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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세기의 여름> 100년 전 유럽 그때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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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1913년 세기의 여름>


<1913년 세기의 여름> ⓒ문학동네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로 평가받는 ‘에릭 홈스봄’은 그의 저서 <극단의 시대:20세기 역사>(까치)를 통해,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1914년부터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진 1991년까지를 20세기라고 보았다. (혹은 러시아혁명이 시작된 1917년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까지) 이는 20세기를 전쟁과 혁명과 위기의 시대라고 보는 에릭 홈스봄의 역사관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상으로 20세기인 1901년부터 1913년까지는 어떤 시대라고 규정해야 하는가? 여기 정확히 그 시대를 지칭하는 말이 있다. 프랑스어로 좋은 시대 혹은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벨 에포크’ 통상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1890년에서 1914년까지의 유럽(정확히는 파리)을 말한다.(스티븐 컨의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휴머니스트)는 이를 1880년에서 1918년이라고 보고 있다. 1920년대 미국의 ‘재즈시대’는 ‘벨 에포크’의 미국판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자, 이 두 시대를 가르는 분기점이 보인다. 애매한 총성으로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의 1914년. 혁명과 폭력의 격동기를 거친 세계가 짧은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뒤로 하고 다시금 혼란의 시대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그 분기점의 바로 전 해인 1913년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맞이해 모든 방면에서 전에 없는 진보를 이루는 시대였을까? 반대로 혁명으로 이룩한 것들을 지키려는 보수의 시대였을까? 다가올 재앙(제1차 세계대전)을 알아차리고 전전긍긍했을까? 미국의 재즈시대 상류층처럼 다가올 재앙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흥청망청했을까?


100년 전 유럽의 속살


벨 에포크 시대의 풍속 ⓒ패션전문자료사전

1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말할 수 있는 것일 테지만, 1913년 당시는 이 모든 것들이 폭발한 시대였다. <1913년 세기의 여름>(문학동네)의 저자는 이 당시를 카프카의 말을 빌려 “신경과민의 시대”라고 하였고,(48쪽) 당시 유럽의 중심이자 모더니즘의 도시인 빈에 모인 수많은 유명 인사들의 생각과 행동들을 보고 “무의식, 꿈, 새로운 음악, 새로운 시각, 새로운 건축, 새로운 논리, 새로운 도덕을 둘러싼 투쟁들이 광란했다”(51쪽)라고 판단한다. 반면 슈펭글러가 자신의 저서『서구의 몰락』을 통해 거대한 시대의 종말을 예견한 것에 관해서는 반대한다. 하지만 이는 당시로썬 충분히 생각해 봤을 논의였다. 그러며 당시를 직접 보고 판단해보라는 듯이, 1913년 1월부터 12월까지의 유럽을 인물 중심으로 생생하게 되살려 낸다. 좋은 시절의 마지막 해이자 재앙의 시대가 직전의 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책은 1913년 새해가 될 때 재즈의 선구자 ‘루이 암스트롱’이 어린 시절 어떻게 트럼펫을 잡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이어서 나오는 인물들은 그 이름만 들어도 누구는 찬양하고 누구는 아는 체 하고 누구는 탄성을 지를 만한 이들이다. 간단히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스탈린, 히틀러,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아인슈타인, 카프카, 토마스 만・하인리히 만 형제, 헤르만 헤세, 프루스트, 버지니아 울프, 브레이크, 릴케, 무질, 피카소, 뒤샹, 클림트,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코코 샤넬, 찰리 채플린 등. 정치, 철학, 의학, 과학, 문학, 미술, 음악, 패션, 영화, 건축 분야 등에서 20세기를 넘어 인류사에서도 거론될 만한 인물들이다. 저자는 책, 신문, 편지, 잡지 등을 기본으로 사실적 상상력을 발휘해 여백을 메운다.

 

유명인들의 '비밀'과 '우연'


보다보면 익히 알고 있던 인물들의 숨겨진 모습들 때문에, 재미는 물론이고 당시를 정의하고 있는 바를 느낄 수 있다. 이들의 어떤 모습이 1913년을 정의하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봤던 부분들은 인물의 ‘비밀’과 인물들의 ‘우연’이다.

 

잘 알고 있는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겠지만, 카프카는 전업 작가가 아니었고 보험공무원이었다. 그는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이해할 수 없는 괴기한 편지로 사랑을 키워가다가 실제로 보고난 후 실망을 금치 못했다. 토마스 만과 비트겐슈타인 등은 동성애적 성향을 보였으며 클림트와 코코슈카, 실레 등은 변태적 색마 기질이 있었다. 히틀러는 조용하고 찌질한(?) 미술학도였고, 쇤베르크는 지휘 도중 뺨을 맞았다. 아인슈타인과 헤르만 헤세는 형편없는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모나리자>가 1913년 내내 사라졌었다. 히틀러는 군대에 가기 싫어 빈으로 도망을 쳤고,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는 병역도피자 히틀러의 실종신고를 한다. 


아돌프 히틀러요시프 티토이오시프 스탈린


20세기 최악의 독재자들인 히틀러와 스탈린과 티토는 1913년 당시 한 도시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스탈린과 트로츠키가 우연히 만났을 때,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트로츠키를 죽이는 사내가 태어난다. 엘제가 낳은 오토 그로스의 아들은, 같은 해 오토 그로스가 결혼한 아내한테서 낳은 아들과 이름이 똑같았다. 게다가 오토 그로스의 아내 이름은 오토 그로스의 두번째 연인인 프리다와 똑같았다. 카프카, 릴케, 무질, 브레이트 등은 '신경쇠약'으로 통칭되는 고질병에 시달렸다.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1913년 유럽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이 떠오른다. 영화에서는 1920년대 파리에 모인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 거투루드 스타인 등이 등장하는데, 이 책의 등장인물과 거의 동일하다.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1920년대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과거로 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필자 또한 이 책의 배경인 1913년 유럽으로 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책에서 보여지는 1913년의 유럽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것 같다. 


주지했듯이, 많은 유명인들이 알 수 없는 불안에 떨며 마음 속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유럽은 전 세계 최고의 국가들과 도시들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기존의 리얼리즘을 반박하며 모더니즘이 고개를 내밀어 주류가 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했다.'(49쪽) 제목이 '세기의 여름'인 것 처럼 모든 것들이 약동하고 활동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이 시기를 규정하는 모더니즘의 물결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문구를 옮긴다. 1913년 5월에 초연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관람하고 하리 케슬러 백작이 남긴 일기이다. 


"아주 새로운 안무와 음악. 완전히 새로운 비전, 처음 보는 것, 마음을 사로잡는 것, 그럴듯한 어떤 것이 갑자기 내 눈앞에 있었다. 예술이 아니면서 동시에 예술인 새로운 종류의 야만성이다. 모든 형식을 파괴하고, 혼돈에서 갑자기 새로운 형식이 나타난다."(본문 중에서)


책은 이처럼 1913년 유럽의 모습을 유명인물들의 일화를 통해 아주 미시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남는다. 아쉬운 부분이라기보다는, 이런 책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랄까? 유럽이 아닌 다른 곳에서 유명한 인물이 아닌 평범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면 책을 읽다보면 종종 흥미로운 부분이 눈에 띈다. 순전히 저자의 글 솜씨와 상상력에 기반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책은 굉장히 짧은 챕터와 챕터로 나뉘어져 있고, 연대기순은 아니다. 그런데 가끔 챕터와 챕터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앞 챕터 마지막 구절: "그런데 제 글씨를 읽을 수 있습니까?" 

뒤 챕터 첫번째 구절: 당신은 세계를 읽을 수 있습니까?


앞 챕터 마지막 구절: 1913년은... 내면세계가 그림으로, 책으로, 집으로, 광기로 실재가 된 해였다. 

뒤 챕터 첫번째 구절: 아니면 빨간 책으로도. 


앞 챕터 마지막 구절:『세계 최악의 여정』

뒤 챕터 첫번째 구절: '세계 최악의 여정'


자, 그렇다면 1913년으로부터 정확히 100년이 지난 지금, 2013년 한국은 어떨까? 100년 전 유럽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새로운 문화가 기존의 문화를 뒤집어버리고, 많은 사람들이 육체는 튼튼해졌지만 그만큼이나 신경쇠약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난 세기 IMF가 일어나기까지(누군가는 그 이후에도) 가파른 상승세를 구사하며 한국판 '벨 에포크', '재즈시대'를 구사했던 것까지도 비슷하다 하겠다. 역사는 시기와 지역과 사람에 상관없이 돌고 도는 것일까? 


1913년 세기의 여름 - 10점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