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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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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쉬움을 뒤로한, 한국 우주 SF의 신기원 <승리호> 2021.02.13
  • 1930년대 할리우드의 풍경을 통해, 지금 그리고 미래의 할리우드를 내다보다 <맹크> 2020.12.16
  • 감각으로 감각하는 장르적 쾌감을 마음껏 자극하라! <콜> 2020.12.07
  • 악마의 연대기로 들여다보는 20세기 중반의 미국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2020.09.22
  • '이상적'인 틀로 '비이상적'이었던 1940년대 할리우드를 그리다 <오, 할리우드> 2020.05.25
  • 내외향의 완벽한 비쥬얼도 상쇄하지 못할, 스토리와 캐릭터의 아쉬움 <사냥의 시간> 2020.04.29
  • 장애를 향한 관심, 제도 개선과 인식 개선이 필요한 이유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 2020.04.08
  • 막장으로 들여다보는 피겨 스케이팅의 치열하고 치졸한 이면 <스핀 아웃> 2020.01.24
  • 결혼에서 이혼으로 가는 선상의 순간들 <결혼 이야기> 2019.12.06
  •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할리우드의 위대한 다섯 감독 <다섯이 돌아왔다> 2019.09.21

아쉬움을 뒤로한, 한국 우주 SF의 신기원 <승리호>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2. 1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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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승리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승리호> 포스터. ⓒ넷플릭스

 

코로나 19 판데믹이 시작된 지도 1년이 훌쩍 지나 2021년도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 2020년 영화계를 돌이켜 보면, '황폐'라는 한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거의 매년 1000만 영화들을 양산하며 역대 최고의 관객몰이를 경신시키더니, 한순간에 역대 최악의 퍼포먼스를 보여 주게 된 것이다. 단적으로, 2020년 한국영화 최대 흥행작이 <남산의 부장들>로 채 500만 명도 동원하지 못했다.

 

2020년을 건너 뛰어 거슬러 올라간 2019년, 2020년에 우리를 찾아와 영화를 보고 즐기는 행복을 한껏 선사할 거라고 예상해 마지 않았던 기대작들 태반이 지금까지 개봉을 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언제 개봉을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그중 <승리호>는 자타공인 최대 기대작이었는데, 2020년 여름에 1000만 관객 동원은 따놓은 당상의 텐트풀 영화로 예정했다가 추석 시즌으로 미뤄졌었고 다시 무기한 연기되었다가 결국 넷플릭스와 손잡고 해를 넘겨 설날 시즌에 맞춰 공개되었다. 

 

'한국 최초의 우주 SF'라는 타이틀과 함께, 감독과 주연이 큰 수혜를 봤던 영화 <늑대소년> 이후 실로 오랜만에 함께하게 된 조성희 감독과 송중기 배우, 그리고 김태리, 유해진, 진선규, 리처드 아미티지 등이 합세한 궁극의 캐스팅까지 당최 기대를 하지 않을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문제는, 다분히 극장 스크린에 안성맞춤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졌을 영화라는 점. 과연, 안방극장에서 기대를 충족시킬 만한 퍼포먼스를 보여 줄 것인지? 과연 할리우드 역사를 함께 했던 수많은 우주 SF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

 

2092년 병들고 황폐해진 지구엔 모든 생물이 사라지고 사람들만이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갈 뿐이다. 우주 개발 기업 'UTS'는 지구를 피해 우주의 위성 궤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세워 지구의 인류에게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선택된 5%의 시민들만이 살 수 있었고 나머지 95%의 비시민들은 지구에 남아 힘겹게 살아가거나 우주에서 역시 힘겹게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우주쓰레기를 청소하는 이들이 대표적인 우주 노동자인데, 한국의 '승리호'가 타국 청소선들을 제치고 월등한 실력을 자랑한다. 

 

승리호엔 전 UTS 소속의 천재적인 실력의 소유자들인 선장 장현숙(장선장), 조종사 김태호가 타고 있고 몇 년 전까지 지구에서 마약 밀매조직 수괴이자 갱단 두목이었던 기관사 박경수(타이거 박)와 군사용 로봇으로 설계되었다가 장선장과의 인연으로 탑승하게 된 작살잡이(?) 업동이도 타고 있다. 이중 특히 김태호에겐 사연이 있는데, UTS 기동대장으로 있던 당시 뜻밖의 정으로 데려다 키우게 된 '딸' 순이를 순간의 실수로 영영 잃어버리게 되었다. 태호는 순이의 시신이라도 회수하고자 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빚만 늘어나던 그들 앞에 어느 날 강꽃님이라는 어린 여자아이가 나타나는데, 언론지상에서 외형만 인간이지 고성능 수소폭탄이니 조심하라고 떠드는 도로시였다. 처음엔 도망다니며 난리를 치더니 문득 깨닫고는 큰돈을 만질 절호의 기회임을 간파한다. 결국 도로시를 빼돌렸다고 알려진 테러 단체 검은여우단과 조우해 큰돈으로 맞바꾸기로 한다. 하지만, UTS 수장인 설리반이 본인의 궁극적인 목적을 실현하고자 지구의 완전한 파멸이 가능한 유일한 카드인 도로시 즉 꽃님이를 찾고 있다. 과연, 승리호는 어떤 선택을 할까? 꽃님이와 지구의 앞날은? 

 

터무니 없기 짝이 없는 스토리

 

영화 <승리호>는 크게 두 측면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완벽히 갈리다시피 할 텐데, 내면이라고 할 수 있을 '이야기'와 외형이라고 할 수 있는 'CG'가 그것이다. 앞엣것은 불호로,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의 괴상한 각본이었다고 감히 확신할 만하다. 반면 뒤엣것은 호로,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훌륭한 그래픽이었다고 감히 확신할 만하다. 그러니, 영화를 보고 또 대하는 방식이 아주 간단하고 단순하다. 재밌게 즐기며 환호하든, 재미없게 보며 욕을 하든 말이다. 

 

우주에서 펼쳐지는 모험이 주된 소재가 되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를 차용한 만큼 세계관은 굉장하다. UTS라는 초국적 초거대의 온리 원 우주 개발 기업이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를 독식하고 있는 와중에, 도로시라는 지구 파멸이 가능한 나노봇 인간을 둘러싼 모험과 전쟁이 펼쳐지니 말이다. 그런데, 큰 이야기를 큰 스케일로 이끄는 게 아니라 큰 이야기 속 자잘한 이야기들로 잽을 날리듯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모양새가 그리 와닿지만은 않았다.

 

계급, 환경, 다양성 등 수많은 영화를 통해 진지하고 크게 다뤄졌을 문제의 메시지를, 단타로 처리하며 모양만 갖추려고 했다는 이미지가 짙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제목이기도 할 정도로 크게 부각되어야 마땅할 청소선 '승리호'만의 서사가 부족한 점이나 영화의 유일한 빌런이라고 할 만한 UTS 수장 설리반만의 서사가 부족한 점, 무엇보다 극을 이끄는 네 캐릭터의 따로 또 같이 서사 그리고 꽃님이와의 조우 이후 서서히 탄탄하게 쌓아올려지는 연대의 서사가 부족했다는 점 등이 크게 다가왔다. 관객 입장에서, 갑자기 툭 튀어 나온 알 수 없는 이야기 속으로 한순간에 빨려 들어가 정신 없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만 하고는 빠져나온 느낌이지 않았을까.

 

말도 안 되는 업적의 그래픽

 

주지했듯 CG라는 측면만 보면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룩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제작비가 240억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정도의 퀄리티를 할리우드에서 구현하려면 2400억 원의 제작비는 들여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주연 배우의 높은 출연비를 포함 우리나라보다 대체적으로 높을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단순히 1:10으로 무 자르듯 할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월등한 그래픽 기술을 보유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승리호>는 그 집약체와 다름 아니었다.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핵심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오밀조밀 유기적이고 납득이 가면서도 안타깝기까지 한 모험 활극에 있을 텐데, 그만큼 핵심적인 게 우주 공간에서 펼쳐지는 누가 적군이고 누가 아군인지 식별하기 힘들 복잡한 전투 장면이다. 어수선한 듯 꽉 차 보이는 화려하고 웅중한 우주 공간 전투를 이 영화가 완벽에 가깝게 보여 줬다. <스타워즈>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기조 상으로 다분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연상되었다. '느낌'만으로 <승리호>를 따라가다 보면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테다.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말이 있다. 처음으로 가는 길이 제대로 닦여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그럼에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단 이 영화는 한국 영화계 역사에 길이남을 게 분명하다. 큰 시도였고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비록 반쪽의 성공을 이룩한 듯보이지만 말이다.

 

좀더 큰 서사의 일환으로 보면, 한국 우주 SF 영화의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보는 게 맞다고 본다. <승리호>를 두고, 기술력은 충분하고 이제 상상력만 충족하면 되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기술력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지만 상상력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동안 충분하지 못한 기술력 때문에 상상력이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제 기술력이 충분해졌다는 게 명약관화하니 상상력이 스스로를 제한하지 않고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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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 기술력, 넷플릭스, 상상력, 스토리, 승리호, 한국 우주 SF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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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할리우드의 풍경을 통해, 지금 그리고 미래의 할리우드를 내다보다 <맹크>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2. 16.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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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맹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맹크> 포스터. ⓒ넷플릭스



영화를 조금만 안다는 사람도 <시민 케인>의 명성을 들어봤을 것이다. 자그마치 70여 년 전 1941년도 영화인 이 영화를 정작 본 적은 없을지라도 말이다. 이 영화를 향한 100점 만점 평가는 너무 많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건 딥포커스 기술과 거울 이미지 활용 등으로 극대화한 미장센 그리고 독특한 방식의 기준으로 시간순의 진행을 깨뜨린 스토리텔링 방식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당시엔 최첨단이자 혁명적인 시도였지만, 지금의 전 세계 영화계를 주름잡는 할리우드의 대표적 방식들을 선보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흥행에서 참패하고 비평 면에서도 아카데미 시상식 9개 부문에 올랐음에도 각본상 하나밖에 수상하지 못했다. 영화가 당대 황색언론을 지배한 신문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정면으로 풍자·비판하고 있기에 그는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전부터 만들어지고 난 후까지 온 힘을 다해 훼방을 놓았던 것이다. 그럼 여기서 궁금해지는 건 아카데미 '각본상'이다. 얼마나 대단했기에 허스트도 막지 못했을까? 


<시민 케인>은 25살짜리 천재 오손 웰스가 제작, 연출, 각본, 주연 등 1인 다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찾아 보면 각본에 생소한 이름이 보인다. 허먼 J. 맹키위츠. 영화계에서 이 이야기를 가만 놔둔 게 이상한 바, 할리우드 거장 데이비드 핀처는 일찍이 20여 년 전 허먼 맹키위츠의 이야기를 영화로 내놓으려 했으나 흑백영화를 만들기 힘든 여건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게, 오랜 세월이 지나 데이비드 핀처의 아버지 잭 핀처가 살아생전 집필한 각본으로 데이비드 핀처가 넷플릭스의 자본을 등에 업고 <맹크>를 내놓았다. 


허먼 맹키위츠와 <시민 케인>


1940년, 경영난에 허덕이던 RKO 라디오 픽처스는 24세에 불과한 천재 오손 웰스에게 전권을 주며 영화 <시민 케인> 제작을 맡긴다. 웰스는 몇 주 전 교통사고를 당한 허먼 맹키위츠(이하, '맹크')에게 각본을 의뢰한다. 맹크는 빅터빌의 노스 버드 목장에 들어가 속기사와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60일간의 각본 작업을 진행한다. 속기사 리타는 이 각본의 주인공 모티브가 그 유명한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라는 걸 눈치 채고 맹크에게 묻는다. 맹크는 허스트의 정부 매리언 데이비스와도 알았다고 말하며 과거를 회상한다. 


1930년, 맹크는 신작 영화의 각본을 같이 쓰던 찰스를 파라마운트 촬영소에 불러 동료들에게 소개한다. 찰스는 이모를 맹크에게 소개하는데, 그녀는 유명 배우이자 허스트의 정부인 매리언이었다. 맹크는 그녀뿐만 아니라 허스트와도 친분을 쌓는다. 1934년, MGM 회장 메이어와 허스트의 모임에서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업튼 싱클레어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오간다. 그들은 싱클레어의 당선을 절대적으로 반대하며 어떤 식으로든 막을 것이었다. 


맹크는 메이어와 허스트 등을 위시한 권력자들의 위선을 계속해서 마주하며 내면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그의 진보적 정체성이 할리우드 시스템을 점차 지배하게 된 보수성에 대응하게 된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듯, 걸작 <시민 케인>의 각본을 맡아 위험을 무릎쓰고 크레딧에 이름을 올려선 천하만민에 알린 것이다. 


어렵고 대단하고 진심 어린 <맹크>


<맹크>는 어렵다. 왠만큼의 사전 정보 없이는 100% 이해하기 힘든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 케인>의 제작 비화를 담고 있는 만큼, <시민 케인>과 오손 웰스와 허먼 맹키위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숙지하고 보는 게 좋다. 그런가 하면, 이 영화가 진정 보여 주고자 한 게 1930년대 할리우드인 만큼 MGM이나 메이어, 어빙 등의 이름을 한 번쯤 찾아 보면 좋다. 그리고, <시민 케인>의 주인공 모티브인 동시에 이 영화의 주요 인물들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나 그의 정부 매리언 데이비스 역시 어느 정도 숙지하는 게 좋을 듯하다. 


<맹크>는 대단하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20년 넘게 구상한 바를 완벽히 녹여 냈는 바, <시민 케인>을 완벽히 숙지하고선 완전히 해체한 후 본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재탄생시킨 것이다. <시민 케인>이 구가한 영화 방정식들을 빠짐 없이 가져와 <맹크>에 접목했다. 심지어, 비대칭적이고 비시간순 스토리 진행까지 말이다. 그런가 하면, 흑백인 건 물론이거니와 다분히 거친 화면 구성, 사운드와 담배 자국까지 재연했다. 순수하게 영화 자체만 보고 대중과 타협하지 않은 태도와 자세로 일관한 결과물이다. '데이비드 핀처'라는 브랜드를 오랫동안 일군 여정이, 진짜 하고 싶었던 영화 <맹크>의 이유가 되지 않는가 싶다.


<맹크>는 진심 어리다. 이 영화는 '<시민 케인>의 탄생 비화'라는 누구나 혹할 먹잇감을 던져 놓고, 실상 1930년대 할리우드를 진심 어린 어조로 들여다보고 있다. 빛보단 어둠 또는 그림자에 초점을 맞췄는 바, 당대 영화계를 주름 잡았던 이들의 위선이 돋보인다. 한 장면이면 충분할 텐데, 대공황이 한창일 당시 MGM 회장 메이어는 맹크의 동생 조셉에게는 MGM을 가족처럼 생각한다느니 하면서 장황한 경영철학을 떠벌리지만 스텝들이 모인 자리에서 감성에 호소하는 연설로 임금 삭감에 성공하는 면모를 보인다. 정작 그 자신은 허스트와 어울리며 호의호식을 이어가고, 가난한 이들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싱클레어의 주지사 낙선을 앞장 서서 지휘하고 말이다. 


1930년대 할리우드의 풍경


1930년대 할리우드의 어둠 또는 그림자라고 했지만, 정확히는 '풍경'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1940년 '현재'에서 <시민 케인>의 각본 작업을 하는 맹크가 10년 전 1930년을 시작으로 촘촘히 회상하는 것들을 그대로 모아 이어붙이기만 해도 '상(象)'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1930~40년대 미국의 할리우드는 이런 모습을 한 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게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거기에서 2010~20년대 지금의 할리우드를 반추하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데이비드 핀처는 전심전력을 다해 80년 전 할리우드의 치졸한 이면을 까발리는 데 그친 게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을 있는 그대로 즉 이면의 진실까지 지금 이 자리로 가져와 사람들한테 보여 주려 한 것이다. 할리우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영화인의 뼈를 깎는 노력의 결과물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통해 보여 준 할리우드를 향한 애정과 큰 결을 같이 한다. 20세기 초 형성된 할리우드, 지금이 할리우드 시스템이 태동하고 확정되다시피 한 1930~40년대, 그리고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최악의 위기 2020년.


할리우드의 역사와 일련의 흐름 속에서, 데이비드 핀처가 <시민 케인> 탄생 비화와 1930년대 할리우드의 풍경을 담은 <맹크>를, '넷플릭스'와 손잡고 제작해 선보인 건, 보다 훨씬 큰 의미에서도 볼 수 있겠다. 그는 일찌감치 넷플릭스와 손잡고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마인드 헌터>와 애니메이션 <러드 데스 로봇>을 제작, 연출했으며 이번엔 영화 <맹크>까지 연출했다. 1930~40년대 할리우드가 향후 수십 년을 지배할 시스템을 만들었다면, 2020년대 할리우드도 기존의 문법에서 탈피해 새로운 문법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넷플릭스는 지난 2013년 이후 매년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하며 창작자의 창작 자유를 완벽히 보장하기까지 해 재능 있고 유명한 이들을 대거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매우 좋은 작품들을 나날이 쏟아 내고 있는 것이다. 바뀌는 문화를 선도적으로 이끌며, 앞으로 그 영향력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커질 게 분명하다. 데이비드 핀처의 빅 픽처는 영화 안과 밖, 할리우드의 옛날과 현재 그리고 영화를 구성하는 문법의 변화를 두루두루 살피고 선도하려 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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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으로 감각하는 장르적 쾌감을 마음껏 자극하라! <콜>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2. 7.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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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콜> 포스터. ⓒ넷플릭스



2019년 오랜만에 전남 보성의 단독주택 집으로 내려온 서연, 핸드폰을 잃어 버려서 무선 전화기를 사용하다가 이상한 전화를 두 번이나 받는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는 그녀에겐 뇌종양으로 죽음을 앞둔 엄마가 있다. 보이지 않는 아빠, 서연이 어렸을 적 엄마의 큰 실수로 집이 불타며 아빠는 사망했고 서연은 화상을 당했다. 어느 날, 잠을 자다가 큰소리에 깬 서연은 벽으로 가려진 지하실 가는 길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1999년에 이 집에 살았던 이가 쓴 걸로 보이는 일기를 읽으며 영숙의 존재를 확인한다. 


한편 1999년 같은 집엔 신엄마와 신딸 영숙이 살고 있었다. 신엄마는 영숙이에게 귀신이 들렸다며 그녀가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또 외형상 괴롭히는 것 같은 행동을 했다. 영숙은 엄마한테 빌면서 그만 두라고 하는 한편, 정말 귀신이 들린 듯한 행동을 취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전화기를 통해 몇 번 통화했던 서연이라는 이름의 동갑내기가 '미래의 같은 공간'에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된다. 이후 서연과 영숙, 영숙과 서연은 시공간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기 시작한다. 서태지 팬이었던 영숙에게 서연이 조만간 컴백할 서태지의 '신곡' <울트라맨이야>를 들려주는 식이었다. 


영숙의 집에 서연의 가족이 집을 보러 온 어느 날,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오열하는 서연에게 영숙이 '재밌는 생각'이자 '순수한 우정을 위한 제안'을 한다. 서연의 아빠가 죽던 날, 영숙이 서연의 집으로 가서 일을 해결해 주는 것. 이후 서연을 둘러싼 모든 게 바뀌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아빠가 살아 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엄마도 잘 살아 있는 게 아닌가. 서연 본인도 삶의 질이 월등히 상승해 있는 느낌이다. 


좋은 느낌에 취해 있던 시간 동안 영숙은 소외감을 느낀다. 서연이 영숙의 전화도 잘 받지 않고 말이다. 영숙이 크게 그리고 무섭게 삐진 걸 보고 소연은 영숙을 위해 뭐든 해 줘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오영숙'에 대해 찾아보다가 '보성읍 영천리 4번지'를 검색해 뭔가를 찾아 내고 만다. 영숙의 끔찍한 미래였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영숙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데... 이후 일은 나비효과처럼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안방에서나마 즐기게 되어 다행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콜>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19년에 일찌감치 촬영을 마치고 2020년 3월에 극장 개봉을 예정해 두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했듯, 당시 많은 '큰 영화'들이 그랬듯, 코로나 때문에 개봉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공과 돈을 들이고 또 큰 기대를 하고 있던 영화인 만큼 코로나가 잠잠해지길 기다렸는데, 그 사이 영화계의 판도가 바뀌었다. 


역시 2월경 극장 개봉을 예정했던 <사냥의 시간>이 빠르게 안방 극장 개봉을 선택해 4월에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되는 한편, 몇몇 큰 영화들은 개봉을 강행했다가 본전을 찾지 못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넷플릭스로 선회하며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게 된 것이다. 결국 <콜>도 넷플릭스를 선택했고, 빠르게 진행되어 11월 말경 전 세계에 소개될 수 있었다. 두 작품 다 장르적 성격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어서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 행을 택한 한국영화들 <승리호> <차인표>도 장르적 성격이 강하다. 


물론, 장르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야말로 안방 아닌 극장의 대형 스크린으로 빵빵한 사운드와 함께 봐야 제맛일 것이기에 일말의 아쉬움이 남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장르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야말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제격인 면도 있다. 극장을 찾기가 매우 애매한 관객 입장에선, 안방에서나마 좋은 작품과 보고 싶은 작품을 즐길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감으로 감각하는 작품


<콜>은 모든 면에서 극장에 맞게 최적화하며, 공을 들인 게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리고 오감으로 감각하는 작품이다. 눈에 띄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닌 바, 그중에서도 2019년 서연의 집과 1999년 영숙의 집이 독보적이다. 거시적으론 각각의 심리 상태에 맞게 구성하고 배열하면서, 미시적으론 그때그때의 감정 상태에 맞게 조명 작업을 한 듯하다. 또한, 영숙이 하는 짓에 따라 서연의 주위 모든 게 바뀌는데 그때마다 달라지는 미장센은 보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게 한다. 


원작 영화 <더 콜러>에서 핵심 콘셉트만 가져와 극대화하는 한편 스토리를 치밀하고 디테일하게 구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고 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20년의 시공간 차가 만들어 내는 복잡한 이야기의 씨실과 날실이 흩날리지 않고 잘 꼬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장르 영화라고 해서 보이는 것만 신경 쓴 게 아닌, 내실도 탄탄하게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1990년생으로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이른 나이에 상업영화 데뷔를 이룩한 이충현 감독의 패기와 2015년 단편 <몸 값>으로 국내외 영화계를 떠들썩하게 한 내공이 엿보인다. 


이 영화를 볼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아니 가장 앞세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가 있으니 오영숙 역의 '전종서'다. 2년 전 이창동 감독의 <버닝>으로 데뷔한 신예 중 신예이지만,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끼'를 이번에도 발산했다. 아니, 폭발시켜 버렸다. 영화 속에서, 서연의 말을 받아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난 후 그동안 감췄던 혹은 발산하지 못했던 광기를 폭발시킨 것과 맥락이 이어지는 듯하다. 물론, 그녀가 그렇게 마음껏 '뛰놀' 수 있었던 건 김성령, 이엘, 박신혜 같은 베테랑들이 든든히 뒤를 받쳐 줬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자극을 찾게 하는 자극들


<콜>은 지금, 여기를 대표하는 '감각'적 영화라고 할 만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연이 닿는 요소들이 모조리 가져와 세련되게 배치하고 모나지 않게 배열하며 볼 만한 걸 넘어 즐길 수 있게 구성했다. 상업영화의 문법을 모범생처럼 잘 따라가되 자신만의 스타일 또한 가미해 관객으로 하여금 빨려들어 갈듯 몰입해서 볼 수밖에 없게 한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영화 곳곳에 '왜'의 궁금증이 어마어마하게 달라붙을 수 있다. '구멍'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스토리의 현실적 의심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찾아보고 들여다보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영화가 그렇게 만든다. 궁금해하며 의심을 가져볼 새도 없이 무섭게 몰아붙이며, 달을 가리킨 손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고 말한다. 단단하고 감각적인 영화의 안팎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선 그저 집중하며 따라가야 한다. 그것이 이 영화를 보는 방법이다. '왜' 보다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에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대를 많이 하고 영화를 보시라, 기대를 충족하고도 남을 테다. 그 자극은 자리에 머물지 않고 또 다른 자극을 찾게 할 것이다. 이충현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하게 될 테고, 전종서 배우의 팬이 될 사람들이 많을 테다. 김성령, 이엘, 박신혜 등의 베테랑들에겐 '역시, 믿고 보는 배우야'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테다. 오감이 충족된 나에게 더 좋은 선물을 주고자 또 다른 좋은 콘텐츠를 찾아 나설 테다. 좋은 건 좋은 걸로 이어진다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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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연대기로 들여다보는 20세기 중반의 미국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9. 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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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포스터. ⓒ넷플릭스



코로나19로 전 세계 극장이 문을 닫다시피 하여 OTT 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되었다. 그중 단연 앞서가는 건, 모두가 알다시피 '넷플릭스'다. 그렇다 보니, 요즘엔 영화 '기대작' 리스트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늘었는데 앞으로 더욱더 늘어날 것 같다. 신예라고 할 만한 안토니오 캠포스 감독의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도 그중 하나다. 


2011년 최고의 소설 중 하나로 뽑히는 유명 원작과 필모 최고의 열연을 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제목에서도 연상되는 바 잔잔하게 퍼지는 불안과 불쾌의 감정이 탄탄하게 자리 잡은 영화라고 하겠다. 더 자세히 보면, 최근 들어 제작자로도 활발히 활동하는 제이크 질렌할이 제작에 참여했고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흐름과 중심을 잡고자 원작자 도널드 레이 폴락이 직접 내레이션을 맡았다. 


출연진은 화려하다 못해 호화롭다. 홀로 영화 하나를 책임질 만한 주연들이 총출동했다. 굳이 열거해 본다. <스파이더맨>의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 <더 배트맨>의 '배트맨' 로버트 패틴슨, <어벤져스>의 '윈터 솔져' 세바스찬 스탠, <그것>의 '페니 와이즈' 빌 스카스가드, <철의 심장을 가진 남자>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제이슨 클락, <해리포터>의 '두들리' 해리 멜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 미아 바시코프스카, <작은 아씨들>의 '베스' 일라이자 스캔런,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코라 콜먼' 헤일리 베넷, 앨비스 프레슬리의 외손녀 '라일리 키오'.


악마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이


때는 1957년, 장소는 미국 오하이오주 노컴스티프, 대부분 혈연 관계로 이어진 4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2차 대전 참전용사 윌러드 러셀의 가족은 외딴 곳에 9년째 별탈 없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내 샬럿이 암으로 쓰러지고 윌러드는 자신만의 교회에서 아들과 함께 신께 기도드리며 아내가 살길 바란다. 급기야 키우던 개를 제물로 바치기까지 하지만 샬럿은 죽고, 윌러드는 자살한다. 홀로 남겨진 아들 아빈은 작은 할아버지에게 맡겨진다. 거기엔 또래의 여자애 리노라가 있었다. 


리노라는 동네의 독실한 신자 부부 로이와 헬렌의 딸이었다. 어느 날부터 로이는 두문분출하며 방안에 처박혀서는 신의 시험을 통과하고 신의 음성을 듣고자 했다. 2주 뒤 신의 계시를 들은 로이는 오랜만에 헬렌과 놀러 가며 리노라를 아빈의 작은 할아버지 댁에 맡긴 것이다. 로이는 신의 계시를 따라 헬렌을 죽이고 부활시키려 하지만 실패하고 도망치다가 칼과 샌디 부부 차를 얻어 탄다. 그들은 연쇄살인범이었던 것, 로이는 칼의 총에 맞고 즉사한다. 


칼과 샌디는 젊은 남자 히치하이커들만 골라 태운 뒤 한적한 곳에 세우곤 예술적 사진을 찍는다며 샌디로 하여금 몸을 팔게 하고 결국엔 히치하이커를 죽인다. 샌디에겐 하필 보안관 오빠 보데커가 있었는데 보데커 또한 여지없이 뒤가 구렸다. 동네를 주름잡는 마피아 조직과 붙어 먹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아빈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리노라를 지키고자 불철주야 노력했는데 결국 지키지 못한다. 그런데, 리노라를 헤친 건 학교 친구들이 아닌 동네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사 프레스턴이었다. 악마들이 판치는 세상, 아빈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악마의 감촉과 향기가 진득하게 퍼지는 악마의 연대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20세기 중반 미국에 만연했던 악마들의 이야기와 다름 없다. 그런데, 흔히 생각하는 악마 같은 인간과는 다른 형상을 보인다. 아내의 죽음을 막기 위해 반려견을 제물로 바친 남편부터 어떤 사연이나 이유도 없는 연쇄살인범까지 범상치 않는 이들도 있는 한편, 깡패 조직에 붙어 먹는 경찰이나 어린 여성들을 탐하는 목사는 예나 지금이나 만연하다. 


그래서인지, 영화에 나오는 악마들에게 분노를 느끼거나 그들의 이야기에서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거나 하지 않는다. 대신, 가슴 깊숙한 곳까지 진득하게 퍼지는 악마의 '감촉'과 '향기'가 느껴진다. 마치 어찌할 도리 없이 악마에게 잠식 당한 이들이 도처에 널린 듯한 것 같달까. 가멸차게 휘말린 아빈 입장에선 '기도' 따위가 아닌 '행동'이 필요했다. 하여, 그의 행동이 악마적 소행과 다름 없는 결과를 낳는다 하더라도 결코 악마적 행위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악마들이 종횡무진하는 '악마의 연대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이 작품, 제2차 세계대전에서 베트남 전쟁 사이 오하이오주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낙후된 소도시들을 배경으로 한 이유가 있을까. 미국의 특징, 국가적인 게 곧 개인적인 것이고 개인적인 게 곧 국가적인 것이라는 걸 대입해 보면 원작자 도널드 레이 폴락의 삶에서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1954년생인 그는 50대 중반인 2011년 '첫 장편소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는 영화의 주배경이 되는 오하이오주 노컴스티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중퇴 후 제지공장 노동자와 트럭 운전수로 자그마치 32년 동안 일했다. 일하던 도중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입학했고, 일을 관두고는 예술학석사 과정을 밟는 도중 소설가로 데뷔했다. 평생 오하이오를 떠나고 싶었다는 그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으로 엉망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소설과 영화엔 다분히 그의 엉망인 시절의 삶이 녹아들어 있다 하겠다. 그의 마음속에 악마가 깃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의 주변에 악마가 깃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장르적 쾌감 대신 문학적 은유로 그려낸 당대의 미국


영화는, 그러나 애매모호한 면이 상당하다. 외형상 범죄스릴러 장르를 띄고 있는데, 실상은 2007년 전 세계 영화제를 양분하다시피 했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데어 윌 비 블러드>처럼 다분히 문학적 은유로 미국을 그리려고 했다. 하여, 장르적 쾌감을 전혀 선사하지 않는 대신 이면에 도사린 은유를 읽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런 면에서 원작자가 직접 내레이션에 참여한 건 상당히 적절하다 하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문학적 은유로 당대의 미국을 적절히 그려냈다고 할 순 없다. 굳이 들여다보자면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1940~60년대 미국은 전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전후 혜택을 받은 시대를 살고 있었다. 와중에, 낙후된 도시의 외따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안팎으로 잠식하는 악마들. 실제로는 실체가 있었든 없었든, 이 영화는 실체로 보여 주는 것이다. 악마는, 극도의 욕망으로 점철된 이들에게 깃들기 쉬운 만큼 또한 소외되고 힘 없고 힘겨운 이들에게 깃들기 쉽다는 걸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맞는 말이다. 


하나 같이 눈을 뗄 수 없는 신스틸러로서의 연기를 톡톡히 해낸 배우들의 연기가 아니었으면, 이 영화는 적어도 영화적으론 큰 가치를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다행히 수많은 주연급 배우들이 출연해 필모에 길이 남을 만한 열연을 펼쳤고, 스토리 못지 않게 연출과 연기가 중요한 '영화'로서 기대받고 박수받아 마땅하다. 영화 자체로 길이 남을 만한 힘은 없었지만, 애매모호한 아쉬움들을 들춰 보지 않게 하는 힘이 있었다. 대신, 출연 배우들에겐 뜻 깊게 남을 만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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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틀로 '비이상적'이었던 1940년대 할리우드를 그리다 <오, 할리우드>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5. 2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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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오, 할리우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 할리우드> 포스터. ⓒ넷플릭스



인간은 때때로 자성, 즉 자아성찰의 기간이 필요하다. 오직 앞만 보고 달리다가 문뜩 떠올리는 것이다. 사방을 둘러볼 필요가 있겠다고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더 이상 뭘 할 수 없겠다는 깨달음이 작용한 것이리라. 그럴 땐 주로 과거로 돌아간다. 물론, 상상력을 발휘해 미래로 가거나 현재를 다시 그려볼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로도 이어지고 현재와도 맞닿아 있는 과거로 돌아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싶다. 


미드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글리>,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넷플릭스 <더 폴리티션> 등을 제작하고 연출하며 할리우드 최고의 프로듀서로 손꼽히는 라이언 머피가, '할리우드'라는 오래되고 깊고 넓은 숲을 조망하며 자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넷플릭스와 손잡고 6편 짜리 드라마로 손보였다. <오, 할리우드>라는 제목으로, 할리우드 최고의 황금기라 할 만한 1940년대 후반기를 다루었다.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제작사, 프로듀서, 감독, 작가, 배우들의 열정과 투쟁이 살아숨쉰다. 성정체성, 인종, 성별 등 지금까지도 주요 이슈화되어 익숙하게 느끼는 소재와 주제들이 근간을 이룬다. 록 허드슨, 해티 맥디니얼, 안나 메이 웡 등의 실존인물과 다양한 부류의 가상인물들의 따로 또 같이 극을 이끈다. 주요 등장인물을 연기한 배우들 역시, 촉망받는 신예급과 전설이 되어가는 명배우들이 따로 또 같이 호흡을 맞췄다. 굉장히 이상적인 틀로 굉장히 비이상적이었던 당대 할리우드를 그렸다.


1940년대 후반 할리우드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할리우드 에이스 스튜디오, 수많은 엑스트라 지원자 중 잭이 있다. 그는 영화배우가 되어 성공해서 가족을 부양하고자 하지만, 잘생긴 외모 하나로는 성공가도를 달리기에 역부족이다. 우연한 기회에 주유소에서 일하게 된 잭, 돈을 벌고자 시작한 일이지만 알고 보니 그곳은 몸을 파는 곳이었다. 그는 주요 고객 중 한 명이 에이스 스튜디오 회장 사모님이라는 걸 이용해 영화 <펙> 주연 스크린 테스트를 보게 되고 열심히 연습하여 배역을 따낸다. 하지만 아내와는 멀어지고 만다. 


한편, 영화 <펙>은 필리핀계의 촉망받는 감독 레이먼드가 맡았는데 우여곡절 끝에 그의 여자친구이자 흑인 여배우 카밀이 주연을 맡는다. 그것도 모자라, 잭과 함께 주유소에서 일했던 아치가 흑인임에도 작가 타이틀을 따냈다. '자유와 평등과 진보'를 내걸고 회사의 사활을 담보로 <펙>을 <멕>으로 바꿔 제작을 강행한 에이스 스튜디오의 결정이었다. 맹렬 인종차별주의자 '에이스' 회장이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난 후, 회사의 중추 고위급들의 각성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할리우드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에이전트 헨리 윌슨은 온갖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며 본인 소속 배우들을 챙기고 또 본인은 <멕>의 책임 프로듀서 자리를 노린다. 한때 영화배우를 꿈꿨던 주유소 사장 어니는, 비록 몸을 파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지만 '꿈'을 위해 <멕> 제작진을 물심양면 지원한다. 


영화를 향해 예상되는 대응과 그에 따른 타격 때문에 터무니 없는 예산이 책정된 영화 <펙>, 비록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영화로 남을 게 분명하지만 프로듀서, 감독, 작가, 주연배우할 것 없이 신인급으로 꾸려진 이 영화의 앞날이 걱정된다. 과연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을까? 영화 밖의 좋은 의미로만 그치지 않고, 영화 안의 흥행과 비평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할까?


자유와 평등과 진보의 '올바른' 메시지


<오, 할리우드>는 세련되게 1940년대 후반 할리우드를 그린다. 주로 대사와 행동으로 확고부동한 '자유와 평등과 진보'의 메시지를 전한다. 대화하고 토론하고 선언한다. 메시지가 너무 직설적이고 과할 때가 있는데, 못지 않은 파격적인 행동이 수반되기에 그러한 것일 테다. 하여, 용인된다. 그리고 행동으로서 영화 <멕> 제작 과정을 그려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몸소 혼혈 감독과 흑인 작가을 앉히고 제목과 내용과 메시지를 바꾸면서까지 흑인 여배우를 주연으로 발탁하는 것이다. 굉장히 전위적인 방식의 표현법이다.  


백조가 물 밖에선 우아하게 떠다니지만 물 아래에선 쉼없이 발을 저으는 것처럼, '올바른' 메시지를 전하고자 '무슨' 짓이든 하는 모습이 흥미롭게 파격적으로 다가오면서도 '인간 세상이 다 그렇지' 하는 깨달음까지 동반하게 한다.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시선에서 보면, 그 누구 하나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 없고 그 누구 하나 '착한 놈'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없다. 모두 '때'가 묻어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모두 하는 선택이었다는 식이다. '자유와 평등과 진보'의 메시지와 '성공'이라는 개념이 합쳐져 확고부동한 줄기를 형성한다. 


단연 눈에 띄는 건, 성별과 인종의 차별 위에 서 있는 성정체성 차별의 모습이다. 아무래도 남성이 주요 인물일 수밖에 없을 텐데, 최소한 절반 이상이 게이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평생 숨기며 살아야 하기에 드러내지 않으려야 드러내지 않기 힘든 성별과 인종에 비해 더욱더 힘든 삶을 살았다. 이 드라마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여, '1940년대 미국 할리우드'라는 지금 우리와는 하등 상관 없을 것 같은 이야기임에도 끌린다. 분노하고 응원하고, 치를 떨기도 하며 열광하기도 한다. 


시공간을 초월해 공명하는, 영리한 이야기


작품은 아련하다. 할리우드 최고의 성공가도를 완성하는 이들의 이야기임에도, 그 과정의 온갖 더러운 꾸정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련한 공감이 물밀듯 밀려들어온다. 꼭 저렇게 살아야 할까 싶기도 하면서도, 성공만이 아닌 투쟁으로서의 삶의 숭고함이 불쑥 고개를 들기도 한다. 직접적인 공감은 힘들지언정, 마치 같은 공간에서 숨쉬고 생각하고 말하며 '공명'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아련한 여운을 남기기에 이른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영리하다. 삶과 세상을 규정하는 한 가지 또는 몇 가지의 개념과 사상이 아닌, 수많은 인물들의 집합체로서의 아슬아슬한 생각과 행동과 변수들까지 총집합시켜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버렸다. 하여, 어느 누가 보든 전부 받아들여 버리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나아가, 그런 곳이 할리우드이고 그런 나라가 미국이라는 보다 거대하고 근원적인 의도도 엿보인다. 모든 것이 수용 가능한 곳. 


마지막으로 <오, 할리우드>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재미와 감동은 물론, 사고방식과 사상의 틀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준다. 획기적인 전환을 전하는 게 아닌 논란의 '올바른 쪽'을 대놓고 지지하면서, 지금쯤이면 짚고 넘어갈 수 있다고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한없이 창대하고 행복하다는 전제 아래, 시즌 2는 언제 어떤 형태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가지고 찾아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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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향의 완벽한 비쥬얼도 상쇄하지 못할, 스토리와 캐릭터의 아쉬움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4.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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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사냥의 시간> 포스터. ⓒ넷플릭스



2011년 단 한 편의 영화 <파수꾼>으로 한국 독립영화의 중추이자 한국영화 최대 기대주로 떠오른 윤성현 감독, 10대들의 예민한 감수성을 섬세하게 표현해 찬사를 받았다. 꾸준히 한국 독립영화를 봐온 필자에게도, 이 영화는 <용서받지 못한 자> <똥파리> <한공주> <벌새>와 함께 '위대한' 한국 독립영화 중 하나로 기억된다. 윤성현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차기작을 내놓지 않았다. 


그 사이 <파수꾼>의 주연들 이제훈과 박정민은 충무로 유망주의 자리를 넘어 연기력과 흥행력을 두루 갖춘 충무로 스타가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윤성현 감독의 차기작 소문이 들렸다. 이제훈과 박정민이 중추적 역할을 맡을 거라고도 했다. 소문만 무성하던 끝에 2020년 2월 개봉이 확정되었고, 곧 2020년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우뚝 섰다. 최우식, 안재홍, 박해수도 함께하니 만큼 기대가 치솟았다. 베를린 영화제에도 초청되었다니,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코로나 이슈와 넷플릭스 해외 판권 이슈의 악재를 지나 결국, <사냥의 시간>은 2020년 4월에 넷플릭스로 공개되었다. 영화 외적 잡음을 압도적으로 잠재울 압도적이고도 파괴적인 영화를 목도할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곧바로 관객들의 융단폭격이 시작되었다. 대체로, 압도적인 비쥬얼과 처참한 스토리을 말하며 처참한 스토리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스토리로 찬사를 받은 윤성현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인데,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다. 방구석의 작은 스크린이 아닌 영화관의 큰 스크린으로 보았으면 달랐을까 하는 의구심도 풀어보려 한다. 


'헬조선 탈출기'에서 '사냥의 시간'으로


망해 가는 한국, 청년 장호와 기훈은 3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출소하는 준석을 마중한다. 들어 보니, 3년 전 그들은 함께 작당모의하여 거사를 치르다가 준석만 잡혀 들어갔던 것이다. 물론 준석이 주도자였다. 그런데, 준석은 출소하자마자 보다 거대한 일을 벌이려 한다. 동네 불법 도박장 금고를 털자고 장호와 기훈을 끌어들인다. 그곳은 당연히 조폭들이 관리하는 곳, 잘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기에 장호와 기훈은 꺼려 하지만, 도박장에서 일하는 친구 상수를 끌어들여 작전을 계획하고 개시한다. 


친한 총포상 형 봉식한테 총들을 얻어 도박장 금고를 털어서는, 역시 친한 형님 빈대한테 대만의 섬 컨딩으로 밀항을 해서, 꿈에나 그리던 에메랄드 빛 바다와 푸른 하늘을 보며 편안하게 살아가자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나름 철저한 리허설로 도박장 털기 작전은 훌륭하게 성공한다. 상수는 조금 더 다니다가 그만두기로 하고, 셋은 출발하기 전에 기훈의 부모님 댁으로 향한다. 계획 성공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한'이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추격자가 엄청난 잠행술과 추격술과 사격술로 그들을 쫓기 시작한다. 상수를 처치하고 손쉽게 셋의 뒤를 쫓아 맞딱뜨린 한, 보다 재밌는 '사냥의 시간'을 즐기고자 한 번 놔 준다. 도시를 넘어와 도망친 세 친구, 빈대가 소개해 준 아무도 모르는 건물에 잠행하며 밀항을 준비하고 기훈은 부모님이 걱정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이곳은 찾아오지 못할 거라 믿고는 쉬고 있던 둘에게 여지없이 한이 다다르는데... 과연 한의 추격 사냥을 뿌리치고 무사히 밀항할 수 있을까?


디스토피아 범죄 스릴러의 걸맞는 비쥬얼


영화 <사냥의 시간>은 디스토피아 범죄 스릴러를 표방한다. 모든 게 무너지다시피 하여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 청년들이 크게 한탕해 희망이 살아숨쉬는 곳으로 탈출해서는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게 전체적 맥락이다. 청춘들이 흔히 꿈꿀 만한 헬조선 탈출기에서 시작한 영화는, 제목 그대로 정체불명의 추격자 한이 펼치는 사냥의 시간으로 돌변한다. 훔친 돈을 전부 돌려 준다는 데도 오직 한 번 찍은 놈은 끝까지 추격해 죽이고 만다는 사냥을 목적으로 한 '한'의 알 수 없는 집념으로 영화가 흘러간다. 


영화의 외향은 디스토피아 범죄 스릴러 장르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빛을 찾아볼 수 없는 와중에 컴컴하면서 붉디 붉은 도시, 그곳에서 사람이 살 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일단 분위기 조성은 OK. 한의 과정을 생략한 잠행술은 서늘함 그 자체이고, 뛰어다니지 않고 조용히 총을 그것도 정확하게 겨누고 있는 총격술은 예술 그 자체이다. 여기에 참을 수 없는 긴장감을 유발하는 배경음악이 한몫해, 스릴러로서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극단을 만들어냈다. 


외향적 비쥬얼뿐만 아니라 영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내향적 비쥬얼까지 완벽히 조성해 낸 것이다. 방구석 스크린으로 보았는데도 이 정도라면, 영화관 스크린으로 감상했으면 소위 '난리'날 뻔했다. 심장 밖으로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느낌이 아닌, 심장 안으로 근육이 조여오는 느낌을 직접적으로 받을 게 분명하다. 이 영화에서 이 점들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윤성현 감독은 <파수꾼>에서 보여 준 섬세함을 보다 확장시켜 보여 주는 데 성공했다. <사냥의 시간>에서는 그것만 보여 주었고 그것을 통해 핵심을 보여 주지 못한 게 문제이지만.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소홀히 대한 '캐릭터'의 아쉬움


<사냥의 시간>은 '사냥의 시간'을 보여 주는 데 전심전력을 쏟았다. 그 시간의 기가 막힌 외향 및 내향 비쥬얼을 통해 현재 우리 청년들이 당면한 상황 또는 사회의 단면이나 현상을 비유/은유적으로 풀어내길 바랐는데, 전혀 그러지 못한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에 있지 않나 싶다. 네 청년 친구와 '한'이라는 추격자까지 그 누구에게도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다는 건 둘째치고, 영화 전체에서 '캐릭터'라는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데 가장 소홀히 대하는 게 '캐릭터'들이다. 


단순히 개개인의 사연이 없다는 수준이 아니라 앞뒤 없이 본체만 덩그러니 던져진 것 같고, 캐릭터를 소모시킬 때 성의가 없다는 느낌이 들면서 스토리의 맥락도 함께 들춰내 버리게 된 것이다. 즉, 훌륭한 배우들이 분한 캐릭터들을 잘 살렸으면 스토리도 함께 자연스럽게 살았을 텐데 그러지 못하니 처참한 스토리가 도드라져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는 스토리가 처참한 것보다 캐릭터가 처참했다. 


최근 비쥬얼텔러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2017년 <악녀>, 2018년 <마녀> <PMC: 더 벙커> 등이 독특한 액션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바 있다. <사냥의 시간>도 비쥬얼텔러의 약진으로 소개될 만하다. 물론, 액션이라기보다 분위기 조성 면에서 말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건 액션과의 동질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들 영화는 공통적으로 스토리 또는 캐릭터에 지극한 약점을 노출했다. 이들 영화에서 완벽을 기대할 순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되겠지만, 한 면의 신선함 내지 대단함이 한 면의 아쉬움을 상쇄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사냥의 시간>이 과연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는 값진 타이틀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비쥬얼적 성공조차 영화관 스크린으로 보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상당 부분 빛을 발할 테니 말이다. 여타 '큰 영화'들처럼 좀 더 기다렸다가 넷플릭스 아닌 극장 개봉을 택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크게 달라질 건 없을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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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디스토피아 범죄 스릴러, 비쥬얼, 사냥의 시간, 스토리, 실패, 윤성현 감독, 추격, 캐릭터, 헬조선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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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향한 관심, 제도 개선과 인식 개선이 필요한 이유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4.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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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 포스터. ⓒ넷플릭스



지난 2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승자는 단연 <기생충>의 봉준호였다. 한국영화를 넘어 아시아영화 역사상 유례없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4관왕을 기록했던 것이다. 와중에 또 다른 승자로 거론되는 이가 있었으니,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부부이다. 퇴임 후 미디어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들은 2018년 '하이어 그라운드 프로덕션'이라는 콘텐츠 회사를 차렸다. 투쟁하며 승리하는 인간 정신의 주요 가치를 보여 주는 콘텐츠를 제작하겠다고 공언했다. 


같은 해 5월 넷플릭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이듬해 2019년 8월 넷플릭스로 공개된 <아메리칸 팩토리>가 첫 번째 작품이었다. 35회 선댄스 영화제 감독상을 비롯 미국 감독 조합상과 LA 비평가 협회상에서 수상하고, 대망의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다큐멘터리상을 거머쥔 것이다. 다양한 목소리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하이어 그라운드 프로덕션과 버락 오바마 부부의 콘텐츠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쾌거였다. 


향후 몇 년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 예정인 하이어 그라운드 프로덕션 드라마, 리얼리티, 다큐멘터리 시리즈,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등이 개발 중에 있다고 했는데,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이하, '크립 캠프')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공개되었다. 36회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작품은 미국 장애인 인권 운동의 시초가 1971년 캠프 레네드(이하, '레네드')라는 작고 초라한 여름 캠프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십 대 장애인들의 유토피아, 캠프 제네드


<크립 캠프>는 캠프 레네드에 참가했던 지미 러브렉트의 회고로 시작된다. 그는 역시 레네드에 참가했던 니콜 뉴넘과 함께 이 작품의 공동 연출가이기도 한데, 1955년부터 시작되었던 레네드의 역사에서 그들은 1971년 여름을 장식했다. 캠프는 뉴욕주 남동부 캐츠킬산맥에 위치해 있었다. 십 대 장애인들이 그곳을 향했는데, '바깥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그들만의 유토피아였다고 한다. 


제네드는 1950년대에는 전통적인 캠프 프로그램이었지만 1960~70년대 발전하여 십 대들이 편견과 꼬리표 없이 십 대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자 했다. 캠프를 운영하는 스태프와 지도 교사들은 비장애인들과 장애인들이었는데, 참가자들을 스스럼 없이 대함으로써 장애인 참가자들로 하여금 제네드가 의미 있다고 느끼게 하였다. 


바깥세상에선 여러 압박감들이 그들을 짓눌렀지만 캠프에선 어떠한 압박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 다 똑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느끼는 생각과 태도가 자연스럽게 공유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평소에 가지고 있었으나 나누지 못한 목소리를 낸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과잉보호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사생활의 권리를 보장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레네드가 끝나고 바깥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면 허무함과 함께 바뀌지 않은 생활을 영위할 것이었다. 


캠프 제네드에 참가했던 이들의 인식 변화와 행동


제네드에 참가했던 십 대 장애인들에게 세상을 향한 뚜렷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전까지는 크게 느끼지 못한, 애써 억누른, 느꼈어도 못 느낀 척했던 당연한 차별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니, 감내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 시작은 제네드 지도 교사로 활동했던 주디 휴만이다. 그녀는 장애인 정치 단체 '디스에이블드 인 액션' 대표로 활동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제네드에서의 경험, 즉 장애인들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이 서로가 힘을 갖도록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언론 활동을 하며 다양한 위원회를 꾸려 나가기 시작한다. 파장이 크게 일었던 건, 뉴욕에 있는 윌로브룩 주립 병원 폭로 프로그램이었다. 50명의 장애인들을 단 한 명의 간병인이 담당하고 있으니, 정녕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나라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 말이다. 


주디 휴만은 이 기회를 빌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그 수단으로 1972년 재활법 중 섹션 504를 눈여겨 보았다. 차별 금지 조항이었는데, 닉슨 대통령이 발안을 거절했고 뉴욕 시에서 교통 마비에 준하는 시위를 열었다. 1973년에는 워싱턴 DC에서도 시위를 벌였다. 결국 닉슨은 서명을 하였고 섹션 504는 통과되었다. 이후 장애인의, 장애인에 의한, 장애인을 위한 운동이 시작되어 '독립생활센터'가 생기고 주디 휴만이 합류한다. 시간이 지나 1977년, 주디 휴만은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법안은 통과되었지만 지난 4년 동안 집행이 이루어진 게 없다시피 했다는 이면이 존재했다. 카터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법안을 시행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조지프 칼리파노 보좌관이 보건교육복지부 장관이 되면서 재검토에 들어갔다. 사실상 무효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주디 휴만 등은 시위로 칼리파노를 압박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보건교육복지부 샌프란시스코 지사 건물을 점거 농성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섹션 504 쟁취를 위한 점거 운동'의 시작이다. 


법안 제정과 실행, 그리고 인식과 관습과 태도 정립


1971년 캠프 제네드가 없었다면 1977년 섹션 504 쟁취를 위한 점거 운동도 없었을 테고 나아가 미국 장애인 인권 운동과 미국 장애법도 없었을 거라고, <크립 캠프>는 말한다. 섹션 504 쟁취를 위한 점거 운동은, 비장애인 공동체들의 활발한 도움과 장애인 공동체들의 헌신에 힘 입어 한 달여의 점거 농성 끝에 법안 실행 통과의 결과를 도출시켰다. 리더들이 워싱턴 DC로 가 칼리파노와 카터를 압박하고 언론을 이용해 미국 전역에 소식을 알린 활동이 주요하였다. 


그들은 말한다. 법안이 통과되고 실행되어 실질적으로 장애인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으로 진보 발전해 나가도 사람들의 기본 '인식' '관습'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비록 수십 년간 투쟁해 쟁취했지만, 그래서 더 나은 세상이 된 건 명약관화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투쟁의 역사를 뒤돌아 보고 그 뿌리와 과정을 아는 건 중요한 일인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다. 이 작품의 존재 자체가 빛이 나는 건 당연하다, 당연해야 한다. 


12월 3일은 UN이 지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의 재활과 복지 상태를 점검하고 장애인 문제에 대한 이해 촉진 및 장애인이 보다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와 보조 수단 확보를 목적으로 한다. 한편, 우리나라는 기존의 '재활의 날'을 이어받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별도 재정해 기념하고 있다. 기념일을 제정해 환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크립 캠프>를 통해 보았듯 합리적인 법안 통과와 실행 그리고 기본 인식과 관습과 태도 정립에 있다. 


당연히 어렵고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관심을 기울이고 교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인식' 개선이 어려운 게 사실인 것이다. 여전히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와 장애인 수용시설 등의 '잘못된' 제도들이 만연해 있기도 하다. 제도 개선이 먼저인지 인식 개선이 먼저인지 따질 때는 아니라고 본다. 사실, '관심'부터 기울이는 게 먼저라고 본다. 관심조차 없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관심을 가진 후, 제도 개선과 인식 개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두가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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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으로 들여다보는 피겨 스케이팅의 치열하고 치졸한 이면 <스핀 아웃>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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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스핀 아웃>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핀 아웃> 포스터. ⓒ넷플릭스



출중한 재능으로 출중한 성장가도 안에서 출중한 성적을 기록해온 피겨스케이팅계 엘리트 캣 베이커, 하지만 그녀는 처참한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 경쟁에서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한다. 시간은 흘러 더 이상 밀려나면 가망이 없는 나이가 되었고, 그럼에도 이기지 못해 포기하고 만다. 그때 코치 다샤는 그녀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저스틴과 페어 피겨스케이팅을 제안한다. 캣은 저스틴을 싫어했는데, 그는 잘생기고 부유하고 인기 많고 실력 출중한 안하무인 나쁜 남자였다. 


우여곡절 끝에 저스틴과 페어를 하게 된 캣, 피겨스케이팅 인생 제2막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 앞을 막는 수많은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이가 좋은 듯 나쁜 듯 종잡을 수 없는 배 다른 여동생 세리나, 어릴 때부터 가장 친했지만 더 높은 순위는 언제나 캣의 차지였기에 마음속 깊이 앙금이 있는 젠, 세리나의 담당 코치로 심상치 않게 의심이 가는 미치, 그리고 최악의 상대인 엄마 캐럴까지. 특히 캐럴은 한때 잘 나가는 피겨스케이터였는데 캣을 임신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심각한 조울증을 앓고 있어 많은 이들과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엄마와 동일한 증세를 갖고 있는 캣, 그녀는 심각한 트라우마로 고생하는 와중에 생전 처음으로 페어에 임하며 선수 경력에 어려움을 겪는 한편 약 없이는 몸과 마음을 제어할 수 없는 조울증으로 엄마처럼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과연 그녀는 페어 스케이팅으로 화려했던 선수 경력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모두를 떠나가게 만드는 조울증을 잘 관리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피겨 스케이팅, 관계, 막장


2020년 새해 벽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핀 아웃>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의 파란만장 선수 생활과 우여곡절 관계 형성과 지리멸렬 거듭되는 막장으로 점철된 작품이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캣 베이커 역에 카야 스코델라리오가 열연했다. 드라마 <스킨스>로 이름을 알리고 영화로 <메이즈 러너> 시리즈로 명성을 떨친 그녀가 원톱 주연 영화 <크롤>로 크게 오른 뒤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것이다. 


작품은 겉으론 화려하기 그지 없고 한없이 아름다울 것만 같은 피겨 스케이팅의 피가 나고 알이 배기고 이가 갈리는 이면을 들여다보려 했다. 넘어져 다치기 다반사인 건 물론 발톱이 빠지는 건 당연지사다. 매일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훈련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렇게 영겁이라고 느끼는 시간 동안 쌓아올린 훈련 결과가 단 몇 분만에 결정된다. 절대적인 건 없다, 무조건 상대평가이기에, 무조건 남을 이겨야 한다. 


하지만, 남을 이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게 함정이다. 나를 이기는 게 훨씬 어렵다. 경기 안팎의 무지막지한 압박들 속에서, 오로지 나(또는 파트너와 함께) 혼자만 있는 빙상장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쳐야 하니까 말이다. 작품은 아름답고 황홀하기만 한 빙상 연기를 펼쳐 보인다. 사실, 그 모습들만 보아도 이 작품의 이유로 충분하다 하겠다. 물 위에서 평온한 오리가 물 속에서 얼마나 열심히 치열하게 오리발을 놀려야 하는지 알면 알수록, 평온함을 한없이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지 아니한가. 


조울증이 주는 관계의 어려움


<스핀 아웃>이 말하고자 하는 건, 피겨 스케이팅의 면면이 아닐 수 있다. 피겨는 수단일 뿐, 작품은 조울증이라고 하는 질환의 어려운 관계에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주인공 캣 베이커와 엄마 캐럴 베이커 모두 제어는커녕 통제 불가능한 조울증으로 본인은 물론 주위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작품은 피겨의 안팎 못지 않게 조울증의 안팎을 내밀하게 다룬다. 


조울증에 대해 잘 모르는 게 있다면, 우울증에 더해 조증이 더해졌을 뿐이라는 잘못된 상식에 있다 하겠다. 작품은 조울증에서 우울증보다 조증이 훨씬 더 심각하고, 조증이야말로 조울증 심각성의 주체라고 말한다. 캣과 캐럴은 조증을 막기 위해 리튬을 먹는데, 부작용으로 시무룩해지고 힘이 빠지는 증세를 보인다. 운동선수로서 치명적이기에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캣으로 분한 카야 스코델라리오는 그 미세하면서도 극단적인 변화를 잘 연기해내어 보는 이로 하여금 캐릭터에 알게 모르게 빠져들게 한다. 어떤 콘텐츠에서든 해본 적 없을 피겨 연기와 더불어 조울증 감정 연기 또한 굉장히 어려웠을 텐데 말이다. 예부터 질환 연기는 고수들만 할 수 있는 법, 아역부터 연기를 시작해 많지 않은 나이에 많은 경력을 쌓은 그녀도 이 작품으로 비로소 연기 고수가 되는 것일까.


재미 요소로 작용하지 않은 막장


이 작품이 '막장'이라는 타이틀을 멀리하는 건 아무래도 힘들어 보인다. 피겨 스케이팅과 조울증이라는 소재로 부당 50여 분의 10부작이나 되는 짧지 않은 시간을 커버하는 게 쉽진 않았을 테다. 물론, 두 주요 소재에 보다 천착해 내밀하고 진득한 이야기를 끌어냈으면 좋았겠지만 이 작품은 그러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다. 두 소재 사이의 관계에 막장 요소를 잘게 부숴 넣은 것이다. 


주연급에 해당하는 주요인물들 사이의 막장은 그래도 용인해줄 만할 것이다. 관계의 지난함을 설명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뒤로 갈수록 주요하지 않은 인물들의 불필요한 막장 관계를 선보인다. 그러곤 빠르게 나름의 해결책을 선보이는 걸로 보아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 때우기로 볼 여지가 많다고 하겠다. 


아쉽게도 이 작품에서 막장이 재미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많은 막장 드라마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재미로만 본다면 탁월한 것과는 다른 결이다. 하여, 전체적으로 길이를 압축하고 감정은 풍부하게 가져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따른다. 시즌 2의 여지를 남겨둔 결말로 보이는데, 결정되어 진행된다면 시즌 1의 아쉬운 막장을 겉어내고 혹은 재미 있는 막장으로 탈바꿈하면 좋을 듯싶다. 기대 아닌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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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서 이혼으로 가는 선상의 순간들 <결혼 이야기>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12. 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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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결혼 이야기>


영화 <결혼 이야기> 포스터. ⓒ넷플릭스



10년, LA에서 잘 나가던 배우 니콜(스칼렛 요한슨 분)이 연극 연출가 찰리(아담 드라이버 분)와 결혼하면서 뉴욕으로 떠나 생활한 세월이다. 그 사이 그들은 아이도 낳고 찰리의 극단에서 연출가와 배우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니콜은 LA로 돌아가고 싶었고 찰리에게 제안했지만 뉴욕 브로드웨이에 입성하는 게 꿈인 찰리는 듣지 않았다.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관계. 


불에 기름 부은 격으로 니콜과의 잠자리를 뜸하게 하던 찰리가 극단 동료와 불륜을 저지른다. 물론 찰리는 원나잇이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때마침 니콜에게 드라마 배우 제안이 들어오고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그녀는 아이와 함께 LA로 향한다. 그들은 자연스레 별거 수순으로 들어가고 이혼 조정 과정에 들어간다. 처음엔 큰 생각하지 않은 듯, 둘 사이의 원만한 조정을 원했다. 


하지만 니콜이 드라마 제작 스텝이자 이혼 선배(?)의 조언을 얻어 실력 좋은 변호사 노라와 이혼 과정을 전담시키면서 국면은 전환된다. 찰리도 어쩔 수 없이 변호사를 구해야 하는 상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뉴욕 아닌 LA에서 변호사를 구해 조정 과정을 진행해야 했다. 곧, 치열하고 치졸하고 치욕스러운 이혼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혼하기 전까진 결혼 생활이 이어지는 만큼 결혼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국 이야기 전문가 노아 바움백의 최고작


영화 <결혼 이야기>는 뉴욕 출신의 미국 이야기 전문가 노아 바움백 감독의 최신작이자 최고작이다. 그는 데뷔 이후 줄곧 블랙 코미디 계열의 드라마를 선보였는데, 한결 같이 청춘과 가족 이야기에 천착했다. 결혼과 이혼 이야기를 전하는 이번 작품은, 그동안의 노아 바움백 작품들을 집대성했거니와 그의 필모상 다음 챕터로 가는 중요 길목으로 비춰진다. 


뉴욕 출신의 블랙 코미디 드라마 전문 감독이 한 명 떠오른다. '우디 앨런', 2000년대 들어 전 세계 대도시를 한 바퀴 돌면서도 끊임없이 뉴욕 이야기를 변주해오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는 위태위태해진 그의 자리를 노아 바움백이 이어받을 모양새이다. '특별한 도시 뉴욕, 보통 사람의 이야기'라는 모토로 <프란시스 하> <위아 영>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그리고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까지 연달아 내놓았다. 


연출 데뷔를 앞뒤로 그는 절친 웨스 앤더슨 감독과 각본으로 비즈니스 연을 맺었는데,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과 <판타스틱 Mr. 폭스>가 그 작품들이다. 노아 바움백 작품의 미장센에서 웨스 앤더슨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런 한편, 노아 바움백이 영향을 준 이도 있는데 그레타 거윅이다. 그들은 <프란시스 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를 함께 했다. 그레타 거윅의 차기작 <바비>를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백 공동 각본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그레타 거윅은 우디 앨런과도, 웨스 앤더슨과도 한 작품씩 한 이력이 있는 만큼 영향을 주고 받는 그들이다. 


이혼 이야기이자 결혼 이야기


영화는 두 갈래 스토리로 이어진다. 이혼이라는 목적에의 과정과 그 자체로 목적이자 과정인 결혼. 니콜과 찰리는 사랑의 결과물로 결혼을 택해 아이를 낳아 과정을 영위했지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인간 대 인간의 어긋남을 이혼으로 결론 맺는다. 하지만 이 사실은 알아야 할 것, 법적으로 이혼이 결정될 때까지 그들은 결혼한 사이이기에 둘이 함께 해야만 하는 일이 많다. 그것도 아주 사소한 일들. 


이혼에의 과정은 점점 과열되어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힐 때까지 계속되지만, 과정으로서의 결혼 생활은 그럴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들에겐 아이가 있지 않은가. 그들 간의 결혼과 이혼에 아무런 원인 제공을 하지 않은 죄 없는 아이 말이다. 아이를 위해 그들의 결혼 생활은 끝까지 이어져야 하고, 끝나고 나서도 결코 완전히 매듭지어질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하여, 이 영화를 보는 중엔 '이혼 이야기'가 제목에 보다 어울리지 않나 생각하다가 영화를 보고 나면 이래서 '결혼 이야기'이구나 하고 생각을 바꾸거나 혹은 원래대로 돌리게 되는 경험을 할 것이다. 물론, 이는 미국에서도 뉴욕이라는 곳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결혼 이야기>라는 영화의 기법에 기댄 측면이 크다. 영화는 특정된 공간이 아닌 평범하고 한정된 공간에서 현실톤과 연극톤을 오가는 배우들의 연기에 큰 방점을 찍는다. 


결혼에서 이혼으로 가는 선상의 순간포착 모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영화를 통해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는 자탕공인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물론 그들은 일찍이 좋은 연기를 선보였으니, 스칼렛 요한슨은 어벤저스 일원으로 활약하기 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매치 포인트> 등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아담 드라이버는 스타워즈 일원으로 활약하기 전후로 <헝그리 하트> <패터슨> <블랙클랜스맨>을 포함 수많은 '아트 영화'에서 발군의 실력을 선보였다. 한편, 아담 드라이버는 노아 바움백과 <결혼 이야기>로 세 번째 함께 했다. 


그들의 연기로 발현되는 결혼 이야기 속 이혼의 이유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니콜의 말에 따르면 찰리가 니콜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실상 서로가 서로를 가장 좋아했던 최초의 행동이 종국엔 가장 꼴보기 싫은 모습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필연의 양상 때문인 것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 부분이 서로를 가장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을 말하는 걸로 대칭을 이루는 게 백미인데, 결혼에서 이혼으로 가는 선상을 더할 나위 없이 표현했다. 


영화는 기막힌 순간포착의 모음 같이 느껴진다. 누구나 순간포착은 가능하고 순간의 기억과 여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강렬함이 끝없이 이어지면 기가 질릴 만하다. <결혼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는 강렬한 순간포착을 완급조절로 완화시킬 수 있는 노아 바움백 감독의 능력과 원숙미가 함께 걸린 작품이다. 평범한 와중 순간의 극단을 보여줌에 있어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건, 비어 보이지 않는 여백의 미를 깨닫고 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결혼 이야기>는 걸작이고, 이 작품을 비로소 노아 바움백 감독은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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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 넷플릭스, 노아 바움백, 뉴욕, 모모 큐레이터, 미국, 순간, 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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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할리우드의 위대한 다섯 감독 <다섯이 돌아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9.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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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다섯이 돌아왔다: 할리우드와 2차대전 이야기>(FIVE CAME BACK)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다섯이 돌아왔다> 포스터. ⓒ넷플릭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하여 2019년 올해는 2차대전 발발 80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2차대전 관련 콘텐츠를 접했을 테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전쟁 당시 미국 할리우드 최고의 감독 5명이 참전해 전쟁터와 본토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었다는 사실 또한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다섯이 돌아왔다: 할리우드와 2차대전 이야기>(이상 '다섯이 돌아왔다')가 전현직 최고 감독들의 목소리로 그 이야기를 전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기예르모 델 토로, 폴 그린그래스, 로렌스 캐스단이 그들이다. 그들은 각각 윌리엄 와일러, 존 휴스턴, 프랭크 캐프라, 존 포드, 조지 스티븐스의 팬을 자처하며 그들을 기억하고 회상하며 이야기한다. 한편 내레이션은 메릴 스트립이 맡았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에 참여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2018년과 2019년에 넷플릭스 작품은 아카데미 후보 자격이 없다며 캠페인까지 연 적이 있는데, <다섯이 돌아왔다>가 2017년이 선보였으니 그 사이에 어떤 심정의 변화가 있었을지 새삼 궁금해진다.)


앞의 다섯 명은 잘 알 테지만, 뒤의 다섯 명은 잘 모를 수도 있겠다. 하여, 대표작 한 편씩만 나열해본다.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 존 휴스턴의 <물랑루즈>, 프랭크 캐프라의 <잃어버린 지평선>, 존 포드의 <수색자>, 조지 스티븐스의 <젊은이의 양지>. 이들 다섯 명의 감독들이 할리우드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한다. 전 세계를 점령한 할리우드인 만큼 우리들에게도 절대적 영향을 끼쳤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위대한 다섯 감독


1941년 6월 나치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하면서 확전된다. 한 달 후 존 휴스턴이 작가진으로 참여한 <요크 상사>가 개봉해 크나큰 성공을 거둔다. 이어 나치 독일은 영국에 일본은 중국에 무차별 폭격을 시행한다. 윌리엄 와일러는 <미니버 부인>으로 영국 전쟁을 다룬다. 12월, 전쟁 발발 2년 만에 일본 제국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참전한다. 캐프라는 워싱턴으로 가 전시 최대 규모의 전쟁 영화 시리즈  '우리가 싸우는 이유'를 제작하며 독일과 일본의 침략 역사를 자세히 설명한다. 포드는 해군 총감독으로 미드웨이 섬으로 파견된다. 조지 스티븐스는 계약 때문에 뒤늦게 입대하지만 최전방인 아프리카로 간다. 존 휴스턴과 윌리엄 와일러도 최전방 유럽으로 떠난다. 


다섯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으로, 전쟁터와 본토에서 미국 참전의 이유와 과정과 결과를 거시적, 미시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선보인다. 전쟁 중, 미국이 참전하기 전인 1942년 제1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큐멘터리상 부문이 신설된다. 이듬해 15회에서 이 부분에 4개 작품이 수상했는데 포드의 <미드웨이 전투>와 캐프라의 <전쟁의 서막>도 속했다. 


이들의 전쟁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미국 참전의 정당성과 공정성을 설파하는 프로파간다로서의 콘텐츠가 아니라, 영화적 퀄리티도 높은 명명백백 잘 만든 영화였던 것이다. 더불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다큐멘터리상 부문이 시작된 것에 다섯 감독의 전쟁 선전 다큐멘터리들이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걸 부인할 수 없는 바, 이후로도 많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전쟁의 실제를 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다섯 감독의 다큐멘터리, 그리고 <다섯이 돌아왔다>


한편, 존 휴스턴, 윌리엄 와일러, 조지 스티븐스도 전쟁의 실제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주지한 <미드웨이 전투>와 <전쟁의 서막>을 비롯 모두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할 수 있는데, 각각 <산피에트로 전투> <멤피스 벨> <대학살 나치 강제수용소>는 80여 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하나 같이 기가 막힌 실제성과 현장성을 띈 걸작들이다. 이들 중 미국 국립 영화 보존국의 국립 영화 등재부에 선정된 작품들도 다수 있어, 그 가치와 영원성을 전한다. 


<다섯이 돌아왔다> 자체도 굉장히 특별한 다큐멘터리이다. 다섯 명의 도우미(?) 감독들이 나올 때와 중간중간 잠깐의 연도 알림과 내레이션을 통한 잠깐의 전쟁 당시의 판도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곤 100% 옛날 자료들이다. 그 자료라는 것도 주인공 다섯 감독의 인터뷰 영상과 육성을 비롯 그들 작품의 다양한 장면들과 그들과 관련되거나 관련되지 않은 전쟁 전후의 모습들까지 총망라된 것이다 보니, 정리하여 재배치하는 게 절대적 비중을 차지했을 테다. 즉,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을 거라는 말이다. 


하여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영원성을 담보한 역사적 자료를 친절하고 애정 어린 설명과 내레이션으로 정리하고 보여준 교육 자료라고 해도 무방하다. 단순히 다큐멘터리 감독과 제작자들이 어느 하나에 심취하여 현장 실감성을 전하고 문제의 심각성까지 담는 정도로 그치는 게 아니라, 가슴과 머리로 받아들이는 실감성을 전한 것이다. 


돌아온 다섯 감독


전쟁 전에 이미 할리우드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다섯 감독들, 거기에 참전 용사이기까지 하면 이후에 쉽게 인생이 폈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완전히 바뀐 전쟁 이후 그들의 삶을 담아 전한다. 단순히 들여다보아도, 존 포드는 부상을 당했고 윌리엄 와일러는 청력을 잃었고 전쟁 전 할리우드를 점령하기 직전이었던 캐프라는 전쟁 후 잊힌 존재가 되다시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 바뀐 점은 전쟁에서의 끔찍하고도 형용할 수 없는 고된 경험이 현실이었다는 것이다. 당시엔 그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그들 모두 어떤 식으로든 앓았던 거다. 충격적 경험은 재경험으로 이어져 계속 고통을 느끼고 거기에 에너지를 투입하다 보니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다섯 감독이 택한 해결 방법은 역시 '영화'였다. 전쟁 경험을 나름의 방식으로 녹여낸 그들 각각의 대표 작품들은 최소한 미국 영화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들임에 분명하다. 다섯 도우미 감독들은 프랭크 캐프라의 <멋진 인생>, 윌리엄 와일러의 <우리 생애 최고의 날>, 존 포드의 <수색자> 등을 최고로 뽑는다. 현대 블록버스터영화의 시초이자 거장 이전 현대 전쟁영화의 거장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말을 옮기면서 끝맺는다.


"전쟁의 끔찍한 진실들이 우리 문화에서 지워졌는데, 그건 미국인들에게 크게 심호흡할 기회를 주고 미래를 향한 기대감을 심어주려던 거죠. 하지만 저는 항상 미래로 나아가려면 완전하고 확실한 근거로 과거를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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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SD, 경험, 넷플릭스, 다섯이 돌아왔다, 선전 영화, 전쟁 다큐멘터리, 참전, 할리우드 감독, 할리우드와 2차대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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