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책하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액션'에 해당되는 글 15건

제목 날짜
  • 철학적 세계관과 영상 액션에의 혁명적 상상력의 산물 <매트릭스> 2019.10.16
  • 라이언 고슬링이 내보이는, 잔혹한 본능의 폭발과 액션 <드라이브> 2019.10.09
  • 복수를 생각하는 전신마비 환자에게 다가온 최첨단 기술의 유혹 <업그레이드> 2018.09.07
  • 날 것의 액션과 아름다운 무협의 마지막 절정 <서극의 칼> 2017.12.06
  • 괜찮은 영화, 이정도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베이비 드라이버> 2017.09.29
  • 대중을 향한, 대중에 의한, B급의 메이저화 <킬러의 보디가드> 2017.09.13
  • 더 이상의 전쟁영화는 NO! 하지만 <고지전>은 되새겨야 2017.02.15
  • 작금의 인간 세계에 주는 강력한 경고, 분노 바이러스 좀비 <28일 후> 2017.01.20
  • 얄팍하거나 진중하거나, 거대하거나 어이 없거나 <바스티유 데이> 2016.10.17
  • 진짜로 보여주려는 것은 슈퍼 히어로 개개인의 찌질한 이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2016.05.20

철학적 세계관과 영상 액션에의 혁명적 상상력의 산물 <매트릭스>

오래된 리뷰 2019. 10. 16. 08:00



[오래된 리뷰] <매트릭스>


영화 <매트릭스>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1999년, 20년 전 세기말의 기대와 불안에 직면한 우리들에게 당도한 역대급 영화들이 생각난다. 수많은 영화들이 자리하고 있겠지만, 단연 우리나라엔 <쉬리>가 할리우드엔 <매트릭스>가 있다 하겠다. <쉬리>는 흥행 신기록은 물론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신기원을 열어젖혔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이후 한국영화 20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해도 무방하다 하겠다. 


<매트릭스> 역시 20세기를 마무리 짓고 21세기를 화려하게 열여젖힐 SF 영화의 신기원으로 평가 받는 작품으로, 이후 20년 동안 영화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해도 무방하겠다. 20년 전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정교하고도 상상력 풍부한 SF적 영상을 선보이는데, 가히 '혁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뿐더러 이상하지 않다. 


<존 윅>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키아누 리브스의 대표작으로, 로렌스 피시번과 휴고 위빙 등이 눈에 띈다. 성전환 수술을 통해 남매가 되었다가 이젠 자매가 된 당시 워쇼스키 형제는, 이 영화로 당대 최고의 감독이 되었지만 이후 실패를 계속했다. 지난 8월 <매트릭스 4> 제작이 확정되며 워쇼스키 자매의 복귀가 잡혔는데, 위대한 트릴로지 <매트릭스> 시리즈를 어떤 식으로 이어갈지 기대 반 걱정 반인 상태이다. 한편, 지난 2016년 재개봉 이후 개봉 20주년을 맞이해 4DX로 재재개봉하기도 해 새삼 인기를 실감했다. 


인간과 AI, 그리고 매트릭스


1999년, 네오는 낮에는 평범한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해커로 활동 중이다. 그는 오랫동안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껴왔다. 어느 날 트리니티라는 여인이 접근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알린다. 얼마 후 모피어스라는 남자의 전화를 받고 알 수 없는 요원들의 접근에서 도망치려 하지만 포기한다. 요원들이 그를 잡아 자기들을 도와 모피어스를 위시한 테러리스트들을 잡자고 제안하지만 네오는 거절한다. 그러자 그들은 알 수 없는 벌레 기계를 네오 몸속에 넣는데, 네오가 잠에서 깨어난다. 


다시 한 번 모피어스에게서 전화를 받고는 트리니티 일행과 함께 만나러 간다. 와중에 진짜였던 벌레 기계를 몸속에서 빼낸다. 모피어스를 대면하게 되는 네오,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에 그가 건네는 파란 약 아닌 빨간 약을 먹는다. 곧 그의 크루들이 모인 방으로 가서는 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가 맞닥뜨린 진실은 1999년의 인간 세상이 아닌 AI가 인간을 지배하고 재배하는 2199년 세상이었다. 


모피어스는 그에게 진실을 알려준다. 21세기 초 인간에 의해 탄생한 AI, 인간은 언제인지 누가 먼저 시작한지 모를 전쟁에서 지고는 AI에게 지배된다. 곧 그들의 에너지원으로 재배되기 시작한다. 1999년 인간 세상, 즉 매트릭스는 AI가 만들어낸 꿈의 세계이자 가상현실인 것이다. 모피어스와 일행들은 능력자에게 풀려나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진실을 알게 되었고 인간의 구원과 자유를 위해 반란을 꿈꾼다. 그들은 예언된 능력자의 재림을 기대하며 오랜 세월 매트릭스에서 '그'를 찾았고, 네오가 그라고 판단한다. 그들은 네오를 훈련시키며 전쟁의 종식을 준비한다. 


진짜 보다 진짜 같은 가짜의 철학적 세계관


영화 <매트릭스>는 철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든 세계를 바탕으로 온갖 문화 요소들을 섞어 만든 SF 사이버펑크 비쥬얼 블록버스터이다. 한 마디로 축약하기가 매우 힘든 영화인데, 세계관과 영상 액션이 가장 눈에 띈다. 영화 속에서도 잠깐 등장하는 바,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 주장하는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세계관이다. 앤더슨은 당연히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였지만 사실 너무나도 정교한 가상현실이었고, 정작 네오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현실에 경악하는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사는 지금 이 순간의 세상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 속속들이 지배당하고 있다는 생각 또는 누군가의 꿈속의 한낮 등장인물에 불과하다는 생각 또는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생각 또는 다른 차원이나 장소에 또 다른 내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 <매트릭스>의 세계관은 이와 다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론 다르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진짜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이 가짜라면 일순간 모든 게 무너져내릴 수 있지 않겠는가. 


하여, 영화 속 모피어스 일행이 해왔고 하고 있고 하고자 하는 게 다분히 이해가 간다. 비록 진짜와 진배 없는 곳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생산적인 일을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알고 보니 AI의 숙주로 모든 걸 빼앗기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보면 말이다. 누군가는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이라면서 괴로워하겠지만, 나로선 '아는 게 힘이다'라는 생각을 우선시 하겠다. 자유를 갈망하고 되찾겠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자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현대사회의 병폐라고 할 수 있는 '가상'을 비판한다. 가상 자체가 비판받아야 마땅한 건 절대 아니겠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진짜와 가상을 구분 못하게 하고 나아가 진짜 보다 가상을 더 떠받들게 되는 상황에 직면한 지금엔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매트릭스> 속 진짜 같은 가상현실에서 살며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굳이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이 철학적 함의를 현실적 상상력 풍부한 세계관에 훌륭히 접목시켜 보여주었다. 


혁명적 영상 액션


<매트릭스>를 '혁명적'이라 말하는 건 비단 철학적으로 상상력 풍부한 세계관을 내보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가 하면, 모피어스 일행이 혁명을 수행하고자 하는 게 주요 내용의 골자인 이유 때문만도 아니다. 영상 액션의 혁명을 이룩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액션 자체로선 이 영화 말고도 신기원을 이룬 영화들이 많지만,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액션의 경지를 선보였다. 이 영화 이후 이 정도의 혁명적 액션을 보여준 건 <와호장룡>이나 <본> 시리즈, 그리고 최근의 <업그레이드> 같은 류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매트릭스> 정도의 파급력과 영향력을 가진 영화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영화에서 크게 4장면에 걸쳐 선보인 특수 시각효과 '타임 슬라이스 포토그래피'는 경이로운 비쥬얼을 선사하는 데 절대적으로 공언했다. 이 기법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스틸카메라에 의해 동시에 촬영된 이미지들을 연결해 카메라가 정지된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낸다. 도입부에서 트리니티가 경찰들을 상대해 공중으로 떠 발차기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공중으로 떠올라 발차기를 하기 직전 멈추고 카메라가 360도로 한 바퀴 도는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엔, 그동안 곳곳에서 너무나도 많이 봐온 장면이기에 생소하거나 충격적이지 않지만 당시로선 충격 그 자체였다. 


이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다 못해 머릿속에 박혀버린 장면이 있다. 중후반부, 잡혀간 모피어스를 구하기 위해 매트릭스에 잡입한 네오와 트리니티. 네오가 날아오는 총알들을 피하는 장면이다. 도입부 공중 발차기 장면처럼 카메라가 360도 도는 건 똑같지만, 네오는 90도 각도로 허리를 뒤로 젖히고 총알을 피하는 것이다. 어떻게 찍었을지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동시에,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는다. 120대의 스틸카메라가 동원되어 편집의 힘으로 나왔다는 이 장면, 지금 봐도 훗날 봐도 언제나 멋있는 장면일 테다. 


타임 슬라이스 포토그래피라는 시각효과 기법은 1980년대에 나와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다고 한다. 즉, 기술자라면 누구나 아주 잘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기술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비쥬얼 쇼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 또 다른 차원일 테다. 이 영화의 영상 액션 혁명은 상상력으로 이루어졌다. <매트릭스>는 상상력의 산물인 것이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SF, 가상현실, 매트릭스, 상상력, 액션, 진짜가짜, 철학, 혁명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라이언 고슬링이 내보이는, 잔혹한 본능의 폭발과 액션 <드라이브>

오래된 리뷰 2019. 10. 9. 08:00



[오래된 리뷰] <드라이브>


영화 <드라이브> 포스터. ⓒ판시네마



오프닝으로 반 이상 먹고 들어가는(?) 영화들이 있다. 생각나는 것만 나열해봐도 비교적 예전 것들엔 <007> 시리즈, <저수지의 개들>, <스크림>, <업> 등이 있고 비교적 최신 것들엔 <라라랜드>, <베이비 드라이버> 등이 있다. 모아 놓으니 하나같이 전체적 작품성도 빼어난 축에 속하는 작품들이라는 게 신기하다. 더불어 개성이 뚜렷해 꼿꼿한 듯하면서도 해당 장르를 선도하며 회자가 되는 작품들인 것도 눈에 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한 편 더 있으니, 덴마크 출신의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드라이브>이다. 라이언 고슬링이 분한 드라이버가 범죄자들의 도주를 도와주며 LA의 색채감 있는 한밤중을 강렬하고 한편으론 차갑게 질주하는 장장 12분간의 오프닝이 인상적이다 못해 환상적이다. 당장이라도 도시의 밤거리를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멋진 시퀀스이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20년도 더 된 데뷔작 <푸셔>를 통해서도 감각적인 오프닝을 선보였는데,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색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그 자체로 완성된 시퀀스가 인상적이다. 영화 세계에 전적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그만의 절대적 분위기와 색감 스타일은 최신작(2016년작) <네온 데몬>까지 이어진다. 2010년대 들어서 그의 영화들은 모두 칸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드라이브>로 감독상을 받았다. 명백히 할리우드 액션 영화임에도 칸 영화제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드라이버의 잔혹한 본능이 향하는 곳


미국 LA, 밤에는 범죄자들의 도주를 도와주며 낮에는 카센터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한편 스턴트맨으로도 활약하는 이름 없는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 분). 그에게 선과 악은 무의미하고 오직 차를 운전하는 '드라이버'로서의 삶만이 의미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우연히 눈에 띈 여인 아이린, 그녀에겐 아이도 있지만 드라이버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로 다가온다. 


아이린도 그에게 끌린 듯, 그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감옥에 가 있던 아이린의 남편 스탠다드가 돌아오자 행복한 시간은 끝나고 만다. 쉽게 아이린 곁을 떠나지 못하는 드라이버, 우연히 스탠다드의 일에 휘말린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의 악연으로 협박 받고 있었던 것, 그걸 해결하지 못하면 스탠다드뿐만 아니라 아이린과 아이한테도 가닿을 것이었다. 드라이버는 밤에 하던 일을 스탠다드와 함께 하기로 한다. 


별 것 아닐 줄 알았던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아 스탠다드가 죽고 만다. 드라이버는 위협을 받고 아이린과 아이도 위협을 받을 걸 깨닫자 잔혹한 본능을 폭발시킨다. 그 배후에 자신을 경주 드라이버로 만들어주겠다고 한 버니와 니노 일당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거기엔 드라이버의 실력을 알아준 카센터 주인 섀넌도 껴 있었으니 그도 위험할 것이었다. 버니와 니노 일당은 드라이버와 그 주위 사람들을 노리고, 드라이버의 잔혹한 본능은 그들로 향한다. 그 끝은 어떤 식으로든 무자비할 것이다. 


라이언 고슬링의 감정 한점 폭발과 충격 액션


<드라이브>는 할리우드 액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이다. 할리우드 자본으로 할리우드 스타들과 함께 한 명백한 할리우드 액션 영화이지만, 여타 동 장르의 영화들과 완연히 결을 달리한다. 기본적 스토리 뼈대는 별다를 게 없다. 폭력 범죄에 깊숙이 발을 담궜을 게 분명한 한 남자가 새로운 의미가 된 사랑하는 여자를 향해 앞뒤 볼 것 없이 직진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도 앞뒤가 없지만 그걸 표현하는 영화도 앞뒤가 없다. 범죄영화인 만큼 주를 이룰 수밖에 없을 액션은 실로 '쌈박하다'. 주인공이 이름도 없이 살아가며 오직 드라이브만 생각하다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여인만 생각하듯, 불필요하거나 거추장스러운 것 따윈 거들떠 보지도 않고 핵심만 노린다. 주인공-영화-액션이 한 몸으로 움직인다. 감정이 썩이지 않은 채 계속되는 투박한 타격감이 두렵게 다가온다. 그 감정 없는 폭력의 강도와 수위는 충분히 충격적일 만하다. 


'라이언 고슬링'이라는 복잡하면서도 다층적인 감정이 담긴 배우가 내보이는 '감정 없음'만이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의 액션일 테다. 그에겐 또래 할리우드 스타들에겐 없는 감정의 방이 있는 것 같다. 당연히 그가 맡은 배역은 그중 한 가지 내지 몇 가지를 내보인다. 하지만 <드라이버>의 드라이버는 그 어떤 감정도 내보이지 않기에 외려 그 안에 수많은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와중에 한 여인에게로 생긴 감정의 폭발이 본능의 폭발로 이어져 누구도 말릴 수 없고 누구도 형용할 수 없는 색채를 띄게 된다. 영화 외적의 '감정의 방'을 영화 내적의 '감정 없음'으로 응축시키곤 다시 '감정의 한점 폭발'로 내보이는 것이다. 


스타일리시, 그리고 '개구리와 전갈'


영화의 스타일리시함을 설명하는 데 색감과 함께 OST를 빼놓을 수 없다. 사실 둘 다 오프닝에서 완벽에 가깝게 내보였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종횡무진한다. 영화의 격을 높이고 결을 달리하게 하고 다른 세계 또는 차원으로 끌고가게 하는 데 절대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여, 영화를 보다 보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전체적으로 미래지향적 세련됨이 아닌 고전복고풍 신선함이 스타일리시의 핵심이라는 게 신기한 한편 의아하다면 의아할 지점이다. 햇빛을 한껏 받은 한낮의 포근함과 네온불빛이 반사되는 한밤의 몽환적임이 대비를 이루는 스타일은 고전적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이는 영화에서 주인공 드라이버의 삶과 성향을 반추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한편, 영화 중후반 드라이버의 폭발이 끝을 향해 갈 때 대사가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 '개구리와 전갈' 이야기로, 개구리가 전갈을 등에 태우고 강을 건널 수 있게 도와주는데 건너는 중에 전갈이 개구리에게 독침을 쏴서 함께 가라앉는다. 전갈은 '그것이 내 본성'이라고 이유를 댄다. 드라이버가 즐겨 입는 재킷 뒤에 전갈이 그려진 것도 그렇고 본성이 폭발해 무차별 폭력의 화신이 된 것도 그렇고 그가 전갈인 듯한대, 그는 한편 범죄자들을 태우고 도망치는 일도 하는 만큼 개구리라고도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드라이버가 전갈이든 개구리이든, 개구리와 전갈 이야기에 따르면 그와 함께 있는 이가 파멸을 면치 못하는 건 매한가지다. 그렇다면, 새로운 삶의 의미로 다가온 아이린과 그녀의 아이 곁에 계속 있어야 하는가 떠나야 하는가. 이 아이러니까지 영화가 추구하는 주요 지점은 아닐 테지만, 보는 이로써는 그 이면과 이후까지 생각하게 된다. <드라이브>는 그런 영화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감정, 개구리와 전갈, 드라이브, 라이언 고슬링, 본능, 액션, 잔혹, 충격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복수를 생각하는 전신마비 환자에게 다가온 최첨단 기술의 유혹 <업그레이드>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9. 7. 08:00



[리뷰] <업그레이드>


영화 <업그레이드> 포스터. ⓒUPI코리아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지난 2003년 개봉한 <매트릭스2-리로디드>의 메인 광고 문구이다. 1999년 세기말에 개봉해 가히 액션 패러다임의 신기원을 이룩하며 지금까지도 그 이상을 선보였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영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매트릭스>의 후속편이자 위대한 매트릭스 트롤리지의 한 편으로 그 가치는 충분함 이상이다. 


21세기 들어 <매트릭스>의 액션을 이어받으려는 또는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다. '매트릭스는 잊어라!'며 당당하게 SF 액션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던 <이퀼리브리엄>이 가장 먼저 생각나고, 잔인함의 미학을 새로 새운 <킬 빌> 시리즈, 부드러운 강함의 영원한 판타지를 실현시킨 <와호장룡>, 면대면 맨몸 액션의 새로운 장을 연 <본> 시리즈, 아크로바틱 100% 리얼 액션을 표방한 <옹박> 시리즈 등. 이밖에 초대형 액션 블록버스터들이 부지기수이다. 


최근 이 계보를 이을 만한 액션영화로는 <존 윅> 시리즈 정도가 생각난다. <이퀼리브리엄>과 <킬 빌>과 <본>을 투박하게 합쳐놓은 듯한 영화로, 더할 나위 없다. 그리고 최근에 나온 이 영화 <업그레이드>이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인시디어스> <겟 아웃> 등으로 유명한 공포호러 명가 '블룸하우스'의 첫 액션 영화라고 한다. '공포음악' 영화라는 새장르를 개척한 <위플래쉬>를 만든 제작사이기도 한 바, 어떤 액션을 선보일지 한껏 기대된다. 


전신마비 환자에게 다가온 최첨단 기술의 유혹


영화 <업그레이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하루종일 집에서 차를 가지고 노는 그레이는 아내와 함께 차 주인에게 차를 돌려주러 간다. 차 주인은 다름 아닌 유명한 베슬컴퓨터사의 주인 베론 킨이다. 그는 온 김에 그들에게 스템이라 불리는 칩을 보여준다. 그것은 말그대로 뭐든지 할 수 있는, 새롭고 더 나은 두뇌이다. 


그레이와 아내는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자동주행 차가 오류를 일으켜 집이랑 정반대인 뉴크라운이라는 빈민도시로 향한다. 사고를 당하는 그들에게 네 명의 괴한이 들이닥치고 그들은 죽임을 당한다. 전신마비로 살아난 그레이와 결국 죽은 아내. 그레이는 최첨단 로봇기술 덕분에 누워만 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런 그 앞에 베론 킨이 나타나 뭐든지 할 수 있는 스템을 들이댄다. 그건 그레이를 다시 걷게 해줄 수도 있다. 그레이는 아내를 생각하며 극비수술을 받아들이고 몸에 스템을 이식한다. 스템은 그를 걷게 해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최첨단 기술과 시스템을 이용해 그의 몸뿐 아니라 머릿속에 들어와 최선의 생각과 행동을 하게 해준다. 그레이는 자의 혹은 스템에 의해 아내의 복수를 시작하는데... 


신선한 로봇 액션


영화 <업그레이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영화는 그레이의 은근 코믹 말빨과 스템에 의한 로봇(컴퓨터) 액션이 외양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근미래를 배경으로 최첨단 로봇이 아날로그적 인간을 잠식해 들어가는 디스토피아적 메시지가 내용을 진중하게 채운다. 새로운 양식의 액션을 관람하면서, 오래된 SF적 두려움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100% 액션 영화라 할 만한 이 영화에, 그것도 은근한 잔인함을 내세우는 와중에 '코믹'이 들어갈 소지는 없어보이는데, 그레이와 스탬의 케미가 주는 재미가 툭툭 튀어나온다. 대놓고 코믹이 아닌 은근한 코믹, 지배하려는 스템과 지배당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그레이의 밀당이 주는 재미도 은근하다. 


그래도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쾌감은 뭐니뭐니 해도 스템에 의한 그레이의 로봇 액션이다. 완벽한 각본과 그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에 저절로 따라올 절대적인 연습, 그리고 카메라의 환상적인 워킹이 혼연일체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레이는 상대방과 약속된 행동을 완벽히 하는 와중에, 카메라는 카메라대로 정밀하게 움직인다. 


애드리브가 있을 수 없는 액션이란, 아무리 영화에서 액션이라는 것이 각본에 완벽히 따라야 한다고 하지만 정말 힘든 것이다. 이 영화가 비록 리얼 액션과는 거리가 조금 멀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욱 신기하고 반갑고 신선하다. 현 액션 영화의 대세가 리얼 액션 아닌가. 그에 당당하게 반기를 들었다고 할까. <업그레이드> 액션의 신선함은 '로봇 액션'에서, 로봇 액션의 신선함은 '리얼 액션'의 반감에서 오는 것이다. 


아날로그적 인간에 침투한 최첨단 시스템


영화 <업그레이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신선한 액션만 가지고는 앞에 'SF'를 붙이기에 민망하다. SF가 물론 이제는 마니아 아닌 대중지향적인 장르가 되어 보다 볼 거리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그 기반은 여전히 인간세계에 대한 진중한 철학이다. 그리고 SF의 배경은 주로 미래, 거기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상천외한 것들이 부지기수인 바 개중에는 꼭 인간을 위협하는 것이 있다. 그것들이 노리는 인간은 최첨단을 달리던지 가장 아날로그적이던지. 


괴한의 습격으로 아내는 죽고 전신마비가 된 그레이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첨단두뇌 스템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비록 가장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아마 스템은 그런 그이기에 그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육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들 한다. 그게 맞을지 모른다. 아니, 맞다. 괜히 외계생명체들이 뇌에 침투해 육체를 조종하겠는가. 이 영화는 그 명제를 조금 비튼다. 정신은 나의 것이지만, 정신의 반과 온전한 육체는 너의 것이라면? 그것도 육체가 가진 능력을 온전히 끌어올리게 해준다면? 


그런 공존이 가능하다면 무서워진다. 나는 육체를 가질 수 없지만, 너는 육체'까지'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정신까지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육체는 껍데기이기 때문에 가지는 비사고성으로 정신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가진다. 육체는 주체가 될 순 없겠지만 주체에 의한 절대성이 고스란히 침유된다면 못할 게 없다. 인간은 뇌의 10%밖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육체도 마찬가지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SF, 로봇, 블룸하우스, 아날로그, 액션, 업그레이드, 인간, 최첨단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날 것의 액션과 아름다운 무협의 마지막 절정 <서극의 칼>

오래된 리뷰 2017. 12. 6. 08:00



[오래된 리뷰] <서극의 칼>


서극표 무협의 정점이자, 서극표 무협의 마지막 <서극의 칼>. ⓒ워너브러더스 디지털배급



소싯적 무협이나 판타지 장르에 빠져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할 수 없는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리는 무협과 판타지. 무협은 동양 그중에서도 중국을, 판타지는 서양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 무협은 소규모적이거니와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이 주를 이루는데 반해 판타지는 대규모적이거니와 지극히 조직적인 게 특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판타지보단 무협을 더 좋아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다분히 판타지적인 장르에 푹 빠져 있다. 비록 수십 년 전부터 이미 미국을 점령해온 코믹스를 영화로 옮겨왔을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여기, 2~30년 전 무협 장르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이가 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서극'이다. 


그는 <촉산>과 <황비홍> 시리즈로 8~90년대를 풍미한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영웅본색> 시리즈를 비롯 <소오강호>와 <천녀유혼> <동방불패> 시리즈를 제작한 이로도 유명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무협 영화가 모두 그의 손에서 태어났으니, 그야말로 8~90년대 홍콩 무협의 대부인 것이다. 95년작 <서극의 칼>은 서극표 무협의 정점이자, 사실상 서극표 무협의 마지막이다. 


전형적인 스토리와 캐릭터를 묻어버릴 액션


참 많이도 봐왔던 줄거리와 전개를 무참히 묻어버릴 정도의 액션을 선보인다. ⓒ워너브러더스 디지털배급



명검 제조소로 유명한 연봉호, 사부의 딸 소령은 고아 출신의 정안과 4년차 철두에게 두루 애정을 과시하며 저울질하는 중이다. 정안과 철두는 함께 일을 보러 나갔다가 좋은 일을 한 스님이 마적단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걸 목격하고는 사이가 틀어진다. 와중에 사부는 정안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철두 일행은 몰래 스님의 복수를 하려 한다.


한편, 정안은 소령과 소령의 유모가 하는 말을 우연히 듣고 사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죽음으로 향하는 복수의 길을 나선다. 정안은 아버지가 온몸에 문신을 한 비룡이라는 자객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자신은 사부가 간신히 탈출시켜 키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를 따라나선 소령이 하필 마적단에게 잡히고 정안은 소령을 구하려다가 오른팔이 잘리는 부상을 당하고 만다. 


흑두라는 아이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정안, 정안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마적단,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우연히 발견한 무급 비서, 고수가 된 정안은 마적단을 물리치고 또다시 위험에 처한 소령도 구한다. 급기야 마적단은 비룡에게 외팔의 고수를 처단해줄 것을 의뢰한다. 드디어 복수의 길 그 끝에 다다른 정안, 과연 복수는 가능할까?


영화는 지금 보면 전형적이다 못해 시시하기까지 한 스토리와 예측에서 한 치도 빗나감 없는 정직한 전개와 캐릭터를 선보인다. 반면, 그 모든 걸 즉, 그 모든 단점을 일거에 잊어버리게 할 만한 액션을 선보인다. '리얼 액션'이라고 많이들 홍보하는데, 이 영화야말로 진정한 리얼 액션이 아닌가 싶다. 


<서극의 칼>의 액션, 날 것의 액션


이 영화가 자랑하는 액션은 다름 아닌 '날 것'의 액션, 현존 영화들이 따라하기 힘들다. ⓒ워너브러더스 디지털배급



액션 기술은 나날이 진보해 이젠 왠만한 리얼 액션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대역 없이 위험천만한 액션을 맨몸으로 구사하는 맨몸액션은 일찍이 성룡이 정점을 찍었고, 타격감이 훌륭한 와중에 서로간의 완벽한 합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기술액션 또한 일찍이 <본 시리즈>가 정점을 찍었다. 그렇다면 이 <서극의 칼>의 액션은 무엇인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날것의 액션'이라고 해야 할까. 무협 액션이 가지는, 가질 수밖에 없는 '판타지'적인 모습을 이 영화에선 찾아볼 수가 없다. 거기엔 장풍가 오가고, 허공을 걷고, 소리보다 빠른 칼의 움직임이 있을 텐데, 이 영화엔 오로지 칼과 칼의 부딪힘만이 있을 뿐이다. 


이 '날것'에는 비단 칼과 칼의 부딪힘만이 있는 것만은 아니다. 죽었다 살아나 외팔이 된 정안이, 아버지가 남긴 반쪽짜리 칼에, 타다만 반쪽짜리 비서로, 더 이상 복수의 의미가 아닌 살아남기 위한 싸움들을 헤쳐나가기 때문이다. 거기엔 날것의 액션 이전에 날것의 삶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의 나락으로 추락했다가 우연히 얻은 비서로 절정고수가 되어 나타난 영웅 정안의 뜻밖의 전혀 영웅 같지 않은 모습은, 서극 감독의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엔 삶을 오롯이 감당하는 있는 그대로의 육체와 그에 걸맞는 둔탁한 폭력과 판타지와 이상과는 거리가 먼 현실이 있는 것이다. 


<와호장룡>와 극점을 이루는 '아름다운' 무협


가장 아름다운 무협 영화라 할 수 있는 <와호장룡>, 그와 정반대의 극점에서 또다른 아름다움을 뽐내는 <서극의 칼>. ⓒ워너브러더스 디지털배급



개인적으로, 역대 최고의 무협 영화는 단연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이라 생각한다. 무협이 이리도 섬세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는가. 어찌 그 어떤 영화보다 진한 여운을 남길 수 있는가. <와호장룡>은 완벽한 와이어 액션과 기술 액션을 자랑한다. 거기에 감각적이라느니 비주얼적이라느니 하는 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서극의 칼>은 이와 정반대의 극점에서 또 하나의 '아름다운' 무협을 탄생시켰다. 거기에 온갖 수식어를 붙여도 여한이 남는다. 스타일리시하고 비주얼리시하고 화려하면서도 날것이고 거칠면서 역동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현란하게 정신 없다. 한마디로 정해진 합이나 정교한 양식 없이 최대한 있는 그대로를 담아낸 것이다. 


오래전부터 소문이 자자했던 이 영화의 액션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 같다. <와호장룡>이 그 자체로 완벽을 자랑하며 더 이상의 후계자 없이 고고히 하늘 위에 존재하는 느낌이라면, <서극의 칼>은 그 자신 또한 개척의 주자였던 만큼 많은 여지를 남기면서 수많은 후계자와 추종자를 만든 느낌이다. 


진보를 거듭하고 있는 액션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다. 모르긴 몰라도 이 영화가 보여준 액션의 한 단면이 그 끝에 있을 게 분명하다. 결국 영화가 추구하는 건, 진짜 영화다운 것과 진짜 현실같은 것 아니겠는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날것, 무협, 서극의 칼, 아름다움, 액션, 와호장룡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괜찮은 영화, 이정도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베이비 드라이버>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9. 29. 10:42



[리뷰] <베이비 드라이버>


완벽한 운전 실력과 비례하는 완벽한 음악 선곡 실력의 베이비. 흥이 난다. ⓒ소니픽쳐스코리아



완벽한 운전실력 하나로 거대 범죄 프로젝트 집단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베이비'(안셀 엘고트 분). 그는 범죄 행위에 직접적으로 가담은 하지 않고 오로지 차로 탈출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소싯적에 범죄 프로젝트 기획자 '박사'(케빈 스페이시 분)에게 진 빛을 다 갚을 때까진 계속 이어나가야 하지만, 그래도 그는 범죄에 가담하지 않는다. 


한편 베이비에게 절대적인 게 하나 있다. 본격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기 전 그에 맞게 아이팟으로 음악을 시전하는 것. 그리고 가지각색의 아이팟을 기분에 따라 바꾸는 것. 선글라스는 기본으로 따라오는 소품이다. 하루종일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은데, 어릴 때 당한 사고로 이명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런 그에게 일생일대의 여자 '데보라'(릴리 제임스 분)가 나타난다. 살아생전 엄마가 일했던 가게를 자주 찾는 베이비인데, 그곳에 새로 들어온 종업원이다. 어쩔 수 없이 듣게 되어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음악과 더불어, 운명의 여신이 점 찍어준 인연이 될 것임에 분명한 데보라가 그의 모든 것이 될 것이었다. 


음악과 액션, 그리고 캐스팅


베이비에 의한 음악, 그리고 영화의 주를 이루는 액션, 화룡정점을 찍는 캐스팅. ⓒ소니픽쳐스코리아



<베이비 드라이버>는 음악과 액션의 리듬이 완벽한 합을 이룬 초반 압도적인 아우라가 영화 전체를 지탱한다. 범상치 않은 패션과 분위기의 강도 세 명이 은행을 털고 베이비는 그저 기다리며 음악을 듣고 리듬을 탈 뿐이다. 그리고 시작되는 대탈출 드라이브, 생각은 소멸되고 장면과 음악만 남는다. 그것이 이 영화의 운명인가.


영화는 얼핏 주옥같은 음악들 빼곤 할 말도 할 생각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익히 알려진 감독의 4년 간 플레이리스트 선곡 작업으로, 영화 내적 외적 상황을 씨줄과 날줄로 하여 치밀하게 직조한 음악들의 나열과 배열은 전무후무, 최소한 영화사에 남을 것만은 분명하다. 그 유명한 <라라랜드>가 많이 거론되는 이유이다. 


여기에 액션이 추가되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그것도 급이 다른 선곡된 음악들과 함께 하는 액션. 급이 확 올라가는 것이다. 오로지 자동차로만 액션이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의 오프닝씬을 뒤로 하고, 오밀조밀하면서 은근한 날 것의 액션도 뒤따른다. 유머와 드라마는 덤이지만 나쁘지 않은 수준. 자동차 액션으로만 보면 <분노의 질주> 수준은 아닌 듯하다. 


정말 화끈한 건 캐스팅이다. 케빈 스페이시와 제이미 폭스라는 당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믿음을 심어주고, 어린 배우들과 베테랑 배우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형세다. 사실 요즘 왠만한 영화에 이만한 캐스팅이 아닌 경우가 어디 있겠느냐만, 이건 대놓고 킬링타임용 오락영화가 아닌가. 물론 시간만 죽이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도 죽이지만. 


베이비를 들여다보자


이 영화를 더 즐기려면, 베이비를 좀더 들여다보아야 한다. ⓒ소니픽쳐스코리아



이쯤에서 주인공 '베이비'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에겐 사연도 있거니와 사연이 생길 예정이고, 영화의 주요 분곡점에 그가 지대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몇몇 주조연의 베이비와 관련된 행동변화 또한 이 영화에서 은근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베이비는 어릴 때 눈앞에서 엄마아빠가 처참하게 죽는 사고를 당한다. 그것도 서로 악다구니 쓰며 싸우다가 말이다. 사고 당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던 그는 그 사고로 귀가 울리는 이명증을 앓게 된다. 그는 어째서 운전을 하게 되었고 왜 그리 운전을 잘하게 되었는가는 이 부분에 연유가 있지 않은가 싶다. 그가 항상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이유도. 


트라우마가 생겼을 법한대 오히려 그 반대인 건 그때 그 사건을 잊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그가 끊임없이 선곡된 음악을 들으며 귀에 울리는 소리를 지워버리고자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에게 운전과 음악은 한몸인 거다. 이는 다분히 감독의 의도가 투영된 결과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보한 에드가 라이트 감독.


십수 년 전에 <새벽의 황당한 저주>로 데뷔해 10년 전 <뜨거운 녀석들> 정도의 기억나는 작품을 남기고 서서히 잊히고 있던 에드가 라이트는 그야말로 베이비로 현신한듯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스타일을 완전히, 완벽히 보여주었다. 베이비를 들여다보면 에드가 라이트가 보인다. 


이유 있는 액션, 괜찮은 영화


액션 그 자체로는 크게 튀는 맛이 없다. 하지만 액션까지의 과정을 보면, 충분히 그 자체로 튄다. ⓒ소니픽쳐스코리아



여기에 베이비가 트러블메이커 뱃츠(제이미 폭스 분)에게 행하는 일격, 베이비와 뭔가가 맞는 것 같았지만 연인을 잃자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버디(존햄 분)와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았지만 베이비의 진정한 사랑에의 열의를 보고 한순간 희생모드로 돌변하는 박사의 급격한 변화는 전부 액션을 위한 액션이 아닌 마음을 위한 액션이다. 즉, 이유 있는 액션이랄까. 


이유 없는 액션만큼 허무한 게 없지만, 또 그만큼 시간을 훌륭히 죽이는 거리도 없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그런 액션을 찾고 즐기며, 그에 맞게 그 어느 때보다도 감독과 제작자들은 그런 액션을 잘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와중에, 나름 출중한 액션을 선보이는 와중에 이유까지 따지는 것이다. 


아무리 이 영화의 내용이 내용이랄 것까지도 없다 하지만, 초반을 제외하곤 크게 기억에 남는 액션이 없는 것 같지만, 에드가 라이트의 스타일이 뒤로 갈수록 부담스러워지는 것 같지만, 그밖에 거의 모든 것들에 이만큼 신경을 쓰고 이만큼 완벽하리만치 이룩해내고 있으니 어찌 를 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괜찮은 영화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엄청난 호평을 받고 있는 만큼 엄청난 기대를 안은 채 영화를 봤을 때 격게될 실망 아닌 실망의 두서없는 강약에는 책임지기 싫다. 호불호가 갈릴 것 같진 않고 대체적으로 호평 속에 'not bad' 이상의 수준이 예상되는데, 'good' 'very good' 이상은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치 아니한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베이비, 베이비 드라이버, 액션, 에드가 라이트, 음악, 이유, 캐스팅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대중을 향한, 대중에 의한, B급의 메이저화 <킬러의 보디가드>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9. 13. 08:00



[리뷰] <킬러의 보디가드>


2015년 <킹스맨>과 2016년 <데드풀>의 만남이자 두 영화 2편의 사전 맛보기라 할 수 있겠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저급하리만치 돼먹지 못한 말들의 향연에 의한 코믹, 지극한 사실성과 과도한 잔인성을 앞세워 오히려 현실감 없이 재밌게만 느껴지는 액션의 극단적이고 모순적인 조합의 영화가 최근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2015년 <킹스맨>과 2016년 <데드풀>이 그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데, B급의 메이저화 또는 메이저의 B급화이겠다. 


공교롭게도, 아니 의도한 것이겠지만 두 영화에서 극단적 조합에 결정적 역할을 한 두 배우가 한 영화에서 뭉쳤다. 제목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는, <킬러의 보디가드>. <킹스맨>의 라이언 레이놀즈와 <데드풀>의 사무엘 L. 잭슨이 그들인데, 성공적 캐릭터를 거의 그대로 가져 왔다. 


백인과 흑인의 버디 케미 코믹 액션은 1980~90년대 <리셀웨폰> 시리즈, 1990~2000년대 <러시아워> 시리즈로 상종가를 쳤다. 자신의 한계를 완벽히 깨닫고 그 한계 내에서 자기 위치성을 뽐내며 시대가 원하는, 즉 대중이 원하는 입맛에 취합하기도 하고 오히려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기도 했다. <킬러의 보디가드> 역시 다분히 킬링타임용 일회성 무비라 칭하겠지만 가히 역대급의 자기 위치성을 뽐냈다. 현재 비슷한 시기에 나와 훨씬 월등한 위용을 뽐내는 <청년 경찰>과 비교해보는 것도 한 재미겠다. 


복잡한듯, 단조로운


내용은 뭐, 적당히 꼬아서 적당히 마무리 한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내용은 복잡한듯 단조롭다. 가타부타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바로 인물의 사연과 함께 캐릭터성을 선보인다. 자칭 '트리플 A'급 보디가드 마이클 브라이스(라이언 레이놀즈 분)는 특급 고객을 지키지 못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는 마약에 쩔은 변호사 보디가드나 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재판석에 앉게 된 벨라루스 대통령이자 독재자 두코비치(게리 올드만 분), 그는 악행을 증언하려는 증인들을 계속 암살해 무죄로 풀려나고자 한다. 그 와중에 인터폴은 아내의 사면을 조건으로 내밀며 사상 최고 최악의 킬러 다리우스 킨케이드(사무엘 L. 잭슨 분)를 증인으로 내세우고자 한다. 하지만 역시나 두코비치의 표적이 되어 재판이 열리는 국제형사재판소로 향하는 길이 만만치 않다. 


이에 킨케이드 운반 책임자이자 브라이스의 옛 연인 아멜리아는 브라이스의 트리플 A급 복귀를 돕겠다는 조건으로 브라이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브라이스와 킨케이드는 30번 가까이 서로를 죽이고자 했었던 철천지 원수지간,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유일하게 서로인 만큼 실력 하나는 최고인 사이. 과연 이들은 모든 악연을 뒤로 하고 서로를 지키며 안전하게 국제형사재판소로 가서 두코비치를 끌어내리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두 주인공의 다양한 합(合), 케미


모든 게 완전히 다른 두 주인공의 합(合)이 영화의 모든 걸 이룬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영화는 브라이스와 킨케이드의 합(合)으로 거의 모든 걸 처리한다. 전작에서 엄청난 말빨을 선보였던 그들의 녹슬지 않은 욕의 향연의 합, 길지 않았지만 절정 고수들인 그들간의 맨몸 액션의 합, 정반대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다른 성격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게 되는 극단끼리 통하는 합, 그리고 절묘하진 않지만 적어도 삐그덕거리지는 않는 시나리오의 합까지. '케미'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중에서 이 영화가 재미있는 결정적 이유는 다름 아닌 시종일관 쉬지 않고 나불대는 말 대결에 있다. 한마디 한마디 절대로 빠지지 않는 쌍욕은 덤이다. 그리고 그에 상반되는 느낌의 액션도 중요하다. 모든 액션이 다 그렇진 않지만, 상당히 진중하고 굉장히 사실적이다. 잔인하다는 얘기다. 


<킹스맨>과 <데드풀>은 이 지점에서 다시금 불려나온다. 관객은 이 두 영화 덕분에 수많은 전작에서 로맨틱하고 진중한 분위기를 선사한 이 두 영화배우가 이토록 코믹하고 잔인한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하등 기시감을 느끼지 못한다. 아주 친근한 것이다. 


결정적으로, 이 둘은 여자와의 관계로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를 돕는다. 악의 화신이라 할 만한 킨케이드는 사랑의 화신이고, 고객을 지키는 게 일인 브라이스는 자기 여자 하나 지키지 못한다. 이 영화를 이루는 여러 모순적 재미들의 모습이 여기에도 통용되는 것이다. 


결국 사랑이다


B급 정서가 다분한 '바퀴벌레'의 사랑을 보여주는, 그들만의 사랑 방정식이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그렇다면, 여러 의미로 살인마(?)들인 이들이 꼼짝 못하는 여인들은 영화에서 어떻게 비춰질까? 죽음과 함께 하는 '바깥' 일을 하는 남자에 비해 여자는? 여자도 마찬가지로 죽음과 함께 한다. 즉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이들이다. 비록 영화 전체적으로는 조력자에 불과하지만, 이 남자들보다 훨씬 더 강단 있는 모습을 비롯해 좌중을 압도하는 모습도 선보인다. 


전쟁 중에도 사랑은 꽃핀다고 했던가. 자칫 증언 허락 시간에 늦어 두코비치가 풀려날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수줍게 사랑을 고백하는 브라이스나 두코비치의 암살자들이 맹렬히 쫓아오는 와중에도 여유롭게 브라이스의 속마음을 전해주는 킨케이드의 모습은, 상황에 맞지 않는 어이없음을 전해주기보다 은은한 웃음꽃을 전해주기에 충분하다. 


결국 사랑이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특히 킨케이드 부부의 사랑은 다분히 영화의 병맛적인 느낌을 극도로 살리기 위한 장치일지 모르나 그럼에도 얼굴이 찌뿌려지지 않고 박장대소에 가까운 웃음이나마 보낼 수 있는 건, 우리 모두 사랑을 향한 열망이 그만큼 크고 사랑을 대하는 방식과 눈이 그만큼 유하다는 반증이겠다. 


이 영화에서 뭔가를 끄집어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 이 영화를 통해 내 안의 무엇을 끄집어내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저 마음 놓고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씩 하나씩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게 욕이든, 웃음이든, 환희든, 살인 충동이든, 사랑 열망이든, 무엇이든.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B급, 데드풀, 보디가드, 사랑, 액션, 케미, 킬러, 킬러의 보디가드, 킹스맨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더 이상의 전쟁영화는 NO! 하지만 <고지전>은 되새겨야

오래된 리뷰 2017. 2. 15. 08:21



[오래된 리뷰] <고지전>


<의형제>의 장훈 감독과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상연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그들의 전 작과 이어지는 감정선이 자못 예사롭지 않다. ⓒ쇼박스




1953년 2월, 6·25전쟁은 여전히 휴전 협정 중에 있다. 하지만 매일 같이 뺏고 뺏기는 고지 때문에 제대로 선을 긋고 휴전을 할 수가 없다. 방첩대 소속 강은표 중위(신하균 분)는 해서는 안 될 불순할 말을 내뱉어 영창에 갈 위기에 처하지만, 상사의 선처로 동부전선에 배치되어 사건 하나를 조사하게 된다. 최전방 애록고지의 악어 중대에서 죽은 중대장 시신에 아군 총알이 발견된 것. 


애록고지에서 은표는 죽은 줄만 알았던 친구 김수혁(고수 분)을 만난다. 이등병이었던 그는 2년 만에 중위가 되어 있었다. 한편 이제 갓 약관의 나이가 된 듯한 청년 신일영(이제훈 분)이 임시중대장으로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걸 보고 기시감을 느낀다. 그는 모르핀 중독 상태였다. 이후 은표는 악어 중대의 비밀을 하나 둘씩 알아간다. 


겁쟁이 수혁이가 어떻게 이리도 매섭고 대범하게 변했는가, 약관의 청년은 어떻게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고 또 왜 모르핀 중독 상태가 되었는가, 죽은 중대장 시신에서 아군 총알이 발견된 사유는 무엇인가, 전쟁통에 술은 어떻게 구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이들이 쉬쉬 하는 그 예전 '포항 철수 작전' 때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전쟁이 주는 참혹함,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참혹함


이 영화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기 위해선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참혹함이 아닌, 진짜 참혹함을. 그들은 '왜' 서로 죽이고 죽였어야 했나? ⓒ쇼박스



영화 <고지전>은 <태극기 휘날리며>와 <웰컴 투 동막골> 이후 오랫동안 맥이 끊겼던 6·25 전쟁 배경의 전쟁영화이다. 이 영화는 내적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외적으로 많은 논란이 일며 흥행에 실패했고,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6·25 전쟁영화는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전과 이후에  <포화 속으로>와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영화가 있었지만, 이 영화들이 맥을 잇는 건 어불성설이다. 공교롭게도 감독이 같다. 비극이다. 


지금에 와서 60년도 더 된 전쟁 이야기를 꺼내 무엇하랴 싶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전쟁을 그저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전쟁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한다. 대표적으로 양대 산맥이 있을 텐데, '애국'과 '반전'이 그것이다.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전쟁을 그린 것, 전쟁을 반대하기 위한 방편으로 전쟁을 그린 것. 


<고지전>은 '반전'에 속한다 하겠다. 그렇지만 그런 영화는 액션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감동도 약한 반면 참혹함이 상대적으로 강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으며 전쟁의 당사자들에게 일면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아, 논란이 일기 쉽고 외면 받기 쉽다. 어찌하여 모든 걸 파괴하는 '전쟁'에 액션과 감동이 주가 될 수 있을까마는, 그게 그렇지 않은가 보구나 싶다. 


이 영화는 전쟁이 주는 눈에 보이는 참혹함보다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참혹함을 전하려 한다. 6·25전쟁의 특수성이 기인한 것일 수 있다. 사실 이 전쟁은 1951년에 끝났다. 하지만 이후 2년 6개월 동안 휴전 협정이 계속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되풀이 되는 '고지전쟁'으로 5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다. 그들은 전쟁을 해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동포를 죽이고 자신 또한 죽어갔다. 


'이' 전쟁은 생존의 숙제일 뿐, 애국이 낄 자리는 없다


'이' 전쟁, 6.25는 특수성을 진하게 띠는 전쟁이다. '동포'끼리 '애국'을 걸고 싸우는 모양새. 하지만 이 영화는 '생존'일 뿐이라고 말한다. 단지 내가 죽기 싫어 상대방을 죽이는... ⓒ쇼박스



영화는 사건을 통해서, 캐릭터를 통해서, 대사를 통해서 시종일관 반전 메시지를 드러낸다. 정확히는 '6·25 반전'. 북한군 저격수 '2초'를 잡기 위해 10명의 정예부대를 이끌고 길을 나선 수혁, 17살 막내가 2초에게 당한다. 아무도 그를 구하러 가지 않고 오직 2초를 제거하기 위해 혈안이다. 은표의 분노에 수혁이 날리는 한마디, '네가 전쟁을 알아? 네가 지옥을 알아? 난 아주 잘 알아. 매일 같이 수많은 남상식이 죽어간다고.'


엄청난 수의 중공군이 밀려 오는 상황에서 새로 부임한 대위 유재하 중대장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끝까지 항전할 것을 명한다. 이에 유재하를 쏴죽이고 중대장이 된 수혁은 즉각 퇴각 명령을 내린다. 이 상황을 그냥 넘길 수 없는 은표에게 수혁이 날리는 한마디, '나를 죽이면 네가 중대장이 된다. 그러면 부대를 지휘하게 될 텐데, 네가 우리 부대원들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자신 있으면 어서 쏴. 시간이 없어.'


허무하고 어처구니 없는 죽음, 그 죽음을 방조하고 실행하는 이들, 그런 그들도 누군가에게 죽고, 그들을 죽인 이들 또한 누군가에게 죽는다. 전쟁에서 죽음은 일상일 테지만 인간이라면 절대 죽음을 일상처럼 받아들일 수 없을 터, 하지만 그들은. 그들은 죽음을 방조하고 죽음을 당연시하고 죽음을 자초한다. 그렇다고 죽음이 친근하지도 죽음을 환영하지도 죽음과 대면하지도 못한다. 죽음의 지옥에서 허우적댈 뿐이다.


문제는 이 전쟁의 근원에 있다. 사실상 끝난 이 전쟁을 '왜' 지속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전쟁터에 있는 이상 '전쟁 자체'에 대한 의문은 치우고서라도, 다름 아닌 '이 전쟁'에 대한 의문은 풀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최소한으로 내가 죽기 싫고 내 부대원들을 죽게 만들기 싫어 상대방을 죽인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에게 이 전쟁은 생존의 숙제일 뿐이다. 거기에 애국은 낄 자리가 없다. 


더 이상의 전쟁영화는 안 된다, 하지만 <고지전>은 되새겨야 한다


수많은 전쟁영화를 봐왔다. 이제 더 이상 전쟁영화는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외친다. 하지만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바, 그렇다면 차라리 <고지전> 같은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쇼박스



전쟁영화는 더 이상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영화는 그 자체로 '전쟁'에 대한 미화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업영화라는 틀로 전쟁을 대하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지금은 평화의 시대, 전쟁은 우리와는 먼 얘기, 아무리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내장이 튀어나와도 그게 바로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내가 그곳에 있다면 상대방이 그렇게 될 거라는 무의식, 애초에 나는 그곳에 없기에 그곳을 향해 갖게 되는 동경,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이 갖는 초유의 액션. 


반전을 지향하는 전쟁영화라고 해도 이 정도인데,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전쟁영화는 어떻겠는가. 전쟁 승리를 상정해놓고는, 어떻게 상대방을 몰살시켜 버릴까 고심하는 전쟁영웅, 거기에 여지 없이 중심축을 이루는 극단의 이데올로기. 우리는 여기서 이데올로기에 따른 애국심이 고취됨과 상관 없이, 전쟁 자체에 대한 동경을 전에 없이 끌어올리게 된다. 이 얼마나 멋진가, 이 얼마나 필수불가결한 전쟁인가. 


지난 이야기지만, <고지전>의 흥행 실패가 주는 씁쓸함과 <인천상륙작전>의 흥행 성공이 주는 참혹함은 앞날을 걱정케 한다. 영화의 만듦새와 극단의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요소들의 향연을 뒤로 한채, 전쟁을 미화하는 본새가 그렇다. 앞으로 전쟁영화는 반드시 또 나올 텐데, 모르긴 몰라도 아마 <고지전>이 아닌 <인천상륙작전>류일 가능성이 크다. 정녕 또 한 번 전쟁을 치르고 싶은 것인가?


영화에 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나아가 전쟁영화가 만들어지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고지전>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린 진실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거기에 지옥이 있을지라도, 아니 아마 지옥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할 텐데 그럼에도 우린 바로 그곳을 주시해야 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지옥과도 같은 '고지전쟁'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6.25, 고지전, 반전, 생존, 애국, 액션, 인천상륙작전, 전쟁영화, 참혹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작금의 인간 세계에 주는 강력한 경고, 분노 바이러스 좀비 <28일 후>

오래된 리뷰 2017. 1. 20. 08:00



[오래된 리뷰] 좀비 영화의 대부 <28일 후>


현대 좀비영화의 시초격이자 최고의 좀비영화라 할 만한 <28일 후>. 대니 보일 감독만이 선보인 액션과 영상을 집대성하였다. 거기에 인간에 대한 메시지가 훌륭하게 조화되었다. ⓒFox Searchlight Pictures



지난 여름 한국을 강타했던 영화 <부산행>. 한국형 좀비 영화의 새 지평을 열며 흥행뿐만 아니라 열렬한 호평이 잇따랐다. 전 세계적인 호평도 잇따랐다고 하는데, 좀비 영화가 지녀야 할 덕목(?)을 빠짐 없이 갖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산행>은 기본적으로 '좀비'하면 떠오르는 공포, 공포에 대적하는 액션, 인류애, 그리고 좀비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악랄한 모습을 두루두루 잘 보여줬다. 


좀비물로서 영화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1968년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소설로는 리처드 매드슨 작가의 1954년작 <나는 전설이다>가 그 시작이다. 지극히 현대적인 콘텐츠로 인식되고 있는 좀비물의 비하인드 스토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좀비물은 2000년대 들어서 대 호황을 이루었는데, 현대 좀비 영화의 대표로는 두 편을 들 수 있겠다. 잭 스나이더의 2004년작 <새벽의 저주>, 대니 보일의 2002년작 <28일 후>. 


<새벽의 저주>는 굉장히 빠른 전개와 그에 맞춘 잔인한 장면의 연속, 호쾌한 액션으로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그야말로 '좀비 영화' 하면 생각나는 가장 대중적인 영화임에 분명하다. 평단보다 관객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할까. 반면 그보다 2년 전에 개봉한 <28일 후>는 관객도 관객이지만 평단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작품이다. '뛰어다니는 좀비'를 출현시켜 공포와 액션 두 마리 토끼를 사로잡았으며, '좀비보다 더 무서운 인간'을 출현시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심오하게 탐색했다. 


최고의 좀비 영화 <28일 후>


개인적으로 좀비 영화를 그리 많이 챙겨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28일 후>가 최고의 좀비 영화라고 단정할 수 있는 건 감독이 대니 보일인 이유가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는 이 길지 않은 영화에서 좀비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줬다고 할 수 있는데, 전작 <트레인스포팅>으로 보여줬던 속도감 있는 액션과 <비치>로 보여줬던 인간이 주는 실망, 그리고 후작 <127시간>으로 보여줄 감각적인 영상을 집대성하였다. 


총을 든 무장 단체 일원들이 연구시설을 습격한다. 시설 안에는 영장류들만 갖혀 있고, 그들은 하나같이 분노에 휩싸여 있다. 시설을 습격한 이들은 다름 아닌 동물 보호 단체의 일원, 영장류들을 가둬놓고 불법으로 실험을 일삼는 이들을 습격한 것이다. 그들은 연구원의 말을 무시하고 영장류를 풀어주는데, 곧 영장류들은 이들을 습격한다. 일명 '분노 바이러스'의 방출. 불과 28일 만에 영국은 분노 바이러스에 점령당한다.  

영화 초반, 아무도 없는 거리를 활보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꽤 오래 비춰진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무서움이 바로 이 장면이 아닐까 싶다. '외로움'이랄까. ⓒFox Searchlight Pictures



한편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었던 짐은 병원에서 깨어난다. 아무도 없는 병원, 아무도 없는 도로, 아무도 없는 런던. 헤매다가 성당에 들린 짐, 멀리서 다가오는 신부에게 말을 걸려한다. 하지만 신부는 두 눈이 빨갛게 물들어 짐을 쫓아오고, 짐은 영문도 알지 못한 채 도망간다. 그런 그를 도와주는 셀레나와 마크. 


마크도 곧 감염 당해 셀레나에게 죽고, 그들은 길을 떠난다. 길을 가던 도중 만나게 된 부녀, 프랭크와 해나. 이들은 생존을 보장한다는 군인의 방송을 듣고 무작정 맨체스터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알게 되고 겪게 되는 군인들의 끔찍한 실체는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으니... 과연 이들의 앞날은 어떨까. 항상 되풀이되는 좀비 영화 결말의 논쟁을 이 영화는 빚겨갈 수 있을까.


좀비가 주는 공포, 그에 대적하는 액션, 그리고 인간


'좀비'는 되살아난 시체를 말한다. 좀비의 탄생을 비중 있게 다루는 작품도 있는데, 그 원인을 찾아내어 이 사태를 해결하려는 의도에서이다. 한편 <28일 후>를 위시한 많은 작품에서는 좀비의 탄생보다 그 이후를 비중 있게 다루며, 그에 따른 액션과 공포, 그리고 인간을 말하고자 한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건 좀비가 아니지 않은가. 좀비 같은 인간, 아니 좀비보다 더 한 인간이 이 세상을 활개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좀비로 인한 공포, 그에 대적하는 액션을 짧고 굵게 보여준다. 좀비보다 더 무서운 존재인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분노 바이러스에 걸린 인간이 좀비 아닌가. ⓒFox Searchlight Pictures



이 영화는 이에 절반씩을 할애했다. 좀비가 주는 공포와 그에 대적하는 액션, 그리고 좀비보다 더 한 인간들과의 사투. 이 둘 간의 연계가 자연스럽고 또 각기 심혈을 기울여 모난 곳이 없기에 더욱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작품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뒤엣것보다 앞엣것에서 단순한 영화적 재미를 더 느낄 수 있기에 누군가에게는 뒤로 갈수록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건 단순히 앞과 뒤를 비교했을 때 순수하게 좀비가 주는 재미 부분이고, 대니 보일이 선사하는 영화적 재미는 영화를 느보는 내내 느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아니,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장르 영화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장면들이다. 더불어 그 장면들을,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OST는 최고다. 


그러면서도 인간 세계에 던지는 확고한 메시지도 가려지지 않으니 그야말로 순도 연출 100%의 힘이다. 연출의 신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인데, 영화적 재미와 영화적 메시지가 서로 믿기지 않을 만큼 조화를 잘 이루며 상응하고 있다. 


<28일 후>의 '히어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아닌 분노 바이러스에 먹힌 '뛰어다니는 좀비'에게 돌아갈 듯하다. 그가 아니었다면 속도감 있는 액션도, 감각적인 영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 그것들과 상응해야 더욱 빛을 발하는 '인간에 대한 실망'이란 메시지도 없었을 것이다. 탁월한 선택이거니와 대니 보일만이 해낼 수 있을 소재였다. 


작금의 인간 세계에 주는 강력한 경고, 분노 바이러스 좀비


분노 바이러스 설정은 탁월했다. 그 메시지는 이 영화가 단순한 공포액션 좀비 영화의 격을 훨씬 뛰어넘게 해주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Fox Searchlight Pictures



'분노 바이러스'에 걸린 좀비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작금의 인간 세계에 주는 강력한 경고이다. 누군가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하며 '분노하라!'를 외치지만, 이 영화를 보면 이미 세상은 분노로 가득 차 점차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것이다.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려는 의도라지만 분노가 가장 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사람들을 조종하게 할 수는 없지 않나.


분노에 휩싸이지 않은 이들을 '사람'이라 하고 분노에 휩싸인 이들을 '좀비'라 하니, 좀비라도 되어서 사람들의 세상을 또는 이미 좀비들의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인가. 그건 어느 모로 보나 '일단 바꾸고 보자'는 무책임한 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분노하지 않으면 이미 분노한 이들이 꾸리는 세상에 승차하게 될 텐데, 과연 그것은 옳은 것인가 하는 의견도 나올 수 있다. 그건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못한 채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는 것밖에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는 그에 대한 답을 얼핏 던진다. 분노하라, 그러나 사람임을 잊지 마라. 무엇보다 희망을 잃지 마라. 분노는 그 이상의 분노로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한다. 분노가 사람을 조종하는 게 아닌, 사람이 분노를 조종하는 것. 문제는 어떻게 사람임을 잊지 않을 수 있는가. 그것이 숙제라면 숙제겠다. 


애초에 분노에 휩싸이지 않은 세상을 구축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건 쉽지 않은 일, 아니 사실 이미 당면한 일, 이제와서 그런 생각을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문제가 있을 때는 해결책을 마련하고, 그와 더불어 훗날 반드시 또다시 생길 동일한 문제의 원인을 생각하며 매뉴얼을 만들어야 하겠다. 그게 안 되서 문제이고, 그게 안 되서 인류사가 반복되는 것이지만.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28일 후, 공포, 대니 보일, 분노, 분노 바이러스, 액션, 인간, 좀비 영화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얄팍하거나 진중하거나, 거대하거나 어이 없거나 <바스티유 데이>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10. 17. 08:00



[리뷰] <바스티유 데이>


'프랑스 혁명기념일'을 뜻하는 <바스티유>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영화, 제목만큼 거창할까? 다분히 의도된 만큼 킬링타임용이자 팝콘무비다운 작지만 매운 맛을 보여줄까? ⓒ롯데엔터테인먼트



프랑스 혁명기념일 하루 전,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폭탄이 터져 4명이 사망한다. 테러를 자행한 집단은 36시간 뒤에 또 다른 폭탄 테러를 자행할 것을 공표한다. 용의자는 파리에서는 전과가 없지만 여러 범죄를 저질러온 미국인 소매치기범 마이클 메이슨. CIA 파리 지부의 션 브라이어 요원이 메이슨을 쫓는다. 그런데 메이슨은 폭탄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그가 훔친 가방에 공교롭게도 폭탄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그가 훔친 가방의 주인인 조이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했다. 브라이어와 메이슨은 어느새 브로맨스를 자랑하며 함께 조이를 찾으러 다닌다. 36시간 뒤에 일어날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서다. 그들은 그 뒤에 숨겨진 거대한 진실에 한 발자국씩 다가간다. CIA와 프랑스 경찰, 테러리스트 집단, 테러리스트로 오해 받은 소매치기범까지 연류된 것이다. 


'프랑스 혁명기념일'을 뜻하는 <바스티유 데이>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나온 이 영화는 CIA가 등장하니 첩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심장을 쫄깃하게 하거나 눈을 즐겁게 하지는 못한다. 다만, 브라이어의 묵직한 액션과 메이슨의 화려한 소매치기 기술이 은근히 주의를 끈다. 기대는 하지 않고 보면 좋은데,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 킬림타임용, 팝콘무비로 나쁘지 않다. 


얄팍하거나 진중하거나, 거대하거나 어이 없거나


영화는 초반이 볼 만하다. 다른 말로 거창하다. 그러나 초반이 지나면 조금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간다. 그러고선 얄팍함과 진중함이 교차로 보인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초반에 꽤 많은 공력을 들였다. 팝콘무비답지 않게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에, 구구절절 설명 없이 사건이 진행된다. 폭탄이 터지고 메이슨이 테러리스트로 몰리고 브라이어가 메이슨을 쫓기까지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러고 나서는 한 템포 쉬더니 스토리와 캐릭터들이 가미되고 영화는 조금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간다. 


뭔가 훨씬 거대하거나 아예 다른 방향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한듯, 아니면 알고 서도 애써 부정할 만큼 어이 없는 음모인듯.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 음모는 상당히 어이 없는 음모였다. 제목과 분위기에 어울릴 만한 거대함이 아예 없다고도 할 수 있었다. 


영화는 얄팍함과 진중함을 교차로 보여준다. 두 주인공이 나올 때는 얄팍함을 숨길 수 없고, 주인공을 둘러싼 세력들이 나올 때는 진중하기 짝이 없다. 애초에 두 주인공의 인연이 얄팍하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순간 한 몸처럼 움직이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기 힘들다. 단 하나의 이유라치면, 브라이어가 메이슨이 테러의 진짜 범인이 아님을 알았다는 거다. 그리고 조이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것. 


반면 그들을 둘러싼 세력들은 다름 아닌 그들 때문에 진중하다. CIA 파리 지부는 브라이어의 막무가내 성격을 제어하고자, 프랑스 경찰은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메이슨을 처치하고자 하면서도 그들만의 모종의 음모를 진행시키기 위해, 테러리스트 집단은 36시간 내의 테러를 실행시키기 위해. 그리고 조이는 사방으로부터 도망치랴, 자신 때문에 4명이 죽었다고 자책하랴, 가벼울 틈이 없다. 


참으로 대단한 킬링타임용 영화


이 아저씨의 액션이 기억에 남는다. 많이 맞고 많이 때리면서 묵직하게 앞으로 전진하는 느낌, 또 다른 주인공인 소매치기범의 화려하다고 할 수 있는 손기술과 조화를 이룬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첩보물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액션이다. 화려하거나 묵직하거나 엄청나거나. 이 영화에서의 액션은 거의 브라이어 담당인데, 화려하지도 엄청나지도 않다. 도구를 이용하거나 아슬아슬한 가운데 싸우지도 않고, 상공에서 해상에서 도로에서 싸우지도 않는다. 그저 몸으로 묵직하게 싸울 뿐이다. 싸울 때마다 많이 맞고 많이 때리는데, 즐기기에 나쁘지 않다. 외려 현실적이랄까. 


메이슨은 도망치는 거랑 숨는 거랑 훔치는 걸 담당한다. 액션이라면 액션일 수 있겠는데, 훔치는 것 빼곤 허술하기 짝이 없다. 캐릭터가 그러하니 알맞은 모습이겠다. 훔치는 건 신의 경지에 오른 듯 꽤나 요긴하게 쓰이는데, 정작 제대로 된 손기술은 보여주지 않는다. <나우 유 씨 미> 같은 기술은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딱 그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에 악역다운 악역이 나오지 않아 아쉽기도 하고 속 시원하기도 하다. 진정한 악역에는 남모를 사연이 있는 바 주인공 못지 않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한층 갈등의 재미를 부각시킬 수 있는 반면, 이 정도 영화에 나오는 악역이면 비슷비슷하니 오히려 없으니 못하다는 생각도 들 수 있겠다. 물론 악역이 없을 순 없으니 등장은 하지만, 굉장히 비열하고 치졸하기만 한 악역이다. 주인공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더욱 밀어주니  괜찮은 선택이라 하겠다. 


영화의 주요 줄거리는 분명, 테러 36시간 후로 공표된 다음 테러를 막기 위한 사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36시간은 큰 의미가 없어지고 거대한 음모는 생뚱맞은 음모로 치환된다. 그리고 그 음모를 처리하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미국인 CIA 요원 브라이어와 미국인 소매치기범 메이슨이다. 이처럼 은근히 구멍들이 보이지만 그 구멍들조차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게끔 하는 데 일조한다. 참으로 대단한 킬링타임이다. 


그들이 '테러'를 자행하는 이유


그들이 테러를 자행하는 이유를, 우린 알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건 의미가 없다 하겠다. ⓒ롯데엔터테인먼트



2016년 7월 14일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테러가 있었다. 튀니지계 남성이 인도로 트럭을 돌진해서 총기를 난사해 80여 명이 죽은 대참사였다. 하필 그때가 프랑스 혁명기념일이었던 바, 이 영화에서 테러를 공표한 날과 같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는 2016년 7월 14일 프랑스에서 개봉했는데, 하필 그런 일이 일어나 바로 내렸다고 한다. 사실, 영화가 진짜로 보여주는 내용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을 것이다. 북미에는 아예 제목을 바꿔서 개봉할 예정이다. 


영화에서 테러리스트들이 '투쟁'하는 대상은 파시스트이다. 여기서 말하는 파시스트란 다름 아닌 프랑스 극우파를 말할진대, 그들이 반 이민자 정책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기 때문일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은  반 이민자 정책으로 피해를 받은 이들의 극렬분자라고 할 수 있겠다. 


참으로 애매하고 함부로 말하기 힘든 문제이다. 내가, 우리가, 우리나라가 현재로선 그런 테러의 직접적 대상국이 아니거니와, 테러리스트들이 주로 속해 있는 나라나 인종,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도리를 들자면 테러라는 게 절대 용서받지 못할 짓이다. 그것도 직접적으로 죄 없는 민간인을 향한 테러는 말이다. 그건 도저히 이해할 수도, 이해해서도 안 되는 행위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반드시 있다. 나 또한 그 이유를 '종교' 때문이라고만 알고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테러는 전쟁을 불러 오고 전쟁은 또 다른 테러를 불러 온다. 이것들이 현생 인류가 소통하는 방법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에 가서는 교묘히 '테러'가 가지는 의미를 빗겨 가는데, 팝콘무비다운 약싹빠른 대처였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CIA, 바스티유 데이, 소매치기범, 악역, 액션, 음모, 킬링타임, 테러, 테러리스트, 프랑스 혁명기념일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진짜로 보여주려는 것은 슈퍼 히어로 개개인의 찌질한 이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5. 20. 08:00



[리뷰]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포스터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기대를 많이 했다. '마블 역사상 최고의 영화'라는 수식어가 개봉 전부터 난무했다. 얼마전 개봉한 DC '배트맨과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저조한 평가와 흥행을 완벽히 대체해줄 초대형 블록버스터 오락물임이 분명했다. 또한 '어벤저스 팀'에서 토르와 헐크가 빠진 대신 스파이던맨과 앤트맨이 합류해 전혀 새로운 조합이 탄생할 것을 기대했다. 


결정적으로 '내부 분열'이라는 소재도 흥미로웠다. 아이언맨으로 대표되는 '정부군'과 캡틴 아메리카로 대표되는 '반정부군'의 대립이 당연히 아이러니하게 다가와 전에 없는 궁금증을 유발했다. DC의 <다크나이트>나 마블의 <엑스맨>처럼 선악 구도를 탈피한 빅히어로들의 진지한 고민과 방향을 논할 거라 생각했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액션은 물론이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이하 "시빌 워")는 그 의도는 좋았지만 마지막으로 치달수록 그 훌륭함이 사라졌고 반면 액션과 긴박함은 좋았다. 다만 보는 관점에 따라 '마블 역사상 최고의 영화'라 칭할 수 있겠다. 그러기 위해선 한층 더 깊이 들어가 감독의 의도를 봐야 한다. 


슈퍼 히어로 어벤저스팀의 내부 분열


<시빌 워>는 어벤저스 팀을 대표하는 두 축인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고뇌에서 시작한다. 먼저 캡틴 아메리카는 어김 없이 동료들과 함께 악을 처단하기 위해 출동해 동네방네 휘저으며 상대하고 있었다. 그건 일상다반사라 그렇다 쳤지만, 우두머리 격을 처리하면서 많은 인명 피해를 입히게 된다. '뜻하지 않은 실수'였다. 캡틴 아메리카와 동료들은 이 문제로 괴로워한다. 


한편 아이언맨은 사업 설명회를 마치고 나왔을 때 누군가와 마주친다. 그녀는 아이언맨이 악을 처단하기 위한 성전에 참여했을 당시 그 여파로 뜻하지 않게 죽음을 당한 아이의 엄아였다. 아이언맨은 전에 없는 고민에 휩싸인다. 


그런 그들 앞에 국무장관이 찾아와 난데 없는 '슈퍼 히어로 등록제'를 들이민다. 어벤저스의 악 처단 성전이 너무 무분별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그들의 행동이 가져온 선의의 피해자들이 너무 많이 속출한다는 이유였다. 일면 합당한 이유가 있는 셈인데, 이로 인해 어벤저스는 반대하는 캡틴 아메리카 팀과 찬성하는 아이언맨 팀으로 분열한다. 결국 법에 저촉되는 캡틴 아메리카 팀을 아이언맨 팀이 쫓는 모습이 된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한 장면. 난데 없는 '슈퍼 히어로 등록제' 출현에 분열하는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시빌 워>는 어벤저스 팀이 반드시 부딪힐 문제를, 풀어야 할 숙제를, 비록 힘들지만 짚고 넘어가는 모습을 취한다. <엑스맨>이나 <다크나이트>처럼 자신들의 존재를 되돌아보는 보다 철학적이고 고차원적인 모습 말이다. 문제는 그 모습이 분열 과정에서만 조금 격렬하게 보여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복수와 개인적인 우정으로 치환된다. 분명 소중한 것이긴 하겠지만, 우주까지 뒤흔들 만한 어벤저스의 존재를 뒤흔들 만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액션은 <캡틴 아메리카> 특유의 투박하고 박진감 넘치고 오밀조밀하기까지 한 면을 잘 살렸다. 거기에 '선의의 피해자들 속출'을 의식한 듯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한 초대형 전투가 없어 장점이 극대화 되었다. 토르와 헐크가 빠지고 스파이더맨과 앤트맨를 합류시킨 건 그런 의미에서 어쩔 수 없었지만 적절하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들은 <시빌 워> 액션의 화룡정점을 이루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캐릭터 간의 갈등과 고뇌가 깊어야 했다. 캡틴 아메리카 팀이 도망을 다니면서까지 모두를 위한 일을 하려 하는데, 그게 어느 순간 친구 버키를 위한 것이 되면 안 되었다. 버키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확신하는 블랙 펜서의 순수한 개인적 복수심이 아이언맨 팀의 '슈퍼 히어로 등록제' 찬성의 논리와 함께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서 영화 중반에는 버키가 사건의 중심이 되버린 듯한 인상이었다. 영화의 논점을 흐리면서 산으로 가기 쉬운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한 장면. 캐릭터 간의 갈등과 고뇌가 더 깊어야 했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진짜로 보여주려는 것은 슈퍼 히어로 개개인의 찌질한 이면?


그런데 영화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영화가 조금은 달리 보인다. 어벤저스 팀의 존재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출발했지만, 결국은 히어로 각각의 존재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끝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것이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것부터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팀을 논할 수 없지 않을까. 


결국 그들도 인간일 수밖에 없다. 세상에 없을 출중한 능력을 지녔고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의적으로 목숨 바쳐 세계를 구하지만, 그들도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인간인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이 '슈퍼 히어로 등록제'를 둘러싼 팀의 분열과 대립이 아닌 슈퍼 히어로 개개인의 찌질한(?) 이면이었다면, 영화는 충분히 찬사를 받을 만한 지점에 도달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해도 그 둘을 이어주는 끈이 빈약한 건 사실이다. 그 끈은 다름 아닌 버키인데, 쉴드의 숙적 히드라가 만든 비운의 존재이자 캡틴 아메리카의 친구이다. 그가 누명을 쓴 가운데, 캡틴 아메리카 팀은 그의 뒤에 더 큰 무엇이 있다는 걸 알고 그와 함께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그들을 아이언맨 팀이 쫓고. 그 와중에 버키를 둘러싼 개인적 원한과 우정이 대결한다. 


이 영화에 용두사미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고, 앞과 뒤는 좋은데 가운데가 부실해 보인다. 그 때문에 뒤에서 말하고자 한 것이 앞에 비해 가려진 것이리라. 그것이 앞에 비해 덜 철학적이고 덜 히어로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시빌 워>는 조금 독특한 시선으로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마블 사상 최고의 작품'이란 수식어가 완벽히 와 닿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이다. 어벤저스 팀에 대한 진정한 고민은, 즉 이 영화에서 진짜로 말하고자 했던 바가 아니었던 바로 그 문제는 다음 편에 나올 거라 예상해본다. 그런 면에서 <시빌 워>는 전초전이었다. 그때 비로소 어벤저스 팀의 운명이 판가름날 것이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한 장면. 어벤저스 팀에 대한 진정한 고민은, 다음 편에 나올 것 같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갈등, 마블, 복수, 분열, 슈퍼 히어로 등록제, 시빌 워, 아이언맨, 액션, 캡틴 아메리카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블로그 이미지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by singenv

공지사항

  • 댓글에 대한 공지
  • [책으로 책하다 도서 목록]
  • <오마이뉴스> 서평/리뷰 송고 방침
  • 모든 이미지는 인용 목적으로 사용..

    최근...

  • 포스트
  • 댓글
  • 트랙백
  • 여전히 한국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 영화계 '왕들'이 귀환해 만든 위대..
  • 결혼에서 이혼으로 가는 선상의 순..
  • 개인 성장, 사회 변화와 함께 하는..
  • 밖은 초대형 허리케인 안은 초대형..
  • 더 보기
  • 이 작품이 사랑받지 않을 날이 오길..
    ㅇㅇ ㆍ 10.22
  • 이해하진 않더라도 또는 못하더라도..
    singenv ㆍ 10.01
  • 누구나 한번은 거쳐간 시간이지만..
    여강여호 ㆍ 10.01
  • 결국엔 보는 이들이 느끼는 나름의..
    여강여호 ㆍ 09.20
  • 위기는 항상 생기기 마련인데, 위기..
    singenv ㆍ 07.01

태그

  • 재미
  • 사랑
  • 욕망
  • 연기
  • 소설
  • 희망
  • 책으로 책하다
  • 죽음
  • 행복
  • 아포리즘
  • 미국
  • 가족
  • 인간
  • 역사
  • 삶
  • 여성
  • 현실
  • 천재
  • 중국
  • 피해자
  • 만화
  • 영화
  • 책
  • 가해자
  • 전쟁
  • 넷플릭스
  • 관계
  • 성장
  • 폭력
  • 일본

글 보관함


  • 2019/12
    (5)

  • 2019/11
    (13)

  • 2019/10
    (22)
«   2019/12   »
일 월 화 수 목 금 토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링크

카테고리

다양한 시선 (1253)N
신작 열전 (546)
신작 도서 (296)
신작 영화 (250)
넷플릭스 오리지널 (51)N
모모 큐레이터'S PICK (32)
지나간 책 다시읽기 (108)
한국 대표 소설 읽기 (11)
오래된 리뷰 (185)N
생각하다 (231)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 연재 (5)
그대 그리고 나 (17)
서양 음악 사조 (8)
인권 선언 문서 (4)
조선경국전 (5)
중국 영화사 개괄 (5)
출판계 살리기 프로젝트 (3)
카프카의 편지 (6)
팡세 다시읽기 (14)
명상록 다시읽기 (12)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46)
감독과 배우 콤비 (10)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6)
궁극의 리스트 (8)
제9의 예술, 만화 (14)
독립영화의 힘 (4)
생생 스포츠 (10)
내맘대로 신작 수다 (17)
첫 문장-아포리즘 (8)

카운터

Total
1,950,261
Today
192
Yesterday
193
방명록 : 관리자 : 글쓰기
singenv's Blog is powered by daumkakao
Skin info material T Mark3 by 뭐하라
favicon

책으로 책하다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 태그
  • 링크 추가
  • 방명록

관리자 메뉴

  • 관리자 모드
  • 글쓰기
  • 다양한 시선 (1253) N
    • 신작 열전 (546)
      • 신작 도서 (296)
      • 신작 영화 (250)
    • 넷플릭스 오리지널 (51) N
    • 모모 큐레이터'S PICK (32)
    • 지나간 책 다시읽기 (108)
      • 한국 대표 소설 읽기 (11)
    • 오래된 리뷰 (185) N
    • 생각하다 (231)
      •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 연재 (5)
      • 그대 그리고 나 (17)
      • 서양 음악 사조 (8)
      • 인권 선언 문서 (4)
      • 조선경국전 (5)
      • 중국 영화사 개괄 (5)
      • 출판계 살리기 프로젝트 (3)
      • 카프카의 편지 (6)
      • 팡세 다시읽기 (14)
      • 명상록 다시읽기 (12)
    •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46)
      • 감독과 배우 콤비 (10)
      •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6)
      • 궁극의 리스트 (8)
    • 제9의 예술, 만화 (14)
    • 독립영화의 힘 (4)
    • 생생 스포츠 (10)
    • 내맘대로 신작 수다 (17)
    • 첫 문장-아포리즘 (8)

카테고리

PC화면 보기 티스토리 Daum

티스토리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