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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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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핑크에 대한 기본적이고도 교과서적인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2020.10.28
  • 화성 탐사 이야기를 표방한 진지하고 단백한 정통 드라마 <어웨이> 2020.09.28
  •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름의 해답을 찾고자 한다 <내 몸이 사라졌다> 2019.12.13
  • 이자벨 위페르만 홀로 둥둥 떠다닐 뿐... 어중간하기 짝이 없다 <마담 싸이코> 2019.07.08
  • 멈춰버린 시간을 사는 일상이란 <한강에게> 2019.04.19
  • '잘돼가? 무엇이든'이라고 묻는 배려 2018.12.18
  • 삶은 언제,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패터슨> 2018.01.05
  • 사방면으로 보는 회사와 일상의 이야기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2018.01.02
  • 폭력의 악순환이 시작된, 뜻밖의 그곳 <폭력의 씨앗> 2017.11.10
  • 어떤 길을 가든 우리는 그녀를 응원한다 <어메이징 메리> 2017.11.01

블랙핑크에 대한 기본적이고도 교과서적인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0. 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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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포스터. ⓒ넷플릭스



고백하건대 '블랙핑크'를 잘 모른다. 어느 정도냐 하면, '아! 이 노래가 블랙핑크 거였어?' 하고 놀라는 정도. 그들의 노래야 하도 많이 들어 봤으니 모르기 힘들 테지만, 그 노래가 그들의 노래인지 모를 때가 많거니와 그들을 구성하는 다양한 모양새를 전혀 모르는 것이다. 4명으로 구성된 걸그룹이라는 건 알지만 각각의 멤버들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한다. 


와중에 블랙핑크를 조명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가 공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통해 여성 아티스트 다큐멘터리를 접했는데, 기억에 남는 건 가장 최근 공개되었던 <미스 아메리카나>였다. '테일러 스위프트'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거대한 명성과 인기와 이름 뒤에 가려진 진짜 테일러 스위프트를 알려 준 소중한 콘텐츠. 그 전에도 넷플릭스는 여성 아티스트로는 레이디 가가와 비욘세 다큐멘터리를 공개했는데, 모두 꽤 유명세를 떨쳤다. 그리고 네 번째가 바로 블랙핑크인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재미없지 않다, 굉장히 재미있다. 그리고 재미있어야 한다. 하여, 재미없을 것 같은 다큐는 애초에 보지도 않는다. 솔직히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는 내외적으로 그리 관심 가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하지만, 봐야 할 이유가 있었다. 난 블랙핑크를 잘 몰랐지만 알고 싶었다. 모두 방탄소년단을 입에 올리지만, 걸그룹으로서 블랙핑크는 방탄소년단에 필적할 유일한 아티스트라 하지 않는가. 시대를 일정 정도 이끌고 또 책임지고 있는 대상을 기본적으로나마 알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블랙핑크의 독보적인 기록들


작품은 1시간 20여 분의 길지 않은 분량으로 블랙핑크의 데뷔(2016년 8월)에서 3년 후 월드 투어까지를 다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성공 가도의 스토리를 보여 줄 거라 예상되었는데, 실제로는 매우 아기자기했다. 포커스가 블랙핑크라는 그룹의 현재와 미래에 있지 않고 블랙핑크를 구성하는 4인 따로 또 같이의 과거와 현재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 말고는 '제5의 블랙핑크 멤버'라고 불러도 손색 없을 YG의 책임 프로듀서이자 블랙핑크 프로듀서 테디 정도가 나와 인터뷰할 뿐이다. 


잠깐 블랙핑크의 영향력을 수치로 들여다본다. 지난 10월 2일 블랙핑크 첫 정규 앨범 'THE ALBUM'은 빌보드 200 차트 2위에 올랐고 그 덕분에 빌보드 아티스트 100에서 정상을 밟기도 했다. 또한 이 앨범은 KPOP 걸그룹 최초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지난 8월 28일 셀레나 고메즈와 함께 발매한 싱글 'Ice Cream'는 빌보드 핫 100 차트 13위에 올랐다. KPOP 걸그룹으로서 독보적인 기록이다. 또한 작년엔 KPOP 그룹 최초로 세계 3대 음악 축제 중 하나로 불리는 '코첼라 밸리 뮤직&아츠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 


그런가 하면, 블랙핑크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과 V LIVE와 스포티파이와 페이스북 팔로워 수는 모두 국내 탑 수준이다.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로 따지면, 10억 뷰 이상 기록한 곡이 3개에 이른다. 총 10개의 뮤직비디오가 있는데, 모두 1억 뷰 이상을 넘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선 적수가 없는 걸그룹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핫한 걸그룹인 건 분명하다. 그런 그들의 지극히 소소한 개인사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이 작품인 것이다. 블랙핑크에 대한 기본적이고도 교과서적인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겠다. 


제니, 리사, 지수, 로제의 다양한 문화 결합


테디가 말하길 모든 그룹에는 정체성을 결정짓는 문화적 배경이 있다고 한다. 블랙핑크의 경우 다양한 문화의 결합으로 눈에 띄고 특별하다고 하는데, 4인의 멤버가 각각의 개성과 배경을 갖고 빛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보완하고 결합하는 모습에 있다고 하겠다. 제니, 리사, 지수, 로제가 따로 또 같이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제니는 메인래퍼로 솔직한 매력을 가진 완벽주의자라고 한다. 그녀는 10살 때까지 서울에서 자랐다가 5년 동안 뉴질랜드 유학을 다녀와 연습생을 거쳐 데뷔했다. 제니의 눈에 태생 천재로 보인 이가 있었으니 리사다. 그녀는 메인댄서이자 리드래퍼로 발랄한 실행주의자라고 한다. 평소와 다르게 실행에 들어서면 무섭게 집중하는 타입이다. 태국인으로, 태국에서 자라 태국 현지 오디션을 통해 데뷔했다. 


리더 없는 그룹인 블랙핑크의 맏언니이자 실질적인 리더 역할의 리드보컬 지수는 소탈함이 엿보인다. 비쥬얼 담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미모를 자랑하며, 데뷔 전에 TV 광고와 드라마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블랙핑크 하면 생각나는 독특하고 독보적인 음색을 담당하는 이는 메인보컬이자 리드댄서 로제다. 그녀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호주로 이민을 가서는 연습생이 된 16살 때부터 한국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 외로움을 타고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타입이지만, 끊임없이 성실한 노력으로 헤쳐 나간다. 


작년 연예계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버닝썬 게이트'로 특히 YG 엔터테인먼트의 명성이 곤두박칠 쳤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열렬히 좋아라 했던 'YG 엔터테인먼트'라는 문화 공동체와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신뢰 또한 없어졌다시피 했다. 블랙핑크도 예외일 순 없었다. 시간이 꽤 흐른 후 이 작품을 보니, 버닝썬 게이트와 YG를 떼 놓을 순 없겠지만 버닝썬 게이트와 블랙핑크는 떼 놓아야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평범해서 오히려 특별한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라는 다큐멘터리 콘텐츠 자체는 전혀 새로울 게 없다. 이목을 끌 만한 화려한 편집도 없고,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사실을 건네려 하지도 않고, 모두가 알지만 애써 쉬쉬했던 진실의 뒷이야기를 파헤치려 하지도 않고, 역사의 길이남을 만한 성공의 뒷이야기를 치열하게 들여다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특별한 게 있다면 블랙핑크 그 자체다. 하여, 그들의 지극히 소소하고 일상적인 면을 보여 주는 것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어디서도 블랙핑크의 성공한 현재만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작품은 평범하기 그지 없지만 통속적이지 않고 별 게 없어 보이지만 특별하다. 블랙핑크 입장에서는 팬 아닌 이들에게도 다가가 접점을 찾을 수 있을 테고, 팬 입장에서는 블랙핑크가 편안하고 긍정적으로 보다 많은 이에게 가 닿을 수 있을 테며, 블랙핑크와 접점이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유명 연예인의 꾸미지 않은 일상과 생각을 들여다보며 특별한 공감을 전달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품의 처음과 끝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장면이다. 차량을 타고 어딘가로 이동 중인 멤버들이 "이제는 가냘픈 이미지의 노래도 해 보고 싶다"며 소소한 바람을 드러내고, 연습생 시절의 식당을 방문해서는 "우리가 마흔 넘어서도 춤을 출 수 있을까?"라며 미래에 대한 보통의 질문을 던진다. 특별한 이력을 쌓아 왔고 쌓고 있으며 쌓아갈 그녀들이지만, 우리네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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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YG, 걸그룹, 기록, 로제, 리사, 문화,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일상, 제니, 지수, 특별, 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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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탐사 이야기를 표방한 진지하고 단백한 정통 드라마 <어웨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9. 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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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 볼 만한 넷플릭스 드라마] <어웨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어웨이> 포스터. ⓒ넷플릭스



나사 수석 엔지니어 남편과 10대 어린 딸을 둔 에마 그린은 사령관 자격으로 아틀라스호를 타고 인류 최초의 화성 탐사를 나선다. 영국의 식물학자, 러시아의 엔지니어, 인도의 외과의사, 중국의 화학자가 동행한다. 그들은 달을 거쳐 화성으로 가는, 생존 확률 50%의 3년 동안의 긴 여정을 떠난다. 하지만 화성으로 제대로 된 출발도 하기 전에 난관에 부딪힌다. 그린 사령관의 남편 멧이 해면상 혈관종을 가지고 있었던 바,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이다. 딸 렉스가 혼자 감당하기 벅찼기에, 그린은 포기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때 멧이 의식을 찾아 그린이 화성을 가게끔 한다. 


우여곡절 끝에 화성으로 떠난 아틀라스호와 5명의 대원들, 우주선 안팎에서 갖가지 문제들에 직면한다. 그린 사령관의 흔들리는 멘탈을 불신하는 러시아의 포포프와 중국의 루, 그럼에도 그린을 신뢰하는 또는 신뢰하려는 인도의 람과 영국의 크웨이시. 우주 유영을 하는 것도 모자라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직접 손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생기는 우주선. 지구에서 들려 오는 소식들, 이를테면 멧이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던가 렉스가 C+을 받았다거나 하는 크고작지만 부정적인 얘기들. 


무엇보다 힘든 건 5명의 대원들 각각 직면한 정신적 고통들이다. 다른 이에게 결코 쉽게 말하기 힘든 과거 지구에서의 사연들이, 우주선 안 같은 공간에 오랫동안 있다 보니 증폭된다. 그런가 하면, 생존 확률이 반반인 여정에서 오는 현실적인 문제와 그로 인한 정신적 압박이 그들을 따로 또 같이 괴롭힌다. 과연, 수많은 문제를 뚫고 화성에 발을 디딜 수 있을까. 그리고, 무사히 지구로 돌아올 수 있을까. 


힐러리 스왱크가 다시 한 번 큰 족적을 남길 기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어웨이>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인류 최초의 화성 탐사를 떠난 5명의 우주비행사 이야기를 앞세워 'SF'를 표방하지만 실질적으론 더할 나위 없는 '드라마'이다. 극적이고 긴장되기 짝이 없는 문제들과 온갖 절망을 딛고 희망을 찾아가 쟁취하고 마는 '인간'의 이야기 말이다. 근래 보기 드문, 진지하고 단백한 정통 드라마라고 할 만하다. 


거기에 SF적 요소가 듬뿍 담긴 우주 공간과 우주선과 우주비행사들의 이야기가 훌륭하게 곁들여 있다는 점이 포인트라고 하겠다. 즉, 정작 이 시리즈를 보게 되는 이유는 'SF'에 있지만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의 대부분은 '드라마'에서 기인한다. 이토록 장르적으로 균형 잡힌 콘텐츠를 보기 힘든데,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을 정도이다.


크게 기여한 이가 있으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에마 그린 사령관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입체적으로 완벽하게 풀어낸 '힐러리 스왱크'다. 아직 50대에 들어서지 않은 젊은 나이지만 이미 올타임 레전드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연기파 배우다. 2000년 20대 중반 나이에 <소년은 울지 않는다>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석권했고, 2005년 30대 초반 나이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역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석권했다. 2년 뒤 2007년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다. 하지만 이후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하다가, <어웨이>로 다시 한 번 큰 족적을 남길 기세다. 그녀에게 이 작품이 중요하게 자리 잡을 게 분명하다. 


고뇌하는 리더십, 함께하는 리더십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는 1963년 러시아의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이고, 최초의 여성 우주왕복선 사령관은 1999년 미국의 에일린 콜린스이며, 최초의 여성 국제우주정거장 사령관은 미국의 페기 윗슨이다. <어웨이>의 에마 그린이 모티브로 삼은 게 바로 페기 윗슨, '우주에서 가장 오래 머문 미국인'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한 그녀다. 인간 여성으로서 지구 아닌 우주에서 어떤 리더십을 보여 주었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고뇌하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린 사령관은 개인적으로 멘탈이 자주 그리고 심하게 흔들리기도 하거니와 자신을 포함해 5명에 불과한 대원들을 카리스마 있게 통솔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고는 그녀를 최고의 사령관으로 치켜 세울 수 있는 건, 일방적이고도 수직으로 내리꽂는 리더십이 아닌 그녀'를' 둘러싸지 않고 그녀'와' 함께 각자의 전문 분야를 힘껏 내보이며 나아가기 때문이다. 더 오랜 시간과 더 많은 공력이 들겠지만, 가면 갈수록 탄탄해지고 신뢰와 믿음이 쌓이는 걸 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께하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여성 리더이기에 가능한 것일까? 남성은 카리스마로 중무장한 채 센 척하며 명령을 내리고 윽박지르며 리더를 중심으로 뭉치는 리더십을 내보여야 하고, 여성은 혼자 모든 걸 할 순 없으니 도움을 청하며 각각의 특기와 특징을 최대한 내보여 모두가 함께하는 리더십을 내보여야 하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극중 에마 그린은 여성 리더십이 아닌, 여러 리더십의 하나 또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선보인 것이다. 여성이라서 이런 리더십을 선보인 게 아니라, 이런 리더십을 선보인 게 여성인 것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사실, 이 작품 '여성' 리더십을 앞세워 이 시대의 페미니즘 또는 정치적 올바름을 설파하고 있지는 않다. 독특한 리더십의 양상을 보이고 있어 언급한 것뿐이다. <어웨이>의 강점은, 그보다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와 감동에 있다. 최첨단 우주 시대의 최전선을 달리는 이들이 '한낱' 인간적 고뇌에 시달리고 또 흔들리고 있다는 아이러니 말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다시금 바로 잡고난 후에 느끼는 감동까지, 전형적이고 정통적이지만 인간인 이상 그 고뇌와 감동에 자극받고 공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사실상 모든 걸 뒤로 하고 화성 탐사를 결심한 5명의 대원들은, 조국 그리고 지구에의 헌신과 임무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자신과 가족들은 2선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출발해 육체적 힘듦은 둘째 치고 온갖 정신적 압박과 고통에 시달리니 생각나는 건 사랑하는 이들뿐이다. 물론 대부분이 가족일 테지만, 드라마적 장치로 가족 아닌 사연 있는 타인인 경우도 있다. 이야기를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특별한 사연들 말이다. 


드라마 특성상 어떻게든 화성에 착륙하는 데 성공할 게 뻔하다. 인류 전체의 '희망' 그 자체를 실었으니 말이다. 비록, 수많은 난관을 뚫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구에서 화성으로 향하는 여정이 모든 이의 인생 여정과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주선 안팎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못지 않게 인생 안팎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도 심각하고 또 풀기 힘들지 않나 싶다. 하물며 이 작품에서도 에마 그린 사령관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게 지구에서 일어나는 하찮다면 하찮은 일들 아닌가. 


작품은 그럼에도 나아가자고 말한다. 대신, 무조건적인 타협과 어쩔 수 없는 좌절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얘기할 건 하고 행동에 옮길 건 옮기며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지켜 내자고 말한다. 인생은 위대하지만, 한편 '인생 뭐 있어' 하는 마음가짐도 필요한 게 아닐까. 적절한 균형 감각을 두루두루 유지하며 살아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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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어웨이, 여성 리더십, 우주, 우주 비행사, 일, 일상, 화성 탐사, 희망, 힐러리 스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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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름의 해답을 찾고자 한다 <내 몸이 사라졌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12.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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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내 몸이 사라졌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내 몸이 사라졌다> 포스터. ⓒ넷플릭스



지난 5월 개최된 제72회 칸 영화제는 많은 화제를 뿌렸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유례 없이 국내에서 많이 회자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엘르 패닝은 약관 20살이 막 넘은 나이에 역대 최연소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으며 프랑스 애니메이션 <내 몸이 사라졌다>는 역대 최초로 비평가주간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가 하면, <내 몸이 사라졌다>는 일본 히로시마, 캐나다 오타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와 더불어 국제애니메이션협회가 공인한 세계 4대 애니메이션 영화제로 군림하는 프랑스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장편부문 안시 크리스탈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장편부문에 3개 섹션밖에 없는 점을 감안할 때 속된 말로 싹쓸이 수준인 것이다. 작품 퀄리티는 보장된 셈. 


2019년 넷플릭스 연말 프로젝트 중 애니메이션 부문 대표격이라고 할 만한 <내 몸이 사라졌다>, 꾸준히 단편 애니메이션을 내놓으며 좋은 평가를 받아온 제레미 클라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원작이 있는데, 2001년작으로 오래된 영화이지만 여전히 회자되는 <아멜리에> 각본에 참여해 아카데미 각본상 노미네이트까지 되었던 기욤 로랑의 소설 <행복한 손>이다. 


잘린 손의 여정과 손 주인의 일상


잘린 손이 해부학실에서 빠져 나온다. 그것이 향하는 곳은 아마도 주인일 터, 하지만 여정이 평탄하지는 않다. 해부학실도 겨우 빠져나왔는데, 비둘기 둥지와 쓰레기차와 지하철과 쥐 떼와 개미 떼와 얼음물 속과 개와 아기 등을 차례로 맞닥뜨린다. 모두 일신에 조금의 피해도 주지 못할 것 같은 별 게 아닌 존재들이지만 한낱 손목 잘린 손한테는 크나큰 위협일 수 있겠다. 


한편, 손의 주인 나우펠은 어릴 때 꿈이 피아노 치는 우주비행사였다. 두 부모님의 영향을 두루두루 받은 결과였으리라. 하지만, 사고로 나우펠 혼자 살아남고 부모님 모두 돌아가신다. 이후 그는 희망 없이 살아가다 오토바이 피자 배달부로 연명하고 있다. 어느 비 오는 날 약간의 접촉 사고 후 당도한 오피스텔에서 목소리로만 고객과 실랑이 끝에 진심이 묻어나는 대화를 나눈다. 


나우펠은 그녀 가브리엘을 그냥 잊을 수 없었고 도서관 사서라는 사실만으로 뒤를 캐내어 만난다. 그러곤 그녀가 자주 방문하는 삼촌의 나무 공장에 무작정 취직하고 그곳에서 숙식하며 가브리엘의 도서관을 자주 드나든다. 문제는, 나우펠이 그녀에게 자신이 피자 가게가 아닌 초밥 가게에서 일한다고 속였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와 잘 이어질 수 있을까? 그의 손은 주인의 손목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영화는 잘린 손과 손의 주인 나우펠의 이야기 모두 의미다운 의미를 띄고 있다. 또한 누구든 이 둘 모두 또는 둘 중 하나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콘텐츠답게 기괴하지만 아름답고 철학적이지만 현실적이며 처연하지만 희망적이다. 개인적으로 손의 여정에 더 공감이 되는 한편 영화적으로 더 재미 있었다. 


잘린 손이 주인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나우펠의 일부이지만 본인만의 정체성이 있는 것으로도 보이는데, 일단 태어난(!) 이유는 주인의 손목에 다시 붙는 것이다. 그 어떤 난관이라도 당연한 듯 맞서며 뚫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 생각 없이 의미도 모른 채 과정이야 어떻든 앞만 보고 가는 우리네 삶이 겹쳐진다. 


그런가 하면, 그런 우리네 삶이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태어난 것인지,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엔 깨달을 수 없는 것인지, 깨닫기 전엔 알 수 없는 것인지, 사회나 시대가 그렇게 만든 것인지. 처음엔 손만 있는 기괴한(?) 모습에 놀라고, 가면서 손에 땀을 쥐게 되고, 종국엔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다름 아닌 나를 돌아본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왜 가고 있는 것인지. 이 짧고 굵은 애니메이션 한 편이 나를 잠시 멈추게 한다. 보는 모든 이도 한 번쯤 멈춰서고 돌아봤으면 한다. 


나름의 해답을 찾아서


한편, 나우펠의 희망 없고 처연한 삶의 종적도 공명을 자아낸다. 세계 최고 선진국 중 하나인 프랑스의 절망적인 젊은이라는, 한국 젊은이로선 선뜻 공감하기 힘든 주인공의 면면이지만 이야기 자체로 울림을 주는 건 분명하다. 그건 아마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선천적 결함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단순히 같은 상황에서만 이어지는 공감의 끈이 아니라는 말이다. 


극 중에서 나우펠은 자신의 꿈의 실현자인 부모님을 어렸을 때 잃고 꿈 없이 살아가지만, 사실 모든 인간이 꿈을 꾸고는 이내 잃고 만다. 어디로, 어떻게, 왜 가야 하는지 모르는 건 모두 마찬가지인 것이다. 누군가는 그럴 틈이 어디 있느냐고, 먹고사는 데 바쁘다고 하겠지만 그것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건 인류의 오랜 역사가 방증한다. 인간이 무엇인지, 무엇이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답의 변주는 끊임없이 나왔고 나오고 있고 나올 것이다. 이 애니메이션도 그 일종이다. 


이렇게 보니, 나우펠의 잘린 손의 여정과 나우펠 본인의 삶은 다른 듯 똑같다. 생존을 위해 쉴 틈 없이 나아가는 손과 끝없이 안으로만 천착하는 나우펠,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모르고 삶도 모르며 세상도 모른다. 단지, 하나는 하염없이 갈 뿐이고 다른 하나는 멈춰서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 둘 중 하나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둘 모두의 모습을 띄고 있을 것이다. 그 무엇도 정답일 수 없다. 다만, 나름의 해답을 찾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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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벨 위페르만 홀로 둥둥 떠다닐 뿐... 어중간하기 짝이 없다 <마담 싸이코>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7. 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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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마담 싸이코>


영화 <마담 싸이코> 포스터. ⓒ 쇼박스



감독과 배우들 면면, 그리고 간단한 시놉시스만으로 많은 기대를 하게 되는 영화가 있다. 제목만 보면 매우 저렴한 스릴러일 것 같은 <마담 싸이코>가 의외로 그러한데, 감독은 닐 조단이고 주연배우는 이자벨 위페르와 클로이 모레츠이다. 이 정도면 시놉시스를 볼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아래에 보다 조금 자세한 줄거리를 소개하기로 하고 3명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먼저 닐 조단 감독, 우리에겐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로 유명하다. 자그마치 25년 전 영화인데, 당대 최고의 남자 배우들인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 캐스팅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하지만, 닐 조단은 90년대 각본과 연출을 두루 섭렵한 최고의 감독 중 하나였다. <크라잉 게임>으로 오스카 각본상을 시작으로 런던 뉴욕 LA 시카고 비평가협회상을 휩쓸었고, <마이클 콜린스>로는 베니스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푸줏간 소년>으로는 베를린 감독상을 수상했다. 드라마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를 자유자재 오간 거장이라 할 만하다. 


이에 못지 않은, 아니 '위대하다'고 칭할 만한 거장이 여기 있다. 프랑스의 국민배우 이자벨 위페르, 할리우드가 주 무대이지 않음에도 전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칸과 베니스 여우주연상 2회를 비롯, 40여 년의 연기 활동 기간 동안 수십 번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영화 역사에 길이남을 거장 감독 클로드 샤브롤, 미카엘 하네케의 페르소나로도 유명하다. 더 이상 얻을 것도 올라갈 것도 없는 그녀이지만, 한 해에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등 여전히 왕성히 활동한다.


이들에 비하면 조금 떨어질지 모르나, 또 한 명의 주연배우 클로이 모레츠는 갓 20살을 넘은 약관의 나이에도 가히 엄청난 필모를 쌓았다. 10대가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데뷔해 꾸준히 활동한 결과인데, 소싯적 <킥 애스> <렛 미 인> <휴고> 등이 대표작으로 남아 있는 아쉬움이 있다. 또래 나이대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2010년대 후반 들어 출연한 영화들이 하나같이 좋지 못했다. 지치지 말고 계속 꾸준하길 바란다.


현실적인 싸이코


현실적인 싸이코를 그리다. 영화 <마담 싸이코>의 한 장면. ⓒ 쇼박스



뉴욕 지하철, 누군가 놓고 간 녹색 가방을 본 젊은 여성 프랜시스(클로이 모레츠 분)는 같이 사는 룸메이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주인을 찾아간다. 녹색 가방 주인은 그레타(이자벨 위페르 분)라는 이름의 기품 있고 격조 있는 중년 여인이다. 남편과는 사별하고 딸 아이는 프랑스에 있어 혼자 산다는 그녀에게, 엄마를 작년에 여의고 아빠와는 멀리 있는 프랜시스는 동질감을 느낀다. 


다시 만나 그레타가 안락사 직전의 개 모튼을 집으로 데리고 오는 데 함께 하는 그들, 이후 마치 엄마와 딸처럼 사이가 가까워진다. 하지만 프랜시스 룸메이트 에리카는 못마땅하고 또 그 모습이 이상해 보인다. 그렇게 교류를 하던 어느 날 그레타의 집에서 수많은 녹색 가방을 발견한 프랜시스, 바로 집을 뛰쳐 나오며, 그레타로부터 시작된 인위적이고 위선적인 관계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그레타는 관계를 끊을 생각이 없다. 프랜시스를 향한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스토킹이 시작된다. 회사와 집을 오가는 건 물론, 에리카까지 스토킹하며 프랜시스를 불안에 떨게 한다. 급기야 프랜시스가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본성을 드러내곤 경찰에 끌려가고 만다. 너무 했나 싶었는지 프랜시스는 그레타에게 사과하고 뉴욕을 떠난다. 하지만... 이제까지는 서막의 불과했으니, 그레타의 진정한 싸이코 본성이 깨어난다. 


일상, 집, 모성의 공포


편안한 일상, 특별할 것 없는 집, 포근한 모성의 공포. 영화 <마담 싸이코>의 한 장면. ⓒ 쇼박스



영화 <마담 싸이코>는 일면 저렴해 보이는 제목과는 다른 원제을 갖고 있다. <그레타>가 그 원제인데, 사실 이 영화는 그레타 즉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나 마찬가지이다. 극중 나오는 모든 다른 인물들은 그레타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물론, 그중 그레타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도구는 프랜시스이겠다. 엄마를 잃은 프랜시스에게 "엄마처럼 널 안아주고 사랑해줄 누군가가 필요하지"라는 빌미로 가학적 욕망이 분출된 폭력을 휘두르니 말이다. 


그레타의 빙뚱그러진 성향도 사실 수단에 불과하다. 그 자체로 목적성을 띤 게 아니라,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과 별 다를 게 없는 집과 포근하고 편안한 모성이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러하기에 그레타로 분한 이자벨 위페르의 싸이코 연기는 영화에서 절대적으로 자리한다. 뒤틀리고 파괴된 내면 연기의 대가답다. 캐스팅의 대사 닐 조단의 승리이기도 하다. 


한편, 영화는 그레타가 싸이코 본성을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하나 내놓은 흐름과 결을 같이한다. 공포의 수위가 계단 올라가듯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주지했듯, 1부와 2부로 나뉘다시피 하는 구성이 한몫했다. 다만, 일상 기반 공포답게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날카로움 대신 심장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 듯한 쫄깃함을 선사한다. 


아쉬움 가득한 부분들


아쉬움 가득하다. 영화 <마담 싸이코>의 한 장면. ⓒ 쇼박스



<마담 싸이코>는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 급에 맞지 않은 '쓸데없는 고퀄리티' 연기 빼고는 감상할 만한 포인트가 많지 않다. 영화 앞부분에서 보여주려는 일상에 스며든 공포, 뒤틀린 내면의 분출과 뒷부분에서 보여주려는 실존적 공포의 심리적 점진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은 듯하다. 다른 장르라고 느껴질 만큼 파격적으로 구분을 하면서도 스토리나 맥락은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만들었어야 하는 아쉬움이 든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레타에게 있다. 그레타의 뒤틀린 욕망이 모성 언저리 어딘가에 있는 건 분명해 보이는데, 명확히는커녕 그녀가 보이는 행동들을 설명하고자 하는 수단으로밖에 느껴지지 않게 한 것이다. 영화 전체가 수단의 수단화로 구성되다 보니 해석할 여지도 딱히 보이지 않아 풍부함마저 지닐 수 없었다.


전체적인 기조는 물론 공포스릴러를 띄되, 앞부분에서는 엄마와 딸, 그 애증의 관계를 풍부한 해석 가능하게 던져놓고 뒷부분에서 속도감 있고 자못 잔인하고 파괴적으로 해석의 한 부분을 보여주며 '모성'의 논란적 함의로 끝을 맺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것이다. 어중간하기 짝이 없는 영화, 어리둥절하게 이자벨 위페르의 얼굴과 대사와 몸짓만이 허공에서 홀로 둥둥 떠다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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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버린 시간을 사는 일상이란 <한강에게>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4. 1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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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한강에게>


영화 <한강에게> 포스터. ⓒ인디스토리



진아(강진아 분)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첫 시집을 준비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녀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술도 마시고, 합평회나 낭독회에도 나가 자리를 빛낸다. 하지만, 왜인지 잘 타던 자전거를 팔아버린다. 마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그녀에겐 10년 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 길우(강길우 분)가 있었다. 하필 그와 크게 싸우던 나날이 이어질 때 그에게 사고가 났다. 결과는 의식불명, 진아는 사고 현장에 있지 않았지만 자기 탓인 것만 같다. 매일, 매순간이 괴롭다. 시가 써지지 않는다. 


그녀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백이면 백 그녀의 소식을 듣고 그녀에게 묻는다, 괜찮냐고. 안 괜찮다고 할 수 없으니 괜찮다고 말하는데, 사실 전혀 괜찮지 않다. 10년 동안 헤어질 거라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다툼을 벌인 후 영영 볼 수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린 일련의 과정. 나아갈 수도 멈출 수도 뒷걸음칠 수도 없다. 


멈춰버린 시간


멈춰버린 시간을 사는 시인 진아. 영화 <한강에게>의 한 장면. ⓒ인디스토리



영화 <한강에게>는 생각지 못한 사고로 모든 게 멈춰버린 시인 진아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영화의 첫 장면이 광화문에서의 416 낭독회인 만큼, 5년 전 그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사자가 아니고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멈춰버린 시간을 사는 일상이란 무엇일까. 


그래도 감히 상상해본다.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인식도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눈물만 흘리고 있을 것 같다. 어느 누구도 만나지 못할 것 같지만, 한편으로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며 위로를 바라고 싶을 것 같다. 끝없는 모순에 흔들린다. 


무엇보다 죄책감이 들 것이다. 그동안 잘해주지 못했던 것, 잘해주기는커녕 심술부리고 짜증내고 화를 내며 멀리하려 했던 말과 행동이 하나하나 떠올라 가시처럼 박혀올 것이다. 이 정도가 감히 상상해본 멈춰버린 시간이다. 쓰는 것으로도 아프다. 연기는 어떨까. 


아픔을 안고 일상을 살아가다


진아는 아픔을 안고 일상을 살아간다. 영화 <한강에게>의 한 장면. ⓒ인디스토리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느니, 그래도 살아진다느니 하는 말이 있다. 누구나 언젠가 나보다 더 또는 나만큼 소중한 사람을 잃을 것이기에 저런 말들은 고깝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위로를 위한 위로가 아닌 경험에서 나온 말일 테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의 극렬한 경험이라고 해도 고스란히 전해져 완벽한 위로가 되지 못한다. 절대 그럴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전하는 바는 꽤 적확한 편이다. 아픔을 안고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진솔하게 전달된다. 처절할수록 조용하고 아플수록 움츠러들며 슬플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영화는 느리면서도 긴 호흡의 롱테이크를 전반적으로 사용해 시인 진아의 상태와 상황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게 또 전달받을 수 있게 하였다. 먹고 싸고 자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게 있을 테고, 먹고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할 텐데, 와중에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과거의 기억들이 애처롭다. 


슬픔을 소화하는 태도


이 영화가 유의미한 건 진아가 슬픔을 소화하는 태도가 아닐까. 영화 <한강에게>의 한 장면. ⓒ인디스토리



<한강에게>가 유의미한 건 진아가 아픔을 대하고 슬픔을 소화하는 태도가 아닐까. 그녀는 외부성으로서의 일상을 계속 살아간다. 떨쳐버릴 순 없을지라도 과거의 기억을 끌어안고 현재에 두 발을 굳건히 붙인 채 말이다. 누군가에겐 괜찮다고, 누군가에겐 괜찮지 않다고 말하며. 


하지만, 그녀는 내부성으로서의 일상을 영위하기 힘들다. 시인인 그녀에게 외부의 일상 아닌 내부의 일상은 곧 '시'일 텐데, 전혀 진전할 수 없는 것이다. 모두 다 거짓말 같고 또 한없이 죄책감만 들 뿐이다. 시인이나 소설가라면 본인의 경험을 한 번쯤 짚고 넘어간다고 하며, 이런 큰 경험이야말로 기막힌 자산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는 사람을 향해, 조용히 그리고 정중하게 말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 같냐고. 


세상에, 인간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한강은 흘러간다. 나는 멈춰버렸지만 언제나 한강은 흘러간다. 바다는 갔다 왔다 하지만, 한강은 그런 바다를 향해 끝없이 흘러간다. 강을 보고 있으면 동일반복되는 흘러감에 답답하기도 하지만 흘러가는 모습 자체에 위로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흘러가기만 하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극 중 시인 진아가 쓴 '한강에게' 일부를 옮겨본다. 박근영 감독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책의 첫 장에 그 사람을 써서 보냈다

그가 손목을 잡아 당겼다

그의 말이 떠오르고

떠오르는 모든 것을 미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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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돼가? 무엇이든'이라고 묻는 배려

오래된 리뷰 2018. 12.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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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경미 감독의 데뷔작이자 첫 책 <잘돼가? 무엇이든>


이경미 감독, 한국 영화계에서 굉장히 특이한 존재이자 케이스이다. 많지 않은 여자 감독이라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다섯 글자 짜리 장편영화 단 두 편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로 마니아까지 양산시킨 장본인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린다. '이경미 월드'가 존재한다.


이런 경우가 흔치 않은데, 그녀의 작품들은 관객 평점과 기자·평론가 평점이 비슷하다. 대중이 평단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방증인가, 그녀의 작품들은 수작임에 분명하지만 별개로 기막히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기막히게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일까. 둘 다 맞는 말일 테다. 그녀의 작품들은 흥행에 참패했지만 무수히 많은 상을 탔다. 


그녀가 최근에 책을 냈다. 지난 15년 동안의 끼적거림을 모아 놓은 에세이 <잘돼가? 무엇이든>(아르떼), 나와 하등 상관없을 것 같은 그녀의 지난 편린들이 무슨 의미일까. 그래도 그녀의 영화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아 집어들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위로를 받았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주고 싶다. 


그런데, 그녀의 첫 책 <잘돼가? 무엇이든>의 '잘돼가? 무엇이든'은 그녀의 또 다른 처음과 겹친다. 뒤늦게 들어가 꿈을 펼친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작품 <잘돼가? 무엇이든> 말이다. 이 작품으로 대대적인 호평을 받으며 수많은 상을 탔고 결국 지금의 그녀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경미 월드'의 시작이랄까. 


기묘하게 함께인 지영과 희진


이경미 감독의 공식 데뷔작 <잘돼가? 무엇이든>의 한 장면. ⓒ빵미필름



'주성쉬핑'에서 근무 중인 4개월차 경력사원 지영, 사장의 말마따나 영리하고 일도 잘하는 믿음가는 일꾼이지만 정작 본인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불만이고 못마땅하다. 반면, 지영보다 2살 어린 3년차 희진은 아무 생각도 눈치도 없이 자기 일 욕심만 많다. 


희진을 지영은 당연히 극도로 싫어하지만, 사장은 그런 둘을 붙여 비밀스럽게 장부 조작 일을 시킨다. 공평하게 일을 나눠 각자 하자는 지영, 같이 하자고 하기도 하면서 모른 척 함부로 지영의 자리와 일 영역을 침범하는 희진. 잘 맞을리가 없는 둘이다. 


어쨋든 중요하게 시킨 일이라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둘. 하지만 지영은 이 일을 용납할 수 없어 꿈자리도 뒤숭숭한 와중에 희진은 계속 자신의 영역을 이래저래 침범하고 이어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를 뒤죽박죽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결국 회사에 큰 사단이 벌어지고, 무너지는 지영과 그런 지영이 버티게 도와주는 희진이다. 역시 아무 생각이 없는 희진은 자기 갈 길을 가고자 하는데, 예민하게 날 서 있는 지영이 무너지니 기댈 곳이 희진밖에 없다. 그들은 기묘하게 함께다. 


이경미 감독의 공식 데뷔작 <잘돼가? 무엇이든>


영화 <잘돼가? 무엇이든>은 이경미 감독의 공식적 데뷔작이다. 졸업 작품이기에 그러한대, 졸업하기 전 몇 편의 영화들을 내놓기도 했었다. 그녀는 20대 중반이 넘어 뒤늦게 한예종에 입학했는데, 이전엔 해운회사를 3년 다녔고 그 이전엔 한국외국어대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그녀는 책에서 이 작품을 얘기하는데, 성공 신화를 이룬 거대 중소기업을 다닌 그녀이지만 그곳에서의 이십대 회사 생활은 끔찍하고 암울했다고 한다. 그때 회사에서 그녀의 유일한 친구들 둘이 있었고 나중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단편으로 만들어서 대히트를 쳤다고 밝힌다. 


이 영화에 대해 '미래에 대한 작은 기대도, 설레는 희망 한 조각도 없이 그저 살아야 되니까 살던 그 시절의 나에게 안부를 묻고 싶었다'(본문 99쪽 중)고 하는 그녀, '싫다는 감정에는 삶을 달리게 하는 에너지가 있다'(cine21 2016.1.13. 인터뷰 중)고 연출의도를 밝히는 그녀. 앞엣것이 그녀가 오랜 후에 이 영화를 뒤돌아본 느낌일 테고, 뒤엣것이 그녀가 한창 '이경미 월드'를 구축하고 있던 때의 생각일 테다. 


한편 이 영화는 버팀목 하나 없이 얇디얇은 현대사회에 내던져진 두 여직원의 이야기로도, 하찮지만 치명적일 수 있는 권력 관계를 치밀하게 그려낸 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다. 앞엣것이 그녀가 회사를 다닐 당시 피부로 직접적이게 느꼈던 바일 것이고, 뒤엣것이 그녀가 그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당시 간접적이게 느꼈던 바일 것이다. 


단편이라 하면, 단편소설이 인생의 어느 한 지점이나 순간을 포착해 치밀하게 드러내는 작업이듯 단편영화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완벽에 가깝다 하겠는데, 그래서 소위 '킬링 포인트'가 몇몇 장면들에서 보인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3분이 가장 좋다. 지난 30분의 짜증과 갈등이 터져 나오는 이야기를 한 소구점으로 모아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는 듯하면서 기묘하게 봉합되고는 한순간에 환한 위로를 건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여운은 처음 느껴본다. 


이경미 감독의 첫 책 <잘돼가? 무엇이든>


이경미 감독의 첫 책 <잘돼가? 무엇이든> 표지. ⓒ아르테



그녀는 책에서, 누군가가 '잘돼가? 무엇이든.' 하고 물으면 갈대 무성한 망망무제한 벌판에서 낫을 들고 서서 외치겠다고 말한다. "어떻게 이렇게 평.생.을 살아요, 아저씨이??!"(본문 102쪽 중에서) 그러면서, '나는 염치 불고하고 조금 행복한 편이다.'(본문 126쪽 중에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무엇이 진담인지 무엇이 농담인지 모를, 꿈과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이경미 월드' 그 자체가 아닌가. 


그런가 하면, 곧 그 절정의 문구들을 발견한다. JTBC 대선 토론을 보고 그녀가 머릿속으로 외친 말들, '나는 조금 행복한 편이다. 그러니까, 오늘 낸 세금, 행복한 내일로 돌려줘! 제발 우리 모두에게 수치심을 되돌려줘! 내가 먹기 싫은 우유를 돈이 없어서 굶는 아이에게 버리는 일이, 돼지발정제를 먹이고 강간을 시도하는 일이, 동성애를 차별하는 일이 없기를, 그게 자랑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도와줘. 제발 고양이들아!!!! .......으응?'(본문 129~130쪽 중에서)


'엔딩 크레디트에 넣을 '고마운 사람들'을 정리하려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지나온 시간이 길기도 하고, 여기까지 오기 위해 완성하고 버리기를 반복했던 시나리오들까지 떠올리자니 좀 많긴 많다. 특히나, 이번 작품에는 '고마운 사람들'과는 별도로 '고맙고 미안한 사람들' 항목을 따로 만들어야 할 지경이다. 덕분에 좋은 친구들을 얻기도 했다. 그 친구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줘야 할 텐데...... 그 부분은 조금 걱정이다. 아무튼 사랑한다. 쓰다 보니 유서 같다? 그럼 안녕. (으응?)'(본문 153~154쪽 중에서)


3부로 구성된 46개의 글들과 수많은 일기들은 얼핏 별 게 아닌 듯하다. 쉽게 읽히기도 하거니와 편린에 불과한 것들이 많아 이해하고 지나가 머리에 남는 게 아닌 스치고 지나가 머리에 남지 않게 된다. 하지만 끝까지 읽어보고 나면 정말 신기한 것이, 그 하나하나가 지나가버리지 않고 남아 뭉쳐져 하나의 형체를 이룬다. 뒤죽박죽 뒤섞임들이 일관되게 이어지니 그 자체로 하나의 길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아, 영화 아닌 책으로도 이경미 월드는 보다 공고해졌구나, 앞으로 보다 공고해지겠구나, 난 이경미 감독의 팬이 되어버렸구나.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녀의 장편 두 편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를 아직 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단편 데뷔작으로 사로잡다니 대단한데... 


종국에 그녀가 묻는 건 '잘돼가? 무엇이든.'이다. 자신은 힘들고 슬프고 아프고 죽고 싶어도 어쨋든 가고 있다고, 그러니 너는 잘돼가냐고 안부를 전하는 것이다. 전하는 방식이 특이해, 자신의 평범한 일상과 기괴한 머릿속을 뒤섞어 보여주고 있다지만... 그녀의 농담들이 이제 불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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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언제,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패터슨>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1.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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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짐 자무쉬의 <패터슨>


'거장' 짐 자무쉬의 신작 <패터슨>. 우린 이 영화에서 아마추어 예술가를 만난다. ⓒ그린나래미디어(주)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를 말함에 있어 '짐 자무쉬'를 언급하지 않는 건 결레다. 그렇지만 1982년 <영원한 휴가>로 센세이션한 데뷔를 한 이후 시종일관 '거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 위대한 예술가를 난 잘 모른다. 그 명성에 비해 우리나라에 정식 개봉한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이유가 이유라면 이유겠다. 


2017년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좋은 영화 중 하나라 만평할 만한 <패터슨>을 빗대어 간단히 언급하자면, 짐 자무쉬는 자신만의 확고한 예술세계에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간과 공간과 인물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다른 어느 것도 아닌 '삶'에서 예술을 건져올리고 아름다움을 캐치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 보다. 


영화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시에 사는 버스기사 패터슨을 주인공으로 한다. 그는 버스기사로 일하면서 아내 로라와 반려견 마빈과 함께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와중에 틈틈이 시(詩)를 쓴다. 그렇다, 그는 아마추어 시인이다. 한편 그의 아내 로라도 집에서 페인팅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기타를 치고 펜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아마추어 예술가이다. 그 모든 것에 검정과 하양의, 그녀만의 패턴이 있다. 


큰 배신감과 큰 위안과 격려, 그 사이 


영화는 한편 지루해 어떤 느낌도 들지 않을 수 있지만 한편 상당한 위안과 격려를 건넨다. ⓒ그린나래미디어(주)



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시, 버스기사 패터슨(아담 드라이버 분)은 어김 없이 6시 10분쯤에 잠에서 깬다.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니 분)에게 입마추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는 전날 챙겨둔 옷을 입고 걸어서 출근한다. 출근하면서 떠올리고 구상한 시상(詩想)을 버스 운행 전 짧은 시간에 쓴다. 


본격적인 버스 운행, 패터슨은 패터슨시를 돌며 많은 풍경을 감상하고 수없이 오가는 승객들의 면면과 그들의 대화를 듣는다. 점심 시간에는 공원에 있는 폭포 앞 벤치에 앉아 아내가 마련해준 도시락을 먹으며 시를 쓴다. 퇴근해서는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마빈과 저녁 산책을 나간다. 


산책 도중 바에 들려 맥주 한 잔 들이키며 바텐더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홀로 생각에 잠긴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다음날 아침이 밝는다. 전날과 그 전날, 매일매일 변함없는 하루가 시작되고 지나간다. 패터슨의 하루는 속절없이 흐르고 변함 없이 똑같으며 아무런 문제도 없다. 


<패터슨>에서 조금이라도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은 없다. 단연코 없다. 영화에서 어떤 종류의 영화적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얻으려고 했다면 '큰'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이다. 반면 영화에서 또 다른 나의 이야기와 같은 공감을 느끼고자 했다면 '큰' 위안과 격려를 얻었을 게 자명하다. <패터슨>은 그런 영화다. 


YOLO 시대정신에 반기를 들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다는 이 시대, YOLO 시대. 이 영화는 정확히 반복되는 일상을 보여준다. ⓒ그린나래미디어(주)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은 우리에게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일상에서 특별한 걸 찾거나 만들고자 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안정을 찾는 시대가 저물고 YOLO(You Only Live Once)의 시대가 오지 않았는가. <패터슨>은 그런 시대정신에 일종의 반기를 든다. 


나의 하루는 어떠한가. 6시 반쯤 일어나 씻고 옷을 입고는 아내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TV를 보고 아내와 얘기를 나눈다. 7시 20분쯤 집을 나서 8시 40분쯤 회사에 도착한다. 저녁 6시에 어김없이 퇴근해 7시 반쯤 집에 온다. 간단히 씻고 저녁을 먹고는 침대에 누워 TV를 보던 스마트폰을 하던 아내와 얘기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12시쯤 잠에 든다. 저녁을 먹고 1~2시간 정도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갈 때도 있다. 


달라지지 않는 하루 루틴의 큰 얼개이다. 패터슨도 다를 바 없겠지만 그에겐 '시'가 있다. 하루 일과의 순간순간, 행간과 자간을 촘촘히 잇는 시상이 그의 하루를 풍성하게 한다, 특별하게 한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것, 그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시가 되기에 그 특별함은 다시 평범함으로 치환된다.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나에게도 패터슨의 시와 같은 게 있다. 책과 영화, 내 평범한 삶을 특별하게 해주는 것들이다. 그것들 또한 어느새 내 삶의 패턴 안에 자리잡아 평범함의 하나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특별할 것이다. 패터슨도 그러할 테고, 영화에서 패터슨이 존경하는 패터슨시 출신의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도 그러했을 테다. 그는 평생 의사로 일하면서 역시 평생 시를 썼다. 


자기 계발이 세계 확장


자기 계발보다 세계 확장, 소수 예술보다 만민 예술을 지향해야 한다. ⓒ그린나래미디어(주)



버스기사가 시를 쓴다는 설정임에도 너무나 현실적인 이 영화에서도, 심지어 패터슨이 존경에 마지 않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가 상징주의를 배제한 객관주의로 명성을 떨친 와중에도, 영화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패터슨이라는 캐릭터를 조금만 더 뜯어보면 '시인'이 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정확히 정해진 대로의 하루를 살아간다. 전날 아내가 챙겨둔 옷을 입고, 매일 똑같은 아침을 먹고, 산책길 같은 출근길을 걸어가며, 완벽히 정해진 행선지를 돌고 돌며, 아내가 챙겨준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산책길 같은 퇴근길을 걸어오고, 아내와 얘기하는 시간을 갖고, 반려견과 저녁 산책을 나가고, 바에 가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맥주를 마신다. 


거기에 루틴 안에서 생각할 어떠한 거리도 없다. 그의 몸은 정해진 대로 움직이며 그의 정신은 모두 '시'로 향해 있는 것이다. 특히 그는 버스를 운전하며 눈으로는 매순간 똑같은 듯하지만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고, 귀로는 그가 천착하는 일상의 언어로 된 대화들을 들을 수 있다. 블루칼라 노동자의 훌륭한 자기 계발이 아닌 세계 확장이다. 


우린 자기 계발이 아닌 세계 확장을 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 모두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다분히 아마추어적으로. 그것이 진정 삶을 풍성하게 하고 결국 행복하게 할 것이다. 패터슨과 로라가 보여주는 아마추어 예술가로의 일상성이 우리에게 힘을 주고 격려와 함께 위로를 보내는 것 같다. 


비록 패터슨의 하루가 최적의 조건으로 꽉 짜여 있다고 해도, 우리 손에는 그런 조건이 쥐어지지 않는다 해도, 예술은 일상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일상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누구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패터슨>을 보며 삶이 언제,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 알기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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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면으로 보는 회사와 일상의 이야기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8. 1.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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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표지 ⓒRHK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출판 콘텐츠 중에 '퇴사'가 소소하게 눈에 띈다. 퇴사를 꿈꾸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를 위로하거나, 퇴사를 해도 잘 살아갈 수 있으니 한번 시도해보라거나, 회사가 전부가 아니니 너무 의존하지 말고 미래를 준비하라거나. 누구나 머리로는 알고 있고 가슴속 깊이 받아들이지만 결코 쉽게 하지 못할 퇴사. 


'퇴근', '퇴사', 얼마나 가슴 설레는 말인가. 그 설레는 말 이면엔 회사에선 설레는 일 따위는 없다는 진실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지만 회사야말로 먹고 살기 위한 가장 쉬운 방편이 아닌가. 맡은 일을 하여 성과를 내고 그에 맡는 돈을 받는 것, 설레는 일 따위 없어도 대다수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그 이상의 것을 얻어갈 수 있다. 


결국 다시 회사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회사에서의 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회사든 집이든 어디든 그곳에 있는 '나'다. 나는 중심을 잡고 남을 해하려 하지 않으며 나를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만 그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같은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까. 소설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RHK)로 조금은 알 수 있을까. 


쓰무라 기쿠코 소설가는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을 휩쓴, 일본 대표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일본 최고 권위 문학상을 받고도 오랫동안 작가와 회사 일을 병행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직장과 일상의 어려움과 소소함을 공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소설들로 많은 이들에게 인기와 찬사를 얻었고 얻고 있다고 한다. 이 소설 또한 그녀가 사방면으로 바라본 직장과 일상의 이야기들 중 하나다. 


갑질의 희생자들


소설은 건축회사에 다니는 시게노부와 디자인회사에 다니면서 프리랜서 기자를 부업으로 하는 나카코를 주인공으로, 기본적으로 소소하지만 때론 격렬함이 따르는 회사와 일상을 내보인다. 그들은 집에선 인간 이하의 삶을, 출근길에선 인간 아닌 삶을 살며, 회사에 와서 비로소 인간이 된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회사에 다니기 싫은 건 매한가지다. 그런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이들이 있다. 


어느 날 시게노부에게 걸려온 낯선 남자의 항의 전화, 공사 소리도, 시멘트 냄새도, 작업자들의 이야기 소리도, 창문을 열면 보이는 방진망도, 그 틈새로 먼지가 날아오는 것도 불편하단다. 시게노부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사과하지만 상대방은 주장을 반복할 뿐이다. 이후에도 몇날 며칠 계속 말이다. 시게노부는 진저리가 나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다. 그 낯선 남자의 꿍꿍이는 뭘까. 


나카코는 프리스쿨을 운영하고 있는 시노즈카 씨에게 시달림을 당하고 있다. 프리스쿨 신입생 모집 팸플릿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무리 하고 또 해도 일이 되돌아온다. 수정할 때마다 뭔가 불만스러운 점이 하나씩 되돌아왔고, 그것을 다시 수정하면 또 한두 가지의 지적 사항이 돌아왔다. 그것이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건 작업을 잘하고 말고의 능력 문제가 아닌 듯하다. 시노즈카 씨의 꿍꿍이는 뭘까. 


시게노부와 나카코는 자신에게도, 자신이 속한 회사에게도 아닌, 외부의 누군가로부터 시달림을 당한다. 대상은 내가 속한 회사가 아닌 '나'이지만, 내가 하는 행위란 모두 '회사'에 속한 나로 귀결되기에, 절대 함부로 할 수 없다. 참고 참고 또 참아야 하는 것이다. 회사 생활에서 가장 어려울 수 있는 '갑질'의 희생자들인 것이다. 


회사와 일상을 모두 지키는 방법


회사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청춘들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 지금, 당연히 회사와 관련된 콘텐츠에서 회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제로에 가까워졌다. 회사원이 되고자 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설혹 회사원이 되었더라도, 가까스로 들어왔기에 회사에 종속되어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이 소설도 그 범위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도 이 소설이, 이 작가가 결이 조금 다른 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을 만한 건, 회사가 삶의 한 부분이라는 걸 인정하고 회사 밖 일상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회사에서의 일을 크나크게 부풀리지 않고, 일상으로까지 가지고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도 무사무탈하게 하루를 보내고 제때에 퇴근해 맛있는 저녁을 먹고 편안히 쉬는 게 잘못된 일일까.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그렇다, 그런 생각은 잘못되었다고들 한다. 회사에 뼈를 묻을 생각으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며 열심히 해야 비로소 내가 나일 수 있다고들 한다. 아니다, 그건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다른 생각이어야 한다. 회사는 인간 삶의 한 부분일 뿐 전체가 아니란 말이다. 


아주 치기 어린 철 모르는 생각이라고 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그런 '반자본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을 회사에서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갈림길이다. 나는 나를 지킬 권리와 의무가 있다. 한편으론 내가 속한 회사에 최선을 다할 권리와 의무 또한 있다. 모두 할 순 없을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나와 회사 모두를 지키는 방법이 아닐까. 내가 무너지면 회사에게 타격이 심대하고, 회사가 무너지면 나에게 타격이 심대하다. 회사와 일상을 양립시키는 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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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악순환이 시작된, 뜻밖의 그곳 <폭력의 씨앗>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11.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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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폭력의 씨앗>


올해 거의 마지막이 될 독립영화 명작이다. '폭력'의 시선 확대에 큰 기여를 한듯. ⓒ찬란



'폭력', 인류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주제이다. 그 어느 누구도 이 폭력이라는 놈이 쳐놓은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폭력이라는 소재와 주제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천착해왔다. 영화, 그중에서도 한국 독립영화에 국한한다면,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폭력의 악순환이 가장 큰 주제를 형성했다. 


윤종빈 감독, 하정우 주연의 <용서받지 못한 자>가 그 시작으로 보는데, 여기서 '용서받지 못한 자'는 누구일까. 구성원 모두가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이자 가해자라 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결국 진정한 최후의 가해자는 '군대' 그 자체이다. 그들이 군대라는 곳이 아니었다면 그 정도의 폭력을 휘두르고 그런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그런 극단적 후회를 했었을까?


이후 한국 독립영화는 거의 매년 폭력의 악순환에 관한 수작을 선보여 왔다. 요즘도 여전히 폭력을 말하지만 시선이 다른 것 같다. 사회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폭력의 굴레를 개인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해 스크린에 옮겨 놓는 작업이 잇따르고 있다. 폭력의 악순환보다 더 넓은 시야와 더 구체적인 연출이 필요해 보인다. 


한편 가장 폭력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명, 군대 영화는 연성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창>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아성이 높고 깊기도 했거니와, 군대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좋아지고 있다는 인식이 군대 영화의 필요를 무색케 했다. 이번에 나온 <폭력의 씨앗>은 그래서 의미 있고 눈여겨볼 만한 영화다. 


이미 오래전 발아하고 있던 폭력의 씨앗인가


상당히 노골적인 제목 '폭력의 씨앗', 그 씨앗이 어디서 어떻게 왜 발아되었는가 살펴보고 생각하게 만든다. ⓒ찬란



단체외박을 나가는 한 무리의 군인들, 상병 이상 고참들과 이등병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병만이 모든 일을 처리하다시피 한다. 각자 하고자 하는 일을 하기 전 모여 술 한잔 하는 그들, 일병 주용은 최고참 선임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누군가가 지난번에 이어 선임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중대장에게 말하려 했다는 것. 


주용의 맞후임인 이등병 필립은 이번만은 절대 자신이 아니라고 애원하지만 주용을 위시한 고참들은 당연히 필립이 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끝까지 이번만은 자신이 아니라고 우기는 필립을 주용이 일차로 위협을 가하지만, 여전히 굴복하지 않자 분대장이 가차없이 팬다. 


입술이 터지고 이빨이 부러진 필립, 주용은 만나기로 했던 친누나와 연락이 되지 않자 필립과 함께 직접 인천으로 점프를 뛰면서까지 찾아간다. 매형이 치과의사였다. 인천으로 가는 도중, 인천에 도착하고서, 인천에서 다시 복귀하기까지 주용과 필립은 부딪힌다. 사소하게 시작한 부딪힘은 주용으로하여금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주용은 매형과 누나에게서 느껴지는 이상한 기류를 눈치채고 그들을 추궁한다. 사실 매형이 누나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한 전력을 주용 또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상한 기류에는 이런 전력이 한몫했던 듯. 주용의 선한 얼굴에 내재된 폭력의 씨앗은 이미 예전에 발아하고 있었던 건가.


사회, 가정, 군대를 아우르는 폭력의 굴레


'군대의 폭력은 군대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라고 영화는 말한다. ⓒ찬란



영화는 시종일관 긴장의 연속이다. 목숨이 오갈 정도의 끔찍한 일, 나라의 명운이 달린 큰 일은 없지만, 주용에게 남은 군대에서의 나날들에 암흑이 내릴 일들이 점점 더 그 강도를 더한 채로 덮쳐온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 모든 건 필립 때문이다. 나는 정말 잘하고 있는데, 이 새끼가 평범하게만 했어도...


사회에 나와서도 똑같겠지만, 군대에서야말로 어리바리 후임을 둔 사수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2년여 동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절대 바꿀 수 없는 한 운명체인 게 더 곤혹스럽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에게나 피해갈 수 없는 그때 그 어리바리 시절이 있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내리갈굼으로 대표되는 폭력의 악순환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끊어버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용에게 내재된 폭력의 씨앗은 군대에서 필립에게 가하는 폭력의 형태로 처음 발아된 것이 아닐 테다. 만약 그것이 처음이라면 그는 군대에 오기까지 폭력의 한 면도 보지 못한 온실 속 화초에서 지내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리는 없으니, 그는 이미 폭력이 무엇인지 대략이나마 알 뿐더러 이미 폭력을 당해봤거나 폭력을 행사해본 적이 있다는 말이 된다. 


영화의 시선은, 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은 군대에서 사회 또는 가정으로 옮겨간다. 그건 즉, 폭력의 최정점에는 사회 내지 가정이 있었다는 뜻이다. 군대에 적을 두고 있어도 이전까지 그리고 이후에 있을 곳은 군대가 아니지 않은가. 군대의 폭력, 사회 또는 가정의 폭력은 결코 '또 다른' 폭력이 아닌 하나로 이어지는 폭력의 굴레다. 


인지하지 못한 채 우리를 뒤흔드는 일상 폭력


우리가 아마 절대 인지하지 못할 수많은 소소한(?) 폭력들이 우리 일상을 지배한다. ⓒ찬란



영화가 보여주는 폭력은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잘 인지하지 못한 채 당하기도 하고 행하기도 하는 일상의 폭력들을 극히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지금까지 봐 왔던 그 어떤 폭력의 양식이나 행태보다 심각하고 무섭다. 앞서 말했던 목숨이 오가는 끔찍한 일이나 나라의 명운이 달린 큰 일보다 오히려 더 우리를 뒤흔드는 일이 아닐까 싶다. 


시종일관 우리를 덮쳐오는 긴장은 이런 일상적 폭력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알 수 없음'에서 발인한 사소한 실수에 반응하는 언어적 폭력, 호의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우리만치 포장된 권위적 폭력, 도움이라는 행동으로 자행된 상대방은 물론 주위를 생각하지 않는 무개념 폭력 등. 이보다 훨씬 많은 폭력들에서 우리는 살아 간다. 


차라리 눈에 확연히 보이는 갈등 속 폭력이나 치고박고 싸우며 피가 난무하는 폭력의 양상에서 긴장은 덜 느껴진다. 영화를 100%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긴장의 끈이 절대 풀어지지 않는 것이었겠지만 오히려 일상적 폭력의 장면들이 긴장을 더 이끌어낸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는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과 함께 살아간다. 개중엔 해결은커녕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문제가 아주 많은 것이다. 거기에 진짜 문제가 있다. 문제를 문제라 인식할 정도의 큰 문제들은 누구나 인지하고 해결방도를 찾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문제를 문제라 인식하지도 못할 정도의 작은 문제들은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러면 그건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폭력도 그러한가? 거기에 폭력을 대입해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지만, 아니 없다시피 할 테지만,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사람은 부지기수일 거다. 지금의 폭력의 씨앗들은 계속 발아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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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길을 가든 우리는 그녀를 응원한다 <어메이징 메리>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11.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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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어메이징 메리>


오랜만에 힘뺀 마크 웹 감독이 역시 오랜만에 힘뺀 크리스 에반스를 주축으로 좋은 배우들과 함께 <어메이징 메리>로 돌아왔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몸에서 힘을 빼면 더 좋은 연기를 선 보일 수 있을 거라는, 알듯 말듯한 조언이 있다. 비단 연기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통용되는 조언이겠다. 이는 다분히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말일 텐데, 진짜로 힘을 잔뜩 들인 것들만 맡다가 가끔 전혀 힘이 실리지 않은 가벼운 것을 맡기도 한다. 분위기 전환이랄까, 쉬어가는 시간이랄까, 아니면 그것이 진짜 하고자 하는 바일까. 


마크 웹 감독은 데뷔작 <500일의 썸머>로 또 하나의 현대판 클래식 주인이 되었다. 매우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특유의 감각으로 특별함을 끄집어 냈다. 그런 그를 할리우드가 가만히 놔두지 않았던 바, 그만의 감각만 쏙 빼어내 블록버스터를 만들게 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 2>다. 극히 나쁘진 않았지만, 전혀 좋지 않았다. 


<어메이징 메리>라는 작품으로 데뷔적의 감성과 감각을 다시 선보이려 한다. 조만간 <리빙보이 인 뉴욕>이라는 로맨스 영화로 또 한 번 더 찾아온다고 하니, 그 전초전이라고 해야 할까. 수없이 많은 히어로 영화들로 근육질을 뽐내며 미국을 지켜내느라 진땀 흘리고 있는 크리스 에반스도 함께다. 둘이 나란히 힘 뺀 와중에, 연기파 배우 두 명과 천재 아역배우 한 명이 자리를 지킨다. 


치졸한 법정 공방, 그래도 언제나 시선은 메리로


가족끼리 벌이는 법정 공방, 참으로 치졸하지 않은가. 그래도 그들의 시선은 오직 메리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미국 플로리다의 한적하고 조용한 해변 마을에서 배를 고치며 살아가는 프랭크(크리스 에반스 분), 그에겐 여자 아이 한 명이 있다. 다름 아닌 여조카 메리(멕케나 그레이스 분)인데, 그녀는 불과 7살 짜리 수학 천재다. 하지만 프랭크는 그녀를 영재 학교가 아닌 평범한 학교에 보낸다. 메리는 적응하기 힘들어 한다. 


소소할 수도 심각할 수도 있는 사건을 일으킨 메리는 쫓겨날 위기 또는 영재 학교로 갈 기회를 갖지만, 프랭크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 이 평범한 학교에 메리가 계속 다닐 수 있게 한다. 얼마 후 메리의 외할머니이자 프랭크의 어머니 에블린(린제이 던컨 분)이 찾아온다. 그녀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수학자로, 메리 역시 수학자로 크길 바란다. 


에블린과 프랭크는 메리의 앞날을 두고 대립하고 급기야 법정 공방까지 이어진다. 그 대립 사이에는 에블린의 작은딸이자 프랭크의 여동생인 천재 수학자 다이앤의 자살이 있다. 에블린은 다이앤이 못다 이룬 수학자의 꿈을 메리가 이어 받게 하려는 것이고, 프랭크는 다이앤의 불행한 삶과 죽음이 메리로 이어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수학 천재 메리를 둘러싼 할머니 에블린과 삼촌 프랭크의 치졸해 보이는 법정 공방이 기본 골자인 이 영화는, 더 많은 시간을 메리를 향한 두 혈육의 보다 합리적이고 감정적이며 진심어린 걱정과 고뇌에 투자한다. 물론 거기에는 각자 자신의 상황과 생각이 투영되어 있지만 언제나 시선은 메리로 향한다. 마크 웹의 감각이 이를 보좌한다. 


마크 웹이 선사하는 소중하고 예쁜 순간들


마크 웹이 <500일의 썸머>에서 보여주었던 순간과 일상의 아름다움을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선보인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특별할 것 없는 어린 천재의 이야기와 가족들 간의 치졸한 공방, 힘든 과거에 기인한 현재의 방향성 다툼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영화를 평범하게 만드는 이런 소재들이야말로 마크 웹이 감각적으로 잘 다룰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인데, 쉽게 잊히지 않는 순간들을 잘 포착할 줄 안다. 


메리는 그 나이대에 걸맞게 놀며 플로리다의 자연과 벗하는 허허벌판과 해변도 좋아하지만, 수학 천재로서의 기지를 한껏 뽐내며 보스턴의 최첨단과 최신식이 주는 멋스러움과 세련미도 좋아한다. 그처럼 프랭크 또는 에블린과 함께 하는 시간은 메리에게도 소중하고 예쁘며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도 소중하고 예쁜 순간을 선사한다. 


그러며 놓치지 않고 그려내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들은 다름 아닌 프랭크와 에블린의 생활과 생각의 연유다. 프랭크는 메리만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고 플로리다 구석에서 지내고 있다. 그에게도 그만을 위한 생활이 필요한 법, 마크 웹은 그 순간들에 <500일의 썸머> 감성과 감각을 살짝살짝 녹여 놓는다. 전혀 위화감을 느낄 수 없는 일상. 


한편, 에블린은 자신의 이야기가 없다. 오직 딸 다이앤의 과거와 손녀 메리의 현재에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을 뿐이다. 역시 천재였지만 자신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나다시피 한 아들 프랭크에겐 그래서 아무런 정을 느끼지 못한다. 사보다 공에 자신의 인생을 쏟은 에블린의 대를 이은 공적 투신 열망은 참으로 가련하고 불쌍하다. 


중도적 방향과 방법, 그리고 기본


메리의 인생은 누구도 재단할 수 없다. 그렇다고 어리디 어린 본인도 선택할 수 없다. 그럴 땐 중도와 기본이 필요하겠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너무 어린 메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어른들의 메리를 향한 진심어린 일편단심 또는 그것을 빙자한 자신의 삶을 향한 인정에의 열망에 따라 휘둘리고, 결국 법원의 판결에 따를 뿐이다. 그래서 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찾아야 할 방법은 '중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당사자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그녀와 같은 천재의 사회적 공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양쪽 모두를 열망하고, 앞으로도 열망할 것이다. 영화에서도 나오지 않는가? 외로운 천재의 내재적 비극, 또는 외톨이 천재의 외부적 비극 모두의 안타까움을. 영화는 천재의 삶을 공적, 사적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의 앞서 선행되어야 할 삶의 기본이다. 세상에 나온 건 자신의 뜻이 아닐지언정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는 기본, 가족이라는 끈 하나로 자신의 모든 걸 관철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 뭐든지 일방적으로 몰아가서 후회가 남을 수 있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 등 말이다. 


여러가지 삶의 길이 있다. 한 가지 길로만 평생 갈 수도 있고, 수많은 길들을 오갈 수도 있으며, 길 아닌 곳을 헤치며 갈 수도 있다. 아니, 멈춰서서 관망할 뿐 길을 가지 않을 자유도 있다. 우리 어메이징한 메리에겐 어떤 길이 펼쳐져 있을까, 그녀는 어떤 길을 선택할까. 뭐든 그녀에게도 우리에게도 좋은 선물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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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마크 웹, 법정 공방, 순간, 어메이징 메리, 일상, 중도,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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