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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우리네 인생이 담긴, 별 것 없지만 특별한 중고거래 <거래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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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거래완료>

 

영화 <거래완료> 포스터.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중고거래가 보편화된 게 어느덧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2003년에 시작한 국내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를 비롯해 2011년에 나란히 시작한 '번개장터'와 '헬로마켓', 그리고 2015년에 출시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니콘 기업으로 우뚝선 '당근마켓'까지 2022년 현재 중고거래 시장의 거래액은 20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 

 

누구나 중고거래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쯤 있을 텐데, 기분 좋게 하고 웃음을 유발하는 유쾌한 사연이 있는가 하면 생각만 해도 표정이 일그러지고 한숨이 푹푹 나오게 하는 불쾌한 사연도 있을 것이다. 사람 살아가는 게 유쾌와 불쾌가 수시로 오가는 만큼 중고거래에 얽힌 이야기가 다방면으로 풍부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거래완료>는 '좋은 거래'를 지향하는, 이왕이면 좋은 거래였으면 하는 바람이 투영된 사연들을 듬뿍 담았다. 각자 독립된 이야기들이 열거된 옴니버스 형식이지만, '중고거래'라는 주제와 소재가 동일하게 공존하는 만큼 전체적으로 깔끔하다. 나아가 짧기 이를 데 없는 단편들의 만듦새가 대단하다, 아니 훌륭하다. 거기에 한없이 따뜻한 시선이 곁들여 있으니 편하게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2002년 베이스볼 자켓

 

초등학생 재하는 LG 트윈스의 열렬한 팬으로, 쌍둥이 군단이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2002년에 한정판으로 50벌만 만들어진 자켓을 중고로 구입하고자 잠실로 향한다. 판매자 아저씨가 하는 말, '따따블로 주지 않으면 자켓을 팔지 않겠다' '야구를 너무 좋아하지 마라' '자기가 2002년 LG 트윈스 막대였다' 등. 이 거래, 괜찮은 걸까?

 

'2002년 베이스볼 자켓'은 야구에 대한 진심 어린 마음이 담겨 있는 단편이다. 야구데이터베이스 운영 개발 회사에서 꽤 오래 일했다는 조경호 감독의 개인사와 연이 닿아 있는 바, 초등학생에 불과하지만 한국 야구의 거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재하의 팬심과 수상한 전직 야구선수 아저씨의 숨겨진 사연이 마음을 알 수 없이 울린다. 완연히 다르지만 완벽히 같아 보이는 그들의 간절함은 서로에게 그리고 어딘가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어느덧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스위치

 

기숙학원에서 공부하며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재수생 민혁은 수능을 30일 앞두고 전력으로 공부하고자 고3 수험생 예지에게 수면유도기 '스위치'를 구입한다. 하지만 스위치는 몇 시간이 지나야 새로운 대상자에게서 제대로 구현될 때가 있는데, 민혁도 그랬다. 그들은 몇 시간 동안 같이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한껏 차려 입고 술집에 간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한 것일까?

 

'스위치'는 공부는 웬만큼 잘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을 수밖에 없는 부담감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나아가는 수험생의 마음을 위로한다. 잠을 적게 자는 만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하지만 불면증에 빠져 아예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좋은 대학은커녕 시험도 볼 수 없을 것이고 제대로 살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얼마나 간절하고 또 힘들었으면, 강제로 잠을 재워준 뒤 깨워주는 기계가 필요했겠는가. 

 

붉은 방패와 세 개의 별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사형집행 공무원 수정은 일을 때려치고 로커가 되고 싶어 한다. 그는 공무원 책으로 꽉꽉 채운 캐리어를 끙끙 대며 끌고 교형의 연습실로 향한다. 그가 얻으려 한 건 교형의 심장과도 같은 기타다. 교형과 밴드 멤버들은 로커과 되고자 하는 공무원 수정을 이해할 수 없고, 수정은 대선배 같은 밴드 멤버들을 우러러 본다. 이 황당한 시추에이션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서로가 서로를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느새 100%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붉은 방패와 세계의 별'의 공무원 수정과 밴드 멤버들이 그렇다. 도대체 왜, 로커가 되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밴드를 그만두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은 곧 서로를 100% 이해한다. 꿈, 한없이 멋있는 밴드라지만 당장 생활비가 없어 살 수가 없다. 현실, 팍팍한 요즘 누구나 바라는 공무원이라지만 교도소에서 사형을 담당하니 죽음이 언제 코앞으로 다가올 지 알 수 없다. 현실이라는 게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꿈은? 꿈도 마찬가지다. 

 

사형장으로의 초대

 

대학교 신문방송학과생 나나는 과제를 수행하고자 다큐멘터리를 찍는데, 교도소로 사형수 우철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건 나나의 노림수였고, 겉으로는 우철이 사형을 당하기 전에 '마성전설'의 끝판왕을 깨 보고자 옛날 게임기의 중고거래를 위해 찾은 것이었다. 나나는 우철이 열심히 마성전설 게임을 하는 중에 인터뷰를 해 보려 한다. 나나와 우철은 각자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

 

'사형장으로의 초대'는 나나가 아닌 우철이 주인공이다. 우철의 인터뷰를 따려는 나나의 간절함도 간절함이지만, 우철의 간절함이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형수 우철의 오직 하나의 바람은 마성전설의 끝판왕을 깨는 것, 그 희열을 맛보고 싶고 또 그 궁금증을 풀어 보고 싶다. 시종일관 피식피식 삐져 나오는 웃음을 멈추기 힘들었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인생이 뭔지, 행복이 뭔지...' 하는 생각에 가닿지 않을 수 없다. 우철은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행복한가?

 

크리스마스의 선물

 

신춘문예에 수없이 떨어지며 만년 작가지망생에 그치고 있는 석호는 여동생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고자 족히 수십 년 동안 소중히 간직해 온 세계문학전집을 통째로 팔고자 한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거래 장소에 갔더니, 할아버지와 손녀가 있는 게 아닌가. 거래를 진행하고자 하는 찰나, 석호의 여동생이 와서 세계문학전집을 팔지 말라고 한다. 이 거래, 어떻게 되는 걸까?

 

'크리스마스의 선물'은 옴니버스 영화 <거래완료> 대망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충분한 단편이다.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고 도전에 도전을 거듭한 석호가 오랜 고민 끝에 신춘문예, 즉 소설가 되기를 포기하기로 했지만 뜻밖의 기회로 다시 한번 해 보기로 한다. 많은 이의 바람이 한곳으로 모이면 일이 이뤄지지 않을까? 그에게 그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그 기회가 아니었을까? 그 세계문학전집이 있어야 할 곳은 지금 일단은 석호가 아닐까?

 

물건이 누군가로부터 누군가에게로 가는 것만이 '거래'가 아니라 물건이 진실로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야말로 거래, 즉 '좋은 거래'일 거라는 생각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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