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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영화'에 해당되는 글 31건

제목 날짜
  • 주저 앉은 찬실이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이들의 위로와 용기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20.04.22
  • 명품 사회고발 영화의 계보를 독보적으로 잇다 <다크 워터스> 2020.04.15
  • 고통을 영광으로 승화시키는 예술적인 방법 <페인 앤 글로리> 2020.02.12
  • 막무가내, 황당무계, 불편불쾌한 토크쇼의 영화판 <비트윈 투 펀스: 투어 스페셜> 2019.09.30
  • 추석에 보면 좋을 콘텐츠들 2019.09.05
  • 쿠엔틴 타란티노의 걸출한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 2019.09.01
  • 위대한 소설을 잘 살리지 못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 2019.08.23
  • 호불호가 갈릴, 혁신적 인터랙티브 방식의 영화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2019.01.25
  •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큰 목적을 완벽히 이룬 영화 <로마> 2018.12.27
  • 제2차 세계대전 영화의 완벽한 교과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 2018.11.02

주저 앉은 찬실이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이들의 위로와 용기 <찬실이는 복도 많지>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4. 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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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포스터. ⓒ찬란



2019년은 한국 독립영화계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해외 수많은 영화제에서 선을 보이고 뒤늦게 한국에 상륙해 신드롬급 관심을 얻어 흥행까지 이어진 <벌새>를 비롯 <우리집> <메기> <윤희에게>까지. 작품성은 물론 흥행성까지 갖춘 독립영화들이 이어졌다. 그 이면을 살펴보면, 출중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흥행이 따라와 주지 않은 대다수 작품들이 존재했지만 말이다. 


하여, 2020년은 한국 독립영화계의 진정한 부흥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2월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로 영화계 전체가 주저앉았다. 큰 영화도 버티지 못하는 마당에 작은 영화는 설 자리가 없었다. 와중에 용감하게 무모하게 혹은 전략적으로 개봉을 밀어부친 한국 독립영화들이 몇몇 있다. <기도하는 남자> <이장> <비행> 등이 2~3월에 개봉을 강행했지만, 득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찾아왔다. 제목부터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코로나 국면 한가운데에 개봉하여 자그마치 2만 명을 훌쩍 넘기는 스코어를 기록했다. 몇 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내달려도 100만 명을 넘기지 못하는 이때, 독립영화로서 특출난 흥행 성적이다. 그만큼 영화도 좋을까? 물론이다, 전체적으로 적정선을 지키며 군데군데 보이는 포인트가 와닿는다. 한번 들여다보자. 


집도 돈도 남자도 없고 일자리까지 없어진 40대 찬실


영화 프로듀서로 지명수 감독 하고만 일해 온 이찬실,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그녀에게 청천병력 같은 일이 일어난다. <뒷산에 살리라>라는 작품을 시작하며 고사를 지내고 간략히 회식을 하는 도중 지 감독이 죽고 만 것이다. 작품은 보류되고 한순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찬실, 산 중턱에 있는 집에 세 들어 살게 된다. 돈을 벌어야 했기에 친한 여배우 소피네 가사도우미로 취직한다. 


찬실은 소피의 불어 선생님으로 소피네를 드나드는 김영에게 마음이 간다. 그도 원래 단편영화 감독으로, 돈을 벌기 위해 소피의 불어 선생님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동질감을 느꼈던 걸까. 계속 생각나고 꿈에서까지 나오는 게 아닌가. 같이 술도 마시면서 심도 깊은 영화 이야기도 나눈다. 얘기가 통하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세 들어 사는 집 주인 할머니하고도 은은하게 말이 통한다. 할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고 지켜봐 준다. 


어느 날엔 집에 있는데 갑자기 자신을 장국영 귀신이라고 밝힌 남자가 나타난다. 예전부터 옆 방에서 기거하고 있었다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는 찬실이를 한없이 동조해 주고 위로해 주며 힘을 주려 한다. 찬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한다고, 주문을 외우듯 볼 때마다 되뇌인다. 이후 뭔가 바뀐 듯한 찬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깨달은 걸까?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서는 과정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남자도 없고 일자리까지 없어진 40대 여자 찬실이가 나락에서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 프로듀서로서 영화을 찍는 과정의 어려움과 힘듦을 그린 게 아닌, 영화조차 찍을 수 없는 일상의 지난함을 그린 게 특징적이다. 그렇게 우리네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작품 곳곳에서 영화를 향한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게 또 특징적이다. 그러며 찬실이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와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녀야말로 복이 많다는 걸 느끼게 하는 면면들이 아름답다. 


그동안 오갈 데 없거니와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들고 아픈 건 청춘의 전유물이었다. 즉, 40대 이전의 2~30대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어느새 아픔과 힘듦의 영역이 40대까지 확장된 느낌이다. 그것도 이질감 없이 매우 자연스럽게. 2~30대도 40대의 찬실이를 보며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이다. 사회에 진입하기 힘든 건 매한가지이니까. 감정적으로 짠하지만, 이성적으로 안타깝다. 


이 영화의 감독은 '영화'를 진짜 좋아하는 것 같다. 영화를 향한 찬사와 헌사를, 시종일관 과도하진 않지만 꾸준하게 내 보인다. 프로듀서 찬실, 감독 영, 배우 소피, 그리고 장국영까지 거의 모든 주요 캐릭터가 영화 관련자이지 않은가. 장치나 장면이나 대사를 따로 꾸며 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와 닿게 한 설정이라 하겠다. 와중에 할머니 캐릭터가 중심 축으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그녀의 모습 자체에서 찬실은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아름다워야 할 사람들 간의 연대


별 다를 게 없을지 모를 이 영화가 다름 아닌 '지금' 큰 의미를 가지는 건, 찬실이가 복이 많다는 진실에서 그 연유를 찾아볼 수 있다. 누가 봐도 복은커녕 가진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찬실이야말로, 지금의 우리들 아닌가 싶다. 안 그래도 '없다'는 걸 입에 단 채 몸소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복도 없지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지 않은가. 그럴 때 남은 게 뭔가, 뭘 해야 하는가. 


영화는 묻고 답한다. 남은 건 사람이고, 사람들과 함께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비록 우린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꽤 오랫동안 시행하며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멀어진 생활을 하고 있다. 하여 물리적인 건 물론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찬실이처럼 말이다. 그럴 땐 시간을 들여 자신을 오롯이 들여다보고 주변을 살피고 가장 나중에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참으로 오랫동안 뒤도 옆도 위도 아래도 살피지 않고 또는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려오지 않았는가. 


사람들 간의 연대는 아름다워야 한다. 이후에 실용적일 수 있다. 살아가는 게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그러기가 힘드니 다들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때마침 찾아온 이 영화가, 그래서 축복이다. 시대에 맞는 깨달음을, 거나하지 않고 소소하게 그러나 애매모호하지 않고 확실하게 건네기 때문이다. 영화 속 장국영의 말을 인용해 본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네는 말일 듯하다. 


"찬실 씨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해져요. 당신 멋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좀 만 더 힘을 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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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돈, 연대, 영화, 용기, 위로, 일, 지금, 집, 찬실이는 복도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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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사회고발 영화의 계보를 독보적으로 잇다 <다크 워터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4.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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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명작 리뷰] <다크 워터스>


영화 <다크 워터스> 포스터. ⓒ 이수C&E



사회고발 장르 영화는 기본 이상의 퀄리티를 자랑할 수밖에 없다. 다큐멘터리로 정확하고 심도 깊고 치밀하게 보여 줄 수 있을 텐데, 굳이 영화로 보여 주려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테다. 실화를 가져와 최대한 사실대로 보여 주되, 드라마틱한 캐릭터와 사건과 분위기 등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관심을 갖고 봐야만 하는 다양한 이유를 설정시켜 주는 것이다. 하여, 같은 실화의 다큐멘터리는 관심을 갖고 잘 몰라도 영화는 관심을 갖고 잘 아는 편이다. 감독과 배우들의 영향력이 극대화된다. 


사건 자체가 웬만큼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고, 사건을 파헤쳐 해결에 다다른 사람이 없지 않을 수 없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식으로든 삶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어쩌라고?'가 아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하는 말이 나올 것이고 나와야 한다. 최근 기억에 남는 영화로는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다룬 <스포트라이트>, 예전 기억에 남는 영화로는 P&G 공장 오염물질 유출 사건을 다룬 <에린 브로코비치>가 있는데 둘다 자타공인 수작 중 수작이라고 인정받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인 토드 헤인즈의 <다크 워터스>가 사회고발 장르의 수작 계보를 이을 만하지 않을까 싶다. 주연으로 분한,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마크 버팔로는 2016년 뉴욕타임스의 탐사 기사를 보고 영화화를 결심해 토드 헤인즈 감독한테 어필하고 제작까지 참여했다고 한다. 2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화학 회사 '듀폰'의 PFOA 유출 사건을 다루었다고 하는데, 들여다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세계 최대 화학 회사, 세계 최악의 짓


1998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 농장주 월터 테넌트는 가족처럼 키우던 소 190마리가 떼죽음을 당하자 동네 주민의 소개로 뉴욕 대형 로펌의 대기업 변호 전문 변호사 롭 빌럿을 찾아간다. 당연히 거절하는 롭, 하지만 그의 고향이기도 하여 월터의 농장으로 향한다. 그곳의 참상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월터가 보내 준 영상도 살핀다. 그러곤 심적 결론을 내려 대표한테 제안해 어렵사리 사건을 맡는다. 물론, 로펌 내에서 그를 도와 줄 이는 없었고 그의 상대는 세계 최대 화학 회사 듀폰이었다. 


어찌어찌하여 듀폰의 사내 변호사를 접촉해 욕을 먹어가며 관련 서류를 입수하는데, 엿 먹으라는 식으로 장장 지난 반 세기의 모든 서류를 보내 주었다. 오로지 사건에 연관된 서류를 살피는 데 주력하는 롭, 그가 찾고 싶었던 건 PFOA였다. 아무도 정체를 모르는 그것, 그는 오랜 시간을 들여 조사하고 연구하고 취재하여 독성 폐기물질이라는 걸 밝힌다. 그것이 우리 일상생활에 아주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고 보니 듀폰은 인체 실험을 통해 PFOA가 독극물에 해당되는 사실을 알고도 은폐하고 무단 유출시켜 왔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미국 환경보건국이 화학물질 규정을 만들기 전부터 존재했고 또 사용해 왔다고 한다. 롭 빌럿 변호사는 어떻게 싸웠을까, 이겼을까? 듀폰은 어떤 대응을 했을까, 합당한 배상이 이뤄졌을까, 배상하면 끝나는 것인가? 전 인류의 99% 몸 안에 독극물 PFOA가 있다고 한다...


사회고발의 묘미


영화 <다크 워터스>는 사회고발의 묘미와 영화로서의 드라마틱한 묘미가 매우 탁월하게 어우러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드라마틱한 요소가 덜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했기에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경각심을 최대한 높일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환경운동가 마크 버팔로의 영향력이 극대화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선, 사회고발적 서스펜스는 치가 떨릴 정도이다. 세계 최대 화학 회사인 만큼 그 영향력이 엄청날 텐데, 그들이 은폐하고 무단 유출한 PFOA가 가장 적확하고 많이 쓰인 곳이 프라이팬이기에 전 세계 모든 이들의 몸 속으로 들어갈 것을 알았을 텐데, 하여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의 한계를 넘어선 규모인 것이다. 그야말로 지금의 나에게도 해당하는 현실이라 뼈 아프다. 


사회고발은, 말도 안 될 것 같지만 실행에 옮긴 미친 짓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보여 주려는 의도를 충분히 인지한 채 보는 이가 판단해야 한다. 즉 <다크 워터스>의 사건을 두고 듀폰에게 광분하지 않고 우리 일상 생활에 깊숙이 침투한 PFOA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많은 사회고발 콘텐츠가 사건 당사자인 그들로 시선이 향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우리들로 시선이 향할 테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알면 알수록, 들여다보면 볼수록 감당하기 힘든 진실이다. 


예전엔 '환경'이라고 하면 막연히 관심을 갖고 보살펴야 하는 영역인 정도로 생각했다. '언젠가 들이닥칠 테지만, 아직은 먼 얘기'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가 어느새 지금이 되었다. 언젠까지 '아직은'이라는 생각과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환경'은 당장의 목숨과 삶에 직결되는 영역인 것이다. 관심을 갖고 보살피는 건 당연하고, 정책과 법이 수반되는 현실적인 답안이 필요하다. 


영화로서의 드라마틱한 묘미


영화로서의 드라마틱한 묘미를 너무 살리면 안 될 듯한 규모의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더불어, 롭 빌럿이라는 사람 자체의 인생 자체에 그리 드라마틱한 요소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극중에서 롭은, 일에의 무지막지한 열정과 능력으로 똘똘 뭉친 워커홀릭 정도로 나온다. 가정에 매우 소홀한 가장인데, 가정 불화 아닌 갈등이 비춰지는 건 영화를 구성하는 메인 요소라고 하기 힘들다. 


오히려, 사건을 맡고 몇 년이나 매달렸음에도 뚜렷한 진전이 없던 와중에 롭이 심한 압박을 받아 애써 정신은 붙잡지만 몸에 이상이 오고 마는 모습에서 드라마틱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세계 최대 기업과 회사의 등을 업지 못한 개인의 싸움이 어떤 모습을 띄는가. 물론 그조차도 <에린 브로코비치>의 캐릭터성 만발한 극적 요소나 <스포트라이트>의 팀 성격 강한 극적 요소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영화 자체로 보자면 극적 요소를 최대한 절제하고 '사회고발' 장르에 천착하며 오히려 거기에서 서스펜스를 끄집어내는 묘수를 내 보였다. 수작 사회고발 영화의 계보를 잇지만, 결은 완연히 다른 것이다. 때문에 식상하지 않게 집중하며 본질에 가 닿을 수 있었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텐데, 이 영화는 그중 한 단면을 적확하게 보여 준 가장 이상적인 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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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OA, 다크 워터스, 듀폰, 드라마틱, 무단 유출, 사회고발, 영화, 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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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영광으로 승화시키는 예술적인 방법 <페인 앤 글로리>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2.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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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명작 리뷰] <페인 앤 글로리>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조이앤시네마



페드로 알모도바르, 현대 스페인 영화를 홀로 대표하다시피 하는 감독으로 1980년에 데뷔해 40년 동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선명하고 세련된 색감과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스토리로 전 세계 평단과 대중을 사로잡은 바, 80년대부터 꾸준히 10년을 대표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왔다. 1980년대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90년대 <내 어머니의 모든 것>, 2000년대 <그녀에게>, 2010년대 <페인 앤 글로리>까지. 


그에겐 1980~90년대와 1990~2000년대 확고한 페르소나로 누구나 알 만한 두 남녀 배우가 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페넬로페 크루즈가 그들이다. 그들은 알모도바르와 작업하여 '연기'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후, 헐리우드에 진출하여 '흥행'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는 스페인으로 돌아와 2010년대에는 셋이서 함께 작업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최고의 조합임에 분명하다. 


2010년대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페인 앤 글로리> 역시 알모도바르 감독에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페넬로페 크루즈가 함께 했다. 전 세계 수많은 영화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최고의 외국영화상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였다. 그 정점이라 할 만한 제92회 아카데미에서 <기생충>이 국제장편상을 수상하며, <페인 앤 글로리>가 판정패하였다. 하지만,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칸을 비롯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남우주연상을 접수하며, 작품이나 감독보다 배우의 진가를 더 잘 끄집어내는 알모도바르 감독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고통뿐인 과거의 거장, 그에게 찾아온 영감


걸작들을 탄생시키며 거장 반열에 올랐던 살바도르 말로(안토니오 반데라스 분) 감독, 하지만 지금은 온몸에 아프지 않은 곳 없이 진통제에 의존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노인일 뿐이다. 어느 날 32년 전 영화 <향취>를 보게 되었고 마음속에 무언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런 와중 우연히 <향취>의 여주인공을 만났고, 그녀에게서 남주인공 알베르토의 소식과 함께 영화박물관에서 특별전을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영화를 찍었을 당시, 좋지 않았던 사이로 좋지 않을 후문을 남겼던 바 30여 년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살바도르가 알베르토를 찾아간다. 


실로 오랜만에 만난 그들, 알베르토가 살바도르에게 헤로인을 권한다. 헤로인으로 줄어든 고통, 살바도르는 헤로인에 중독되어 가며 엄마와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가진 것 하나 없었지만 아주 똑똑했던 살바도르, 엄마 하신타(페넬로페 크루즈 분)는 장학금을 대준다는 신학교에 그를 보내려 한다. 그런가 하면, 글도 모르고 산수도 모르는 벽돌공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며 그로 하여금 아무것도 없는 동굴 집을 개조하게 한다. 


알베르토는 우연히 살바도르의 컴퓨터를 열어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글 중 하나를 본다. <중독>이라는 작품, 알베르토는 장르를 알 수 없는 이 작품으로 뭐라도 하고 싶어하지만 살바도르는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아무것도 하기 싫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와중에도 그는 계속해서 헤로인을 하며 옛날로 돌아가, 잊고 살았던 또는 떨쳐내지 못했던 친구와 첫사랑과 어머니를 만나 자신도 모르게 영감을 얻는다. 그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게 영화밖에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다시 매달릴 수 있을까?


영광에의 고통의 승화,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 


영화 <페인 앤 글로리>는, 비록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부인(否認)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전적 이야기로 비친다. 그는 실제로 어린 시절 궁핍한 곳으로 이사를 갔고 수도원 생활을 했으나 맞지 않아 영화관 가는 일을 낙으로 삼았다. 10대 중반에 마드리드로 상경해 노동자로 돈을 벌며 단편영화를 찍었고, 30대 초반에 장편영화로 정식 데뷔 후 승승장구하여 지금까지 왔다. 영화와 같은 듯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제목으로 영화를 유추할 수 있고 보고 나선 모든 걸 정의할 수 있다. 고통과 영광, 예술을 상징하는 듯하다. 오직 예술만이 끔찍한 고통을 영광으로 승화할 수 있다. 사실 예술이라는 것이 절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과물을 내놓기까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길에의 온갖 고통이 닥쳐온다. 그 끝에 영광이 온다는 건 한없이 0에 수렴한다. 더욱이, 고통의 과정을 거치는 것도 모자라 고통 자체를 수단으로 하겠다는 건 어불성설과도 같다. 그리 한다면, 영광은 반드시 따라와야 하고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영화 속 살바도르는 그런 과정을 따르고 있는 것 같다. 끔찍한 육체적 고통을 마주하지 못해 도망갔을 때 영감을 얻었고, 과정에서 영감의 주체들을 돌아보고 또 만났으며, 결국 모든 종류의 고통을 직시해야 한다고 깨닫고는, 다시 시작한다고 말이다. 그동안의 알모도바르 감독 필모를 들여다봤을 때,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남 모를 고통들의 면면이 다시 보인다. 이 영화는 알모도바르 감독에게서 시작했지만, 모든 예술가들을 향한 헌사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당신네들이 겪었고 겪고 있고 겪을 고통들에 반드시 영광이 뒤따를 거라고 말이다. 


그런가 하면, 영광이 고통의 결과 아닌 과정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친구와 첫사랑과 어머니를 되새기고 만나는 것 자체가 영광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들과 다시 조우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랄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예술가는 주관적이기 짝이 없는 다사다난의 느낌들을 제3자적 입장에서 잡아낼 수 있어야 한다. 


알모도바르 감독의 장기, 색감과 스토리


영화는 여지없이 알모도바르 감독의 장기가 발휘된다. 그의 인장(印章)이라고 해도 무방한, 화려하고 세련된 색감과 센세이셔널한 스토리 말이다. 주로 외부 아닌 내부에서, 액션 없이 대사와 표정으로 이루어지는 영화인 만큼 배경이 중요한대, 화려하지만 쨍하지 않고 포근한 감정을 유발하는 빨간색을 중심으로 다양한 원색을 추구한다. 화려한 색감에 한없이 눈을 빼앗길 것 같지만, 인물들의 압도적인 대사와 표정과 잘 어울린다. 하여 관객들은 화면 자체에 오감이 쏠리는 것이다. 


이번에는 스토리 자체에 파격적 요소가 짙게 깔리진 않은 듯하지만, 끝없이 나오는 마약(헤로인) 섭취와 무심한 듯 툭툭 튀어나오는 예상치 못한 사실들이 마음을 요동치게 하기에 충분하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잘 보여준 건 살바도르 역의 안토니오 반데라스이다. 그 덕분에 우린 파격을 파격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절제 속에서 안정된 파격이라는 모순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살바도르의 믿을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질 때면 치를 떨었고 과거와 조우하며 복잡한 감정이 전해질 때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예술과 예술가의 고통과 영광을 집대성하고, 페르도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인생을 집대성하며, 안토니오 반데라스 배우의 다시 없을 인생 최고 연기를 선보인 바, <페인 앤 글로리>는 여러 모로 두고두고 회자될 게 분명하다. 나와 내가 속한 곳의 역사를 다른 누군가의 손에 넘기기 싫다면, 내가 직접 들여다봐야 한다. 그곳에 마주하기 싫은 고통이 있을지라도, 자연스레 따라올 영광은 기대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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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 황당무계, 불편불쾌한 토크쇼의 영화판 <비트윈 투 펀스: 투어 스페셜>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9.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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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비트윈 투 펀스: 투어 스페셜>


넷플릭스 오리지널 <비트윈 투 펀스: 투어 스페셜> 포스터. ⓒ넷플릭스



영화 <행오버> 시리즈로 유명세를 떨친 미국의 코미디언이자 영화배우 잭 갤리퍼내키스(자흐 갈리피아나키스), 그는 2008년부터 Funny or Die 사이트를 통해 쇼 '비트윈 투 펀스(Between Two Ferns)'를 진행해왔다. 의자 두 개에 호스트 잭과 게스트 유명인물이 앉고 사이에 조그마한 테이블을 놓고 그 위 한 가운데에 빨간색 버튼을 두었다. 그리고 의자 두 개 옆에는 쇼의 상징 펀(Fern), 즉 고사리 식물(양치류) 두 개가 있다. 


토크쇼는 황당하고 당황스럽기 그지 없이 진행된다. 호스트가 질문하고 게스트가 답하는 형식을 띄는데, 질문들이 하나같이 무례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를테면 게스트의 치명적인 과거를 들추거나 게스트의 태생적인 사항과 개인적인 취향에 관련해 막말을 던지는 것이다. 또한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게스트를 소개할 때 항상 이름을 틀리게 말하고 자막에도 이상하기 이를 데 없는 이름을 보여준다. 


게스트는 누구나 알 만한 초호화 유명인물들만 출연하는데, 한국 언론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브래드 피트 등이 대표적이며 이밖에도 누구나 알 만한 유명인물들이 출연한 바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소개되는 <비트윈 투 펀스: 투어 스페셜>은 비트윈 투 펀스의 영화판으로, 지상파 토크쇼를 진행하며 관객들의 비웃음 거리가 아닌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은 잭 갤리퍼내키스의 황당한 여정을 담았다. 실제와 허구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섞여 있는 듯하다. 엄청난 웃음과 엄청난 불쾌감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


'플린치 시민참여 텔레비전'에서 10년 넘게 쇼 '비트윈 투 펀스'를 녹화해온 잭 갤리퍼내키스, 그에겐 이름을 건 심야 토크쇼를 하고 싶은 꿈이 있다. 이 쇼는 'Funny or Die'라는 영화/텔레비전 제작사의 웹사이트에도 올라가는데, 설립자가 자그마치 배우 윌 페럴과 감독 애덤 맥케이 등이다. 윌 페럴 말에 따르면, 똥 멍청이 뚱뚱보 잭 갤리퍼내키스의 비트윈 투 펀스는 Funny or Die의 조회수를 책임지고 있다. 


한편, 진행자 잭 갤리퍼내키스 외에도 비트윈 투 펀스를 상징하는 '고사리 식물 화분'이 있는데 잭은 이 식물을 매우매우 아낀다. 쇼 제목의 '펀스(Ferns)'는 고사리 식물들을 뜻한다. 쇼를 만드는 주요 스텝 몇 명이 있는데, 프로듀서이자 잭의 오른팔 캐럴과 카메라맨 캐머런과 사운드 책임자 로런티스가 그들이다. 잭은 캐머런과 로런티스를 싫어하고 짜증내하고, 캐럴은 잭을 무시하는 듯 챙기고 캐머런은 잭을 싫어한다. 


어느 날 방송국에 문제가 생긴다. 오래된 배관에 수로가 막혔고 누군가 변기에 똥 묻은 팬티라이너를 가득 쑤셔 넣기도 했다. 배관 작업이랑 공사 때문에 너무 시끄러워서 쇼 녹화를 진행하기가 힘들자 잭은 철저하게 방음할 것을 캐럴에게 명한다. 캐럴은 녹화실을 완벽하게 막아버린다. 매튜 맥커너히가 출연하는 녹화가 시작되고 곧 물폭탄이 터지더니 온 방송국이 물에 잠기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윌 페럴이 잭을 찾아와 제안한다. 2주 동안 비트윈 투 펀스 10편을 녹화해오라고, 방송국이 없으니 직접 전국 방방곡곡 유명 인사들을 찾아가라고, 그러면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고. 잭은 인터넷이 아닌 지상파 토크쇼를 원한다. 윌은 받아들이고, 잭은 스텝 3명과 함께 길을 떠난다. 


잭 갤리퍼내키스의 불편불쾌 코미디


영화 <비트윈 투 펀스: 투어 스페셜>의 주요 포인트는 잭 갤리퍼내키스가 던지는 막무가내, 황당무계, 불편불쾌한 웃음들과 쇼에 출연하는 유명인들과의 질문과 답변들이다. 영화에서 잭은 사람들의 비웃음 거리가 되고 싶지 않고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 인터넷 토크쇼가 아닌 지상파 토크쇼 진행자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다름 아닌 '비웃음 거리 잭'이야말로 이 쇼의 이유이자 백미이다. 


영화는 나아가 쇼 밖의 잭조차 비웃음 거리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쇼를 확장시키는 데 일조한다. 돌이켜 보면, <행오버> 시리즈가 시작된 해가 2009년이고 비트윈 투 펀스가 시작된 게 2008년이니 만큼, 그때가 잭 갤리퍼내키스의 코미디 스타일이 확립 또는 알려진 때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10여 년 후 '비트윈 투 펀스'와 <행오버>의 막장 코미디 스타일이 <비트윈 투 펀스: 투어 스페셜>이라는 영화로 다시 이어진 것이리라. 


불편불쾌 코미디는 슬랩스틱 코미디와 궤를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고 소란스러운 연기로 사회 풍자의 목적을 갖는 슬랩스틱처럼 진행자를 향한 불쾌불편의 시선과 게스트를 향한 은밀한 독설과 조롱의 시선이 주를 이루는 불쾌불편 코미디도 사회를 풍자한다. 시청자는 호스트를 비웃으며 게스트를 우러러 보지만, 사실 호스트의 막무가내 질문을 빌어 게스트를 깍아내리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며 유명인물이라는 타이틀 아래에 있는 그들은 광대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호스트의 질문들이 그들의 껍질을 벗기면서 말이다. 


유명인물 게스트의 면면


영화 속 비트윈 투 펀스에 출연한 게스트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 자체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광대에 열광하는 게 인간의 본성 아니겠는가. 하지만 쇼의 특성 상 호스트의 기상천외한 질문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어떻게 저런 사람한테 저런 질문을 던질 수 있지?' 한편으론 질문 자체에 대한 반감이 일지만 한편으론 속이 다 시원해질 정도로 공감되기까지 한다. 


누구나 알 만한 유명인물들에게 던지는 지나치기 힘든 질문들의 면면을 들여다본다. 녹화 전에 게스트에게 질문지를 알린다니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진행은 호스트 마음대로 한다고 하니 게스트로서는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답변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게 이 막장 코미디 토크쇼의 묘미인 듯하다. 


매튜 맥커너히에게 "그 많은 오스카 상의 시상 부문 중에서 연기로 상을 받다니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키아누 리브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똥 멍청이로 생각해서 속상하십니까?", 브리 라슨에게 "여우주연상을 받으셨죠. 목표를 더 높여서 남우주연상을 받고 싶단 생각은 안 해봤나요?", 폴 러드에게 "외모만 출중한 건 어떤 기분인가요?", 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돈 때문에 신념을 버린 기분이 어떤가요?", 피터 딘클리지에게 "딘클리지, 성병 이름인가요?"


어떤 질문은 웃음조차 나오지 않고, 어떤 질문은 질문 자체가 너무 웃기며, 어떤 질문은 순전히 호스트 자신의 생각이 투영되어 있고, 어떤 질문은 새간에 떠도는 루머와 가십을 한껏 투영했다. 정녕 가지각색의 질문 유형인데 민망함과 어색함과 정색과 정적과 불쾌감과 불편함은 그들의 몫이자 의무인 대신, 웃음과 시원함은 보는 우리들의 몫이자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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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윈 투 펀스: 투어 스페셜, 영화, 웃음, 유명인물, 잭 갤리퍼내키스, 코미디, 토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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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보면 좋을 콘텐츠들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9.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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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추석에 보면 좋을 콘텐츠들


2019년 올해 추석은 시기적으로 상당히 빠르다. 9월 중순도 되기 전에 추석이라니 말이다. 종종 2~3년에 한 번 이때쯤 추석을 쇠는 것 같은데, 유독 올해가 빠른 느낌이다. 아마도 날씨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미 8월달에 에어컨을 완전히 끊어버렸고, 선풍기도 거의 끊다시피 하였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추석이 다가오는 9월까지 더웠던 기억이 난다. 


올해 추석은 2015년 이후 4년 만에 4일 연휴다. 그것도 연휴가 일요일에 끝나, 거칠 게 말해서 그리 기분 좋지는 않다. 그래도 할 건 해야 하고 즐길 건 즐겨야 한다.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을 그냥 보내는 건 섭하다. 그래서 준비해보았다. 이번 추석에 보면 좋을 콘텐츠들이다. 신작과 구작, 극장 개봉작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와 드라마까지 나름 다채롭게 큐레이션하려 했다. 


한편, '추석대목'이라는 말은 영화계에도 당연히 통용되는데 올해는 어떤 영화가 대목을 차지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추석 한 주 전에 개봉한 <그것: 두 번째 이야기>를 비롯 추석 연휴 하루 전에 개봉할 세 편의 한국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 <힘을 내요, 미스터 리> <나쁜 녀석들: 더 무비> 모두 시원치 않다. 그나마 추석과 연이 깊은 <타짜>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 <타짜: 원 아이드 잭>이 앞서 가는 듯하지만 큰 위력을 발휘하진 못할 것 같다. 그러하기에, 이번 추석엔 극장 나들이 아닌 선선하게 바람 불어오는 집안에서 스트리밍 또는 다운로드를 이용해 즐기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유열의 음악앨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포스터. ⓒCGV아트하우스


추석 맞이 추천 극장 개봉 신작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이다. 1994년을 그린 독립영화 <벌새>처럼 이 영화 또한 1994년부터 시작되는데, 복고 아닌 레트로 감성 풍만한 멜로 장르이다. 최근 몇 년간 다시 정력적으로 영화 연출을 하고 있는 정지우 감독의 신작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만남과 헤어짐, 그 설렘과 애틋함을 섬세하게 그렸다. 최소한 실망은 하지 않을 '안전빵'이다. 이번 추석에 극장에 걸려 있는 메이저급 영화들 중,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영화들 중 잔잔하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유일한 영화이다. 가족, 연인, 혼자 모두 커버가 가능하다. 혹시, 그래도 추석엔 액션이지 하는 생각이라면 <엑시트>를 보시길. 개봉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극장에 많이 상영될 것이다. 



쉘부르의 우산


영화 <쉘부르의 우산> 포스터. ⓒ에스와이코마드


재개봉한 고전 명작 한 편을 소개한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이다. 모든 대사를 노래로 처리하는 파격적이고 신선한 시도가, 55년 전 영화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완벽히 들어맞았다. 지금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그러기는 커녕 고급지고 세련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전체적인 색감은 환상적이고 황홀하기까지 하다. 크리스찬 디올에서 모든 의상을 협찬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일지 보지 않아도 감이 잡힐 것이다. 현실적이지만 한편 고루할 수도 있는 내용이 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이다. 영화 <라라랜드>를 애정하는 분들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꼭 보시길 권한다. <쉘부르의 우산>이 아니었다면 <라라랜드>는 없었을 테니까. 



여배우는 오늘도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포스터. ⓒ메타플레이


2년 전에 개봉한 한국 독립영화이다. 배우 문소리가 연출, 각본, 주연을 맡았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문소리가 전하는 한국 여성과 여배우와 영화의 현주소이다. 세 편의 단편을 통해 여배우 문소리와 생활인 문소리와 영화인 문소리를 들여다볼 수 있다. 2017년 당시 18년차였으니 현재는 20년차가 된 문소리,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명연기를 펼쳤던 그녀도 누군가의 엄마, 아내, 며느리, 딸로 살아간다. 특히, 명절에 문소리는 지워지고 생활인으로서 다시 태어난다면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많은 며느리들이 정작 '자신'의 가족은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남'의 가족만을 챙기며 명절을 쇤다. 



나의 EX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나의 EX> ⓒ넷플릭스


대만에서 건너온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소개한다. 동성애, 불륜, 보험금이라는 무겁기 짝이 없는 소재를 가져와 이보다 더 개성적이기 힘든 로맨스 영화를 만들었다. <나의 EX>는 일면 코믹하지만 솥밭처럼 견고한 세 주요 캐릭터의 연기를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고 이면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절대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역설을 담은 원제 '누가 먼저 그를 좋아했는가'에서 우린 건질 게 별로 없다는 걸 발견한다. '누가'도 '먼저'도 '그'도 중요하지 않다. 사랑에서 '사랑'만큼 중요한 게 있는가. 이리도 독특한 로맨스 영화라면, 독특한 만큼 아련하고 여운이 남고 묘한 힐링을 주는 영화라면, 몇 번을 봐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포스터. ⓒ넷플릭스


꽤나 선정적인 청소년 관람 불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한 편을 소개한다. 총 8편에, 한 편당 50분 남짓이니 영화 몇 편 보는 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된다. 재미로 절대 후회하지 않을 테고, 더불어 상당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원제는 '성교육' 즉 <Sex Education>인데, 이런 게 진짜 성교육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받았고 또 행하고 있는 성교육이란 게 과연 성에 관한 교육이 맞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추석 연휴를 이용해 온 가족이 모여 성교육 하는 셈 치고 이 드라마를 함께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면서, 한편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보게 되면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F1, 본능의 질주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포스터. ⓒ넷플릭스


마지막으로, 어디서도 보기 힘든 F1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이다. <F1, 본능의 질주>라는 다소 투박한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현재 F1의 양분하고 있는 메르세데스와 페라리를 제외한 다른 팀과 선수들만을 다뤘다. F1의 인기가 예년만큼 못한 이유가 많을 테지만, 2000년대 들어서 계속되는 독주 또는 양분 체제도 큰 몫을 차지할 텐데 그 두 팀이 빠진 게 특이점이라 하겠다. 여하튼, 이 작품은 승리와 영광 따위는 없는 F1의 진짜 이야기를 전한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유명한 레이서들도 사실 팀의 일원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작품을 보다 보면 엄청난 속도와 화려한 테크닉에 어느새 전도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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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의 걸출한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

오래된 리뷰 2019. 9. 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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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저수지의 개들>


영화 <저수지의 개들> 포스터. ⓒ미라맥스



2020년대를 코앞에 둔 지금, 할리우드를 주름잡는 감독들 중 1980~90년대에 걸쳐 걸출한 데뷔를 한 이들이 많다. 코엔 형제의 <블러드 심플>이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90년대로 넘어가면 기예르모 델 토로의 <크로노스>, 크리스토퍼 놀란의 <미행>, 가이 리치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파이크 존즈의 <존 말코비치 되기> 등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90년대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을 넘어설 데뷔작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아니, 그 영향력으로만 따진다면 전후로 그런 데뷔작이 나오긴 결코 쉽지 않다. 이 영화로 데뷔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그는 최근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까지 10여 편의 작품을 내놓았는데, 2번째 작품인 <펄프 픽션>과 함께 <저수지의 개들>을 최고작으로 삼는 이들이 많다. 


물론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 할 순 없는 것이, 그는 2010년대 들어서도 꾸준히 좋은 작품을 내놓고 있다. 그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이후 한 작품만 연출하고 감독에서 은퇴해 책과 연극 각본에 매진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는데, 과연 이루어질지 의문이긴 하나 과연 그다운 생각이라고 본다. 여전히 막강한 파급력이 있는 '건강한' 모습으로 뒤로 물러선다면 그것 만큼 완벽한 게 어디 있겠는가. 


다이아몬드 도매상 털기, 하지만 스파이가...


쿠엔틴 타란티노가 <저수지의 개들>을 만들기 전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던 영화광 점원이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실이다. 그는 직접 각본과 연출을 맡은 건 물론 주연의 소소한 한 축으로도 활약한다. 불과 수천 만원의 소규모 독립영화로 만들 예정이었던 이 영화는, 우연이 겹쳐 예산이 10억 단위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럼에도 영화를 만들기엔 터무니 없이 적은 예산이었지만. 


영화는 여덟 명의 사내들이 식당에서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별다른 내용 없이 지나간 후, 배에 총을 맞은 미스터 오렌지를 미스터 화이트가 차에 태우고 은신처 창고로 향하는 장면이 나온다. 죽어가는 오렌지, 괴로워 하는 화이트, 이내 미스터 핑크가 오고 미스터 블론드가 온다. 미스터 블루와 미스터 브라운은 죽은 듯하다. 


그들은 조 캐봇과 그의 아들 에디의 수주를 받고 다이아몬드 도매상을 털고자 모인 이들이다. 혹시 잠복해 있을지 모를 경찰 스파이 때문에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게 했다. 하지만, 작업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떼로 몰려 총을 겨누고 있는 경찰들로 보아선 여덟 명의 공모자들 중 스파이가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일행은 창고에 모여 네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하며 옥신각신한다. 그런가 하면 화이트, 블론드, 오렌지 순으로 어떻게 조와 에디를 만나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한편, 다이아몬드 도매상을 털고 난 직후의 모습들도 볼 수 있다. 정작 중요한 듯한 작업의 순간만을 빼놓은 채 전후 사항을 다(多) 시점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분히 쿠엔틴 타란티노가 의도한 게 아닐까 싶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연출 스타일 정립


쿠엔틴 타란티노는 <저수지의 개들>로 사실상 영화 연출 스타일을 정립했다. 이후 그가 꾸준히 보여주는 연출 스타일이 총망라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전매특허이다시피 한 잔인하고 잔혹한 폭력 위의 범죄, 뭔가 있을 것 같아서 영화 내용과 이어질 만한 게 나올 것 같아서 유심히 들어 보지만 아무 상관 없는 잡담인 게 드러나는 비속어 다분히 섞인 대사, 실명이 거론되며 광범위하게 인용되는 다방면의 대중문화코드. 


무엇보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시점과 시간과 장소를 넘나들며 전개되는 이야기가 특출나다. 서사가 있는 영화라면 왠만하면 순서대로 진행될 텐데, 이 영화는 퐁당퐁당 형식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것도 아닌 것이 몇 가지 시점을 넘나드는 것도 모자라 시점 속에 가짜 이야기까지 넣는 대범함을 보였다. 우리는 그게 가짜 이야기라는 걸 알지만 극중 인물들은 진짜라고 믿는 게 재밌다. 


이쯤 되면 알아차릴 수 있는 건, 그 '가짜' 이야기들은 영화에서 있으나 마나 할지 모르지만 쿠엔틴 타란티노가 전하고자 하는 게 바로 거기에 있다는 점이다. 그는 다름 아닌 그 가짜 이야기를 팔고 있는 것이니까. 우리는 가짜 같은 진짜 혹은 진짜 같은 가짜에 열광한다.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와 함께 놀고 있는 거다. '내가 기가 막힌 이야기 한 편 들려줄까? 재미있을 거야.'


재미있는 이야기


우린 언제든 그가 건넨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까지 30여 년 가까이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이야기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 불러도 이상한 게 없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는 이야기꾼이라기보다 '영화꾼'이다. 영상이 아닌 글로만 봤으면 이 만큼의 환희를 맛보진 못했을 거다. 그는 영화를 위한, 영화에 의한, 영화를 만든다. 


<저수지의 개들>에서 통상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강탈 장면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예산이 부족해 찍지 못했다고도 하는데, 그는 그런 현실적인 제약을 영화적 장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일종의 '선택과 집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강탈 장면의 삭제라는 선택을 했고, 대신 강렬한 캐릭터들 하나하나에 보다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면서도 딱히 이상하다는 걸 느끼진 못할 것이다. 우린 그가 의도한대로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치 놀이동산에 온듯, 우린 쿠엔틴 타란티노가 만든 영화 세상에서 영화 기구를 타며 즐기기만 하면 된다. 다방면의 다양한 대중문화 코드들과 쌈박하다 못해 웃기기까지 해 속이 시원해지는 비속어들이 반길 것이다. 굳이 깊이 해석하려 들지 말고 의아해하지 말고. 혹시 이상한 게 있으면 지체 없이 그에게 말하라. 그는 언제나 아주아주 심도 깊은 토론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결코 못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안 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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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대중문화, 범죄, 스파이, 영화, 이야기, 재미, 저수지의 개들, 쿠엔틴 타란티노,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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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소설을 잘 살리지 못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

오래된 리뷰 2019. 8.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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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위대한 개츠비>


영화 <위대한 개츠비>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이제는 고유명사가 되다시피 한 저 유명한 '예술 작품' 영화 <물랑루즈>를 내놓은 바즈 루어만 감독, 일찍이 1992년 <댄싱 히어로>로 크게 성공하며 데뷔했지만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내놓은 작품은 5편에 불과하다. 일면 믿기 힘든 과작(寡作)의 주인공인데 그의 스타일 때문인 것 같다. 하나같이 화려하기 그지없는 그의 영화들, <물랑루즈>에서 정점을 찍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바닥을 찍었다. 그리고 가장 최신작이지만 6년 전에 내놓은 <위대한 개츠비>도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수많은 위대한 소설들이 영화로 재탄생 되는 과정에서 그 가치가 명멸했다. 소설과 영화가 훌륭한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함께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간 케이스도 있고, 여전히 소설만 고고히 자리를 지키고 영화는 나락으로 떨어진 케이스도 있다. 반면, 소설 본연의 지위가 떨어진 경우는 없다 하겠다. 다만, 원작으로서의 가치는 심히 훼손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저런 케이스를 막론하고, 위대한 소설은 끊임없이 재탄생 되기 마련이다. <위대한 개츠비>도 그러했다. 


1974년 로버트 레드포드가 개츠비 역을 맡은 <위대한 개츠비>가 나온 적이 있다. 원작에 충실했다는 평을 들으며 호불호가 갈렸다. 물론 호불호 면에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개츠비 역을 맡은 2013년작 <위대한 개츠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원작 충실 재연의 미션보다 감독 본인의 스타일에 몰두한 이 영화는, 극 중 개츠비의 극단성을 묻어버릴 혹은 살려줄 정도의 극단성을 자랑한다. 누군가는 그 황홀함과 화려함에 취해 한없이 좋아할 테고, 누군가는 정신없고 지루하다고 싫어할 테다. 


개츠비와 데이지, 그리고 닉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줄거리는 소설 원작과 대동소이하다. 1922년 미국 뉴욕 외곽 웨스트에그,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닉 캐러웨이(토비 맥과이어 분)는 이웃집 대저택에 사는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친구가 된다. 그는 호화로운 저택에서 허구헌 날 호화로운 파티를 벌이는 베일에 싸인 인물로, 다들 정체를 궁금해 한다. 친구가 되어 그의 믿을 수 없는 이력을 들어 보니 알 만하다. 한편, 맞은편 이스트에그 해변엔 닉의 먼 친척뻘인 데이지와 톰 부부가 산다. 전통의 상류층을 형성하는 그곳과 개츠비를 오가며 닉은 진실에 다가간다. 


닉은 데이지네 파티도 개츠비네 파티도 모두 참석했는 바, 빠지게 되는 한편 경멸해 마지 않게 되었다. 와중에 개츠비는 그 이해할 수 없는 파티의 이유가 데이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미 톰과 결혼한 지 5년이 지났고 아이까지 있는 데이지이건만, 개츠비는 데이지를 여전히 지극히 사랑하고 있다. 그들은 개츠비가 아무것도 없던 시절 잠깐 만났는데, 이후 개츠비의 삶은 오직 데이지를 향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데이지는 개츠비를 사랑하는 이상으로 전통의 상류층으로서의 지위와 속물 근성을 버리지 못했다. 


개츠비는 데이지의 눈에 띄어 다시 만나 영원히 함께 하게 될 날을 기대하며 아무도 이해할 수 없지만 본인으로선 완벽한 계획을 짜서 시행해왔다. 이스트에그 해변 맞은편 웨스트에그에 대저택을 구입해, 멀리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올 만큼 호화로운 파티를 열어 눈길을 끄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무일푼 개츠비가 어떤 짓을 해왔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결국 닉이 다리를 놔주어 개츠비와 데이지는 다시 만나게 되지만, 개츠비의 실체를 아는 톰이 가만히 두고 보고 있지만은 않는데...


외향에만 천착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20세기 최고의 미국소설로 추앙받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 1929년 대공황 직전의 호화로운 1920년대 '재즈시대' 단면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하지만 이 소설이 주는 섬뜩함은 당대를 넘어 계속되는 인간 욕망과 역사의 되물림 또는 반복에 있다 하겠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직전이나 1997년 IMF 사태 직전이나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직전을 떠올려 보라.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의 날갯짓에 파묻혀 흥청망청 소비하며 놀지 않았는가. <위대한 개츠비>는 영원히 유효할 것이다. 


그런데,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깊이 있는 시대상 관찰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호화로운 저택과 파티를 비롯 상류층의 기막힌 행각을 자연스레 시대와 조우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저 닉 개인의 깨달음에서 그치거나 개츠비 개인의 사사로울 수 있는 행동의 이유 정도로 그칠 뿐이다. 그런가 하면 오히려 그러한 소재들이 바즈 루어만 감독 특유의 화려한 스타일을 살리는 데 일조할 뿐, 반대로 화려한 스타일이 영화가 주려는 궁극적 메시지를 부각시키는 데 활용되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영화적' 볼거리가 다름 아닌 화려한 스타일의 색감과 배경 등인 게 아이러니하다. 개인적으론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바로 그런 볼거리야말로 소설 아닌 영화만의 이유거니와 영화로만 즐길 수 있는 집합점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패착이라고 단언한다. 외향에의 힘을 빼고 스토리에 보다 천착했다면 완전히 다른 명작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캐릭터성, 그럼에도...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제3자 입장의 닉은 사실상 극을 이끌고 있지만 주인공이라 할 순 없다. 개츠비, 데이지, 톰 정도가 주인공일 것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소위 '나쁜 놈' 혹은 '불쌍한 놈'이 계속 바뀐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서로 사랑했지만 이어지지 못했고, 데이지는 톰과 결혼한다. 바람둥이 톰 때문에 데이지는 괴로워 하지만, 대부호 톰의 아내로 만족하지 않을 수 없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다시 조우해 예전과 같은 사랑을 이어가려 하지만, 개츠비의 실체를 알게 된 이상...


개츠비는 불쌍한 놈에서 나쁜 놈이 되었다가 다시 불쌍한 놈으로 귀환한다. 한 여자를 향한 사랑의 지극성이 그가 해왔던 파렴치한 짓의 함량을 뛰어넘은 것이리라. 물론 그 상대성은 개츠비가 상대하고 있는 데이지와 톰 부부를 위시한 전통 상류층이 해왔을 거라 짐작되는 짓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반적으로라면 개츠비가 한 짓을 용서하긴 쉽지 않다. 


데이지는 불쌍한 놈에서 나쁜 놈이 된다. 개츠비와의 사랑을 뒤로 하고 톰과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데이지, 너무 불쌍해 보이지만 개츠비와 조우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은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라는 것이었다. 속물에서 그치면 될 것을, 결국 자신을 지극정성 사랑한 개츠비를 이용해 먹고 처참하게 버린다. 애초에 나쁜 놈이었던 톰보다 더 나쁘다. 


톰은 나쁜 놈이다. 격조 높은 전통 가문의 일원으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돈을 쓰는 것도 모자라 천하의 바람둥이 행세를 한다. 그 사실을 데이지도 알고 닉도 안다. 하지만, 정작 데이지가 개츠비를 다시 만나는 건 참을 수 없다. 개츠비가 근본 없는 졸부이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과 격이 맞지 않기 때문에 데이지가 바람 필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확실한 캐릭터성을 부여해 시대를 들여다보는 대신 개인에게 천착한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나름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이었기에, 그들의 롤러코스터 같은 관계의 재정립과 그에 따른 캐릭터 호감도의 오르내림을 괜찮게 즐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구조적 패착을 돌리기엔 터무니 없이 부족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봤다면 한 번쯤 볼 만하지만, 소설을 보지 않고 영화만 보는 건 강력하게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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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바즈 루어만, 상류층, 소설, 시대상, 영화, 외향, 위대한 개츠비,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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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가 갈릴, 혁신적 인터랙티브 방식의 영화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1.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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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영화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포스터. ⓒ넷플릭스



<하우스 오브 카드> <기묘한 이야기> 등과 함께 넷플릭스 전성시대를 열어젖히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드라마 <블랙 미러>, 시즌 4까지 나온 현재 1, 2는 영국 channel 4를 통해 방영되었고 3, 4는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었다. 


미디어와 정보기술의 부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SF 옴니버니 드라마 시리즈인 이 작품은, 시즌 3의 네 번째와 시즌 4의 첫 번째가 2017년과 2018년 연속으로 에미상 TV영화 부문 작품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작품성을 자랑한다. 


2011년 처음 공개된 <블랙 미러>는 2년, 3년, 1년마다 다음 시즌을 공개했는데 시즌 5는 다시 시즌 4 이후 최소 2년 이후인 올해 또는 내년에 공개될 것 같다. 그 공백을 메우려는지 시즌 2와 3 사이인 2014년 말에 화이트 크리스마스 스페셜 단편을 공개한 적이 있고, 이번 2018년 말엔 영화를 공개했다.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가 그것이다. 


우선, 이 작품은 드라마 <블랙 미러>를 전혀 알지 못하더라도 아무런 문제 없이 감상할 수 있다. <블랙 미러> 시리즈가 애초에 옴니버스식으로 서로 연관 없는 단편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띄고 있기도 하거니와, 이 영화가 드라마 <블랙 미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린 프로그래머의 게임화 작업


때는 1984년 6월 미국, 엄마 없이 아빠하고만 사는 어린 프로그래머 스테판 버틀러는 제롬 F. 데이비스라는 작가가 쓴 인터랙티브 판타지 게임 소설 <밴더스내치>를 게임화하고자 한다. 그는 잘 나가는 신흥 게임회사 터커 소프트를 찾아간다. 


사장 모함 터커와 현존 최고의 프로그래머이자 터커 소프트 수석 프로그래머 콜린 리트먼을 만나 자신의 뜻을 전하는 스테판, 그들은 이 혁신적이고 흥미로운 인터랙티브 게임에 관심을 갖고 그 자리에서 게임화를 수락한다. 


스테판은 이 방대하고 촘촘한 스토리가 모조리 머릿속에 있다고 하며 혼자서 작업을 완료해 납기일에 맞추겠다고 하며 집으로 와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와중에도 어린 시절 엄마와 관련된 충격적 기억으로 상담을 다니기도 한다. 


작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 하고 있던 어느 날엔 길에서 콜린을 만나 그의 집으로 함께 간다. 콜린은 스테판에게 마약을 권하며 그것이 작업을 도와줄거라 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설파한다. 시간은 구조물이며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죽고 다른 선택을 하러 돌아갈 수 있다, 누구도 자신의 자유의지로 살지 못한다, 거울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다, 정부는 음식에 약을 넣고 사람들을 감시한다 등. 


이후 스테판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조종을 당하고 있다고 믿게 되며 모든 걸 의심하기 시작한다. 상담사가 주는 약, 아버지가 잠가놓은 문. 그런가 하면 작업 도중 자신도 모르게 컴퓨터를 부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되는데...


혁신적 '인터랙티브'


시청자가 영화의 주요 길목에서 직접 선택한다는 '인터랙티브' 방식, 정녕 신선하고 혁신적이다. 영화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의 한 장면. ⓒ넷플릭스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뉠 게 분명하다. 우선, 영화 내적으론 볼 만한 것도 생각할 만한 것도 없다. 스토리, 사건, 캐릭터 그 어느 면에서도 봐줄 만한 게 없다. 완전히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넷플릭스'가 내놓은 지극히 실험적인 이벤트성 영화이다. 이 사실을 반드시 숙지하고 영화를 봐야 한다. 그리고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넷플릭스'를 통해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즐길 수 없다. 


영화가 초점을 맞춘 건 '인터랙티브'다. 영화의 외적 방식과 내적 주제 모두와 관련이 있다. 영화 속 주요 소재인 게임북 <밴더스내치>의 게임화와 일맥상통하는데, 제공자인 넷플릭스와 사용자인 시청자들의 상호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이다. 즉, 사용자의 직접적인 참여 선택에 따라 영화의 주요 스토리라인이 바뀌며 자연스레 결말까지 바뀐다. 


어릴 때 종종 했던 인터랙티브 게임북이나 "그래, 결심했어!"로 유명한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 'TV인생극장'이 생각나게 하는 이 콘텐츠는, 사용자가 직접 참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창작자와 제공자만의 고유한 전유물인 '신'이 되는 경험을 사용자도 일정 정도 이상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여러 면에서 혁신적이다. 


미디어와 정보기술적 질문들


이 영화를 내적 아닌 위와 같은 외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고 감상하면 일찍이 해본 적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면, 우린 영화 콘텐츠 방식의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극중 콜린이 설파하는 말들 중, '시간은 구조물이며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죽고 다른 선택을 하러 돌아갈 수 있다, 누구도 자신의 자유의지로 살지 못한다'는 생각은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상당한 철학을 함유하고 있는 명제이기도 하다. 시간과 차원에 관한 관한 과학적, 자유의지에 관한 정치적 질문과 그에 대한 하나의 정답이기도 하다. 


이 모든 철학, 과학, 정치적 질문을 현대로 옮기면 드라마 <블랙 미러>의 주요 소재이자 주제인 미디어와 정보기술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삶은 미디어에 의해 지배 당하고 정보기술은 시간을 구조화하여 수많은 선택지를 주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자재로 왕래할 수 있게 한다. 그런 반석 위에 이 영화는 실험적이지만, 이벤트성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영화는 러닝타임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확인한 정보에 따르면 평균 러닝타임은 90여 분이고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이 될 수 있고 두 시간이 넘을 수도 있다. 제공된 총 러닝타임은 다섯 시간이 넘는다 하고, 공식적인 엔딩만 다섯 가지라고 하며, 비공식적 엔딩은 열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필자는 외적 방식에 한껏 기대감을 갖고 영화를 보았고 60% 정도 만족을 했다. 최초의 엔딩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보았는데, 중간의 중요 분기점으로부터 다양하게 퍼지는 내용과 결말을 몇 개 더 보는 데도 몇 십 분 정도 걸렸을 뿐이다. 짧고 굵게 신선한 경험을 해보았는데 전혀 후회는 없고 앞으로 보다 괜찮은 인터랙티브 영상 콘텐츠들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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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넷플릭스, 미디어,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시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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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큰 목적을 완벽히 이룬 영화 <로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8. 12.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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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영화 <로마> 포스터. ⓒ넷플릭스



1950년대 이후 컬러영화가 대중화되었다지만, 사실 최초의 컬러영화는 19세기 말경에 시작되었다. 그 역사가 100년이 훌쩍 넘은 셈. 이제는 당연한 컬러영화 시대에 종종 고개를 내미는 흑백영화는 자못 새롭게 다가온다. 


눈이 호강하다 못해 피곤해지게 만드는 화려한 색감의 '요즘' 영화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왠만한 화려함에는 성에 차지 않게 된 조류의 반대적 개념이라 하겠다. 영화를 위해 흑백을 수단으로 했던가, 흑백 자체에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집약적으로 들어 있던가. 


최근 들어서도 1년에 한 번은 흑백영화 또는 흑백과 컬러가 교차로 나오는 명작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아니, 현대 흑백영화는 대부분 명작인 것인가. 우리나라 영화로는 <동주> <지슬> 등이 생각나고, 외국 영화로는 <프란시스 하> <프란츠> <아티스트> 등이 생각난다. 


올해도 어김없이 명작 흑백영화가 찾아왔다.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이 넷플릭스로 건너가 자전적 이야기 <로마>를 내놓은 것이다. 이 영화는 칸에서 받아주지 않았지만 베니스에서는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중산층 집안 가정부 클레오 이야기


멕시코시티 중산층 집안 가정부 클레오의 평범한 이야기. 영화 <로마>의 한 장면. ⓒ넷플릭스


1970년대 초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중산층 동네 '로마', 남자 아이 셋과 여자 아이 하나 그리고 친정 엄마와 같이 사는 한 중산층 집안에서 클레오는 다른 한 명과 함께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단란해 보이는 가족, 모두 클레오를 한 가족처럼 대하고 어린 두 아이들은 클레오를 엄마 또는 이모처럼 생각한다. 클레오는 남자친구도 사귀며 지극히 평범하고 행복하지 않을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종종 들려오는 흉흉한 말들이 마음을 심란하게 할 뿐이다. 정치적 격랑의 강도가 심상치 않은 듯하다. 와중, 클레오는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남자친구는 도망가 버리고, 클레오가 몸을 담고 있는 이 가족의 가장이 바람을 피워 뒤숭숭하고, 멕시코시티는 보다 격렬한 시위로 몸살을 앓는다. 


클레오는 혼자서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될까, 가장의 외도로 흔들리는 이 가족의 앞날은 어떨까, 멕시코시티와 멕시코는 언제쯤 보다 좋은 세상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목적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목적을 완벽히 이루다. 영화 <로마>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 <로마>는 20여 년 전 베를린 은곰상에 빛나는 명작 흑백컬러영화인 중국 장이머우의 <집으로 가는 길>이 생각나게 한다. 단순히 흑백영화라는 점뿐만 아니라 한 개인, 한 가족의 특별할 것 없는 개인사 또는 가족사를 통해 시대까지 자연스럽게 들여다보는 맥락에서 그렇다. 


이 가족의 네 아이 중 하나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라고 하는데, 그의 개인사를 가져오면서 가정부 클레오의 시선을 취하고 있어 보다 자유롭고 객관적으로 가족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조망하는 듯한 정적이게 스며드는 카메라 워킹과 일절 OST 없이 자체 사운드로만 채우는 시도가 완벽히 들어맞았다. 흑백인 점까지 더불어, 이 개인사와 가족사에 오롯이 천착할 수 있게 철처하게 판을 짜서 준비를 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를 만듦에 있어 완벽한 단 하나의 정답은 있을 수 없다. 다만, 무수한 정답들이 있을 뿐일진대 이 영화는 그 무수한 정답들 중 하나의 완벽한 모범이 아닐까 싶다. 영화의 주요 요소를 모두 포기하면서 또는 모든 것을 집약시켜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를 보여줬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상 길이 남을 또 하나의 명작을 목도했다. 


진실과 진심을 담은 이 영화


진실과 진심을 담은 이 영화 한 편이면 족하다. 영화 <로마>의 한 장면. ⓒ넷플릭스


1968년은 전 세계적으로 혁명의 물결이 진하게 흘러간 의미있는 해이지만, 멕시코에게는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올림픽 개최로 인한 경제 성장의 해이다. 이듬해 수도 멕시코시티에는 지하철이 개통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는 민주화와 경제 성장 균형 분배 요구, 부정부패 척결 시위가 격렬히 벌어지기도 하였다. 급격한 경제 성장의 필연적인, 필연적이어야 하는 사회적 갈등의 한 모습이다. 그때 정부는 틀라텔롤코 광장에서 시위대를 향해 대학살극을 벌여 수백 명이 희생당하고 수천 명이 다쳤다. 


1971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로마>는 이런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당대 일련의 사회적 갈등을 유추할 수 있는 면면들을, 한 개인과 가족의 사소하다면 사소하달 수 있는 일들과 자연스럽게 병치시킨다. 


요란하지 않고 담담하게, 깊고 따뜻하게, 감당하기 힘들지만 꿋꿋하게 나아가는 클레오가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는 과정을, 이 가족의 진정한 일원이 되어 사랑하고 사랑받는 과정을, 견딜 수 없는 개인과 가족과 사회의 복잡다단한 일들이 밀려와도 무너지지 않고 단단하고 꿋꿋하게 일어나는 과정을, 우리는 진실과 진심을 담은 영화 한 편으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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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영화의 완벽한 교과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오래된 리뷰 2018. 11. 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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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제2차 세계대전 영화의 교과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 포스터. ⓒUIP 코리아



10대 때부터 영화를 만들었다는 스티븐 스필버그, 최소한 미국 할리우드 역대 최고의 감독이라고 할 만하다. 여전히 현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그라서 의외로 저평가되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가 '소싯적', 즉 2000년대 전에 만든(주로 감독) <죠스> <E.T.>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쥬라기 공원> 시리즈 등은 여러 가지 의미로 전설의 반열에 올랐고 2000년 이후에 만든(제작, 기획도) 영화들은 할리우드 판을 유지하고 또 확대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할리우드 영화의 중추를 세우고, 기록을 세우고, 판을 지탱하고, 판을 확대하는 수순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유명한 영화들, 그중에서도 특히 2000년대 전에 나온 영화들은 여러 장르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세웠다. 초창기의 SF, 판타지, 어드벤쳐, 공포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위의 것들은 2000년대 전이라기보다 1990년대 전이라고 하는 게 맞다. 그쯤 되어야 기틀을 세울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 여기 21세기 바로 직전에 내놓았음에도 기념비적인 업적 또는 기틀을 세운 영화가 있다. 전쟁 영화, 정확히는 제2차 세계대전 영화의 교과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다. 


영화란 이런 것이다!


영화란 이런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한 장면. ⓒUIP 코리아



1944년 6월 6일 일명 'D-DAY'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가장 치열한 곳 오마하 해변에 상륙한 미 육군 레인저 부대 소속 밀러 대위(톰 행크스 분)와 대원들, 수천 명이 죽어나간 그곳에서 살아남은 그들은 상부로부터 특별하고 특수한 작전을 하달받는다. 이 전쟁에 '라이언 가' 4형제가 출전해 3형제가 전사하고 막내인 제임스 라이언 일병(멧 데이먼 분)만 생존한 상황에서 그를 구해 집으로 돌려보내는 임무였다. 


하지만 라이언은 101공수사단 소속으로, 적지 한가운데나 마찬가지인 프랑스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알 뿐 자세한 건 알 수가 없다. 밀러를 대장으로 한 8명의 '라이언 일병 구출 부대'는 오직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여정을 떠나야 한다. 


최상부의 절대적인 명령, 대원들의 불평불만, 대장과 부대장의 라이언을 향한 의심 등이 한데 뒤엉킨 이 여정은 성공할 수 있을까. 와중에 미군의 궁극적 목표인 '승전'을 위해서도 그들은 행동해야 한다. 그것만이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빈틈없는 전투, 여정이 함께 하는 서사를 통해 생각해보게 되는 '전쟁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본격적이고 치열한 질문과 생각들이 쉼없이 우리를 덮친다. 그리고 우린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영화란 이런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영화의 새로운 시작


제2차 세계대전 영화의 새로운 시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 포스터. ⓒUIP 코리아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제작되어 나온 건 1998년, 올해로 20주년이다. 지금이야 전쟁영화 하면, 최근 개봉했던 <덩케르크> <다키스트 아워> <헥소 고지> 등을 봐도 알 수 있듯 베트남전쟁보단 제2차 세계대전이 주류지만 20세기까지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미국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행복'한 기억일 테지만, 베트남전쟁은 '불행'한 기억일 테다. 할리우드는 실로 오래전부터, 즉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오래지 않아서부터 기억해왔다. 다만, 대체적으로 반성하는 방식으로. 그래서일까. 전쟁이라는 장르를 떠나 명작이 많다. <택시 드라이버> <지옥의 묵시록> <디어 헌터> <플래툰> <풀 메탈 자켓> <햄버거 힐>... 하다 못해 <람보> 시리즈까지. 


그런 조류를 스티븐 스필버그가 완전히 바꿔버린다. 무차별적으로 사람이 죽어가는 전장에서 사람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인본주의'를 앞세우면서도, 폭발적인 블록버스터 개념을 끌어들여 전장에 와 있는 느낌이 들게 하는 '리얼리즘'을 추구했다. 기존과 아예 다른 차원인 것이다. 동시대에 나온 또 다른 제2차 세계대전 명화 <신 레드 라인>이 보여준 '전쟁으로 철학하기'와는 결이 다르다 하겠다. 


이후, 무사히(?) 세기말을 보내고 2000년대 초반 제2차 세계대전 영화들이 쏟아진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진주만> <윈드토커> 등. 그리고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까지. '생각하는' 장르에서 '보는' 장르로의 선회, 전쟁영화 장르의 새로운 장이 열렸고 지금도 제2차 세계대전 영화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쟁을 바라보는 미국의 입장에서만큼,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구세주와 같다. 오랫동안 앓던 이를 빼고 임프란트를 박았다기보다, 오랫동안 콤플렉스였던 듬성듬성한 머리에 다른 곳의 털을 옮겨 심었다고 할까. 그 기억, 베트남전쟁의 기억을 완전히 지울 수도 또 지워서도 안 되기에.


인간. 인간? 인간!


인간. 인간? 인간! <라이언 일병 구하기> 포스터. ⓒUIP 코리아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렬한 오프닝으로 손꼽힌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20년 동안 몇 번이나 봐왔지만, 여전히 전률에 몸을 떤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어서, 총과 대포가 빗발치고 사방에서 온갖 종류의 비명이 들리는 와중에 팔다리가 날아가고 내장이 쏟아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며 영화는 전쟁을 통해서만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 고작 라이언 일병 하나를 구하기 위해 특공대 소속 대원 8명이 적진을 통과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그 이면에는 한 명의 사람이 해낼 수 있는, 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돕고 살리는 삶의 존재가 있다. 결국은 그 사람 한 명으로 대표되는 인간 본연의 환원, 인간을 향한 무한대의 믿음이다. 


한편, 8명의 대원에는 겁쟁이 업햄이 있는데 그는 아군을 죽인 적군조차 항복했으면 살려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전장에서는 순진하기 짝이 없지만, 평시에는 그도 군인이 아니었을 터 당연하다는 생각 이전에 순진이고 뭐고 성립조차 되지 않는 생각이다. 업햄의 생각 자체가 아이러니라는 점과 함께, 적군을 살려보내줘야 한다는 아이러니와 그 적군이 다시금 아군을 죽이러 오게 되는 아이러니가 함께 한다. 


전쟁에서는 인간적이고 싶은 이도,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도,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도 모두 빨아들여 갈아버린다. 영화는 그 와중에도 인간에 대한나름의 신념을 실천하는 업햄, 그리고 밀러 대위를 통해 인본주의를 외친다. 열광이나 내세움이 아닌, 생존과 도움의 외침이다. 여기 죽어가는 인간, 살고 싶은 인간, 살게 된 인간이 있다고 말이다. 그들 모두 최선을 다해 치열하게 살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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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일병 구하기, 베트남 전쟁,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인간, 전쟁, 제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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