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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여성'에 해당되는 글 4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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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능적인 동작으로 몸과 다시 교감하라! <폴 위의 그녀들> 2021.02.26
  • 소년에서 소녀로, 그리고 발레리나로의 험한 길 <걸> 2021.01.25
  • 역사에 길이 남을 연쇄 살인마 '요크셔 리퍼' 이야기의 기막힌 이면 <더 리퍼> 2021.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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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이라는 체스를 사는 불우한 천재 소녀 이야기 <퀸스 갬빗> 2020.11.13
  • 아서왕 전설 재해석의 올바른 예를 보여 주다 <저주받은 소녀> 2020.09.14
  • 특별한 여성들의 위대한 유산이 모두에게 닿길 바라며...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2) 2020.08.25

관능적인 동작으로 몸과 다시 교감하라! <폴 위의 그녀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2.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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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폴 위의 그녀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폴 위의 그녀들> 포스터. ⓒ넷플릭스

 

'봉춤'이라고 불리는 '폴댄스'라는 이름의 운동은 곡예의 일종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여러 갈래로 갈라졌는데, 그 관능성 짙은 자세와 느낌을 알아 챈 스트립 클럽에서 스트립쇼의 일환으로 폴댄스를 가져왔고, 기계체조의 일환으로 일반인이라면 하기 어려운 동작을 주로 연마했으며, 격조 높은 예술성을 지닌 채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요가나 필라테스처럼 일반인 대상으로 한 피트니스의 한 방면으로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폴댄스를 '야하게'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폴댄스 아닌 '봉춤=야하다'라는 선입견을 뚫고 다분히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의 의한 피트니스로 폴댄스를 대중에 알리고자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폴 위의 그녀들>은 할리우드 배우 실라 켈리가 만든 인기 최고의 피트니스 'S 팩터 스튜디오'의 폴댄스 초급반 6개월 과정을 따라간다.

 

여성 몸의 곡선이 S선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는 'S 팩터', 다양한 도시에서 여성들은 그곳에 왜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어떤 변화를 맞게 될까. 실라 켈리는 그들에게 어떤 새로운 삶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과연 폴댄스만 춘다고 몸과 마음과 인생이 송두리째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 그런가 하면, 변호사 직업을 가진 폴댄스 선수 에이미가 5주 뒤에 있을 금문교 봉춤 챔피언십을 준비하는 여정을 따라가는데 그녀의 삶이 참으로 기구하다. 폴댄스로 치유받고 있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몸과 다시 교감하기 위한 폴댄스

 

S 팩터의 6개월 초급자 과정의 처음은 몸과 마음을 열고 터놓는 것이다. '왜'를 먼저 정립한 후 본격적으로 '어떻게'를 시작해야 한다. 우선 실라 켈리가 밝힌 S 팩터의 이유는, 관능적인 동작으로 몸과 다시 교감하는 것이다. 하여 거울도 없고 평가도 없다. 이후 참가자들이 풀어놓는 참여의 이유는 비슷한 듯하면서 다르다. 

 

살쪘다는 수치심으로 언젠가부터 거울을 보지 않게 되었다는 참여자, 평생 자신의 몸을 부정하면서 살아왔다는 참여자, 자신을 사랑하고 싶어 참여하게 되었다는 참여자, 몸이 너무 조숙하게 태어나 놀림받지 않으려 평생 몸을 멀리했던 참여자, 최근 남편을 잃고 자신 그리고 사람들과 다시 친밀해지고 싶다는 참여자, 어린 나이에 지울 수도 잊을 수도 없는 끔찍한 성추행을 당해 몸과 마음으로 '성'을 표출할 수 없게 된 참여자 등 다른 듯하나 비슷한 점이 보인다. 

 

그들은 폴댄스를 통해 몸의 족쇄를 풀고 어떻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지 배우고 싶어 한다. 섹시해지자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섹시한 동작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고 또 자신의 몸을 편하게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체력을 기르는 등 역량 강화의 역할도 뒤따른다. 몸과 마음을 두루두루 챙기고자 하는 바람이다. 

 

한편, 대회를 준비하며 남다른 자세로 폴을 대하는 에이미도 S 팩터의 초급자들과 다름 없는 마음가짐이다.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건 부차적인 것이고, 사실 자신의 몸과의 관계를 재발견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해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잘 알지 못하는 것, 알면서도 숨겨 왔던 것, 알고 싶은 것들을 관능적인 동작의 폴댄스로 알아가고 또 정립시키려는 것이다. 

 

몸의 변화에서 삶의 변화까지

 

실라 켈리는 말한다, 우린 생명력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이 문화는 여성들의 생명력을 뺏기만 한다고 말이다. 그녀는 폴댄스를 여성들의 생명력을 되찾는 여정의 중심축으로 잡고 몸의 성적 매력을 극대화시키고자 한다. 몸의 변화가 마음의 변화를, 마음의 변화가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여정이 계속될수록 참여자들의 분위기와 표정과 몸짓이 달라지는 게 보인다.

 

S 팩터는 변화하고 치유하고 자신을 되찾아가는 게 진정한 목적이기에 폴댄스 강사뿐만 아니라 심리학자이자 상담사인 버먼 박사를 대동해 얘기를 듣는데, 그녀가 말하길 과정의 목적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참여자들의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으니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많은 참여자들이 그 어디서도 말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풀어놓는데,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이 참으로 많았다. 성적인 폭행 말이다. 하여, 여'성(性)'을 멀리하고 억누르고 감추려 했다. 그녀들은 폴 위에서 비로소 여'성(性)'을 가까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폴댄스를 기술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대하는 이들에게 '제닌 버터플라이'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태양의 서커스단에서 5년 동안 공중 곡예사로 공연했던 그녀는 세계 폴댄스 챔피언이기도 하다. 그녀 또한 폴댄스가 치유이자 해방이라고 말한다. 인생의 다른 일은 전부 잊고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 덕분에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 제닌 버터플라이가 폴댄스를 공연의 일환으로만 대할 때 실라 켈리는 폴댄스를 교육의 일환으로 확장시킨 것. 그들은 따로 또 같이 폴댄스의 지평을 넓히고 폴댄스만의 깊이를 개척하고 있다. 

 

몸을 돌보듯 마음을 돌보고, 마음을 챙기듯 몸을 챙긴다

 

내 몸 내 뼈를 좋아하고 신뢰하고 자랑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대다수가 꼴 보기 싫어하고 멀리하며 보여 주기 꺼려 할 것이다. 외형만을 중시하는 시대에 내면을 받아들이고 챙겨야 한다는 생각의 발현이 잘못 받아들여진 게 아닌가 싶다. '몸=외모'인 건 분명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몸만 중시하는 세태를 멀리해야 하는 것이지 겉으로 드러난 '몸'을 멀리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다큐멘터리가 지향하는 바가 '몸'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몸을 경시해 마음이 다친 이들을 치유하려는 목적이기에, 마음보다 몸을 우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또는 몸을 우선 챙겨 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하고 있다. 몸을 챙기듯 마음을 챙기고, 마음을 돌보듯 몸을 돌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몸과 마음, 즉 '심신(心身)'은 따로 아닌 같이 있어야만 한다. 

 

필자 또한 봉춤 또는 폴댄스를 대하거나 생각할 때 부정적인 면모 혹은 일반적이지만은 않은 면모만 떠올랐었다. 몸에 대해 보수적이고 '잘못된' 선입관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폴 위의 그녀들>로 한순간에 180도 달라지진 못하겠지만 상당 부분 돌려놨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누군가도 그리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럴 만한 충분한 힘을 가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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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팩터, 관능, 마음, 몸, 변화, 봉춤, 삶, 여성, 폴 위의 그녀들, 폴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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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에서 소녀로, 그리고 발레리나로의 험한 길 <걸>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1. 1. 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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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걸>


영화 <걸>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벨기에 영화 시장, 자국 영화 점유율은 터무니 없이 낮은 반면 할리우드 영화와 프랑스 영화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강국 프랑스 옆에 붙어 있기에 어쩔 수 없기도 할 텐데, 특히 벨기에의 3개 행정 구역 중 하나인 남부의 왈롱 지역이 여러 모로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왔고 받고 있다. 그곳에서 그 유명한 '다르덴 형제'가 태어나 활동했다. 하지만 정작 벨기에 영화는 왈롱이 아닌 북부의 플란데런이 중심이라 할 만하다. 왈롱이 프랑스 영화와의 경계가 모호한 것과 다르게 플란데런은 벨기에 영화의 정체성을 나름대로 확립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벨기에 영화와 감독이 우리나라에까지 이름이 알려진 경우는 많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다르덴 형제와 그의 영화들이 제일 알려졌을 테고, <제8요일>로 유명한 자코 반도르말 감독이 눈에 띈다. 2010년대 들어 마이클 R. 로스컴이 세계 유수 영화제에 좋은 영화를 내놓으며 우리나라에도 개봉을 이어왔고, 그의 영화들에 빠짐 없이 출현했거니와 할리우드에 안착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 마티아스 쇼에나에츠도 있다. 


그런가 하면, 2018년 혜성같이 등장해 전 세계 수십 개의 영화제에서 이름을 알렸을 뿐만 아니라 제71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어 4관왕(황금카메라상, 국제비평가협회상, 퀴어 황금종려상, 남우주연상)을 휩쓴 루카스 돈트 감독의 <걸>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이창동 감독의 <버닝>을 화제를 뿌린 그때 말이다. 우리나라엔 3년 여만인 2021년 새해에 개봉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어떤 얘기를 하고 있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의 몸으로 태어나 여성이 되고자 하는 라라


16세 '소녀' 라라는 남들보단 뒤늦게 발레리나가 되고자 한다. 기본적인 동작도 힘들 테지만, 피나는 연습을 할 준비는 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그녀는 성호르몬 억제제를 맞으며 여성이 되고자 한다. 비록 몸은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그녀는 이미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2년여 동안 여러 모로 힘든 과정이 되겠지만, 가족의 전폭적인 물리적·정신적 지지가 있어 든든하다. 


라라는 발레 기숙 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하고자 8주간의 수습 기간을 보낸다. 그녀는 성기를 티나지 않게 하고자 강력한 하얀색 천테이프로 그 부분을 동여맸다. 활동할 때는 배변활동을 아예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저어하게 된다. 몸무게가 계속 빠지니 몸은 허약해지고 중요한 수술에 차질이 생길지 모를 지경에 다다른다. 의사와 아빠는 그녀의 행동에 제지를 가하지만, 그녀로선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성기가 못마땅한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그녀가 여자탈의실을 이용하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지 조사하기도 한다. 


이미 여성인 라라는, 여성의 몸을 갖고자 그리고 발레리나가 되고자 피나는 노력을 이어간다. 가족들은 응원해 주고, 의사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며, 학교에서는 최대한 존중해 주려 한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모든 게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아니, 모든 건 아닐 것이다. 외부요인이 아닌 내부요인일 텐데, 꾸준히 호르몬 주사를 맞아도 큰 진척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남성의 몸 말이다. 하루빨리 수술할 날이 오길 기다리지만, 수술이 잘 되지 않을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16살, 모든 게 혼란스러울 나이에 당면한 큰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세계적인 발레리나 노라 몽세쿠흐의 실화


<걸>은 남성의 몸으로 태어나 발레리나를 꿈꿔 결국 이뤄 내고야 말았던 세계적인 발레리나 '노라 몽세쿠흐'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성장 영화이다. 처음엔 자신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걸 꺼려해 거절했지만, 고심 끝에 전폭적인 지지와 참여로 돌아선 노라 몽세쿠흐. 영화가 그녀의 이야기를 100% 담고 있진 않겠지만 그녀가 인생을 통해 자연스레 전하게 되는 이야기가 영화에 담겨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는 세상에 맞선 소수자 영웅의 투쟁과 역정과 성공을 담고 있지 않다. 그저 평범한 한 사춘기 여자아이의 남들보다 힘든 성장 이야기를 담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남들보다 늦게 발레리나로서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고, 남들과는 다르게 남성의 몸을 태어났지만 여성의 몸을 가지고 싶어한다. 젠더와 섹스가 일치하는 시스젠더가 아닌, 젠더와 섹스가 일치하지 않는 트렌스젠더이기 때문이다. 


젠더 담론의 한가운데에 있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미 트랜스젠더를 이룬 와중에 아직 트랜스섹스를 이뤄내지 못한 상태의 안타까움과 함께 선천적으로 태어난 남성의 몸에서 여성의 몸으로 바꾸는 과정이 얼마나 고난할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가 하면, 라라가 여성으로서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으로 왜 머리를 기르고 조신하게 행동하고 스커트 또는 짧은 반바지를 입으며 액세서리를 달고 화장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가기도 한다. 물론, 여성이라는 점과 상관없이 그런 것들을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또 모티브로 삼은 실존인물 노라 몽세쿠흐가 좋아한 모습일 수 있겠지만 여성이라며 보여 주는 모습에의 선택이 너무 평면적이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한편 입체적으로 하려 했다면 어디까지 어떤 식으로 보여 줘야 했을까 싶기도 하다. 


10대 중반의 지독한 성장담


영화는 대신, 사춘기에 당면한 10대 중반의 어리지만 어리다고만 할 수 없는 라라의 지독한 성장담을 한 축으로 형성해 보여 준다. 대다수 남들과는 다른, 그래서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역경을 몸소 체험하며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미 여자이지만 내 몸은 여전히 남자이고, 나를 대하는 모든 사람이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으며, 내가 하고자 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고 내가 잘하고 있긴 한 건지 모르겠다. 


남자의 몸에 적합한 '발레리노'가 아닌 여자의 몸에 적합한 '발레니나'가 되기로 결심한 '남자의 몸'을 가진 '여자' 라라, 발끝으로 서는 기술인 푸앵트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어 고전을 면치 못해 말그대로 발에 피나는 연습을 하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얼굴이 찡그려지고 가슴은 짓이겨지는 듯하지만 응원하게 된다. 물론 그녀만큼 아니 그녀보다 훨씬 더 노력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일 테지만 그녀를 더 응원하게 되는 건, 그녀가 자신의 선택을 믿고 후회하지 않으며 나아가려 하는 태도 덕분이다. 비록 자못 흔들리긴 하지만 말이다. 


누구나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순간순간 작은 선택을 하고, 결정적일 때 큰 선택을 하기도 한다. 다름 없는 건, 수많은 선택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룬다는 것이다. 라라는 되돌리기 힘든 큰 선택을 했고, 후회 없이 책임을 지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또 다른 선택들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가 남의 것처럼 느껴지고 보여지지 않는다. 비록 현상 자체는 대다수 나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지만, 본질은 대다수 나와 완전히 동일선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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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길이 남을 연쇄 살인마 '요크셔 리퍼' 이야기의 기막힌 이면 <더 리퍼>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1. 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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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 리퍼>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 리퍼> 포스터. ⓒ넷플릭스



지난해 11월 13일 영국에서 소식이 날라왔다. 일명 '요크셔 리퍼'라고 불렸던 피터 서트클리프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치료를 거부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이미 심근경색과 당뇨 등 기저질환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요크셔 리퍼는 영국 역사상 최악의 살인범으로 손꼽히며, 19세기 전설의 살인마 '잭 더 리퍼'에서 이름을 따올 정도의 악명을 떨쳤다. 


1970년대 영국 북부의 웨스트요크셔, 한때 부유했던 그곳은 외부 산업의 유입으로 급속한 쇠퇴를 거듭해 몰락의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 1975년 10월 끔찍한 범죄 사건이 일어난다. 28살의 이혼여성으로 네 아이를 키우고 있던 '윌마 매캔'이 불과 집에서 140m 떨어진 곳에서 살해당한 것이었다. 살인범은 망치로 그녀의 뒤통수를 가격하곤 칼로 복부를 수 차례 찔렀다. 현장에는 범인을 유추할 만한 단서가 전혀 없었다.


경찰과 언론은 사건의 또 다른 면에 주목한다. 피해자의 시체가 발견된 곳이 채플타운 홍등가 근처라는 점과 그녀의 평소 행실을 추적한 결과, 윌마 매캔이 매춘부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매춘부 살인'은 아무에게도 큰 관심을 끌지 않고 지나가는 사건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지나가고 있던 살인 사건은, 이듬해 1월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측되는 살인 사건이 또다시 일어나면서 부상하는 듯했으나 역시 단서를 찾을 수 없었거니와 '매춘부 살인'이었기에 묻히고 말았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1977년부터 시작된다. 


'요크셔 리퍼'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 리퍼>는 1970년대 후반 영국 북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희대의 살인마 '요크셔 리퍼' 이야기를 심도 깊게 다룬다. 넷플릭스는 그동안 여러 범죄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가해자, 피해자, 언론, 재판, 경찰, 검찰 등에 포커스를 맞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확실히 했던 바 이번엔 어떤 시선으로 독보적인 관점을 전할까 기대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찰 그리고 피해자에 포커스를 맞췄다. 너무나도 유명한 살인마 요크셔 리퍼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여러 모로 유익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겠다. 요크셔 리퍼가 너무나도 '교과서적'으로 완벽한 살인 행각을 저지른 것도 있지만, 경찰의 대처가 가히 세계 경찰 역사상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경찰의 오판으로 피해자들은 이중 삼중의 피해를 봤다. 


1977년 2월과 4월 동일범의 소행이 확실한 매춘부 대상 살인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경찰은 인력을 두 배 이상으로 늘려 범인 추적에 속도를 낸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 사이, 6월과 10월에 또다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다른 점이 있었다. 6월의 피해자 제인 맥도널드는 매춘부가 아닌 미성년자였고, 10월의 피해자 진 조던은 리즈와 브래드포드가 아닌 거리가 먼 맨체스터에서 당했던 것이었다. 6월의 충격적 미성년자 살인 사건 후, 언론에서도 본격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 웨스트요크셔 지방 소도시들에 퍼져 있던 경찰 본부가 웨스트요크셔 경찰청으로 흡수통합된다. 이후 긴밀감은 줄어들고 지역 공동체에 관한 세세한 파악과 정보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당시 영국 경찰 수뇌부의 거시적인 오판도 이 희대의 연쇄 살인 사건에 큰 몫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게 전부라면 섭섭하다. 경찰은 요크셔 리퍼를 쫓는 과정에서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미시적인 오판들을 수없이 저지른다. 이 연쇄 살인은, 요크셔 리퍼와 웨스트요크셔 경찰청의 합작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1977년이 가고 1978년이 밝았다. 요크셔 리퍼의 살인 행각은 끊기지 않고 1980년까지 다양한 곳에서 이어진다. 1978년 1월 두 명 그리고 5월, 1979년 5월과 9월, 1980년 8월과 11월... 요크셔 리퍼 피터 서트클리프의 손에 살해당한 이가 13명, 살인 미수로 그친 이가 7명이었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 햇수로 6년이 지나는 동안 경찰은 요크셔 리퍼가 누구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경찰에겐 이미 충분한 단서들이 있었고 넘치고 흐를 듯한 인력 또한 갖추고 있었다. 몇몇 현장들에 동일한 트럭의 타이어 자국이 남아 있었고 신발 자국도 남아 있었으며 5파운드 신권 지폐도 발견되었다. 결정적으로, 기적적으로 생존한 이들 중 한 명이 거의 정확한 인상착의를 기억하고 있어 몽타주도 확보했다. 이후 사실상 웨스트요크셔 경찰 전 인원이 달려들어 조사하고 추적하고 신문하고 제보를 받았다. 경찰은 또 다른 수단으로, 범인에게 공식적 자수 요청을 하기도 했고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결정적 증거를 얻는다. 요크셔 리퍼가 경찰청장 앞으로 직접 보낸 편지 그리고 녹음 테이프였다. 경찰 당국은 이것들을 100% 신뢰하며 곧 살인마를 잡을 걸 기대해 마지 않았다. 특히, 녹음 테이프 속 억양에 주목해 지역 범위를 굉장히 한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잡을 수 없었다. 경찰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피해 당사자가 될지 모를 여성들에게 "밤에 혼자 돌아다니지 말아 달라"고 말할 뿐이었다. 범인을 잡지 못하는 자신들의 잘못을 여성들에게 교묘히 전가하는 짓이었다. 


연쇄 살인마 요크셔 리퍼를 잡지 못해 영국 전역이 공포에 떨던 1977년 어느 날, 여성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경찰들이 계속해서 주지시킨 '여성의 밤길 통행 금지'에 대항해 '밤을 되찾자(Reclaim the Night)'를 구호로 내세운 것이다. 살인범 한 명에게 놀아난 '세계 최고급 전력'을 자랑하는 웨스트요크셔 경찰 당국이 짊어지기 마땅한 짐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한 번 피해를 본 대상이 이중 삼중으로 계속해서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게 쉽고 편해서 그렇다. 


경찰의 행각, 피해자의 피해


1981년 1월, 웨스트요크셔 경찰로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사건이 영원히 미제로 남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심정으로 있었을 때 범인 요크셔 리퍼가 잡힌다. 사우스요크셔 셰필드에서 자동차에 어느 여자와 동승해 있다가 자동차 번호판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에 의해 붙잡힌 것이다. 지난 6년간의 피나는 노력이 그야말로 한순간의 우연으로 종지부를 맺어 버렸다. 그것도 웨스트요크셔가 아닌 사우스요크셔에서. 


그럼에도, 영국 전역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살인마가 붙잡힌 건 모두가 환호할 만한 일이었다. 특히 경찰 수뇌부가 함박웃음을 지었는데, 그 웃음이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좋게 보일리 만무했다. 일반 대중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신적 피해보상을 청구하고도 남음이었다. 지난 6년을 복기해 보니, 경찰의 황당한 행각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생존자 한 명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에선 농담하지 말라고 비웃은 적이 있다. 하급 경찰 한 명이 피터 서트클리프를 조사했고 몽타주와 너무 똑같은 얼굴 등으로 석연치 않아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상부에선 용의자의 억양이 (훗날 가짜라고 판명난) 녹음 테이프 속 목소리가 다르다고 하여 지나쳐 버린 적이 있다. 이를 포함해 피터 서트클리프를 9번이나 자세하게 신문했지만 모두 풀어줬다. 그리고, 요크셔 리퍼가 붙잡혀 종신형 30년 형을 확정지은 3년 후 피터 서트클리프는 붙잡힐 당시엔 그러지 않았지만 지금은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주장으로 당국을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여, 안전한 정신병원인 브로드무어로 이감되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요크셔 리퍼'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연쇄 살인마의 행각에 쏠려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의 극악무도한 행각(망치, 스크루드라이버, 칼 등을 써서 살인 및 시신 훼손)과 주도면밀한 뒤처리(경찰이 절대 잡을 수 없이 그 어디에도 결정적 단서를 남기지 않음) 등이 누군가에겐 정녕 '찬사'를 불러일으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경찰의 믿기 힘든 행각들과 피해자(여성)의 이중 삼중 피해가 묻혀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 리퍼>는 경찰의 행각을 수면 위로 올려 전면에 세우고 피해자의 계속되는 피해 역시 수면 위로 올렸다. 하여,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이들은 이 작품으로 제대로 된 시각을 정립하게 되었을 테다. 누구나 꼭 한 번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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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더 리퍼, 여성, 연쇄 살인마, 영국, 요크셔 리퍼,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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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막장 가족은 불행하지 않다! <애비규환>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2. 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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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애비규환>


영화 <애비규환>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대학생 토일은 1년 꿇은 고등학교 3학년생 호훈을 가르치다가 눈이 맞아 임신을 하게 되고 5개월간 숨겼다가 양가 부모님들께 알리며 '출산 후 5개년 계획'을 세워 제출한다. 하지만 토일의 부모님 선명과 태효는 그녀를 지지해 주지 않고 큰 상처를 안기기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호훈의 부모님은 토일의 임신을 축하하며 한참 모자란 아들을 데려가 결혼하라고 종용한다. 갈피를 잡지 못한 토일은 무작정 대구로 내려간다. 


대구는 토일이 태어나 어렸을 적 살았던 고향으로, 연락이 끊긴 친아빠 환규를 찾고자 내려간 것이었다. 최씨 성의 기술가정 선생님, 이 단서 하나로 대구의 학교들을 모조리 뒤지는데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환규와 맞딱뜨리게 되는데, 토일은 정작 고생 끝에 찾은 그를 두고 서울로 올라와 버린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와 보니 호훈이 사라진 게 아닌가?


호훈은 왜 사라진 걸까? 도망간 걸까? 토일은 호훈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부모님과 함께 나서려던 찰나, 대구에서 올라온 환규와 맞딱뜨린다. 환규는 토일이 급하게 서울로 향하면서 놔두고 간 짐을 가지고 와선 슬쩍 보고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말이다. 이왕 이렇게 된 지사, 토일을 필두로 선명과 태효 그리고 환규까지 함께 호훈을 찾아 나선다. 이 막장 가족의 미래는?


어벙한 예비 아빠, 서먹서먹한 현재 아빠, 무책임한 옛날 아빠


영화 <애비규환>은 센스 있는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참상'이라는 말뜻을 가진 사자성어 '아비규환'을 비튼 제목일 테다. 사자성어에서의 '아비'는 불교의 8대 지옥 중 가장 아래에 있는 지옥으로 '잠시도 고통이 쉴 날 없다'는 걸 뜻하고, '규환'은 불교의 8대 지옥 중 4번째 지옥으로 '고통에 울부짖는다'는 걸 뜻한다. 이 영화를 이루는 본질의 한 축을 보여 준다 하겠다. 


그런가 하면, '애비'는 아버지의 낮춤말인 '아비'의 경북 지역 사투리로 영화의 주요 배경인 서울 그리고 대구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의 대표적 유교 도시인 대구, 그리고 유교에서 '죄악'과 다를 바 없을 이혼과 재혼과 혼전임신의 아이러니가 부딪힌다. 또한, 영화에는 토일을 둘러싼 애비들이 얼굴을 비추는데 호훈, 태효, 환규가 그들이다. 


토일의 어벙한 아기 예비 아빠 호훈, 성년의 나이라지만 어른은 되지 못한 것 같은 이 애어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토일의 서먹서먹한 현재 아빠 태효, 15년이나 함께 살며 태효로선 최선을 다해 아빠 노릇을 하려 했지만 토일은 여전히 마음을 열지 못한 것 같다. 토일의 무책임한 옛날 아빠, 아빠 체질이 아니었다며 도망 가 버려 토일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긴 장본인인데 지금 이런 식으로 나타나면 어쩌자는 건지? 


두 여성의 선명한 성장


제목이나 캐릭터 등이 모두 애비들을 향하지만, 영화가 정작 보여 주려 하는 건 두 여성이다. 엄마 선명과 딸 토일, 그중에서도 특히 토일로 똑부러지는 계획으로 현재와 미래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성격과 능력을 선보이는 것이다. 그녀는 누군가 아니 대부분의 시선에서는 '망했다'고 생각할 만한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출산 후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옛날 아빠를 찾아가고 현재 아빠와 화해하고 예비 아빠를 찾고... 홀로 고군분투하며 퍼즐을 완벽하게 짜맞추고자 한다. 그 자체로 대단하고 대견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끝나면 너무 일차원적인 듯?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것만이 여성으로서 우뚝 서는 방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들이 100% 완벽하지 않아도, 그래서 망해 버려도, 대단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하거니와 불행하지 않고 이상할 것도 없다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성장하는 여성을 사려 깊게 바라보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여성의 유대 관계는 특별한가. 특별할 게 없지만 특별하게 만드는 게 세상이 아닐까. 세상의 편견 어린 시선, 그 때문에 엄마 선명은 이혼과 재혼으로 힘들어했고 토일은 혼전임신을 했음에도 완벽을 기하는 성격과 능력으로 애써 아닌 척하다가 어느 순간 두려움이 폭발해 버린다. 그런 그녀에게 힘이 되는 건, 비슷한 경험을 겪은 엄마다. 엄마 선명의 "이혼해서 불행한 게 아니라 불행해서 이혼한 거야"라는 한마디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인생에 큰 결정을 한 후 잘못 되어도 불행할 필요는 없다는 성찰.


불행할 이유가 없다


영화는 그동안 수없이 봤던 전형적인 막장 가족의 틀을 가져왔다. 앞서 언급했던 바, 이혼과 재혼과 혼전임신 말이다. 거기에 예비 아빠가 될 작자는 비록 성년의 나이이지만 1년 꿇은 고등학생으로 미래가 불투명하다. 사실, 이 영화에서 그 어딜 둘러 봐도 '고통'스럽지 않은 데가 없다. 특히 토일로서는 과거에도 고통이었고 현재도 고통이며 미래도 고통일 예정인 듯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고통스러울 새가 없다. 왜?


'톤 앤 매너'라고 하면 맞을까. 톤은 어조, 억양, 색조, 분위기 등을 말할 테고, 매너는 방식, 태도 등을 말할 테다. 이 영화는 세상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막장 가족의 사항들을 불행할 이유가 없는 분위기와 태도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게 왜 불행할 일이지? 그게 왜 좋지 않은 일이지? 그게 왜 막장이지?'라고 생각해 버리는 순간,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들. 


그래서 영화는 무겁지 않게 자못 코믹하고 통통 튀고 자유분방하게 외피를 구성한 듯하다. 여러 유명 영화의 명장면을 이 영화만의 톤 앤 매너로 오마주한 것들이 빛을 발한다. 그렇지만, 외피를 걷어 내면 남는 진지한 관찰과 통찰과 성찰은 지난 시대와 지금의 시대와 다가올 시대를 진지한 어조로 생각하게 만든다. 감독은 참으로 똑똑하게, 말하고자 하는 바와 진짜  어의도를 어렵지 않게 전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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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막장 가족, 불행, 성장, 아빠, 애비규환, 엄마,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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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디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찾아오길 <부디, 얼지 않게끔>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20. 12. 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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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도서] <부디, 얼지 않게끔>


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 표지. ⓒ자음과모음



한국소설이 짧아진, 정확히 말해 분량과 호흡이 짧아진 역사가 10여 년 된 것 같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난 세기 IMF 사태의 한복판 1998년에 작가정신 출판사에서 '소설향' 시리즈로 중편 소설들을 선보인 바 있다. 독자는 책 살 돈이 없었고 출판사는 책 만들 돈이 없던 시절의 고육지책이자 혁신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10여 년이 흐른 후 2009년엔 민음사에서 '민음 경장편' 시리즈를 출범했는데, 당시 트위터로 대변되는 호흡 짧은 콘텐츠의 대세화에 발맞춘 결과물이었다. 앞선 소설향은 2006년에 마감했다가 2019년에 부활했고, 민음 경장편은 2012년에 마감했다가 이듬해 '오늘의 젊은 작가'로 이어졌다. 


이 두 출판사의 시리즈들 말고도 2010년대 중반 이후 경장편 혹은 중편(이하, '경장편') 시리즈는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다. 이와 같은 소설계의 대량공급과 대량수요는 에세이계로도 넘어갔고 말이다. 모두가 다 성공했다고 할 순 당연히 없겠지만, 대세를 넘어 주류가 된 건 사실이다. 한국소설계에 장편과 단편 말고도 엄연히 경장편이 생긴 것이다. 단행본 시리즈가 생겨서 성공을 거뒀으니, 소설 단행본 시장의 밑바탕을 여전히 단단하게 지키고 있는 문학상도 추세가 바뀐 건 당연지사. 장편 자리에 경장편이 떡 하니 자리를 잡았다. 


한국문학계의 주요 축 중에 하나인 자음과모음이 이를 선도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만큼, 지난 2018년에 '경장편소설상'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한참 전인 2009년엔 창간 1년 만에 '신인문학상'에 경장편 부문을 신설하기도 했다. 하여,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은 3회째까지 진행되었는데 3회 수상작 <부디, 얼지 않게끔>(자음과모음)이 '새소설' 시리즈 여덟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120mm*186mm 크기, 200여 페이지의 작디작은 책으로 말이다.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이 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전해 줄까. 


'변온인간'이 되다


여행사로 보이는 회사 사무실, 대학생들이 베트남 사파로의 단체여행을 주문했다. 그런데 경리 직원을 일정에 포함시켜 줬으면 하는 요구가 있다.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 본 적 없다는 송희진 주임은 할 일도 많은데 별 것 아닌 일을 처리하러 베트남까지 갈 수 없다며 화를 낸다. 어찌 타일러서 가게 되었는데, 베트남을 수시로 오갔던 담당인 내(최인경 대리)게 잘 인솔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다만 송희진은 더위를 엄청나게 잘 타는 타입이라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사파는 타 베트남 지역보다 훨씬 선선해서 나쁘지 않을 것이었다. 


최인경과 송희진은 대학생 단체를 데리고 하노이를 거쳐 사파로 갔다. 별다를 게 없었던 여정은, 그러나 최인경의 목덜미를 계속해서 주시하는 송희진 때문에 조금 삐그덕 대는 듯했다. 결국 터지고 만 최인경은 송희진에게 쏘아부치는데, 그녀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것이었다. 송희진은 최인경이 이 더운 베트남에서 땀 한방울, 그것도 목덜미에서 나지 않는 걸 보고 의아하던 참이었다. 송희진에게 설득된 최인경, 둘은 사우나를 찾아 실험해 보고 확신한다. 최인경이 '변온인간'이 아닐까? 땀도 안 나고 온동에 따라 체온도 변하는 변온동물 말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둘, 최인경의 인체의 비밀은 둘 만의 비밀로 남겨 두기로 한다. 그리고 최인경은, 아니 송희진과 함께 둘은 변온동물에 대해 깊이 파기 시작한다. ('변온인간'은 찾을 수 없었다.) 최인경이 진짜 변온인간이라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을 지나 겨울이 다가오면서 고비가 시작될 터였다. 뭔가를 변화시킬 시간이 많지 않았고, 그럴 기회가 마지막일지 몰랐다. 최인경, 그리고 송희진은 최인경의 실체를 확인하고 최인경을 살릴(?)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최인경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걸까?


두 여성의 '연대'


두 젊은 여성의 이야기가 거의 전부를 이루는 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을 말하기에 앞서, '작가의 말'을 빌려 작년 10월과 11월 잇따라 세상을 떠난 故 설리와 故 구하라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세상을 떠난 직후 말 못할 자극적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건 그들이 절정의 인기를 누리(다가 조금의 침체기를 겪)던 젊은 여성 아이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 둘이 소문난 절친이었기 때문이기도 할 테고. 그들이 왜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는지 진지하게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고인을 대하진 못했을 테다. 아니,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랬을까? 강민영 작가는 이 소설을 그들을 위해 썼고 그들 덕분에 쓸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겉만 보고 판단하며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설리와 구하라를 향한 대중의 시선이 그랬고, 소설 속 송희진을 향한 사내 직원들의 시선이 그랬다. 유난히 더위를 견디지 못해 일반적인 회사 차림이 아닌 제멋대로의 차림으로 다니고, 까딸스럽고 성마른 성격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혹은 못하는) 송희진은 그러나 실상 말도 정도 많고 털털한 성격이었다. 최인경은 송희진을 두고 오가는 말에 말을 보태지 않았는데, 그런 최인경의 행동에 송희진은 고마움을 느꼈다. 


드러나지 않은 조심스러울 뿐인 행동을 '연대'의 표식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건 송희진의 재능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송희진은 '이상한 인간' 최인경을 두고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와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하며 그녀를 돌보기까지 하는 것이다. 비주류끼리의 반란연합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경우엔 인간적인 동질감을 느끼는 이들끼리 인간적으로 끌려 인간적인 연대를 이룬 것이라 보는 게 맞겠다. 그런가 하면, 최인경은 얼핏 송희진한테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인류 최초'의 변온인간이 되어 앞날을 알 수 없을 때, 송희진이 차근차근 앞날을 대비해 보자며 도와 주지 않는가. 하지만, 들여다보면 최인경 또한 송희진을 챙기고 돌보고 보살피고 있었다. 


'봄'이 찾아오기를


소설은, 제목부터 소재까지 한없이 추위에 가깝다. 아무래도 추위로 향하기 때문일 테다. 봄에서 시작해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에 다다르며, 더위를 심하게 타는 송희진은 점점 괜찮아지지만 '변온인간' 최인경은 온몸의 시신경 하나하나까지 추위를 완전히 받아들인다. '변온동물'을 검색해 보면 '변온동물의 겨울 나기'가 연관검색어에 뜨는데, 체온을 조절하지 못하게 된 최인경 또한 겨울 나기가 시급하다. 즉, 무방비 상태의 기나긴 동면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서늘한 한기가 온몸을 훑는 것 같다.


그러나, 소설의 추운 외피는 한없이 따뜻한 내피 덕분에 균형이 맞춰지는 느낌이다. 이 균형은 소설 내에서도 역시 느껴지는 바, 더위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송희진과 추위를 못 견디는 최인경의 조합이 그러하다. 또한 둘의 성격과 능력 등은 서로를 향하고 또 채워 주되 서로를 자기 식대로 재단하고 제어하려 하지 않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그렇다고 미지근한 것도 아닌, '따뜻하게 건강한 관계'인 것이다. 세상에 많은 관계의 방정식이 있을 텐데, 이 두 젊은 여성의 관계처럼만 성립된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계절에 상관 없이 겨울을 살아가듯 몸과 마음이 시리지 않을까 싶다. 경제·정치·사회·문화·교육 등 전 분야에 걸쳐 문제 아닌 분야를 찾기 힘들다. 무차별적인 전방위 압박으로, 우리는 이리저리 휘둘리며 흔들리고 있다. 내실을 닦으며 미래를 준비할 새도 없이, 현실을 살아가기에 급급한 것이다. 마치, 체온을 조절하지 못하고 외부의 온도에 의해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처럼 말이다. 


그러니, 소설을 읽는 내내 내가 그리고 우리가 변온인간 최인경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송희진의 존재가 그립고 또 고마웠다. 언젠가 나를 도왔을 그 존재,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돕고 있을 그 존재가.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송희진이 되어 다른 누군가를 돕고 싶어졌다. 따뜻한 연대로 그와 나 그리고 우리를 모두 포근하게 하고 싶었다. 이 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은 그런 바람을 내게 줬다. 소설은 춥디추운 겨울에 끝난다. 하지만, 소설의 시작이 봄이듯 곧 따뜻한 봄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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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미래가 기다리든 '가족 모두'의 유산이라고 말하는 영화 <힐빌리의 노래>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2. 4.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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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힐빌리의 노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힐빌리의 노래> 포스터. ⓒ넷플릭스



2016년 6월, 미국에서 <힐빌리의 노래>라는 제목의 회고 에세이가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다. 미국 최고 명문 예일 로스쿨을 졸업한 실리콘밸리의 젊은 성공한 사업가 J.D. 밴스가 처절하기 짝이 없던 시절을 뒤로하고 크게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 책은 반 년이 지나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다시 한 번 크게 주목받는다. 


이 책이 '트럼프 현상'의 현실적이고도 진솔한 분석과 연구의 최전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제조업으로 호황을 구가하다가 불황을 직격으로 맞아 몰락해 버린 공업 지구인 '러스트벨트'의 한가운데인 애팔래치아 산맥의 힐빌리(산골마을 백인)로서, 가난과 폭력과 우울과 불안와 소외를 온몸으로 맞으며 살아온 삶의 궤적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된 저소득층 백인 노동자와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힐빌리의 노래>는 빠르게 영화화가 결정되었는데, 199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고 이후로도 꾸준히 좋은 작품을 내놓은 '론 하워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여기에 전설 글렌 글로즈, 대배우 에이미 아담스, 베테랑 헤일리 베넷, 신인 가브리엘 바소가 참여해 조화로운 가운데 기대를 한껏 높였다. 정치사회적인 면모도 상당히 강한 원작에서, 영화는 '가족'에 천착한 이야기와 메시지를 뽑아 냈다고 한다. 기대 반, 불안 반.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고향으로 향하는 J.D.


2011년, J.D. 밴스는 예일대 법대생으로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반드시 합격해야 하는 대형 로펌 인턴십 면접 주간을 치르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걸려온 누나 린지의 절박한 전화, 엄마가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입원해 있다는 소식이었다. J.D.는 최종 면접을 앞두고 10시간 거리에 있는 고향 오하이오 미들타운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처절했던 어린 시절과 조우한다. 


1997년, J.D.의 3대 가족은 켄터키 잭슨을 떠나 오하이오 미들타운으로 돌아와 흩어진다. 엄마 베넷, 누나 린지와 함께 살면서 할모라고 부르는 할머니도 근처에서 살았는데, 베넷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해하기 힘든 타이밍에 이해할 수 없는 강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정신이 조금 아팠다고 해야 할까. 언젠가 베넷과 J.D.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남자를 자주 바꾸는 베넷의 행태를 두고 친구가 한 상스러운 말을 J.D.가 그대로 전하는 바람에 폭력 어린 싸움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결국 J.D.가 할모한테 전화하고 경찰에 신고까지 하면서 큰 사건이 될 뻔했다. 


베넷은 아빠, 그러니까 J.D.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걷잡을 수 없는 정신 상태로 추락했다. 오랫동안 간호사로 일하고 있던 그녀는, 약에 손을 대고 만다. 이후 그녀의 삶은 약 없이 지속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탓일까, J.D.는 똑똑한 머리를 갖고 있음에도 활용하지 않고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불량한 짓을 일삼는다. 결국, 보다 못한 할모는 큰 결심을 하고 J.D.를 데려오려고 하는데... J.D.와 베넷의 앞날은?


가족에 대한 깊은 천착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가족에 대한 깊은 천착이 엿보인다. 원작을 읽고 사회·문화·정치의 현실적 인사이트가 인상 깊었다면, 그래서 영화를 통해 영상으로 표현된 바를 느끼고 싶었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을 테다. 반면, 작금 흔들리면서 다양하게 재정립되는 가족의 정의와 형태에 인사이트를 얻고 싶다면 이 영화가 제격이겠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한 과감한 감독의 선택이 엿보인다. 


감독의 선택도 선택이지만, 아무래도 원작이 있는 만큼 각색이 중요하기에 힘을 실었을 텐데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호프 스프링스> 등과 드라마 <왕좌의 게임> <엘리어스> 등에서 각본가로 활약한 '바네사 테일러'가 각색을 맡았다. 그녀가 '가족'을 말하고자 택한 방법은 주요 인물들의 대사이다. 주인공이라 할 만한 J.D. 밴스를 두고 가족들이 한마디씩 하는 데에 통찰과 의미가 엿보인다. 


누나 린지는 "용서하지 않으면 벗어날 수도 없는 거야"라면서 엄마 베넷의 말 못할 행태를 이해할 순 없지만 용서하려 한다. 할머니 할모는 "이 세상에 가족 말고 더 중요한 게 뭐 있니"라며 엄마 베넷을 도와주라고 부탁한다. 엄마 베넷은 "내 평생 잘한 일이라곤 너랑 네 누나 낳은 것뿐이야"라면서 처량한 본인의 신세에서도 한 줄기 빛처럼 쏟은 자식들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그런가 하면 J.D. 밴스는 "사랑해, 엄마. 빨리 나았으면 좋겠어. 행복하면 좋겠고 내가 도와줄게. 근데 여기 있진 못해. 나는 가야 해. 포기하지 마, 엄마"라면서 선택의 기로에서 가족을 위해 가족을 뒤로하고 기회를 잡고자 떠난다. 완벽하기는커녕 콩가루(?) 가족이지만 지금의 그를 만들었고 또 가족에겐 주어지지 않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 어떤 미래가 기다리든 '가족 모두'의 유산이라고 말한다. 


탄탄하진 않지만 울림을 준다


영화가 꽉 찬 느낌이 들거나 탄탄한 느낌이 들진 않는다. 상당히 방대하지만 단단한 서사로 중무장한 원작에서, 어느 한 면을 중점적으로 보여 주며 다른 면들은 간략하게 처리했기에 어딘가 헐거운 느낌이 들 수 있을 테다. 거기에, '가족'의 메시지를 던지는 주요 인물에 방점을 찍고 '사회 성찰'의 메시지를 던지는 지역 배경은 최소화하면서,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전체적인 기조가 너무 가벼워 보여서 꽤나 무거울 주제와 소재를 온전히 품지 못한 것 같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울림'을 준다. 특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영화가 대상으로 한 실제 인물의 사진들과 함께 현재 상황이 소개될 때 '울컥' 했다. '이렇게 살아온 가족들도 있구나' 하면서 나의 삶을 반추해 본다기 보다, '가족' 자체의 의미를 한층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런 형태의 가족은 전통적으로 당연히되어 왔는데, 가족의 다양성이 광범위하게 퍼지는 지금에서 이런 형태의 가족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한편 죄악시까지 되고 있지 않은가. 가족의 다양성에서 비춰 볼 때, 하나의 형태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더불어, 영화에서 J.D.가 3대를 잇는 '여성'들에게 큰 힘을 받는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남자 아이 J.D.가 올바르고 올곳게 자람에 있어, 남성이 준 영향보다 여성이 준 영향이 크다는 점이 말이다. 물론 거기에는 긍정적 영향도 있을 테고 부정적 영향도 있을 테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가족의 다양성과 더불어 여성의 다양성도 살펴볼 필요성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의 뿌리, 나의 가족을 신성시하며 절대적으로 따라야 할 의무는 없을 테다. 그러나, 그 유산은 다른 어디로 향하지 않고 나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그 유산을 받아들이는 건 기회이자 운명이 아닐까. 더 나은 삶 혹은 좋은 삶을 살기 위한 기회이자, 그 기회를 잡을 운명 말이다. 성공에의 길은 홀로 짊어졌지만, 성공의 후과는 가족 모두의 것이라고 말하는 J.D. 밴스를 그리고 이 영화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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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글렌 글로즈, 러스트벨트, 론 하워드, 바네사 테일러, 에이미 아담스, 여성, 울림, 유산, 힐빌리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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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삶이냐, 자유로운 듯 화려한 삶이냐 <이지 걸>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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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이지 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이지 걸> 포스터. ⓒ넷플릭스



프랑스 칸, 16살 생일을 맞이한 소녀 나이마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무료하게 지내는 중이다. 얼마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선, 방학을 맞이해 게이 친구 도도와 자주 어울리며 함께 연기 오디션을 준비하기도 하고, 엄마가 일하는 호텔 조리실에서 인턴으로 일해 볼까 싶기도 하다. 그러던 와중, 파리에 사는 사촌 언니 소피아가 나이마의 생일도 축하할 겸 놀러왔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언니라 너무 반가웠다. 


그런데 소피아는 조금 달라 보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고 딱히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고는 나이마에게도 명품 가방을 생일선물로 주는 것이었다. 성형 티가 많이 나는 얼굴과 노출 심한 옷차림으로, 나이마와 함께 거리를 활보했다. 해변에서는 반나체로 있으면서 뭇남자들을 유혹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대형 요트를 소유한 부자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고, 나이마와 함께 요트에 올라타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엔 앙드레라는 이름의 부자 명의로 고가의 시계를 사 버리는 그들이었다. 


나이마는 요트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우연히 밤중에 소피아와 앙드레가 섹스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후 나이마는 자신의 삶과 스타일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졌고, 유일한 친구라고 할 만한 도도를 멀리하며 소피아와 가깝게 지낸다. 화려하고 자유분방게 지내면서도 부족함 없이 사는 게 부러웠을 터다. 하지만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엄마가 말하길, 소피아는 '자유'롭지만은 않고 힘들게 '일'하고 있으며 '지쳐' 있다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운 나이마, 그래도 소피아의 삶의 방식을 우선 따라 보고 싶다. 그녀의 방학은 어떻게 끝날까?


프랑스 예술영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이지 걸>은 프랑스 칸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방학을 맞이한 소녀의 성장을 다룬다. 여자로서의 심리를 세세하고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데, 역시 여성 감독의 작품이다. 레베카 즐로토브스키라는 생소한 이름의 감독, 다섯 편의 연출작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두 편이나 극장 개봉을 한 이력이 있다. 프랑스 예술영화계에서 꽤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감독으로 보인다. 


한국에 개봉한 두 편을 들여다보면 눈에 띄는 게 있다. 다름 아닌 주연 여성 배우인데, <그랜드 센트럴>에서는 레아 세이두이고 <플래니테리엄>에서는 나탈리 포트만이었다. 둘 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들로, 레베카 즐로토브스키 감독의 여성을 내세운 연출 감각이 얼마나 출중한 지 반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이지 걸>의 경우 눈에 띄는 배우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소피아 역의 자히아 드하르가 특이한 이력으로 눈길을 끌긴 한다. 그녀는 배우라기보다는 란제리 모델이자 디자이너인데, 미성년이었을 때 성노동자로 일했다고 한다. 고위층만 상대했다는데, 결국 2010년 경찰 단속에 걸려 프랑스의 국보급 축구선수들인 카림 벤제마와 프랑크 리베리와 시드니 고부 등이 체포되었다. 프랑스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장본인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란제리 브랜드를 만들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영화 속 소피아 캐릭터가 전혀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여성의 성장


영화가 시작되며 프롤로그처럼 나오는 장면이 있다. 칸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해변을 반나체로 걸어가는 소피아, 그리고 프랑스의 전설적인 철학자 파스칼의 한마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직업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건 우연이 좌우한다."까지. 영화 속 나이마의 성장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영화 밖 자히아 드하르의 인생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나이마는 호텔 조리장 인턴과 연기 오디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듯 어쩔 줄 모르는 듯 고민하는 듯하다. 인턴을 한다고 해서 오디션에 붙는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달라지진 않지만, 나름의 갈림길을 눈앞에 둔 이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일 수 있다. 그때 우연히도 소피아가 끼어든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한 여름밤의 꿈에 가까운 한 방학의 일탈이었을 뿐인 좋은 경험이지만, 당시에는 빨려들어가듯 중심을 잡지 못했을 테다. 엄마의 지난한 삶과 비교되어, 소피아의 자유로운 듯 화려한 삶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하여, 영화 속 소피아는 자체로 빛을 발하는 캐릭터라기보다 나이마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이다. 오히려 소피아는 소피아 역의 자히아 드하르의 삶과 연결되는 것 같다. 연기자의 실제 삶과 캐릭터의 영화 속 삶이 복제 수준으로 비슷하다. 마치 영화 속 삶으로 영화 밖 삶을 변호하는 듯, 겉으론 자유롭고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힘들고 공허하고 지쳐 있었다는 것. 나이마의 드러나는 성장만큼 소피아의 드러나지 않는 성장 또한 찾아볼 만한 여지가 있다. 


나름의 철학


나이마가 직업적 선택에의 성장 과정을 헤쳐나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깨닫게 되는 바가 또 하나 있다. 부류라고 해야 할까, 계급이라고 해야 할까. 딱히 직업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유유자적 대형 요트에서 살아가는 듯싶은 앙드레, 그와 함께 요트 생활을 하며 친구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충실한 손발이 되어 주는 필리프, 음식과 서비스를 담당하는 이들, 그리고 사람들의 멸시와 눈초리를 받지만 부자의 눈에 들어 눈요기와 쾌락의 상대가 되어 주고는 그들의 풍요를 조금 나눠쓰는 소피아 같은 이들이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이 영화가 자못 선정적일 수 있는 소재로 빠지지 않고 세상을 대하는 나름의 철학을 내보이는 핵심이다. 어른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애라고 할 수도 없는 나이의 나이마가 혼란스러워 하는 게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세상의 한 진면목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녀를 다 잡아 준 건, 의외로 소피아가 아닌 앙드레의 친구 필리프였다. 소피아는 그녀를 끌어들였지만 가르쳐 주지 않았고, 필리프는 그녀를 끌어들이지 않으면서 가르쳐 주었다. 진짜 어른이 아닌가 싶다. 


영화는 프랑스 콘텐츠답게 이해하기 힘든 철학을 담고 있는 말을 쉽고 짧은 대사로 치고 빠지곤 한다. 스토리 맥락과 닿아 있는 듯하지만 서사적 맥락을 방해하는 듯한 대사들이 애매모호한 타이밍에 나와 애매모호함을 남기니 난감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허투루하는 말이 아닌 걸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으니 만큼, 곱씹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아름다움은 만족의 근원이야. 욕심과는 거리가 멀지."

"노화에 저항하는 게 한심하다고요? 아니죠. 오히려 감동적이죠." 

"이건 원칙의 문제가 아니야. 가치에 대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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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체스를 사는 불우한 천재 소녀 이야기 <퀸스 갬빗>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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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퀸스 갬빗>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스 갬빗> 포스터. ⓒ넷플릭스



1950년대 후반 미국 중남부 켄터키주의 어느 보육원, 아빠 없이 살다가 엄마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하곤 혼자 살아남은 9살 소녀 엘리자베스 하먼(이하, '베스')은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흑인 친구 졸린이 그녀와 함께해 준다. 그곳에선 아이들이 매일매일 두 가지 약을 먹었는데, 초록색 약은 온화환 성품을 주황갈색은 튼튼한 몸을 길러준다 했다. 불시에 혼자가 된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완벽한 식단을 챙겨 주지 못하기에 약으로 보충하려는 의도인 듯했다. 


베스는 어느 날 지하실에 내려갔다가 관리인 샤이벌이 두는 체스에 관심을 가지고 곧 초록색 약, 즉 신경안정제의 효능으로 체스에 비상한 능력을 뽐내게 된다. 신경안정제만 먹으면, 잘 알지도 못하는 머릿속 체스 게임이 천장에 그려져 시물레이션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샤이벌에게 방법과 전략과 매너 등을 배우며 곧 그를 이기고 근처 고등학교 체스부 전체와 맞붙어 이기기까지 한다. 하지만, 신경안정제에 중독되고 만 그녀에게 체스금지령을 내리고 몇 년 후엔 휘틀리 부부에게 입양되어 보육원을 떠난다. 


먼 곳으로 출장을 가곤 하는 남편을 둔 앨마 휘틀리 부인과 살게 된 베스, 휘틀리 부인이 복용하는 신경안정제를 빼돌려 복용하며 다시 체스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체스에 대한 열망과 돈 벌 길 없이 앞날이 막막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체스대회에 출전한다. 켄터기주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돈도 벌고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베스, 휘틀리 부인이 매니저가 되어 본격적으로 미국 전역의 체스 대회들을 석권하기 시작한다. 


US 오픈, US 챔피언십 등의 미국 대표 대회에도 출전하며 미국을 대표할 만한 선수이자 친구들을 만나고, 해외 대회에도 출전해 체스 인생 최대의 라이벌이 될 러시아 그랜드 마스터 보르고프와도 대결한다. 그토록 갈망하던 최고의 체스 선수 자리에 오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해 보이는 그녀, 하지만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녀에겐 어떤 날들이 펼쳐질까?


넷플릭스 명작 드라마 폭격의 선두주자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를 만드는 데 열일하는 모양새다. 결코 쉽게 국경을 넘기 힘든 각국의 명작 드라마들이 폭격하듯 시간차를 두지 않고 찾아오니까 말이다. 최근 들어 접한 드라마들, 이를테면 한국의 <보건교사 안은영>, 독일의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 <바바리안>, 프랑스의 <라 레볼뤼시옹>, 미국의 <어웨이> <래치드> 그리고 영국의 <퀸스 갬빗>과 곧 나올 <더 크라운 시즌 4>까지. 하나같이 나름의 합리적이면서 확고한 시선을 장착하곤 탄탄한 스토리와 캐릭터와 미장센으로 중무장했다. 


<퀸스 갬빗>은 1983년에 출간된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탄탄함이 돋보인다. 2014년에 드라마로 데뷔해 이후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주조연 가리지 않고 활발히 얼굴을 비춘 '안야 테일러조이'가 베스 역으로 완벽하게 분했다. 그녀가 아니면 이 역을 살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전하고 싶다. 그런가 하면 낯익은 얼굴도 몇몇 보이는데, <러브 액츄얼리>에서 리암 니슨이 분한 다니엘의 아들 역으로 큰 명성을 떨친 '토머스 브로디생스터'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두들리로 역시 큰 명성을 떨친 '해리 멜링'이 그들이다. 


'퀸스 갬빗'이라고 하면 필자처럼 뭘까 싶은 이들이 많을 것 같은데, 체스의 오프닝 중 하나이다. 쉽게 말해, 체스 게임을 시작하는 전략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 오프닝 전략은 체스의 말들 중 가장 기본이 되는 '폰'(우리나라로 치면 '졸병'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을 희생해 '퀸'으로 이후 포지션을 유리하게 진행시켜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인기가 많을 뿐더러 분석도 많이 되었다고 한다. 


체스라는 인생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체스를 살아가다


작품은 엘리자베스 하먼의 '성장'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체스 대회와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그리고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인 듯 시크한 성격에 인생을 어떻게, 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베스에게 불시에 '체스'가 다가온다. 이후 그녀는 체스를 잘 두어 최고가 되는 데에 삶의 목적을 두게 된다. 그렇다면, 최고의 체스 선수가 되는 길이 성장의 길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할 순 없지만, 그게 전부라고 할 순 없겠다. 


베스는 체스를 하지 않는 때에 체스를 통해 인생을 알아간다. 대부분의 인간은 거의 매일 반복되는 뭔가를 하며 살아간다. 대체로 직업으로서의 일일 텐데, 거기에서 기본적으로 돈을 취득하고 나아가 명예와 권력을 소유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인생을 알아간다고 생각하진 않을 텐데, 실제론 인생을 알아가거니와 인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함께하며 많은 걸 공유하는 사람들, 내가 하는 게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 나는 누구이고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 등. 


동양의 장기나 바둑도 마찬가지이지만 서양의 체스도 다분히 남자의 전유물이다. 지금이야 남녀 관계 없이 함께하지만, 50년이 넘은 작품 속 배경에서 여자는 여자부에 소속되어 여자끼리 실력을 겨루어야 했다. 물론, 여자부에서 우승했다고 아무도 알아 주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 배경에서 10대에 불과한 소녀 베스가 독보적인 실력으로 대회를 휩쓰니 세상의 눈이 획기적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극한 일상에서 그녀가 대면한 건 그녀로선 이해할 수 없는 또래 여자아이들의 모습이다. 세상이 가르쳐 준 '여자'로서의 평범성과 보편성을 지는 모습 말이다. 


베스는 그래서 더더욱 체스로 빠져든다. 오롯이 통제할 수 있는 64칸의 체스판을 앞에 두고 있으면 그렇게 마음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놓쳤고 놓칠 뻔한 것들이 있으니, 그녀 곁에서 알게 모르게 그녀를 도와 준 사람들이다. 체스를 잘하려면, 당연히 체스만 잘하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체스에 인생을 바친 베스에게도 인생=체스일 수 없듯, 베스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체스 아닌 것들도 필요하다. 체스라는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인생이라는 체스를 살아가는 걸 깨닫는 데 좋은 인연들이 절대적으로 한몫들 한다. 


천재의 우여곡절과 희로애락 너머, 특별한 이야기


<퀸스 갬빗>은 체스를 잘 알면 알수록 재밌을 테지만 체스를 아예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한 내공을 갖췄다. 베스의 '체스' 이야기만큼 '인생' 이야기가 투 트랙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리라. 중간중간 나오는 체스 대회와 대회 속 게임에서의 알 길 없는 용어, 전략 들이 꽤나 전문적인데, 그래서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체스와 관련되어 있지만 체스 밖의 것들이라 할 만한 스승과 친구와 라이벌과 파트너 들이 빛을 발한다. 베스의 '체스' 이야기가 아닌, '베스'의 체스 이야기. 


그런가 하면, 사실상 '천재'의 우여곡절과 희로애락을 다룬 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는데 꼭 그렇게만 느끼지 않았던 건 베스의 특별한 개인적 배경 덕분이겠다. 극중에서 베스의 최대 난적인 러시아 그랜드 마스터 보르고프가 말하기도 했던 바 "물러설 곳이 없으니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 배경 말이다. 그녀는 채 10대도 되지 않은 어린 시절 고아가 되어 홀로 보육원에 뚝 떨어진다. 10대 중반 입양을 가서 나쁘지 않은 시절을 보내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체스밖에 남은 게 없지만 여전히 어리디어린 나이에 끝없이 계속되는 과중한 압박을 견디기 힘들다. '체스 천재'가 체스 안에서가 아닌 체스 밖에서 힘들어하는 이야기는, 천재 아닌 일반인에게도 충분히 통용되고도 남을 것이다. 


이야기의 처음과 끝, 체스의 오프닝과 엔드게임, 베스의 밑바닥부터 최고의 자리까지 남김 없이 모두 보여 준 작품은, 시즌 2의 여지를 남기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베스의 이야기로는 말이다. 그렇다고 너무나도 강렬했던 베스 아닌 다른 캐릭터로 스핀오프를 제작할 여지도 많지 않다. 그만큼 여러 모로 완벽했던 작품 <퀸스 갬빗>, 하여 제작과 각본과 연출까지 도맡아 한 '스콧 프랭크' 감독의 차기작을 기다려 본다. 그는 <조지 클루니의 표적> <마이너리티 리포트> <말리와 나> <로건>의 각본가로 유명한데, <퀸스 갬빗>으로 본인 인생에 한 획을 그었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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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왕 전설 재해석의 올바른 예를 보여 주다 <저주받은 소녀>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9. 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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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저주받은 소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저주받은 소녀> 포스터. ⓒ넷플릭스



'아서왕 전설' 이야기는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 어릴 때 KBS에서 봤던 애니메이션 <원탁의 삼총사>가 기억에 남아 있고, 영화, 소설, 드라마,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수없이 소개되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동양의 '삼국지'에 버금간다고 하면 맞을까 싶다. 역사 속 실존인물이다 신화·전설 속 인물이다 말이 많지만, 5세기 말경 앵글로 색슨족의 침입에 맞서 브리튼을 지킨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아서왕과 몇몇 인물들 그리고 엑스칼리버라는 성검의 이름은 들어 봤겠지만, 자세한 이야기는커녕 대략의 얼개조차 들어 보지 않았음직 하다. 그만큼 유명하다는 반증이겠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아서왕 전설이 리메이크되었는데, 그야말로 '요즘'에 맞게 다시 만든 콘텐츠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 <씬 시티>와 <300> 원작자로 유명한, 현존하는 최고의 그래픽노블 작가 중 한 명인 프랭크가 주축이 되어 2019년 출간한 그래픽노블 <저주받은 소녀>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저주받은 소녀>가 그것이다. 


수많은 아서왕 전설 리메이크작에서 조연 이하의 비중을 차지하곤 했던 호수의 여인 '니무에'가 주인공으로 우뚝 선 것이다. 니무에는 아서에게 엑스칼리버를 건네는 도구로서의 역할 정도에 그쳤는데, 이 작품에선 엑스칼리버가 니무에를 선택했고 니무에는 아서가 아닌 대마법사 멀린에게 엑스칼리버를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저주받은 소녀>는 그 과정에서 리더로 성장하는 니무에의 여정을 그렸다. 


페이족 소녀 니무에의 여정


평화로운 페이족 마을, 특별한 니무에는 숲의 정령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때문에 부족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는데, 그녀의 목숨을 살리기도 한다. 어느 날 페이족 마을이 교황의 명령으로 쳐들어 온 광신도 집단 레드 팔라딘에 의해 쑥대밭이 된다. 죽어가는 어머니에게서 엑스칼리버를 받아 그녀의 간곡한 유언에 따라 마법사 멀린에게 향하는 니무에, 그녀 삶의 2막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레드 팔라딘의 추격을 뿌리치는 것도 벅찬데, 왕실에서도 그녀와 검을 쫓고 그림자 세계에서도 그녀와 검을 쫓는다. 그야말로 엑스칼리버를 향해 벌 떼 같이 몰려드는 것이다. 와중에, 니무에가 만나고 함께하는 이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아서, 우서 펜드래곤, 가웨인, 퍼시발, 이그레인 등 아서왕 전설을 떠받히는 인물들이다. 한편, 멀린은 레드 팔라딘과 왕실과 그림자 세계를 오가며 나름대로 공작을 벌인다. 


니무에는 왜 멀린에게 엑스칼리버를 건네야 하는가, 건네는 데 성공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레드 팔라딘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들의 광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몰락한 기사의 아들이자 빚 때문에 좀도둑질까지 하는 비열한 아서는 어떻게 왕이 될 것인지, 왕이 될 수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서왕 전설이 어떤 식으로 변주될지 기대된다. 


직접 세상을 바꾸는 여성의 이야기


특별하다지만 세상을 바꿀 만한 능력일 순 없는 능력을 가진 어린 소녀 니무에가 최초 왕들의 검 엑스칼리버를 잘 지켜 내며 멀린에게 전달하는 과정 자체가 대단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유인즉슨, 세상 모든 권력자들이 그녀를 아니 그녀가 지닌 엑스칼리버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로선 살기 위해 엑스칼리버를 놓아 버리면 그만일 테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지켜 내려 하는 것이다.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닐 테다. 신념의 문제에 해당된다. <저주받은 소녀>의 니무에는 자신도 모르는 새 신념이 생겼을 수도 있고 본래 신념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야말로 대서사시에 적합한 인물이다. 여기에 이 드라마가 추구한 재해석의 묘미가 있다. 아서왕 전설의 조연급도 못 되는 여인을 원톱 주연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다시 썼다. 그러며 지금 이곳의 세상이 추구하고 나아가려는 방향에 맞게 확실한 메시지를 전한다. 전달자이자 조력자로서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하는 게 아니라 직접 세상을 바꾸는 여성. 


하지만, 한편으론 아서왕 전설의 프리퀄 즉 '앞선 이야기'의 또 다른 형태를 띄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니무에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또 페이족을 구하기 위해 희생하려는 한편 아서가 급부상하여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다. 왠지 니무에가 아닌 아서가 왕의 자리에 올라 세상을 옳게 바꾸게 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드라마를 끝까지 보면 어렴풋이나마 느낄 텐데, 그리 되면 그저 모양새만 좋게 구축하는 것으로 끝나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고전 재해석의 올바른 예


이 작품이 주체적으로 우뚝 서 세상에 맞서는 여성의 이야기로만 정치적 올바름을 전하려 한 건 아닌 듯하다. 전체적으로 인간과 비슷해 구분하기 힘들지만 어딘가 다른 구석이 분명히 있는 페이족을 대하는 시선, 절대 선(善) 신의 대리자로서 종교의 이름을 빌어 페이족을 학살하는 광신도 집단 레드 팔라딘, 그런 페이족조차 내부에서는 특별하지만 무서운 능력을 지닌 니무에를 따돌리고 해코지하려 한다. 아서를 흔히 생각하고 그려지는 백인이 아닌 흑인으로 배치시킨 것도 눈여겨 볼 만하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엑스칼리버가 맥거핀으로 작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영화에서 최중심의 소재로 모든 이가 찾길 원하지만 정작 진짜 중요한 게 아닌 '성배'처럼 말이다. 성배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산물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지만, 엑스칼리버는 니무에가 직접 휘두르며 그녀로 하여금 나아가고 성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작품의 주요 캐릭터가 생각하고 움직이고 살아가는 데 직접적인 동력이 된다. <반지의 제왕>의 '절대 반지' 같다고 할까. <왕좌의 게임> 같은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면 성배처럼 쓰였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엑스칼리버 덕분에 이 작품의 스토리 라인이 이도 저도 아니지 않게 되었다. 니무에라는 캐릭터에 너무 치중되어 있었다면 재미가 터무니 없이 반감되어 이 작품을 찾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니무에와 엑스칼리버가 메시지와 스토리를 대표하고 상징하며 조화를 잘 이룬 것이다. 앞으로 훨씬 방대해질 세계관의 초반 얼개는 확실히 짜 두었지만 그래서 시즌 2가 나와야 한다고 확실히 방점을 찍었지만, 그 바람이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이다. 수많은 드라마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다고 보기엔 약간 갸우뚱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응원한다. 고전을 재해석하는 건, 이런 식으로 재해석하는 건 언제든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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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성장, 아서왕 전설, 엑스칼리버, 여성, 여정, 재해석, 저주받은 소녀,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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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여성들의 위대한 유산이 모두에게 닿길 바라며...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20. 8. 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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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표지 ⓒ유노북스



제목부터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원작 <Bright Precious Thing>의 제목을 그대로 차용했다. 저자와 책이 국제적으로 유명한 경우 원작의 표지와 제목을 그대로 가져오곤 하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기에 모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제목만 봐서는 도통 무슨 책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한편 무슨 책일까 하고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즉 출판사 내부에서의 강력한 반대를 무릎쓰고 이 제목을 밀어붙인 데에는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다.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퓰리처상 수상 작가 게일 캘드웰의 네 번째 에세이로 그녀의 강렬하고도 참혹했던 젊은 날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녀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특별한 여성들 이야기 그리고 이웃집 소녀 타일러와의 세대를 초월한 우정 이야기를 큰 축으로 전한다. 


저자는 말한다. 혐오와 차별과 폭력으로 점철된 그녀의 젊은 날도 반짝거리고 소중하고, 그녀가 꿋꿋하게 살아 낼 수 있게 해 준 특별한 여성들도 반짝거리고 소중하며, 노년에 이른 그녀가 삶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할 수 있게 강력한 힘과 의미로 다가온 이웃집 소녀 타일러도 반짝거리고 소중하다는 것이다. 저자와 저자의 삶을 둘러싼 것들과 저자의 삶을 관통하는 모든 것이 '반짝거리고 소중하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저자의 젊은 날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강렬하고 참혹한 혐오와 차별과 폭력으로 점철되었기에, 역설적으로 반짝거리고 소중하다는 표현을 쓴 것일까. 또한, 그런 저자가 '특별하다'고 한 여성들은 누구일까. 그들에게서 어떻게 영향을 받은 걸까. 가장 궁금한 건 이웃집 소녀 타일러가 아닐 수 없다. 그녀 덕분에 한없이 무겁고 아프고 슬플 분위기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믿기 힘든, 믿기 싫은, 여성으로서의 젊은 날


이 책이 최초에 눈에 들어오고 번역출간을 결심하고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게 된 건,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여성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데, 하여 이 출판사에 들어오고 난 후 여성 에세이를 꾸준히 출간해 왔던 바, 이 책도 그 연장선상에 있기도 하거니와 결이 다른 점도 있다 하겠다. 이 책은 '미투 캠페인'으로 폭발한 '페미니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밝히길, 본인은 여성운동의 혜택을 제대로 받진 못했지만 페미니스트로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출판사로선 모험이고, 책임기획편집자로선 좋은 기회이자 위기이기도 하다는 점 또한 고백한다. 


들여다보면, 이 책의 중심이 되는 저자의 젊은 날 이야기가 '미투'와 다름 아니다. 1951년생인 저자가 대학에 진학한 1968년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진, 무례하고 고단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고 삶을 살아 낸 이야기 말이다. 간략하게나마 서술해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수학과 교수한테서 미적분은 여성과 맞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고, 여성을 존중할 줄 모르는 놈한테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 그런가 하면, 1970년 19살엔 당시만 해도 불법이었던 임신 중절 수술을 받으러 멕시코까지 갔다 왔고 히치하이킹을 하려다가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보스턴 글로브>에서 어엿한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을 때에도 유명한 남자 작가에게 '정중하게' 성희롱을 당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저자는 손가락 열 개로 세어지지 않을 정도로 자주 가지각색의 성희롱을 당해 왔다고 말한다. 


기획편집하면서,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차례 훑고 정독하고 한 글자 한 글자 따로 떼어놓으며 읽었지만 지루하기는커녕 볼 때마다 새로웠다. 아마, 저자가 겪었던 일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자인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도 싫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아올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아오며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남자들이 들으면 어리둥절하고 낯설겠지만, 여성이라면 옆집 이웃만큼이나 익숙하게 느낄 만한 이야기들이라고. 그런가 하면, 본인의 이야기가 시시하다고 말한다. 훨씬 암울한 이야기들이 셀 수 없이 많다고... 극악무도한 폭력과 악랄한 포식의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 많다고 말이다. 사람들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곤 하는데, 실상은 이렇게까지 극명하게 다를 줄은 몰랐다. 이 책을 통해 고백한 저자의 삶에는 일말의 거짓말도 없을 테니, 우리는, 우리 남자들은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생각하고 대하는 걸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자유니 평등이니 정의니 박애니 따위를 논할 순 없을 것이다. 


암울한 젊은 날을 꿋꿋이 살아 낼 수 있게 한 특별한 여성들


이 책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에 암울한 이야기만 들어 있진 않다. 저자가 추구하는 바도 아닐 뿐더러, 읽는 재미와 사색의 감동을 내보이는 에세이로서의 가치에도 맞지 않다. 하여, 저자는 암울한 젊은 날을 꿋꿋이 살아 낼 수 있게 그녀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특별한 여성들을 소환한다.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다양한 문학인과 문학 속 인물, 가족, 선생님, 멘토, 친구 그리고 이웃집 소녀 타일러에 이른다. 그들은 저자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책에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웃집 소녀 타일러는 저자가 말하는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의 핵심이자 저자가 앞선 시대의 여성들에게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을 전해 주어야 할 후세의 상징과도 같다. 


그녀를 차별한 수학 교수 이전에 스프링어 수학 선생님이 있었다. 그녀는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잃었음에도 당당함과 다정함을 잃지 않았는데, 저자로 하여금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가 하면, 캘드웰이 중년일 때 만난 늙은 마조리는 자신감 넘치고 용맹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개들과 함께 살았는데, 부자였기도 했던 바 뭇 여성들의 멘토이자 롤모델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진정한 여성으로서의 품위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었다. 저자에겐 우정 이상의 소울메이트로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함께했고 함께하고 있으며 함께할 캐롤라인이 있다. 그녀는 비록 저자와 오랜 세월 함께하지 못했지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책은, 저자의 젊은 날 이야기와 현재 저자와 자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웃집 소녀 타일러와의 우정이 큰 얼개를 구성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보다 보면, 분개하고 슬퍼하다가 언젠가 싶게 웃고 즐거워지는 나를 발견한다. 이야기를 대함에 있어 감정의 확실한 높낮이를 부여하려는 저자의 계책일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타일러라는 존재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된다. 그녀 덕분에 매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거니와, 전체 이야기가 가고자 하는 곳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이 책은 결국, 무례하고 고단한 세상에서 여자로 살아갈 타일러에게 건네는 기억인 것이다. 


작업하는 내내 마음이 참 많이 아팠다. 슬프기도 했고 소름이 끼치기도 했으며 분노에 치를 떨기도 했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감정을 쏟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이 책을 '포장'하면서는 감정을 최대한 배제했다. 대신 품위와 기품을 유지하고 내보이고자 했다. 그것이 여성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라고, 남자로서 감히 생각했다. 많은 분께 가 닿길 바랄 뿐이다. 같이 아파하고 슬퍼하면 반으로 줄어든다고 했던가, 맞는 말이길 바란다. 특별한 여성들이 전하는 영감과 유산이 모두에게 닿길 바란다. 이 책의 편집자로서 작지만 큰 바람이다.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 10점
게일 캘드웰 지음, 이윤정 옮김/유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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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일 캘드웰, 데이트 폭력, 미투,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성희롱, 여성, 젊은 날, 차별, 페미니즘, 폭력
  • BlogIcon 휘게라이프 Gwho
    2020.08.25 17:37 신고

    잘보고 갑니다 .. ^^
    오늘 하루도 행복 하세요!

    • BlogIcon singenv
      2020.08.25 17:40 신고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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