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음의 방정식>
<음의 방정식> 표지 ⓒ문학동네
올해로 데뷔 30년 차를 맞은 일본 최고의 작가 중 한 명.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겸비한, 탁월한 스토리텔러. 사회 병폐의 핵심을 찌르면서도, 인간의 모습을 따뜻하게 그릴 줄 안다. 그를 대표하는 추리소설을 비롯해, 사회, 역사, 청소년, SF소설을 두루 섭렵했다. 남성 작가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있다면 여성 작가엔 그가 있다. 다름 아닌 미야베 미유키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 둘의 추리소설을 최소 1편 이상은 접해보았는데, 공통점이라 한다면 탁월한 가독성에 있다. 이는 곧 대중성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도 무엇이든 생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곧 작품성으로 이어진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다작(多作) 작가라는 것. 엄청난 작품 수를 자랑하는 이들인데, 출간되었다 하면 거의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럼에도 거품 논란 없이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코 작품성을 놓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둘 중에 굳이 고르라면 미야베 미유키를 고르겠다. 워낙 방대한 작품 세계를 자랑해 한 권의 분량이 많아서 그의 소설을 덜 접한 게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작품 개개가 더 믿음이 간다. 더 공력을 들였다는 게 느껴지고, 생각할 요소들이 더 많다. 그리고 소설에서 작가의 생각과 시선이 느껴진다.
다시 돌아온 미야베 미유키의 교내 미스터리
<솔로몬의 위증>은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한 중학교에서 일어난 의문의 추락사를 바탕으로, 무너지는 학교라는 성역과 예민한 10대들의 심리를 담아냈다. 그렇게 현대사회의 속살을 집어내려 했다. 학교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곳이 아닌가. <솔로몬의 위증> 이후 20년, 당시 10대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후지노 료코가 변호사가 되어 다시 한 번 교내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해 왔다.
<음의 방정식>(문학동네)은 <솔로몬의 위증>에 이은 교내 미스터리 소설이다. 신흥 사학인 학교법인 세이카 학원이 배경이다. 이 학교는 A, B, C, D반으로 나뉘는데, 곧 등급 순이다. 이 등급은 고등부에 올라가서도 답습되고 대학 진학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건은 D반이 교내에서 '피난소 생활 체험캠프'를 열었던 토요일 밤에 일어난다.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의 피난소를 가정해 교실에서 침낭을 깔고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소등 후 밤 열한 시쯤 히노 선생이 D반 남학생 일곱 명이 모여 있는 3층 교실로 순찰을 왔을 때였다. 히노 선생은 과제를 하나 낸다. 모두가 살아남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다는 가정 하에 한 명을 희생 시켜야 하면 누구를 선택하겠냐는 것이었다. 그는 신중하게 선택하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아이들은 당황했지만 웃으며 지나쳤다. 하지만 리더 시모야마 요헤이가 도망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이 밝혀졌다. 하지만 히노 선생은 일련의 사태를 모조리 부인한다. 선생과 학생 중 한 쪽은 거짓말을 한 것이리라. 얼마 후에는 아키요시 쇼타가 더는 못 참겠다는 메모를 남겨 놓고 수면유도제를 있는 대로 긁어모아 삼키는 자살 소동도 있었다.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사회의 거울이자 바탕이 되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스승과 제자. 인생에서 한 명의 진정한 스승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꼭 학창 시절에 국한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기본 소양과 지식을 그때 배우기 때문에 인생의 스승 또한 그 시절에 만나기 쉽다. 그만큼 그때의 스승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걸 반증하는데, 반대로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윽박 지르고 위협하고 지배하려 하고 억압하려는 스승이 있기 마련이다. 많은 이들이 그런 스승과의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건 제자에 대한 스승의 기억도 마찬가지겠지만, 스승은 한 명이고 제자는 다수이니 상대적으로 옅다.
그렇게 볼 때 이 사건에서 거짓말을 한 이는 스승일 가능성이 크다. 정황 상으로도 한 명인 스승과 다수인 제자이니, 다수 간의 협의가 힘든 만큼 잘 맞추면 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육자라는 입장에서 볼 때 제자를 골탕 먹이려는 행동을 하진 않을 거라 생각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제자들은 스승의 위협과 억압을 막기 위해 스승을 골탕 먹이려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는 것.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게 사건 자체보다 그 원인에 있다고 보았을 때, 진짜 나쁜 짓을 한 건 스승이 된다는 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지점을 작가는 교묘히 잘 건드렸다.
"음의 방정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선생과 학생, 가르치는 쪽과 배우는 쪽, 이끄는 쪽과 따르는 쪽, 억압하는 쪽과 억압받는 쪽의 조합부터 잘못되었고, 그러니 어떤 숫자를 넣어도 마이너스 답만 나온다." (본문 116쪽)
사회의 거울이자 바탕이 되는 학교. 그런 곳에서 교묘히 오가는 알력. 빙산의 일각과 같은 사건 뒤에 훨씬 더 크고 본질적이고 고질적인 문제. 모르긴 몰라도 수많은 학교에서 이와 같은 일들이 오랜 세월 되풀이되고 있을 것이다. 언제 쯤이면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 답이 나올 수 있을까. '음의 방정식'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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