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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나이 먹은 나를 가치 있는 존재로 기억하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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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서브스턴스>

 

영화 <서브스턴스> 포스터. ⓒNEW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50세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최고의 TV 에어로빅쇼 진행자로 명성이 높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아카데미상을 받고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하기까지 한 전력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책임 프로듀서가 그녀를 쫓아낸다. 그녀가 더 이상 어리지도 섹시하지도 않다는 이유였다. 어리고 섹시한 이를 새로 뽑아 그녀의 자리를 대체하겠다고 했다.

엘리자베스는 귀갓길에 교통사고로 병원에 살려 갔고 다행히 아무런 이상은 없었는데, 웬 간호사한테 ‘서브스턴스’라는 약을 권유받는다. 주사 한 번으로 보다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또 다른 자아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데, 뭔 미친 소리 하나 싶어 연락처를 버린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연락처를 찾아내 서브스턴스를 받아 온다.

서브스턴스는 1회 사용 후 폐기해야 하는 활성제, 다른 자아를 위한 안정제, 전환제, 모체 음식과 다른 자아 음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번만 활성화할 수 있고 매일 안정시켜야 했으며 예외 없이 7일마다 전환해야 했다. 무엇보다 모체와 다른 자아는 하나임을 잊지 말아야 했다. 그렇게 차원을 달리 하는 고통 끝에 척추에서 다른 자아가 태어나는데… 그렇게 태어난 수는 곧바로 엘리자베스의 대체자 혹은 후계자를 뽑는 TV 에어로빅 쇼를 찾아간다. 과연 어떻게 될까?

 

나이, 몸에 관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

 

어렸을 때는 빨리 나이 먹어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는데 여전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더군다나 속절없이 지나가는 세월 속에 나이를 먹다 보면 더 이상 나이 먹는 게 두려워진다. 사회적 역할이 줄어들 테고 나를 보는 세상의 눈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장르 영화임에 다분함에도 토론토영화제 관객상, 칸영화제 각본상에 빛나는 <서브스턴스>는 '나이'에 관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바디 호러 장르의 문법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일찍이 이리도 괴랄하면서 동시에 섹시한 영화를 본 적이 있나 싶다. 영화가 그야말로 '몸'을 가지고 놀고 있다. 몸이 갈 수 있는 최상단과 밑바닥을 오간다.

한때 모든 이가 선망하고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곳애서 고고했지만 시간이 흘러 많이 내려왔는데 그마저도 뺏겨 버리니 그동안 꾹 눌러온 욕망이 분출한다. 더 젊어지고 싶고 더 예뻐지고 싶은 마음이 폭발한다. 그런데 그 마음의 주체는 과연 온전히 나 자신인가? 나는 괜찮은데, 이대로 나이 먹는 것도 충분히 좋은데 외부의, 세상의 시선이야말로 그 마음의 주체가 아닌가?

하여 나이 먹은 내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걸 기억하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여전히 의미 있는 존재라는 걸 망각해 간다. 그러니 영화에서 엘리자베스와 수는 하나인데 다른 자아가 모체를 갉아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외부의, 세상의 시선에 영향을 받았든 나의 의지가 반영되었든 나조차도 나이 먹은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파국은 예정되어 있는 것인가.

 

온갖 욕망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

 

영화가 '욕망'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젊고 아름다운 걸 '보고 싶다'는 욕망, 젊고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욕망, 젊고 아름다운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 '영원히' 젊고 아름답고 싶다는 욕망 등 '젊고 아름답다'를 두고 온갖 욕망이 들러붙어 있다. 이 중에서 뭐가 먼저인지 알 수 없다, 어느새 혼용되어 버렸다.

욕망이란 게 그런가 보다. 처음에는 욕망의 주체와 객체가 명확히 나뉘어 있었을 텐데 끊임없이 주고받다 보니 서로 합쳐져 분간하기 힘들어진다. 영화에서 '서브스턴스'의 가장 중요한 말이 '모체와 다른 자아는 하나임을 잊지 말아라'인데 의미심장하다. 분리된 자아가 하나임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건 차원이 다른 차이다. 욕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여 어쨌든 엘리자베스와 수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 젊고 아름다운 수가 엘리자베스를 대체하려 한다. 본인이 본인을 대체하는 것이니 문제 될 게 없을 것 같은데 '젊고 아름다운 자아'와 '늙고 볼품없는 자아'가 부딪힌다. 둘 다 '나'인데 나도 어찌할 수가 없다. 하나임을 인지하면 될 텐데 소우주라 불리는 인간이니 만큼 나도 나를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는가 보다.

그런데 두 자아가 부딪히는 이유를 파헤쳐 보면 프로듀서의 한마디로 귀결된다. 엘리자베스보다 훨씬 늙고 볼품없으며 더럽기까지 한 남자 프로듀서가 엘리자베스에게 한 '어리고 섹시하지 않으니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한마디 말이다. 그 한마디가 이 파국을 불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나간 옛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엘리자베스, 젊고 아름답고 싶은 엘리자베스, 늙고 볼품없는 자신을 견디기 힘든 엘리자베스 모두 그녀 자신이 아닌 외부의 관심과 시선과 말 한마디에서 생겼다. 우리라고 다를까. 모르긴 몰라도 매일같이 새로운 자아가 생기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이상한 짓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를 단단히 하고 모든 걸 경계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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