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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일개 개인의 욕망으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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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페라리>

 

영화 <페라리> 포스터. ⓒCJ ENM

 

이런 말이 있다. "이탈리아에는 2개의 종교가 있다. 하나는 가톨릭이고 다른 하나는 페라리다"라고 말이다. 이탈리아에서 종교급으로 추앙받는 것들이라 하면 축구, 피자와 파스타와 커피, 패션 등이 있을 텐데 다 제치고 '페라리'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생각해 보면 자동차는 독일, 일본, 미국 등이 소위 알아주는 곳들인데 페라리가 독야청청 이탈리아의 자존심을 살려주고 있다.

페라리는 1947년에 설립된 고급 스포츠카 생산 기업이지만 근본적 태생은 1929년에 설립된 F1 레이싱팀인 '스쿠데리아 페라리'다. 설립자 엔초 페라리는 본인이 레이싱 드라이버이기도 하면서 알파 로메오 산하에서 근무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하지만 1939년 관계가 틀어지면서 회사를 나왔고 자신만의 회사이자 팀을 만든다. 시작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엔초는 워낙 괴팍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에 여러 일화가 전해지고 있고 덕분에 많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전설적인 브랜드 페라리와 전설적인 일화들의 주인공 엔초다. 마이클 만의 <페라리>도 그중 하나인데 '페라리'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작한 1947년 이후 10년이 지난 1957년이 배경이다. 엔초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며 페라리의 명운이 걸린 당시를 독특한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회사는 망해 가지만 하고 싶은 건 따로 있다

 

엔초 페라리는 1947년 아내 로라와 합작으로 페라리를 새롭게 정비한다. 레이싱팀에서 자동차 생산 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10년이 지난 1957년, 엔초는 얼마 전 큰아들 알프레도를 잃은 아픔에서 헤어 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지만 이미 불륜을 저질러 작은아들 피에로가 꽤 컸다. 로라는 엔초와 이혼하려 하지만 엔초로선 로라가 본인의 지분을 현금화하면 회사가 당장 망할 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레이싱에 진심인 엔초는 돈이 되는 자동차 생산은 등한시하고 레이스 기록을 줄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당연하게도 들어오는 돈은 적고 나가는 돈을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안 그래도 힘든데 동업자이자 아내 로라와의 사이도 크게 틀어졌으니 점입가경이다. 타개할 방법을 강구하는 와중에도 훈련에서 사고가 나고 드라이버가 유명을 달리한다.

투자자가 말하길 자동차 생산을 많이 늘리고 곧이어 출전할 1000마일 도로 레이스 '밀레밀리아'에서 무조건 우승을 차지하라고 한다. 그러려면 엔초는 개인사도 해결해야 했고 회사로서도 두 가지 일, 즉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레이싱 우승을 달성해야 했다. 모두 다 해내지 못하면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끝장. 과연 모두 다 해낼 수 있을까?

 

완벽주의와 1등주의에의 욕망

 

어느덧 80대에 접어들며 현역 최고령급 반열에 오른 마이클 만 감독, 그는 오랫동안 남성 중심의 각 잡힌 전문가주의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페라리>도 정확히 그 연장선상에 있는 바, 특별할 건 없으나 마이클 만 작품이라는 점 자체가 특별함을 수반한다. 영화에서 엔초 페라리는 다른 무엇보다 그의 일이 중요하고 그 때문에 많은 이와 다양하게 갈등한다.

그가 해내야 하는 건 크게 두 가지, 아니 회사를 창립해서 이끄는 이라면 한 가지다. 차를 많이 생산해 많이 팔아 이익을 남기는 것. 그러나 그는 자신이 만든 차로 자신이 직접 고른 드라이버가 레이싱에 참가해 1등을 하는 것만이 지상과제다. 그것 말곤 다른 모든 건 철저히 수단일 뿐이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는 건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그 자신만의 것이지만, 그 때문에 남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에 아무런 생각이 없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저 욕망의 화신일 뿐. 하여 엔초의 욕망이 향하는 곳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레이싱이라는 게 죽음이 상존하는데, 완벽주의와 1등주의가 얽혀 똬리를 틀면 죽음은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최악의 흑역사 혹은 결정적 분기점

 

이 영화는 그러나 엔초의 삶과 레이싱, 욕망과 갈등, 죽음과 희생 등이 다채롭게 입체적으로 조화를 이뤘다고 보긴 힘들다. 아무래도 엔초 페라리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데, 연기는 출중했으나 캐릭터 자체가 너무 경직되어 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니 어쩔 수 없는 면도 있겠으나 마이클 만의 스타일에 부합하기에 다른 식으로 바꿨을 것 같진 않다.

엔초는 이루고자 하는 걸 이뤘을까? 레이싱에서 우승하고 차를 많이 생산해 팔고 아내와 잘 소통해 파산 위기에서 벗어나고 불륜으로 얻은 아이에게 페라리의 이름을 물려주기까지 다양한 갈등 상황을 잘 처리했을까? 아마도 그랬으니 지금의 페라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가톨릭과 더불어 이탈리아의 2대 종교로 추앙받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면 1957년의 엔초 페라리, 그리고 '페라리'는 최악의 흑역사일까 결정적 분기점일까. 최대 최악의 위기였던 한편 돌이켜 보면 그때부터 페라리의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다. 엔초가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 같지만 정작 들여다보면 그조차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둘렸다. 일개 개인의 욕망으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이 영화는 세상을 영원히 바꿨다고 평가받을 만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비록 출중한 능력과 그에 걸맞은 욕망까지 갖추고 있다고 해도 할 수 없는 게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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