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엔젤 하트>
1955년 미국 뉴욕, 어느 날 사설탐정 '엔젤 하트'는 변호사 와인셉을 통해 '루이스 사이퍼'라는 사람으로부터 사건 하나를 의뢰받는다. 전쟁 전에 가수였고 전쟁 때 연애병사로 차출되었다가 큰 부상을 당한 자니 페이버릿을 찾아달라는 의뢰였다. 사이퍼가 그에게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자니가 전사하면 특정 담보를 포기하기로 계약했기에, 생사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엔젤은 우선 자니가 있었다는 포킵의 사라돗드 하베스트 기념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조사해 본 결과 자니는 자그마치 12년 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하는데, 12년 전엔 볼펜이 나오기 전이니 만큼 뭔가 수작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엔젤은 서명한 파울러를 찾아간다. 알고 보니 자니는 12년 전에 누군가에 의해서 병원을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엔젤이 잠깐 밖에 나갔다 온 사이 파울러는 죽어 있었다.
엔젤은 사건에서 손을 떼고 싶었지만 사이퍼가 돈을 파격적으로 많이 준다기에 조사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자니의 관계들을 더욱더 파헤치기 시작하는 엔젤, 자니의 여자친구였던 점성술사도 만나고 자니 친구의 딸도 만나고 자니의 동료였던 연주자도 만난다. 그런데, 그가 만난 이들이 하나둘씩 죽어 나간다. 엔젤도 위험에 빠진 걸까? 엔젤이 죽음들에 관련이 있는 걸까?
앨런 파커 감독의 대표작
종국에 가서 모든 게 수면 위로 드러나면 제목부터 의미심장해지는 영화 <엔젤 하트>는 미국에서 개봉한 지 35년이 흘렀고 한국에서 개봉한 지 33년이 흐른 고전이다. 얼마전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했는데, 괴기스럽고 을씨년스러우며 난해한 오컬트 스릴러다. 대영제국 훈장과 기사 작위도 받은 '앨런 파커' 감독의 작품이다.
앨런 파커 감독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데,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페임> <에비타> 그리고 <엔젤 하트> 같은 명작을 남겼다. <데이비드 게일>이라는 희대의 반전을 선사하는 유명한 문제작을 유작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음악'이 참으로 중요하게 작용하는 바, 영화 음악의 대가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그런가 하면 비주얼리스트로도 유명한 앨런 파커 감독이다.
<엔젤 하트>는 흔히 '오컬트 스릴러의 교과서'로 불리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영화를 따라가면 스산하고 무미건조한 '하드보일드 탐정물'로도 손색이 없다. 기이한 사건들이 줄을 잇는 사이 꽤 과격하고 섬뜩한 폭력의 결과들이 순간을 장식하는데, 천사스러운 이름을 가진 엔젤의 반응이 의외로 건조하다. 벌벌 떨거나 도망치거나 어쩌질 못하거나 하는 끈적한 반응이 없는 것이다.
<엔젤 하트>를 세 번 봐야 하는 이유
다분히 천사스러운 이름의 '엔젤 하트(Angel Heart)' 그리고 다분히 악마스러운 이름의 '루이스 사이퍼(Louis Cyphre)', 당대 최고 그리고 유일무이했던 남자 섹시 심벌 '미키 루크'가 엔젤 하트를 맡아 주연으로 분했고 영원한 할리우드 대표 명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루이스 사이퍼로 특별 출연했다. 미키 루크의 리즈 시절을 엿볼 수 있고 로버트 드 니로의 파격 연기 변신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한 번 볼 때와 두 번 볼 때, 그리고 세 번 볼 때 모두 완전히 다르다. 처음 볼 때는 하드보일드 탐정물의 색채가 짙을 것이다. 저간의 숨겨진 사정을 잘 모른 채 엔젤 하트의 시선에서 사건의 양상들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볼 때는 느와르 스릴러의 색채가 짙을 것이다. 역시 엔젤 하트의 시선이지만 저간의 사정을 알고 나면 그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 번쯤 봐야 <엔젤 하트>를 제대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오컬트의 색채를 만끽할 수 있을 텐데, 엔젤 하트가 왜 그 자리에 있었고 그때마다 환풍기는 왜 돌아가며 루이스 사이퍼가 자니를 찾는 이유는 무엇이고 왜 기어코 엔젤이 찾게끔 했으며 사이퍼의 달걀 씬과 엔젤의 엘리베이터 하강 씬 등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굉장히 오컬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알면 알수록 머리카락을 쭈뼛 서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경험을 할 것이다.
<엔젤 하트>가 끼친 영향
<엔젤 하트>는 사실 개봉 당시엔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이미 1970년대 <엑소시스트> <오멘> <서스페리아> 같은 정통 오컬트 영화들이 나와 크게 흥행했는 바, <엔젤 하트>는 하이브리드 장르로 오컬트 영화의 그것을 바라는 관객의 입맛도 또 탐정물 영화의 그것을 바라는 관객의 입맛도 잡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하이브리드 장르로서 '오컬트 스릴러'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많은 영화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가깝게는 나홍진의 <곡성>이 전체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 같고 멀게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가 엔젤 하트의 기억에 관한 전체적인 형식과 느낌에 영향을 받은 듯하며 박찬욱의 <올드보이>도 이 영화의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반전과 궤를 같이 한다. '기분 나쁜'을 기본 장착하려는 스릴러 영화라면 <엔젤 하트>를 교과서처럼 달달 외우고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인간의 본성은 선할까 악할까, 선과 악 모두를 지니고 있을까. <엔젤 하트>는 인간이 선과 악 모두를 지니고 있으나 악의 쪽으로 기울어지기 쉽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곁엔 쉽고 빠르고 강력한 유혹들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유혹들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을 뿐더러 알게 모르게 유혹들에 휩싸인 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천사의 심장을 지녔지만 타락해 악마가 된 루시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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