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인간의 또 다른 역사 <장벽>
<장벽> ⓒ명랑한지성
'Great Firewall' 영어로 만리장성이라는 뜻이다. 달에서 유일하게 육안으로 관측이 가능하다는(사실 관측할 수 없다고 밝혀짐) 만리장성은 세계 최고 최대의 건축물로, 일반적으로 기원전 220년경 중국 진나라 시황제가 북쪽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명나라 때는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대대적으로 확장하였다고 한다. 현재 길이는 약 2,700km에 달한다.
그런데 이 '만리장성'에 대한 논란이 우리나라와 관련된 '동북공정'으로 확대되었다. 2004년도와 2009년도에 고구려와 발해의 옛 영토를 개축하여 만리장성에 편입하려 한 것이다. 또한 2012년에는 만리장성의 길이를 동서로 연장시키기까지 하였다. 이에 한국 언론이 이를 보도 비판하였고, 중국은 이에 반발하였다. 동북아역사재단의 공식 검토로 인해 중국의 행동을 비난할 수 없다고 밝힘으로써 일단락되었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만리장성'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Great Firewall'이라 이름붙여진 중국의 인터넷 검열 프로그램 때문이다. 1998년 중국 공안부가 구축한 프로그램으로, 사회안정을 위한다는 목적 하에 국가가 직접 국민의 인터넷 활동을 감시 검열하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들까지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최근들어 중국에서 시위와 소요가 잇달았음에도, '아랍의 봄'과 같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Great Firewall' 때문인 것이다.
역사적 맥락에서 살피는 '장벽'
이처럼 만리장성이라는 '장벽'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현대까지도 국제적 국내적 갈등 요소로 계속 발흥하고 있다. 공격적이고 정치적이며 부정적이기까지한 이 '장벽'이라는 존재를, 프랑스 역사학자 클로드 케텔은 <장벽>(명랑한지성)을 통해 역사적 맥락 안에서 이해하고 살피고 있다.
저자는 모든 장벽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권위를 상징하고 제어하며, 경계를 만들고, 배제시키며 금지하는 벽이라고 말이다. 그 대표적 장벽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베를린 장벽'을 들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유일하게 베를린 장벽을 '벽' 내지 '장벽'으로 말하고 쓰기도 한다. 과거에도 위에서 언급한 '만리장성'이나 로마 제국의 야만족 침입을 막기 위한 '리메스' 같은 장벽이 존재했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만큼 정치적이면서도 물리적이기까지 한 면은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장벽이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리장성은 (해석의 차이가 있지만) 문화유산으로만 남아 있고, 베를린 장벽은 허물어졌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남북한을 가르는 장벽 '38선'은 지금까지도 그 빛을 형형하게 내고 있다. 분쟁의 국경인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인 측면까지 더해진 역사상 최악의 장벽이다.
역사상 최악의 장벽과 최악이 될 장벽
사실 저자는 베를린 장벽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했고, 그 비중도 제일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에게 38선은 그 무엇보다 절실히 다가오기 때문에 38선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장벽이란 성처럼 방어적이지 않다. 굉장히 공격적인 산물인 것이다. 그래서 한 국가나 한 진영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해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행히도 38선은 그조차도 아니다. 공격적이며 부정적인 건 둘째치고 치욕스럽다는 것이다.
전쟁의 결과로 양 진영에 휴전선이 놓였다는 건, 제3자에 의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치욕을 잊고 말았다. 대신에 이 치욕이라는 말을 엄한 곳에 쓰고 있다. 전쟁의 과정이나 결과보다 전쟁의 원인에 치중해, 침략을 당했다는 사실에 치욕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역사상 최악의 장벽은 제3자의 의해서만이 아닌 당사자들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졌다. 언제까지 이 영예로운 칭호를 달고 있을 것인지...
여기 역사상 최악이 될 만한 장벽이 존재한다. 눈으로 보이는 건 아니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그것도 전국 방방곡곡 세계 도처에 존재하는 '빈부 격차의 벽'이다. 그런데 이 보이지 않는 벽이 보이는 벽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명 '게이티드gated 커뮤니티'이다. 이는 비거주자에게 접근이 금지된 거주 지역으로, 여러 사람들의 자발적 고립의 형태를 띠고 있다. 위험하고 부적절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싶다는 이유에서이다.
이 벽은 미국에서만 3만 개 이상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것도 각각이 800만 명 이상 거주한다.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황금 게토'나 '부자들의 요새'라고 손가락질 해대기도 한다. 비록 양상은 사뭇 다르지만 세계 도처에서 이와 같은 벽들이 생겨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경우, '안전'을 위한다는 것이 가장 큰 논리이다. 그럼에도 '상류층' 내지 '노인'의 전유물 양상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행태가 계속된다면 반드시 최악의 장벽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장벽은 본질이 아닌 현상일 뿐
우리가 어떤 장벽을 기억할 때, 그 모습 자체 그 현상 자체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비난의 화살도 장벽에게 날린다. 너무나 당연한 게 아닌가? 장벽이 있기 때문에, 비난을 하는 것이고 논란이 이는 것이고 부수고 넘으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힐러리도 말하지 않았는가. '그곳에 산이 있어서 올라갔다' 이를 '그곳에 장벽이 있어서 비난했다'라고 고쳐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저자는 이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다. 그곳에 장벽이 있는 원인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벽을 부수고 비난하는 것으로 장벽은 사라지지 않고, 장벽의 원인인 갈등과 반목을 사라지게 해야 비로소 장벽이 사라진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본질이 아닌 현상만을 보고 있는 과오를 범하고 있는 우리다.
이렇게 볼 때 38선은 단순한 상징 이상의 무엇도 아니다. 그 지독한 곳에서 죽고 못살아 아웅다웅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처량하다. 모든 눈이 그곳에 쏠려 있지만, 본질은 그곳에 있지 않다. 빙산의 일각과도 같다. 그것은 대응책은 될지 언정, 결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 본질을 알지 못하게, 알고 싶지 않게 프로세스 되어 있다. 무지몽매한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알게 될까? 안타깝지만 나 또한 무지몽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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