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에드긴은 한때 '하퍼스'라는 조직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자기 한몸 사라지 않고 싸웠다. 보수도 받지 않았기에 더없이 영예로웠다. 하지만 아내와 딸을 건사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레드 위저드에게 아내가 죽임을 당하고 하퍼스의 명예를 저버린다. 홀로 딸을 키우는 도중에 홀가를 만났고 합심해 도적단을 꾸린다.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부활의 서판을 훔치려다가 다른 멤버들은 탈출하지만 에드긴과 홀가는 붙잡히고 만다.
2년간의 옥살이 끝에 탈옥에 성공하는 에드긴과 홀가, 붙잡히기 직전 딸을 부탁한 포지를 찾아간다. 그런데 그 사이에 포지는 도적단의 동료였던 위저드 소피나를 자문에 두고 네버윈터 영주 자리에 있는 게 아닌가? 에드긴의 딸에겐 부활의 서판을 재물의 서판이라고 세뇌해선 아빠를 나쁘게 이미지 메이킹 해놓고 말이다. 에드긴과 홀가는 꼼짝없이 죽을 뻔했지만 간신히 탈출한다.
에드긴은 딸과 부활의 서판을 되찾고자 다시 한 번 팀을 꾸리기로 한다. 옛 도적단 동료로 재능 없는 소서러이지만 위대한 가문의 후손인 사이먼을 필두로 천재 드루이드 도릭을 영입하고 융통성 없고 재미도 없지만 세계관 최강의 팔라딘 젠크도 합류한다. 한편, 에드긴은 별다른 능력이 없어 보이나 전략전술에 능한 리더이고 홀가는 무식하지만 그 어떤 위기 상황도 뚫을 것 같은 힘을 가졌다.
과연 이들은 포지와 소피나에게서 에드긴의 딸과 부활의 서판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심상치 않아 보이는 포지와 소피나에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기대를 훨씬 상회한다
중학교 때 오락실에서 즐겨했지만 잘하진 못했던 게임 <던전 앤 드래곤>, 본래 1970년대 미국에서 나온 최초의 RPG 게임이다. 모든 RPG의 시초 격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위대한 콘텐츠인 것이다. 당연한 듯 비디오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로까지 만들어졌다. 그중 2000년에 나온 동명의 영화가 대배우 제레미 아이언스까지 캐스팅하며 제대로 만들어 보려 했지만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크게 저조했다.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시간이 손살같이 흘러 20년이 지났고 기어코 또 다른 동명의 영화가 우리를 찾아왔다. 나름 부제도 달았으니 언급하자면,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다. 도적이 주인공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제목에 '드래곤'이 들어간 영화는 <드래곤 길들이기> 빼곤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싹 다 망했다는 것. 더군다나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또한 크게 잘된 사례를 찾기 힘들다. 결정타로, 이 영화 제작비가 자그마치 1억 5천만 달러다. 걱정된다.
기대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상태에서 관람한 <던전 앤 드래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만족이다. 시작 5분도 안 되어 웃겼으니,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를 정확히 보여줬다. 시종일관 틈틈이 크게 작은 유머로 재미를 선사하는 와중에 시원시원하면서도 거대한 액션으로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시켜 보려는 의도 말이다. 기대하지 않고 보면 아무런 생각하지 않고 영화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할 것이다. 완벽한 킬링타임 영화.
허허실실, 이 영화의 전략
영화는 여러 면에서 허술한 듯 부족함이 없다. 우선 캐릭터들의 조합이 눈에 띈다. 다양한 전략전술와 계획으로 믿음직한 리더 에드긴은 입만 살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고, 어떤 위기도 파헤칠 것 같은 힘을 가진 올가는 근육밖에 없는 무식쟁이고, 위대한 가문의 후예 사이먼은 포텐을 터뜨리지 못하는 연약한 소서러일 뿐이고, 변신 천재 드루이드 도릭은 항상 아슬아슬하고, 최강의 팔라딘 젠크는 융통성도 없고 재미도 없다.
어딘가 하나 모자란 점이 있는 캐릭터들, 그런데 이들이 한데 모여 서로를 보완해 주는 한편 각자 자신의 특장점을 적재적소에 살리니 가히 부족한 게 없다. 한편, 영화 자체를 두고도 똑같이 평가할 수 있다. 모자란 캐릭터들이 어찌저찌 모여 온갖 고생을 하며 도무지 물리칠 수 없을 것 같은 적을 무찌른다는 이야기, 이 얼마나 고전적인가?
그런데 영화는 더할 나위 없는 중세풍 배경과 상상력 자극하는 크리처들을 내세워 없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수준이 생각 외로 매우 높다.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와 장면들이 다수 보이는데, 캐릭터들의 조합을 보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떠오르니, 이 영화 <던전 앤 드래곤>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반지의 제왕> 세계에 불시착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고 하겠다.
젠더 프리와 새로운 가족
시리즈가 계속될 거라는 가정 하에, 세계관과 캐릭터를 보여주고 설명하며 볼거리와 생각거리까지 충분히 제공하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선택했다, 세계관은 조금 불성실하게 보여준 반면 캐릭터는 충분히 보여준다. 할리우드 인기 배우들을 다수 캐스팅했는데 에드긴 역에 크리스 파인(<스타트렉> <원더우먼> 등), 올가 역에 미셸 로드리게즈(<아바타> <분노의 질주> 등), 젠크 역에 레리 장 페이지(<브리저튼> 등), 그리고 포지 역에 말이 필요 없는 영국 대표 배우 휴 그랜트가 열연했다. 착착 들어맞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캐릭터들 간의 티키타카가 최적화되었다. 액션의 합보다 유머의 합을 우선시해 더 열심히 준비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진지하기만 한 젠크의 '유머 없음'조차도 유머로 승화시킨다. 그런데 이 영화, 이쯤에서 끝나면 뭔가 좀 아쉽다. 최고의 킬링타임용 영화로 손색이 없긴 하지만 뭐라도 남는 게 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영화 전반에서 '젠더 프리'적인 면이 눈에 띈다. 올가와 그녀의 전 남편과의 관계가 대표적인데, 일반적인 모양새와 다르다.
그런가 하면, 영화 극후반에서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엿볼 수 있다. 선택되어진 가족이 아닌 선택한 가족,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의 자식일 수밖에 없지만 영화에서 모종의 일로 자식이 부모를 선택한다. 감동적인 장면으로 연출되지만 들여다뷰면 상당히 파격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드긴의 말이 인상적이다. 목숨 걸고 함께 사지를 건넌 우리가 가족이라는 취지의 말이었다.
<던전 앤 드래곤>이 흥행에 성공해 시리즈로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배경, 캐릭터, 크리처 그리고 티키타카와 메시지 모두 마음 편안하게 하는 것들뿐이었다. 계속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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