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돈 룩 업>
코로나19로 벌크업해서 가속화한 넷플릭스는 그 이전부터 이미 한 해 농사의 전략을 짜서 성과를 내고 있었다. 넷플릭스 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드라마판을 뒤흔드는 시리즈를 제작하고, 최근 몇 년 동안 아카데미 다큐멘터리상을 휩쓸다시피 할 정도로 작품성 있는 다큐멘터리를 내놓고 있고, 범죄 다큐멘터리 하면 넷플릭스가 생각날 정도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런 와중에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큰 호평을 받는 영화들을 연말에 몰아서 쏟아내고 있다.
간략하게나마 훑어보면 다음과 같다. 2018년 <로마> <카우보이의 노래>, 2019년 <아이리시맨> <결혼 이야기> <두 교황> <애틀란틱스>, 2020년 <맹크>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2021년 <파워 오브 도그> <신의 손> <돈 룩 업>이다. 하나같이 주옥같은 감독에 각본에 출연진이 눈에 띈다. 누가 봐도 영화제 수상을 노렸다고 볼 수밖에 없는 작품들이다. 그런가 하면, 어렵고 재미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작품에 상대적으로 손이 잘 가지 않는 극장 개봉과 달리 언제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넷플릭스의 경우 작품성 있는 작품이 흥행에서도 성과를 올리곤 한다.
이중에 <돈 룩 업>은 2021년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수놓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다. 애덤 맥케이 감독의 진두지휘 아래, 7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제니퍼 로렌스를 비롯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주연급 배우들을 총출동시킨 대작이다. 재난 SF 블랙 코미디 정치 풍자 장르라고 할 수밖에 없을 텐데, 애덤 맥케이 감독만의 능력을 유감 없이 보여 주며 그야말로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과했을까 적절했을까 하는 건 보는 이들마다 확연히 다르지 않을까 싶다.
혜성 충돌 지구 폭발의 위기 앞에서
미시간주립대학교 천문학과 박사 수료생 디비아스키는 인류 문명보다 한참 전에 태어났을 혜성이 태양에 근접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대발견을 축하하는 담당 교수 민디 박사와 동료들, 하지만 민디 교수는 곧 차마 말도 나오지 않는 재앙적 발견에 도달한다. 일명 '디비아스키 혜성'이 6개월여 뒤에 지구와 충돌할 거라는 예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민디와 디비아스키는 곧바로 정부에 연락을 취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지구방위합동본부 수장 오글소프 박사가 그들와 함께한다.
백악관으로 향하는 일행, 하지만 올리언 대통령과 그녀의 아들이자 비서실장인 제이슨은 왜인지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건 오로지 인기 관리와 2년 뒤에 있을 선거일 뿐이다. 어이가 없고 기가 차서 허탈하게 돌아가는 일행, 다음 전략으로 언론사를 노크한다. 디비아스키 남자친구의 소개로 <뉴욕 헤럴드>에 갔고 '데일리 립'이라는 토크쇼에 출연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은 가십을 주로 다루는 가벼운 매체,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뉴스인 혜성 출동 소식은 깔끔하게 묻힌다.
이후 민디는 인터넷에서 미남 교수로 유명세를 떨치며 바람까지 피지만, 반대로 디비아스키는 인터넷에서 차마 말할 수 없이 까이며 생매장되다시피 한다. 그런 와중에 올리언 대통령이 위기의 정국을 타개할 계책으로 혜성을 격파할 미사일 발사 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한다. 그렇게 미사일 발사 날이 왔는데, 과연 혜성을 훌륭히 격파해 지구 폭발 인류 멸망을 막을 수 있을까?
독보적인 충돌 멸망 재난 영화
1998년 전 세계 영화계를 강타한 두 재난 영화가 있다.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내용의 <딥 임팩트>,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내용의 <아마겟돈>이 그것들이다. 앞엣것은 보다 재난에 치중했고 뒤엣것은 보다 액션에 치중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비슷한 내용의 영화들이지만, 완연히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불과 작년에도 혜성의 지구 충돌 이야기를 담은 <그린랜드>가 개봉하기도 했다. 재난 영화 중에서도 혜성 또는 소행성 충돌 멸망 이야기는 참으로 오랫동안 사랑받는 것 같다.
<돈 룩 업>은 오래토록 사랑받아 온 충돌 멸망 재난 영화의 최신판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앞으로도 나름의 지분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지구 멸망이라는 SF 소재로 정치를 풍자하고 정치라는 현실 소재로 지구 멸망을 이야기한다. 두 크나큰 소재와 주제로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치우치지 않은 채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며 결국 블랙 코미디 장르로 나아가 마무리하고 있으니 만큼, 균형 있는 이야기를 오롯이 접할 수 있다.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확고부동한 지구 멸망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는데도, 아무도 그 사실을 믿기는커녕 보려고도 하지 않고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으며 해결하려 하지도 않는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 한순간에 멈춰지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론 정작 중요한 일을 챙기지 못하는 이들의 무지가 심각하게 다가온다. 그렇지만, 잘 아는 사람일수록 제 잇속만 챙기기 바쁘다. 비록 사실과 거리가 있는 SF적 상상력에 기반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다가온다면 이보다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다.
혜성이 지구와 충돌해 인류 멸망을 불러올 거라는 사실 자체가 하등 중요한 게 아니게 된다. 그 사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정녕 중요한 거라고 말하고 있다, 이 영화는. 웃기고 아이러니하며 또 무서운 건, 현상이 아닌 본질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본질을 직시하기 이전에 현상부터 제대로 보지 못하면 <돈 룩 업> 속 세상처럼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리고 이 세상이 얼마나 많은 가짜뉴스에 묻혀 살아가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SNL 작가 출신 감독의 꼬리표
SNL 작가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지난 두 영화 <빅쇼트> <바이스>으로 완벽하게 벗어던진 애덤 맥케이 감독은, <돈 룩 업>으로 그 꼬리표가 다시금 붙어 버린 느낌이다. 그의 출신을 잘 모르거니와 그의 영화를 처음 접한 분이라면 '이토록 신선하고 쌈박한 영화가 있다니'라고 감탄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을 테지만, 그를 알고 그의 영화를 접해 본 분이라면 '조금 과도하지 않나'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 풍자의 면에서 SNL의 그것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저 즐기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안성맞춤인 영화는 근래 찾아보기 힘들다. 끈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주연급 이상의 연기파 유명 배우들의 향연이 오감을 즐겁게 하고, 과도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을 만큼 현란하고 화려하기 짝이 없는 편집 또한 오감을 즐겁게 한다. 그러며 자연스럽게 현실 풍자의 면모를 받아들이니, 이보다 더 무서울 수가 없다. 이보다 더 재밌기도 힘든 만큼 이보다 더 무섭기가 힘들었다. '영화 참 기똥차게 만들었네'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다른 모든 걸 뒤로하고, 영화를 보고 나서 위를 보게 되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 영화가 영화적으로만 매몰되지 않고 영화 밖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려고 했다면 그래서 던졌다면, 제목에서 기인했을 테다. 정치권에서 프레임을 논할 때 가장 널리 인용되는 문구인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가 연상되는 '위는 올려다보지 마'가 작용해, 더 자주 위를 올려다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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