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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그르니에 서한집> 불통 시대에 소통의 정수를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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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카뮈-그르니에 서한집>


<카뮈-그르니에 서한집> ⓒ책세상

'문학'이라 함은 언어로 표현되는 모든 예술 및 작품을 일컫는다. 산문·소설··희곡 등을 비롯해 일기·수필·편지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품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문학을 하고, 문학을 보고, 문학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화하고 싶어서 일 것이다. , '소통'하기 위해서다. 내가 지은 얘기를 들려주고 싶고, 남의 얘기를 듣고 싶은 것.

 

작가가 아닌 일반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문학이 있다. 앞서 언급했던 일기·수필·편지 같은 개인적인 소품들이다. 그 중에서도 '편지'는 소통에 많은 기여를 한다. 일반적으로, 일방적인 편지는 존재하기 힘드니까. 누가 답변도 없는 편지를 쓰고 싶어 하겠는가?

 

여기 한낱 편지를 위대한 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사람들을 몇 사람 추려봤다(이들의 편지가 위대한 이유가, 편지를 쓴 이들이 위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굳이 반론하지는 않겠다). 수많은 위대한 편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품을 뽑았다. 작품이라기 보다는, 편지들을 모아 내놓은 책이다.

 

위대한 소통의 정수들

 

먼저 <반 고흐, 영혼의 편지>(예담)가 있겠다. 살아 생전 지독히도 가난했던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들이다. 주로 그의 후원자이자 동생인 테오와 오랜 세월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단순한 후원자 이상으로 정신적 지주와 같았던 테오와의 편지를 통해 '인간' 반 고흐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테오를 비롯해 어머니, 여동생, 고갱 등에게 보낸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다음은 우리나라 책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개). 신영복 교수가 20년 동안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당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같이 써 제수·형수·부모님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책이다. 소소한 일상과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았다.

 

위대한 소통은 고통스러울 때 그 빛을 발하는가 보다. 다음으로 소개할 책의 편지들 역시 옥중 서간이다. <세계사 편력>(일빛). 인도 독립 후 초대 총리를 역임한 '인도 독립의 영웅' 자와할랄 네루가 옥중 생활을 하면서 외동딸 인디라 간디에게 쓴 편지이자 세계사 교과서다. 딸을 위해 특이하게도 세계사 편지를 썼는데, 이 때문인지 몰라도 그의 딸 역시 여성 총리를 지냈고 손자 역시도 총리를 지낸 바 있다. 서구에 편협된 세계관이 아닌 균형잡힌 세계관과 역사관이 빛나는 편지들이다.

 

알베르 카뮈와 장 그르니에


소통의 정수들, 그 정점에 선 작품을 만나볼 차례다. '장 그르니에''알베르 카뮈' 이들은 세계 문학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 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고등학교 은사이자 유일하다시피한 문학적 스승이었던 장 그르니에. 그들은 1932년부터 1960년까지 장장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카뮈가 112, 그르니에가 123통으로 총 235통의 편지를 주고 받는다. 고통스런 편지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문학적 편지였다.

 

"우리의 지식인 사회가 자랑하여 마지않는 어정쩡한 진리들 가운데는 저마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원하는 저 자극적인 진리도 섞여 있다. 이렇게 되고 보면 곧 우리 자신이 모두 스승이요 노예가 되어 서로를 죽이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러나 스승이라는 말은 그와 다른 의미도 지니고 있다. 그 의미로 인하여 스승과 제자는 오직 존경과 감사의 관계 속에서 서로 마주 대하게 된다. 이럴 경우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의식과 의식의 투쟁이 아니고, 한번 시작되면 생명의 불이 꺼지지 않은 채 어떤 삶 전체를 가득 채워주게 되는 대화인 것이다." 

 

1959년 장 그르니에의 <>이란 책의 서문 요청에 알베르 카뮈가 작성해 보내 준 편지의 일부이자, <> 서문의 일부이다. 이들은 스승과 제자 관계이지만, 서로 다른 길을 갔다. 스승의 권유로 공산당에 입당했지만, 스승의 정치 비판과 공세로 많이 혼란스러워하며 탈당하기도 했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카뮈는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두 사람의 서신 교환은 뜸해진다. 카뮈는 더 이상 스승의 조언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카뮈의 죽음으로 중단될 때까지 서신 교환을 계속한다. 사상적 차이에도 내어놓고 토론하며, 인간적인 존경과 감사를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차이를 인정하고, 토론하고, 인간적 존경과 감사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 어느 때보다 '소통'을 말하지만 제대로 된 소통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실행하려 하는 것일까.

 

진정한 소통이란?

 

소통(疏通)이란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을 뜻한다. 모든 인간 관계의 시작이자,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에 속한다. 편리한 소통의 도구인 핸드폰, 인터넷 등이 그 어느때보다 발달한 시대에 왜 소통은 그 어느 때보다 안 되고 있다고 하는지 아이러니 한 일이다. 많은 분들이 소통의 뜻을 잘못 알고 계셔서 그런거 같다. 특히 그 누구보다도 소통을 잘 해야 하는 분들께서.

 

소통을 하는 건 어렵지 않으면서도 어렵다. 상대를 이해·배려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공감·공유하며, 정상적 토론에 기반한 대화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전제되어도 세상 사람들 모두는 다르기에 진정한 소통을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카뮈와 그르니에를 보시라. 사상적·물리적·지리적·세대 차이에도 끊임없는 소통과 토론(대화)로 감동을 선사하고 있지 않은가.

 

진정한 소통은 '틀림''다름'의 차이를 제대로 아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 게다. 우리 서로 다를 뿐이지만, 이를 틀린 것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소통은 '불통(不通)'이 된다. 지금 이 시대는 틀림을 말하는 시대인가. 다름을 말하는 시대인가. 진솔한 편지를 한 통 쓰고, 읽어보며 진정한 소통이 뭔지 생각해봄은 어떨는지


*이 책은 작년 2012년 11월 경에 출간되었습니다. 통상 1년 6개월 이내를 신간이라고 하기에, '신작 도서'에 위치시켰습니다. 



"오마이뉴스" 2012.11.7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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