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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한 시대를 풍미한 패션 디자이너의 지독한 흥망성쇠 <홀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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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홀스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홀스턴> 포스터. ⓒ넷플릭스

 

넷플릭스와 계약 후 쉴 새 없이 작품을 쏟아 내고 있는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라이언 머피, 작년에만 드라마 <오, 할리우드> <더 폴리티션 2> <래치드>를 제작했고 영화 <프롬>을 연출했다. 작년에도 5월에 <오, 할리우드>로 포문을 열었듯, 올해도 5월에 신작 드라마로 포문을 열었다. 1970~80년대 미국을 화려하게 수놓은 패션 디자이너 '홀스턴'의 이야기를 다룬 <홀스턴>이 그 작품이다.

 

홀스턴이라... 적어도 나는 이 이름을 전혀 알지 못한다. 들어본 적도 없고, 인물 사진이나 브랜드 로고나 제품조차 본 적이 없다. 한때나마 별처럼 반짝 빛났던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 자세히 후술하겠지만 그는 말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팔았다고 한다. 아니, 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신 크나큰 돈을 손에 넣었지만 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미티드 시리즈 <홀스턴>은 시대를 풍미한 한 남자의 짧지만 굵었던 파란만장 다사다난한 인생사를 빠르게 되짚는다. 라이언 머피가 총괄제작했고 각본에도 참여했으며 명배우 이안 맥그리거가 홀스턴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이 기회를 빌어 '홀스턴'이라는 이름을 뇌리에 각인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시대를 풍미한 패션 디자이너의 흥망성쇠

 

1938년 미국 인디애나 시골, 어린 홀스턴은 아빠에게 폭행당하는 엄마를 위해 모자를 만들어 선물한다. 많은 시간이 흘러 1961년, 모자 디자이너로 일하는 홀스턴은 영부인 재키가 쓴 모자로 일약 유명인사가 된다. 다시 시간이 흘러 1968년, 급변하는 시대를 따라잡지 못해 홀스턴은 위기에 봉착한다. 아무도 모자를 쓰려 하지 않는다. 모자의 시대가 지나가 버린 것이다. 

 

랄프 로렌의 성공 스토리에 힘입어, 홀스턴은 자기 자신을 브랜드화시키려 한다. 그러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스턴을 입히려는 포부를 밝힌다. 그렇게 드레스라인을 선보이지만 쫄딱 망하고 만다. 이후 그는 독립해 본인의 회사를 차리기로 한다. 땡전 한 푼 없는 그는, 순전히 지인 찬스만을 이용해 그럴싸한 살롱을 차린다. 그러곤 돈 많은 사모님을 공략해 투자를 받는다.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 입히려는 노력을 계속해 나름대로 괜찮은 쇼도 성공시켰지만 정작 주문은 들어오지 않는다. 그때 사교계에서 맹위를 떨치는 사모님으로부터 관심을 받고 본격적으로 팔려 나가기 시작한다. 홀스턴도 자기자신을 변화시킨다. 그 누구보다도 도도하게, 엣지 있게, 폼 나게, 패션 디자이너라는 예술가의 모습에 걸맞게 말이다. 승승장구가 시작되는 홀스턴 그리고 그의 회사, 하지만 곧 마약의 구렁텅이에 빠지기 시작하는데... 홀스턴의 흥망성쇠는 어떤 식으로 흘러갈 것인가?

 

마치 캐릭터 같은 롤러코스터 인생사

 

자고로 '드라마'라고 하면 드라마틱하고 극적인 흐름이 스토리를 주도하게 마련이다. 드라마를 보는 거의 모든 이가 자신도 모르게 바라고 있을 게 분명하다. 작품마다 방법론이 다를 뿐이다. 장면, 대사, 캐릭터, 흐름, 상징 등. <홀스턴>은 제목에서도 당당히 드러내고 있는 바, 실존인물인 '홀스턴' 캐릭터로 다분히 극을 이끈다. 그의 가히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사를 따라가기만 해도 충분하다. 

 

홀스턴에겐 그 누구보다 특출난 실력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기회를 낚아 챌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거기에 자존감, 자신감, 자기애가 충만했던 게 분명하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신이 말하는 바에 따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내면이 하는 목소리를 들었을지언정 운명처럼 내리친 하늘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 게 분명하다. 최고의 자리에서 거짓말처럼 낙하했으니 말이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저 그런대로 큰 문제 없이 평범하게 살다가 죽는다. 최고의 위치에 서긴 힘들겠으나 최하의 위치에서 기어다니지도 않을 것이다. 반면, 홀스턴은 힘겨운 듯 빠르고 당연하게 최고의 위치에 오른다. 하지만, 중압감을 이기지 못했는지 돈과 권력에 맛에 취해 버렸는지 마약에 심취하고는 그의 장점이었던 특유의 자신감과 자기애를 주체하지 못하고 자멸한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자신의 힘으로 운영했던 회사가 팔려나간 것이다. 그 자신은 에이즈에 걸려 서서히 죽어 갔고 말이다. 

 

홀스턴은 홀스턴의 홀스턴을 위한 홀스턴에 의한 삶을 살았을까.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은 채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면서도 '제국'이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닐 대기업 집단을 이루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흥청망청 돈을 쓰며, 만인이 그의 디자인한 패션을 입고 다녔으니 말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는 마치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처럼 당연한 듯 수순을 밟아 나갔다. 비극적 영웅의 삶이랄까. 

 

능숙한 오르막길, 서툰 내리막길

 

한편, 홀스턴의 삶에서 배울 만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에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고, 추락하기까지의 과정에선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둘 다 '홀스턴'이라는 사람으로 다분히 수렴되는데, 자기확신의 긍정적인 면과 자기애의 부정적인 면이 그것이다. 하여,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동안 왜 홀스턴을 알지 못했을까 매우 의아하다. 그만큼 그의 아우라는 엄청나다.

 

그는 오르막길에 매우 능숙했다. 남들은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든 난코스를, 마치 미래를 보고 있거나 미래에 다녀왔다는 듯이 또는 지름길을 알고 있다는 듯이 척척 내딛었다. 그 과정에서 '내 말과 생각과 행동이 곧 진리다'라고 천명하는 듯했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뭔가를 느낀 것 같다. 후광이랄까, 계시랄까. 그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자기확신은 선을 넘지 않았다. 

 

그는 내리막길에 매우 서툴렀다. 남들은 한 걸음 내딜 때마다 다칠까 봐 조심하는데, 마치 빨리 바닥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제 그만 쉬고 싶었던 걸까,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걸까, 자기애로의 선을 넘어 버린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가 최고의 자리에 있었을 때보다 최하의 자리에 있었을 때 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를 욕하며 그에게 경멸에 찬 눈빛을 보내는 게 아닌 조금은 애절하게 조금은 애처롭게 보게 되는 게 차라리 긍정적인 감정이라면 말이다. 

 

누군가의 지독한 흥망성쇠를 엿보는 게 결코 유쾌하진 않다. 흥미로울 뿐이다. 자극이 판 치는 세상에서 유쾌보단 흥미를 택한 결과가 이 작품 <홀스턴>이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흥미와 자극을 충분히 전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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