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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경제민주화' 대신 '정신민주화'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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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 돌베개

지난 해 10월 28일 오후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북 페스티벌을 찾은 당시 안철수 대선후보는 이날 두 권의 책을 집어들었다. 달라이 라마·스테판 에셀의 대담집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김두식 교수가 쓴 <불편해도 괜찮아>였다.

 

인류의 진보를 위하여 물질이 아닌 정신을 강조하는 책과 인권 문제를 다루는 책을 고른 안 후보의 안목이 자못 탁월해 보였다. 자칫 쇼맨십으로 비칠 수 있는 행사에서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를 정확히 집어냈다. 특히 '달라이 라마'와 '스테판 에셀'이라는 두 거목이 만나 정신의 진보에 대해 대담을 나눈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를 선택한 것은 경제만 부르짖는 작금의 대선 진행 과정에서 일말의 빛을 본 듯했다.

 

시대를 대표하는 거목들의 만남은 여럿 목격되어 왔다. 김대중·김영삼이나 안철수·문재인의 만남과 같은 정치적 만남과 더불어 수많은 비공식 만남들이 있을 것이다.

 

지휘로 인종과 국가를 초월하는 세계적인 음악가 '다니엘 바렌보임'과 오랜 편견에 짓눌렸던 오리엔탈리즘을 재정립한 최고의 문화평론가 '에드워드 W. 사이드'가 만나 각자의 정체성을 초월해 '전체'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그린 <평행의 역설>(생각의 나무, 2003)에서의 만남은 결코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두 거목의 만남이었다.

 

살아있는 팝의 전설이자 비틀즈의 멤버였던 '폴 메카트니'와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의기투합해 환상의 하모니로 1983년 빌보드 6주 연속 1위를 차지했던 < Say Say Say >는 그 어마어마한 후광과 의미있는 가사로 팝의 역사에 영원한 전설로 남아 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문학자 '도정일' 교수와 동물행동학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통섭의 대가 '최재천' 교수가 만나 인문과 자연에 대해 나눈 심도깊은 대담과 인터뷰를 책으로 옮긴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휴머니스트, 2005)는 스테디셀러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처럼 전혀 다른, 혹은 비슷한 분야의 거목들의 만남은,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고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다면 이번 만남은 어떤가? 달라이 라마와 스테판 에셀, 스테판 에셀과 달라이 라마의 만남.

 

짧지만 강한 두 거목의 만남

 

지난 2011년 12월 10일, 프라하에서 동남아시아 인권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노벨평화상을 타고도 구금상태에 있는 류사오보를 위해, 바츨라츠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이 주도하여 개최한 '포럼 2000'이었다. 그곳에서 이 시대의 두 거목 '스테판 에셀'과 '달라이 라마'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전세계적인 영적 지도자로 많이 알려져 있다. 반면에 '스테판 에셀'은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으로, 사형위기를 넘겨 외교관을 거쳐 인권과 환경문제에 갖고 사회운동가,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에 나온 <분노하라>(돌베개)는 전세계적으로 3500만부가 팔려나가, 그의 목소리를 알렸다.

 

얼핏보면 이 둘은 정반대인 듯하다. 비폭력을 주장하는 달라이 라마와 레지스탕스 출신인 스테판 에셀. 하지만 그들의 바람은 하나다. 물질의 진보가 아닌 정신의 진보를 통한 인류, 나아가 지구의 진보.

 

스테판 에셀은 말했다.

 

"민주주의, 이는 '사람들'입니다. 특권층이 아닌 보통 사람들 말입니다. 우리가 도처에서 최상층 부자들과 극빈자들의 기막힌 격차를 목도한다면, 민주주의는 뭔가 행동하고 또 해야 하며, 극빈층이 그들의 권리와 자유를 누리고 살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정치는 이런 것을 위해 하는 것이며, 우리는 여기서 정신적 영역을 회복합니다."(67쪽)

 

달라이 라마가 말했다.

 

"정신에 접근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적 차원, 즉 믿음의 차원입니다. 그러니가 이는 보편적인 차원이 될 수는 없지요. 또 하나는 좀 더 근본적이고 보편적이고 모든 사람과 맞는 차원으로, 우리 몸에 깃든 그대로의 정신,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지니고 있는 정신, 우리가 '정신의 지도'를 이야기할 때 말하는 그 '정신'의 차원입니다."(66쪽)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임과 동시에 이 시대가 추구해야 하는 바이다. 이른바 '정신 민주주의의 보편화'라 지칭할 수 있겠다. 이는 많이 배운 사람만 누리는 것도 아니요, 종교를 믿는 사람만 누리는 것도 아니요, 부자들만 누리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누릴 수 있고, 누려야 하는 보편적 가치이다. 그것이 바탕이 될 때 전지구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고 진정한 '평화'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 짧지만 강한 대담을 보며, 그들의 분노가 느껴졌다.

 

우리가 원하는 건 평화

 

스테판 에셀이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이 있었다.

 

"다 함께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어떤 거창하고 어렵고 있어보이는 듯한 말이 아니다. 그 어떤 바람보다 원하고 원하지만 이루어지기 힘든 말이다. 평화. 태초 이래, 인류는 항상 평화를 위해 달려왔던 것이다. 각종 폭력, 비폭력 대화와 행동들의 목적은 같았다. 다만, 수단과 목적이 뒤엉켜 헤어나오고 있지 못할 뿐.

 

경제민주화를 이루고, 비정규직에게 관심을 쏟고, 빈부격차를 줄이고, 범죄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하나같이 똑같은 이번 대선 주자들의 공약. 결국 말하고자 하는 건 '평화'이지만, 잘게 잘라서 말하니 대국적으로 보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대국적 차원에서 한국의 반 세기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있는 대통령이 뽑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런 공약들은 단지 공약으로만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지성이되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죽은 지성이 아닌 '행동하는 지성'. 영성이되 열린 사고를 갖지 못하고 자신들의 세계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반(半) 영성이 아닌 '성찰하는 영성'. 우리는 평화를 갈망하며 행동하고 성찰하는 이들의 출현을 갈망한다. 단순한 리더십이 아닌 진정한 '이끔'은 만남 속에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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