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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박하사탕> 격동의 시대가 낳은 슬픈 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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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박하사탕> ⓒ이스트필름


1999년 어느 봄날,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야유회 중인 일행들에게 걸어간다. 알고보니, 그 남자는 동창 야유회에 온 것이다. 그러나 그는 초대받지 못했다. 아무도 그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그는 갑자기 깽판 수준의 노래와 춤으로 분위기를 망치려 한다. 그리고 갑자기 물 속으로 뛰어들더니 고성을 지르는 것이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윽고 남자는 철길 위에 올라가 고성을 지르기에 이른다. 역시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때 나타난 기차. 점점 다가온다. 남자는 물러날 기색이 없다. 그제야 동창들은 하나 둘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남자는 한국 영화에 길이 남을 명대사를 외친다. "나 돌아갈래!" 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기차가 철길을 되돌아 가듯, 그의 과거로 돌아가 본다. 그의 과거는 곧 한국이 겪어온 격동의 현대사였다. 


영화 <박하사탕>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갑자기 나타난 한 남자가 영문 모를 괴성을 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자살하는 장면. 가히 충격적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추해볼 수 있는 건 "나 돌아갈래!"라는 단어이다. 그는 언제, 어디로, 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억울해서일까? 안타까워서일까? 아쉬워서일까? 단언컨대, 이 세상에서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보아하니, 질적으로 다른 절박함이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과거를 따라가 그의 삶을 직시할 의무가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위에서 보여준 첫 테이크를 필두로 총 7 테이크로 구성되어 있다. 역연대기순이다. 


<박하사탕>의 한 장면. "나 돌아갈래!" ⓒ이스트필름


내 인생 망쳐놓은 놈들


사흘 전, 남자 김영호(설경구 분)은 비내리는 바닷가에서 총을 구입해 자살하려 한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 상사의 차를 향해 총격을 가한다.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밤이 되자 그는 허름한 비닐하우스로 돌아온다. 그의 보금자리이다. 이혼으로 쫓겨난 듯 보인다. 그런데 누가 찾아온다. 남자는 그에게 일갈한다. 그가 돈 받으러 온 사람인 줄 알았던 것이다. 


"나, 마지막 돈 탈탈 털어가지고 이거 하나(총) 구했어. 딱 한 놈만 죽이려고. 나 혼자 죽긴 너무 너무 억울해서 딱 한 놈만 내 저승길에 동행하자. 내 인생 이렇게 망쳐 놓은 놈 중에 딱 한 놈. 그런데 말이야. 어떤 놈을 죽일까. 그것 참 고민 되더라고. 딱 한 놈 고르려니까 그게 너무 어려운거야. 내 인생 조져놓은 놈들이 너무 많아서 그 한 놈을 못 고르겠더라고."


그런 남자에게 찾아온 이는 윤순임(문소리 분)의 남편이라고 말한다. 그러며 윤순임이 죽어가고 있다며 김영호를 찾고 있다고 말한다. 김영호는 박하사탕을 사서 윤순임을 보러 간다. 그들은 과거를 추억하며 눈물을 흘린다. 윤순임의 남편은 김영호에게 사진기를 건네준다. 김영호는 트라우마로 인해 발을 절뚝거리며 사진기를 팔아버린다. 이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아직 그의 과거 여행은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그의 과거가 눈물로 혹은 슬픔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다


다음으로 나오는 세 개의 테이크는 그의 폭력 성향이 어떻게 기인되었는지 보여준다. 5년를 거슬러 올라간 1994년, 김영호는 여직원 한 명을 둔 어엿한 사장님이다. 뻔한 설정일지 모르나, 그는 여직원과 바람을 피며 육체적인 관계까지 갔다. 피장파장이라고, 그의 아내(김여진 분)도 역시 바람을 피고 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김영호는 그 현장을 급습하고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른다. 너무나 심한 폭력이었기에, 아무래도 뭔가가 있어보인다. 역시, 그는 2년 전까지만 해도 경찰이었단다. 그렇다는 건 혹시? 1980년대에도 경찰이었다는 것인데. 


<박하사탕>의 한 장면. 악질 고문관 김영호. ⓒ이스트필름


아니다 다를까. 다음 테이크와 그 다음 테이크는 각각 1987년과 1984년. 김영호의 경찰 생활을 보여준다. 신혼부부지만 무뚝뚝한 김영호. 그는 경찰서에서 최악의 고문관이다. 1980년대 당시는 민주화 열풍이 전국을 휩쓸던 때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정치사범들이 잡혀들어 왔다. 자의든 타의든 국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경찰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정치사범들의 자백을 받고 그 뒤를 캐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좋은 방법은 무지막지한 고문이었다. 없는 사실도 만들어 낸다는 고문. 


신입 경찰 시절에 김영호는 어리숙하고 착하기만 하였다. 고문은 커녕, 선배들이 고문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지도 못하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선배들의 강압에 못이겨 시작한 고문이 적성에 맞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의 안에 내재된 몬스터가 깨어났던 것일까? 아니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건, 그의 행동이 그에게서 기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낳았다는 것이다. 그 시대라 하면, 신군부 독재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의 안에 내재된 몬스터 또한 이전의 군대에서 받았던 폭력이 누적되었던 것이다. 


김영호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의 현장으로 급파된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즉 자신들이 민간인을 죽이러 간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마구잡이로 총을 쏘며 달려간다. 그러다가 김영호는 어디서 날아온지도 모르는 총알에 발목이 관통당하고 만다. 너무 아파 쉬고 있는 그의 앞에 소녀가 나타난다.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불안한 분위기. 역시나 김영호는 실수로 소녀에게 총을 발사하고, 그 자리에서 소녀는 즉사한다. 김영호는 울부짖는다. 그 울음은 19년 뒤, 철길 위에서의 눈물과 겹친다. 그가 돌아가고 싶은 곳은 바로 여기 였을 것이다. 


<박하사탕>의 한 장면. 김영호, 실수로 소녀를 죽이다. ⓒ이스트필름


시대가 낳은 괴물, 흔히 볼 수 있는 소시민


김영호는 분명 시대가 낳은 괴물이다. 그는 본래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순수한 청년이었다. 푸른 하늘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감성어린 친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나 그 시절엔 그랬듯, 지금도 그러듯 타의로 군대에 가게 되고 타의로 다치게 되었으며 역시 타의로 한 소녀를 죽이게 되는 것이다. 그 타의란 다름 아닌 시대, 시대를 만든 이였다. 그렇지만 그가 초반에 찾아온 윤순임의 남편을 향해 일갈하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시대만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개인으로부터 받음 아픔들이 그를 더욱 아프게 했으니까 말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악다구니들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도 악다구니가 되어서 더욱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고. 또는 이 나라는 글러먹었어. 이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비열해져야 돼. 도덕군자 운운하다가는 언제 낙오자가 될지도 몰라. 


이 영화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대표격인 김영호를 내세워 비판하고 있는 동시에, 그들 또한 시대의 희생양이라고 어루만져 주고 있는 것이다. 격동의 시대에서 정말 힘들게 살아온 것 다 잘 알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개인의 능력을 너무 낮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시대의 흐름을 역류해서 위대한 성취를 한 분들도 분명 계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개인의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다. 김영호는 위대한 사람이 아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소시민인 것이다. 제목 '박하사탕'은 그런 소시민적 성향을 보여주는 대표적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윤순임이 죽어갈 때 김영호가 사들고 간 '박하사탕'. 그들의 눈물. 사흘 뒤 철길 위에서의 눈물. 김영호가 정말 돌아가고 싶었던 때는 '박하사탕'으로 기억되는 '순수의 시대'였던 게 아닐까. 그렇지만 과연 '순수의 시대'가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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