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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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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 황당무계하지만 환상적인 챔피언들이 있다! <위 아 더 챔피언> 2021.01.08
  • 권력, 사랑, 여성을 앞세운 요르고스 란티모스식 불편한 비틀기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2019.02.25
  •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큰 목적을 완벽히 이룬 영화 <로마> 2018.12.27
  •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컬러 이야기들 <컬러의 말> 2018.08.13
  •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아름다움 <에델과 어니스트> 2018.05.28
  • 중국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눈, 책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2) 2018.05.21
  • 우리에게 일제강점기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35년> 2018.01.15
  • 영화 '따위'가 주는 위대하고도 위대한 깨달음 <그을린 사랑> 2017.08.11
  • '죄'의 근본은 변할 수 있나? '사랑'은 모든 걸 초월할 수 있나? 2017.02.10
  • 위대한 저서를 나열하며 과학의 역사를 파헤치다 <문제적 과학책> 2016.09.12

여기, 황당무계하지만 환상적인 챔피언들이 있다! <위 아 더 챔피언>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1. 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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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위 아 더 챔피언>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위 아 더 챔피언> 포스터. ⓒ넷플릭스



종종 생각한다. "세상은 참 크고 넓다"라고 말이다. 그러니 별의별 사람도 다 있고, 그들은 참으로 다양한 일들을 하고 산다.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저게 뭐지?"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들. 평범한 우리들에게 '진기명기'는 영원히 신기함의 대상이자 우상이자 별꼴의 대명사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한편,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다. 


여기, 자못 황당무계하고 쓸데없고 대단하고 환상적인 일을 꾸미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대회를 열어 더욱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또 열광하게 하는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위 아 더 챔피언>은 그들을 가리켜 '챔피언'이라고 명명한다. 챔피언이라고 하면 운동 경기나 기술 따위에서 최종승자를 말하는데, 유래는 대신 싸워 주는 '대전사' 또는 '대변자'의 뜻을 가지고 있다. 


평범한 사람은 절대 하지 못할 것 같은 종목들이지만, 챔피언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특출난 사람이 평범한 사람을 이기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 천하를 호령하는 이미지가 아닌, 전통을 지키고 자신을 이기며 축제를 즐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하여, 대회의 최종 승자가 아닌 대회에 참가한 모든 이가 챔피언이라는 게 아닐까. <위 아 더 챔피언>, 6개의 대회, 6개의 에피소드가 반긴다.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면, 챔피언


영국의 깊은 시골 브록워스에서 족히 수 세기의 역사를 자랑하는 '치즈 롤링' 대회가 열린다. 수직에 가까운 경사의 언덕인 쿠퍼스 힐에서 3.5kg의 원통형 더블 글로스터 치즈를 굴리고는 쫓아 내려가는 경주이다. 두메산골에서 벌어지는 소규모의 대회이지만, 자타공인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경주'라고 할 만하다. 1등을 거머쥐기 위해선, 달리거나 미끄러지는 게 아닌 구르고 일어서는 걸 잘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몸 어딘가 다치는 건 당연지사이자 다반사, 그럼에도 대회를 계속 이어 나가는 건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미국 에인절스캠프, 일명 '프로그 타운'에서 '개구리 점프 대회'가 매년 열린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개구리 점프 대회로, 9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변함없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는데, 미국 황소 개구리여야 하고 개구리는 운동선수로 대우받으며 일련의 가이드라인으로 보호받는다. 경기에 임해선, 세 번 뛰어서 거리를 측정한다. 두 가문이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하는데, 정작 세계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는 데는 다른 곳이다. 내 마음 같지 않은 개구리 선수, 매년마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 흥미진진하다. 


치즈 롤링 대회와 개구리 점프 대회, 챔피언은 경쟁자들을 누르고 최종 승자가 되거나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만 뜻하지 않는다는 걸 몸소 보여 준 대회들이다. 두 대회는, 겉으로 보기엔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그 역사와 전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지역만 지니고 있는 특색을 여지없이 보여 주기에, 그리고 지금까지 지켜왔듯 앞으로도 지켜나갈 용의가 있는 이들이 존재하며 신구가 잘 조합되어 있기에 앞으로도 영구적으로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이 대회들에 참가하는 모든 이와 관람하는 모든 이와 관계된 모든 이가 챔피언이다. 


자신을 이기면, 챔피언


미국 포트밀에서 제1회 세계 고추 먹기 대회가 열렸다. 미국 남부의 농사꾼이 강박적으로 재배하는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들'의 협찬을 받았다. 그중에서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 캐롤라이나 리퍼가 눈에 띈다. 일반 할라페뇨의 스코빌 지수는 3000이지만, 캐롤라이나 리퍼는 5000배 이상으로 맵다. 자그마치 1,641,000이다. 세계 각지에서 고수들이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면, 부와 명예와 인기도 따르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이겼다는 자부심을 얻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장난감인 요요는 기원전 1000년부터 인간 사회의 주요 장난감이었다. 당연히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발달시켜 왔을 터, 지난 88년간 세계 최고의 자리를 가리기 위해 세계 요요 챔피언십을 개최해 왔다. 최상위 클래스 선수들의 기술을 보면, '예술' '신'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를 터. 완벽한 재능과 끊임없는 연습으로도 따라가기 힘든 그들은,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지위가 낮은 신이다. 


챔피언의 자질은, 남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추상적이거니와 크게 와 닿지 않는 것 같은 이 주장은, 그러나 사실이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바도 이와 같지만, 실제로 뭔가를 도전해 보면 알 것이다. 경쟁에 있어서는, 남을 너무 의식하지 않고 일단 자신과 대면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남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상관없이 내가 잘하면 되는 게 아닌가.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챔피언


세계 최고의 헤어 스타일리스트를 뽑는 대회가 있다. 7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브로너 브러더스 국제 헤어쇼', 헤어계의 수퍼볼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규칙이 꽤나 꼼꼼하다. 가발은 안 되고 누드도 안 되며 동물은 소품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모발, 머리 장식, 의상, 화장, 손톱, 액세서리를 포함하여 종합적으로 심사한다. 특이한 점은, 대회의 모든 관계자가 흑인이라는 것. 그들은 흑인 뷰티의 표준이다. 


인간에게 가장 완벽한 댄스 파트너는 반려견이다. '도그 댄스'라는 스포츠 종목이 존재하는데, 아직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인간과 개의 오래된 관계에서 파생된 자연스러운 스포츠이기에 전 세계에 수백 개의 대회가 존재한다. 그중 최고로 손꼽히는 건, 오픈 유럽 챔피언십으로 일명 'OEC'이다. 인간과 개의 완벽한 일체가 중요할 텐데, 창의적이어야 하고 음악을 잘 이해해야 하며 춤을 잘 춰야 하는 건 물론이다. 반려견 훈련은 필수이고. 힐워크와 프리스타일 두 종목을 심사한다. 어느 팀이, 어느 나라가 도그 댄스의 표준이 될까. 


챔피언을 가리기 위해선 엄격한 심사가 선행되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자타공인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고, 최고 권위의 심사위원으로 하여금 점수를 매기게 한다. 그렇게 가려진 챔피언은, 표준이 되고 우상이 된다. 그런데, 사람이 심사를 보는지라 아무리 완벽한 객관화로 중무장했다고 해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을지 모른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고 해도, 자만심을 갖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대회에 참가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량을 쏟아부었다는 그 한 가지로, 이미 챔피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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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점프 대회, 고추 먹기 대회, 도그 댄스, 역사, 열정, 요요 대회, 위 아 더 챔피언, 자신, 전통, 최선, 치즈 롤링 대회, 헤어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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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사랑, 여성을 앞세운 요르고스 란티모스식 불편한 비틀기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2. 2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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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18세기 영국, 프랑스와의 전쟁을 계속 해야 하는지 화친해야 하는지를 두고 국정이 둘로 나뉘어 치열하게 대립 중이다. 절대권력 여왕 앤(올리비아 콜맨 분)은 죽 끓듯 하는 변덕을 내뿜을 뿐 국정에 이렇다할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조력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여왕의 조력자 사라(레이첼 와이즈 분)는 어릴 적 앤 여왕을 구해준 후 궁전에 들어와 여왕과 우정을 나누며 비선실세로 사실상 권력의 최정점에서 군림하고 있다. 그녀의 당면한 과제는, 프랑스와의 전쟁을 계속하여 사령관인 남편 말버러 공작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사라에게 친척이라며 몰락한 귀족 여인 애비게일(엠마 스톤 분)이 찾아온다. 궁전 하녀부터 시작하는 그녀, 사라 몰래 여왕의 통풍을 완화시켜줄 약초를 캐와 눈에 들고는 사라의 전속 하녀가 된다. 이후 애비게일은 차츰 본색을 드러내 사라 아닌 여왕의 눈에 들고자 발악하는데...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이하, '더 페이버릿')는 한 나라, 아니 한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궁전에서 벌어지는 치열하고 치졸하고 치밀한 세 여인의 암투를 담았다. 거기에는 국정, 권력, 사랑, 진실, 질투, 욕망, 거짓 등의 온갖 것들이 판을 친다. 


'불편'이 깔려 있는 비틀기


요르고스 란티모스 특유의 '불편'이 기저에 깔려 있는 비틸기가 십분 발휘되었다.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더 페이버릿>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신작이다. 또 요르고스 란티모스다. 불과 몇 개월 전 <킬링 디어>로 찾아와 '역시 역시는 역시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깔끔한 각본으로 명성을 잇더니,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찾아와 전 세계 시네필을 열광시켰다. 


그런데 이 영화, 이때까지의 란티모스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듯하다. 아니, 상당히 다르다. 란티모스 하면, 특유의 상상력을 극대화해 완벽한 신화적 비틀기를 완성시킨 대가가 아닌가. 그래서 영화보다 연극에 더 알맞는 듯한 영화들을 선보여 왔었다. 


반면 <더 페이버릿>은 스토리 라인 자체로는 별 얘깃거리가 되지 않는 권력 치정기를 내세우는 대신, 수많은 단편적 메시지들과 영화라는 형식으로만 활용될 수 있을 듯한 상상력 충만 비틀기를 시도했다. 그동안의 작품들과 다르지 않은 게 있다면, 기저에 '불편'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스토리 내적으로 들어가기 전, 외적인 요소들인 카메라 구도, 카메라 렌즈 활용, 슬로우 모션, OST, 문자 정렬 등만 봐도 알 수 있다. 인물을 아래에서 위로 비추는 구도, 광각과 어안 렌즈를 활용한 화면 비틀기, 슬로우 모션 후 동일한 장면을 제대로 된 플레임으로 보여주기, 신경을 긁는 듯한 현악기 위주의 OST, 영화의 제목과 챕터 제목과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는 '균등 분할'의 문자 정렬 방식까지 하나 같이 불편하기 그지없다. 감독은 왜 굳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권력


'권력'이라는 키워드.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스토리 외적인 영화 장치적 요소들의 불편한 비틀기는, 자연스레 스토리 내적으로 이어져 숨막히고 내밀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궁전' 공간의 실상을 보여주는 데 일조한다. '여기는 이런 곳이고 이런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하며 살고 있어.' 


영화는 '권력'이라는 키워드에서 시작한다. 당면한 가장 큰 과제인 프랑스와의 전쟁은 수단일 뿐이다. 이 과제를 놓고 여당인 휘그당과 야당인 토리당이 격전을 벌이는 와중, 앤 여왕과 조력자 사라는 당연히 여당과 긴밀하게 조우하고 있다. 


하지만, 앤은 죽 끓는 듯하는 변덕을 국정에서도 가감없이 흩뿌리곤 하는데 사라의 조언과 협박도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앤도 사람인 바, '절대권력'이라는 수식어에 걸맞는 권력을 휘두르고 싶을 것이다. 언제나 그녀의 곁에서 나라를 위한 조언이라는 미명 하에 '실질권력'을 휘두르는 사라 대신 말이다. 그때 나타난 애비게일의 존재는 앤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다. 


애비게일은 욕망의 화신이다. 귀족에서 천민으로 굴러떨어진 후 제자리를 찾으려는 욕망은 누구도 주체할 수 없다. 앤은 허울 뿐인 절대권력 대신 진실한 실질권력을 갖고자 애비게일을 이용하고, 애비게일은 사라를 대신해 실질권력의 자리에 오르고자 한다. 얼핏 둘의 합은 굉장히 잘 맞을 것 같은데, 여기에 또 다른 키워드 '사랑'이 있기에 쉽지만은 않다. 


사랑


'사랑'이라는 키워드.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앤과 사라는 사랑하는 사이다. 사라의 앤에 대한 사랑은 권력과 맞바꾼 필요조건처럼 보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어릴 때 왕이 되어 변덕과 후회와 슬픔만 남은 앤에게 사라는 사랑적 필요조건이다. 


그렇다고 사라의 앤에 대한 사랑이 권력으로만 치환될 순 없는 것이, 군사령관으로서 항상 멀리 떠나 죽음을 옆에 두고 사는 말버러 공작을 남편으로 둔 사라에게도 앤은 유일무이하게 모든 걸 나눌 수 있는 대상이라 하겠다. 역시 사랑적 필요조건이다. 


서로 사랑적 필요충분조건이 충만한 앤과 사라 사이에 애비게일이 껴들 수 있는 요소는 사랑 아닌 권력이 먼저겠다. 그녀는 그 둘 사이를 내외적 권력 요소로 흔들고는 이후에 사랑으로 다가간다. 물론 오직 욕망으로 점철된 거짓 사랑이라는 게 함정. 


사라는 앤에게 '화장한 얼굴이 오소리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비록 권력이라는 어쩔 수 없는 등가교환 요소가 언제나 따라붙었지만, 그들 사이는 오랜 우정에의 믿음과 진실에 바탕한 냉정이 함께 했는데 말이다. 권력이 먼저인가 사랑이 먼저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여성


'여성'이라는 키워드. 그리고...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자세히 들여다볼 것도 없이 <더 페이버릿>을 지배하는 건 남성 아닌 '여성'이다. 극을 좌지우지하는 세 명의 여인, 앤과 사라와 애비게일이 그들이다. '그밖에' 휘그당 당수이자 총리인 고돌핀과 토리당 당수 할리와 애비게일을 따라다니는 마샴 대령이 있다. 


국정과 욕망의 암투가 판 치는 권력에의 향연, 진실과 질투의 치정적 요소 충만한 사랑, 그리고 이 모든 걸 아우르는 궁전을 오직 이 세 명의 여인만이 판을 짜고 휘두르고 좌지우지하고 있다. 또한 할 수 있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가 몇몇 있다. 앤 여왕의 '난 여왕이야', 할리의 '남자는 항상 예뻐야 해.', 사라의 '(할리를 향해) 마스카라 번졌네. 화장 고치고 올래요?', 애비게일의 '사내새끼가 어딜 감히 여자를 놀려요?' 


영화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워 18세기 영국 궁전의 고증을 완벽히 해냈다. 궁전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복장은 물론, 궁전 내의 공간과 가구들에서 전혀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어떨 땐 그 완벽함이 인물들을 집어삼킬 듯, 즉 인물들이 공간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권력과 사랑을 가지고 사투를 벌이는 여성들, 남성들을 앞도하는 절대권력을 향한 그들만의 인생을 건 치열함은 그러나 궁전이라는 한 나라의 한 세계의 역사 일부일 뿐이다. 이 나라와 이 세계가 그들로 인해 돌아가고 그들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을 것 같지만, 누구든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고 대체할 것이다. 역사를 움직인 게 아니라 역사가 움직인 일부분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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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권력,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불편, 사랑, 여성, 역사, 요르고스 란티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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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큰 목적을 완벽히 이룬 영화 <로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8. 12.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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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영화 <로마> 포스터. ⓒ넷플릭스



1950년대 이후 컬러영화가 대중화되었다지만, 사실 최초의 컬러영화는 19세기 말경에 시작되었다. 그 역사가 100년이 훌쩍 넘은 셈. 이제는 당연한 컬러영화 시대에 종종 고개를 내미는 흑백영화는 자못 새롭게 다가온다. 


눈이 호강하다 못해 피곤해지게 만드는 화려한 색감의 '요즘' 영화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왠만한 화려함에는 성에 차지 않게 된 조류의 반대적 개념이라 하겠다. 영화를 위해 흑백을 수단으로 했던가, 흑백 자체에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집약적으로 들어 있던가. 


최근 들어서도 1년에 한 번은 흑백영화 또는 흑백과 컬러가 교차로 나오는 명작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아니, 현대 흑백영화는 대부분 명작인 것인가. 우리나라 영화로는 <동주> <지슬> 등이 생각나고, 외국 영화로는 <프란시스 하> <프란츠> <아티스트> 등이 생각난다. 


올해도 어김없이 명작 흑백영화가 찾아왔다.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이 넷플릭스로 건너가 자전적 이야기 <로마>를 내놓은 것이다. 이 영화는 칸에서 받아주지 않았지만 베니스에서는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중산층 집안 가정부 클레오 이야기


멕시코시티 중산층 집안 가정부 클레오의 평범한 이야기. 영화 <로마>의 한 장면. ⓒ넷플릭스


1970년대 초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중산층 동네 '로마', 남자 아이 셋과 여자 아이 하나 그리고 친정 엄마와 같이 사는 한 중산층 집안에서 클레오는 다른 한 명과 함께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단란해 보이는 가족, 모두 클레오를 한 가족처럼 대하고 어린 두 아이들은 클레오를 엄마 또는 이모처럼 생각한다. 클레오는 남자친구도 사귀며 지극히 평범하고 행복하지 않을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종종 들려오는 흉흉한 말들이 마음을 심란하게 할 뿐이다. 정치적 격랑의 강도가 심상치 않은 듯하다. 와중, 클레오는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남자친구는 도망가 버리고, 클레오가 몸을 담고 있는 이 가족의 가장이 바람을 피워 뒤숭숭하고, 멕시코시티는 보다 격렬한 시위로 몸살을 앓는다. 


클레오는 혼자서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될까, 가장의 외도로 흔들리는 이 가족의 앞날은 어떨까, 멕시코시티와 멕시코는 언제쯤 보다 좋은 세상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목적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목적을 완벽히 이루다. 영화 <로마>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 <로마>는 20여 년 전 베를린 은곰상에 빛나는 명작 흑백컬러영화인 중국 장이머우의 <집으로 가는 길>이 생각나게 한다. 단순히 흑백영화라는 점뿐만 아니라 한 개인, 한 가족의 특별할 것 없는 개인사 또는 가족사를 통해 시대까지 자연스럽게 들여다보는 맥락에서 그렇다. 


이 가족의 네 아이 중 하나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라고 하는데, 그의 개인사를 가져오면서 가정부 클레오의 시선을 취하고 있어 보다 자유롭고 객관적으로 가족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조망하는 듯한 정적이게 스며드는 카메라 워킹과 일절 OST 없이 자체 사운드로만 채우는 시도가 완벽히 들어맞았다. 흑백인 점까지 더불어, 이 개인사와 가족사에 오롯이 천착할 수 있게 철처하게 판을 짜서 준비를 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를 만듦에 있어 완벽한 단 하나의 정답은 있을 수 없다. 다만, 무수한 정답들이 있을 뿐일진대 이 영화는 그 무수한 정답들 중 하나의 완벽한 모범이 아닐까 싶다. 영화의 주요 요소를 모두 포기하면서 또는 모든 것을 집약시켜 '개인과 시대와 역사'라는 영화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를 보여줬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상 길이 남을 또 하나의 명작을 목도했다. 


진실과 진심을 담은 이 영화


진실과 진심을 담은 이 영화 한 편이면 족하다. 영화 <로마>의 한 장면. ⓒ넷플릭스


1968년은 전 세계적으로 혁명의 물결이 진하게 흘러간 의미있는 해이지만, 멕시코에게는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올림픽 개최로 인한 경제 성장의 해이다. 이듬해 수도 멕시코시티에는 지하철이 개통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는 민주화와 경제 성장 균형 분배 요구, 부정부패 척결 시위가 격렬히 벌어지기도 하였다. 급격한 경제 성장의 필연적인, 필연적이어야 하는 사회적 갈등의 한 모습이다. 그때 정부는 틀라텔롤코 광장에서 시위대를 향해 대학살극을 벌여 수백 명이 희생당하고 수천 명이 다쳤다. 


1971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로마>는 이런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당대 일련의 사회적 갈등을 유추할 수 있는 면면들을, 한 개인과 가족의 사소하다면 사소하달 수 있는 일들과 자연스럽게 병치시킨다. 


요란하지 않고 담담하게, 깊고 따뜻하게, 감당하기 힘들지만 꿋꿋하게 나아가는 클레오가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는 과정을, 이 가족의 진정한 일원이 되어 사랑하고 사랑받는 과정을, 견딜 수 없는 개인과 가족과 사회의 복잡다단한 일들이 밀려와도 무너지지 않고 단단하고 꿋꿋하게 일어나는 과정을, 우리는 진실과 진심을 담은 영화 한 편으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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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개인, 넷플릭스, 로마, 멕시코, 사회, 시대, 알폰소 쿠아론, 역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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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컬러 이야기들 <컬러의 말>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8. 8. 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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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컬러의 말>


<컬러의 말> 표지 ⓒ윌북



유독 한 가지 계열의 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검정색, 빨강색, 핑크색, 보라색, 노란색 등. 굉장히 일반적이고 일방적인 생각으로 이들은 '무난한' 색은 아니다. 초록색, 파란색, 갈색, 회색보다는 튀는 색깔이랄까. 여하튼 색은 그 색을 좋아하는 사람의 성격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누가 회색을 좋아한다면, '회색분자'라 하며 뚜렷하지 않은 성향으로 이도 저도 아닌 성격을 가졌다고 놀리지 않겠나. 


난 어떤 한 가지 계열의 색을 좋아하진 않는다. 왠만한 모든 색에 감탄하고 좋아한다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인데, 그 모든 색들의 '파스텔 톤'을 좋아한다. 원색의, 진하고, 탁해보이는 느낌보다 톤이 다운되고, 흐릿하고, 힘을 뺀 듯한 느낌을 좋아한다. 그런 색들은 보고 있기만 해도 편안해지고 종종 마치 나를 다른 어딘가로 데려가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한다. 


색은 정녕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 어딜 보아도, 그 어떤 풍경 또는 물건을 보아도, 필히 볼 수밖에 없는 게 '색'이다. 그걸 하나하나 보고 느끼고 표현하고 호불호를 말할 수 있는 건 가히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 출판편집자로서 책을 만들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표지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게 다름 아닌 색이다. 매일 매일 축복 속에서 살고 있는 걸까. 축복이 주는 색의 감옥에서 살고 있는 걸까.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컬러의 말>은 <이코노미스트> 미술 분야 전문 편집자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가 75가지 컬러의 숨은 비밀을 파헤쳐 짧게 기술해 놓은 책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매력적이거나 중요하거나 불쾌한 역사가 깃든 색들인데, 간략한 역사와 성격 묘사 중간 어딘가에 속하는 이야기들이다. 책 그 어딜 펼쳐보아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뿐이다. 


아이보리는 상아색의 다른 말이다. 상아는 바다코끼리, 일각고래, 코끼리 등 거대 포유류의 엄미를 가리키는데, 오직 특권층을 위해 자라났다고 한다. 몇천 년 동안 고급 장식 재료로 쓰인 상아, 이런 수요 탓에 1800년대만 해도 2600만 마리에 이르렀던 코끼리의 수는 20세기에는 몇십 만 마리만이 남았을 뿐이다. 야생 코끼리는 머지 않아 멸종할 것이며 바다코끼리 또한 멸종 위기 동물 목록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고 한다. 


서양은 파란색을 폄하해왔다고 한다. 로마인들에게 파란색은 야만, 애도, 불운을 상징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도 파란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파란색의 위상은 12세기 들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신의 색'이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동정녀 마리아가 밝은 파란색 가운으로 갈아입었는데, 중세에는 옷 색마저 바꿔버렸다고 한다. 


우르두어로 '흙'이라는 뜻의 카키는 군대의 상징과도 같다. 1846년 인도군 이동 수비대를 양성한 해리 럼스덴 경이 처음 고안했다고 여겨지는 카키색 군복은 '흙의 땅에서 병사들이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는 혁신적 생각의 작품이다. 몇천 년 동안 군인은 상대를 겁주기 위해 눈을 사로잡는 복식을 차려 입어왔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컬러들 이야기


저자는 익숙한 컬러들뿐만 아니라 난생 처음 들어보는 컬러들 이야기도 흥미롭게 풀어낸다. 그 컬러들 모두 익히 아는 하양, 노랑, 빨강, 파랑, 초록, 검정 등의 계열에 속해 있음에도 말이다. 몇몇은 아이보리처럼 터무니 없이 고급지고, 몇몇은 파란색처럼 좋지 못한 취급을 받았으며, 몇몇은 카키처럼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과 함께 했다. 


노랑 계열의 인디언 옐로는 18세기 말에 동양에서 유럽에 상륙했다. 이 컬러에는 오줌 비슷한 냄새가 났다. 1880년에 탐험가이자 식물학자인 조지프 후커 경이 나섰다. 인도 사무부의 도움까지 받아서 이 색이 동물 오줌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밝혔으나 의문이 완전히 풀리진 않았다. 2002년에 이 의문을 추적해보았지만 허사였다. 현재 인디언 옐로 안료는 희미한 오줌 냄새를 풍기며 큐 왕립식물원 수장고에 남아 있다. 


빨강 계열의 코치닐은 연지벌레라는 아주 작은 생물체로 만들어낸다. 1파운드의 코치닐을 만드는 데 말린 연지벌레 7만 마리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중앙 및 남아메리카에서는 적어도 기원전 2세기부터 써왔다고 한다. 스페인이 그곳을 침공한 후로 금, 은과 더불어 스페인 제국의 확장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게 바로 코치닐이다. 지금도 화장품 및 식품 산업에서 쓰이는 코치닐은 연지벌레에서 추출한다. 


갈색 계열의 머미는 미라 가루이다. 이집트에서 삼천 년 동안 일상적인 장례 절차로 삼았던 그 미라 말이다. 이 진한 갈색의 가루는 만평통치약으로 쓰였고, 화가들의 팔레트에도 자리를 잡았다. 미라 가루는 충격적이지만 20세기까지 쓰였는데, 1810년 문을 연 런던 화구상 C. 로버트슨에서는 1960년대에 남은 머미가 소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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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미, 성격 묘사, 아이보리, 역사, 이야기, 인디언 옐로, 카키, 컬러, 컬러의 말, 코치닐, 파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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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아름다움 <에델과 어니스트>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5.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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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에델과 어니스트>


<에델과 어니스트> 포스터. ⓒ㈜영화사 진진



영화 한 편으로 한 방면이나마 역사를 훑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굉장히 거시적으로 접근하면서도 주요 사건들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아야 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포레스트 검프> <벤자민 버튼은 거꾸로 가지 않는다> <국제시장>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이 생각난다. 


한 시대를 고스란히 살아온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굉장히 평범하거나 굉장히 특출나다. 하지만 접근 방법은 같다. 이들 모두는 우리와 다름 없는 삶을 살았거나 우리와 함께 살았던 것이다. 우린 이 영화들을 사랑했고 이 영화의 주인공들에게 대체로 동질감을 느꼈다. 


자전적 애니메이션 <에델과 어니스트>는 이 범주에 속하는 영화라 하겠다. 1920~60년대 영국의 지극히 평범한 한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영국의 20세기 초중반 40년을 훑는 작업 말이다. 우린 이 영화로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며 동시에 영국의 20세기 초중반을 지탱한 가치관을 들여다볼 수 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에델과 어니스트>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영화는 영국의 세계적인 동화작가 레이먼드 브릭스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다. 그는 오래 전에 돌아가신 자신의 지극히 평범한 부모님 이야기를 옮겨놓았다. 때는 1928년 런던, 가정부 에델과 우유배달부 어니스트는 사랑에 빠져 짧은 연애 끝에 결혼한다. 에델은 가정부를 그만두고, 그들은 25년 대출상환으로 집을 장만한다.


결혼하고서 집안살림을 하나둘 장만하는 평범한 나날들, 하지만 결혼 2년이 지나서도 아이를 갖지 못하자 37살 많은 나이의 아내는 걱정이 태산이다. 그 사이 히틀러가 독일에서 정권을 잡았다는 소식이 들리고, 에델과 어니스트는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한편, 곧 임신을 하고는 남자 아이를 낳은 에델, 하지만 나이가 많아 더 이상의 아이를 가질 순 없다. 


아이는 자라고, TV가 시작되고, 히틀러가 전쟁태세에 돌입하고, 에델과 어니스트와 레이먼드 가족은 전쟁을 대비한다. 급기야 영국도 독일과의 전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이는 대피령에 따라 안전한 시골로 가고 집에는 에델과 어니스트만 남아 그들만의 전쟁을 치른다. 섬나라 영국까지 침공한 나치독일의 공습에 이들은 무사할까? 레이먼드도 그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게 될까?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건들


<에델과 어니스트>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영화의 큰 줄기는 주로 어니스트가 읽고 들어 에델에게 얘기해주는 신문과 라디오에 있다. 히틀러가 언제 집권해 언제 유대인의 시민권을 박탈했으며 언제 전쟁태세에 돌입했고 언제 체코슬로바키아의 반을 취득했는지 언제 프라하에 했고 언제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는지 말이다. 


한편, 언제 TV가 시작되었고 1930년을 전후한 당시 영국의 빈곤선 상위층이려면 주당 얼마를 벌어야 하는지 언제 인류가 달에 갔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전쟁으로 물을 5인치밖에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전쟁 직후 노동당이 집권했으며 고속도로가 뚫렸고 어떤 당이 집권하든 식량 배급량은 계속 줄어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처럼 에델과 어니스트가 직접적으로 겪은 사건이 있는 반면 대다수가 이처럼 간접적으로 겪은 것들인데, 우리네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역사의 한복판에서 크고 작은 사건과 변화의 당사자로 살아가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건과 변화가 알게 모르게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남을 촛불 혁명을 직접 참여했던,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던 반면 계속 오르기만 하는 물가와 집값, 스마트폰의 보급 등은 물론 요동치는 세계 경제와 정치와 정세 등은 우리를 직간접적으로 스쳐지나갈 뿐이다. 그것들이 지금 당장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거나 규정하진 못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변화시키거나 규정하기에 결국 우리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함에도 말이다. 


사람 사는 아름다움


<에델과 어니스트>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영화는 일면 그런 생각을 체화시킨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같다. 신문이나 라디오, 그리고 TV를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전하는 어니스트와 집안일에 몰두하며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하는 또는 둘 수 없는 에델의 모습이 구도화되어 영화 내내 비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상은 에델인가? 당장의 집안일과 당장의 남편 혹은 아들의 일을 챙기며 보수적일 수밖에 없게 된 에델을? 그건 아닌 듯하다. 어니스트를 통해서 세상일에 관심 없는 사람을 비판하는 반면, 에델을 통해서 당시 평배해 있는 남녀 차별 또는 남녀 구분의 당연함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 흥행 3위를 기록하고 있는 <국제시장>도 평범한 한 부부의 일생을 돌아보며 한국현대사를 들여다보는 영화인데, 이런 비슷한 시선조차 담지 않고 하나같이 나라 발전에 일조한 이야기와 엄청난 일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신파 어린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뿐이다. 오히려 이 같은 이야기가 훨씬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겠지만 그 이상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거기엔 사람은 없고 사건만 있다. 


반면 <에델과 어니스트>는 단조롭기 짝이 없고 눈물 쏙 빼는 이야기를 선사하지도 않는다. 이보다 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름답다'고 서슴없이 말할 게 분명하다. 


거기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람 사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네'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저 그렇게 살다간, 인류 역사를 이루는 99% 이상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에델과 어니스트는 그대로 김씨와 이씨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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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눈, 책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8. 5.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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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표지 ⓒ메디치



지난 2004년 11월 개최된 중국고도학회 회의에서 정저우가 중국 8대 고도 중 하나로 공인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대표 고도는 중국 역사상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도읍 중에서 여러 면에서 명망이 높아 공인된 도읍을 말한다. 최초 논의될 당시엔 시안, 뤄양, 카이펑, 난징, 베이징의 5대 고도였는데, 항저우와 안양 그리고 정저우가 합세했다.


이 도시들 중 뒤늦게 합세한 안양과 정저우는 고대 상(은)나라 때 도읍이다. 안양은 상나라의 도읍인 은허가 발굴된 곳이고, 정저우 또한 상나라의 도읍인 적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 내부에서는 쉬이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지만 중국 외부에서는 쉬이 인정할 수는 없는 고도들이다. 


<중국을 빚어낸 여서 도읍지 이야기>(메디치미디어)는 제목에서처럼 중국 6대 고도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내었다. 최초의 5대 고도인 시안, 뤄양, 카이펑, 난징, 베이징에 항저우를 추가한 6대 고도. 그래서 책은 '중국을' 다루지만, '중국의'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책은 절대 아니다. 비판적인 시선이 다분한, 재미있고 흥미로운 중국 역사 이야기를 읽다가도 흠칫 놀라고 화들짝 생각에 미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중국 역사를 대하는 명백한 논조


책은 우리에게 입이 떡 벌어질 이야기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좋은 의미로 여기저기서 귀가 따갑게 들었거나 지나가면서 얼핏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들을 짜깁기해놓았다. 중국의 여섯 도읍지 3000년 이야기는 새로울 게 하등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저자의 시선이 있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건, '하나라' 논쟁에 관련한 부분이다. 책은 친절하게도 면지를 이용해 여섯 도읍지의 위치와 역대 중국에 존재했던 왕조들의 도읍지를 정리해두었다. 책에 정리된, 즉 저자가 정리했을 역대 중국 왕조에 하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상나라가 중국 왕조의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상나라가 BC 1600~BC 1646이고 서주가 BC 1646~BC 771이라고 되어 있는데, 큰 실수인 듯하다. 공통으로 BC 1646를 BC 1046으로 고쳐야 하겠다.)


저자의 중국 역사를 대하는 명백한 논조가 반영된 모습이라 하겠다. 지난 1996년 중국 국가주의 프로젝트의 역사 부분 중 하나로 '하상주단대공정'이 실시되어 하, 상, 주나라 세 중국 고대 국가 존재가 확정된 것이다. 하지만 다분히 중화주의적인 의도가 엿보이지 않는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의도에 편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우린 중국을 알아야 한다. 건국 이후 30년을 지나 개혁개방 이후 30년도 지난 지금,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즉 '중국몽'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 실현의 작동방식에서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는 게 아닌 현재와 미래로까지 뻗어나간다. 고로 우리는 중국의 역사를 가장 잘,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도읍지'를 택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중국처럼 땅덩어리가 크고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의 역사라면 공간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게 흥미로운 일이거니와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중국 역사를 대표하는 여섯 도읍지


장안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시안'은 가장 많은 왕조가 도읍한, 중국은 물론 세계 역사를 통틀어도 로마, 아테네, 카이로와 더불어 세계 4대 고도 중 하나라 꼽히며, 개척 2000년이 넘는 실크로드의 시작점이다. 이곳엔 수많은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으면서도,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짓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맞닿아 있는 실천 동력이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다. 


시안은 중국 역사에서 초반과 중반에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나라들인 주, 진, 한, 수, 당 등의 나라가 이곳에 도읍을 했다. 그 기간이 도합 1100년을 넘어 '천년고도'라는 근사한 별명(?)도 갖고 있다. 


반면 현재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750여 년 전 원나라 때부터 중화민국 35여 년을 제외하곤 쭈욱 도읍지로서 역할을 다 해왔다. 이곳 또한 시안처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만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직접적으로 끊기지 않고 내려오는 역사의 한복판에 있기에 남다르다 하겠다. 앞으로의 중국은 다름 아닌 베이징과 함께 하지 않을까. 


베이징은 근대 중국의 멸망과 함께 쓰러졌지만, 현대 중국의 부활과 함께 전에 없는 날갯짓을 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현대화된 글로벌 도시로 변신한 것이다. 하지만 본래의 베이징의 모습도 간직하고 있으니, 고대 베이징성의 중심을 관통하여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는 일직선인 '중축선'이다. 이 선의 상징은 지고무상의 황권이고, 그것은 곧 작금의 중국이 나아가고자 하는 궁극일 것이다. 


뤄양, 카이펑, 항저우, 난징은 중국 7대 고도 혹은 중국 8대 고도를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명망 높은 도시들이다. 중국 역사상 각각 수백 년씩은 도읍을 한 곳들이기도 하고 말이다. 뤄양은 '천하의 중심'이고, 카이펑은 중화민족의 '불요불굴과 자강불식의 정신'을 구현한 곳이며, 항저우는 쑤저우와 더불어 '천당'에 비유할 만큼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난징은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상기하게 만든다. 


책은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지만 동시에 자칫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협소한 시각으로만 중국을 바라보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저자가 말했듯 중국처럼 크고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일수록 '중심'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게 '편하겠'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천대받고 소외받는 중심 아닌 '소수'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참으로 많다. 단순히 생각하면, 수많은 중국 역사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때론 그 자체로, 때론 비판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조금 더 심층적으로 생각하면, 한 나라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새로운 눈 즉 '공간'의 개념을 조금이나마 통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두꺼운 책을 끝내고 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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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 뤄양, 베이징, 시안, 역사, 중국,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카이펑, 항저우
  • 수란
    2018.05.21 10:39

    안녕하세요. 이 책의 편집자입니다. 심도 있는 서평 잘 읽었습니다. 여덟이 아닌 여섯 도읍지가 품은 뜻을 인상 깊게 짚어주셨네요. 선생님, 말씀하신 연도표에서 연도 오류는 뼈아픈 실수입니다. 본문에는 맞게 들어갔지만 인쇄 직후 면지의 연도 실수를 발견했네요. 본문 30쪽에는 기원전 1046년으로 설명되어 있어요.. 2쇄에 바로잡아 시중 판매중입니다. 고맙습니다.

    • BlogIcon singenv
      2018.05.21 14:53 신고

      안녕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일한 서평을 오마이뉴스에 투고하였는데, 말씀하신 부분은 삭제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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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일제강점기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35년>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8. 1.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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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박시백의 <35년>


<35년> 1~3권 세트 ⓒ비아북



고우영 화백의 지극한 작가주의 대하역사만화는 1970~90년대 만화계를 넘어 문화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십팔사략>이 가장 이름이 드높은 듯한데, <삼국지>는 그만의 독특한 해석과 개입이 돋보인다. 그 덕분에 우린 한국사와 중국사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었다. 


박시백 화백은 고우영 화백 이후 끊겼던 대하역사만화를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달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대표적인데, 무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서술 와중에 자신만의 시선을 유지하였다. 어찌 보면, 철저한 고증과 전달이야말로 진정 견지해야 할 '시선'이 아닐지. 


그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이후 4년 여만에 들고 온 만화는 다름 아닌 <35년>(비아북)이다. 1910년 조선 왕조가 막을 내린 후 1945년까지 35년 간 이어진 일제강점기를 다루었다. 박시백 화백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하고자 하는 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다'를 실천한 결과물이겠다.


우리는 이 책에서 멀지 않은 과거, 혹은 현재까지 고스란히 이어지는 과거, 또는 현재로서의 과거를 볼 수 있다. 이번엔 1, 2, 3권의 일제강점기 초반 15년이 출간되었는데, 임시정부 100주년인 2019년까지 7권 완간을 예정하고 있다 한다. 아마도 그는 이후 6.25전쟁사 또는 한국 현대사를 그려내지 않을까 싶다. 


3.1혁명의 발견


내가 아는 일제강점기는 여전히 '3.1운동'에 머물러 있다. 1919년 3월 1일, 한민족이 일제에 항거하고 독립에의 이사와 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린 바로 그 날 말이다. 일제강점기 시기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 중 가장 중요한 날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진정한 가치와 영향을 잘 모른다. 다만 많이 들어 봤을 뿐. 


우린 <35년>을 통해 '3.1혁명'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을 뿐더러, 운동이 아닌 혁명이 된 3.1혁명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다. 비록 이날 독립을 이룩하진 못했지만, 더욱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지만, 일제의 간담을 충분히 서늘하게 하고 이후 독립운동의 양상까지 바꾸었다. 그로 인해 같은 해 임시정부도 세워진다. 이를 단순히 운동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결정적으로 3.1혁명을 일구어낸 이들은 다름 아닌 민중이다.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게 되었고, 군주제에서 공화정으로의 요구가 잇따랐다고 한다. 비로소 우리 민중은 근대인으로서 한 발 나아가게 된다.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게 아닌가. 


'촛불시위' 따위가 아닌 '촛불혁명'이라 불려야 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미시적으로, 그 현상 자체만 놓고 읽는 게 아닌 거시적으로 역사적으로 상황과 맥락을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35년>은 그런 면에서 탁월한 심미안과 역사적 맥락 읽기를 보여준다. 3.1혁명의 발견 하나로도 충분하다. 


균형잡힌 항일과 친일 소개


책은 항일과 친일 모두를 균형잡히게 소개한다. 일제의 만행 이상의 공분을 불러 일으키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만행, 그리고 그 만행 덕분에 어둠의 시대에 빛의 나날을 보내는 모습까지. 우린 그 모습에서 형용할 수 없는 기시감을 느낀다. 모든 시대에는 빛나는 존재들 때문에 어둠이 드리우는 때가 있는 것이다. 


반면, 어둠의 시대에 진정한 빛을 내는 이들이 있다. 모든 걸 바쳐 일제와 친일의 만행에 항전하고 독립에의 올곧은 길을 걸었던 독립운동가들, 그들이 내는 빛은 결코 어둠을 드리우지 않는다. 다만, 어두울수록 빛을 더 낼 뿐이다. 빛을 내기 위해선 자신의 몸을 한없이 태워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가장 뇌리에 남는 이들은 '의열단'이다.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에서 볼 수 있듯이, 민중이 혁명의 대본영이고 폭력이 혁명의 유일한 무기라며 모든 걸 내던지고 폭력 투쟁에의 길을 갔던 그들. 우린 영화 <아나키스트> <암살> <밀정> 등과 책 <아리랑>을 통해 이들을 접해왔다. <35년>에서 의열단은 가장 중요한 투쟁을 이끈다. 


이밖에 나의 마음을 끌어당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다 열거하지 못해 아쉽다. 책을 보면 소상하게 알려줄 것이고, 부록을 통해 훨씬 더 자세히 설명해줄 것이다. 내년이면 '파리강화회의' '고종 황제 승하' '2.8독립선언' '3.1혁명'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이 책은 그때를 맞춰 완간 예정인데,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란 무엇인지, 일제강점기란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하는 콘텐츠가 되길 바란다. 


35년 1~3권 세트 - 전3권 - 10점
박시백 지음/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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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혁명, 35년, 박시백, 역사, 의열단, 일제강점기, 친일, 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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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따위'가 주는 위대하고도 위대한 깨달음 <그을린 사랑>

오래된 리뷰 2017. 8. 1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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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


포스터의 홍보문구가 이토록 와닿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 영화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영화'이자 '한 여인의 위대한 여정'을 그렸다. ⓒ티캐스트


완벽에 가까운 영화를 보고 난 후 느끼는 참혹함을 아는가? 그때만큼은 다른 어떤 영화도 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한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이제 영화를 졸업해야 하는 건가?' 같은 황당무계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고 즐겨보는 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테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이 나에게 그런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일찍이 느껴보지 못한 당혹감인데, 다름 아닌 감독의 면을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드니 빌뇌브는 불과 서른한 살의 나이에 첫 장편영화를 내놓는다. 전 세계적인 호평 일색. 이어 내놓은 작품들도 마찬가지. 2010년에 내놓은 <그을린 사랑>부터 본격적으로 국내에도 소개된다. 하나 같이 명감독의 걸작들이다.


2010년대에 <프리즈너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컨택트>는 전 세계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고 슬슬 흥행에도 시동을 거는 느낌이다. 올해 말에는 고전 SF 명작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를 35년 만에 내놓아 정점을 맞이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그을린 사랑>이 준 충격과 전율은 무엇도 따라하지 못할 그 영화만의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역사와 전쟁과 운명의 아픔조차 품어내는 한 여인


일개 개인이 맞서기에는 너무나도 큰 것들, 역사와 전쟁과 운명. 그러나 이 영화에서 한 여인 나왈 마르완은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맞선다. 아니, 품는다. ⓒ티캐스트



영화의 시작은 황당하고, 이어지는 전개는 조금 지루하다. 진도가 팍팍 빠지진 않는 듯하다. 그럼에도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하는 건, 기막힌 연출력과 꽉 짜인 각본에 있는 것 같다.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 공증인에게 어머니 나왈 마르완의 유언을 듣는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와 그 존재도 모르는 형제를 찾아 자신의 편지를 전하라는 것. 그전까진 절대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유언이자 약속이었다. 쌍둥이는 어머니의 뿌리와 흔적을 찾아 중동으로 향한다. 


한편 나왈 마르완의 충격적 옛일을 들여다본다. 중동에서 기독교와 회교도의 전쟁이 한창인 1970년대, 기독교 집안의 딸 나왈, 회교도 집안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다. 나왈 집안의 오빠들은 절대 용서받지 못할 그 사랑의 댓가로 그를 죽이고 그녀 또한 죽이려 한다. 할머니의 중재로 살아난 나왈, 하지만 그녀는 그의 아기를 임신한 상태다. 그 또한 용서받지 못할 대죄, 결국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그녀는 아기를 반드시 찾을 것을 다짐하고 약속한다. 


도시에 있는 친척네로 보내진 나왈, 그곳에서 기독교도임에도 불구하고 회교도 난민들의 입장에 서서 활동한다. 이내 탈출해 목숨을 걸고 아기를 찾아나서는데, 끝내 찾지 못한다. 돌아오는 길, 회교도인 척 하고 차를 얻어탄다. 하지만 기독교도 민병대에 습격당해 몰살 당하고, 나왈은 다시 기독교도로 돌아와 홀로 살아남는다. 여기서 나왈은 결심한 듯하다. 기독교를 용서치 않겠노라고. 


계속되는 비극의 고리는 그녀를 놔주지 않는다. 이미 충분히 참혹한 비극이 그녀를 찾아 왔다고 생각했지만, 더욱 더 원형적이고 원초적이며 지옥불 같은 비극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파괴적인 역사와 전쟁의 소용돌이가 주는 아픔보다 그녀를 더욱 옥죄는 건 인간의 힘으론 털 끝 하나도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다. 그럼에도 우린 역사와 전쟁과 운명의 아픔조차 품어내는 한 여인을 볼 수 있다. 


사랑과 약속에서 비롯되는 비극의 고리 끊기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 분명한 비극을 마주하고, 사랑과 약속이라는 더없이 순결무구하고 위대한 것들과 맹세한 바를 지키고자 한다. ⓒ티캐스트



영화는 대번에 오이디푸스 신화를 우리 앞에 불러온다.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신탁 때문에 버려지는 오이디푸스.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아 이웃 나라의 왕자로 성장해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이 오이디푸스의 현현이라 하겠다. 


고로 이 영화를 역대급 반전이 주는 쾌감과 감동과 전율로 포장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 건,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하는 건 과정에서 보여주는 한 여인의 위대함 때문이리라. 오이디푸스가 아닌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에게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결과의 반전이 아닌, 과정의 서사에 천착해야 한다. 


그녀에게서 '비극의 고리 끊기'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형용할 수 없이 넓고 깊은 품과 지극한 자기 희생이 바탕되지 않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이 결단은, 영화 <똥파리>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 등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차원을 달리하는바, 인간의 존재가치와 존엄성 파괴의 한복판에서 이루어낸 업적이다. 


그 모든 건 태초의 '사랑'과 사랑에의 '약속'에서 비롯된다. 반드시 널 찾아내 내 사랑을 줄 것을 약속한 것이다. 중심에 이 두 요소를 자리잡고는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아간다. 일찍이 이런 사랑은 목격한 적이 없다. 이리도 숭악한 것들 사이에 피어난 이리도 숭고한 사랑의 꽃을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랑의 주체도 객체도 당사자도 되기 싫다. 너무 그을린 사랑은 너무 아프다. 


포용, 조화, 그리고 함께 하기


무조건적인 끌어안음, 그리고 역시 무조건적인 함께 하기. 이는 영웅이라면 할 수 없고, 무명의 개인에게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티캐스트



영화는 다름 아닌 인간 역사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치열한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혹자가 보기에는 가장 쓸데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종교'가 그것인데, 종교라고 하는 숭고한 존재가 내뿜는 잔혹한 파멸을 이해할 수 없다. 그 안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빨려들어가 허무하게 존재를 말살당한다. 나왈은 사랑과 약속에의 '약속'으로 종교마저 헤쳐나간다. 자신이 자신일 수 있게 하는 집안과 가문과 종족과 나라의 기반인 종교를 저멀리 치워버리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나마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그녀는 누군가에게는 입에도 올리기 싫은 비겁자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치를 떠는 가해자가 되며, 누군가에게는 가장 잔혹한 짓의 대상이 되는 피해자가 된다. 그렇게 될 걸 모를리 없지만, 이 역사와 전쟁의 한복판에 던져진 일개 개인으로서 '살아남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을 포함해 모든 걸 내려놓고 버림으로써 비로소 얻는 생존. 그리고 앞으로 얻게 될 날을 손꼽게 될 사랑. 


그녀가 궁극적인 얻고자 했던 건 무얼까.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건 무얼까. 나왈이 끝의 끝까지 손에 쥔 채 놓지 않았던 생존과 사랑과 약속으로 얻고자 했던 게 도대체 무엇일까. 포용, 조화, 함께 하기가 그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녀가 받아들였는데 어느 누가 받아들이지 않을 쏘냐. 그녀가 어울리고자 하는데 어느 누가 엇나가려 하겠는가. 그녀가 함께 하길 바라는데 어느 누가 등을 돌리겠는가 말이다. 


결국 영화는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종교 대립과 전쟁을 비판하는 방법론으로, 한 여인의 파란만장하고 기가 막히고 잔혹하기 그지 없는 인생사를 택한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종교와 자신 자체를 저버리면서까지 지켜낸 것을 빗대어, 종교 대립과 전쟁도 그만둘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영웅과는 거리가 한참 먼 일개 연약한 인간이 이토록 위대할 수 있구나를 말하며, 그런 인간도 행할 수 있는 포용과 조화와 함께 하기를 한 집단, 한 종족, 한 나라가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에 가장 가까운 영화 중 하나다. 영화 따위가 이런 깨달음을 주고 이런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걸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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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사랑, 드니 빌뇌브, 명작, 비극, 사랑, 약속, 역사, 운명, 위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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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근본은 변할 수 있나? '사랑'은 모든 걸 초월할 수 있나?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2.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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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우리를 찾아온 지 어언 10여 년이 되어가는 이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이제야 보게 되었다. ⓒ주)노바미디어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는 날, 소년이 얼굴을 찌푸리며 숨을 몰아쉬고는 토를 하며 울고 있다. 지나가던 여자가 토사물을 치우고 소년을 토닥인 후 자신의 집으로 이끈다. 그러곤 목욕을 하게끔 한다. 집에 돌아가 진찰해보니 성홍열이란다. 몇 달을 요양하고 감사의 말을 전하기 위해 여자의 집으로 향한다. 이후에도 계속 찾아간다. 훔쳐본다. 


소년 마이클에게는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여자 한나는? 어느 날 그녀는 마이클에게 일을 시키고는 목욕을 하게끔 한다. 그러고는 전라의 몸으로 그를 유혹한다. "이럴려고 온 거 아니야?" 마이클은 그럴려고 간 거였다. "당신, 정말 아름다워요." 둘은 사랑을 나눈다. 잠깐, 그들이 사랑을 나누기 전에 하는 것이 있다. 일종의 의식처럼 되었는데, '책 읽기'다. 마이클이 한나에게 책을 읽어준다.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는 오랫동안 다가가기 힘들었다. 30대 여성과 10대 남성의 성관계를 동반한 사랑이 가장 먼저 떠올랐기 때문인데,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이유다. 다 보고 나서야 하는 얘기지만, 사랑은 정녕 모든 걸 초월할 수 있다. 사랑은 모든 걸 다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넘어야 할 장애물이 엄청난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에서 그 장애물이라는 건 상상을 초월한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근본'은 변할 수 있는가?


나치 협력자라는 '근본', 변할 수 있을까?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한나의 경우는? 영화는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주)노바미디어



영화는 현재인 1995년에서 마이클이 과거 1950~60년대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한나와의 짧지만 강렬한 만남, 마이클에겐 첫경험이기에 그의 자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아니 변할 수 없는 근본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근본은 변할 수 있는가?


사무직으로 승진해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된 한나, 마이클에겐 말도 하지 않고 떠나게 되어 마이클은 충격에 휩싸인다. 시간이 흘러 법대생이 된 마이클, 실습의 일환으로 나치 전범 재판을 참관한다. 그곳에 떡 하니 앉아 있는 한나, 마이클은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인다. 그녀가 나치 협력자일 줄은... 하지만 충격은 계속된다. 


시종일관 계속되는 마이클의 충격, 그건 모두 한나에 의해서다. 그 이면에는 '나치'가 있다. 한나로 대변되는 나치 협력자, 즉 전쟁 세대와 마이클로 대변되는 전후 세대. 마이클 동료 중 한 명은 재판을 할 필요도 없이 그들을 총으로 쏴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이클은 한나를 사랑했던 바, 그런 식으로 그녀를 대할 수 없다. 사랑 앞에선 나치 범죄도 한낱 과거의 일일 뿐인가?


이제 답해야 한다. 근본은 변할 수 있는가? 나치 협력자라는 근본이 변할 수 있는가? 인류 최악의 범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 종류인가? 하지만 한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한 짓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시키는 대로 충실하게 시행했을 뿐... 악마인가, 충실한 일꾼인가, 의도된 연출인가, 한나 아렌트가 주창한 '악의 평범성'을 대변하는 인물인가. 답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죄'에 대해서


우린 계속 생각해야 한다. '죄'에 대해서 말이다. 영화에서는 나치의 죄다. 힘겹지만 후세가 지니고 가야 할 숙명. ⓒ주)노바미디어



인류 역사상 수많은 전쟁이 있었다. 수많은 인종학살, 즉 인종대청소도 있었다.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다. 나치는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역사상 가장 잔인한 인종학살을 일으켰다. 독일인이 가장 월등한 민족이고 유대인이야말로 없어져야 할 민족이라는 명목 하에. 


여기서 '많은 인종학살이 있었는데, 왜 나치만 갖고 그래?'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나아가 '수많은 악마 같은 이들도 떵떵거리며 살아가는데, 왜 한나만 갖고 그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건 그들의 죄를 단 1%도 다시 생각하게 하지 않는다. '죄'는 각각의 고유성을 지니고 있어 다른 어떤 '죄'와도 한통속으로 묶을 수 없는 것이다. 각각의 '죄'는 각각 처벌 받아야 한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이것과 일맥상통하진 않는다. 다만, '죄'를 생각할 때, 나치 전범이라는 사상 최악의 죄를 생각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다. 그렇지만 마이클의 동료가 말했듯이, 나치를 모조리 악마로 묘사하며 지상에서 없애버려 독일의 어두웠던 과거를 청산해버리는 것이 옳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죄'에 대한 심판도 거치지 않고 말이다. 심적으론 100% 동의한다.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다. 


하지만 전후 세대는 야만과 비이성의 시대를 딛고 이성의 시대를 열어 과거 청산에 기치를 내걸었다. 그 와중에 다시 야만과 비이성이 들고 일어선다면, 그들과 우리를 구분짓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역사상 그런 경우가 많았다. 하나 같이 안타까운 일만 초래했을 뿐이다. 제대로 된 심판이 필요한 바, 하지만 한나 같은 경우는 심히 어렵고 괴로울 수 있겠다. 끊임없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이 후세가 지니고 가야 할 필연적 숙제이자 사명이다. 


'사랑'과 '죄'의 메시지를 기가 막히게 조화시키다


영화는 '죄'에 대한 무거운 통찰과 함께 '사랑'을 얘기한다. '사랑은 모든 걸 초월한다'는 명제가 이를 관통한다. 과연 어떨까? ⓒ주)노바미디어


영화는 파릇파릇 즐거운 짧은 사랑이 지나고, 형용할 수 없는 아이러니와 무너짐의 시련을 지나, 기다림과 참회와 진정한 사랑의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지극한 사랑이야기, 그것이 이 영화의 실체라면 실체다.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나치'라는 존재가 워낙 강하기에 그곳으로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영화를 관통하는 한나의 속사정, 그건 '책 읽기'와 관련이 있다. 


사랑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어디까지인가. 인류 최악의 범죄보다 더 숨기고 싶은 사실은 무엇인가. 나치 협력이라는 근본은 절대불변의 악마적 소행인가. 내가 마이클이라면, 내가 한나라면? 내가 전쟁 세대라면, 내가 전후 세대라면? 심판하고 심판받고, 용서하고 용서받고, 책임을 나누고 책임을 받아들이고. 너무 받아들이기 힘들고 싫은 것들 뿐이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수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하나 같이 머리 아픈 것들. 그렇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들.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게 답이 아닐까. 이실직고 용서를 구하고, 깨끗하게 심판하고 받아들이고, '나'의 책임은 아니지만 '우리'의 책임으로 인지하고 책임을 나누고, 후대에게 이 모든 걸 거짓 없이 전달하고. 영화는 사랑이야기라는 실체와 더불어 또 다른 실체인 '역사 의식'을 일깨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적으로 각이 지지 않고 유려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라는 말과 '사랑은 모든 걸 초월한다'라는 말을, 둘이 맞붙을 때 상충되지 않을 수 없는 메시지들을,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조화시켜 놓는다. 한나가 자신의 치욕적 비밀과 최악의 범죄 사이에서 고민하고, 마이클이 법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한 결과였다. 마이클은 진정 한나를 사랑했고, 한나는 치욕적 비밀을 지킨 끝에 죗값을 받았다. 지극한 사랑, 비밀의 사랑적 승화, 합당한듯 합당하지 않은듯한 죗값. '죄'에 대해선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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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저서를 나열하며 과학의 역사를 파헤치다 <문제적 과학책>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6. 9.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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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제적 과학책>


<문제적 과학책> 표지 ⓒ윌북



역사, 그중에서도 인물과 사건, 관계와 연도를 좋아하다 보니 어떤 것에 관심을 갖을 때 그런 것들이 눈에 보인다. 음악, 미술, 스포츠, 과학 등. 클래식은 잘 안 들어도 클래식의 역사는 좋아하고, 그림은 잘 못 그려도 미술의 역사는 어느 정도 알며, 운동은 잘 못해도 스포츠의 역사에는 관심이 많다. 과학? 과학은 정말 젬병이라, 한 줄 이해하기도 벅차지만 과학의 역사는 무진장 좋아라 한다. 


책도 좋아하는지라, 해당 분야의 고전들을 많이 알고 있다. 밝히기 부끄럽지만, 역시 알고 있을 뿐 정작 읽은 건 많지 않다. 위에 제시한 것 중에서 음악, 미술, 스포츠 등은 굳이 책까지 필요하진 않은 분야들이다. 반면 과학은 조금 다르다. 논문 형태로 이론을 주장하고 전달해야 한다. 논문이 곧 책이 되는지라, 과학사를 대표하는 몇몇 책들을 익히 알고 있다. 물론 소수의 책은 직접 읽기도 했고. 


생각나는 책들을 읊어보자면,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제임스 D. 왓슨의 <이중 나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 등. 은근히 많다. 이중에 읽은 건? 뒷 부분의 2~3권 정도. 


위대한 저서를 나열하며 과학의 역사를 파헤치다


과학은 잘 모르고 관심도 없지만 역사와 책을 좋아하는 나와 같은 인간을 위한 맞춤 도서가 나왔다. <문제적 과학책>(윌북). 정말 짜맞춘 듯한 기획이다. 기원전 몇 백년에 나온 고전 중에 고전부터 불과 30여 년 전에 나온 신고전까지 36권 36인을 중심으로 다뤘다. 인류의 과학사가 그들만으로 이뤄지지는 않았을 터, 그 전후로 그보다 많은 이들과 저서도 다룬다. 


이 책은 다분히 비과학적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과학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역할을 한 위대한 이들과 저서를 나열하며 그야말로 과학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과학 이론을 주장, 설파하거나 중구난방 흩어진 과학 이론들을 집대성 하는 '과학적' 작업이 아니라, 지극히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과학의 역사. 과학사. 


역사의 소중함을 설파하면서도 정작 '역사'가 갖는 어려움 때문에 소홀히 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아무래도 지나간 것들이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과학의 경우, 지나간 것들 중 상당 부분이 '틀리다'고 판명나곤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거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틀린 것이고, 뉴턴의 법칙조차 계속해서 도전을 받는다. 오랫동안 절대적 진리로 군림한 베이컨적 사고 방식도 예외가 아니다. 언젠가는 아인슈타인의 이론도 깨질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획기적이다. 과학사를 아주 쉽게 빨리 훑을 수 있다. 특히 책을 완전히 다 읽지 않아도, 과학사의 중추에 해당하는 책들과 핵심적인 설명만 보아도 된다는 게 엄청나다. 물론 과학사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기본 입문 이상이다. 


'종합' 이론의 전략, 그 앞엔 '기원'이 있었다


책을 보다 보면, '종합'이라는 게 눈에 띈다. 현대로 올수록 그 단어가 갖는 의미가 강렬해지는데, 경영 전략 용어로 '2등 전략'이 생각나게 한다. 우리가 흔히 세상을 완전히 뒤바꿀 만한 발견을 '코페르니쿠스적 발견'이라고 하는데, 그런 그조차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이 세상의 중심이다'라는 견해를 내세운 첫 번째 인물이 아니다. 그는 여기저기 흩어지고 제대로 중심이 잡혀 있지 않은 주장과 이론들을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식의 집대성 혹은 종합은 뒤로 갈수록 많아 진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들의 책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언급한 이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 등이 그렇다. 이밖에도 많지만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정도로 충분한 베스트셀러들이다. 20세기 과학사를 대표하는 이들과 저서들은 위대한 선배들의 이론들을 하나의 거대 설명으로 엮어, '말쑥한 제목'과 '유려한 문장'과 '생생한 비유'로 쓰여 대중들을 사로 잡았다. 


우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너무도 잘 알지만, 그가 있기까지 J. B. S 홀데인이나 윌리엄 D. 해밀턴, 조지 로버트 프라이스는 잘 모른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는 빅뱅 이론뿐만 아니라 과학사, 나아가 책의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책이지만, 스티븐 와인버그가 없었으면 절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자신이 누구보다 훌륭했다는 것이 있지만, '기원'은 아니었던 바 기원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하겠다. 접하는 이들도 말이다. 


'앎'에서 오는 행복, 그럼에도 불편한 '과학' 책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비록 과학 그 자체라고 할 순 없지만 과학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인데, 내가 과학을 전혀 모르고 그래서 관심도 거의 없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거다. '앎'에서 오는 행복은 특별하고, 모르는 데에서 오는 앎은 더더욱 특별하다. 또한 앎이라는 게 과학과 형제가 아닌가. 


다만, 다분히 서양 중심적이라는 걸 알아야 하겠다. 원제에서 알 수 있는데, 'The Story of Western Science'다. 개인적으로 동양에도 과학이라는 게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로 동양 과학에 문외한인데, 동양 과학은 전혀 실려 있지 않은 게 아쉬웠다. 어쩌면 함께 싣는 게 불가능했을 거다. 사고 체계가 달랐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원제는 제대로 된 것이고,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책 36권'이 좀 걸린다. 서양만이 과학을 했고, 세상을 바꿨다는 말인지...


책을 읽는 내내 역시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비전문가를 위한 과학사 책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전혀 알 수 없는 말들의 연속이었던 거다. 지은이와 옮긴이가 정말 최선을 다해 쉽게 풀고 추가적으로 설명했음에도 말이다. 과학 책들이 그 어느 때보다 대중에게 퍼지고 있는 요즘 딱 알맞은 책이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이 책 또한 그 시류와 함께 한계를 빗겨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좋은 시도이고 계속 이어나가야만 하는 시도이고 언젠가는 한계를 뛰어넘을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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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과학책, 기원, 리처드 도킨스, 문제적 과학책, 서양, 스티븐 호킹, 앎, 역사,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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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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