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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기발한 상상력으로 중년 위기를 표현하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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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포스터. ⓒ워터홀컴퍼니(주)

 

지난 2022년 3월 미국 개봉 이후 북미 7천만 달러, 전 세계 1억 달러의 흥행 수익을 보이면서 배급사 A24 자체 기록을 경신한 영화가 있다. 양자경 주연, 루소 형제 제작, 대니얼스(대니엘 콴, 대니엘 샤이너트 형제) 감독 연출의 제목도 화려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다.
 
미국 독립영화계의 신흥 강자에서 유일무이한 최강자로 거듭나고 있는 영화 배급사 ‘A24’, 1980~2000년대까지 <예스 마담> <폴리스 스토리 3> <007 네버 다이> <와호장룡> 등을 통해 액션 스타로 자리 잡은 양자경, <캡틴 아메리카>와 <어벤져스>로 대박을 친 후 다양한 블록버스터 제작으로 입지를 키워 가고 있는 루소 형제, 기발하고 기괴하며 기대 이상의 상상력을 품은 <스위스 아미 맨>으로 이름을 알린 대니얼스까지 면면이 은근 기라성 같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다중우주, 즉 멀티버스를 소재로 SF와 액션에 코미디와 드라마 등이 가미된 장르에 기대어 환상적이면서도 기괴하고 ‘병맛’ 같은 상상력과 비주얼을 자랑하는 한편 따뜻하기 이를 데 없는 감성을 자극한다. 그야말로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영화다. 충분히 열광할 만하다.
 
평범한 중년 앞에 나타난 멀티버스 신세계 
 
어느덧 50대에 접어든 에블린은 미국에서 힘겹게 세탁소를 꾸려가고 있다. 옛날 20대 때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웨이먼드와 결혼해 미국으로 이민을 왔던 것인데, 한때 배우를 꿈꿨던 것에 비해 현실은 칙칙하기만 하다. 남편은 착하기만 해서 믿음이 안 가고 하나 있는 딸은 대학을 중퇴하고 커밍아웃을 했다. 늙고 병들었지만 꼬장꼬장한 아버지까지 있다.
 
그러던 중 세금 신고를 잘못해서 세탁소가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자, 에블린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남편과 함께 국세청에 가서 조사를 받는다. 깐깐하고 무례한 직원 앞에서 난감해하고 있던 찰나, 다른 우주에서 왔다는 웨이먼드가 에블린을 새롭고 이상한 세계로 이끈다.
 
웨이먼드가 말하길 절대 악이자 멀티버스의 완전한 붕괴를 꿈꾸는 조부 투파키를 막을 사람이 오직 에블린밖에 없다며 그녀를 설득하려 하지만, 그녀에겐 멀티버스의 평화고 나발이고 당장 눈앞의 세무 조사가 우선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 우선일까? 그런데, 다른 우주의 웨이먼드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듣도 보도 못한 상상력이 활개 치다
 
영화는 크게 세 파트로 나뉘는데, 제목을 이루는 세 단어 ‘에브리씽(모든 것)’ ‘에브리웨어(모든 곳)’ ‘올 앳 원스(한꺼번에)’가 각 파트의 제목이다. 영화를 보면, 그야말로 모든 곳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일어나 들이닥친다. 흔한 이민 가정의 삐걱거리는 분주함이 극초반을 장식할 뿐, 멀티버스가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펴는 초반 이후엔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비주얼도 비주얼이거니와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듣도 보도 못한 상상력이 활개를 치니, 환상적인 건 물론 황홀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겠다. 정신은 메인 우주의 것이지만 육체가 타 우주로 옮겨 다니며 에블린에게 상상이나 꿈에서나마 간신히 볼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된다. 그건 모두 에블린의 아주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큰 선택까지 촘촘하게 길이 나 있는 덕분이다. 이 우주에선 에블린이 이렇게 살고 있지만 저 우주에선 완전히 다르게 살고 있다. 그걸 깨달으면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수 있겠지만 정신적·육체적으로 버티기 힘들 테다.
 
그런가 하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완전히 깨닫고 온전히 받아들인 절대악 조부 투파키는 멀티버스를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며 온갖 존재가 되는 걸 식은 죽 먹기처럼 한다. 영화는 그녀의 ‘저세상’ 패션으로 형상화시키는 한편 ‘할리 퀸’의 이미지를 차용한 듯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으면서도 호기심 충만한 한편 굉장히 잔인하다.
 
중년의 위기, 그리고 애증의 가족 관계
 
영화는 에블린과 조부 투파키, 즉 조이 그리고 웨이먼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가족’의 이야기인 것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대단한 이유, 최소 2022년 상반기(북미 개봉 기준) 최고의 영화로 뽑힐 만한 이유는 의외로 여기에 있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잊지 않고 제대로 전하다니 말이다.
 
그렇다, 이 영화의 정신없는 멀티버스 그리고 요동치는 활극은 후회와 한탄과 공허가 모든 곳에서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중년의 위기에 처한 에블린의 애환 어린 상황을 형상화시켜 놓은 동시에 태곳적부터 계속되어 온 엄마와 딸의 애증 관계 그 자체다. 거기에 바람 잘 날 없는 남편 그리고 부모님과의 관계 또한 한몫함은 물론이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주저앉아 모든 게 사라질 것 같다. 그런데 뭐라도 하려니 혼을 쏙 빼놓을 만큼 모든 게 해결하기 힘든 문제로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이 없다. 할까 말까. 영화 속 에블린의 현실 속 극한 상황이, 멀티버스 속 복잡다단한 상황이 너무나도 와닿는다. 더 이상의 멀티버스 영화는 없다고 종지부를 확실히 찍었다. 이런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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