셔 리퍼가 누구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경찰에겐 이미 충분한 단서들이 있었고 넘치고 흐를 듯한 인력 또한 갖추고 있었다. 몇몇 현장들에 동일한 트럭의 타이어 자국이 남아 있었고 신발 자국도 남아 있었으며 5파운드 신권 지폐도 발견되었다. 결정적으로, 기적적으로 생존한 이들 중 한 명이 거의 정확한 인상착의를 기억하고 있어 몽타주도 확보했다. 이후 사실상 웨스트요크셔 경찰 전 인원이 달려들어 조사하고 추적하고 신문하고 제보를 받았다. 경찰은 또 다른 수단으로, 범인에게 공식적 자수 요청을 하기도 했고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결정적 증거를 얻는다. 요크셔 리퍼가 경찰청장 앞으로 직접 보낸 편지 그리고 녹음 테이프였다. 경찰 당국은 이것들을 100% 신뢰하며 곧 살인마를 잡을 걸 기대해 마지 않았다. 특히, 녹음 테이프 속 억양에 주목해 지역 범위를 굉장히 한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잡을 수 없었다. 경찰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피해 당사자가 될지 모를 여성들에게 "밤에 혼자 돌아다니지 말아 달라"고 말할 뿐이었다. 범인을 잡지 못하는 자신들의 잘못을 여성들에게 교묘히 전가하는 짓이었다. 


연쇄 살인마 요크셔 리퍼를 잡지 못해 영국 전역이 공포에 떨던 1977년 어느 날, 여성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경찰들이 계속해서 주지시킨 '여성의 밤길 통행 금지'에 대항해 '밤을 되찾자(Reclaim the Night)'를 구호로 내세운 것이다. 살인범 한 명에게 놀아난 '세계 최고급 전력'을 자랑하는 웨스트요크셔 경찰 당국이 짊어지기 마땅한 짐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한 번 피해를 본 대상이 이중 삼중으로 계속해서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게 쉽고 편해서 그렇다. 


경찰의 행각, 피해자의 피해


1981년 1월, 웨스트요크셔 경찰로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사건이 영원히 미제로 남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심정으로 있었을 때 범인 요크셔 리퍼가 잡힌다. 사우스요크셔 셰필드에서 자동차에 어느 여자와 동승해 있다가 자동차 번호판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에 의해 붙잡힌 것이다. 지난 6년간의 피나는 노력이 그야말로 한순간의 우연으로 종지부를 맺어 버렸다. 그것도 웨스트요크셔가 아닌 사우스요크셔에서. 


그럼에도, 영국 전역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살인마가 붙잡힌 건 모두가 환호할 만한 일이었다. 특히 경찰 수뇌부가 함박웃음을 지었는데, 그 웃음이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좋게 보일리 만무했다. 일반 대중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신적 피해보상을 청구하고도 남음이었다. 지난 6년을 복기해 보니, 경찰의 황당한 행각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생존자 한 명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에선 농담하지 말라고 비웃은 적이 있다. 하급 경찰 한 명이 피터 서트클리프를 조사했고 몽타주와 너무 똑같은 얼굴 등으로 석연치 않아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상부에선 용의자의 억양이 (훗날 가짜라고 판명난) 녹음 테이프 속 목소리가 다르다고 하여 지나쳐 버린 적이 있다. 이를 포함해 피터 서트클리프를 9번이나 자세하게 신문했지만 모두 풀어줬다. 그리고, 요크셔 리퍼가 붙잡혀 종신형 30년 형을 확정지은 3년 후 피터 서트클리프는 붙잡힐 당시엔 그러지 않았지만 지금은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주장으로 당국을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여, 안전한 정신병원인 브로드무어로 이감되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요크셔 리퍼'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연쇄 살인마의 행각에 쏠려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의 극악무도한 행각(망치, 스크루드라이버, 칼 등을 써서 살인 및 시신 훼손)과 주도면밀한 뒤처리(경찰이 절대 잡을 수 없이 그 어디에도 결정적 단서를 남기지 않음) 등이 누군가에겐 정녕 '찬사'를 불러일으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경찰의 믿기 힘든 행각들과 피해자(여성)의 이중 삼중 피해가 묻혀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 리퍼>는 경찰의 행각을 수면 위로 올려 전면에 세우고 피해자의 계속되는 피해 역시 수면 위로 올렸다. 하여,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이들은 이 작품으로 제대로 된 시각을 정립하게 되었을 테다. 누구나 꼭 한 번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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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더 리퍼, 여성, 연쇄 살인마, 영국, 요크셔 리퍼,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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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자 성범죄자의 빙퉁그러진 삶을 조명하다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7.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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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 포스터. ⓒ넷플릭스



지난해 2019년 8월 10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교정센터에 수감 중이던 억만장자 금융인 제프리 엡스타인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이었는데, 그의 죄목이 자그마치 미성년자 인신매매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10여 년 전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학대하고 미성년자를 매춘으로 고용한 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한마디로, '성범죄자'. 


뉴욕시 검시관은 그의 죽음을 자살로 판명했으나, 엡스타인의 변호사들은 다양한 정황에 비추어 그의 죽음을 타살로 주장했다. 여기에 그가 죽기 하루 전에 일명 '엡스타인 문서'로 불리는 법원 문서를 미 연방 항소법원에서 공개하였기로서니, 엡스타인을 통해 미성년자 성매매를 중개받은 각계각층의 수많은 유명인사가 존재한다는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엡스타인 변호사들과 언론들이 그의 자살 아닌 타살을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명인사들 중 누군가가 엡스타인의 암살을 알선한 게 아닌가 하는... 드라마나 영화에만 존재할 것 같은 음모론이지만, 정황이 정황이니 만큼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다. 이 논란은 엡스타인이 죽은 지 1년 가까이 지나고 있는 지금에도 계속되고 있다. 와중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그의 빙퉁그러진 삶을 조명한다.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 그는 어떻게 억만장자가 되었고 왜 괴물이 되었는가. 


제프리 엡스타인의 다단계 미성년자 성매매


작품은,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위치한 제프리 엡스타인의 저택에서 벌어진 미성년자 성매매 피해자들의 생생한 육성으로 시작된다. 그들 중 상당히는 웨스트 팜비치라는 낙후된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아이들이었는데, 제프리 엡스타인과 그의 여자친구 길렌 맥스웰의 수작에 넘어가 버리고 만 것이다. 억만장자인 그들은, 즉시 200달러를 지급하면서 아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 


그들은 그저 성적이지 않은 마사지로 돈을 벌고자 했을 뿐이었다. 몇몇은 그 자리를 박차고 도망쳤지만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또 다른 몇몇은 달리 갈 데도 없고 많은 돈을 벌 수 있거니와 무엇보다 돈 많고 영향력 많은 권력자의 해코지가 무서워 몇 년간 있었던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들도 피해자인 건 매한가지이다. 


그는 여자친구이자 오른팔이며 사실상의 총책임자 길렌 맥스웰과 함께 '다단계' 수법을 진행했다. 돈과 영향력과 권력으로 돈 없고 힘 없고 생각할 여지까지 없는 미성년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학대해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 그들로 하여금 친구나 심지어 가족을 데리고 오게 하여 똑같은 짓을 하고는 현찰을 지급했던 것이다. 여기에 굴복하지 않을 이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참고로, 길렌 맥스웰은 자신에게 부과된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며 명예훼손 소송까지 진행했다. 


그런 일들이 벌어진 게 2005년을 전후한 시기였는데, 결국 2008년 36명의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한 혐의로 조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엡스타인은 본인의 유죄를 인정하였으나, 이해하기 힘든 사법거래로 단 2건의 성매매 혐의만을 유죄 인정받아 13개월만 감방생활을 했다. 그것도 노동 석방허가로, 호텔 같은 감방생활을 했거니와 풀려난 후 보호관찰 기간에는 마음껏 돌아다녔다. 법 위에 군림하는 나르시스트 권력자였던 것. 


제프리 엡스타인이 억만장자가 된 경위


그의 성적 착취·학대의 양상은 그가 억만장자가 되는 양상과 비슷하다. 제프리 엡스타인은 뉴욕의 평범한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뉴욕의 명문 사립 단과대학을 중퇴하고 유명 사립 고등학교 달튼스쿨에서 물리와 수학을 가르쳤다. 와중에 그의 운명을 바꿀 기회를 얻었으니, 월스트리트의 세계적인 투자은행 베어스턴스 회장의 아들을 과외하게 된 것이다. 


이를 인연으로 베어스턴스에 입사한 그는, VIP의 세금 업무를 도맡아 좋은 모습을 보이며 승승장구했다. 입사 5년 만에 퇴사해 자신의 회사를 차린 그는, VVIP만을 대상으로 자산운용하는 방침을 고수했다. 그들의 돈을 아주 '잘' 관리해주며 그 또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일례로, 그는 '빅토리아 시크릿' 브랜드로 유명한 L브랜즈의 레즐리 웩스너 회장의 자금을 운용했는데 그의 돈을 빼돌린 바 있다. 천문학적인 돈이었지만, 돈과 성으로 얽히고설켰기에 대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엡스타인은 돈에 있어서도 사람을 통제하는 데 특출난 능력을 앞세운 것이다. 당하는 이로 하여금 빠져나갈 수 없게끔 그물을 쳐놓고는, 그가 직접적으로 강제하진 않지만 당연한 듯 원하는 바를 얻게 된다. 즉, 그가 잘못되면 함께 잘못될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수없이 많다. 그것도 전 세계적인 유명도와 영향력에서 가장 위에 있는 사람들이 말이다. 그의 사람을 통제하는 능력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 아니, 마력(魔力)이 있었던 걸까. 


도널드 트럼프, 빌 클린턴, 앤드루 왕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연류된 유명인은, 비단 레즐리 웩스너뿐만이 아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사람들, 도널드 트럼프 현 미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영국 엘리자베스 2세 둘째 아들 앤드루 왕자 등이 그들이다. 엡스타인이 살아생전 악명을 떨칠 때나, 죽고난 후 여전히 악명을 떨치고 있는 지금도 꾸준히 언론지상에 오르내리는 이들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지금은 확실히 엡스타인과의 관계에 선을 긋고 있지만 20여 년 전에 이미 그와 오래 교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클린턴은, 엡스타인의 전용기 최다 탑승자로 족히 수십 차례 여러 곳을 다녀왔다. 앤드루 왕자는, 엡스타인의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핵심인물이다. 작품에도 나오는 바, 로버츠 주프레는 20여 년 전 미성년자일 때 앤드루 왕자와 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주장해 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엡스타인이 체포되며 기류가 바뀐 것이다. 


엡스타인이 긴급체포되는 과정은 '미투 운동'과 큰 연관이 있다. 지난 2018년 11월 <마이애미 헤럴드>지가 피해 여성들을 인터뷰해 구체적으로 엡스타인의 범죄 혐의를 보도했고, 아울러 2008년 당시 이해할 수 없던 사법거래의 정황을 토대로 당시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는 미투 운동이 시작된 후 1년여 지난 시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 여론의 핵심 의제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에 뉴욕남부연방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했고 제프리 엡스타인을 긴급체포한 것이었다. 


심층적이지 못한 대신, 잘 전달된 피해자들의 목소리


작품을 보면, 일련의 상황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상황들을 모조리 그리고 충분히 많이 알려진 상태이다. 누구나 언론을 통해 알 만큼 알 수 있는 것이다. 굳이 다큐멘터리까지 찾아보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여,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답지 않게 아쉬움 가득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제프리 엡스타인 개인에 너무 천착하여, 그와 연계된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보다 '심층'적으로 파고들지 못한 느낌이다. 즉, 흥미 요소가 많지 않았다. 


반면, 제프리 엡스타인 개인에 천착하다 보니 피해자들이 주가 될 수밖에 없었던 점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언론지상에서는 엡스타인과 그에 연루된 유명인들만 오르내리지, 실직적 피해자들은 거의 다루지 않으니 말이다. 이 작품에선 다양한 피해자들이 나와 당시 본인의 사정에 입각한 이야기를 전해 주어 '진실'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흥미를 버린 대신 진실을 마주하고자 한 작품에 박수를 쳐 주고 싶다. 하지만, 보는 내내 힘들었던 만큼 작품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전달될지는 미지수이다. 개인적으로는, 꼭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해자들이 아닌 피해자들을 위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이런 류의 범죄가 더 이상 이뤄지지 않게 아주 조금의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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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살고자 필요한 인간다운 정의란 무엇인가 <사라진 소녀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4.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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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사라진 소녀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사라진 소녀들> 포스터. ⓒ넷플릭스



2010년 5월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 오크 해변에서 섀넌 길버트가 홀연 자취를 감춘다. 당일, 엄마 메리 길버트는 섀넌과 통화하고 다음 날 놀러온다는 딸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다. 메리는 남편 없이 홀로 공사장과 술집에서 일하며 다른 두 딸 셰리, 사라를 부양하고 있다. 막내 사라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심한 조울증을 앓았다. 셰리는 잘 버티고 있었지만 엄마의 사랑이 필요했다. 


메리는 놀러온다는 딸은 오지 않고 며칠이 지나는 동안 연락도 받지 않자 찾아 나선다. 그녀는 딸이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잘 알았던 듯 남자친구와 기사를 찾아 묻는다. 하지만 그들은 섀넌이 무작정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오히려 메리에게 추궁한다. 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냐고, 그냥 돈만 쳐 받으면 다냐고 말이다. 그 사이 경찰은 오크 해변 근처의 길고 해변에서 여성 네 명의 시체를 발견한다. 섀넌은 없었다. 


섀넌에게 큰일이 생겼다고 확신한 메리는 경찰을 압박하는 한편 피해자들 모임에 합류해 같이 직접 사건을 파헤치려 한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 방법은 경찰을 더욱더 압박해 수사하게끔 하는 것밖에 없다. 문제는, 피해자들이 하나 같이 '성 노동자'들이라 경찰이 수사를 하기는커녕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것이었다. 더욱이 경찰은 섀넌의 실종을 여성 네 명의 살인 사건과 동일선상으로 두지 않았다. 메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롱아일랜드 미제 연쇄 살인 사건 실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사라진 소녀들>은 '롱아일랜드 미제 연쇄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로버트 콜커의 베스트셀러 논픽션 <Lost Girls: An Unsolved American Mystery>를 원작으로 했다. 선댄스 영화제 단골손님이자 다큐멘터리를 전문으로 다루는 리즈 가버스 감독의 신작으로, 미국 인디영화 스타일이 한껏 묻어난 수작이다. 


상업영화로서 으례 지녀야 할 최소한의 웃음기나 극적 요소까지 완벽하게 빼내고 다큐멘터리적 진중함과 단백함을 최대한 부각시켜, 스토리와 사건과 인물에 집중하게 했다. 와중에 영화는 연쇄살인이라는 중요하디 중요한 요소는 최소한으로 포커싱하고, 사건과 주요하게 관계되어 있는 다른 부분에 포커싱을 맞춘다. 성 노동자 살인 사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찰, 사건(!)과 경찰(?)에 맞서 연대하는 피해자의 여성 유족들. 


1990년대에 데뷔하여 30여 년 동안 주로 조연으로 활동하며 크게 두드러지지 않고 꾸준히 모습을 비추는 배우 에이미 라이언이 메리 길버트를 맡아 열연을 펼쳤다. 딸을 찾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끈질기게 추격하는 '엄마'의 진면목을 잘 표현해냈다. 그 이면의 불편한 이야기들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포용해낸다. 문제가 있더라도, 포커스는 그녀와 그녀의 딸이 아닌 사건과 경찰에 가 닿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경찰의 노골적 차별 수사


원작의 시선과 맞닿아 있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딱 두 가지로 압축된다. 경찰의 노골적 차별 수사와 피해자 여성 유족들의 연대. 경찰은 피해자가 성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대량의 시체 유기에 따른 명백한 연쇄 살인 사건임에도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거니와 근처에서 실종된 섀넌의 경우 찾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며 오히려 메리에게 책임을 추궁하려고 한다. 


메리는 경찰에 알리고 이후 강력하게 요청하고 압박했지만 통하지 않자 직접 단서를 찾아 나서며 섀넌의 뒤를 쫓는다. 경찰은 아전인수 격으로 경찰에게 맡기고 빠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찌어찌 많은 시간이 흘러 수사를 시작하는 경찰, 쫓으라는 섀넌을 안 쫓고 엄마 메리의 과거를 쫓는다. 메리가 친딸 섀넌을 버린 과거가 있다는 것, 섀넌이 어떤 참혹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애써 모르는 채 하며 돈을 받고 있다는 것. 


교묘하게 물타기를 시전하는 경찰에 메리는 꿈쩍도 하지 않지만, 메리의 다른 두 딸이 흔들린다. 사라는 정신적으로 아프고, 셰리는 엄마한테 실망을 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메리로서는 섀넌을 찾으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에 무너질 수 없다. 그녀는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자못, 너무 한 게 아닌가 싶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또한 더 크고 더 잘못된 걸 못 보게 하려는 수작의 일환이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보고 듣고 느껴야 할 건 메리의 부정적인 과거와 현재가 아니라 메리의 부단한 현재이다. 그녀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섀넌, 사건, 경찰이다. 


피해자 여성 유족들의 연대


메리는 피해자의 여성 유족들과 모임을 가지지만, 쉽게 융화되지 못한다. 아니, 융화되지 않으려 한다. 그들과 자신은 다르다며, 그들이야말로 성 노동자 가족을 나 몰라라 하며 죽고 나서 추모하는 모습으로 물타기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메리는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벽에 부딪히고 만다. 이후 어쩔 수 없이 또는 필연적으로 연대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깨닫는다. 


연대는, 가진 것 많은 자들이 모여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고 이끄는 게 아니다. 그건 결국 함께가 아니라 혼자 가겠다는 표시와 다름 아니다. 진정한 연대는, 가진 게 충분하지 않은 자들이 모여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고 위하고 감싸안으며 함께 하는 것이다. 하여, 결코 쉽지 않다. 아프고 슬프고 힘든 만큼 잡음이 많고 삐걱거리며 잘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 하기에 더욱더 서로를 믿고 바라봐야 한다. 


<사라진 소녀들> 속 연대는 아름답지만은 않다. 다들 말 못할 사정이 있다. 추악할 수도 추잡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크고 궁극적이고 한마음 한뜻이 되는 정의를 위해 뭉쳐야 한다는 건 잘 안다. 인간답게 살고자 필요한 인간다운 정의 말이다. 영화는 다른 건 잡시 접어두고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게 무엇인지 직시하라고 말한다. 영화 속 이들도 힘겹게 도달해 계속 나아갈 그것과 그곳, 영화 밖 우리들도 가 닿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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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독립영화, 롱아일랜드 살인 사건, 사라진 소녀들, 엄마, 연대, 차별,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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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2 15:29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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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이 시킨다, "불편한 건 없애버려" <미스틱 리버>

오래된 리뷰 2020. 2. 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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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미스틱 리버>


영화 <미스틱 리버>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클린트 이스트우드, 1930년생으로 90세이지만 여전히 최전선에서 종횡무진하는 현역이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미 서른 작품을 연출했고 최근의 <리처드 주얼>까지 80대 2010년대에만 여덟 작품을 내놓았으니 2020년대에도 작업을 계속 이어갈 것 같다. 한편으론 그가 계속 작업하는 게 믿기 힘들지만, 한편으론 그가 더 이상 작품을 내놓지 않는 게 믿기 힘들다. 


50년대 연기 경력을 시작해 연기자로 60~70년대 최고 전성기를 보낸 후 70~80년대 상대적으로 감독으로서 암흑기라고 할 만한 시기를 지난 후 90년대 안정을 찾는다. 2000년대 들어선 왠만한 사람이라면 은퇴할 나이인 70대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꽃을 피운다. 2010년대에도 이어진 감독으로서의 전성기에 그는 수많은 걸작들을 쏟아냈다. 흥행에도 많은 신경을 쓴 듯 계속해서 차기작을 내놓을 기반을 마련한 것이리라. 


2003년작으로 그의 24번째 작품인 <미스틱 리버>는 영리한 동명 걸작 소설을 원작으로 한 탄탄한 시나리오, 3명의 주인공과 3명의 주연이 빚어내는 연기 앙상블, 묵직하게 형상화되어 가슴 저릿하게 만드는 메시지까지 완벽에 가까운 영화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도 오르는 등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굵직한 수상 소식을 전하진 못했고 다음 작품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공을 돌린다. 대신 숀 펜과 팀 로빈스는 사이좋게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을 비롯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독식한다. 


세 친구를 평생 따라다니는 운명의 소용돌이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작은 동네, 세 친구 지미, 숀, 데이브가 하키 놀이를 하고 있다. 공이 하수구에 빠져 할 게 없는 그들, 지미가 나서서 완성되지 않은 보도블럭에 이름을 써넣는다. 마지막으로 데이브가 이름을 쓰고 있을 때 자신들을 경찰이라고 소개한 낯선 남자 둘이 차를 타고 나타나 그들을 협박한다.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집이 가장 먼 데이브를 차에 태우고 엄마를 보러 가자고 한다. 끌려간 데이브는 그들의 변태짓으로부터 사흘 만에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이후 그들은 잘 만나지 않았고 그 기억으로 상처를 공유한 채 살아간다. 


시간은 흘러 25년 뒤, 데이브는 결혼해 아이를 낳아 딱히 직업 없이 지내고 있고 지미는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며 숀은 형사가 되어 있다. 어느 날, 지미의 19살 난 딸 케이티는 남자친구와 다음 날 라스베이거스로 떠날 결심을 하고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술집에 가서 논다. 그때 그 술집에 데이브도 있었는데, 새벽 3시쯤에 집에 돌아온 데이브는 피범벅을 한 채 손과 배에 상처가 나 있었다. 그는 아내한테 횡설수설하며 자신이 때린 누군가가 죽었을지 모른다고 한다. 아내는 전전긍긍하며 시간을 보낸다. 


다음 날 동네가 발칵 뒤집힌다. 케이티가 살해당한 채 발견된 것이다. 숀은 파트너와 함께 전력으로 이 사건을 수사하고, 지미는 장례를 치르는 한편 소싯적 건달 친구들을 동원해 자체적으로 사건을 파헤친다. 그런가 하면 데이브의 아내 셀레스트는 데이브가 케이티를 죽였을지 모른다는 의심에서 확신으로 마음이 변해가고 있었다. 급기야 숀의 파트너가 데이브를 용의선상에 올리고 데이브가 거짓말한 게 들통나면서 사건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정황상 데이브가 게이티 살인 사건의 범인이 될 수 없지만, 운명의 소용돌이가 그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피해자에게로 향하는 상처의 낙인


영화는 사건선과 감정선이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서사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여 감탄이나 탄식이 터져 나오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조금씩 가슴을 조여오는 묵직함을 느낄 수 있다. 그 묵직함의 중심에는 세 친구의 어릴 때 기억이 자리한다. 하필 데이브여야 했고 데이브로선 평생을 따라다니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떨쳐낼 수 없게 되었지만 지미와 숀도 기억과 상처를 간직하고 있기에 스스로 인생이 잘 풀리지만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5년 만에 세 친구가 다시 모이게 되니 기억의 구름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미는 데이브를 죽여 미스틱 강에 떠나 보내고 숀은 케이티 살인 사건의 진범을 체포한다. 숀은 지미가 데이브를 죽인 사실을 알지만 지미를 체포하기는커녕 "우리 모두가 그 차를 탄 거야"라며 옹호하기까지 한다. 평생을 괴롭혀왔던 '데이브'라는 상처를 치료해버린 것이다. 영화를 관통하고 지배하다시피 한 케이티 살인 사건은 도구에 불과했다. 


낙인이란 다시 씻기 어려운 불명예스럽고 욕된 판정이나 평판을 이른다. 즉, 만장일치의 다시 없을 나쁜 짓을 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한테 낙인을 찍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해자에겐 당연하다시피 행해져야 할 낙인이지만, 피해자는 낙인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가? 


<미스틱 리버>는 낙인이 찍힌 피해자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간접적인 피해를 받은 이들이 가해자가 되는 서늘하고도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가해자는 일찍이 세상에 없기에 남은 피해자들만 풀 수 없는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와중, 직접적인 피해자에게로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곤 강에 쓸려보내듯 마치 없었던 일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 행동 안에는 "너 때문에 우리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어"라는 낙인의 말이 들어가 있다. 당사자를 제외한 그 어디에도 그 누구도 직접적인 피해자를 생각하고 위해주는 곳도 이도 없다. 


인간 본성의 추악한 면모와 왜곡된 비밀


영화는 어릴 때 직간접적인 피해를 당한 세 친구의 심리적 부딪힘을 '안'으로 케이티 살인 사건을 '밖'으로 이중창 형식을 띈다. 뿐만 아니라 안팎을 이어주는 여러 줄기로 영화를 꽉 채운다. 세 친구 각각의 이야기들일 텐데, 그들 각각뿐만 아니라 그들과 연관된 다양한 인물들이 따로 각개전진을 하면서도 같이 엮어들어가는 모양새가 탁월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시작 30여 분만에 세 친구의 어릴 때와 현재 모습과 케이티 살인 사건까지 급전직되는 스토리는 이후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가곤 다시금 달리기 시작한다. 사건의 전말에 다가갈수록 지미의 이면과 옛 일들이 밝혀지는 한편 아무도 관심 없고 모를 데이브의 또 다른 사건과 그때 그 일이 밝혀지는 것이다. 그러곤 거짓말처럼 지미와 숀뿐만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데이브를 향해 마수를 뻗는다. 말하진 않아도, 그러는 편이 손쉽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지미와 숀의 행각은 추악하지만 이해하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 역시 간접적 피해자이고 25년 동안 상처를 안은 채 그 때문에 순탄치는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신도 모르는 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브의 아내와 숀의 파트너와 지미의 건달패들은 왜 그러는가. 그들은 왜 데이브를 보호하고 위해주지 못할 망정 가만 두지 않는가. 


이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지만 인간 본성의 또 다른 추악한 면모이겠다. 불편한 감정을 유발한다고 생각되는 무엇을 눈앞에서 치워버림으로써 시간이 지나면 잊히게끔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걸 알고 무엇인지 또는 누구인지 안다. 기억이란 게 참으로 간사해서, 그러곤 시간이 흐르면 아무 일 없는 듯 사라지는 것이다. 


보스턴엔 실제로 '미스틱 리버'가 존재한다. 미스틱강과 찰스강이 보스턴만으로 흘러들어 이루는 하구 지역에 보스턴이 발달한 것이다. 미스틱은 보스턴 외곽이라 할 만한 북부 지역에 있기에 여러 면에서 취약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원작에선 중심을 이루는 사회문제의 주요 무대가 미스틱강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영화에선 미스틱강이 또 다른 의미로 쓰인다. 신비롭고 비밀스러움을 뜻하는 'mistic', 그곳엔 얼마나 많은 '데이브'가 비밀을 간직한 채 잠겨 흘러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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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세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 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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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믿을 수 없는 이야기> 포스터. ⓒ넷플릭스



2008년 미국 워싱턴주, 10대 후반의 마리는 가택을 침입한 괴한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다. 다음 날 경찰에 신고해 수사가 진행된다. 하지만, 담당 형사 파커를 비롯해 수사 관계자들의 일관성 태도는 피해자를 향하지 않았다. 그들은 수사에만 초점을 맞췄고 마리는 자신이 당한 일을 계속해서 다시 되새기며 소상히 전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일관성 없다고 느낄 진술이 이어졌다. 


마리의 '피해자답지 않은' 발랄한 행동도 경찰의 눈엔 이상하게 보였다. 경찰은 꼬투리를 잡아 '허위진술' 개념을 들이댔고 마리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가 당하지 않았다고 했다가 다시 당했다고 번복하려다 만다. 경찰은 이례적으로 허위진술로 고발한다. 마리는 친구를 잃고 직장을 잃고 돈도 잃는다. 나락으로 떨어진다. 


2011년 미국 콜로라도주, 듀발 형사가 성폭행 사건을 맡는다. 피해자를 향한 세심한 배려와 추후 관리까지 하며 정확한 수사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쉽지 않다. 가해자가 그 어떤 범행 흔적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끈질긴 수사 끝에 우연히 남편을 통해 다른 관할서 형사 라스뮤센을 만난다. 알고 보니 그녀들이 맡았었고 맡고 있는 성폭행 수사의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동일인물로 보였던 것이다. 통상 하지 않는 공조수사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범인의 실태에 접근한다. 그들은 관할도, 성격도, 원칙도 모두 다르지만 피해자가 가장 중요하다는 제1의 원칙을 공유한 채 수사를 진행한다. 


더해가는 안타까움과 더해가는 올바름의 두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2008~11년까지 미국 워싱턴주와 콜로라도주를 관통해 일어난 연쇄 강간 사건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 2015년 발행한 <프로퍼블리카>의 수석기자 T. 크리스천 밀러와 켄 암스트롱의 기사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를 책으로 옮긴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가 원작이다. 이들은 2016년 퓰리쳐상을 수상했고, 책은 2018년에 출간되었다. 


지난 2017년 말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퍼진 '미투 운동'의 연장선상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싶지만, 기사 자체는 그 전에 나왔으니 굳이 끼워맞추려 하지 않아도 되겠다. 이 작품은 그 자체로 독보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니 말이다. 시리즈가 지금 아닌 미투 운동 이전에 나왔어도 충분히 '시의 적절'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시의 적절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다. 


이 작품은 2008년 워싱턴주의 '마리'와 2011년 콜로라도주의 '듀발' '라스뮤센'이라는 두 축으로 진행된다. 스토리 상으로도 두 축이 메인이 되지만, 메시지 상으로도 두 축이 메인이 된다. 즉,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와 성폭행 사건의 수사자로 말이다. 한 축의 더해가는 안타까움과 다른 한 축의 더해가는 올바름이 대조를 이루면서 서로를 향한다. 


성폭행 피해자를 향한 무지몽매한 생각과 파렴치한 대응


마리의 이야기는 제목과 정확히 일맥상통한다. 도무지 믿기가 힘들고 믿을 수가 없다. 성폭행 피해자에서 허위진술 가해자로 전락해가는 과정이 처참하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지만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남자' 경찰들의 무지몽매한 생각과 파렴치한 대응이 비극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들은 폭행 피해자 아닌 성폭행 피해자한테만 일어나는 미묘하고 복잡다단한 심리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고 알아채려고도 하지 않았다. 


반면, 콜로라도주의 '여자' 경찰들은 성폭행 사건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대응해야 하고 수사해야 하는지 잘 알았다. 하지만 단순히 '앎'의 차원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마리의 경우와 달리 수사를 위해 피해자들을 객관적으로 대하면서도, 수사가 결국 피해자들을 위한 것임을 인지하며 피해자들을 주관적으로, 인간적으로 대했다. 


하여, 작품은 말한다. 경찰이야말로 또 다른 절대적 가해자가 될 수 있거니와 그런 사례가 여기 버젓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수사에 임해 자신과 자신의 주위보다 피해자를 더 생각하는 경찰도 있고 또 있어야만 한다고도 말한다. '남자'와 '여자' 경찰을 굳이 분류해서 주지했지만, 보다 중요한 건 피해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가해자를 잡으려는 마음가짐이라 하겠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피해자를 생각하고 가해자를 잡으려는 마음가짐을 갖는 데 남자 경찰이 따로 있고 여자 경찰이 따로 있겠는가. 


성범죄 사건 수사의 모든 것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작품 내외적으로 마음에 와 닿는 스토리와 평생 잊히지 않을 진리를 선물했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연약하고 선량하고 어리디 어린 마리가 참혹한 피해를 받고 나서 믿을 수 없는 2차, 3차, 4차... 피해를 받아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나는 그런 피해를 당하지 말아야지가 아닌, 나는 그런 가해를 행하지 말아야지도 아닌, 사람 사는 세상이 왜 이따구지 하는 생각 말이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세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별 것 아닌 쉽고 당연한 진리이지만 그동안 생각해내지 못했던 게 있다. '왜 범죄자들을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켜주고 입혀주고 먹여주는 거지?' 하는 생각, 심지어는 '범죄자들을 사회 속으로 보내어 자연스레 정화되게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이 작품은 두 경찰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놈들은 절대 활개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고 말이다. 실화이니 만큼 잘 알려진 사실이니 밝히는데, 작품 내 사건이자 실제 사건의 범인은 결국 잡혀 워싱턴주에서 68년 6개월 형과 콜로라도주에서 327년 6개월 형을 받아 복역 중이라고 한다. 우중충할 수밖에 없는 작품에서 가장 속시원한 장면이었다. 


그러며 지금 한국의 우리들에게도 무언가를 선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히 전개된 미투 운동, 하지만 많은 피해자들이 2차 이상의 피해를 받았다. 유독 성범죄 사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피해자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한편 성범죄 사건만의 특수성을 면밀히 살피는 객관적 시선도 유지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성범죄 사건 수사의 '올바른' A to Z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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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피해자들이 운명의 피해지 갤버스턴으로... <갤버스턴>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7. 2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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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갤버스턴>


영화 <갤버스턴> 포스터. ⓒ ㈜삼백상회



세기말에 프랑스에서 영화배우로 데뷔하여 조연으로 차근차근 입지를 쌓고 주연으로 발돋움 후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한 것도 모자라 메이저 영화 주연을 꿰찬 배우. 데뷔한 지 10여 년 후에는 감독으로도 데뷔하여 단편 필모를 쌓은 후 다큐멘터리와 장편까지 섭렵한 감독. 물론 각본도 직접 쓴다. 그런가 하면 가수로도 활동한 바 있다. 멜라니 로랑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그녀는 올해는 활동 소식이 없지만 작년까지 매해 숨막히는 활동을 해왔다. 그 최신작 중 하나가 우리를 찾아왔다. 유명 미드 <트루 디텍티브> 시리즈와 영화 <매그니피센트 7> 각본을 썼던 닉 피졸라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벤 포스터와 엘르 패닝이 함께 한 <갤버스턴>이다. 멜라니 로랑이 감독으로 참여했다. 잔잔하지도 파괴적이지도 않은 애매함과 잔잔하기도 하고 파괴적이기도 한 풍성함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 영화라 할 수 있겠다. 하드보일드한 스타일에 감독의 의지가 엿보인다. 


'갤버스턴'이라는 지명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중남부 텍사스주에 있는 작은 도시다. 19세기 번창한 항구도시로 시작했지만, 20세기 초 최악의 허리케인이 강타해 재앙적 피해를 입혔다. 이후 잘 막아냈지만, 종종 크나큰 피해를 입혔다. 근처의 휴스턴이 급부상하면서 급격히 위축되었다. 여전히 중요한 곳이지만,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작은 휴양지 정도의 위상이다. 


청부살인업자와 매춘부의 도망 여행


청부살인업자와 매춘부의 도망 여행.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 ㈜삼백상회



대략의 내용과 분위기 모두 기시감이 들게 한다. 죽을 병에 걸린 청부살인업자 로이(벤 포스터 분), 알콜 중독에 니코틴 중독인 듯 보이는 그는 보스 스탠의 명령에 동료와 함께 누군가를 헤치러 어느 집에 잡입한다. 하지만 곧 역습 당해 동료를 잃고는 간신히 살아남아 빠져나온다. 어린 매춘부 록키(엘르 패닝 분)와 함께. 그들은 스탠의 함정에 빠진 걸 깨닫고 정처 없이 도망 여행을 떠난다. 


도중 록키는 자신의 집으로 가 여동생 티파니를 데려온다.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셋은 안전해 보이는 갤버스턴의 어느 모텔에 정착해 장기투숙한다. 로이는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이곳까지 쫓아오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씩 마음을 논다. 셋은 아름다운 해변에서 편안한 시간도 가진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 가지 못하는 듯하다. 사건이 엉뚱한 데서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스탠의 압박이 아니라, 록키와 티파니의 기막힌 사연과 그에 따른 비극이 부른 참사 때문이었다. 그들이 노출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아니, 이미 노출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선택할 수 있는 패가 있긴 한 걸까. 거기에 '행복'이라는 패가 있을 리 만무하다. 


확실한 장점과 명백한 단점


확실한 장점과 명백한 단점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 ㈜삼백상회



영화 <갤버스턴>은 확실한 장점과 명백한 단점이 확연하게 구분되어 보여진다. 배우 출신 멜라니 로랑 감독인 만큼, 캐릭터에 매우 천착했다. 벤 포스터와 엘르 패닝이라는 베테랑들이 그에 철저히 부합했다. 잔혹한 외면에 저항하고 버티기 위함인 듯한 쓸쓸한 내면을 탁월한 연기로 표현해냈다. 그러면서도 그 이름값에 맞게 튀지도 않고 작품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스토리와 사건이 그를 받쳐주지 못한 듯한 인상이다. 나이 든 순정한 마초킬러와 그를 따르는 모든 걸 잃은 어린 여자. 그들은 언제 파멸이 눈앞에 다가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함께 여정을 떠난다. 다시 없을 좋은 시간도 보낸다.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대한 비극이 찾아온다. 좋은 기억과 예쁜 장면만을 남긴 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프랑스의 <레옹>과 한국의 <아저씨>가 생각난다. 이밖에 수많은 킬러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이 스토리 라인이 변주되었다. <갤버스턴>도 그 변주의 하나일 뿐이다. 


다만, 이 영화는 주지했듯 '갤버스턴'이라는 지명이 주는 분위기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휴양 항구도시의 평화로운 외향을 띄고 있지만, 그 이면엔 살기 힘들게 하는 재앙적 재해의 빈번함과 한때 번창했다가 위축된 도시의 역사가 복잡다단하게 함축되어 있다. 하지만 갤버스턴이라는 배경과 두 주요 캐릭터 간의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되진 못한 것 같다. 따로 노는 느낌이랄까. 각각 꽤 괜찮은 미장셴을 선사하지만, 굳이 둘을 어울리게 하여 '그림이 되게끔' 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운명 앞에 가해자 아닌 피해자


운명 앞에 피해자들이 운명 앞에 피해지 갤버스턴으로...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 ㈜삼백상회



여기서 그래도 눈여겨봐야 할 건 사람의 힘으론, 개인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의 존재이다. 갤버스턴에 재앙적 허리케인이 계속해서 들이닥치는 것도, 갤버스턴보다 훨씬 더 큰 도시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도 어찌할 수 없다. 로이가 보스의 추격을 따돌리기 힘든 것도, 록키가 매춘부로 살아가는 것도 어찌할 수 없다. 


물론 인간은 수많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어찌어찌 헤쳐 나가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분명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세상을 이끌어가기에, 그들이 보기에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앞에 주저앉는 건 그저 나약한 것일 테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는 결과론적으로 도출되는 것이고, 어찌할 수 없는 건 어찌할 수 없는 거다. 


<갤버스턴>은 그런 면에서 운명의 피해'자'들이 운명의 피해'지'로 대피하여 소중한 시간을 갖다가 다시 가해자들 앞으로 끌려가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한 듯한 영화의 분위기는 거기서 기인한 게 아닐까. 신기하게 다 보고 나면 기분이 더러워지지 않는다. 뭔지 모를 여운이 남는다. 마지막의 슬프게 소소한 반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건, 우리 모두 운명 앞에서 절대 가해자 아닌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 동질감이 그리 괜찮지 않은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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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버스턴, 도망, 매춘부, 멜라니 로랑, 사건, 운명, 지역, 청부살인업자, 캐릭터,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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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시민군과 함께 한 모든 이들의 이야기 <김군>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6.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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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김군>


영화 <김군> 포스터. ⓒ영화사 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손에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 정부는 곧바로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부마민주항쟁으로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한 지 불과 열흘도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그러곤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은 12월 12일 군내부 강경파 집단 하나회가 쿠데타를 일으켜 군을 장악한다. 그들은 민주화 수순으로 가고 있던 정국을 역행시킨다. 


이듬해 5월초 하나회는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정국 장악을 넘어서 집권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학생권과 정치권에선 이 움직임을 경계심 어리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차 5월 중순부턴 본격적으로 시위를 진행했고 5월 15일에는 서울역에 10만 명이 집결했다가 해산하기도 했다. 5월 20일에는 임시국회가 예정되어 있어 정치권에서도 호응하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었다. 


신군부는 5월 17일 전격적으로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내린다. 5월 18일 광주 지역 대학생들은 이를 반대하는 시위를 일으킨다. 공수부대가 투입되어 강력하게 진압한다. 하지만 공수부대의 진압은 시위하는 대학생들에게로만 향하지 않았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죽였다. 광주 시민들과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공수부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에게도 폭행을 자행한다. 급기야 5월 21일에는 집단발포가 시행된다. 시민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무장하고 시민군을 결성해 대치한다. 


제1광수 또는 김군 추적하기


북한 특수군 제1광수인가, 동네청년 시민군 김군인가. 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사 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시민군이 결성될 때까지의 대략적 전개 양상이다. 당시 정권의 하수인 언론들은 이들을 두고 불순분자와 고정간첩의 소행으로 몰고 갔다. 30년이 훌쩍 넘은 2016년에는 지만원 씨가 이들을 두고 북한 특수군이라고 지칭하는 화보집을 출간했다. 400여 명의 북한 특수군이 5.18 당시 광주에 침투해 시위와 공수부대 대치를 진두지휘했다는 주장이었다. 지만원은 그들을 두고 제1광수, 제2광수, 제3광수 하는 식으로 이름을 붙였다. 


영화 <김군>은 '제1광수' 추적을 주요 골자로 한다. 5.18 관련 사진자료 곳곳에서 얼굴을 비춘 그를 두고, 지만원은 2010년 평양에서 찍힌 사진 속 김창식 씨라고 주장한다. 손에 지문이 있는 것처럼 얼굴에도 오차 없이 대조할 수 있는 게 존재한다면서. 이에 5.18 관련 단체들은 소송을 내면서 '북한 특수군 광수들'을 찾기 시작해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제1광수는 찾을 수 없었다. 


한편, 영화에선 중반이지만 사실 영화가 시작된 지점인 '주옥' 씨의 기억이 이에 맞선다. 그녀는 5.18 당시 임신을 한 몸으로 시민군들에게 주먹밥을 배급하는 일을 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제1광수 아닌 '김군'이 생생하다. 대야에 주먹밥을 담아 트럭 위로 날라주던 그때 보았던 김군, 그는 그녀와 같은 동네에 살던 청년으로 아버지 가게의 단골이기도 한 넝마주이였다. 


영화는 자못 순수한 의도로 제1광수와 김군을 추적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사진을 두고, 누구는 제1광수라는 이름 하에 북한 특수군이라고 주장하고 누구는 김군이라는 이름 하에 동네 청년이라고 기억하는 상황이 이해하기 힘들지 않은가. 5.18 민주화운동을 전제한 게 아니라 제1광수와 김군 간의 진실 찾기를 전제한 것이다. 물론 그 진실이야말로 5.18 민주화운동에 가장 근접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테다. 


5.18의 모든 이들 이야기


이 영화는 5.18 당시 시민군과 함께 한 모든 이들의 이야기다. 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사 풀



5.18 관련 영화는 실로 많이 만들어졌다. 가해자, 피해자, 외부자 등 다양한 시선으로, 정공법과 스케치 등을 통해 들여다보았다. <박하사탕> <꽃잎>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등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꾸준히 관객을 찾아오고 있다. 한편 5.18 다큐멘터리는 그 사안이 사안인 만큼 매해 나오고 있을 테다. 와중에 <김군>은 극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5.18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5.18 민주화운동이 광주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주일 정도의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일어난 항쟁이라는 점을 기인해봤을 때, 내년이면 40주년이 됨에도 불구하고 진상이 100% 밝혀지지 않다는 게 기이하다. 사실 다 밝혀진 것이나 다름없지만, 여전히 당시 많은 가해자들은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권력으로 사실과 진실을 오도하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힘 없는 소시민으로 사실과 진실을 알릴 역량이 없다. 또한 피해자들은 가해자들뿐만 아니라 '아픈 기억과 경험'과 싸워야 한다. 


<김군>의 '김군 찾기'도 그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겠다. 지만원이 앞장서 벌이는 가해자들의 '진실의 오도'를 바로잡기 위한 지난한 투쟁. 일반 시민을 북한 특수군으로 둔갑시켜버리는 스케일은 그 황당함 만큼이나 크다. 지만원이라는 사람이 왜 그러는지 알고 싶지는 않으나, 그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선 알고 싶다. 이 영화는 지만원도, 김군도, 지만원이 지목한 광수들도 아닌 5.18 당시 시민군과 함께 한 모든 이들의 이야기이다. 


잘 만든 영화


영화로서도 볼 만하게 잘 만들었다. 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사 풀



<김군>은 영화로서 참 잘 만들었다고 본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기본 얼개는 영화를 끝까지 긴장감 어리게 감상할 수 있게 한다. 영화의 중심소재를 기가 막히게 잡은 것이다. 제작진 또한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찾는 과정을 오롯이 담았기에 다큐멘터리에서 느끼기 힘든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김군의 실체를 찾고자 즉 이 영화를 만들고자 만 4년이 걸렸다는데, 찾았는지 찾지 못했는지는 여기서 밝히진 않겠다. 어떤 식으로든 큰 반향을 일으켰으면 좋겠다 싶다. 


소재와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다 보니 만나게 되는 5.18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다. 지난 40여 년 동안 수없이 만나왔던 당사자들은, '당사자들'이기 때문이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주가 아닌 객에 가깝기에 최소한 보는 이들은 덜 부담스럽다. 부담을 덜 때 슬프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김군>의 지향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다. <김군>은 그 어떤 5.18 콘텐츠보다 5.18에서 먼 곳으로부터 시작했지만 그 어떤 5.18 콘텐츠보다 5.18에 가깝게 다가간 듯 보인다. '제1광수' 또는 '김군'의 사진 한 장이라는 디테일한 소재에서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태생부터가 디테일하니 과정이 디테일한 건 전혀 이상할 게 아니다. 


부디 '진실'을 되찾길 바란다. 이 영화가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역사의 일부가 되어버린 5.18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과의 싸움, 즉 진실과의 싸움이 될 공산이 크다. 그 수많은 삶과 죽음을 이용해 하찮은 욕망을 채우려는 이들은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럴 때마다 <김군> 같은 콘텐츠로 훌륭하게 대응해주었으면 한다. 아니, 그래야 한다. 진실의 승리는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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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사회파 영화 교과서 <7월 22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3. 1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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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7월 22일>

영화 <7월 22일> 포스터. ⓒ넷플릭스


폴 그린그래스 감독, 영화를 참 잘 만든다. 리얼리티를 기본 장착하고 사회성 짙은 소재를 가져와 현장감 있게 연출하는 데에는 도가 텄다. 비록 2편부터 참여했지만 할리우드 액션촬영편집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본 시리즈>가 대표작이다. 


정녕 한결 같은 스타일을 2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많은 관객을 찾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다분히 상업적이지만 마냥 상업적으로만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게 그의 영화들이다. 그의 최신작 <7월 22일>은 오히려 처음으로 돌아간 듯한 정도이다.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를 비롯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테러 사건, 동일 인물이 정부 청사에는 폭탄 테러를 노동당정치캠프가 한창이던 우퇴위와섬에는 총기난사 테러를 일으킨 희대의 충격 사건이었다. 


감독은 이 사건의 전말, 특히 사건 이후를 다큐멘터리적인 세심함과 액션 감독다운 긴장감, 현장감 다분한 연출로 불러들였다. 한없이 가슴 아프고 한없이 무서워지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답을 함께 찾아보자. 


2011년 7월 22일 그날, 노르웨이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 테러는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영화 <7월 22일>의 한 장면. ⓒ넷플릭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대략의 줄거리는 찾아보면 누구나 알 것이다. 2011년 7월 22일,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경찰제복을 갖춘 채 폭탄을 실은 차를 타고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위치한 정부청사로 향한다. 곧 폭탄이 터지고 8명이 사망한다. 


그 사이 노동당정치캠프가 열리는 우퇴위와섬으로 향한 그는 무차별로 총기를 난사해 69명을 죽인다. 그러곤 뒤늦게 도달한 특수부대에게 자수해 오슬로로 향한다. 또 다른 공격이 계획되어 있다며 더 이상 이민을 받지 말고 다문화주의를 철폐할 것을 주장한다. 


변호사를 선임하는데, 변호사가 그를 변호하는 주요 방법으로 그가 정신병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한편, 우퇴위와섬 테러에서 총 4발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빌리야는 가족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는 온국민과 함께 테러범에 맞선다. 


한 개인의 목숨이 달린 싸움 그 미시적 문제와 정치적 신념이 복잡미묘하게 오가는 그 거시적 문제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현장, 치가 떨리게 두려워지기도 하고 저런 악마를 왜 죽이지 않나 치가 떨리기도 하며, 결국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중심을 확고하게 잡아야 하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시시각각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사회파 영화의 교과서


사회파 영화의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 <7월 22일>의 한 장면. ⓒ넷플릭스


<7월 22일>은 '사회파' 영화의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성 짙은 실화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리얼리티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드라마성 짙은 이야기를 넣어, '큰' 것과 '작은' 것의 균형을 맞추었다. 거시적과 미시적이라고 말을 바꾸어도 틀린 건 아니다. 


아무래도 테러범의 총기난사 장면이 가장 충격적인 리얼리티를 선사한다. 전시상황은커녕 그저 캠프에 와서 즐겁고 알찬 시간을 가지고 있었을 뿐인 이들에게 들어닥친 죽음의 그림자는, 극도의 긴장감을 넘어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추체험하게 한다. 


더욱 충격적인 건 테러범 브레이비크의 주장이다. 다문화주의에 빠져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 와중에 본인은 나라를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고 그 일환으로 테러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는 궤변. 인간이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악행을 정치적으로 치환시킬 뿐 아니라,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이 사건의 주체가 되게끔 하려는 수법이다. 


이에 대응하는 노르웨이라는 나라는, 어떻게 보면 매우 이성적이고 인권우선적이며 민주주의적인 것처럼 보인다. 테러범은 변호사도 선임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정부는 그를 '인간'이자 '시민'으로 대하며 그의 말을 차근차근히 듣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악마'를 어떻게 살려두며 어떻게 그의 말을 듣고 있는 건지 이해를 할 수 없고 이해하기 힘들기도 했다. 


전 세계 최고 선진국다운 시스템을 갖추고 견고하게 쌓아올린 국가대계를 단 한 명의 '미친놈'에게 간파당해 무지막지한 피해를 봤으니, 국가로선 그를 단순히 미친놈이 아닌 '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름 아닌 그도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본인을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닐까. 


피해자의 싸움


가해자 아닌 피해자의 싸움도 잊지 않는다. 영화 <7월 22일>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는 피해자의 지난한 싸움 또한 잊지 않는다. 영화의 시작부터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황을 교차 편집하여 그 자체로 메시지화되고 종국엔 깨달음을 전하는 데 크게 일조한다. 이 사건의 경우를 비추어볼 때, 우리 중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순 없겠지만(없어야 하지만) 피해자가 될 순 있다(이 역시 없어야 하지만). 정치의 일상화를 정치의 범죄화로 치환해서 생각하는 건 근절되어야 한다.


피해자의 싸움은, 테러범에게 총 4발을 맞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뒤 육체적 정신적으로 다시 살아나다시피 하는 노력을 뒤따른 후 주체가 되어버린 가해자와 동일선상에 위치해 이 사건의 주체가 되는 게 1차이다. 


2차는 그 이후 극악무도한 범죄자와 억울한 피해자의 어법이 아닌 지극히 정치적이고 상식적인 어법을 구사하려는 테러범에 맞서 다른 어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그건 세계관의 충돌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는 공포의 대상이자 함께 하늘 아래를 영위할 수 없는 죽이고픈 대상일 것이다. 하지만 빌리야는 인간애와 인류애를 역설한다. 


여기에 '인간애' '인류애'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가해자는 혼자가 된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며 테러는 계속 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젠 그저 '공포'라는 만인이 멀리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게 된다. 더 이상 세계를 뒤흔들 수 없게 된다. 반면 피해자는 모든 이들과 사랑, 우정, 믿음을 함께 하는 만인중일(萬人中一)이 되는 것이다. 세계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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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로 양산된 싸움으로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피해자... <안개 속 소녀>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12.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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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안개 속 소녀>


영화 <안개 속 소녀> 포스터. ⓒ미디어 마그나



형사 보겔(토니 세르빌로 분)은 사고를 일으킨 채 하얀 셔츠에 피를 묻히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경찰은 정신 감정을 위해 정신과 의사 플로렌스(장 르노 분)을 부른다. 보겔은 플로렌스에게 이곳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의 전말을 들려준다. 


외딴 산골 마을, 성탄절을 이틀 앞둔 새벽 한 소녀가 사라진다. 박수만 몇 번 쳐도 주민들이 나와서 쳐다볼 정도로 조용하고 또 서로가 서로를 속속들이 알 정도로 밀접한 동네이기에 그 파장은 생각보다 크다. 


도시에서 수사를 하러온 형사 보겔은 이 사건이 그냥 묻혀버릴 게 뻔하다는 걸 알아채고는 소녀의 부모와 동네 경찰을 설득해 '쇼'를 시작한다. 그는 언론이 벌 떼 같이 몰려오게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방법을 잘 아는데, 얼마전 테러 사건에서 잘못 이용하는 바람에 위기에 처한 만큼 신중하지만 간절하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 소녀를 향한 관심은 보겔의 쇼가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하찮은 의심만으로 악마이자 괴물로 전국민에게 찍히게 되는 용의자 교수 마티니(아레시오 보니 분)를 향한 관심으로 어느덧 바뀐다. 


기대 반 걱정 반, 고품격 스릴러 


기대 반 걱정 반, 영화 <안개 속 소녀>의 한 장면. ⓒ미디어 마그나



영화 <안개 속 소녀>는 범죄학과 행동과학 전문가 출신으로 스릴러 소설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이탈리아 작가 도나토 카리시의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영화 시나리오로 구상했다가 소설로 내놓았고 다시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각본에 참여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연출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에 부응하는 면이 반이고 걱정을 떨치지 못한 면이 반이었다. 영화에는 움베르토 에코의 적자임을 천명하다시피 한 원작 작가이자 감독이기도 한 도나토 카리시의 메시지가 분명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는 에코가 다양한 언어와 학문으로 평생을 천착했던 질문 "거짓은 누가 왜 만들어내고, 대중은 어떻게 거짓에 속는가"를 그만의 범류인 범죄학과 심리학적으로 치열하게 접근한다. 


한편 영화는 고품격 범죄 스릴러를 표방하며 안개 낀 산골 마을이라는 음울한 분위기와 잡으려는 자, 잡히지 않으려는 자 간의 치열한 두뇌싸움을 내보이려 한다. 더불어 이중 삼중으로 쳐놓은 복선과 그에 따른 반전 또한 내보이려 한다. 혹자는 문학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고 생각할 게 분명하지만, 종종 과해서 지루하고 비(非)영화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영화 외적으로, 어렵게 접근해야 '재밌다'


이 영화를 재밌게 보려면 영화 외적으로 어렵게 접근해야 한다. 영화 <안개 속 소녀>의 한 장면. ⓒ미디어 마그나



<안개 속 소녀>를 그나마 '재미있게' 보려면 아이러니하게도 꽤나 어렵게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영화 내적이 아닌 영화 외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럴 때 이 영화는 굉장히 훌륭한 사례로, 수단으로, 텍스트로 읽힐 수 있다. 


보겔이 자신의 영위를 위해 수단으로 이용하는 언론, 언론은 핫한 시청률을 위해 대중영합적인 소재를 부풀려 내보인다. 사건에서 가장 중요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대상은 피해자일 테지만,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은 용의자 또는 범인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용의자라면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면 '관심'을 끌지 못하며 관심을 끌지 못하면 '작은' 사건에 머물고 말 것이다. 


모두(경찰, 언론, 피해자)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큰' 사건이 되어야 하기에, 용의자의 인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용의자의 '악마화' 또는 '괴물화'가 시작된다. 감정을 자극하는 피해자의 사례를 내보이는 이유도 그 작업의 일환이다. 


결국 피해자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이 영화의 제목처럼 '안개 속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다. 피해자가 주체가 되기는커녕 객체가 되지도 못한 채 설 자리도 없어진다. 그 사이 모두의 시선은 경찰과 용의자 간의 싸움으로, 용의자의 신상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진 후,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한 채 끝난다. 이쯤 되면, 용의자는 용의자일 뿐 경찰과 언론이 진짜 범인이자 가해자가 아닐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많은 걸 담아낸 영화


많은 걸 담아내려 했지만, 그게 독이 되었을지 득이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영화 <안개 속 소녀>의 한 장면. ⓒ미디어 마그나



위의 일례가 사건에서 관심이 쏠리지 않는 주요 주체의 치명적이고 슬픈 말로라면, 이제 말하고자 하는 건 사건에서 관심이 과도 하게 쏠리는 주요 주체의 논란적인 말로이다. 아직 범인으로 확정되기 이전의 용의자를 향한 과도한 관심, 그로 인해 순식간에 괴물이자 악마가 되어버리는 모습 말이다. 


우린 이런 경우를 현실에서든 영화에서든 종종 보아왔다. '알 권리'를 제1의 원칙이자 가장 중요한 신념으로 내세우면서 아무런 꺼리낌 없이 마녀사냥을 시전한다. 영화 <더 헌트>를 보면 더 없이 심도 깊게 또 조심스럽게 하지만 명확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보다 얇고 넓게 비춘다. 


사라진 피해자, 전국민의 관심을 받는 용의자, 사건을 주도하면서 영합하고 대결하는 경찰과 언론, 그리고 사건에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 <안개 속 소녀>는 참으로 많은 걸 내보인다. 


보다 훨씬 디테일하고 유려할 소설에서 메시지와 캐릭터를 최대한 살려 영화에 내보이려 한 것 같은데, 할리우드 문법에 익숙한 관객의 눈에 익숙하지 않은 유럽 영화라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너무 늘어진다는 느낌이 종종 한없이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행간과 자간의 늘어짐이라는 보기 불편한 느낌과 일종의 '여백의 미'라고 볼 수 있을 여유로운 느낌의 경계에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한 번 보면 영화의 전부를 받아들일 수 없다. 두 번 보면 적어도 영화의 전부를 받아들일 순 있다. 온전히 콘텐츠를 받아들이고 싶다면 적어도 영화를 두 번 이상 보고 소설까지 섭렵해야 하겠다. 더할 나위 없는 고품격 스릴러를 한껏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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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할 수 없는 괴물, 무엇이 그 괴물을 만들었나 <몬스터>

오래된 리뷰 2018. 11.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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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몬스터>


영화 <몬스터> 포스터. ⓒ무비즈 엔터테인먼트



에일린(샤를리즈 테론 분)은 불우한 가정 환경으로 13살 나이에 창녀가 된다. 그 사실을 안 동생들에게서 쫓겨난 그녀는 고향을 떠나 떠돌며 창녀 생활을 계속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마감할 결정을 한 그녀, 마지막으로 목을 축이러 들어간 바에서 셀비(크리스티나 리치 분)을 만난다. 사랑에 굶주린 에일린과 레즈비언 셀비는 사랑에 빠진다. 


에일린은 달라진 게 없다. 그녀가 가야 할 곳은 여지없이 길 위, 그리고 창녀 생활. 어느 날 에일린은 남자 한 명을 죽인다. 그는 에일린을 묶고 학대와 가학적인 섹스를 행했던 것이다. 이후 에일린은 셀비와 함께 일주일만 함께 하자는 말로 하여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며 도피 행각을 벌인다. 


도피 행각 도중 문득 깨달은 에일린은 창녀 생활 아닌 일반적인 일자리를 구하고자 한다. 그게 가능하지 않을 것을 안 셀비는 반대하지만 에일린은 바로 시작한다. 하지만 에일린에게 돌아오는 건 매몰찬 거절과 가혹한 냉대뿐. 모욕을 참지 못한 에일린은 다시 창녀 생활로 돌아선다. 


하지만 에일린의 창녀 생활은 이전과 다르다. 온갖 트라우마가 뒤섞여 그녀로 하여금 막다른 곳으로 내몰리게 하여 연속적인 살인과 강도 행각으로 이끈다. 과연 에일린의 삶은 어떤 곳으로 향할까. 에일린과 셀비가 함께 하는 생활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셀비가 에일린의 살인과 강도 행각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행동을 할까.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 실화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 에일린 원노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영화 <몬스터>의 한 장면. ⓒ무비즈 엔터테인먼트



영화 <몬스터>는 유명 미드 <안투라지> <킬링>의 시즌 1을 연출하고 영화 <원더 우먼>으로 세계적인 흥행 감독 반열에 오른 대표적 여성 감독 패티 젠킨스의 데뷔작이다. 그녀가 갓 30대에 들어선 때에 선보인 이 영화는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 에일린 워노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실제 그녀는 불우하기 짝이 없는 평생을 보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빠는 소아성애를 일삼다 구속된 후 자살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친오빠와 친할아버지에게 학대와 강간을 당했고 14세 때 강간으로 임신을 했지만 기를 수 없어 입양을 보냈다고 한다. 집에서 쫓겨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창녀 생활뿐...


끔찍하고도 끔찍하고도 끔찍한 에일린 워노스의 어린 시절 그리고 이후의 삶, 비록 영화는 불우하고 끔찍한 어린 시절의 그녀를 직접적으로 그려내진 않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고 그래서 더욱 처참하게 다가온다. 영화의 기저엔, 에일린이 그런 생활을 하고 살인과 강도 행각을 벌이게 된 기저엔, 그 시절 그 삶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의 연쇄살인을 옹호하지 않고 보는 우리 또한 그녀의 연쇄살인을 옹호할 수 없는 건 당연하고도 당연하다. 그 어떤 연유로도 살인을 정당화하고 옹호할 수는 없다. 세상에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 많을 테지만, 그 죽어 마땅한 사람을 죽인 사람을 같은 프레임에 넣을 수는 없는 것이다. 


또 다른 가해자들, 몬스터들


그녀되 괴물이었지만, 그녀를 그렇게 만든 수많은 이들도 모두 괴물이 아닐까. 영화 <몬스터>의 한 장면. ⓒ무비즈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이 프레임을 빗겨간다. 이 프레임이 아닌 다른 프레임으로 그녀를 바라보려 한다. 전자가 에일린을 주체로 놓아 그녀로 하여금 '남혐'을 중심에 놓고 주체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려고 했다고 보는 반면, 후자는 에일린을 주체이자 주체적 가해자 아닌 최소한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말해 인지하게끔 한다. 


그녀가 오직 용서할 수 없는 최악의 악마이자 괴물이었다는 점에'만' 천착하는 것과 그녀가 형용할 수 없는 짓을 당한 최악의 피해자였던 점'도' 인지하는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우리 모두 그녀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는 와중에 그녀가 어떤 짓을 당했는지 아는 게 필요한 것이다. 


그녀는 영화 제목대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몬스터'였다.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절대 부정할 수도 변경될 수도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또 다른 몬스터들이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영화는 에일린이 아닌 그들, 그녀로 하여금 괴물이 되게끔 한 그들 즉 그녀에게 강간을 하려한 남성들과 사랑을 가장해 그녀에게 계속된 창녀 생활을 중용한 셀비'도' 몬스터가 아니냐고 묻고 있다. 


1992년에 제작된 에일린 워노스에 대한 다큐멘터리 <에일린: 연쇄살인범의 삶과 죽음>은 그들뿐만 아니라 에일린에게 적절한 사랑과 보호를 주지 못한 미국을, 그녀에게 다른 무엇도 아닌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의 굴레만을 씌운 언론을, 그녀를 어떻게든 연쇄살인범에 합당한 죄를 물어 '정의를 실현'하려는 사법부야말로 몬스터가 아니냐고 묻고 있다. '진짜' 몬스터는 누구인가 묻는 게 아닌, '몬스터'란 무엇인가와 누가 '몬스터'인가 묻는 게 먼저이고 중요하다 하겠다. 


한없이 슬퍼진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한없이 슬퍼진다. 영화 <몬스터>의 한 장면. ⓒ무비즈 엔터테인먼트



'난 대스타가 될 줄 알았어. 아니면 그냥 아름다운 여자라도. 그래, 나도 꿈이 많았어. 세월이 지나면서 나는 꿈을 속으로만 간직하게 됐어. 하지만 당시에는 철썩 같이 믿고 살았어.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언젠가 다 알게 될 거라 생각하면 행복했어. 마릴린 먼로만큼 키워주긴 힘들더라도 날 믿어만 준다면 내 가능성을 봐주고 아름답다 생각해준다면... 그럼 지금과는 모든 것이 다른 새로운 삶과 새로운 세상으로 날 데려가줄 수 있지 않을까.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어. 어느 날 다 끝나버렸지.'


영화가 시작되면서 에일린의 과거를 비춘다. 에일린의 내레이션이다. 꿈이 있던 시절, 사랑을 믿었던 시절, 행복을 바랐던 시절... 몬스터들은 그녀를 몬스터의 세상으로 끌고와 그녀로 하여금 다시 없을 몬스터가 되게 만든다. 그럼에도 영화는 몬스터와는 하염없이 다른 곳에 있을 것 같은 사랑과 행복을 말하려 한다. 


끔찍했던 시절의 에일린이지만, 그녀에겐 셀비가 있었다. 셀비와 함께 하는 꿈, 셀비와의 사랑, 셀비와 더불어 사는 행복을 바란 에일린, 인생의 절정이었을까. 마지막 불꽃이었을까. 하지만 셀비라는 또 다른 몬스터는 꿈과 사랑과 행복을 빌미로 에일린으로 하여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하고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쯤 되면, 에일린이 희대의 살인마라는 사실은 더 이상 머릿속에 없다. 그저 한없이 슬퍼진다. 무엇이 그녀를, 그를,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회의론에 빠지면 디테일한 면면들을 볼 수 없게 되는 우를 범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 영화의 힘일까, 이 영화가 주는 영향일까. 그건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그게 무슨 대수랴 싶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만큼은 모든 걸 측은지심으로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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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몬스터, 불우, 슬픔, 여성 연쇄살인범,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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