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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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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하면서도 비추천하는 제2차 세계대전 배경 시리즈 <더 리버레이터>(2) 2020.11.27
  • '진정한 사랑'을 찾아 달로 향한 소녀의 이야기 <오버 더 문> 2020.11.02
  • 아론 소킨이 재창조한 최악의 '시카고 7 재판' 실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2020.10.26
  • 대한민국 결않못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2) 2020.10.16
  • 올곧은 신념을 입체적 에피소드에 담아낸 수작 로드무비 <낙엽귀근> 2020.10.12
  • 엎친 데 덮친 격, 한정된 공간의 다섯 사람의 핏빛 스릴러 <팡파레> 2020.08.12
  • 내외향의 완벽한 비쥬얼도 상쇄하지 못할, 스토리와 캐릭터의 아쉬움 <사냥의 시간> 2020.04.29
  • '신카이 마코토' 이름 하나로 본 일본 애니메이션의 현재 <날씨의 아이> 2019.11.06
  • 위대한 소설을 잘 살리지 못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 2019.08.23
  • 운명의 피해자들이 운명의 피해지 갤버스턴으로... <갤버스턴> 2019.07.22

추천하면서도 비추천하는 제2차 세계대전 배경 시리즈 <더 리버레이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2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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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더 리버레이터: 500일의 오디세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리버레이터: 500일의 오디세이> 포스터. ⓒ넷플릭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3년, 미국 오클라호마 소재의 한 부대가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상륙해 나치가 점령한 유럽을 관통하는 혹독한 여정을 시작한다. '선더버즈'로 불린 이 부대는 멕시코계 미국인, 아메리카 원주민, 카우보이로 구성되었는데, 그들은 정작 미국 본토에선 같은 바에서 어울려 술도 마실 수 없었다. 하지만, 전쟁 중엔 서로의 목숨을 내맡기고 구하는 형용하기 힘든 전우애로 똘똘 뭉쳤다. 


2년 전 오클라호마 포트 실, '해결사'라 불리는 스파크스 소위는 J중대를 맡게 된다. J중대의 J는 'jail'의 J였다. 즉, 군대 내 교도소에 있는 군인들을 한데 모아 훈련시켜 전쟁에 나설 수 있게 하라는 것이었다. 스파크스는 과거는 물론 인종도 상관하지 않고 차별 없이 오직 실력으로만 판단할 것을 천명하며 문제아들을 한데 모아 출중한 실력자들로 길러낸다. 그리고 1943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상륙해 500일 동안 나치 점령 하의 유럽을 관통하며 무훈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스파크스는 전투 중 크지만 목숨에 지장은 없는 '100만 불짜리 부상'을 입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지만, 무단 탈영을 하여 부대원들이 있는 최전방으로 향한다. 하지만, 필사적인 독일군에 맞선 안치오 전투에서 대부분의 부대원을 잃고 절망한다. 'E중대'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병사들을 모아 다시 일어서는 스파크스, 꿀맛 같은 휴식과 지옥 같은 임무가 그들을 기다리는데... 스파크스와 부대원들은 과연 무사히 기나긴 여정을 마칠 수 있을까?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 <더 리버레이터: 500일의 오디세이>(이하, '더 리버레이터')는 알렉스 커쇼의 동명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 제2차 세계대전 밀리터리물이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특이한 외형이 눈에 띄는데, 실사인 듯 애니메이션인 듯 한눈에 구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계속 눈이 가는 게,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트리오스코프 스튜디오'의 특허기술이라고 하는데,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실사로 촬영 후 애니메이션 랜더링을 입힌 것이라고 한다. 전쟁물이라서 더욱 그런 것 같은데, 마치 게임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하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가장 유명한 FPS게임인 <콜 오브 듀티> 시리즈가 연상된다. 


후술하겠지만, 스토리나 메시지 들이 생각보다 현찮은 반면 보고 즐기는 맛이 나쁘지 않다. 전쟁 영화를 즐겨 봤던 이들에겐 꽤 괜찮은 선물 같은 콘텐츠라고 할 만하다. 필자 또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전쟁 영화를 많이 봐 와서 왠만큼 색다르지 않는 이상 큰 감흥을 받진 못하는데, 이 작품은 확실히 남다름을 자랑했다.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게 아닌가도 싶다. 


허술하고 아쉬운 부분들


작품이 내보이고자 하는 건 의외로 허술하다. '의외'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작품 초반 '미국에선 같은 바에서 어울려 술도 마실 수 없는' 인종들이자 범죄 관련의 문제가 다분한 이들을 한데 모아 캐릭터성 확실하고 메시지도 확실한 부대를 만들지만 정작 큰 활약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캐릭터성 확실한 이들의 개성을 제대로 내보이지도 못했고 말이다. 허술하기도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전쟁 '영화'가 아닌 '시리즈'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데,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제목 그대로 전우애를 중심에 두고는 전장을 함께 보냈던 이들의 고충이 절절하게 드러나는 반면 이 작품은 그러지 못했다. '그런 것처럼' 보이게 시작했음에도 말이다. 역시 허술하기도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겠다. 


대신, 작품은 전우애로 가득 찬 신념을 두른 채 자신의 목숨보다 부대원들의 목숨을 더 소중히 여기는 스파크스의 인간애 어린 고충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전쟁을 다룸에 있어 '영웅' 이야기가 얼마나 위험하고 또 하찮은지 수많은 전쟁 콘텐츠로 잘 알고 있는 필자로선, 이런 류의 이야기와 메시지는 성에 차지 않는 게 사실이다. 원래 8부작으로 기획된 것이 제작과정에서 4부작으로 줄여졌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스토리나 캐릭터나 메시지나 스케일 등의 면에서 '수박 겉 핥기' 정도로 다루고 보여 주는 게 너무 눈에 띄었다. 


평이하게 괜찮은 부분들


그런가 하면,  비(非) 밀리터리물 팬의 입장에선 <더 리버레이터>가 평이하게 잘 만들어진 작품일 테다. 한 에피소드 당 45분 정도의 4부작으로 길다면 길지만 시리즈로선 짧은 편인 러닝타임으로, 영웅적 개인의 여정을 중심에 두고 소규모와 대규모 전투를 오가는 액션과 실패, 좌절, 성공이 이어지는 서사와 아군과 적군을 가로지르는 감동 어린 전우애와 전쟁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전쟁의 이유를 고찰하는 장면이 성실하게 배치되어 있다. 


전쟁을 다루는 실사 콘텐츠가 어쩔 수 없이 보여줘야 할 잔인한 장면들이 이 작품에선 상당히 중화되어 있기로서니 전쟁 액션에 바라는 기대에 못 미치지도 않으니, 전쟁 콘텐츠 초심자들에겐 안성맞춤인 작품이라 하겠다. 평론적으론 호평이나 혹평을 논할 가치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나, 대중적으론 이만큼 볼 만한 작품도 없지 않나 싶다. 그러니, 한편으론 비추천하면서도 한편으론 추천한다. 


전쟁 콘텐츠가 매해 꾸준히 우리를 찾아오는 건, 전쟁의 무용성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거기에서 영웅적 이야기를 끄집어 내려 한다고 해도 말이다. 결국, 전쟁은 정녕 모두를 고통으로 밀어 넣는 게 아닌가. 이 작품을 보고서도 부디 궁극적으론 그런 깨달음을 얻어 가길 바란다. 하지만, 전쟁의 무용성 말고도 무용한 전쟁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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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더 리버레이터: 500일의 오디세이, 실사, 애니메이션, 영웅, 전우애, 전쟁 콘텐츠, 전투, 제2차 세계대전, 캐릭터
  • BlogIcon 결정해주는 남자
    2020.11.27 18:02 신고

    구독과 하트 누르고 갑니다
    맞구독 부탁드립니다 자주 관심 가질게용 ㅎ

    • BlogIcon singenv
      2020.11.27 19:40 신고

      감사합니다! 맞구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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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을 찾아 달로 향한 소녀의 이야기 <오버 더 문>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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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오버 더 문>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오버 더 문> 포스터. ⓒ넷플릭스



'글렌 킨'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인어공주>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글렌 킨은 인어공주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월트 디즈니가 설립한 미국 최고의 종합예술대학인 '캘리포니아 예술학교(칼아츠)'를 졸업하고 1974년 디즈니에 입사해 10년 후 잠시 프리랜서 생활을 한 것 빼곤 40년 가까이 일하며 명성을 날렸다. 


인어공주뿐만 아니라 <미녀와 야수> <알라딘> <포카 혼타스> <타잔> <보물성> 그리고 <라푼젤>에 깊이 관여했다. 2012년 디즈니에서 정식으로 퇴사한 후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종종 단편 애니메이션도 만들었는데, 2017년 지금은 고인이 된 미국 농구의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의 은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디어 바스켓볼>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감독으로 내정되어 있었다가 건강 문제로 하차했던 <라푼젤> 당시의 아쉬움을 풀어 줄 장편 애니메이션 연출 데뷔작 <오버 더 문>이 2020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찾아왔다. 그의 화려한 경력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이야기와 메시지와 캐릭터와 색감으로 우리를 찾아왔을까. 


달의 여신을 찾아 달로 향하는 소녀


소녀 페이페이는 월병 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님과 함께 자유롭고 즐겁게 살아간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엄마가 들려 주는 '항아' 이야기이다. 옛날 옛적에 아름다운 항아와 멋진 후예가 사랑을 했는데, 불로 선약을 먹은 후 헤어져 항아는 하늘로 떠나 달 너머로 갔고 후예는 남게 되었다. 항아는 달에서 옥토끼와 함께 후예를 기다리지만 후예는 이미 생을 마친 지 오래다. 


시간이 흘러 페이페이의 엄마는 급격히 진행된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부녀가 함께 지낸 지 4년, 아빠는 재혼을 할 요량으로 여자를 데려와 페이페이에게 소개시킨다. 그녀에겐 페이페이보다 조금 어린 아들 친이 있었다. 엄마를 떠나보낼 수 없었던 페이페이는 혼란에 빠지고, 어느 날 달을 바라보며 엄마를 생각하다가 항아와 후예의 이야기에 생각이 가 닿는다. 항아가 후예를 생각하고 기다리는 것처럼 엄마도 아빠를 생각할 텐데 아빠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페이페이는 항아가 실제한다는 걸 아빠에게 보여 주면 아빠도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페이페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현실에서 항아가 현현하여 부르는 듯한 황새의 모습에 용기를 얻어 직접 로켓 우주선을 만들기로 한다. 엄마한테 신화적 이야기만 듣고 아빠한텐 과학적 이야기를 듣지 않던 그녀가 말이다. 피나는 노력 끝에 로켓 우주선을 달로 출발시킨 페이페이 그리고 친과 그들의 반려동물들, 하지만 여지없이 추락하는데... 달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와 그들을 인도한다. 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항아, 과연 항아와 같이 찍은 사진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항아도 원하는 게 있을 것 같은데?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


<오버 더 문>은 중국 고대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 이야기를 모티브로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애니메이션이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고찰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데, 그리 와닿지는 않는 것 같다.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말이다.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진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헤어진 항아와 후예 그리고 페이페이의 엄마와 아빠,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의 사랑은 영원하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이다. 페이페이가 달까지 가서 나름 혹독한 모험을 겪고 난 후 얻은 결론이기도 하다. 


문제는,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페이페이에 있다. 항아와 후예 둘만의 사랑이라면 어떻든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엄마와 아빠 사이에 페이페이라는 존재가 있지 않은가. 가령 아빠는 엄마를 영원히 사랑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 행복할 자격이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페이페이의 의견이나 바람을 듣지 않고 아빠 마음대로 할 자격은 없지 않은가. 페이페이가 완연한 어른이 된 이후라면 모를까... 신화 이야기와 현실 이야기를 잇는 건 좋은 시도이지만, 잘못 이었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결국, 페이페이도 엄마를 영원히 사랑하지만 새로운 가족과 함께 행복할 거라는 결론을 얻을 텐데 그 모양새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좋게좋게 하는 게 좋은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배려를 찾아보기 힘들거니와 배려가 없으면 언젠가 탈이 나기 마련이다. 현실적으로 젊은 아빠와 어린 딸만 남아 평생 살아가기는 힘들기에 언젠가 새로운 가족을 들여야 할 테지만, 이런 식은 아니라는 게 이 영화를 보며 느낀 바다. 


신화적 상상력과 과학적 상상력의 조화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영화를 기술적으로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캐릭터와 색감 등도 가장 중요한 요소일 테니 말이다. <오버 더 문>은 그런 면에서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는 작품이다. 달을 형광색에 기반한 화려한 색의 세계로 표현한 게 신의 한수였다. 페이페이, 항아 등 주요 캐릭터들이 기억에 남기 힘든 수준인 반면, 그들을 둘러싼 세계가 주는 영감이 크게 다가왔다. 또한 오히려 주요 캐릭터들이 아닌 영화를 끌고 가는 부 캐릭터들이 더 큰 족적을 남긴다. '귀여움'으로 중무장한 캐릭터들 말이다. 


그런가 하면, 은근히 아기자기한 액션들이 자주 나와 가슴보다 머리를 자극시켜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 아무래도 '진정한 사랑'이라는 소재와 주제를 내보이고 있는 만큼 가슴을 울리는 에피소드가 주를 이룰 만한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신화적 상상력과 과학적 상상력이 조화를 잘 이루었다고 평하고 싶다. 달로 향하게 과정에서의 현실적 이야기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랑이 주요하게 작용하는 작품인 만큼 어른이 볼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작 그러지 못했다. 외형상 다분히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어른에게도 충분히 통용될 만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하기에도 애매모호한 점이 많았다. 어른이 보기엔 부족한 점이 많을 텐데, 어린이가 보기엔 부족한 점 없는 사랑 이야기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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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글렌 킨, 달, 디즈니, 사랑, 아쉬움, 오버 더 문, 인어공주, 중국 신화, 캐릭터, 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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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소킨이 재창조한 최악의 '시카고 7 재판' 실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0. 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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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포스터. ⓒ넷플릭스



할리우드에 많고 많은 작가들이 활동하지만, '아론 소킨'만큼 유명한 이를 찾기도 힘들다. 각본가 중에 이름만 대도 전 세계적으로 알 만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매카시즘 광풍에 엮여 10개가 넘는 필명으로 활동한 할리우드 전설의 각본가 '달튼 트럼보' 정도가 생각날 뿐이다. 그의 일대기는 영화로도 두 번 만들어져 일반 대중에게 보다 더 잘 알려질 수 있었다. 


한편, 아론 소킨 하면 떠오르는 작품들이 1990년대부터 끊임없이 있다. 그가 손을 댄 것들이 대부분 유명하기에 유명한 것들만 언급해도 리스트가 꽤나 길다. 연극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성공적으로 영화 각본 데뷔를 한 <어 퓨 굿 맨>을 시작으로, <찰리 윌슨의 전쟁> <소셜 네트워크> <머니볼> <스티브 잡스> 등의 영화와 최고의 미드로 손꼽히는<웨스트 윙>과 <뉴스룸> 등의 TV시리즈까지 섭렵했거니와 2017년에는 <몰리스 게임>으로 장편 영화 연출도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 넷플릭스와 손잡고 또 하나의 '아론 소킨 표' 영화 하나를 들고 왔다. 이번에도 지난 <몰리스 게임>처럼 각본은 물론 연출까지 하였다. 19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 때 주요 시위자로 기소되어 재판받은 '시카고 7'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이다. 제목 그대로, '시카고 7의 재판'이 시작과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론 소킨이 영화계로 진출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 재판을 다룬 영화 <어 퓨 굿 맨>이었다는 걸 상기하게 된다. 


19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 후...


1965년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미국 전역에서 징집 계획에 의한 추첨으로 젊은이들을 뽑아간다. 대학 캠퍼스에선 저항운동이 일어난다. 1968년 4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 당하고 전국적으로 애도와 시위가 일어난다. 이를 막고자 의회는 '랩 브라운법'을 통과시킨다. 이는 폭력 선동을 목적으로 주 경계 횡단을 금지시키는 법이었다. 같은 해 6월에는 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였던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된다. 8월에는 시카고에서 민주당 전당대회가 예고되어 있었다. 시카고 시장은 반애국적 조직의 집회 허가를 거절한다. 


그런 와중에도 1968년 8월 시카고에서의 민주당 전당대회에 전국에서 수많은 '선동가'가 몰린다. 그들의 목적은 반전과 종전이었다. 이후 당연한 수순처럼 시위대와 경찰·군대가 충돌하고 혼란에 빠진다. 11월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에 선출되고, 이듬해 1969년 3월 8명의 운동가가 랩 브라운법에 따라 기소된다. 그들은 민주사회학생회의 톰 헤이든과 레니 데이비스, 청년국제당 소속의 애비 호프먼과 제리 루빈, 베트남전 종식을 위한 국가동원위원회 설립자 데이비드 델린저, 존 프로인스와 리 와이너 그리고 흑표당 의장 보비 실이었다. 


바뀐 정부에 따라 역시 새롭게 들어선 법무장관 존 미첼이 검사장의 추천을 받아 최고의 실력을 갖춘 검사 리처드 슐츠에게 10년 형을 때려 버리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그들은 큰 틀에서 반전과 종전이라는 목적만 같을 뿐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비슷해 보이지만 각자 확고한 신념과 방향을 지니고 있어 한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다. 또한, 존 프로인스와 리 와이너는 운동가라고 하기엔 뭣한 이들이었고 보비 실은 흑인 자경단인 흑표당 의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 시위 당시 4시간만 머물렀을 뿐인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1969년 9월 재판은 단독 판사 줄리어스 호프먼의 주재 하에 진행된다. 그런데 재판이 다름 아닌 호프먼 판사에 의해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아론 소킨 표 '시카고 7 재판'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았던 재판인 '시카고 7의 재판' 실화를 바탕으로 다분히 아론 소킨 스타일로 재탄생된 영화이다. 그가 그동안 선보였던 유명한 명작들의 특성을 고스란히 가져온 바, 물 흘러가듯 군더더기 없이 매끄러운 스토리를 기본으로 장착하곤 개성과 신념을 두루 갖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극을 이끈다. 거의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완벽한 '틀'을 마련해 두고 그때그때 넣는 것 같다. 통속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고 할까. 그의 작품은 통속이 먼저이지 결코 예술이 먼저인 것 같진 않다. 


아론 소킨의 작품들이 논란과 논쟁을 겉으로 내보이지 않고 안으로 수렴시켜 '뭔가 굉장한 게 있을 것 같아' '뭔가 굉장한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 하는 느낌을 들게 하는데, 이 영화 또한 다르지 않다. 1960년대 후반 당시 미국 내의 얽히고설킨 복잡다단한 정치적 역학 관계를 안으로 수렴시켜, 꽤나 어렵고 자칫 지루한 듯하지만 '있어 보이고' '굉장한 듯'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공화당 아닌 민주당 대통령 치하에서 베트남전쟁에 개입하고 유명 진보 인사들이 암살당하고 반전 시위를 무력화 시키려 한다. 미국 정치판은 공화당과 민주당뿐이어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진보'의 민주당과 '보수'의 공화당의 설명하기 힘든 관계가 다양한 희생양을 양산 시키는 것이다. 반전과 종전의 신념과 정치적 방향이 설 곳은 당시엔 없지 않았을까. 


와중에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오히려 반전과 종전을 외쳤으니 아이러니하다. 영화 속 주요인물인 민주사회학생회의 톰 헤이든과 레니 데이브스처럼 말이다. 혼란과 압박과 모순 속에서 반전과 종전이라는 신념 하나를 붙잡고 나아가야 했으니, 그러면서도 나중을 위해 '이기는 선거'에 걸맞는 이미지를 버릴 수 없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싶다. 


시대라는 빌런, 사람이라는 빌런


영화는 공개되자마자 몇몇 타 영화와 함께 내년 아카데미 주요 부문 후보작 예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동안의 모양새를 돌이켜 보면 그 예상이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만큼,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또 하나의 할리우드적 명작의 반열에 올라갈 게 분명하다. 아니, 올라갔다고 하는 게 맞겠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아론 소킨의 각본 작품뿐만 아니라 연출 작품도 기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은 10년도 더 전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아론 소킨에게 각본을 의뢰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에 아론 소킨이 각본 초안을 다시 보냈는데, 미국작가조합 파업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잊혔다가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대선 '사건' 이후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 시대의 조류가 50여 년 전 시대의 조류와 다름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테다. 


시대도 그 자체로 빌런 역할을 하지만, 이 영화엔 단독으로 재판을 주재해 피고뿐만 아니라 원고의 이야기도 또 법으로 지켜져야 할 사항들에도 전혀 관심이 없고 '내가 곧 법이다'라는 마인드를 가진 줄리어드 호프먼 판사가 빌런으로 나온다. 그는 정치 역학으로도 시대 조류로도 설명할 수 없는, 빙퉁그러진 신념으로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사람의 전형이다. 그를 보고 있노라면, 답답과 황당과 분노의 심정들을 느낀다. 


국가와 사회와 시대는 누가 만들고 이끄는가. 그것들은 스스로 작동하지 않을 테다. 다름 아닌 '사람'이 만들고 작동시켜 이끄는 것이다. 하여, 사회와 시대의 이야기를 대하고 보고 느끼는 데에 사람이 없어선 안 된다. 아론 소킨은 그 지점을 정확히 알아채 포착하여 세련되게 드러 낼 줄 안다. 그가 창조·재창조한 캐릭터에 힘이 있는 이유이다. 우리가 그의 작품을 믿고 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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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결않못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20. 10. 1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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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 표지. ⓒ유노북스



작년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웹툰 형식의 에세이를 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게요. 해 본 적 없는 기획과 편집 그리고 출간이기에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습니다. 검색하는 채널과 대상은 명확했습니다. '네이버 웹툰 베스트도전'(이하, '베스트도전')과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만을 들여다보며 일상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작품만 선별해 연락을 취했죠. 출간 과정 중 가장 어렵고 지지부진하고 재미없을 기획이 그때 만큼 재밌던 적이 없습니다. 


네이버 웹툰이 아닌 베스트도전만을 들여다본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하나는, '가능성'이었죠. 네이버 웹툰은 이미 타 출판사에서 줄을 서고 기다리며 빠르게 계약했을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계약과 기획 등 출간 과정도 복잡할 것이었습니다. 하여, 작가 개인이 직접 올리되 도전만화에서 승격되어 검증된 베스트도전 작품들만 노렸던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작가주의'였습니다. 네이버 웹툰은 네이버에서 관리하기에 작가의 견해와 시선만큼 네이버의 입김이 들어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반면 개인이 직접 관리하는 베스트도전은 작가만의 고유한 글과 그림이 생생히 살아 있을 거라고 판단했고요. 혹자는 베스트도전을 네이버 웹툰의 하부리그, 2부 리그라고 말하겠지만 전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영화계로 따지면,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차이라고 할까요? 


인스타에서도 소위 '잘 나가는' 작가들의 작품을 들여다보았더니, 은근 많은 수가 베스트도전을 동시에 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징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선별하고 연락하고 만나고 기획하여 내부 결재를 받아 계약까지 간 작품이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입니다. 누군가한테는 갸우뚱하고 누군가한테는 산뜻하고 누군한테는 뼈때리는 제목으로, 많은 분께 가 닿을 수 있을 것 같았죠. 


쉬울 듯 결코 쉽지 않았던 단행본화 과정


올해 초 계약할 당시만 해도 단행본으로 낼 만한 분량의 연재물이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하여, 나름 정교하게 단행본 목표 쪽수를 상정하고 연재물의 특성을 고려해 어느 정도 더 연재를 한 후 단행본 작업에 들어가면 좋을지 계산했죠. 올해 여름까지 열심히 연재를 마무리한 후 가을에 출간하기로 스케줄을 짰습니다. 큰 틀에서 스케줄에 변동 없이 잘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름 쉬울 거라 생각했던 단행본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느 면에서는 텍스트 작업보다 어려웠죠. 문제는 '교정'이었습니다. 텍스트라면 저자와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손쉽게 소통하며 교정을 진행할 수 있죠. 하지만, 저자만의 그림과 그에 따른 작가주의적 글이 합세한 웹툰 형식이다 보니 디자이너는 사실상 빠지고 저자와 편집자가 직접적으로 교정 과정을 함께해야 했습니다. 즉, 기존의 저자-편집자 간의 교정 시행과 편집자-디자이너 간의 기술적 반영에서 저자-편집자 간의 교정 시행과 기술적 반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후 다시 한 번 디자이너의 최종 반영이 추가되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복잡했습니다. 


작업을 마무리해 놓고 보니 값진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회일 텐데, 웹툰 형식의 에세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만화책'이라고 할 만한 책을 내 놓았으니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책 자체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만화책을 가장 좋아라 합니다. 그렇지만, 회사 차원에서 그리고 실무자들의 협업 차원에서 만화 형식의 책을 자신있게 또 진행하기란 쉽지 않을 듯합니다. 그래서 더 특별한 마음이 들었던 게 아닐까도 싶네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요. 



<결않못>의 롤모델이었던 <막돼먹은 영애씨>


이 책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는 보시다시피 제목이 전부 혹은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만한데, 한 번 보거나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계속 그 저의를 생각해 보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왜 결혼을 못하게 된 걸까? 주인공 예민희씨는 30대 후반의 여성으로, 흔히들 말하는 '노처녀' 혹은 '올드미스'죠.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고 바뀌고 있다지만 명명백백하게 존재하는 '편견'과 '관습' 때문일까요? 작품 속에서 민희씨는 그런 것들 때문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자신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 때문이라고 해요. 


민희씨는 그저 남들처럼 남들만큼 열심히 치열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또 살고 싶을 뿐인데 온갖 생각들과 고개를 치켜 드는 다양한 모습의 '나' 때문에 혼란스럽고 고민이 많은 듯해요. 그 또한 누구나의 모습이겠죠. 이 책의 장점이, 그런 생각들을 가감없이 여과없이 드러내면서도 너무 자조적으로만 빠지지 않고 일상에 두 발을 굳게 서 있으며 은근히 단단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에요. 기본적으로 깔린 은은한 유머와 때때로 보이는 호소력 짙은 페이소스는 덤이고요. 


이 책을 기획할 때 롤모델이 될 콘텐츠를 상정했었습니다. 다름 아닌, 제가 가장 좋아라 하는 드라마 시리즈 중 하나인 <막돼먹은 영애씨>죠. 주인공을 관찰하는 듯한 시점, 리얼 다큐로 보여 주는 일상, 30대 여성의 고군분투, 어쩔 수 없이 삶의 중심이 도는 결혼까지 비슷한 점이 많아 보였습니다. 다만, <막돼먹은 영애씨>는 전체적인 기조가 좀 더 전투적이거니와 회사에서의 이야기가 중심이라면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는 평범한 일상을 보여 주는 게 중심을 이루고 있죠. 막상 책을 내 놓고 보니 기획과는 달라진 것 같네요. 정확히는, 기획이 아닌 머릿속으로 그렸던 상일 것입니다. 


'공감'과 '캐릭터'를 자신있게 내 놓다


이 책에서 가장 자신있게 내 놓을 수 있는 게 있다면, 두 가지 '공감'과 '캐릭터'일 것입니다. 둘을 이어 '공감 가는 캐릭터'라고 해도 무방하겠지만, 30대 후반 미혼 여성의 현실적 공감뿐만 아니라 기혼자들에게도 추억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거라 생각합니다. 주인공 예민희씨가 스스로만을 천착해 자신 안으로 끊임없이 파고드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습니다. 약한 듯 단단한 그녀는 닫혀 있지 않습니다. 


아울러 1980년대~2020년대를 두루두루 아우르는 시대적 공감도 함께합니다. 옛날 이야기를 촌스럽지 않게 '라떼는 말이야~' 같은 느낌이지 않게 풀어 내는 데 수준급의 실력을 뽐내고 있고,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를 오그라들지 않게 자조적이지 않게 풀어 내는 데 기가 막힌 실력을 뽐내고 있죠. 찾아보면 볼수록 디테일하고 깨알같은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캐릭터에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작가 자신을 투영한 듯하면서도 또 일상이 중심이라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주인공 예민희씨와 주변인물들은 우리네와 1도 다르지 않은 면면을 보이거니와 그 어디서도 볼 수 있는 누구나이기 때문입니다. 공감을 넘어선 감정이입까지 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죠. 


깔깔 거리며 속시원하게 웃기에도 꺼이꺼이 슬프게 울기에도 여의치 않은 이 작품, 애매모호할 것 같지만 그런 게 또 인생이 아닌가 생각하면 하등 이상할 게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저 피식피식 얉게 웃고 울먹울먹 희미하게 울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 책은 거기까지는 보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 - 10점
정변 지음/유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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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않못,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 공감, 단행본, 막돼먹은 영애씨, 연재, 웹툰, 캐릭터
  • 춘복
    2020.10.18 19:00

    2014년쯤 쓰신 과학의 민중사 글을 읽다가 아직도 하고 계신가? 해서 최근 글을 찾다 보니 이 글을 보게 되었네요.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결혼을 못한다, 안 한다로 마음대로 정의 내리는 것. 씁쓸한 현실이죠. 저는 비혼주의자인데요 다행히 부모님들이 먼저 결혼 하지 말고 인생을 즐기시라고 이야기 하시네요. 이 책을 읽어 본적이 없지만 제목만 봐도 애매하지만 피식 거리면서 볼것 같습니다.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 BlogIcon singenv
      2020.10.19 10:36 신고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래 전 서평 글을 보시고 다시 찾아와 댓글을 남겨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책, 재밌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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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곧은 신념을 입체적 에피소드에 담아낸 수작 로드무비 <낙엽귀근>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0. 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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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낙엽귀근>


영화 <낙엽귀근> 포스터. ⓒ블루필름웍스



공사판에서 4년 동안 함께 일하던 친구 리우콴유가 운 없게도 술을 마시다가 죽자 시체를 짊어지고 그의 살아생전 고향으로 향하는 중년 남자 라오자오, 사장을 비롯 주위 사람들은 당연히 화장할 것을 권유하지만 그는 친구와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 꼭 고향 땅에 묻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수중엔 500위안뿐 사장이 리우콴유에게 준 5000위안은 건드릴 수 없다. 그런가 하면, 그들이 일하는 '선전'에서 리우콴유의 고향 '충칭'까지는 장장 1400km나 되는 대장정의 거리이다. 


라오자오와 리우콴유는 앞으로 벌어질 수많은 우여곡절을 시작한다. 버스에 타서 잘 가고 있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강도 무리의 습격을 받아 돈을 몽땅 빼앗길 위기에 처하지만, 죽은 친구를 향한 의리에 감동한 강도 두목이 외려 다른 승객들한테 빼앗은 돈을 모두 그에게 주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 때문에 버스에서 쫓겨나고 만 그들이다. 시체와 함께 버스를 탈 수 없다는 승객들의 당연한 반발 때문에. 여정의 시작부터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맛보게 되었다. 앞으로의 여정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게 웬일? 허름한 숙소에서 500위안을 도둑맞고는 시름에 빠져 있다가 까칠하게 굴던 트럭 기사에게 차를 얻어탈 수 있었다. 버스에서의 일과 반대되는 상황이 아닌가. 힘들어 보였던 트럭 기사의 사연을 들어 보니 실연을 겪었던 것, 라오자오는 인생 선배로 적절한 조언을 해 주어 트럭 기사로 하여금 새로운 목적을 갖게 한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돈도 절도 없는 라오자오는 친구 시체와 함께 그의 살아생전 고향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진심으로 응원할 수밖에 없는 여정이다. 


이 영화가 뒤늦게 개봉하게 된 이유들


영화 <낙엽귀근>은, 지난 2018년 국내에 <영혼의 순례길>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티베트 순례단의 라싸 순례 여정 다큐멘터리로 중국 역대 다큐멘터리 순위 3위에 드는 위업을 달성한 장양 감독의 2007년 작이다. <영혼의 순례길>의 '여정'이 국내에 소소하지만 작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는 판단 하에, <낙엽귀근>을 늦게나마 소개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장양 감독의 많은 영화가 전 세계 주요 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을 타기도 했던 바 이 영화도 그러했는데,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을 탔고 벤쿠버와 도쿄와 뉴욕과 하와이와 홍콩 영화제 등에 초청되어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었다. '낙엽귀근'이라는 말은,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본래 났거나 자랐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걸 의미한다.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변용이 가능한 바, 영화가 개봉한 날(2020.9.24)을 미루어볼 때 추석 명절을 겨냥한 게 아닌가 하는 또 다른 추측을 해 본다. 특히, 올해 추석은 그 어느 때와 다르게 '코로나 19'로 정부에서 특별방역기간을 정했고 왠만하면 고향을 찾지 말라고 당부했기로서니 영화 속 죽은 친구 고향으로의 여정이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었을 테다. 문제는, 영화관을 찾지 말라는 당부 또한 함께 내려 왔다는 것...


직선적 신념을 곡선적 이야기에 담다


각설하고,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면 단연 한 사람이 눈에 띈다. 원톱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라오자오', 그리고 그를 연기한 '자오번산'. 영화를 통해 거의 접한 적이 없는 듯한 그는, 찾아 보니 '중국의 찰리 채플린'이자 '중국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불리는 유명한 대희극인이라고 한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성공해 회사를 설립하고는 자가용 비행기까지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1970년대 연극배우로 데뷔해 TV와 영화까지 종횡무진 활약했고 활약하고 있는, 자타공인 '중국 NO.1 연예인'이다. 


<낙엽귀근>은 자오번산 즉, 라오자오의 원맨쇼에 가깝다. 그렇지만 그를 잘 모르는 우리에겐 신기한 것이, 영화가 로드무비인 만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오히려 그들이 훨씬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어디서 많이 본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그들과의 짧은 에피소드들에 인생의 모든 것, '희로애락'과 '신념'이 담겨 있는 것도 신기하다. 메시지를 던지는 방식이 직접적이지 않으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알 수 있게 했다. 이를테면, '의리' '신의' '진심' 등의 직선적 신념을 희로애락 듬뿍 담긴 곡선적 이야기에 담은 것이다. 


에피소드들 하나하나 버릴 게 없다. 버리기는커녕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것들이다. 특히 기억에 남을 만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꾸역꾸역 시체를 짊어지고 갈 때까지 가서는 길가에 전복된 크나큰 트럭의 타이어를 빌려서 편안하게(?) 길을 가다가 급경사길에서 그만 놓치고 만다. 타이어 속 시체는 낭떠러지 격의 숲속으로 떨어지고, 라오자오는 그를 포기하려던 찰나 자신도 함께 죽기를 결심한다. 하지만 자살에 실패하고 눈을 떠 보니 어느 가족이 구해 준 게 아닌가. 그들은 라오자오에게 밥도 챙겨 주고 라오자오의 사연을 듣고는 멀리까지 차를 태워 주기도 한다. 


라오자오의 여정에 감정을 이입하다


영화를 보다 보니, 라오자오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게 아니라 라오자오와 길 위에서 만난 이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내가 그들이었다면 어땠을까. 라오자오의 사연을 믿고 그와 시체를 태워줬을까, 라오자오의 허름한 외모와 '시체'라는 말만 듣고 그냥 지나쳐 버렸을까. 그의 신념과 의리는 당연히 박수를 보낼 만하지만, 오히려 그를 도와준 이들의 행동에 보다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영화로라도 대할 수 있어 참으로 진귀한 경험을 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롤러코스터 타듯 위로 아래로 쉼 없이 오르내리는 라오자오의 여정을 보고 있노라면 당연히 누구나의 '인생'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와 닿는 건 인생이 아닌 그의 '여정'이다.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과 어느 순간에도 잃지 않는 여유와 끈기 그리고 인생 여정에서 꼭 필요할 임기응변을 두루두루 갖춘 라오자오의 여행 같은 여정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다. '나도 모든 걸 뒤로 한 채 팔도강산을 누비는 여정을 떠나고 싶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를 잘 들여다보면 결국 라오자오에게 가닿는다.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물론 당사자적 입장이 아닌 제3자적 입장이지만 라오자오처럼 살면 좋겠다 싶게 만든다. 그의 성격이 부럽다, 모든 이와 잘 어울리고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수 있을 것 같다, 재밌겠다 싶다. 그렇지만, 외려 이 영화는 라오자오를 주체 아닌 수단으로 생각하고 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생 여정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캐릭터가 아닌가. 그런데, 영화를 보는 입장에선 인생 여정의 희로애락보다 '라오자오'라는 캐릭터에 주목하게 된다. 어찌 되었든, 잘 만든 영화임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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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귀근, 시체, 신념, 에피소드, 여정, 인생, 자오번산, 장양, 캐릭터, 희로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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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격, 한정된 공간의 다섯 사람의 핏빛 스릴러 <팡파레>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8. 1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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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팡파레>


영화 <팡파레> 포스터. ⓒ인디스토리



7년 전, 그러니까 2013년 <가시꽃>이라는 영화를 보고 굉장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뒤늦은 속죄와 단죄에 대한 날 것의 이야기로, 당시 한국 독립영화의 맥을 짚을 수 있는 중요한 영화이기도 하다. <용서받지 못한 자> <똥파리> <파수꾼>으로 이어지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굴곡지고 안타까운 삶의 형태가 이 영화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었다. 자그마치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제1회 들꽃영화상 신인감독상과 남우주연상 수상을 비롯해, 국내외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되어 무서운 신인 감독의 출현을 알렸다. 


이듬해 이돈구 감독은 김영애, 송일국, 도지원 등을 내세운 <현기증>으로 흥행과는 별개로 비평적으로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 <가시꽃>과 <현기증> 둘다 파괴적이고 끔찍한 사건을 겪은 이들이 그 여파로 어찌할 바를 모르며 흔들리는 상황을 담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현기증> 이후 자그마치 6년 만에 신작을 들고 관객을 찾은 이돈구 감독, <팡파레>는 어떤 작품일까. 작년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가시꽃>의 들꽃영화상 수상과 겹치는 면이 있다. 


영화 <팡파레>는 이돈구 감독이 연출과 각본은 물론 제작과 편집까지 도맡아 했다. 흔치 않은 모양새이자 능력의 모습인데, 온전히 모든 걸 쏟아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릭터, 미장센, 분위기, 스토리라인 등에서 장르적 색채가 강한 스릴러로,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캐릭터들의 부딪힘과 얽히고설킴이 특히 인상적이다. 우연한 사건과 우연히 모인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과연 이곳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핼러윈 데이의 늦은 밤 어느 바, 파티가 끝나고 모두 돌아갔지만 아직 파티의 여흥이 가시지 않은 때 젊은 여자 J가 들어온다. 사장은 문을 닫고 바 안을 청소하고 J는 혼자 핸드폰을 깨작거리고 있던 사이, 어느 젊은 남자가 또 다른 젊은 남자를 등에 엎고 급히 문을 두드린다. 미심쩍어 보이지만 급해 보이는 모습에 문을 열어주는 J, 하지만 혹시나 하니 역시나 두 젊은 남자는 곧 J를 습격한다. 좀도둑질을 하려던 것이었다. 그러곤 2층으로 올라간 남자, 사장을 발견하고는 몸싸움을 벌인 끝에 칼로 찌르고 만다. 


사장을 칼로 찌는 이는 동생 희태, 같이 온 형 강태는 희태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사이 사태를 수습하려 한다. 그는 '아는 형'이자 마약을 운반해 주는 거래처이기도 한 조폭 쎈을 부른다. 막상 와서 보니까 J라는 목격자도 있고 죽은 사람이 바 사장이기도 해 쎈으로서는 부담스럽다. 하지만, 강태의 협박과 회유에 못 이겨 일을 받아들인다. 강태는 쎈 또한 이 사건의 목격자라며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고 시체만 잘 수습해 주면 그동안 숨겨 둔 막대한 양의 마약을 건네주겠다고 한 것이다. 


쎈은 시체를 흔적도 없이 처리하기 위해 잘 아는 시체 처리사 백구를 부른다. 백구 또한 와서 보니까 목격자도 있고 시체 처리를 의뢰한 이가 쎈이 아닌 것에 격분한다. 하지만 그 또한 쎈의 협박과 회유에 못 이겨 일을 받아들인다. 이제 시체만 잘 처리하고 강태가 돈만 잘 지불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때, 잠자코 있던 J가 한 마디 던진다. "이 사람 사장 아니구요, 제가 사장이에요. 그리고 이 사람 검사였어요." 그 파장으로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는데... 과연 이 다섯 사람은 이곳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다섯 주인공의 정확하고도 완벽한 케미


영화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은 인원의 등장인물들이 이끈다. 주조단역을 모두 합해도 20명이 되지 않을 것 같고, 극을 오롯이 이끄는 이들은 불과 5명뿐이다. 그에 따라 공간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한정적이다. 1, 2층을 둔 바에서만 사건이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영화 같지 않고 연극 같다. 연극이라 하면 무엇보다 캐릭터가 중요할 터, 이 영화 또한 캐릭터가 가장 돋보인다. 


5명의 주요 캐릭터가 모두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어느 한 명만 빠져도 극이 나아가지 않을 것이고, 어느 한 명만 더해도 극이 재밌지 않을 것이다. 정확하고도 완벽하게 '케미'를 이룬다. 작품을 이루는 주요 장면, 작품을 나아가게 하는 주요 장면, 작품을 극적이게 하는 주요 장면마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두 캐릭터가 불꽃 튀기게 대치한다. 각각 그들만의 스토리와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그때그때 형성되기도 한다. 


들여다보면 별 것 아닐 수 있는 스토리라인에 한정된 인원과 공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자못 지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간이 갈수록 설정의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감독도 잘 알고 있는 듯, 점입가경 식의 사건 진행 속도가 빨라지고 그에 따라 시간의 틈이 짧아진다. 시간이 갈수록 집중하게 되는 내러티브를 창조해 내보이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캐릭터의 활용 방법도 한몫했을 테다. 주요 캐릭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일정한 시간 차를 두고 한 명씩 등장해 포커싱을 주어 주위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캐릭터에 집중시켰다. 그러다 보니, 몇 부에 나누어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날 것'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겉모양과 다르게,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완벽하게 직조된 구조적 영화라고 생각된다. 


'전복' 또는 '역전'의 메시지


이 영화를 영화적 또는 연출적 기술로만 들여다보는 건 예의가 아니다. 기술 구조적 연출 방식과 밀접하게 유기적으로 스토리를 들여다보면 발견할 수 있다. '전복' 또는 '역전'의 메시지라고 해야 할까. 주지했듯 그동안 한국 독립영화의 한 맥을 '가해자가 된 피해자와 피해자가 된 가해자'의 이야기가 형성했다면, 이 영화는 조금 비틀어 '강자가 된 약자, 약자가 된 강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같다.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장르적으로 표나지 않게 세련되게 표현해 낸 것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시작점에선 도둑질을 하고 J를 습격해 묶여 있는 강태와 희태가 강자였다면, 희태가 살인을 저지른 이후 수습하는 과정에서 강자가 한 명씩 늘어난다. 강태와 희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게 없고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락한다. 묶여 있는 J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급변한다. J의 한 마디에 의해 일어난 사건으로 J와 강태와 희태가 상황적으로 강자가 된다. 쎈과 백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작가주의적' 독립영화 측면에서 보면 퇴보했다고도 할 수 있을 테지만, 보는 이들에겐 훨씬 많은 재미를 주는 건 분명하다. 문학도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장르적 다양성을 내포하게 되었는데, 영화는 그보다 훨씬 빠르고 다양하게 변하지 않을까 싶다. <팡파레>는 한국 독립영화가 시대에 매몰되지 않고 시대를 이끌고 만들어 가는 모양새를 구축하는 데 큰 지분을 차지할 것이다. 아니, 차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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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 공간, 날 것, 독립영화, 약자, 이돈구, 전복, 캐릭터, 케미, 팡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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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향의 완벽한 비쥬얼도 상쇄하지 못할, 스토리와 캐릭터의 아쉬움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4.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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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사냥의 시간> 포스터. ⓒ넷플릭스



2011년 단 한 편의 영화 <파수꾼>으로 한국 독립영화의 중추이자 한국영화 최대 기대주로 떠오른 윤성현 감독, 10대들의 예민한 감수성을 섬세하게 표현해 찬사를 받았다. 꾸준히 한국 독립영화를 봐온 필자에게도, 이 영화는 <용서받지 못한 자> <똥파리> <한공주> <벌새>와 함께 '위대한' 한국 독립영화 중 하나로 기억된다. 윤성현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차기작을 내놓지 않았다. 


그 사이 <파수꾼>의 주연들 이제훈과 박정민은 충무로 유망주의 자리를 넘어 연기력과 흥행력을 두루 갖춘 충무로 스타가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윤성현 감독의 차기작 소문이 들렸다. 이제훈과 박정민이 중추적 역할을 맡을 거라고도 했다. 소문만 무성하던 끝에 2020년 2월 개봉이 확정되었고, 곧 2020년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우뚝 섰다. 최우식, 안재홍, 박해수도 함께하니 만큼 기대가 치솟았다. 베를린 영화제에도 초청되었다니,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코로나 이슈와 넷플릭스 해외 판권 이슈의 악재를 지나 결국, <사냥의 시간>은 2020년 4월에 넷플릭스로 공개되었다. 영화 외적 잡음을 압도적으로 잠재울 압도적이고도 파괴적인 영화를 목도할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곧바로 관객들의 융단폭격이 시작되었다. 대체로, 압도적인 비쥬얼과 처참한 스토리을 말하며 처참한 스토리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스토리로 찬사를 받은 윤성현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인데,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다. 방구석의 작은 스크린이 아닌 영화관의 큰 스크린으로 보았으면 달랐을까 하는 의구심도 풀어보려 한다. 


'헬조선 탈출기'에서 '사냥의 시간'으로


망해 가는 한국, 청년 장호와 기훈은 3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출소하는 준석을 마중한다. 들어 보니, 3년 전 그들은 함께 작당모의하여 거사를 치르다가 준석만 잡혀 들어갔던 것이다. 물론 준석이 주도자였다. 그런데, 준석은 출소하자마자 보다 거대한 일을 벌이려 한다. 동네 불법 도박장 금고를 털자고 장호와 기훈을 끌어들인다. 그곳은 당연히 조폭들이 관리하는 곳, 잘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기에 장호와 기훈은 꺼려 하지만, 도박장에서 일하는 친구 상수를 끌어들여 작전을 계획하고 개시한다. 


친한 총포상 형 봉식한테 총들을 얻어 도박장 금고를 털어서는, 역시 친한 형님 빈대한테 대만의 섬 컨딩으로 밀항을 해서, 꿈에나 그리던 에메랄드 빛 바다와 푸른 하늘을 보며 편안하게 살아가자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나름 철저한 리허설로 도박장 털기 작전은 훌륭하게 성공한다. 상수는 조금 더 다니다가 그만두기로 하고, 셋은 출발하기 전에 기훈의 부모님 댁으로 향한다. 계획 성공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한'이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추격자가 엄청난 잠행술과 추격술과 사격술로 그들을 쫓기 시작한다. 상수를 처치하고 손쉽게 셋의 뒤를 쫓아 맞딱뜨린 한, 보다 재밌는 '사냥의 시간'을 즐기고자 한 번 놔 준다. 도시를 넘어와 도망친 세 친구, 빈대가 소개해 준 아무도 모르는 건물에 잠행하며 밀항을 준비하고 기훈은 부모님이 걱정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이곳은 찾아오지 못할 거라 믿고는 쉬고 있던 둘에게 여지없이 한이 다다르는데... 과연 한의 추격 사냥을 뿌리치고 무사히 밀항할 수 있을까?


디스토피아 범죄 스릴러의 걸맞는 비쥬얼


영화 <사냥의 시간>은 디스토피아 범죄 스릴러를 표방한다. 모든 게 무너지다시피 하여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 청년들이 크게 한탕해 희망이 살아숨쉬는 곳으로 탈출해서는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게 전체적 맥락이다. 청춘들이 흔히 꿈꿀 만한 헬조선 탈출기에서 시작한 영화는, 제목 그대로 정체불명의 추격자 한이 펼치는 사냥의 시간으로 돌변한다. 훔친 돈을 전부 돌려 준다는 데도 오직 한 번 찍은 놈은 끝까지 추격해 죽이고 만다는 사냥을 목적으로 한 '한'의 알 수 없는 집념으로 영화가 흘러간다. 


영화의 외향은 디스토피아 범죄 스릴러 장르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빛을 찾아볼 수 없는 와중에 컴컴하면서 붉디 붉은 도시, 그곳에서 사람이 살 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일단 분위기 조성은 OK. 한의 과정을 생략한 잠행술은 서늘함 그 자체이고, 뛰어다니지 않고 조용히 총을 그것도 정확하게 겨누고 있는 총격술은 예술 그 자체이다. 여기에 참을 수 없는 긴장감을 유발하는 배경음악이 한몫해, 스릴러로서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극단을 만들어냈다. 


외향적 비쥬얼뿐만 아니라 영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내향적 비쥬얼까지 완벽히 조성해 낸 것이다. 방구석 스크린으로 보았는데도 이 정도라면, 영화관 스크린으로 감상했으면 소위 '난리'날 뻔했다. 심장 밖으로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느낌이 아닌, 심장 안으로 근육이 조여오는 느낌을 직접적으로 받을 게 분명하다. 이 영화에서 이 점들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윤성현 감독은 <파수꾼>에서 보여 준 섬세함을 보다 확장시켜 보여 주는 데 성공했다. <사냥의 시간>에서는 그것만 보여 주었고 그것을 통해 핵심을 보여 주지 못한 게 문제이지만.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소홀히 대한 '캐릭터'의 아쉬움


<사냥의 시간>은 '사냥의 시간'을 보여 주는 데 전심전력을 쏟았다. 그 시간의 기가 막힌 외향 및 내향 비쥬얼을 통해 현재 우리 청년들이 당면한 상황 또는 사회의 단면이나 현상을 비유/은유적으로 풀어내길 바랐는데, 전혀 그러지 못한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에 있지 않나 싶다. 네 청년 친구와 '한'이라는 추격자까지 그 누구에게도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다는 건 둘째치고, 영화 전체에서 '캐릭터'라는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데 가장 소홀히 대하는 게 '캐릭터'들이다. 


단순히 개개인의 사연이 없다는 수준이 아니라 앞뒤 없이 본체만 덩그러니 던져진 것 같고, 캐릭터를 소모시킬 때 성의가 없다는 느낌이 들면서 스토리의 맥락도 함께 들춰내 버리게 된 것이다. 즉, 훌륭한 배우들이 분한 캐릭터들을 잘 살렸으면 스토리도 함께 자연스럽게 살았을 텐데 그러지 못하니 처참한 스토리가 도드라져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는 스토리가 처참한 것보다 캐릭터가 처참했다. 


최근 비쥬얼텔러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2017년 <악녀>, 2018년 <마녀> <PMC: 더 벙커> 등이 독특한 액션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바 있다. <사냥의 시간>도 비쥬얼텔러의 약진으로 소개될 만하다. 물론, 액션이라기보다 분위기 조성 면에서 말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건 액션과의 동질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들 영화는 공통적으로 스토리 또는 캐릭터에 지극한 약점을 노출했다. 이들 영화에서 완벽을 기대할 순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되겠지만, 한 면의 신선함 내지 대단함이 한 면의 아쉬움을 상쇄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사냥의 시간>이 과연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는 값진 타이틀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비쥬얼적 성공조차 영화관 스크린으로 보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상당 부분 빛을 발할 테니 말이다. 여타 '큰 영화'들처럼 좀 더 기다렸다가 넷플릭스 아닌 극장 개봉을 택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크게 달라질 건 없을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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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디스토피아 범죄 스릴러, 비쥬얼, 사냥의 시간, 스토리, 실패, 윤성현 감독, 추격, 캐릭터, 헬조선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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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이름 하나로 본 일본 애니메이션의 현재 <날씨의 아이>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11.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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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리뷰] <날씨의 아이>


애니메이션 영화 <날씨의 아이> 포스터. ⓒ미디어캐슬



'제2의 미야자키 하야오' '포스트 하야오'라 불리는 두 명의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이 있다. 1960년대생 호소다 마모루와 1970년대생 신카이 마코토가 그들이다. 마모루는 전통적인 방식의 애니메이터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와 장편 데뷔를 조금 늦게 했지만 크나큰 성공을 거둔 반면, 마코토는 동인활동을 하고 게임회사에도 취직하는 등 비전통적인 방식의 애니메이터 경력을 쌓아오다 장편 데뷔를 빠르게 했다. 마모루가 2006년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데뷔한 반면, 마코토는 2004년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로 데뷔한 것이다. 


이 둘은 약속이나 한듯 3년마다 한 편씩을 들고 오는데, 하여 절대 겹칠 일이 없다. 우리는 3년을 주기로 1년을 거르고 2년 연속으로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반드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두 감독의 오리지널을 굳이 비교하자면, 단편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마모루가 작품에서 마코토가 흥행성에서 앞선다고 하겠다. 마모루는 그의 모든 오리지널을 시체스영화제 최우수 애니상 또는 일본 아카데미에서 최소 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타왔다. 마코토는 <너의 이름은.>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역대 2위를, <날씨의 아이>로 일본 애니메이션 역대 11위를 마크했다. 


마코토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너의 이름은.>을 지난 2016년에 발표한 만큼 3년이 지난 올해 2019년에 차기작이 예정되어 있었다. 일본 현지에서는 7월 19일에 개봉해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한국엔 사정상 개봉이 여의치 않았다. 개봉 연기는 당연한 수순이었을 테고, 당분간 개봉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었던 와중에 개봉을 강행했다. '신카이 마코토'라는 이름 하나로, 경색 국면을 뚫고 개봉해 보고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설명할 수 없는 도쿄의 폭우, '맑음 소녀' 히나


가출해 도쿄로 상경한 소년 호다카, 하필 그때부터 역사상 유례없는 빗줄기가 도시를 강타한다. 막무가내로 숙식을 해결하며 일자리를 찾지만 미성년자를 받아주는 곳은 없다. 마지 못해 찾아간 곳은 상경하는 배 위에서 위험에 빠졌던 그를 도와주고 그에게 밥을 얻어먹었던 청년 스가. 그는 도시전설을 취재하고 기사를 써서 잡지 K&A를 펴냈는데, 호다카는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대신 약간의 돈을 받고 일을 하기로 한다. 


취재하던 와중, 상경한 직후 힘들 때 패스트푸드 점에서 그에게 햄버거 서비스로 행복을 주었던 히나를 다시 만나 위기에 빠진 그녀를 구한다. 그녀는 알바에서 잘려 돈벌이가 필요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가 K&A에서 찾고자 했던 도시전설 중 하나인 '맑음 소녀'라는 게 아닌가. 그녀는 비록 일정 시간과 장소뿐이었지만 기도를 하면 비를 그치고 햇빛을 나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끝날 줄 모르고 내리는 비 덕분에 그들은 알바를 시작한다. 돈도 많이 벌지만 서로 마음이 잘 맞는 그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영원한 행복은 없는 법, 쏟아지는 비의 양은 점점 더 엄청나지고 도무지 기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히나는 계속 되는 기도 알바로 몸에 설명할 수 없는 이상이 생기고, 호도카는 우연히 주워선 위기에 빠진 히나를 구할 때 썼던 총이 문제가 되어 경찰에게 쫓긴다. 한편, 스카는 맑음 소녀가 사실은 날씨의 무녀일지 모르며 그녀의 희생으로 설명할 수 없는 폭우를 그치게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에 빠지는데...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전하는, 훌륭한 작화와 OST


<날씨의 아이>는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와 일본의 자연재해에의 두려운 문제 제기가 주 배경으로 작용하는 와중에 도시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미성년자 소년과 소녀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전한다. 동일본 대지진의 문제 제기를 주요 동력으로 삼아 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전한 전작 <너의 이름은.>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하겠다. 


여전한 건, 작화와 OST다. 누구도 이에 이견은 없을 듯한데, 실제 도쿄를 그대로 가져다놓되 그림으로서만 가능한 최상의 컨디션을 감상할 수 있다. 아울러 '빛의 마술사'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만큼의 압도적 영상미를 전한다. 그것 하나만으로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감상하는 가치가 충분하다는 걸 몸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나아가 이번 작품에는 '비'가 주요 소재인 만큼 비를 그려내는 데 절대적 공력을 쏟아부은 걸로 보인다. 그야말로 빛과 비 작화의 최전선이자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OST가 작화를 뒤따른다. 좋게 말하면 몸에 전율이 오게 만드는 나쁘게 말하면 오글거리게 만드는 OST들이 작품을 휘감고 있다. 대체로 후자보단 전자가 보다 많았는데, 웅장하고 장엄하기까지 한 빛의 작화와 잘 어울렸기 때문이겠다. 즉, <날씨의 아이>는 다분히 신카이 마코토 팬을 위한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그것도 <너의 이름은.> 이전의 팬들. 작화와 OST 정도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면에서 예전으로 후퇴 또는 돌아간 느낌이다. 


스토리와 캐릭터의 문제, 그리고...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도 있을까', 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는 OST 속 한 어구이다. 세상의 멸망을 짊어진 소녀와 소녀를 사랑하게 된 소년. 소년은 다행히(?) 선택할 수 있다. 소녀를 살리는 사랑, 세상을 살리는 희생. 소년은 당연히 사랑을 선택한다. 한편, 영화 속 다양한 어른들은 당연한듯 희생을 선택한다. 아니, 선택이라고 할 만한 고민조차 없이 희생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무능하고 한심한 어른들과 불쌍하고 대견한 아이들을 대조시켜 보여주며,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문제는, 희생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소녀'여야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초중반까진 '맑음 소녀'라고 해맑게 포장해놨지만, 후반부에 그녀가 곧 '날씨의 무녀'라는 암시를 해놓은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 항상 소년 소녀가 주인공이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인 걸 감안하더라도, 이런 설정은 상당한 무리수이다. 또한, 호도카가 비록 우연일지라도 총을 지니고 다닌 것도 모자라 쏘기까지 했다는 점도 상당한 무리수라고 본다. 아무리 다분히 판타지적인 세계관을 선보였다 하더라도, 다분히 현실 기반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하여, <날씨의 아이>는 스토리와 캐릭터에 상당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맥락상 개연성이 부족하고, 장면 장면에 큰 힘을 쏟은 만큼 장면과 장면을 잇는 데엔 그만큼의 힘을 쏟지 않았다. 대중적 서사가 부족하단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 작품만의 특이점보다는 본래의 실력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본다. 캐릭터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애니메이션 하면 캐릭터가 기억에 남기 마련인데,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에선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작품 또한 캐릭터가 별로인데, 본래의 실력이 그러한 것 같다. 


<날씨의 아이>는 호불호가 명백할 것으로 보인다. 한-일 경색 국면에서 영화 자체로만 호불호를 따지는 것 자체가 감독과 작품을 향한 신뢰가 엄청나다는 증거가 되겠지만, 다음 작품까지 이어질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를 두고 언제까지 다분히 애니메이션 영상적인 부분만 강조하는 '빛의 마술사' '작화의 신' 등과 같은 수식어만 붙일 것인가. 스토리나 캐릭터야말로 이 시대가 원하는 영상 콘텐츠의 기본이자 지향점이 아니겠는가. 신카이 마코토의 3년 후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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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소설을 잘 살리지 못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

오래된 리뷰 2019. 8.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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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위대한 개츠비>


영화 <위대한 개츠비>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이제는 고유명사가 되다시피 한 저 유명한 '예술 작품' 영화 <물랑루즈>를 내놓은 바즈 루어만 감독, 일찍이 1992년 <댄싱 히어로>로 크게 성공하며 데뷔했지만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내놓은 작품은 5편에 불과하다. 일면 믿기 힘든 과작(寡作)의 주인공인데 그의 스타일 때문인 것 같다. 하나같이 화려하기 그지없는 그의 영화들, <물랑루즈>에서 정점을 찍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바닥을 찍었다. 그리고 가장 최신작이지만 6년 전에 내놓은 <위대한 개츠비>도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수많은 위대한 소설들이 영화로 재탄생 되는 과정에서 그 가치가 명멸했다. 소설과 영화가 훌륭한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함께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간 케이스도 있고, 여전히 소설만 고고히 자리를 지키고 영화는 나락으로 떨어진 케이스도 있다. 반면, 소설 본연의 지위가 떨어진 경우는 없다 하겠다. 다만, 원작으로서의 가치는 심히 훼손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저런 케이스를 막론하고, 위대한 소설은 끊임없이 재탄생 되기 마련이다. <위대한 개츠비>도 그러했다. 


1974년 로버트 레드포드가 개츠비 역을 맡은 <위대한 개츠비>가 나온 적이 있다. 원작에 충실했다는 평을 들으며 호불호가 갈렸다. 물론 호불호 면에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개츠비 역을 맡은 2013년작 <위대한 개츠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원작 충실 재연의 미션보다 감독 본인의 스타일에 몰두한 이 영화는, 극 중 개츠비의 극단성을 묻어버릴 혹은 살려줄 정도의 극단성을 자랑한다. 누군가는 그 황홀함과 화려함에 취해 한없이 좋아할 테고, 누군가는 정신없고 지루하다고 싫어할 테다. 


개츠비와 데이지, 그리고 닉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줄거리는 소설 원작과 대동소이하다. 1922년 미국 뉴욕 외곽 웨스트에그,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닉 캐러웨이(토비 맥과이어 분)는 이웃집 대저택에 사는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친구가 된다. 그는 호화로운 저택에서 허구헌 날 호화로운 파티를 벌이는 베일에 싸인 인물로, 다들 정체를 궁금해 한다. 친구가 되어 그의 믿을 수 없는 이력을 들어 보니 알 만하다. 한편, 맞은편 이스트에그 해변엔 닉의 먼 친척뻘인 데이지와 톰 부부가 산다. 전통의 상류층을 형성하는 그곳과 개츠비를 오가며 닉은 진실에 다가간다. 


닉은 데이지네 파티도 개츠비네 파티도 모두 참석했는 바, 빠지게 되는 한편 경멸해 마지 않게 되었다. 와중에 개츠비는 그 이해할 수 없는 파티의 이유가 데이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미 톰과 결혼한 지 5년이 지났고 아이까지 있는 데이지이건만, 개츠비는 데이지를 여전히 지극히 사랑하고 있다. 그들은 개츠비가 아무것도 없던 시절 잠깐 만났는데, 이후 개츠비의 삶은 오직 데이지를 향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데이지는 개츠비를 사랑하는 이상으로 전통의 상류층으로서의 지위와 속물 근성을 버리지 못했다. 


개츠비는 데이지의 눈에 띄어 다시 만나 영원히 함께 하게 될 날을 기대하며 아무도 이해할 수 없지만 본인으로선 완벽한 계획을 짜서 시행해왔다. 이스트에그 해변 맞은편 웨스트에그에 대저택을 구입해, 멀리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올 만큼 호화로운 파티를 열어 눈길을 끄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무일푼 개츠비가 어떤 짓을 해왔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결국 닉이 다리를 놔주어 개츠비와 데이지는 다시 만나게 되지만, 개츠비의 실체를 아는 톰이 가만히 두고 보고 있지만은 않는데...


외향에만 천착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20세기 최고의 미국소설로 추앙받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 1929년 대공황 직전의 호화로운 1920년대 '재즈시대' 단면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하지만 이 소설이 주는 섬뜩함은 당대를 넘어 계속되는 인간 욕망과 역사의 되물림 또는 반복에 있다 하겠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직전이나 1997년 IMF 사태 직전이나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직전을 떠올려 보라.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의 날갯짓에 파묻혀 흥청망청 소비하며 놀지 않았는가. <위대한 개츠비>는 영원히 유효할 것이다. 


그런데,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깊이 있는 시대상 관찰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호화로운 저택과 파티를 비롯 상류층의 기막힌 행각을 자연스레 시대와 조우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저 닉 개인의 깨달음에서 그치거나 개츠비 개인의 사사로울 수 있는 행동의 이유 정도로 그칠 뿐이다. 그런가 하면 오히려 그러한 소재들이 바즈 루어만 감독 특유의 화려한 스타일을 살리는 데 일조할 뿐, 반대로 화려한 스타일이 영화가 주려는 궁극적 메시지를 부각시키는 데 활용되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영화적' 볼거리가 다름 아닌 화려한 스타일의 색감과 배경 등인 게 아이러니하다. 개인적으론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바로 그런 볼거리야말로 소설 아닌 영화만의 이유거니와 영화로만 즐길 수 있는 집합점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패착이라고 단언한다. 외향에의 힘을 빼고 스토리에 보다 천착했다면 완전히 다른 명작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캐릭터성, 그럼에도...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제3자 입장의 닉은 사실상 극을 이끌고 있지만 주인공이라 할 순 없다. 개츠비, 데이지, 톰 정도가 주인공일 것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소위 '나쁜 놈' 혹은 '불쌍한 놈'이 계속 바뀐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서로 사랑했지만 이어지지 못했고, 데이지는 톰과 결혼한다. 바람둥이 톰 때문에 데이지는 괴로워 하지만, 대부호 톰의 아내로 만족하지 않을 수 없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다시 조우해 예전과 같은 사랑을 이어가려 하지만, 개츠비의 실체를 알게 된 이상...


개츠비는 불쌍한 놈에서 나쁜 놈이 되었다가 다시 불쌍한 놈으로 귀환한다. 한 여자를 향한 사랑의 지극성이 그가 해왔던 파렴치한 짓의 함량을 뛰어넘은 것이리라. 물론 그 상대성은 개츠비가 상대하고 있는 데이지와 톰 부부를 위시한 전통 상류층이 해왔을 거라 짐작되는 짓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반적으로라면 개츠비가 한 짓을 용서하긴 쉽지 않다. 


데이지는 불쌍한 놈에서 나쁜 놈이 된다. 개츠비와의 사랑을 뒤로 하고 톰과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데이지, 너무 불쌍해 보이지만 개츠비와 조우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은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라는 것이었다. 속물에서 그치면 될 것을, 결국 자신을 지극정성 사랑한 개츠비를 이용해 먹고 처참하게 버린다. 애초에 나쁜 놈이었던 톰보다 더 나쁘다. 


톰은 나쁜 놈이다. 격조 높은 전통 가문의 일원으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돈을 쓰는 것도 모자라 천하의 바람둥이 행세를 한다. 그 사실을 데이지도 알고 닉도 안다. 하지만, 정작 데이지가 개츠비를 다시 만나는 건 참을 수 없다. 개츠비가 근본 없는 졸부이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과 격이 맞지 않기 때문에 데이지가 바람 필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확실한 캐릭터성을 부여해 시대를 들여다보는 대신 개인에게 천착한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나름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이었기에, 그들의 롤러코스터 같은 관계의 재정립과 그에 따른 캐릭터 호감도의 오르내림을 괜찮게 즐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구조적 패착을 돌리기엔 터무니 없이 부족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봤다면 한 번쯤 볼 만하지만, 소설을 보지 않고 영화만 보는 건 강력하게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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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바즈 루어만, 상류층, 소설, 시대상, 영화, 외향, 위대한 개츠비,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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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피해자들이 운명의 피해지 갤버스턴으로... <갤버스턴>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7. 2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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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갤버스턴>


영화 <갤버스턴> 포스터. ⓒ ㈜삼백상회



세기말에 프랑스에서 영화배우로 데뷔하여 조연으로 차근차근 입지를 쌓고 주연으로 발돋움 후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한 것도 모자라 메이저 영화 주연을 꿰찬 배우. 데뷔한 지 10여 년 후에는 감독으로도 데뷔하여 단편 필모를 쌓은 후 다큐멘터리와 장편까지 섭렵한 감독. 물론 각본도 직접 쓴다. 그런가 하면 가수로도 활동한 바 있다. 멜라니 로랑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그녀는 올해는 활동 소식이 없지만 작년까지 매해 숨막히는 활동을 해왔다. 그 최신작 중 하나가 우리를 찾아왔다. 유명 미드 <트루 디텍티브> 시리즈와 영화 <매그니피센트 7> 각본을 썼던 닉 피졸라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벤 포스터와 엘르 패닝이 함께 한 <갤버스턴>이다. 멜라니 로랑이 감독으로 참여했다. 잔잔하지도 파괴적이지도 않은 애매함과 잔잔하기도 하고 파괴적이기도 한 풍성함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 영화라 할 수 있겠다. 하드보일드한 스타일에 감독의 의지가 엿보인다. 


'갤버스턴'이라는 지명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중남부 텍사스주에 있는 작은 도시다. 19세기 번창한 항구도시로 시작했지만, 20세기 초 최악의 허리케인이 강타해 재앙적 피해를 입혔다. 이후 잘 막아냈지만, 종종 크나큰 피해를 입혔다. 근처의 휴스턴이 급부상하면서 급격히 위축되었다. 여전히 중요한 곳이지만,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작은 휴양지 정도의 위상이다. 


청부살인업자와 매춘부의 도망 여행


청부살인업자와 매춘부의 도망 여행.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 ㈜삼백상회



대략의 내용과 분위기 모두 기시감이 들게 한다. 죽을 병에 걸린 청부살인업자 로이(벤 포스터 분), 알콜 중독에 니코틴 중독인 듯 보이는 그는 보스 스탠의 명령에 동료와 함께 누군가를 헤치러 어느 집에 잡입한다. 하지만 곧 역습 당해 동료를 잃고는 간신히 살아남아 빠져나온다. 어린 매춘부 록키(엘르 패닝 분)와 함께. 그들은 스탠의 함정에 빠진 걸 깨닫고 정처 없이 도망 여행을 떠난다. 


도중 록키는 자신의 집으로 가 여동생 티파니를 데려온다.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셋은 안전해 보이는 갤버스턴의 어느 모텔에 정착해 장기투숙한다. 로이는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이곳까지 쫓아오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씩 마음을 논다. 셋은 아름다운 해변에서 편안한 시간도 가진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 가지 못하는 듯하다. 사건이 엉뚱한 데서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스탠의 압박이 아니라, 록키와 티파니의 기막힌 사연과 그에 따른 비극이 부른 참사 때문이었다. 그들이 노출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아니, 이미 노출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선택할 수 있는 패가 있긴 한 걸까. 거기에 '행복'이라는 패가 있을 리 만무하다. 


확실한 장점과 명백한 단점


확실한 장점과 명백한 단점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 ㈜삼백상회



영화 <갤버스턴>은 확실한 장점과 명백한 단점이 확연하게 구분되어 보여진다. 배우 출신 멜라니 로랑 감독인 만큼, 캐릭터에 매우 천착했다. 벤 포스터와 엘르 패닝이라는 베테랑들이 그에 철저히 부합했다. 잔혹한 외면에 저항하고 버티기 위함인 듯한 쓸쓸한 내면을 탁월한 연기로 표현해냈다. 그러면서도 그 이름값에 맞게 튀지도 않고 작품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스토리와 사건이 그를 받쳐주지 못한 듯한 인상이다. 나이 든 순정한 마초킬러와 그를 따르는 모든 걸 잃은 어린 여자. 그들은 언제 파멸이 눈앞에 다가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함께 여정을 떠난다. 다시 없을 좋은 시간도 보낸다.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대한 비극이 찾아온다. 좋은 기억과 예쁜 장면만을 남긴 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프랑스의 <레옹>과 한국의 <아저씨>가 생각난다. 이밖에 수많은 킬러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이 스토리 라인이 변주되었다. <갤버스턴>도 그 변주의 하나일 뿐이다. 


다만, 이 영화는 주지했듯 '갤버스턴'이라는 지명이 주는 분위기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휴양 항구도시의 평화로운 외향을 띄고 있지만, 그 이면엔 살기 힘들게 하는 재앙적 재해의 빈번함과 한때 번창했다가 위축된 도시의 역사가 복잡다단하게 함축되어 있다. 하지만 갤버스턴이라는 배경과 두 주요 캐릭터 간의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되진 못한 것 같다. 따로 노는 느낌이랄까. 각각 꽤 괜찮은 미장셴을 선사하지만, 굳이 둘을 어울리게 하여 '그림이 되게끔' 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운명 앞에 가해자 아닌 피해자


운명 앞에 피해자들이 운명 앞에 피해지 갤버스턴으로...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 ㈜삼백상회



여기서 그래도 눈여겨봐야 할 건 사람의 힘으론, 개인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의 존재이다. 갤버스턴에 재앙적 허리케인이 계속해서 들이닥치는 것도, 갤버스턴보다 훨씬 더 큰 도시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도 어찌할 수 없다. 로이가 보스의 추격을 따돌리기 힘든 것도, 록키가 매춘부로 살아가는 것도 어찌할 수 없다. 


물론 인간은 수많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어찌어찌 헤쳐 나가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분명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세상을 이끌어가기에, 그들이 보기에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앞에 주저앉는 건 그저 나약한 것일 테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는 결과론적으로 도출되는 것이고, 어찌할 수 없는 건 어찌할 수 없는 거다. 


<갤버스턴>은 그런 면에서 운명의 피해'자'들이 운명의 피해'지'로 대피하여 소중한 시간을 갖다가 다시 가해자들 앞으로 끌려가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한 듯한 영화의 분위기는 거기서 기인한 게 아닐까. 신기하게 다 보고 나면 기분이 더러워지지 않는다. 뭔지 모를 여운이 남는다. 마지막의 슬프게 소소한 반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건, 우리 모두 운명 앞에서 절대 가해자 아닌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 동질감이 그리 괜찮지 않은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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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갤버스턴, 도망, 매춘부, 멜라니 로랑, 사건, 운명, 지역, 청부살인업자, 캐릭터,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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