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JYJ 공화국>
고백하건데, 군대 시절 난 동방신기의 팬이었다. 지금 군인들이 들으면 구역질을 내며 온갖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하필이면 군복무 중이었던 2005~2006년 당시는 걸그룹의 공백기였던 것이다. SES는 2002년에 이미 해체되었고, 핑클 역시 2002년 이후 공식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베이비복스는 해체수순에 있다가 2006년에 해체된다. 그리고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는 2007년에야 데뷔를 했다. 확실히 저주받은 군번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TV에 나오는 건 죄다 남자들 뿐이었고, 불쌍한 우리 군인들은 선망의 대상으로 걸그룹을 바라보는 대신에 보이그룹을 자신과 동일시 했었다. 또 한 번 고백하건데 나는 동방신기의 유노윤호였다. 그리고 어느 선임은 최강 창민이었으며, 또 다른 어느 선임은 믹키 유천이었다...
최고에 자리에 있던 동방신기에게 무슨 일이?
동방신기는 2004년 SM 소속으로 혜성같이 등장해 단번에 최강 아이돌 반열에 올라섰다. 그동안 어수선했던 아이돌계를 싹 정리하면서, 제2막을 열었던 것이다. 2005~2006년 당시에는 연말 시상식에서 각각 대상과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며 데뷔 2, 3년차(정규 앨범 2, 3집)에 이미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인기는 이미 한국을 넘어 아시아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5년을 넘게 달려온 동방신기는 2009년 7월 31일,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실 그 전부터 금이 가고 있었고 그때 완전히 조각나 버렸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김재중(영웅 재중), 박유천(믹키 유천), 김준수(시아 준수)가 SM 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신청'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즉, SM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당시 이는 연예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이정도의 대형 스타의 사건이라면, 더욱 오랫동안 그리고 자세하게 다뤄져야 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거의 듣거나 보지 못했다. 다만 몇 년이 흐른 뒤에 보니, 잘 마무리 되어 김재중과 박유천과 김준수는 JYJ로 활동을 하게 되었고 다른 두 명인 정윤호(유노윤호)와 심창민(최강창민)은 2인 체제의 동방신기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또 이상하게도 2인 체제 동방신기는 TV 가요프로그램에 계속 나오는데 반해, JYJ는 보지 못했다. 대신 드라마, 영화, 뮤지컬, 콘서트 등으로 개인적 활동 모습은 볼 수 있었다.
속시원하게 들려주는 JYJ와 팬들 이야기
<JYJ 공화국>(엑스오북스)은 이런 궁금증을 팬의 입장에서 아주 속시원하게 들려주고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JYJ 팬의 입장에서 말이다. 과연 2009년 7월 31일 이후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제목의 '공화국'은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이 두 질문을 두 축으로 이끌어 가면서 JYJ와 팬덤 문화(나아가 대중 문화)를 잘 엮어간다.
2009년 이후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났는지는 매우 명백하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JYJ는 지금까지도 TV에서 음악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각각 여러 방면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한동안 활동을 했었는데, 그마저도 일본 유통사 에이벡스의 석연찮은 결정으로 방송 출연을 못하게 되었다. 결국 JYJ는 미국으로 진출했고, 월드 투어를 감행하며 5인 체제의 동방신기 때보다 더욱 확고한 팬덤을 확보하게 되었다.
사실 중요한 건 '팬'이다. 그리고 저자가 집중하고 있는 면도 '팬'이다. 흔히 아이돌의 팬이라고 하면 굉장히 차갑고 싸늘한 시선으로 보곤 한다. 그들은 매우 광적이며 맹목적이고 악착같으며 할 일 없이 연예인이나 쫓아다니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저자가 본 JYJ의 팬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사생팬이나 악질적인 팬들과 건전한 대중 문화를 선도하는 팬층은 서로 구분되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JYJ 팬들은 JYJ가 SM과의 법적소송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수많은 도움을 주었다. 탄원서와 진정서를 제출하고, 손수 고소고발을 하며 직접 진술을 하기까지 했다. 이뿐이랴? 재능기부와 금액 모음을 통해 신문, 버스, 지하철 등에 광고를 하기까지 했다. 저자는 이 모습이 진정한 시민의 모습이라고 보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를 볼 권리를 빼앗긴 소비자로써 합당한 행사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대선 당시 투표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단다. 당시 박원순 시장도 이에 동참했다. 기부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의 이름을 빌어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 그들의 모습은, 기존의 '팬'들과는 엄연히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팬의 모습이 아닐까.
이들은 또한 팬카페, 모임 등이 통합된 팬덤 내에서 매우 합리적이고 자생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모든 사항을 철두철미한 토론과 투표로 결정하고, 모두의 이름으로 행동을 한다. 이는 프랑스 대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같다. JYJ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자유로운 권리를 위해 행동하고, 위계질서 없는 평등한 활동을 하며, 다양한 활동으로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문화의 수준을 끌어올린 JYJ 팬들의 모습, 그러나 기획사는?
이 책은 JYJ의 사건으로 시작해, 팬덤의 속사정을 보여주고, 대중문화의 현주소를 비판하며, 그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대중문화의 한 축이 '팬'은 이미 충분히 성숙했다. '스타'도 보여지는 그 성숙미는 편차가 있지만 충분히 글로벌 스탠다드에 근접했다.
JYJ 사태에서 팬들이 보여준 행동은, 대중문화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기획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스타에 일방적으로 이끌려다니는 지금까지의 행태와는 엄연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는 JYJ도 마찬가지이다. 힘든 여정이 될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그들이지만, 되풀이되는 관행을 끊어야 된다는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선택을 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 존재하는 기획제작자 내지 배급사는 여전히 돈과 기득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문화는 오래가지도 못할 뿐더러, 반드시 탈이 나게 되어 있다. 우리 사회를 좀 먹고 저급하게 만들 것이다. 이제는 함께 미래를 모색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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