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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큰 힘이자 큰 위협이 되는 경계인의 딜레마를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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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갑철성의 카바네리: 해문결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갑철성의 카바네리: 해문결전> 포스터.

 

산업혁명의 물결이 절정에 달했을 19세기말, 이유불문의 불사 괴물 '카바네'가 나타난다. 죽었다 되살아난 좀비의 일종인 듯, 강철 피막으로 둘러싼 심장을 꿰뚫어야만 죽일 수 있다. 한편 카바네에게 물린 사람은 카바네로 변한다. 극동 섬나라 히노모토는 카바네의 습격으로 중앙 막부가 망하고 각지의 영주들이 각자도생에 들어간다.

와중에 강철 장갑을 두르고 전선을 뚫어온 증기기관차 중 하나인 '강철성'이 결전의 장소인 해문에 도착한다. 강철성에서 살아남은 이코마 일행은 인간연합군과 함께 카바네로 뒤덮인 해문을 되찾고자 계획을 세우고 있다. 카바네에 물렸지만 카바네가 되지 않은, 그렇다고 인간도 아니어서 힘과 스피드가 엄청난 '카바네리'인 이코마와 무메이는 지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이상한 점을 느낀다.

카바네의 행동이 전에 없이 일사불란하고 통제된 것 같아 누군가 그들을 불러내 조종하고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코마의 이상 행동으로 인간연합군 수뇌부는 그를 믿지 못하고 가둬 버린다. 한편 인간연합군은 드디어 해문 탈환의 결전으로 나아간다.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이코마와 무메이는 그토록 바라는 인간으로의 재탄생을 성공할 수 있을까?

 

일본 애니메이션계 최고의 비주얼리스트

 

<데스노트> <길티 크라운> <진격의 거인> 그리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버블> 등을 연출한 '아라키 테츠로'는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대표할 만한 비주얼리스트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서사로는 몰라도 작화 하나만으로 충분히 볼 만하고 나아가 감동까지 받을지 것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는 단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아라키 테츠로를 대표하는 작품은 따로 있는데 2016년작 <강철성의 카바네리>가 그것이다. 작화 퀄리티가 특장점인 그의 작품들 중 단연 가장 작화 퀄리티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사 면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인기에 힘입어 당연하게 극장판 <강철성의 카바네리: 해문결전>이 2019년에 공개되었다. 4년이 지나 한국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되었다.

이 작품은 일본 현지에서 TV판의 최고 수준의 작화 퀄리티를 더 높이고 아쉬웠던 서사 퀄리티까지 높인 '완전체'로 명성이 자자했다. 배경의 큰 부분은 살리되 서사의 작은 부분을 달리하면서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게 했다. 즉 TV판을 보지 않았어도 극장판을 보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것이다. 다만 60분 남짓한 짧은 러닝타임이 아쉽다면 아쉬울 수 있다. 질질 끌지 않은 점은 좋았지만 더 보여줄 게 많았을 텐데 말이다.

 

우리의 큰 힘이자 그들의 절대적 위협

 

수많은 콘텐츠에서 이른바 '경계인'은 캐릭터성 짙은 주요 인물인 동시에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 전령이기도 하다. 그중에서 인간과 인간 아닌 무엇의 경계에 있는 '것'도 있는데, <강철성의 카바네리>에서 '카바네리'도 그에 해당한다. 불사의 괴물인 카바네에 물였지만 카바네로 변하지 않고 인간인 채로 살아가는 이들 말이다.

그들은 엄청난 힘을 지녔기에 인간에게 큰 힘이 되지만 언제 카바네로 변할지 알 수 없어 인간에게 큰 위협이 되기도 한다. 큰 힘이자 큰 위협, 잘만 이용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자칫 잘못하면 한순간에 멸망할 수 있다.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핵무기'다. 적을 퇴치하고자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모든 걸 한순간에 없애 버릴 수 있는 가공할 위협 그 자체. 누구도 확답을 줄 수 없는 딜레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이코마와 무메이 그리고 빌런 모두 인간이자 카바네 또는 인간도 아닌 카바네도 아닌 '카바네리'로, 그들 자신도 스스로를 잘 모르겠고 그들을 둘러싼 이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른다. 미증유의 위협 앞에서 그저 살아남을 방도를 생각할 뿐이고, 사상 초유의 사태에 처해 이리저리 휘둘릴 뿐이다. 경계인인 카바네리는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고자 끊임없이 싸우면서도 인간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신이 인간이라는 걸 끊임없이 주지시켜야 한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힘든 딜레마

 

비록 크나큰 세계관의 단면에 불과하지만 이 작품이 나름의 힘을 자랑하는 건 주요 캐릭터들의 사연 덕분이다. 이코마와 무메이는 압도적인 힘과 스피드로 카바네를 괴멸시키지만, 전투 중이지 않을 때는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일상을 지배하다시피 한다. 사랑하고 싶어서 행복하고 싶어서 괴물과 인간의 경계인이 아닌 확고한 인간으로 돌아가려 한다. 힘과 스피드가 다 무슨 소용인가?

그런가 하면 메인 빌런 카게유키는 예전에 영지를 지키고자 항전하다가 카바네에게 당해 카바네리가 되었다. 그런 그를 두고 무사들은 적대시했다. 거기까진 스스로의 선택이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삶의 유일한 낙이자 이유였던 딸 미유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카게유키는 무사들을 전멸시키다시피 하고 미유키와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나타나 카바네들을 통솔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물러설 수 없는 사연 대 사연의 싸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딜레마의 상황에 처하게 한다. 선과 악이 나뉜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 악은 보이지 않는 곳에 따로 있을 것이다. 고로 가해자가 된 피해자와 피해자의 싸움인 바 정의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 세계를 훌륭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느 한쪽도 마음에 오롯이 품지 못한 채 그들의 고독하고 눈물 나는 싸움을 지켜봐야 한다. 이 작품이 창조한 세계의 슬픔이자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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