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유하 감독의 <강남 1970>
<강남 1970> 포스터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거리는 극히 양면적인 면모가 있다. 연인들에게는 팔짱을 끼고 함께 같은 곳을 보며 걸을 수 있는 공간이다. 앞이 탁 뜨인 거리는 걷는 것으로도 힐링이 되곤 한다. 갈 곳을 정해두지 않고 정처 없이 걷는 거리는 낭만적이다.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 쬐는 주말 오후의 거리를 느낌이란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준다.
과연 그러기만 할까? 거리에는 무표정으로 오로지 앞만 보고 걷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누가 쫓아오는 양 빠른 걸음으로. 그럴 때 거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냥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불과하다. 한편 거리는 '무법', '야생'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아무도 없는 으슥한 뒷골목 거리는 누구의 손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한다. 거리에서 태어나 거리에서 자란 이들에게 거리는 집임과 동시에 생존을 위해 끝없이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링이다.
그런 거리에는 필연적으로 욕망과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끝 간 데 모를 욕망이어야만 두 발을 붙이고 살아갈 수 있다. 결국 또 다른 욕망에 의해 파멸 될 운명이지만, 그 또한 누군가의 욕망을 밟고 그 자리에 있을 터였다. 폭력은 그들을 그들 이게 한다. 폭력으로만 그들 자신을 정의할 수 있다. 이성의 시대에 이런 욕망과 폭력의 인간들은 가장 밑바닥 취급을 받고 가장 멀리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그러나 지금은 가장 이성적이고 고결한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 강남이다.
폭력과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그곳, 강남
유하 감독은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 2006년 <비열한 거리>로 '거리'와 '폭력'의 다양하지만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중심엔 '강남'이 있었고, 2015년 <강남 1970>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그 안에 '거리', '폭력', '강남'을 비롯해 '욕망', '잔혹' 등 일명 '거리(폭력) 3부작'의 모든 것이 들었다. 거리 안에 폭력은 있다 지만, 폭력 안에 거리가 있다 고는 할 수 없기에 '거리 3부작'이 더 정확하다 하겠다.
<강남 1970>은 제목 안에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전부 들어 있다. 지금의 강남이 만들어진 때가 1970년이다. 영화는 이 시대의 강남 개발이 당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대선 자금 확보의 일환으로 핵심 중의 핵심 권력인 중앙정보부가 하달한 명령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본다. 명령을 이루기 위해 큰 두 세력이 맞붙는데 이들은 국회의원들이고 실질적으로 행동을 하는 이들은 일명 조직폭력배 깡패들이다.
<강남 1970>의 한 장면.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넝마주이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고아 종대(이민호 분)와 용기(김래원 분)는 자신들의 집을 부수려는 정부 용역 깡패들에게 저항하다가 붙잡힌다. 그런 와중에 쪽수(?)가 모자란 깡패들이 데려가 그야말로 지극히 우연한 계기로 깡패들의 세계에 입문하는데, 이 둘은 헤어지고 만다. 이후 그들은 실력을 뽐내며 자리를 잡아가고, 또다시 우연히 이들은 조우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들은 서로 다른 세력에 있었다. 강남 개발의 큰 두 세력 말이다. 종대는 용기에게 자신 쪽으로 넘어오라고 하지만, 용기는 중간에 큰 사고를 쳐서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처지다. 대신 스파이 노릇을 한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까지 종대를 돕고, 이는 종대도 마찬가지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인들
이 와중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있다. 종대를 거두고 키우다시피 해준 길수(정진영 분)의 딸 선혜. 종대는 선혜를 사랑하는 듯하다. 하지만 사실상 친동생과 마찬가지인 존재이기에 멀리서만 바라볼 뿐이다. 그녀가 결혼해서 남편에게 맞고 도움을 청하면 그 남편을 찾아가 죽도록 패버리는 뭐 그런 거다.
그리고 종대와 강남 개발 사업을 하게 되는 민마담(김지수 분). 그녀는 정재계 거물들과 상대하며 엄청난 정보를 바탕으로 빠르게 강남 개발 중심에서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을 벌인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강남 개발의 비열한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핵심 장면들이 여기서 나온다. 정부의 강남 개발 시책에 맞춰 집값이 폭등할 것을 예측하고, 그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과 시골자락의 집과 땅을 미리 사들이는 전략. 불법 독점과 투기 협잡 등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의 등골을 파 먹는 파렴치한 이들의 전형이다.
<강남 1970>의 한 장면.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또 한 명은 용기의 부인 소정(이연두 분)이다. 그녀는 애당초 보스의 여자친구였지만, 용기와 비밀리에 연인 관계였다. 이 둘 간의 사랑은 방식은 달라도 종대와 선혜처럼 자못 애처로움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건 선혜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한 가지가 있는데, 이 둘의 비밀 연애를 선배 깡패가 봤고 용기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죽인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를 죽인 것이 큰 화를 불러 일으킨다. 그렇지만 용기의 성격 상 언젠가 죽일 것이었기에, 사실 소정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영화의 결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감독의 의도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이 영화의 결점이 있다. 여자 캐릭터들은 말할 나위 없고 주연 급의 캐릭터들도 모두 다 영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 보인다. 영화의 스토리 상에 필요한 캐릭터라는 느낌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와중에는 캐릭터가 보이는 데, 끝나고 나면 아무 기억이 없다. 비단 등장인물들이 많이 죽기 때문 만은 아니다. 배우들을 가져다 쓰고 버린 듯한 느낌이다.
<강남 1970>의 한 장면.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스토리가 훌륭한가? 등장 인물들의 헌신적인 죽음을 감수하고도 남을 만큼? 그런데 바로 이게 감독이 의도한 바인 것 같다. 결국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한 사람만 남고 모두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스토리를 봤을 때, 그 느낌을 더 잘 살려주었다. 즉, 배우들을 가져다 쓰고 버린 듯한 느낌이 들게 연출한 의도는, 권력의 비열하고 간악한 유지를 위해 가차 없이 이용했다가는 어김없이 처리하고 마는 그 진짜 모습을 피부에 와 닿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강남 개발조차 그 권력이 이용한 것이다.
이 폭력과 욕망의 무간지옥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죽어서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만약 살아남았다고 해도 더욱 더 고통스러운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지옥을 만들고 관장하는 높으신 분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호의호식하고 있다. 그들이 서로 치고 박고 죽고 죽이면서 발생된 그 욕망의 덩어리가 만들어낸 거대한 에너지를 통해서 말이다. 그것이 지금의 강남이고, 지금의 권력자들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비상했다가 추락하고 죽고 죽일까
얼마 전에 강남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놓고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이 일대 혈전을 벌였다. 예의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대기업 둘 간의 결투였다. 그 결과 예상 값의 3배가 넘는 돈인 10조 원 이상을 투자한 현대차그룹이 매입했다. 이후 주위의 땅값이 4년 전보다 6배 이상 뛰었다고 한다. 뻥튀기도 이런 뻥튀기가 없다. 강남 1970에 이은 강남 2015라고 할 만 하다.
여기엔 어떤 궁극적인 목적이 있었을까? 일차적으로는 대기업의 투자 대결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강남 부자를 위해 땅값을 올리려는 수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이상도 가능하리라. <강남 1970>에서 강남 개발 그 위에 진짜 목적이 대선 자금 확보에 있었듯이 말이다. 그 안에서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비상했다가 추락하고 죽고 죽일까. 그 정점에선 누가 모든 수혜를 업고 그들만의 세계를 더욱 견고히 만들어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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