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가짜 우울>
<가짜 우울> ⓒ마음산책
10년 전 쯤, '우울증'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어 보았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이상없이 활발한 편이었던 지인이 어느 날 말하기를, "사실 나 우울증에 걸렸다."라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거 자살까지 하게 만드는 심각한 '병'이 아니냐고,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을 건넸더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하였다. 알고보니 자가진단으로 우울증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 당시는 우울증이 시대의 화두였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외롭고 슬픈 감정을 우울증이라고 생각하며, 마치 자랑거리인 양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다. 그 지인의 우울증 이유는 '힘듦'이라고 했다.
3년여가 지나, 나에게도 '우울증'이 찾아왔다. 당시 1년여 동안 외국생활을 했는데, 너무 외롭고 고독했다. 그 감정들을 추수리기가 너무 힘들었고, 결국 스스로 우울증이라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며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 주기를 바랐다. 당시 나의 우울증 이유는 '외로움'이었다.
얼마 전, 또 다른 지인이 '우울증'이라고 하며 위로받길 원하는 듯한 느낌을 풍겨왔다. 하는 일이 잘 안되고, 계속 자신을 탓하다 보니 너무 우울해졌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니 너무 슬프다고 하며. 심리 치료도 몇 번 받아보았다고 했다. 그 지인의 우울증 이유는 '슬픔'이었다. 살면서 우울증에 안 걸려본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하는 사연들이다.
우울증은 병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지금.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상당히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스타들의 과거 고백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우울증'이고,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다는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우울증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었을까?
미국의 심리치료사이자 창의력 전문가인 에릭 메이젤 박사는 그의 저서 <가짜 우울>(마음산책)을 통해 "우울증은 병이나 정신장애가 아니며, 단지 깊은 슬픔에 잘못 붙여진 꼬리표일 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며 "슬픔은 현실이고 또한 고통스럽지만...그런 것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들어서 '우울증 증상'을 완화하려고... 화학물질을 택하는 것이 슬픔에 대한 해답이 될 수는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책에서는 그에 대한 진정한 해답을 찾기 위한 실존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무슨 근거로 우울증은 병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너가 겪고 있는 슬픔이나 아픔은 누구나 겪는 거니까, 그냥 기운내고 열심히 살아'하고 시크하게 한 마디 던지고 싶은 것인가. 저자의 말을 한번 들어볼 필요가 있겠다.
"사실상 우울증이라는 단어는 우리 내면의 어휘 체계에서 불행을 실질적으로 대신하고 있다. 우리는 슬픔을 느끼면서도 우울증에 걸렸다고 말한다.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언어를 교체한 뒤 도움을 구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우울증 전문가를 찾는다. 알약에, 치료사에게, 사회복지사에게, 목회 상담가에게 의지한다. 설령 우울한 이유가 각종 청구서 대금을 내는 일이 힘에 부치거나, 하는 일이 제대로 안 풀리거나, 인간관계가 위기에 처해서일지라도" -1장에서
위에서 소개한 사연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힘듦, 외로움, 슬픔 등의 감정을 '우울증'이라는 단어로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 '우울증'이라고 명명된 그 알 수 없는 증세는 점점 '병'이자 '장애'가 된다. 그렇게 우울증에 관한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청한다. 저자는 그 접점에대중매체, 제약회사, 상담사, 심지어 문화업계까지 얽혀서 "모든 종류의 불행이, 이따금씩 나타나는 것이든 만성적인 것이든 모조리 정신건강 산업의 먹잇감이 되었고 장애로 둔갑하고 말았다"고 말하고 있다. 즉, 우울증은 만들어진 정신장애이자 문화적 최면일 뿐이라는 것이다.
불행은 인간의 정상적인 특징이다. 그 실체를 알고 이겨내자.
저자는 우울증이라는 하는 병이나 장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삶에서 지워버리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러며 삶에서 수반되는 불행이나 고통은 지극히 정상적인 특징이며 그것이 장애가 될 순 없다고 말하고 있다.
"고통과 어려움이 아무리 극심하고 오래 지속된다 해도 '정신장애'나 '정신질환'의 증거가 될 순 없다. 극심한 치통은 신경치료를 받으라는 정확한 신호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극심한 슬픔은 그 어떤 아픔 못지않게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통이라 해도 정신질환이나 정신장애의 징후는 아니다." -프롤로그에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아무리 고통과 어려움, 슬픔과 외로움 등의 불행이 정상적인 감정이고 피할 수 없다 해도, 그것이 결코 좋을리는 없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모든 감정의 실체를 알고 있지만서도, 기분 좋은 감정은 '정상적인 감정', 기분 나쁜 감정은 '비정상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저자는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모두 '정상적인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결코 피할 수 없는 그 존재를 인정하고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
저자는 '일상 의미화 전략'이라는 실존 프로그램 20단계를 제시한다.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1단계에서 부터 부여, 집중, 소통, 대처 등의 단계를 지나 실존적으로, 인지적으로, 행동적으로 자신을 돌봐야 한다는 마지막 단계까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삶에 주어진 불행과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실을 직시하고, 의미를 파악한다.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고 의미를 부여한다. 자긍심을 갖고 의미를 만들고, 욕구와 필요 그리고 가치를 고려해 선택한다. 삶의 목적이 담긴 문장을 만들고, 의미를 평가하는 지혜를 발휘한다. 의미에 집중하고, 문화적 최면에 저항한다. 다시 현실을 살피고, 의미와 소통한다. 의도를 지닌 문장을 외우고, 의미에 대해 훈련한다. 의미를 어디에 투자할지 협상하고, 의미를 구체화 시킨다. 의미가 길을 잃을 때 이에 대처하고, 자신을 돌본다.
다시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의미'를 만들라는 말이 되겠다. 불행을 없애는 건 불가능 하겠지만, 불행조차 삶의 일부분으로 포용할 수 있다면 성공적인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를 진정한 삶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불행조차 삶의 일부분으로 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알고, 생각과 행동이 중요한 것에 맞춰져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진정한 삶'을 목적으로 삼아, '삶에서의 중요한 무엇'을 향해, '생각과 행동'을 지니고 가는 것이다.
우울증이라는 말은 언어의 부패다. 우리 사회가 우울증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그 말은 우리 모두를 점점 더 불행으로 몰아갈 것이다. 불행의 병리화는 불행을 만들어낸다. 우울증이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고, 그 대신 의미를 만들어라. -에필로그에서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무엇을 치유하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치유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 <가짜우울>은 힐링의 방법론을 소개하고 있다. 여느 힐링 관련 책들 같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힐링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대신 책을 읽다보면 '나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떤 희망이 생길 것이다. 먼저 시작해보자. 우울증이라는 말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보자.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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