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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볼> 인간에게 놀이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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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더 볼>


<더 볼> ⓒ황소자리

20여 년 전 어릴 때 작성했던 일기를 들춰보고 있노라면, 참 다양한 놀이를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에야 놀이가 대부분 컴퓨터를 이용해 온라인에서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당시는 몸을 이용해 오프라인에서 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소꿉놀이, 인형놀이, 블루마블, 체스, 오목 등의 실내 놀이에서부터 술래잡기, 숨바꼭질, 달리기, 팽이치기 등의 실외놀이까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왜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마냥 재미있어서라고 할까?

 

그 중에서도 나는 공으로 하는 놀이가 가장 재미있었다. 수많은 공놀이가 있지만,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건 농구, 축구, 야구(발야구도), 피구. 그리고 테니스공을 이용한 캐치볼 정도. 동그란 공을 쫓아 이리저리 달리다 보면 하루해가 다 가곤 했다. 역시나 왜 했는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공을 치고 던지고 상대방에게서 빼앗고 상대방의 골에 넣는 행위가 재밌었던 것 같다. 아니, 마냥 재밌는 것만은 아니었다.

 

어떤 공놀이를 하던지 간에, 경쟁이 뒤따랐기에 가슴 뛰는 긴장과 희열, 쾌감이 함께 했다. 내 것을 지키고, 상대방의 것을 빼앗아야만 하는 경쟁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완전히 깨닫게 된 순간부터 공놀이는 다르게 다가왔고, 더 이상 놀이의 개념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

 

인류는 왜 놀이를 하게 된 것일까?


그럼에도 공놀이는 끝없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남들이 공놀이를 하는 것을 돈을 내면서까지 보고, 응원하고, 열광한다. 그러다보면 또 직접 하고 싶어진다. 자연스레 이기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공놀이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인류학 박사가 쓴 <더 볼>(황소자리)은 인류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 분명한 이 궁금증을 풀어헤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가졌던 공놀이에 대한 궁금증 해소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저자는 공놀이는 왜 하는가라는 사소하지만 심오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탐험을 시작한다. 인류학 박사 출신인 만큼 공놀이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를 접목시키려 한다. 먼저 놀이에 집중한다. 우리는 모두 놀이를 하며 모든 시대와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이 놀이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놀이가 창조성과 혁신의 핵심이자 우리가 느끼는 최상의 환희와 쾌락의 원천이며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란다. 너무 추상적이다. 저자는 돌고래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를 찾아가 자세한 얘기를 듣는다.

 

그에 따르면 놀이는 생명력을 소모하고 쓸데없이 부상을 당할 염려가 있는 행동이지만, 결코 무의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의 인지 발달과 적응에 있어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한다. 놀이는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서 하는 습성이 있는데, 이는 고도의 사회적 협동 능력을 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적응과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 다음으로 놀이를 좋아하는 돌고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겠다.

 

그리고 보니 취미가 특기가 되고 특기가 직업으로 이어지며 직업이 살아가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모습을 자주 보곤 한다. 특수한 직업일수록 그럴 가능성이 커진다고 하겠다. 여기서 취미는 놀이로 치환이 가능하지 않을까? 더 와 닿는 예를 들어 보자면, 대부분의 스포츠 선수들이 어릴 때 취미로 해당 놀이를 자주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왜 공놀이를 하게 되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저자는 탐험을 계속한다.

 

인류는 왜 공놀이를 하게 된 것일까?


주인공은 계속해서 돌고래이다. 아무런 도구 없이 마냥 돌아다니기만 하던 돌고래들이 공을 보자 그 중심으로 모두 모여든다. 공에겐 어떤 특징이 있을까. 저자는 공이야말로 가장 생기 넘치는 무정물 중 하나일 것이며, 동역학적으로 흥미롭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즉 공은 튀어 오르고, 구르고, 비교적 쉽게 다양한 속도로 치거나 던지거나 잡을 수 있는 물체로, 공기역학적이면서도 어느 방향으로 나갈지 예측 불가하다는 것이다. 또한 공은 사회적 도구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인간의 경우, 시대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공을 만들고 사용했다. 주로 동물 가죽, 동물 자체를 이용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런 공을 이용한 놀이는 아주 자주 행해졌다. 옛날 인류의 조상들은 여가 생활 없이 밤낮으로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해왔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충분한 여가 생활을 즐겼다. 하지만 그 여가 생활이라는 것이 몸을 이용한 놀이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생존에 필요한 신체적 기민성과 인지력, 시공간 파악능력이 길러졌다고 한다.

 

요즘 들어 그런 말들이 공공연히 돌지 않는가? 요즘 애들은 집 안에만 처박혀서 컴퓨터나 하느냐고 오히려 옛날 애들보다 몸이 많이 약하다고. 옛날에는 뭘 하든지 몸을 이용해야 했고 놀려고 해도 밖에서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그렇다면 그 옛날 인류의 조상들 시절에는 오죽했으랴. 사실 놀이가 지금처럼 천대받고 하찮은 취급을 받은 적도 없을 것이다.

 

저자는 던지는 행위에 주목한다. 이번엔 진화생물학자의 연구를 가져왔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한 손으로 힘껏 무엇을 던지는 행위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에너지 소모를 줄이며 비교적 안전하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고 또한 생존에서도 유리할 수 있었다. 이 행위는 좌뇌가 맡는데, 좌뇌는 언어나 도구 사용에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 공놀이의 한 축을 담당하는 던지기는 도구의 발명, 가공기술 향상, 불의 발견과 같은 행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즉 인류 진화에 말이다.

 

공놀이에는 몸과 마음을 자극하고 단련시키며 감각을 예리하게 단련해 인간 정신을 고양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공으로 하는 스포츠의 원류를 찾아서


저자는 이어 공으로 하는 유명한 스포츠의 원류를 찾아 나선다. 축구, 테니스, 울라마, 라크로스, 야구, 미식축구, 농구. 이 중에서 울라마와 라크로스는 고대 아메리카 대륙에서 행해졌던 공놀이의 일종이라고 한다. 울라마의 경우 부족의 전통 놀이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라크로스는 세계선수권 대회까지 존재할 정도로 큰 스포츠가 되어 있다. 이 두 개는 이정도로 넘어가고자 한다.

 

축구와 테니스의 시작은 너무나도 달랐다. 저자에 따르면, 축구는 고대 스코틀랜드 오크니 제도의 커크월에서 행해진 라고 불리는 공놀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래 전 이곳은 어떤 폭군에 의해 지배되었는데, 한 젊은이가 그의 머리를 베어 가져왔다. 마을에 거의 다다랐는데, 탈진하고 말아서 힘껏 머리를 차서 마을로 보냈다. 이 모습에 분통이 터진 마을 군중들이 잘린 머리를 발로 차며 거리를 누볐다. 이것이 축구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테니스의 경우, 열린 들판과 중세 마을의 좁은 샛길에서 평민들이 하던 축구와 달리 중세 수도원의 회랑 안에서 시작되었다. , 중세 사회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했던 가톨릭교회의 귀족과도 같은 수도사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훗날 왕들의 스포츠혹은 귀족 스포츠로 불리는 테니스의 기원으로 알맞아 보인다.

 

야구는 그 기원이 영국에 있음이 분명하다. 영국 아이들의 모래밭 놀이들로부터. 또한 영국의 국기인 크리켓은 야구의 사촌뻘 되는 스포츠이다. 하지만 세계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야구의 본산지임을 주장하곤 한다. 미국을 필두로, 폴란드, 루마니아, 덴마크, 리비아 등이다. 이 중 미국에서 야구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미국은 구세계(영국)이 물려준 것이 아닌 자신의 경기가 필요했다. , 야구가 필요했고 그것을 탄생시켰다.

 

미국 그 자체라고 불리는 미식축구는 다른 스포츠보다 훨씬 역사가 짧다. 남북전쟁 후 젊은 참전용사들이 운동 경기에 대한 새로운 열정을 대학 캠퍼스로 몰고 왔고, 야구와 미식축구 시합 등이 행해졌다. 한편 영국에서 어느 규정에 따라 축구를 할 것인지 논쟁이 불붙었다. 잡고 달리느냐 아니면 드리블하며 차느냐. 이 교착상태에서 미식축구(football)와 축구(soccer)로 나뉘었다. 하지만 미식축구는 미국인들만 사랑할 뿐이지 다른 모두는 열렬히 혐오하는 경기로 떠오르게 되었다.

 

농구는 19세기 말에 미국에서 어느 체육교사에 의해 발명되었다. 경쟁적이면서도 실내에서 할 수 있어야 하고, 기술과 스포츠맨십을 요하며 전신운동 효과를 제공하면서도 극도로 거칠지 않고 인체 또는 장비에 손상을 입히지 않는 경기! 치밀하고도 집요하게 공을 사용하는 각종 스포츠를 분해하고 조사해서 발명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공놀이를 하는 진짜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공놀이를 행하는 이유는 주지했듯이 재미이다. 솔직히 이 책에 나온 온갖 과학적, 역사적, 인류학적 이유로는 완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어느 누가 그런 생각(심신 수련, 정신 고양 등)을 하며 공놀이를 하겠는가.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놀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를 깨달았는지, 저자도 에필로그를 통해 공놀이의 진짜 본질에 대해 언급한다. 먼저 아들을 통해. 저자의 왜 공놀이를 하냐?”의 물음에 한마디로, 재미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다음으로는 에콰도르 정글에 찾아가 알게 된 원주민 아이에게서. 그는 축구공의 어떤 점에 그토록 빠졌는지 묻는 말에, 직접 동작을 취하며 축구의 재미를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저자 또한 말한다. “그래도 괜찮을 거였다. 재미있을 거였다.”

 

허무한 결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평소 궁금해 마지않았던 놀이의 이유를 찾아 헤맸지만, 결론은 재미인 것이다. 그렇다. 놀이는 놀이이다. 놀이를 통해 무수히 많은 걸 하게 되었고, 할 수 있지만 그걸로 된 것이다. 놀이가 더 이상 백해무익하고 해로운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공과 공놀이를 통한 인류학적 탐험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현상을 보는 눈은 변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