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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초심, 오두막 이야기> 건강한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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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집의 초심, 오두막 이야기>


<집의 초심, 오두막 이야기> ⓒ사이

이런 말이 있다. “그저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곳이면, 그 곳이 곧 집이다.” 집에 대한 소유욕이 적다는 말도 될 테고, 집이란 것이 그만큼 편안하다는 뜻도 될 테다. 그러던 것이 어느 때부턴가 소유를 넘어 투기로, 편안한 집이 아닌 크고 럭셔리한 집으로, 사는(live) 곳이 아닌 사는(buy) 곳으로 변해갔다. 즐거움은 고사하고 편안함이나 아늑함 또한 느끼기 힘들어졌다.

 

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집을 사든(buy), 집에서 머물든, 어쨌든 우리는 집에서 살고(live) 있다. 추위나 더위, 비와 바람을 막아준다. 우리는 집에서 모든 걸 영위한다. 나의 집이 아닐 뿐, 우린 하루 종일 다른 집들을 옮겨 다닐 뿐이다.

 

그렇다면 인류 최초의 집은 어떤 형태였을까. 바로 오두막이다. 40만 년경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타원형의 오두막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구석기 시대에는 동굴에서 생활했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특정 지역에 한해였다는 것이다. 은신처는 먹을거리와 물, 기타 자원, 그리고 일터에서 가까워야 했다.

 

겉은 허술하지만 속은 알찬 오두막


집의 초심이 오두막이라고 말하고 있는 <집의 초심, 오두막 이야기>(사이)는 그래서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을 기반으로 지어진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왜 오두막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집의 원형과도 같은 오두막이지만, 생각해보면 허술하고 불편하고 답답하다는 느낌만 드는 데 말이다. 내가 직접 살아보니 오두막 진짜 좋다는 식의 홍보는 사절이다.

 

저자는 이 책을 내기 전에 세계의 수많은 건축물들을 견학하고 그 집들을 소개하는 책을 몇 권 낸 주택 전문 건축가이다. 아마도 집의 예술적 미학에 심취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는 건 오두막의 외관에 심취했다는 것인가? 하지만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그런 게 아니라고 싹 잘라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오두막이 겉은 허술하게 보여도 속은 알차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문명과 문화의 이기가 된 집에 대한 반박 심리와 함께 지구 환경에 대한 걱정으로 인한 자연친화적 생활 실천 의지가 뒤따른다. 결국은 내가 살아보니 좋다는 식인데, 그 뜻이 예상과는 달랐다. 도시 집값이 너무 비싸 귀농을 했다거나 하는 의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저자는 이 오두막에서 전기, 전화, 수도, 가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 모든 걸 자체적으로 조달한다고. 바람, 태양, 빗물, 숯불, 장작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왜 오두막을 짓게 되었는지,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사진과 직접 그린 그림을 곁들여 자세히도 설명한다.

 

저자는 멕시코 마야의 민가와 풍경을 목격하고, 비록 허술한 외견이지만 주거공간으로 충분해 보였고 무엇보다 그 정직하고 건강한 풍경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저자에게 그 풍경이란 오로지 자기만족을 위한 표현과 시도에 얽매여 건축을 농락하는 기류가 아닌, 건축을 건전하게 유지하는 건축의 초심에 해당하는 풍경이었다.


건축의 초심, 집의 가치

 

저는 집의 가치는 면적이 아니라,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의 수로 결정된다고 믿습니다.”(본문 속에서)

 

그 초심이란 먼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개념이다. 저자는 비록 14평 밖에 안 되는 작은 오두막이지만, 그 어느 집보다도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걸 최우선으로 한다. 이는 자연스레 인간이 가장 편안한 상태인 잠자리로 이어져, 그 작은 공간을 이용해 소파, 바닥, 침구 수납장, 수납장 위의 다락 등에 잠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다음의 초심은 자연친화적 자급자족의 개념이다. 건축가이기도 한 저자는 빗물을 이용해 생활용수를 확보하고, 태양과 바람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전력을 공급한다. 이 과정을 그림으로 자세히 그려 설명하고 있는데, 보고 있자면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마음먹기에 따라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는 자급자족의 생활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다음은 일종의 공동체적 생활의 개념이다. 저자는 오두막 생활을 혼자 독점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이 체험을 퍼뜨리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저자 또한 이 오두막에서 매일 생활하는 것이 아닌 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해서 사용하고 있고 친구나 지인에게 완전 개방하고 있다.

 

솔직히 오두막을 지으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저는 이 오두막에서 이루어지는 귀중한 체험을 저 혼자 독점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 조촐한 집과 색다른 생활의 실험에 흥미를 보이는 가까운 친구나 지인, 동료 등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자연의 조화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소박한 오두막살이의 경험을 나누고 싶었습니다.”(본문 속에서)


<집의 초심, 오두막 이야기>의 한 장면. ⓒ사이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건강한 답답함을 


이 책은 정말로 짧다. 또한 그림과 사진이 반 이상을 차지하기에, 그 자리에서 다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아쉽다는 생각과 함께 조금은 성의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해본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윌든>처럼 저자 또한 철학적 깊이가 있는 메시지를 충분히 던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언뜻 실용적인 느낌이 너무 많이 들게끔 했다는 아쉬움까지. ‘어떻게오두막을 지었는지 보다, ‘오두막을 짓게 되었는지를 깊이 파고들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대신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아주 단적으로 느낄 수 있던 것은 좋았다. 당장에라도 좋은 부지를 물색해 오두막을 짓고 마당에서 밭을 갈고 지인들을 초대해 좋은 시간을 갖으며 자급자족의 생활을 종종 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조금 불편하고 답답할 테지만, 거기에는 분명 불편에서 파생되는 건강한 노동과 자연이 주는 은총이 있을 것이기에. 이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건강한 답답함을 마주하고 싶다.

 

저는 미요타의 오두막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해본 선과 관으로 연결되지 않는 집에 관한 실험이 비록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문제에 대처하는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인의 삶에 밀착된 문제에 대처하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두막살이는 때때로 불편하고 갑갑하지만, 되돌아보면 그 불편함과 갑갑함을 생활의 지혜와 창조의 정신으로 극복하는 과정이나 먹고 자는 기본적인 생활 행위를 자신다운 방식으로 유쾌하게 영위하는 과정에 그 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본문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