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폭력

기억조차 하기 싫은 그날을 기억하는 것, 이 소설이 아름다운 이유 <소년이 온다> [지나간 책 다시 읽기] 5.18은 내게 결코 가깝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이승복 기념관을 해마다 찾았고, 그 '투철한 반공정신' 때문에 희생된 이승복 어린이의 정신을 길이 새기며 치를 떨었다. 5.18은 저 멀리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승복 어린이와 일가족이 처참하게 죽어간 그 모습만 떠오를 뿐 그 이면의 정신과 사상이 떠오르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 폭력과 상처만 깊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게 5.18이 다가올 수 있었다. 5.18을 온전히 폭력과 상처의 입장으로 보아야 5.18은 상당 기간 논란거리였다. 지금도 그렇다. 수많은 추측이 난무하는 와중에 정치적으로 다양하게 이용해먹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렇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곳엔 폭력과 상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더보기
언제 쯤이면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 답이 나올 수 있을까 <음의 방정식> [서평] 올해로 데뷔 30년 차를 맞은 일본 최고의 작가 중 한 명.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겸비한, 탁월한 스토리텔러. 사회 병폐의 핵심을 찌르면서도, 인간의 모습을 따뜻하게 그릴 줄 안다. 그를 대표하는 추리소설을 비롯해, 사회, 역사, 청소년, SF소설을 두루 섭렵했다. 남성 작가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있다면 여성 작가엔 그가 있다. 다름 아닌 미야베 미유키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 둘의 추리소설을 최소 1편 이상은 접해보았는데, 공통점이라 한다면 탁월한 가독성에 있다. 이는 곧 대중성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도 무엇이든 생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곧 작품성으로 이어진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다작(多作) 작가라는 것. 엄청난 작품 수를 자랑하는 이들인데, 출간되었다 하면 거의 베.. 더보기
이 책의 매뉴얼 중 하나만 정확히 따르자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 [서평] 혁명. 대의를 위해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피 튀기는 투쟁 끝에 독재자를 끌어내린다. 자연스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독재 정권 아래서 힘들게 살아왔던 이들이 활짝 기지개를 편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고, 꿈 같은 현재를 즐기며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혁명, 이토록 좋은 세상을 주는데 누구든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가. 먼저,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혁명에 동참할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자신의 모든 걸 뒤로 한 채 독재자를 끌어내리고 세상을 바꾸고자 죽음을 무릅쓰고 혁명에 동참할 사람이? 5,000만 명의 인구에서 5만 명이라도 있다면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장렬히 산화한 이들이 많다. 어떤 방법으로든 독재자를 끌어내렸다고 .. 더보기
나름 군생활을 잘한 이들의 비극 체험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서평] 지난 해 4월이었죠? 육군 28사단에서 '윤 일병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윤 일병에 대한 선임병의 상습적이고 엽기적인 가혹행위로 인해 윤 일병이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으로, 4개월 만에 전모가 밝혀지면서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었죠. 6월에는 육군 22사단에서 임 병장이 GOP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터뜨려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도 있었습니다. 관심병사였던 임 병장에 대한 왕따와 기수열외가 그 원인이었다고 해요. 유난히 심한 작년이었지만, 이런 사건사고들은 매년 일어나곤 합니다. 우리 국군은 외형적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 왔지요. 현재 국방 예산은 한 해 40조에 이르고, 군사력으로 전 세계 10위 안에 들죠.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세계 10위는 커녕 저 밑의 군사 후진국 수준에 머.. 더보기
<강남 1970> 폭력과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그곳, 강남 [리뷰] 유하 감독의 거리는 극히 양면적인 면모가 있다. 연인들에게는 팔짱을 끼고 함께 같은 곳을 보며 걸을 수 있는 공간이다. 앞이 탁 뜨인 거리는 걷는 것으로도 힐링이 되곤 한다. 갈 곳을 정해두지 않고 정처 없이 걷는 거리는 낭만적이다.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 쬐는 주말 오후의 거리를 느낌이란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준다. 과연 그러기만 할까? 거리에는 무표정으로 오로지 앞만 보고 걷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누가 쫓아오는 양 빠른 걸음으로. 그럴 때 거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냥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불과하다. 한편 거리는 '무법', '야생'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아무도 없는 으슥한 뒷골목 거리는 누구의 손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한다. 거리에서 태어나 거리에서 자란 이들에게 거리는 .. 더보기
<박하사탕> 격동의 시대가 낳은 슬픈 몬스터 [리뷰] 이창동 감독의 1999년 어느 봄날,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야유회 중인 일행들에게 걸어간다. 알고보니, 그 남자는 동창 야유회에 온 것이다. 그러나 그는 초대받지 못했다. 아무도 그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그는 갑자기 깽판 수준의 노래와 춤으로 분위기를 망치려 한다. 그리고 갑자기 물 속으로 뛰어들더니 고성을 지르는 것이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윽고 남자는 철길 위에 올라가 고성을 지르기에 이른다. 역시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때 나타난 기차. 점점 다가온다. 남자는 물러날 기색이 없다. 그제야 동창들은 하나 둘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남자는 한국 영화에 길이 남을 명대사를 외친다. "나 돌아갈래!" 그에게는 어떤.. 더보기
폭력이 권력과 순수에서 기인한다고? [서평] 생명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권력 의지가 있음을 나는 깨닫는다.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는 '권력'을 내면에서 솟아나는 활동적 생명의 힘, 즉 자기실현과 자기성취의 관점에서 보았다. 반면 작금의 경쟁 사회에서의 '권력'은 굉장히 부정적인 의미로 자리매김했다. 권력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대체로 '폭압'과 '강압' '폭력'까지 이어지는 이유이다. 돈으로 권력을 거머쥔 권력자의 행태나 강력한 법으로 무장한 국가의 권력이 보여주는 폭력이 뇌리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권력을 다르게 생각해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선과 악을 나누게 된다면, 권력은 악의 맨 앞자리를 다투는 여러 가지 개체 중 하나일 것이다. 롤로 메이는 (문예출판사)를 통해 이런 권력에의 일반적인 생각을 달리 본다. 권력을 선과 악의 개.. 더보기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