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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의외로 힘들어 보이는 프랑스 파리의 싱글워킹맘 <풀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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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풀타임>

 

영화 <풀타임> 포스터. ⓒ슈아픽처스

 

조용하고 한적한 파리 근교에서 홀로 큰딸과 작은아들을 키우는 싱글워킹맘 쥘리, 그녀는 새벽같이 눈을 뜨자마자 전투를 시작한다. 자신과 아이들 아침을 챙겨 먹고, 자신과 아이들의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마친 후, 이웃집에 아이들을 맡기고 부리나게 뛰어가 문이 닫히려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여느 직장인과 크게 다르진 않은 듯하다. 

 

그녀의 일터는 파리 시내 5성급 호텔, 그녀는 최선임 메이드로 상사와 동료 그리고 후배들에게 두루두루 신임을 얻으며 일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기차가 연착·취소되기 시작한다. 곧 기차뿐만 아니라 모든 운송수단이 연착·취소되기에 이른다. 쥘리는 빨리 퇴근하지 못해 아이들을 맡기는 이웃집에게 계속해서 한소리를 듣고, 지각하는 횟수가 쌓이면서 회사에서의 입지가 조금씩 흔들려 간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다른 직장으로 옮기고자 이리저리 애쓰는 한편, 아이들과 관련해 이것저것 상의하고자 전 남편에게 연락하지만 일주일 넘게 깜깜무소식이다. 무엇보다 파리 운송노조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출퇴근이 전에 없이 힘들어진다. 그녀로선 더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회사나 이웃집이나 언제까지고 그녀의 사정을 봐 줄 수가 없다. 점점 한계에 다다르는 쥘리, 어떻게 해야 할까?

 

프랑스 파리의 싱글워킹맘

 

영화 <풀타임>은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세계 최선진국 프랑스의 수도 파리의 팍팍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의 양상을 전한다. 물론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워킹맘이라는 흔하다면 흔하지만 결코 흔할 수 없는 사례가 극의 중심이라지만, 고스란히 우리나라로 옮긴다고 해도 덜하면 덜했지 더하지 않을 정도의 팍팍함이 엿보인다. 비단 운송노조 파업으로 출퇴근이 용의하지 않는 점이 크게 작용하지만 일상의 모습 자체가 이미 용의하지 않다. 

 

에리크 그라벨 감독의 연출과 배우 로르 칼라미의 열연이 빛나는 바, 제78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사이좋게 오리종티 부문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우리나라 영화제에 자주 찾아왔는데 전주국제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제주여성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싱글워킹맘 쥘리가 최소 종종걸음으로 보통 뛰면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이 와닿지 않았나 싶다. 

 

인생은 하루하루가 모여 이뤄진다. 하루는 낮과 밤, 시간, 분, 초가 모여 이뤄진다. 쥘리의 하루를 따라가다 보면 초, 분이 흐르는 게 아쉽고 시간이 흐르는 게 분통 터지며 낮과 밤이 바뀌는 게 속절없다. 일터에서 멀리 사는 만큼 하루의 시작이 빨라야 하고 끝이 늦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살아야 할까. 하루에도 몇 번씩 한계가 찾아오고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의 한계가 찾아온다. 

 

일반적인 의미 이상의 '풀타임'

 

'풀타임'은 전임 혹은 상근의 뜻을 갖는다. 통칭해 날마다 일정하게 출근해 정해진 시간에 전문적인 일을 하는 것을 말하겠다. 하지만 영화 <풀타임>의 '풀타임'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회사에서는 물론 퇴근해서도 홀로 오롯이 육아 일을 하니만큼 진정한 의미로 하루의 전부를 일하는 데 보내는 것이다. 측은함 너머, 고단함 너머, 상상하기 힘든 삶의 굴레가 있는 듯하다. 

 

이 영화에서 파업은 갈수록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파업으로 교통만 마비되지 않았더라도, 싱클워킹맘으로 버티며 살아갈 수 있었을 테다. 그런데 출퇴근이 심각하게 힘들어지다 보니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그럼에도 쥘리는 파업이 아닌 파업을 낳은 시스템을 탓하고 멀리 살지만 않았으면 파업에 참여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평범한 프랑스 시민의 위대함이라고 해야 할까, 쥘리 개인의 위대함이라고 해야 할까. 쥘리 개인의 위대함에 힘을 실어 주고 싶은 건, 그녀가 자신 만의 리듬과 방식으로 고유의 투쟁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게 절절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상을 영위하는 행위 자체 말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또 위대한지 이 영화를 보면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상이 스릴러

 

하루종일 이리저리 마음 졸이고 또 졸이는 쥘리를 보고 있노라면 '일상이 스릴러'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고 한순간도 편하지 않다. 아무리 힘들고 피곤한 하루라도 마음 편히 쉴 때가 있어야 하는데, 쥘리에겐 오직 잠자는 시간만이 그럴 뿐이다. 그마저도 곧 닥쳐올 전쟁 같은 하루 때문에 태풍이 불기 직전의 불길한 고요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연출이 훌륭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건 배경음악인데, 신디사이저 기반의 전자적 합성 음악이 가슴 졸이게 한다. 반복적인 비트이 숨통을 죄어 오는 것 같다. 쥘리가 어디 가서 무슨 생각으로 뭘 하든, 뛰어 다니든 걸어 다니든 가만히 있든 결코 편하지 않아 보인다. 아울러 왠지 차가운 느낌이 드는 파리의 모습도 한몫한다. 파리 하면 보통 옛스러움과 세련됨이 공존하는 따뜻하고 멋진 곳을 떠올리지 않는가? 그런데 이 영화에서 파리는 차갑고 스산하기까지 했다. 의도된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한국, 나아가 서울의 모습과 느낌 만이 아니구나 싶어 안도(?)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우리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게 지내다니 말이다. 최소한 우리나라는 영화 속 파리처럼 교통이 마비되는 수준의 상황은 거의 보기 힘들지 않은가? 한편, 프랑스 파리가 저렇다면 한국 서울이 나아가야 할 방향 또는 한국 서울에 득이닥칠 수밖에 없는 모습이 저렇다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행할 수밖에 없는 투쟁의 모습 같기도 하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어른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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