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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연기'에 해당되는 글 26건

제목 날짜
  • 홀로 이편에서 슬픔의 나락과 절망의 어둠을 응시하다 <그녀의 조각들> 2021.01.18
  • 아빠 장례날 남의 잔칫집에 가야 했던 한 남자 <잔칫날> 2020.12.23
  • 드러나지 않지만 진정한 유대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자기 앞의 생> 2020.11.30
  • 악마의 연대기로 들여다보는 20세기 중반의 미국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2020.09.22
  • 중국 영화의 새로운 '믿보' 조합, 청궈샹 감독과 저우둥위 배우 <소년시절의 너> 2020.07.14
  • 고고히 홀로 세상을 비추는 별이 될, 영화 <조커> 2019.10.05
  • 한국 오컬트 영화의 희소식이자 희망 <검은 사제들> 2019.09.25
  • 호불호 명확하게 갈리는 에디슨 vs 웨스팅하우스 전류전쟁 실화 <커런트 워> 2019.09.16
  • 1994년을 들여다보며 독립영화의 한계를 넘어 성장, 관계, 붕괴를 말하다 <벌새> 2019.09.02
  • 리메이크하면서까지 전하고픈... 수평적 세상에의 바람 <업사이드> 2019.06.19

홀로 이편에서 슬픔의 나락과 절망의 어둠을 응시하다 <그녀의 조각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1. 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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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그녀의 조각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그녀의 조각들> 포스터. ⓒ넷플릭스



출산이 임박한 부부 마사와 숀, 병원을 찾지 않고 집에서 조산사와 함께 아기를 낳기로 한다. 마사는 회사에 휴가를 신청하고, 다리를 만드는 현장에서 일하는 숀은 아기를 볼 설렘에 들떠 있다. 마사의 엄마는 선물로 부부에게 근사한 한 대를 사 줬다. 숀의 말에 가시가 돋힌 걸로 보아 평소에 그리 사이가 좋진 않아 보이지만, 아기가 태어나면 모든 게 잘 봉합될 터였다. 


마사와 숀이 함께 있던 저녁, 양수가 터지고 마사로선 믿을 수 없게 아픈 시간이 시작된다. 조산사 바버라한테 연락하지만, 그녀는 다른 산모의 아기를 받는 중이라 올 수 없다. 하여 다른 조산사 에바가 온다. 부부를 진정시키고 아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초음파를 한다. 정상이다. 이후, 출산이 처음인 부부로선 어리둥절하고 끔찍하게 아프지만 지극히 정상적이고 순조로운 출산 과정이 지나간다. 그런데, 아기 자세가 좋지 않은 듯 심박수가 희미해졌다. 아기를 빨리 꺼내야 한다. 에바는 숀에게 구급차를 부르게 하고, 마사에겐 죽을 힘을 쥐어짜라고 한다. 천신만고 끝에 태어난 아기, 이상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곧 몸의 색깔이 변하더니 숨을 쉬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마사는 회사로 돌아가고 숀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아기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있지 못한 것 같다. 부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지만, 남편 숀 쪽에서 서서히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가 하면, 마사의 엄마가 격한 반응을 보인다. 유능한 변호사로 있는 친척과 함께 조산사 에바를 고발한 것이다. 세상에 오자마자 떠난 아기를 위해 예쁜 관으로 묘지도 잘 만들어 줄 생각이다. 하지만, 정작 마사의 아픔과 슬픔은 아무도 헤아리려고 하지 않는다. 아기도 마찬가지다. 아기의 넋을 위로하는 게 아니라, 아기의 죽음의 원인을 찾으려 할 뿐이다. 급기야 마사는 아기의 시신을 기증하려 하는데...


비극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그녀의 조각들>은 갓 태어난 아기를 잃은 한 여자의 위로받지도 공감받지도 보호받지도 못한 파괴적 일상을 보여 준다. 그건 그 사건 또는 사고를 둘러싼 사람들이 바라보는 방향과 살아온 환경이 제각각이기 때문일 텐데, 그래서 일면 비극을 대처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가 풍부하고 다층다각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헝가리 출신이자 배우 출신이기도 한 코르넬 문드럭초의 첫 영어 장편 연출작이기도 한데, 지난 20여 년간 만들었던 작품들 대다수가 전 세계 유수 영화제들에 출품되면서 이른바 헝가리를 대표하는 젊은 감독 중 하나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칸 영화제 단골손님인 바, 2010년대 들어 급속도로 성장 중인 헝가리 영화를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정점이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후보 <그녀의 조각들>이다. 


영화엔 세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아내 마사, 남편 숀, 마사의 엄마다. 최근 들어 <미션 임파서블> <분노의 질주> 등 역사 있는 액션 블록버스터 시리즈에 출연하며 이름을 날린 바네사 커비가 마사로 분해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고, 할리우드 최악의 악동 샤이아 라보프가 숀으로 분해 좋은 연기를 펼쳤지만 성폭력 피소로 모든 홍보 활동에서 제외되었으며, 올해 90세로 지난 수십 년간 연극, 티브이, 영화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골든글로브와 미국·영국 아카데미와 에미상과 토니상까지 휩쓴 '전설' 엘런 버스틴이 마사의 엄마로 분해 중심을 잡았다.


그녀가 스스로를 위로하고 돌보는 법


영화는 초반 분만 장면의 30여 분을 끊김없는 롱테이크로 채우며 강렬하게 시작한다. '롱테이크'라는 기술적인 찬사를 보내기에 앞서, 영화 전체에서 차지하는 큰 비중에 걸맞게 구성한 면모와 배우들의 연기가 특히 돋보였던 바에 박수를 보낸다. '뭔가'에 대해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혹은 감성적으로 바라보는데, 통념상 이성적인 게 올바른 것이고 감성적인 게 틀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유명을 달리한 이 사건 또는 사고에, 숀과 마사의 엄마는 이성적으로 다가가 원인을 찾으려 했고 마사는 감성적으로 다가가 결과를 끌어안으려 했다. 


숀과 마사의 엄마는 조산사의 패착을 이유로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돌려 보상을 받으려는 것이고, 마사는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아이의 넋을 위로하고 또 무엇보다 자신을 돌보려 하는 것이다. 방법론의 차이, 누가 맞고 누가 틀린다고 하기 힘들지만 숀과 마사 엄마의 방법에는 주체에 마사와 아이가 있지 않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픔과 슬픔에 맞딱뜨린 사람을 향한, 마땅한 감성적 위로와 어루만짐과 돌봄이 수반되지 않는 것이다. 그녀로선 죽은 아이를 생각하고 한없이 슬퍼하며 아파하고 싶은데,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이성의 끈을 소송하는 데 쓰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녀가 택한 방법은, 사과의 씨앗이다. 그녀가 스스로를 위로하고 돌보는 방법, 먹다가 걸린 사과의 씨앗들을 발아시키며 조용히 응원하고 지켜보고 보살피는 것이다. '식물을 보듯 나를 돌본다'고 할 수 있을까, 에세이 <식물을 보듯 나를 돌본다>(유노북스)가 말하길 식물에게서 또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한다. 그녀가 홀로 이편에서 슬픔의 나락과 절망의 어둠을 응시한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사과가 그녀를 구했다. 제목에서 '조각들'은 슬픔, 아픔, 절망의 부정적인 조각들과 '희망'이라는 조각도 있지 않을까. 아니,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바네사 커비의 진정성 어린 연기


초반 30여 분의 롱테이크와 더불어 이 영화의 또 하나의 백미는 마지막 부분의 선고 공판 장면이다. 조산사 에바를 기소한 주 정부 측의 지방검사가 첫 번째 증인으로 마사를 불러 앞으로 나선 마사, 지방검사의 심문은 에바에게 불리하게 흐르지만 에바 쪽 변호사의 심문에서 마사는 감정의 변화를 느낀다. 그리고 그녀는 직접 모두의 앞에서 발언을 시작한다. 


사건의 원인을 찾아 돈을 보상받고 평결하는 것 따위로, 세상을 떠난 아이가 돌아오지도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아이는 그런 목적으로 이 세상에 왔다간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 순간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라는, 말로 하지 않은 마음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자극적인 지방검사와 변호사의 심문과 철저히 대조되는 마사의 차분한 와중에 천천히 끌어올려지는 감정의 변곡점이 보일 듯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을 듯 세세하고 또 명확하게 보이는 듯하다. 마사 역으로 분한 바네사 커비의 진정성 어린 연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세련한 듯 나른하게, 나른한 듯 선명하게, 선명한 듯 흐릿하게 흐르는 이야기는 한 달 단위로 끊어지는 챕터로 인해 자연스레 이어지지만은 않는 감정의 선 때문에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다. 초반 30여 분 이후에는 몰입할 만하면 끊어져 다른 이야기의 선으로 이어진다. 그 툭툭 끊기는 선을 그나마 보기 좋게 이어 주는 게 바로 영화 초반과 종반을 꽉 차게 이끈 바네사 커비의 연기다. <그녀의 조각들>은 바네사 커비의 배우 인생에서 큰 분기점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으로 그녀, 바네사 커비의 조각들을 하나둘씩 모아 우리에게 보여 줄 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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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조각들, 돌봄, 바네사 커비, 비극, 사과, 소송, 슬픔, 아픔,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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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장례날 남의 잔칫집에 가야 했던 한 남자 <잔칫날>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2. 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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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잔칫날>


영화 <잔칫날> 포스터. ⓒ트리플픽처스



무명 MC 경만은 온갖 행사를 뛰며 대학교에 다니는 여동생 경미와 함께 뇌졸중으로 2년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빠를 간호 중이다. 엄마는 집을 나가고 없다. 여의치 않지만 한 가족이 서로를 보다듬고 보살피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경만이 일을 하던 도중 경미가 간호 중에 있을 때 아빠가 돌아가신다. 딸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다가 다친 걸로 보인다. 


졸지에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게 된 경만과 경미, 그런데 슬퍼할 겨를도 없이 서슬 퍼런 현실과 맞딱뜨린다. 장례식을 치르는 비용이 뭐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지... 바로 결제를 해야 하는 시스템인데, 경만은 돈이 없다. 그런 와중에, 친한 형이 아내의 출산으로 뛰지 못할 지방의 큰 건을 경만에게 부탁한다. 경만은 당연히 거절하지만, 큰 액수를 듣고 결심한다. 경미에겐 집에 갔다가 병원에 들러 온다고 거짓말을 해 놓고, 팔순 축하연 행사 MC를 맡으러 삼천포로 향한 것이다. 


현장에 가니, 동네 잔치급의 행사에다가 남편을 잃은 후 웃음이 사라진 팔순의 어머니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면 좋겠다는 아들 일식의 특별 주문도 받게 된다. 아빠의 장례날에 생판 모르는 남의 생신 축하연에서 재롱을 피워야 하는 아이러니란... 팔순의 어머니께 웃음을 찾아 주는 덴 성공하지만, 갑자기 쓰러지시니 잔칫날의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한편, 아빠의 장례식장을 홀로 지키고 있지만 경만의 부재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미에겐 온갖 사람들한테서 압박과 잔소리가 들이닥치는데... 애잔한 남매의 짠한 하루의 끝은 어떨까?


김록경 배우의 관록 있는 장편 연출 데뷔작


영화 <잔칫날>은 2004년 데뷔 후 메이저급 영화의 단역과 단편의 주연을 넘나들며 수십 편의 작품에서 얼굴을 비춰 온 김록경 배우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올해 7월 치러진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자그마치 4관왕(작품상, 배우상, 관객상, 배급지원상)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리다 못해 날렸다. 몇 년 전부터 단편 연출로 단단하게 연마해 온 실력을 유감없이 뽐낸 것이리라. 


장례식장과 잔칫집을 오가는 상반된 분위기를 어떻게 표현해 내는지가 관건이었을 텐데, 톤 앤 매너가 굉장히 적절했다. 웃음과 울음, 코믹과 메마름의 경계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해 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애잔한 남매의 끝없이 꼬여만 가는 상황 설정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똑같은 심정을 느끼는 것처럼 만들었다. 


연출뿐만 아니라 각본까지 도맡아 한 김록경 '감독'의 실력이 드러나는 대목이라 하겠다. 아무도 겪고 싶지 않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인생의 단면을 세밀하게 직조해 낸 바, 그의 다음 연기보다 각본과 연출이 더 기대된다. 비록 한 편뿐이지만, 이 정도면 믿고 볼 수 있는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다. 그를 향한 찬사는, 자연스레 그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하준과 소주연 배우 그리고 조연들의 열연


많은 독립영화가 각본과 연출뿐만 아니라 연기도 출중한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본다. 기대와 함께 스포트라이트의 한 가운데에 서 있지 않은 데에서 오는 '힘 빼기'의 결과일까? 메이저로 가는 등용문 또는 관문으로서 출중한 실력자들의 '당연한' 모임이기 때문일까? 여하튼, <잔칫날>도 출중한 각본과 연출 못지 않은 연기가 눈길을 끈다. 


아무래도 가장 눈이 가는 건 두 주연 배우 하준과 소주연, 각각 경만과 경미로 분한 이들이다. 경만으로 분한 하준 배우의 얼굴에는 온갖 감정이 묻어난다. 세상에서 가장 애잔한 얼굴에서 한순간에 세상에서 가장 발랄한 얼굴이 된다. 그 사이 촘촘히 열 맞춰 서 있는 갖가지 감정의 얼굴들은 덤이다. 그 얼굴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하나의 영화가 된다고 할까, '천의 얼굴'을 지닌 배우를 알게 되었다. 드라마 쪽에선 주연급의 배우로 우뚝 섰는데, 앞으로가 훨씬 기대된다. 


경미로 분한 소주연 배우는 왠지 익숙하다. 나이도 많지 않고 데뷔한 지도 오래 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 배우 역시 하준 배우와 마찬가지로, 얼굴 자체가 주는 매력이 확실한 듯하다. 많은 곳에서 얼굴을 비추지 않았지만, 나온 곳에서 그녀는 항상 빛났으니 말이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얼굴로 보여 준다. 소극적이고 침울했다가, 적극적이고 단단해지는 변화를 말이다. 영화가 아무래도 경만 위주일 수밖에 없는데, 그 사이사이 상대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 장면을 꽉 채웠다. 


그런가 하면, 조연들의 열연이 그 어느 영화보다 빛난다고 할 수 있겠다. 가장 빛나는 조연들은 경만이 팔순 잔칫집을 하러 찾아간 마을의 청년회장과 부녀회장인데, 얄미워도 이렇게 얄미울 수 있을까 싶게 연기를 했다. 이 영화가 보기 힘들었다면 즉, 경만을 둘러싼 상황들 때문에 너무 애잔하고 답답해 보기 힘들었다면 모두 그 둘 덕분이다. 뿐만 아니라, 종종 얼굴을 비춰 몇 마디 나누지 않는 조연들 모두가 자기 몫을 톡톡히 해냈다. 모두가 신스틸러였는데, 그 누구도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영화 안에서 최대를 발휘했다. 


아이러니에서 끄집어 낸 페이소스


영화 <잔칫날>은 현실과 맞닿아 있는 아이러니에서 진한 페이소스를 끄집어 냈다. 관객으로 하여금 아빠의 장례날에 남의 잔칫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상주의 아이러니한 상황에 이끌리게 한 뒤, 어디까지 뒷걸음질 치고 또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애잔하고 지난한 과정들을 뒤로하고 잔잔하게 폭발하는 후반부에선 함께 울지 않을 수 없다. 그 호소력이 강력하다. 


특히 과정을 들여다보고 싶은데,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이들의 면면이 보여 주는 치졸하고 졸렬한 모습이 너무 현실밀착이어서 일면 역겹기까지 했고 잔칫날 한순간에 뒤바뀐 상황 후 마을 사람들의 면면 역시 치졸하고 졸렬하다 못해 역겹기까지 했다. 그 상황에 정면으로 대면한 경만과 경미는 갖가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어른아이'였다. 이는 두 남매의 '성장'을 보여 주기 위한 영화적 장치라고 할 수 있겠는데, 너무 잘 표현해 냈기에 일면 보고 있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마음 졸이며 보고 있던 와중, 그 둘을 살린 건 다름 아닌 그 둘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남는 건 두 남매, 두 남매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는 내 자신,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의 힘이었다. 영화 포스터에 있듯, 누구나 살며 그런 적이 한 번쯤 있을 것 같다. 영화에서는 '울고 싶은데 웃어야 하는' 상황으로 빗댔지만, 슬픈 아이러니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돈'이 아이러니를 만든 장본인인데, '돈'을 주체로 만들지 않아서 다행이거니와 참 좋았다고 생각한다. 돈 대신 '상황'의 아이러니를 주체로 둔 점을 칭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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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록경, 돈, 소주연, 아이러니, 연기, 연출, 잔칫날, 장례식, 조연, 페이소스, 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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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지 않지만 진정한 유대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자기 앞의 생>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3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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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자기 앞의 생>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자기 앞의 생> 포스터. ⓒ넷플릭스



'자기 앞의 생'이라는 제목의 소설, 관련하여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영화 같은 이야기이다. 변호사 연수를 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 공군 대위로 참전했으며,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많은 소설을 남겨 42살 때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해 스타로 떠오른 '로맹 가리'. 20여 년이 지나며 비평가들은 그를 두고 한 물 갔다고 했는데, 그는 다양한 필명으로 활동하며 압박을 피하려 했다. 그러던 61살이 되던 1975년에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이 공쿠르상을 수상한 것이다. 


에밀 아자르 즉, 로맹 가리는 수상을 거부했지만 공쿠르 아카데미 측에서 밀어붙였다. 공쿠르상은 같은 작가가 두 번 이상 수상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었는데, 당시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사실을 아는 사람은 문학계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로맹 가리는 오촌 조카에게 에밀 아자르를 연기하게 했다. 이후 에밀 아자르는 프랑스 문학계에 엄청난 찬양을 받았고,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 표절 시비까지 나며 혹평을 면치 못했다. 1980년, 그는 스스로 목숨을 거두고 만다. 그는 유서를 남겼는데, 거기에 자신이 에밀 아자르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하여, 올해는 로맹 가리 40주기이자 소설 <자기 앞의 생> 45주년이 되는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우리 앞에 다시 섰다. 배경은 프랑스가 아닌 현대의 이탈리아로 말이다. 이탈리아와 유럽은 물론 헐리우드를 포함한 전 세계 영화계 최고의 레전드인 소피아 로렌이 오랜만에 얼굴을 비췄다. 그녀의 최신작이 아들 에도아르도 폰티 감독의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 역시 그가 연출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진정 눈여겨 봐야 할 이가 있었으니 소피아 로렌의 로자 역과 더불어 주인공 모모 역을 맡은 이브라히마 게예다. 


슬픔과 아픔을 지닌 이들의 만남


고아 소년 모모, 사회 복지사의 부탁으로 코엔 박사가 후견인으로 있다. 소매치기가 특기이자 취미인 듯한 그를 코엔은 더 이상 맡기가 힘들다. 코엔은 모모가 훔쳐 온 값 비싼 촛대의 주인, 로사를 찾아가 사과하면서 모모를 맡아 달라고 간청한다. 입양할 가정을 찾을 때까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단칼에 거절한다. 나이도 많이 든 그녀는 안 그래도 매춘부 아이들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모모도 싫은 건 마찬가지였다. 


그때 마약을 취급하는 동네 아저씨가 모모에게 접근한다. 코엔 박사네에서 나와 로사 아줌마네로 오면 일을 줄 수 있다고 말이다. 모모로선 돈이 필요해 평소에 안면을 트고 지냈는데 잘됐다 싶었다. 자존심을 굽히고 로사네 집으로 향하는 모모, 동시에 뒤로는 마약을 팔아 돈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그로선 로사네 집에서 어떻게 지내든 상관없었다. 로사는 물론이고 로사가 맡은 아이들과도 잘 지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던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로사가 비를 맞은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녀는 슬픔 이상의 공허를 지닌 채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모모는 그녀가 정신을 차리게 하고자 온몸으로 웃기려 했고 그녀는 정신을 차린다. 이후 모모는 조금씩 마음의 덧창을 열기 시작한다. 로사가 소개시켜 준 잡화점에서 주인장 하밀 씨를 도와 간간이 일도 하고 로사가 맡은 아이들과도 잘 지내 보려 한다. 그런가 하면, 언젠가 또다시 로사의 이상 현상을 목격하는데 그녀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있다는 걸 눈치 채고 그녀를 감싸 주는 모모다. 


특별하지 않지만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영화 <자기 앞의 생>은 소설 원작과 상당히 다른 결을 가진다. 누군가는 다른 결이라고 할 테고, 누군가는 영화를 잘 만들지 못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모모라는 캐릭터의 복잡다단하고 입체적인 면모를 한껏 살려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주로 로사와의 관계에서인데, 둘의 관계가 보여 주는 롤러코스터 감정이 특히 그랬다. 반면 영화는 모모의 캐릭터 자체도 그렇고 로사와의 관계에서도 특별한 뭔가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감독의 '잘못'이 크지 않았나 싶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전적으로 로사 역의 소피아 로렌과 모모 역의 이브라히마 게예다. 영화가 그리 잘 나오진 못했기에 오히려 두 주인공의 연기가 돋보이는 게 아닌가 싶지만, 연기만 따로 떼어 놓고 봐도 손색이 없다. 칸, 베니스, 베를린, 미국·영국 아카데미, 골든 글러브 등 배우로서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받은 전설적 배우 소피아 로렌은 그렇다고 쳐도 듣도 보도 못한 이브라히마 게예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수훈이다. 


소피아 로렌이라는 대배우와 밀착해 연기를 펼치는 데 위축되거나 어색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80대 중반으로 50년대부터 배우 생활을 시작해 60년대 전성기를 보낸 '옛날 사람'이기에 오히려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어설프게 유명하거나 활발하게 활동하는 대배우였다면 완전히 다른 케미와 퍼포먼스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말 못할 아픔을 아주 깊숙이 간직한 채 천천히 아파 가는 로사, 모모 역시 어리디 어린 나이지만 아무에게도 말 못할 아픔을 지니고 있다. 결이 같은 아픔이었을까 아니면 아픔은 아픔을 알아보는 걸까, 모모는 로사를 감싸 주고 받아들인다. 로사는 겉으론 힘들다 못한다 싫다고 하지만, 진작 모모를 감싸 주고 받아들였다. 


이 영화의 아이러니


뭘 하든, 남기고 싶은 게 있다면 단 하나면 족하다. 이 영화 <자기 앞의 생>을 보고 나서 남은 게 뭔지 생각해 본다. 소피아 로렌과 이브라히마 게예의 훌륭한 연기가 주는 풍만함만으론 어딘가 조금 아쉬운 마음이다. 그들의 연기를 통해 일으킨 뭔가가 있을 것이었다. 드러나지 않는 '유대감'이 아니었나 싶다. 보는 우리는 물론, 로사와 모모 서로도 서로의 진짜 아픔을 추측만 할 뿐이다. 


바로 그 지점이다. 드러내지 않는 아픔을 로사와 모모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아주 잘 아는 듯하다. 그 유대감은 인간이 가지는 최고의 감정이자 인간과 인간이 교류하고 교감하는 최고의 감정교환일 것이다. 그 지점을 알아 차릴 수 있다면 이 영화는 충분하다. 하지만, 영화 밖에서 보는 우리로선 알아 차리기가 쉽지 않다. 아주 미묘하기 때문이다. 영화 내에서만 공유하고 영화 밖으로 나오지 않는 느낌이다. 


감독이 이 영화를 잘 만들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아주 불친절했다는 것. 그런데 바로 그 부분이 이 영화가 충분하다고 느끼게 하는 지점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영화가 조금만 더 친절했으면 싶지만, 만약 친절했으면 이 영화에서 남는 건 훌륭한 연기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부디 이 영화를 보며, 영화 안으로 침참해 들어가, 로사와 모모의 드러나지 않는 아픔과 그들만의 감정선을 파악하여, 진정한 유대감을 조금이라도 엿보길 바란다. 그러 할 수 있다면, 이 영화는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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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선, 고아, 로맹 가리, 불친절, 소피아 로렌, 슬픔, 아픔, 연기, 유대감, 자기 앞의 생, 홀로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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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연대기로 들여다보는 20세기 중반의 미국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9. 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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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포스터. ⓒ넷플릭스



코로나19로 전 세계 극장이 문을 닫다시피 하여 OTT 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되었다. 그중 단연 앞서가는 건, 모두가 알다시피 '넷플릭스'다. 그렇다 보니, 요즘엔 영화 '기대작' 리스트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늘었는데 앞으로 더욱더 늘어날 것 같다. 신예라고 할 만한 안토니오 캠포스 감독의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도 그중 하나다. 


2011년 최고의 소설 중 하나로 뽑히는 유명 원작과 필모 최고의 열연을 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제목에서도 연상되는 바 잔잔하게 퍼지는 불안과 불쾌의 감정이 탄탄하게 자리 잡은 영화라고 하겠다. 더 자세히 보면, 최근 들어 제작자로도 활발히 활동하는 제이크 질렌할이 제작에 참여했고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흐름과 중심을 잡고자 원작자 도널드 레이 폴락이 직접 내레이션을 맡았다. 


출연진은 화려하다 못해 호화롭다. 홀로 영화 하나를 책임질 만한 주연들이 총출동했다. 굳이 열거해 본다. <스파이더맨>의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 <더 배트맨>의 '배트맨' 로버트 패틴슨, <어벤져스>의 '윈터 솔져' 세바스찬 스탠, <그것>의 '페니 와이즈' 빌 스카스가드, <철의 심장을 가진 남자>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제이슨 클락, <해리포터>의 '두들리' 해리 멜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 미아 바시코프스카, <작은 아씨들>의 '베스' 일라이자 스캔런,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코라 콜먼' 헤일리 베넷, 앨비스 프레슬리의 외손녀 '라일리 키오'.


악마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이


때는 1957년, 장소는 미국 오하이오주 노컴스티프, 대부분 혈연 관계로 이어진 4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2차 대전 참전용사 윌러드 러셀의 가족은 외딴 곳에 9년째 별탈 없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내 샬럿이 암으로 쓰러지고 윌러드는 자신만의 교회에서 아들과 함께 신께 기도드리며 아내가 살길 바란다. 급기야 키우던 개를 제물로 바치기까지 하지만 샬럿은 죽고, 윌러드는 자살한다. 홀로 남겨진 아들 아빈은 작은 할아버지에게 맡겨진다. 거기엔 또래의 여자애 리노라가 있었다. 


리노라는 동네의 독실한 신자 부부 로이와 헬렌의 딸이었다. 어느 날부터 로이는 두문분출하며 방안에 처박혀서는 신의 시험을 통과하고 신의 음성을 듣고자 했다. 2주 뒤 신의 계시를 들은 로이는 오랜만에 헬렌과 놀러 가며 리노라를 아빈의 작은 할아버지 댁에 맡긴 것이다. 로이는 신의 계시를 따라 헬렌을 죽이고 부활시키려 하지만 실패하고 도망치다가 칼과 샌디 부부 차를 얻어 탄다. 그들은 연쇄살인범이었던 것, 로이는 칼의 총에 맞고 즉사한다. 


칼과 샌디는 젊은 남자 히치하이커들만 골라 태운 뒤 한적한 곳에 세우곤 예술적 사진을 찍는다며 샌디로 하여금 몸을 팔게 하고 결국엔 히치하이커를 죽인다. 샌디에겐 하필 보안관 오빠 보데커가 있었는데 보데커 또한 여지없이 뒤가 구렸다. 동네를 주름잡는 마피아 조직과 붙어 먹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아빈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리노라를 지키고자 불철주야 노력했는데 결국 지키지 못한다. 그런데, 리노라를 헤친 건 학교 친구들이 아닌 동네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사 프레스턴이었다. 악마들이 판치는 세상, 아빈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악마의 감촉과 향기가 진득하게 퍼지는 악마의 연대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20세기 중반 미국에 만연했던 악마들의 이야기와 다름 없다. 그런데, 흔히 생각하는 악마 같은 인간과는 다른 형상을 보인다. 아내의 죽음을 막기 위해 반려견을 제물로 바친 남편부터 어떤 사연이나 이유도 없는 연쇄살인범까지 범상치 않는 이들도 있는 한편, 깡패 조직에 붙어 먹는 경찰이나 어린 여성들을 탐하는 목사는 예나 지금이나 만연하다. 


그래서인지, 영화에 나오는 악마들에게 분노를 느끼거나 그들의 이야기에서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거나 하지 않는다. 대신, 가슴 깊숙한 곳까지 진득하게 퍼지는 악마의 '감촉'과 '향기'가 느껴진다. 마치 어찌할 도리 없이 악마에게 잠식 당한 이들이 도처에 널린 듯한 것 같달까. 가멸차게 휘말린 아빈 입장에선 '기도' 따위가 아닌 '행동'이 필요했다. 하여, 그의 행동이 악마적 소행과 다름 없는 결과를 낳는다 하더라도 결코 악마적 행위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악마들이 종횡무진하는 '악마의 연대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이 작품, 제2차 세계대전에서 베트남 전쟁 사이 오하이오주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낙후된 소도시들을 배경으로 한 이유가 있을까. 미국의 특징, 국가적인 게 곧 개인적인 것이고 개인적인 게 곧 국가적인 것이라는 걸 대입해 보면 원작자 도널드 레이 폴락의 삶에서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1954년생인 그는 50대 중반인 2011년 '첫 장편소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는 영화의 주배경이 되는 오하이오주 노컴스티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중퇴 후 제지공장 노동자와 트럭 운전수로 자그마치 32년 동안 일했다. 일하던 도중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입학했고, 일을 관두고는 예술학석사 과정을 밟는 도중 소설가로 데뷔했다. 평생 오하이오를 떠나고 싶었다는 그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으로 엉망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소설과 영화엔 다분히 그의 엉망인 시절의 삶이 녹아들어 있다 하겠다. 그의 마음속에 악마가 깃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의 주변에 악마가 깃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장르적 쾌감 대신 문학적 은유로 그려낸 당대의 미국


영화는, 그러나 애매모호한 면이 상당하다. 외형상 범죄스릴러 장르를 띄고 있는데, 실상은 2007년 전 세계 영화제를 양분하다시피 했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데어 윌 비 블러드>처럼 다분히 문학적 은유로 미국을 그리려고 했다. 하여, 장르적 쾌감을 전혀 선사하지 않는 대신 이면에 도사린 은유를 읽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런 면에서 원작자가 직접 내레이션에 참여한 건 상당히 적절하다 하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문학적 은유로 당대의 미국을 적절히 그려냈다고 할 순 없다. 굳이 들여다보자면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1940~60년대 미국은 전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전후 혜택을 받은 시대를 살고 있었다. 와중에, 낙후된 도시의 외따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안팎으로 잠식하는 악마들. 실제로는 실체가 있었든 없었든, 이 영화는 실체로 보여 주는 것이다. 악마는, 극도의 욕망으로 점철된 이들에게 깃들기 쉬운 만큼 또한 소외되고 힘 없고 힘겨운 이들에게 깃들기 쉽다는 걸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맞는 말이다. 


하나 같이 눈을 뗄 수 없는 신스틸러로서의 연기를 톡톡히 해낸 배우들의 연기가 아니었으면, 이 영화는 적어도 영화적으론 큰 가치를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다행히 수많은 주연급 배우들이 출연해 필모에 길이 남을 만한 열연을 펼쳤고, 스토리 못지 않게 연출과 연기가 중요한 '영화'로서 기대받고 박수받아 마땅하다. 영화 자체로 길이 남을 만한 힘은 없었지만, 애매모호한 아쉬움들을 들춰 보지 않게 하는 힘이 있었다. 대신, 출연 배우들에겐 뜻 깊게 남을 만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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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의 새로운 '믿보' 조합, 청궈샹 감독과 저우둥위 배우 <소년시절의 너>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7. 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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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소년시절의 너>


영화 <소년시절의 너> 포스터. ⓒ(주)영화특별시SMC



여배우 발굴의 엄청난 능력을 자랑하는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발탁되어 2010년 <산시나무 아래>로 화려하게 데뷔한 저우둥위, 이후 차근차근 필모를 쌓아 중화권 최고의 여배우로 우뚝 섰다. 우리에게는, 지난 2016년 이준기와 함께 열연한 <시칠리아 햇빛 아래>로도 얼굴을 비췄지만 1년 뒤 청궈샹 감독과 함께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로 크게 이름을 알렸다. 이후 쉴 새 없이 작품활동을 이어나갔는데, 넷플릭스를 통해 <애니멀월드> <먼 훗날 우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청궈샹 감독과 함께한 <소년시절의 너>로 본인 필모뿐만 아니라 그의 연기를 보는 우리에게도 '인생 영화'를 경신하였다. 작년 11월 중국 현지에서 개봉하여 흥행(2019년 중국 흥행 TOP 10 안에 듦)과 비평, 파급력과 영향력 등에서 모두 좋은 모습을 보인 바 있는 이 작품, 개인적으로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코로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늦게나마 찾아와 기뻤다. 


영화 내적으론 학교 폭력과 중국의 대학입학시험인 '가오카오'로 대변되는 교육 문제 그리고 이를 좌시하고 부추기는 어른들의 모습을 탄탄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하게 그려냈다면, 영화 외적으론 중화권 최고의 여배우로 우뚝 선 저우둥위와 6억 명 이상의 팬을 몰고 다닌다는 현존 중화권 최고의 아이돌 'TFBOYS'의 멤버 이양첸시(웨이보 8500만 명으로 중화권 10위권 안)가 함께해 더할 나위 없는 시너지를 불러일으켰다. 영화 안팎으로 이보다 더 좋은 모양새를 내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인생이 고달픈 소년 소녀


가오카오가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학교, 한 여고생이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방금 전까지 함께 있던 첸니엔(저우둥위 분)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다가가 옷을 벗어 덮어주지만 전교생의 이목을 얻는다. 이후, 자살한 친구를 향했던 일진의 화살이 그녀에게로 향한다. 그녀는 매일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하고, 수위는 점점 높아진다. 그녀는 성적 우등생이지만, 홀로 불법적인 일로 집안을 지탱하며 빛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인 엄마 때문에 제대로 생활을 할 수가 없다. 결국 학교에까지 퍼져 그녀를 더욱 괴롭게 한다. 


어느 날 밤 늦게 집으로 향하던 첸니엔은 길 한가운데에서 3 대 1로 맞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곤 경찰에 신고하려 한다. 딱 붙잡힌 그녀는 위험에 처하는데, 맞고 있던 청년이 기지를 발휘해 함께 도망칠 수 있었다. 샤오베이(이양첸시 분)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년은, 외곽 허름한 집에서 홀로 살며 삶을 영위하는 양아치였다. 그는 그녀에게 보호를 제안하지만 그녀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일단 그들은 그렇게 헤어진다.


하지만, 첸니엔의 학교 생활을 더욱 고달퍼질 뿐이었다. 매일같이 수위가 높아지던 어느 날, 목숨까지 위협받던 그녀는 베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후 베이는 근거리에서 첸니엔을 따라다니며 보호해 준다. 첸니엔을 괴롭히는 일당에게 직접적으로 물리적 협박을 행사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베이가 성범죄자로 의심받아 구치소 신세를 면치 못했을 한나절, 첸니엔은 머리도 깎이고 옷도 강제로 찢어발겨져 영상으로도 찍히는 짓을 당한는데... 소년 소녀의 앞날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다방면으로 선보인 괜찮은 퍼포먼스


영화 <소년시절의 너>는 다방면으로 괜찮은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학교 폭력의 참혹한 민낯을 강렬하게 선보이는 동시에 가오카오로 대변되는 극심한 대입 경쟁의 민낯 또한 생생하게 선보여,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학창시절'과 '학교'라는 시공간의 가학적인 이면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여기에서 첸니엔은 동급생들의 괴롭힘을 당하지만, 그녀를 괴롭히는 이들 또한 큰 틀에서 '피해자'이기에 시스템과 시스템을 만든 어른들이야말로 진정한 가해자라는 걸 가감없이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시스템과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청년 베이가 첸니엔을 보호해주는 아이러니가, 우리로 하여금 영화에게로 끌어당기는 힘의 원천이다. 물론, 거기엔 식상하기까지 한 로맨스 구도와 무엇으로도 갈라서게 할 수 없는 그들만의 사랑 방정식이 있지만 말이다. 이 모든 걸 부자연스럽지 않게 이어주는 게, 바로 청궈샹 감독과 저우둥위 배우의 힘이다. 


청궈샹 감독은, 중국 로맨스 영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서 과감하게 탈피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자못 몽환적인 분위기를 가져와, 학교의 이면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메시지와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소년 소녀가 서로를 보호해준다는 로맨스를 잘 엮었다. 거기엔, 저우둥위의 내유외강 또는 외강내유의 구분하지 힘든 연약하면서도 강한 연기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영화의 모든 면면이 그녀를 중심으로 빛을 낼 수 있었다. 중국 영화의 믿고 보는 새로운 조합, 청궈샹 감독과 저우둥위 배우이다. 


중국 영화의 새로운 '믿보' 조합, 청궈샹과 저우둥위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격렬히 반응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것이다. 격렬히 숨을 몰아쉬며 분노하다가, 어느 순간 격렬히 숨을 몰아쉬며 울고 있을 테다. 왜 세상은 그들로 하여금, 악에 받쳐 증오심으로 살아가게 하면서 그조차 비틀거리게 하는 것인가. 그들의 사랑은, 왜 그들을 파멸에서 구해내지 못하고 파멸로 굴러떨어지게 할 뿐인가. 왜 환한 웃음을 짓게 하지 못하고, 슬픈 미소만을 겨우 짓게 할 뿐인가. 


화끈하기까지 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감정을 뒤흔드는 로맨스를 펼칠 줄 아는 작품, 이를 완벽히 소화해낸 저우둥위도 기대되지만 청궈샹 감독을 향한 기대를 한껏 품을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청궈샹 감독 자신이 소싯적 배우 활동을 주로 홍콩에서 했기 때문일까, 영화 곳곳에서 8~90년대 홍콩영화의 향수를 목격할 수 있었다. 분위기나 연출 방식에선 업그레이드된 면모와 함께 말이다. 


잔혹한 세상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오직 나 그리고 너라고 영화는 말한다. 영화에서 말하는 나와 너는 사실상 하나이기에, 범위는 더 축소된다. 들여다보면 참으로 무섭고 두렵고 그렇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진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한 걸음 잘못 디디면 천길 낭떠러지인 건 매한가지 아닌가. 비정한 세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비정한 세상에서 나뿐만 아니라 타인을 진정으로 원하는 게 어떤 것인지도 생각하게 한다. 소년시절의 너가 변치 않고 지금에 이르렀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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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히 홀로 세상을 비추는 별이 될, 영화 <조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10.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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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조커>


영화 <조커>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미국 코믹북 시장의 양대 산맥 DC와 마블, '마블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탠리가 1960년대 '판타스틱 4'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업을 하기 전까진 DC가 앞섰다고 한다. 영화 판권 시장 역시 슈퍼맨과 배트맨을 앞세운 DC가 앞섰다가, 2008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시작한 마블이 완전히 앞서게 되었다. DC도 뒤늦게 유니버스를 창조했지만 역부족, 다른 방도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본래, 마블이 캐릭터를 앞세웠다면 DC는 스토리를 앞세웠다. 그런 기조는 영화로도 이어져, 역대 최고의 슈퍼히어로 영화로 DC의 <다크나이트>가 손꼽히게 된 것이리라. 감독의 역량이 크게 좌지우지하겠지만 제작사의 입김이 없을 리 없다. 와중에 DC에겐 절대적 무기가 있으니, 역대 최고의 슈퍼히어로 캐릭터 '조커'이다. 역설적이게도 조커는 슈퍼히어로가 아닌 빌런이다. 신기하게도 조커 단독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었다. 


DC가 방도를 모색할 때 아무래도 마블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수많은 캐릭터를 앞세워 거대한 연결 세계를 창조한 마블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보려고 한 것 같다. 토드 필립스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 배우를 앞세운 영화 <조커>로 고고히 홀로 세상을 비추는 별을 탄생시킨 것이다. DC가 앞으로도 별처럼 홀로 빛나는 캐릭터 영화를 만들 것인지는 미지수이지만, 별개로 <조커>는 반영구적으로 빛날 게 분명한 명작이다.


의심과 논란의 여지 없는 '연기'


고담시에서 광대로 일하며 낡은 아파트에서 노모를 모시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 코미디언을 꿈꾸는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뇌 또는 신경 이상으로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웃음발작을 일으키고, 망상증세도 심각한 수준이다. 주기적으로 약을 타 먹고 상담도 받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약골의 외모로 지나가는 10대 아이들한테 무시받으며, 발작적인 웃음에는 들여다보려 하지는 않을지언정 하나같이 뭐가 웃기냐며 의아해할 뿐이며 심지어 테러까지 일삼는다. 


영화 <조커>에서 의심과 논란의 여지가 없는 단 한 가지를 꼽으라면 '연기'다. 호아킨 피닉스의 아서 플렉과 조커, 그리고 아서 플렉이 조커로 거듭나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한 로버트 드 니로의 머레이 프랭클린. 우선 로버트 드 니로는 35여 년 전 본인이 주연 루퍼트 펍킨 역을 맡은 영화 <코미디의 왕>을 연상시키는, 짧지만 굵은 연기를 선보인다. <조커>에서는 아서 플렉이 루퍼트 펍킨과 대칭된다.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웃기지 못하는 아서 플렉, 코미디언을 꿈꾸지만 기회를 갖지 못하는 루퍼트 펍킨. 둘 다 망상증세가 심각하다. 


베니스와 칸을 접수했지만, 미국 아카데미에선 3번이나 고배를 마신 호아킨 피닉스의 신들린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조커>는 족하다. 많은 이들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최고의 조커로 '히스 레저'를 떠올리겠지만, 만들어진 조커와 만들어지는 과정의 조커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즉, 잭 니콜슨과 히스 레저와 자레드 레토의 조커와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들어진 조커들은 광기와 혼란과 악의 개념 하에 있지만, 만들어지는 과정의 조커에겐 슬픔과 아픔과 공허까지 있다. 태반이 웃음발작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데, 조커 하면 떠올리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웃음의 슬픈 기원을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하염없이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하염없이 한숨짓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호아킨 피닉스가 영화 <조커>의 모든 것을 직조했다. 


흠잡을 데 없는 '연출'


10대들한테 밟히고 광고판까지 박살나고선 실의에 빠져 있는 아서에게 광대 동료가 총을 건넨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쏴버리라고. 집에서 혼자 폼을 잡으며 시늉하다가 쏘아 보니 당황스럽고 무서운 게 아닌가. 그런데 하필 총을 아동병원에 가지고 갈 게 뭐람. 그 일로 아서는 회사에서 잘린다. 여자 한 명을 희롱하는 술 취한 3명의 남자들과 지하철 한 칸에 같이 탄 아서, 웃음발작이 터지고 그들에게 밟힌다. 곧 총성이 울리고 3명이 죽는다. 아서가 저지른 살인이었다. 이후 토마스 웨인 시장 후보가 죽은 3명을 옹호하는 인터뷰를 하고 고담시는 폭풍전야에 빠진다. 


영화 <조커>의 연출을 맡은 이는 토드 필립스 감독이다. 그가 누구인가. <행오버> 시리즈로 할리우드 막장 코미디의 대표 자리를 꿰찬 이가 아닌가. 연출 필모를 3편을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그는, 이후 2000~2010년대에 내놓은 9편을 모두 코미디로 채운다. 그야말로 코미디에 환장한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런 그가 <조커>를 연출한다니?


DC의 후광으로 대대적인 관심과 어느 정도의 흥행은 보장받을 테지만, 작품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지는 의문스러웠다. 솔직히, 많은 이들이 DC에서 내놓은 <조커>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테다. 뚜껑을 열어보니, 개봉도 하기 전에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코믹스 최초 3대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에 이은 최초의 황금사자상 수상까지, 예상치 못한 이변이자 예상했을 쾌거이다. 


영화는 흠잡을 데가 없다. 개인과 사회라는 씨줄과 날줄로 종횡으로 엮어 탄생 신화를 써내려갔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어구가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다. 미쳐 돌아가는 사회 때문에 괴물이 탄생했다는 일방향식 서사에, 조커 이전 아서 플렉이라는 지극한 개인적 서사를 얹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입체감을 얻었다. 


<조커>에 있는 것들


우발적인 살인 이후 표정과 행동이 바뀌는 아서, 대담해지고 일면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 엄마 말마따나 항상 웃으며 살려고 했지만 오히려 웃음발작 때문에 행복한 적이 없었던 아서, 그에게 살인이라는 건 무례한 세상을 재탄생시키기 위한 가멸찬 외침이 되었고 당하고만 살았던 불행한 자신의 인생을 향한 위로도 되었다. 이후 그는 광대라는 가면 뒤가 아닌 그 자신 광대가 되어 진짜 웃음과 함께 한다. 


영화 <조커>의 전체적인 줄거리에 특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깨달음은 차라리 <다크 나이트>에게서 받았고, 뇌리에 영원히 남을 듯한 모습은 히스 레저의 조커에게 남아 있으며, 기 막히게 창조된 세상은 DC 아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들에 보다 확실하게 담겨 있다. 그렇다면 <조커>에는 무엇이 있는가. 


코미디의 대가가 재창조한 완벽한 코미디 세상 고담시, 미친 도시이자 코미디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자 미쳐 가고 비극인 줄 알았는데 개 같은 코미디 인생을 산 아서 플렉, 토마스 웨인을 위시한 기득권층을 적으로 둔 대중들과 조롱의 코미디언 머레이 프랭클린을 적으로 둔 아서 플렉의 조우. 개인, 대중, 사회가 맞물리는 지점을 '조커'라는 상징과 은유의 꼭짓점으로 모이게 하는 과정이 드러내지 않으면서 조용히 진행된다. 고담시, 웨인 부자, 아캄 정신병원 등 영화 <배트맨> 시리즈과 조우하는 요소들도 모두 조커로 모이는 것이다. 영화 <조커>에는 조커가 있다. 


신경을 긁는 불쾌함과 세상을 바꿀 이의 탄생을 직시하게끔 만드는 웅장함이 일품인 음악과 화려하진 않지만 조커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기에 최적의 워킹을 선보이는 카메라, 그리고 아서 플렉의 어두침침한 집 내부와 생각조차 나지 않는 색의 옷에서 조커를 상징하는 화려한 색감의 옷과 초록 머리 그리고 빨간 입술 등이 항상 뒤를 받친다. 이보다 더 조커와 조커를 둘러싼 세상을 표현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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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컬트 영화의 희소식이자 희망 <검은 사제들>

오래된 리뷰 2019. 9.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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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검은 사제들>    


영화 <검은 사제들>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2019년 들어 한국 오컬트 영화가 다수 개봉했다. <사바하> <사자> <변신> 등이 그것인데, <사바하>와 <변신>은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희망을 쏘았고 <사자>는 여름 시즌을 겨냥한 텐트풀 영화였지만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다. 오컬트보다 액션에 치중한 모습의 어중간한 영화였던 게 좋지 않게 작용한 듯하다. 내년 상반기 개봉 예정인 <클로젯>도 기대되는 한국 오컬트 영화 중 하나이다. 


오컬트라 하면,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주의나 초자연현상 등을 소재로 미지의 존재나 금기에 대한 공포가 주를 이루는 장르다. 공포의 하위 장르라고 할 수 있겠다. 2000년대 전성기를 열었던 한국 공포 영화가 2010년대 후반 들어 오컬트 장르로 선회하는 모양새다. 그 시작점을 2015년 <검은 사제들>로 보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겠다. 이듬해 <곡성>이 방점을 찍었다. 


<검은 사제들>은 장재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단편영화 <12번째 보조사제>를 장편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는 2년 후 미스터리 스릴러 <시간 위의 집> 각본 작업을 거쳐 4년 후 <사바하>로 좋은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니 공포 전문 감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겠다. 그런 장재현 감독의 시작점이자 2010년대 한국 오컬트 영화의 시발점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검은 사제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아웃사이더들의 구마의식


이탈리아 교황청, 이탈리아인 신부 둘이 한국에서 12형상(악령) 중 하나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한국으로 향해 악령이 깃든 돼지를 붙잡고는 차를 타고 도망친다. 급하게 가던 도중 행인을 치고 지나쳐 가다가 큰 사고를 당해 돼지가 풀려난다. 악령은 돼지에게서 신부 둘의 차가 치고 도망친 여고생 이영신으로 옮겨간다. 김범신 신부는 주교에게 구마의식을 요청해 비공식적으로 영신에게 행하지만, 만만치 않은 악령이 영신을 투신자살로 이끌어 혼수상태에 빠지게 한다. 이후 6개월 동안 김 신부가 구마의식을 하지만 실패한다. 


10명이 넘는 보조사제가 김 신부의 구마의식에 투입되지만 전부 나가떨어지고, 김 신부는 또 다른 보조사제를 찾아야 했다. 이에 신학교까지 찾아온 김 신부에 학장 신부는 조건이 되는 사고뭉치 최준호를 추천한다. 학장은 최준호에게 여름방학 동안의 합창 연습을 빼주는 대가로 김 신부의 구마의식 보조사제를 내건다. 최준호를 이를 받아들이고 김 신부의 이영신 구마의식에 보조사제로 투입된다. 


최준호 부제는 소심하지 않은 성격이나 어릴 때 여동생을 개에게 잃은 큰 트라우마가 있다. 그 죄책감은 구마의식에 있어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나 한편으로 한 단계 나아가는 성장판이 될 것이었다. 김 신부와 최준호는 과연 강력한 굿판까지 황망하게 나가떨어지는 강력한 악령에게 부마된 영신을 되돌릴 수 있을까? 성공한다 해도 최준호는 특출난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는 김 신부처럼 될 게 자명한대 감당할 수 있을까? 


한국 오컬트 영화


<검은 사제들>은 평가하고 즐기는 데 있어 영화 내적인 면모보다 외적인 면모가 절대적으로 차지한다. "강동원이 사제복을 입고 나온다"는 말 한 마디가 이미 흥행의 상당 부분을 책임졌고, '한국 오컬트 영화'라는 타이틀이 주는 아우라가 김윤석, 김의성을 위시한 명배우들의 메이저 분위기에 뒷받침되어 날개를 달았던 것이다. 


오컬트 영화의 삼대장이라고 하면 1960~70년대 <악마의 씨> <엑소시스트> <오멘>을 뽑는다. 이중 <엑소시스트>가 <검은 사제들>과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악마에 부마된 소녀와 소녀에게서 악마를 쫓아내려는 신부들 간의 대결을 그렸다. 여러 유명한 장면들은 정녕 누구나 한 번쯤 봤음직한, 패러디를 통해서도 반드시 봤음직하다. 몇몇 대사들 또한 마찬가지. 


그러나 <검은 사제들>은 절대 <엑소시스트>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영화 내적으로 스토리와 캐릭터의 헐거움 때문일 테다. 김 신부의 아웃사이더 성향이 어떻게, 왜 형성되었는지 알기 쉽지 않고 사고뭉치 최 부제가 어떻게 완벽히 각성해 구마의식을 행하게 되는지 알 도리가 없다. 더욱이 러닝타임이 1시간 50분이 채 되지 않아 길지 않은 편인데, 참으로 어렵거니와 다양하기까지 한 사항들이 나열되어 있으니 100% 와닿기가 힘든 것이다. 


한편으론, 다시 영화 외적으로 한국 오컬트 영화 시장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2015년 당시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오컬트 영화 시장은커녕 한국 공포 영화 시장 자체가 이전과 비할 바 없이 축소된 상황이 아니었는가. 또한 공포 영화의 하위 장르라 할 수 있는 오컬트 영화라면 메이저는 꿈도 꾸지 못했다. 모든 시작 또는 재시작이 그렇듯 <검은 사제들>은 제 몫을 충분히 해냈다. 


발견, 신뢰, 기대


영화는 새로운 발견을 이룩해냈다. <엑소시스트>에서 생각나는 장면과 대사들이 모조리 악마에게 부마된 소녀 리건의 것들이듯, <검은 사제들> 또한 악령에게 부마된 소녀 영신의 모습과 대사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 끔찍하고도 처절하고 흉악하면서도 슬픈 모습. 2013년에 데뷔해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은 신예 박소담의 '악마' 들린 연기가 절대적이었다. 그녀는 그해 많은 영화제에서 신인연기상과 여우조연상을 독차지했다. 


한편 강동원과 투톱으로 영화를 이끈 김윤석은 2000년대 이후 쉼없이 얼굴을 비추는 와중에도 역시 영화 보는 눈이 출중하다는 걸 입증했다. 안정적인 연기로 중심을 잡아 영화에 신뢰를 불어넣었다. 그가 있어 강동원은 흥행을 책임지고 박소담은 비평을 책임질 수 있었다. 우린 앞으로도 계속 그의 연기를 지켜봐야 할 책임이 있다. 


뭐니뭐니 해도 장재현 감독의 차기 오컬트 영화가 기대된다. <사바하>가 있으니, 정확히 말하면 <검은 사제들>의 차차기작일 테다. 데뷔 후 아주 어려운 2편 연속의 좋은 모습을 보인 만큼, 최소 '오컬트 3부작'이라는 이름으로 다음 작품 또한 오컬트일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 또 어떤 소재로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그만큼 흥미를 돋아 심장을 뛰게 만들지. 몇 년을 또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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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 검은 사제들, 구마의식, 김윤석, 박소담, 아웃사이더, 연기, 장재현, 한국 오컬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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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 명확하게 갈리는 에디슨 vs 웨스팅하우스 전류전쟁 실화 <커런트 워>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9.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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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커런트 워>


영화 <커런트 워> 포스터. ⓒ이수C&E



1880년대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철도 공기 브레이크로 큰 돈을 벌어 천연가스에 투자했고 에디슨은 조만간 세상을 밝힐거라 공언한 전기 연구에 몰두하며 투자자를 찾고 있엇다. J. P. 모건이 큰 돈을 제안하며 군수품 제작을 의뢰하지만 에디슨은 거절하고 역제안으로 전구로 세상을 밝힐 것이니 1/10의 돈만 투자하라고 한다. 에디슨은 곧바로 준비를 시작해 뉴욕의 밤을 밝히는 데 성공한다. 


웨스팅하우스는 에디슨의 '직류'에 대항할 '교류' 시스템을 시작한다. 한편 교류를 미는 테슬라가 에디슨 회사에 입사한다. 교류는 직류보다 효율적이고 저렴했다. 직류는 1마일 이상 못 가는 반면, 교류는 발전기 1대로 멀리까지 보낼 수 있었다. 에디슨은 낙담하고 광분해 기자회견을 열어 교류의 효율성 아닌 위험성을 설파하면서 한편으로 직류를 놓치 않는다. 교류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테슬라는 에디슨 회사에서 나와 본인의 회사를 차리지만 사기를 당하고, 에디슨은 동물을 이용해 교류의 위험성을 계속 설파하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돈이 없어 축음기를 시장에 내놔 연명하고 있으며, 웨스팅하우스는 잘 나가고 있다. 와중에 웨스팅하우스의 핵심 기술자 프랭클린 레오나드 포프가 감전사고로 사망하면서 요동치기 시작한다. 에디슨이 설파한 교류의 위험성이 만천하에 퍼진 것이다. 웨스팅하우스는 위기에 빠지지만 굳은 의지를 보인다. 더 큰 위기에 빠진 에디슨은 전기의자 자문으로 치졸한 면모를 보이는데...


전류전쟁 실화


영화 <커런트 워>는 19세기 말 미국의 치열한 '전류전쟁' 실화를 가져와 선보인다. 에디슨과 인설, 웨스팅하우스와 테슬라 그리고 모건까지 현대세계를 창조한 이들의 이야기는 자체로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만들고 관여한 것들은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없어서는 안 될 일상제품으로 자리잡고 있고 그들이 만들고 관여한 회사 또한 지난 지금까지도 거대하고도 거대한 회사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 외적인 흥미진진과 더불어 영화 내적인 흥미진진 요소로 아무래도 실제적 인물을 누가 연기했느냐일 텐데, 영화는 완벽하리만치 충족했다. 에디슨에 베네딕트 컴버배치, 인설에 톰 홀랜드, 웨스팅하우스에 마이클 섀넌, 테슬라에 니콜라스 홀트. 왠만한 영화의 단독 주연급 배우들이 총출동했으니, 캐스팅에 대해 더 말해 무엇하랴. 


한편, 제목 '커런트 워'는 '전류전쟁'이라는 뜻을 갖는다. 흔히 에디슨의 직류 전류 시스템과 테슬라의 교류 전류 시스템이 붙은 사업 충돌을 말하는데, 웨스팅하우스가 테슬라의 교류 전동기 특허를 사들여 교류 전류 시스템을 시작해 발전시키고 상용화하였으니 에디슨 대 웨스팅하우스의 전류전쟁이 알맞을 것이다. 영화는 그에 맞는 양상을 보인다. 


실화 그대로임에도 은근한 아이러니의 블랙코미디적 요소도 곁들인 영화는, 마지막에 대미를 장식한다. 알다시피 전류전쟁에서 승리한 웨스팅하우스는 미국전기공학협회로부터 상을 받는데 '에디슨 메달'이었으며 테슬라는 말년에 빚에 시달리다 홀로 사망했다고 한다. 반면, 에디슨은 활동 사진으로 특허를 취득하고 영화라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며 역사에 이름을 크게 남겼다. 


영화의 불호


영화는 누가 봐도 명백한 호불호의 모습을 보인다. 사실 2017년 후반기에 이미 완성해 토론토영화제에서 선보였던 바 있는 <커런트 워>는, 당시 영화 내적으로 엄청난 혹평에 시달렸고 와중에 와인스타인 스캔들로 영화 외적으로도 크게 흔들렸다. 하여, 여러모로 정식 개봉이 힘들었는데 재촬영과 재편집 등이 이루어져 2년여 만에 내보일 수 있었다. 한국엔 8월말에 선보였고, 북미엔 10월초에 선보인다. 


아무래도 여파가 있었던 듯, 영화 곳곳에서 구멍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평이하다 못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이니 문제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으나, '전쟁'이라는 제목이 주는 최소한의 긴장감과 박진감이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점은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무엇도 아닌 각본이 다른 영화 구성 요소들보다 현저히 떨어진 게 아닌가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찍은 게 아닌 만큼 장면들 간의 '톤 앤 매너'가 다른 게 종종 보이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할 수 있겠다. 지나친 생략에 따른 개연성 문제도 크게 다가온다. 재촬영과 재편집에 따른 결과라고 하지만, 그 전 판본은 영화 자체가 별로라고 하니 이나마도 감지덕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싶다. 영화 줄거리가 되는 19세기 말 미국의 전류전쟁에 관한 사전정보 없이는 따라가기가 상당히 힘들다 하겠다. 


영화의 호


영화에 혹평만 퍼부을 수는 없다. 나름, 호평을 더 보내줄 수도 있다. 누구나 알 만한, 그런가 하면 연기력으로도 호평이 자자한 네 명의 주연배우들이 펼치는 열연은 영화에서 가장 믿을 만한 볼거리 중 하나다. 한끗 차이인 치열과 비열을 오가는 경쟁의 단면과 이면을 보고 있노라면, 현대의 경제 전쟁이 보이는 듯도 하다. 특히 온갖 천재를 연기한 바 있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천재 연기는 일품이다. 


한편, 혹평의 주요 쟁점 중 하나인 평이한 진행이 오히려 호평의 요소가 될 수도 있겠다. 평이한 줄거리에 주요 캐릭터들 개개인의 특별한 이야기들이 덧입혀져 영화에 입체감을 부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영화의 입체감에 카메라와 OST가 엄청난 역할을 했다. 스타일리시하게 직조한 카메라워킹은 단순히 현란하기만 한 게 아니라 단조롭기만한 영화에 입체적 생명을 불어넣었고, OST는 영화에 전무한 긴장감과 박진감을 최소한으로나마 조성하였다.


<커런트 워>는 단점이 많은 수작인가 장점이 많은 망작인가. 개인적으론 전자가 맞는 듯하다. 이는 에디슨을 두고 벌이는 논쟁과 비슷할 텐데,  그를 두고 쇼맨십 강한 천재 과학자냐 천재 사기꾼 쇼맨이냐 하는 논쟁 말이다. 영화도 전자에 조금은 동조하는 듯하다. 여하튼,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차라리 100% 스포일러가 될 만한 사실들까지 완벽하리만치 숙지하는 게 편할 것이다. 그리하면 영화가 주는 재미를 최대한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그리하지 못하면 불친절에 치를 떨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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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T, 개연성, 모모 큐레이터, 에디슨, 연기, 웨스팅하우스, 전류전쟁, 카메라, 커런트 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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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을 들여다보며 독립영화의 한계를 넘어 성장, 관계, 붕괴를 말하다 <벌새>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9.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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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벌새>


영화 <벌새> 포스터. ⓒ 엣나인필름



1994년 서울, 은희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중학교 2학년생이다. 학교 성적은 별로, 한문학원 단짝친구 지숙과 키스 한 남자친구 지완과 자기가 좋다고 쫓아다니는 학교 후배 유리가 있다. 떡집을 하는 아빠와 엄마, 학교회장을 하며 서울대를 목표로 하는 오빠 대훈, 아빠한테 매일같이 혼나면서도 밖으로 도는 언니 수희와 함께 산다. 


아빠는 가부장적이고, 엄마는 별다른 힘을 못 쓰며, 오빠는 은희를 부려먹는 한편 마음에 안 들면 때리고, 언니는 집안일에 무관심하다. 은희는 학교 안팎에서 집 안팎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만나고 헤어지고, 싸우고 화해하고, 좋게 지내다가도 대척한다. 한편 귀밑에 무언가 만져지기에 병원에 갔더니 혹이란다. 검사를 했더니 심상치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은희 앞에 한문학원에 새로온 선생님 영지가 의미깊게 다가온다. 은희는 온화하면서도 삶에 있어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영지에게 기댄다. 


1994년은 여러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예고된 채로 혹은 불쑥 찾아왔다. 미국에서 월드컵이 열렸고, 북한의 김일성이 사망했으며,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은희와 은희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은 그 대규모 이벤트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하면 1994년만의 팬시적 감성도 엿보인다. 지금은 없어진 또는 다른 비슷한 것으로 대체된 노래방, 삐삐, 트램펄린장 등은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다. 


1994년 단면, 2019년 국면


영화 <벌새>는 주인공 은희를 통해 들여다보는 1994년 한국의 단면이자 25년이 지난 2019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국면이기도 하다. 전 세계 유수 영화제들에서 25관왕을 달성하며 10여 년 전 <똥파리>가 달성한 38관왕의 위업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영화로, <우리집>과 더불어 2019년 대표 독립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극장 개봉 한참 전부터 여기저기에서 영화제 수상 소식이 들려왔는데, 그때부터 이미 오매불망 볼 날을 기다리며 기대에 한껏 부풀어 올랐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던데, <벌새>는 개인적으로 큰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완전체에 가까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필자가 보아온 한국 독립영화들 중 <용서받지 못한 자> <똥파리> <파수꾼> <한공주> 등과 더불어 수위권에 속하는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분명 훨씬 길었던 분량을 편집하여 이 정도로 줄인 것으로 생각된다. 거의 모든 시퀀스 사이에 공간이 존재했고 그래서 일면 불친절해보였지만 덕분에 오히려 영화가 풍성하고 확장되는 느낌을 주었다. 소품이 아닌 스케일 큰 대작이라는 느낌마저 주었던 것이다. 지극히 보편적이고 또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특별하고 또 정치사회적인 이야기였다. 


성장, 관계, 붕괴


이 영화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들다는 장점이자 단점을 지니고 있다. 은희의 '성장'을 주요 테마로 다루었다고도 할 수 있을 테고, '관계'라는 꽤나 추상적인 개념을 서사의 중심으로 두었다고도 할 수 있을 테며, '성수대교 붕괴'라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가 영화의 가장 중요한 소재로 작용해 주제까지 어우르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테다. 


이밖에도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을 테고 어느 것을 중심에 두고 영화를 보든 틀린 건 없을 테지만, 필자는 이중 '관계'를 중점적으로 보았다. <벌새>는 은희가 주인공이고 나아가 은희가 사실상 원탑이라고 할 수 있을 테며 은희 1인칭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그녀가 겪는 일들이 결국엔 관계에 있어 맺고 끊음 또는 연결과 단절의 계속됨이라고 하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은희의 성장도 바로 이 관계의 연결과 단절의 깨달음에 있다고 생각하며, 성수대교 붕괴라는 사건의 외연과 내연도 연결과 단절의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궁극적으로, 1994년을 무 자르듯 하여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그 자체로 25년이 지난 지금과 이어지고 있는 걸 볼 때 연결과 단절은 <벌새>라는 영화를 구성하는 가장 큰 축이 아닐까 싶다. 


영화가 여타 영화처럼 롤러코스터 식의 온도차를 보이지 않고 여러 면에서 시종일관 잔잔한 파도 정도의 높낮이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누구나의 인생도 롤러코스터가 아닌 잔잔한 파도의 연속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그저 1994년 여중생 2학년의 한때를 빌려 왔을 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누구나의 한때와 인생이 아닐까. 


그밖에 이야기들


<벌새>라는 영화 특유의 분위기는 두 배우의 연기가 크게 작용했다. 은희 역으로 분한 박지후 배우는 10대 중반에 불과한 나이임에도 기본적으로 성숙함이 담긴 연기를 내보였다. 얼굴만 클로즈업할 때는 몇 살인지 나이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농익은 표정 연기를 펼치면서도, 전신 풀샷을 잡을 때는 중학교 2학년생 그 나이 때 그대로의 연기 아닌 연기를 펼쳤다. 덕분에 보는 이로 하여금 다채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영지로 분한 김새벽 배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를 잘 모르는 이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고 한 그녀는, 지난 2011년에 데뷔한 한국 독립영화의 대들보다. 내년이면 10년차가 되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경력인데, 독립영화만의 카리스마를 만들어 체득해 뿜어내고 있다. 영화에서는 그야말로 은희가 유일무이하게 믿고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어른이다. 왠지 실제의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벌새>가 아닌 <벌새 둥지>다. 벌새가 은희라면, 한국에서는 은희에게 초점이 맞춰질 테고 영어권 외국에서는 은희가 찾아 돌아가려는 집에 초점이 맞춰질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은희에게 초점이 맞춰진 <벌새>가 조금은 더 알맞은 것 같지만, 보다 조금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 해석으로 영화를 감상하길 원한다면 <벌새 둥지>라는 제목을 유념하는 것도 괜찮은 듯싶다. 


한 이야기가 많은 영화 <벌새> 못지 않게 <벌새>에 대해서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지만, 이도저도 아닐 것 같고 또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여 이만 줄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지난 한국 독립영화들이 천착한 궤, 이를 테면 '개인' '사회' '폭력' 등을 이어가면서도 그것들이 모두 '그들'만이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메시지를 처음 전했다는 의미를 남겼다는 걸 전한다. 당연히 호불호가 있을 테지만, 적어도 보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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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관계, 독립영화, 둥지, 모모 큐레이터, 벌새, 붕괴, 성장,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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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하면서까지 전하고픈... 수평적 세상에의 바람 <업사이드>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6.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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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업사이드>


영화 <업사이드> 포스터. ⓒ㈜퍼스트런



가석방 상태로 일자리를 찾는 무일푼 가장 델(케빈 하트 분), 여기저기 형식적으로 면접으로 보다가 어느 대저택에 이른다. 그곳에서는 억만장자 필립(브라이언 크래스톤 분)을 24시간 보살펴줄 보조사 면접이 진행 중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들어가 필립과 함께 면접을 진행 중인 이본(니콜 키드먼 분)에게 면접 봤다는 사인만 부탁하고 나오려 한다. 필립은 자신을 수직적 아닌 수평적으로 대하는 그 모습에 끌려 그 자리에서 델에게 일자리를 제안한다. 


아내와 아들에게 면목없는 남편이자 아빠이기도 한 델은 현실을 직시하고 다음 날부터 필립의 24시간 생활 보조사가 되어 일을 시작한다. 아내와 무리하게 패러글라이딩을 타다 사고를 당해 아내를 잃고 자신은 목 아래 전신 마비가 된 필립, 재산이 1조 원이 넘는다는 동부 힙합의 왕 제이지(Jay Z)보다도 재산이 많고 뉴욕 양키스는 몰라도 메츠를 사들일 수 있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하룻밤 몸 누일 곳 없는 델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이 된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르다고, 아니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필립과 델, 델과 필립은 천천히 한편으론 급격히 가까워진다. 처음엔 필립은 델에게 금전적인 걸 책임져줄 수 있고, 델은 필립에게 육체적인 걸 책임져줄 수 있어서였을 테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스스로가 깨닫고 또 서로가 서로를 책임 아닌 채워줄 수 있는 게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 모두 해피엔딩일 것이다. 


브라이언 크랜스톤과 케빈 하트, 그리고 니콜 키드먼


브라이언 크랜스톤, 케빈 하트, 니콜 키드먼. 영화 <업사이드>의 한 장면. ⓒ㈜퍼스트런



어디서 보고 들었음직한 기시감이 드는 영화 <업사이드>는, 7년 전 세계적인 흥행돌풍을 일으켰던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의 할리우드 리메이크판이다. 생소하지만 공감 어린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던 바로 그 영화 말이다. 할리우드의 손에 다시 만들어지면서, 생소함 대신 익숙함으로 여전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눈여겨봐야 할,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건 단연 세 명의 주연이다. 우리에겐 미드 역사상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추앙 받는 <브레이킹 배드> 시리즈의 월터 화이트 '브라이언 크랜스톤'이 억만장자 필립 역을 맡았다. 그는 8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경력을 쌓아오다 이 작품 이후 일명 메이저로 올라와서 10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미드 <모던 패밀리> 4, 5시즌을 연출하기도 한 재능왕이다. 


델로 분한 '케빈 하트'는 말이 필요 없는 미국의 국민 코미디언이다. 세계 최초로 스타디움에서 스탠딩 코미디를 공연해 큰 호응을 이끌기도 하였다.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그만의 재치 있는 입담은 홀로 그 어떤 콘텐츠도 완벽히 장악할 수 있을 정도이다. <업사이드>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 바, 카메오까지 합쳐 80편에 이르는 영화 출연이 큰 힘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 또한 재능왕이다. 


영화에서 필립과 델보다는 훨씬 주목도가 덜한 배역 이본, 하지만 이본으로 분한 '니콜 키드먼'으로 말할 것 같으면 브라이언 크래스톤이나 케빈 하트와 비할 바가 아니다. 그녀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다. 미국과 영국 아카데미, 골든글러브는 물론 베를린도 점령한 것도 모자라 드라마로 넘어가 에미상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아쿠아맨> <황금나침반> 같은 블록버스터에도 출연했다. 그녀야말로 진정한 재능왕이다. 


어울림과 무던함과 겉돎


어울림과 무던함과 겉돎의 조합. 영화 <업사이드>의 한 장면. ⓒ㈜퍼스트런



영화는 어울림과 무던함과 겉돎의 조합 아닌 조합으로 굴러간다. 브라이언 크래스톤의 필립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원작의 필립과도 완벽에 가까운 싱크로율을 자랑하면서도 원작과 별개로 그 자체로도 더할 나위가 없다. 모든 걸 얻었지만 모든 걸 잃은 부자의 덧없음과 욕망을 잘 드러냈다. 드러내거나 표나지 않으면서도 연기의 맛이 느껴지게. 


니콜 키드먼은 니콜 키드먼이 아니라 이본을 연기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게, 많은 배우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진짜 자신을 감추고 가짜 자신을 내세웠다. 영화에서 상대적 비중은 작지만 여러 면에서 중요한 연결고리로 분하는 딱 그만큼을 행해주었다. 무던함이 필요한 배역을 무던하게 이뤄냈다는 건 완벽하다는 것이다. 


케빈 하트는 델을 연기하지 않았다. 케빈 하트는 누가 봐도 케빈 하트였다. 이 영화가 호불호로 갈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역시 그만의 입담으로 <업사이드>에서도 영화 안팎의 좌중을 휘어잡는다. 그것이 이 영화 안에서 델이 해줘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영화 밖으로까지 전가되면 안 되지 않은가. 그의 모습은 마치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흑백 실제 필름에 CG를 이용해 프레스트 검프가 실제인물과 함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매우 튀고 겉돌았다는 것이다. 


수직 아닌 수평적 세상에의 바람


수평적 세상에의 바람. 영화 <업사이드>의 한 장면. ⓒ㈜퍼스트런



이 영화에 호평 아닌 혹평을 날릴 만한 부분은 케빈 하트뿐만은 아니다. 비단 리메이크작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닌, 시종일관 염치 불구 클리셰가 계속된다. 장면장면이 예상되는 건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흘러갈지 정확히 알 것 같다. 억만장자 필립이 하늘을 날다가 추락해 사실상 모든 걸 잃은 것이나, 무일푼 델이 4억이 넘는 페라리 gtc4 루쏘를 운전하는 것 같은 디테일까지도 말이다. 그렇지만, 거슬리는 장면이 딱히 기억나지 않는 건 자못 신기하다. 연출력이나 각본이 아닌 연기력의 힘이란 걸 확신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케빈 하트의 델이 큰 역할을 했다.


지난 5월 개봉해 나름 의미 있는 평가를 받고 흥행을 이끈 한국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가 오버랩된다. 목 아래로 전신 마비인 주인공, 그런 그도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라는 점이 공통적으로 특별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내가(주인공들) 알던 사람이, 마음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모두 다르지만 한편 똑같다는 것 역시 특별하게 다가온다. 


수직적 아닌 수평적 세상에의 바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것일 텐데 억지스럽지 않았다. 메시지 전달을 위해 스토리와 각본과 배우들을 수단으로 써먹은 게 아니라, 맥락으로 자연스럽게 유추하게끔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전반적으로, 총체적으로 접근해볼 때, 호평을 하고 싶다. 팍팍하고 두려운 현실을 소소하지만 촉촉하게 적시고 있는 건 분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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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니콜 키드먼, 브라이언 크랜스톤, 수평, 언터처블: 1%의 우정, 업사이드, 연기, 케빈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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