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더 기타리스트>
<더 기타리스트> ⓒ어바웃어북
손재주 많은 삼촌이 통기타를 치는 걸 어릴 때 본 기억이 난다. 코드를 잡기 위해 여기저기를 만지작 거리시더니 이내 멋지게 한 소절 뽑으셨다. 연주가 시작되자, 삼촌은 더 이상 내가 알던 삼촌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기타리스트'가 되어 있었다. 굉장히 멋있었고, 사람 자체가 달리 보였다. 그렇게 나에게 기타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악기가 아닌, 기타리스트가 연주해야만 의미있는 악기로 남았다.
우리집에는 일렉트릭 기타와 증폭기, 스피커가 구비되어 있다. 몇 년 전에 동생이 구입했던 것인데, 지금은 먼지에 쌓여 방 한구석에 놓여 있다. 일렉트릭 기타는 비주택가의 지하실에서 방음장치를 해놓지 않은 이상, 쉽게 연주될 수 없는 비운의 악기이다. 하지만 분명 기타는 오늘날 가장 많이 보급되어 있는 대표적 악기 중에 하나로,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부터 악기로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기타리스트가 무대에 서게 되자 기존 기타의 작은 소리로는 좌중을 압도할 수 없었고, 소리를 증폭시키기 위해 기계 기타가 발명되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좌중을 압도하는 엄청난 힘의 음악이 락앤롤이 탄생했다. 흑인들의 음악인 블루스에서 태동한 이 음악 조류는 기타리스트에게 완벽하게 맞춰졌다. 비로소 기타리스트들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완벽히 정리한 근현대 음악의 '기타사'
책 <더 기타리스트>(어바웃어북)은 블루스부터 락앤롤에 이르기까지 약 50~60년의 역사를 장식한 105명의 기타리스트들을 한 권으로 정리하였다. 사진들을 곁들여 그들의 개인 약력을 간단히 정리하였고, 근현대 음악사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비교적 상세히 조명하였다. 105명이나 되는 기타리스트들이기에 솔직히 모르는 인물이 태반이지만,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와 함께 근현대 음악의 '기타사'를 완벽하게 정리해가는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기타리스트들은 모르지만, 락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유명 그룹들은 많이 알고 있다. 비틀즈와 레드 제플린을 시작으로 롤링 스톤스, 딥 퍼플, 퀸, AC/DC, 메탈리카, 본 조비, U2, 너바나, 라디오헤드, 콜드 플레이, 오아시스, 뮤즈 등. 책에서는 이 모든 유명 락그룹의 기타리스트들 또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큰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 그룹의 음악을 다시 찾아 들어보면서, 기타의 선율에 집중을 하게 되었다. 아울러 그동안 듣지 않았던 다른 악기들까지도. 보컬리스트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했던 락 그룹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사실 그런 생각을 대표적인 그룹이 존재한다. 1963년도에 결성된 '야드버즈'이다. 흔히들 이 그룹을 두고 "기타리스트의 위치를 재정립 시켜준 그룹"이라 한다. 다른 그룹들이 보컬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면, 이 그룹은 기타리스트들을 포함해 연주자들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그룹에서 3명의 위대한 기타리스트들을 배출한 것이다. '에릭 클립튼', '제프 벡', '지미 페이지' 이 중에서 '지미 페이지'는 후에 '레드 제플린'을 결성하기도 한다. 물론 이 세 명은 책에서 자세히 다뤄지고 있다.
프린스가 위대한 기타리스트?
한편, 책으로 보다가 특이한 이름을 발견했다. '프린스' 프린스라면 1980년대 세계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유일한 라이벌이었던 가수가 아닌가? 그런 그의 이름 앞에 걸출한 기타리스트라는 칭호가 붙어 있다니 낯설지 않을 수 없다. 그를 단순히 섹시한 팝스타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는 비범한 아티스트였다.
2011년「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 100'에서 33위에 올랐고, 'www.guitar.com'의 순위에서도 30위에 올라있다고 한다. 또한「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100' 순위에서도 27위에 올라있다. 위대한 기타리스트이자 아티스트라고 아니할 수 없겠다. 그래서인지 이 천재적인 기타리스트는 2007년「롤링 스톤」에서 발표한 '가장 저평가된 기타리스트'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참고로「롤링 스톤」은 미국의 잡지로, 대중 문화(대중 음악)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역사와 전통의 세계 최고 음악 잡지이다.)
단 한 명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
여기, 기타의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단 한 명의 기타리스트가 있다. 그 이름만 들어도 온몸에 전율이 이는, 사실상 내가 아는 유일한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 그는 30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죽고 말았지만, 락의 역사에서는 가장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지미 헨드릭스는 죽기 3년 전인 1967년 영국에서 정식으로 데뷔했다. 데뷔 즉시 열광적인 환호를 받고 절대적인 지지를 획득했다고 한다. 이후 미국으로 금의환향한다. 하지만 그의 연주는 오래가지 못한다. 1970년 사망하고 말았다.
"기타리스트로서 지미 헨드릭스가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에 있어서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을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혁신적인 연주력에 있다... 스테이지 매너와 쇼맨수비도 빼놓을 수 없다... 지미 헨드릭스는 의심의 여지없이 당대 사이키델릭 록 기타의 최고봉이었으며 이후 등장한 하드 록과 헤비메탈 기타리스트들의 선구자적 존재였다. 더 나아가 1960년대 후반 이후 대거 등장하게 되는 록과 재즈의 만남, 그러니까 재즈 록 혹은 퓨전 재즈의 발전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음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거의 모든 조사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의 자리는 오직 한 사람(지미 헨드릭스)의 차지다." (본문 중에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들
이 책은 한 명 한 명 천천히 그 삶을 음미하며 읽기에 부담이 없다. 혹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만 골라서 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관심이 없거나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사람 이름, 그룹 이름, 악기 이름, 음악 이름, 노래 이름 등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이름들이 끝도 없이 나열되기에 지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이 모든 걸 너무나 잘 아는 저자는 신들린 듯 연주하는 기타리스트처럼 조사하고 공부하고 음악을 들으며 글을 썼을 것이 자명하다.
또한 계속 읽다보면 느끼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105명의 기타리스트들이 모두 거장이고 전설이고 최고이고 중요하고 중심이고 가장 유명하고 가장 기타를 잘 친다는 것이다. 물론 수백 수천 명의 기타리스트들 중에서 뽑고 뽑은 것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천편일률적인 수식어를 계속해서 보기에는 조금 거북하고 민망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여기서 소개되는 거의 모든 기타리스트들이「롤링 스톤」에서 발표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100'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500곡'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 그리고 'www.guitar.com'에서 선정한 기타리스트에 올라가 있다는 점이다. 책을 덮고 나니, '위대'에 대해 재정립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저자의 열정에는 박수를 쳐주지 않을 수 없다. 편집자의 권유에 따라 1년여동안 준비를 했다고 하는데, 이처럼 방대한 자료를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토록 꼼꼼하고 정확하게 정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느끼는 또 하나의 감정, 그들의 기타가 조용히 흐느끼기 사작한다. (그리고 책 표지에 대해 한 마디, 왜 기타의 4번째 줄이 오른쪽으로 휘어졌을까?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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