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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포커페이스의 짜릿한 액션을 만끽하는 법 <그레이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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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그레이 맨>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그레이 맨> 포스터.

 

오랜 시간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는 신세에서 CIA의 비밀 암살 요원으로 탈바꿈한 '시에라 식스', 이번에는 국가 기밀을 넘기려는 이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았다. 우여곡절 끝에 제거하는 데 성공하지만, 제거 대상으로부터 알 수 없는 이상한 얘기를 전해 듣는다. 자신이 '시에라 포'라는 사실, 센터장 카마이클이 쓰레기라는 사실, 식스도 머지 않아 당할 거라는 사실. 그리고 중요해 보이는 목걸이까지. 

 

식스는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으로 알아차리고 센터와 거리를 두는 한편 그를 CIA 요원으로 만든 은퇴한 전 센터장 피츠로이에게 저간의 사정을 알리고 묻는다. 피츠로이는 식스를 보호하려는데, 카마이클이 고용한 전 CIA 요원이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소시오패스 로이드 핸슨을 고용해 식스에게서 목걸이를 빼앗아 오게끔 한다. 핸슨은 피츠로이를 납치해, 피츠로이의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클레어를 빌미로 피츠로이로 하여금 식스를 죽이게끔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식스는 본격적으로 도망을 다니는 한편 피츠로이와 클레어를 구하고자 길을 떠난다. 식스는 예전에 클레어를 지근거리에서 보살피며 각별한 유대감을 쌓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의 앞을 여지 없이 핸슨이 가로막는다. 전 세계에서 고용한 1급 암살 요원들을 대거 투입한 것이다. 식스는 과연 무사히 살아남아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면면이 최상급인 영화

 

루소 형제(앤서니 루소, 조 루소)는 MCU의 <캡틴 아메리카> 2편과 <어벤져스> 2편을 연출하며 전 세계 영화 감독 흥행 순위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돈을 벌어들였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로서 쉽지 않은 평단의 평가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거장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인 것이다. 

 

그들은 2019년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더 이상 MCU의 영화를 만들지 않았는데, 2년 만에 톰 홀랜드와 함께 애플 오리지널 영화 <체리>를 제작·연출했고 다시 1년 만에 라이언 고슬링, 크리스 에반스와 함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그레이 맨>을 제작·연출했다. 제작비가 자그마치 2억 달러라고 하는데, <레드 노티스>와 함께 넷플릭스 오리지널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자랑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그레이 맨>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감독이면 감독, 배우면 배우, 제작비면 제작비의 면면이 최상위급으로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비록 넷플릭스로 공개되어 흥행 성적을 기대할 순 없지만 시청 시간에서 역대급 성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되는 한편, 식상한 스토리를 훨씬 뛰어넘는 압도적 액션을 기대하고 있을 팬들에게 완벽하게 들어맞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몇 번이고 돌려 보고 싶은 액션

 

루소 형제는 <그레이 맨>을 제작하고 연출하는 데 '극장 개봉'을 염두에 뒀다고 밝혔다. 그런 만큼 대형 스크린을 통해 접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환상적인 액션의 향연을 맛볼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제한 상영으로 극장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고 넷플릭스로 안방 극장에서 마음껏 볼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의 주요 액션 장면을 몇 번이고 돌려 봤을 정도다. 

 

초중반 비행기 안 액션 씬과 중후반 체코 프라하 광장 액션 씬이 대칭을 이루듯 영화 액션의 전반을 기둥처럼 떠받들고 있는데, '와, 이걸 도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어벤져스>에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 액션을 현실에서 볼 수 있네' 하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두 액션 씬만으로 <그레이 맨>을 추천할 수 있거니와 <그레이 맨> 감상의 이유가 된다. 

 

그런가 하면, 영화는 시종일관 끊임없이 크고 작은 액션을 선보이는데 그 중심엔 여지 없이 라이언 고슬링이 분한 식스가 있다. 어린 시절 아빠로부터 가차없이 당한 학대로 감정이 사라진 듯 그 어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감정 기복 없이 무심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식스를 보고 있노라면, 의외로 카타르시스를 만끽할 수 있다. 밖으로 분출하는 아드레날린 폭발의 이입이 아닌 안으로 수렴하는 차분한 이입으로 말이다. 라이언 고슬링 특유의 쓸쓸한 분위기가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한편, 식스를 제거하고자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로이드 핸슨 역의 크리스 에반스는 얄미운 듯 잔혹한 듯 비열한 듯한 성향의 악역으로 완벽하게 변신해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로이드 핸슨은 식스와 정반대의 성향을 지녔기로서니 극의 재미를 양분하기에 충분하다.

 

새롭진 않지만 영화적 체험 한껏

 

<그레이 맨> 공개 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역대 시청 순위를 살펴보면 액션 장르가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하다. '다큐멘터리 맛집' 넷플릭스가 '액션 맛집'으로 거듭난 이유인데, <그레이 맨>과 똑같은 제작비가 들어간 <레드 노티스>의 성공 아닌 성공 이후 <그레이 맨>의 성공 여부에 넷플릭스가 촉각을 곤두서고 있을 듯하다. 넷플릭스에서의 성공은 단순히 시청 시간이 아닐 터, 시청 시간을 훨씬 능가하는 '입소문' 즉 넷플릭스의 이미지 상승과 구독까지 이어질 정도의 관심이 영화로 향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레이 맨>은 요즘의 액션 영화가 지향하는 바를 따르지 않는다. 무슨 말인고 하면, 주인공이 질문을 던지지 않고 별 생각이 없어 보이며 그저 목적을 향해 질주할 뿐이다. 영화의 방점을 스토리에 두지 않고 정확히 액션에 두되, 복잡한 건 딱 질색인 듯 옆길로 새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린다. 식스로선 '왜 내가 CIA의 타깃이 된 거지?' '이 목걸이 속 USB의 정체는 뭐지?' 하는 궁금증을 전혀 내보이지 않은 채 '어떻게 피츠로이와 클레어를 구할까?' 하는 생각만 할 뿐이다. 아니, 생각보다 몸이 앞선다. 

 

물론, 이는 액션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만한 사항이기에 루소 형제가 좀 더 깊이 파고들었다면 완전히 새로운 액션 영화가 나왔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러면 액션 아닌 다른 것에 방점을 둬야 했을 테다. 이를 테면 <배트맨> 시리즈 류의 어둡게 세계를 통찰하고 자기를 성찰하는, 한없이 안으로만 수렴하는 액션 영화를 접할 수 있었을 테다. 루소 형제나 넷플릭스가 지향하는 액션 영화는 결단코 아니었을 테고 말이다. 

 

이보다 더한 영화적 체험은 없을 거라고 단언하며, <그레이 맨>의 액션 씬을 다시 한 번 감상하러 가 본다. 짜릿하기 이를 데 없는 액션과 함께하면서도 언뜻언뜻 보이는 식스 아니, 라이언 고슬링의 포커페이스를 보면 세상 평온해 보일 수가 없다. 짜릿한 평온, 평온한 짜릿함. 모순된 두 감정이 대립하듯 조화를 이룬다니, 이 어찌 황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