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야차>
할리우드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첩보 액션' 장르, 한국에서 제대로 첫 선을 보인 건 1999년 <쉬리>를 통해서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새 역사를 쓰기도 했던 바, 그 이후로 한동안 한국 첩보 액션 영화는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2010년대 들어 우후죽순 쏟아졌다. <베를린>을 필두로 <은밀하게 위대하게> <용의자> 등이 한 해에 나왔고 <밀정> <강철비> <공작> <남산의 부장들> 등이 꾸준히 나왔다. 한국 첩보 액션물에서 남북한을 둘러싼 이야기가 알파이자 오메가일 것이다.
설경구 배우의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으로 기대와 화제를 모은 <야차>의 경우, 한국 첩보 액션물의 계보를 이을 만한 요소가 거의 없다는 점과 남북한을 둘러싼 이야기에서 동북아 전역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할 만하다. 할리우드 첩보 액션물이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오가는 모양새와 결을 함께한다고 하겠다.
지난 20여 년간 <화려한 휴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마이웨이> <남쪽으로 튀어> <나의 특별한 형제> 등의 작품에서 각본·각색을 도맡으며 인상적인 행보를 보여온 충무로 대표 스토리텔러 나현, 2017년 <프리즌>으로 화려하게 연출 데뷔를 이룩한 후 5년 만에 <야차>로 찾아왔다. 영화는 일찍이 2020년 중순에 크랭크업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극장 개봉을 하지 못하고 넷플릭스에 판권을 넘겼다고 한다. 만듦새와 별개로 장르상 안방극장에서만 즐길 수 있다는 게 아쉬울 것 같다.
동북아를 넘나드는 첩보 전쟁
황지훈 검사는 뇌물 공여 및 주가 조작 혐의로 소환된 상인그룹 이 회장을 조사하던 중, 수사관들이 참고인 사무실에 무단으로 침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황 검사는 '정의는 정의롭게 지켜야 해'라며 이 회장을 풀어 준다. 하지만, 그는 곧 좌천당해 국가정보원 법률보좌관실이라는 한직으로 간다. 그렇게 놀고 먹으며 지내고 있다가 어느 날 4국장 염정원이 찾아오고, 원대 복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말에 덥썩 그녀를 따라나선다.
황 검사가 맡게 된 임무는 국가정보원 중국 선양 지부 특별 감찰, 선양 지부에서 엉터리 보고가 올라오고 있기에 감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곧바로 선양으로 간 황 검사, 홍 과장의 인솔 아래 여행사로 위장한 국가정보원 선양 지부에 도착한다. 도착하자마자 일이 터지고, 따라 나서지 말아야 할 곳에 따라 나선다. 그곳에서 선양 지부 팀장 지강인을 만나고, 곧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진다. 팀장 이하 팀원들의 솜씨가 기가 막히다. 그들을 함정에 빠트린 북한인을 가차없이 죽여 버리기도 한다. 황 검사로선 놀라움의 연속이다.
선양 지부는 황 검사를 시험하는 한편 한국으로 돌아가게끔 갖은 수를 쓴다. 하지만 황 검사는 원대 복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릴 수 없다. 그렇게 선양 지부와 황 검사는 본격적으로 한 배를 타고, 핵심 정보를 공유한다. 현재 선양 지부의 당면 목표는 북한 조선노동당 '39호' 김씨 정권의 금고지기인 문병욱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는 여러 나라의 핵심 타깃이거니와 그가 한국에 신변 보호 요청을 해 온 상태였다. 과연, 선양 지부 일원 그리고 황 검사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
개성 강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캐릭터
제목부터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야차>의 '야차'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데, 인도 설화와 불교에 나오는 신적 존재로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살인귀이기도 하지만 불교 법도를 수호하는 신장이기도 하다. 작중 지강인 팀장이 '야차'의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바,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반면, 황 검사는 본인의 입으로 밝혔듯 정의는 정의롭게 지키려는 타입이다. 그 어떤 불법도 저지르지 않는 선에서 범법자를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설경구 배우의 '지강인' 역에서 정확히 20년 전 <공공의 적>의 '강철중'이 오버랩된다. 강철중은 마약을 판매하고 사건을 조작하며 뒷돈을 챙기는 비리 경찰이자 공공의 적이라 할 만한 인물, 하지만 진짜 공공의 적이라 할 만한 연쇄 살인마 조규환을 잡고자 특유의 깡과 본능 그리고 집요함을 발휘한다. '정의롭지 않은 사람이 정의를 지킨다'는 내용에서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변화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야차>는 개성 강하고 논란의 여지까지 있을 캐릭터를 <공공의 적>만큼 제대로 살리진 못한 것 같다. 지강인과 비슷한 듯 대척점에 있을 캐릭터가 눈에 띄지 않았고, 허울 좋은 큰 스케일이 캐릭터의 디테일을 가로 막은 게 아닌가 싶다. 흥미로운 캐릭터 설정으로 호기롭게 밀고 나가며 영화 전체를 캐리하길 바랐는데, 어느새 캐릭터의 개성이 묻혀 버린 감이 있었다. 캐릭터에 좀 더 큰 비중을 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한국 첩보 액션물의 최전선
첩보 액션이라 불릴 만하다면, 단연 맨몸 액션, 카체이싱, 총격전이 돋보일 것이다. <야차>의 경우 카체이싱은 나오지 않고 맨몸 액션은 약간만 선보이는 수준인 반면 총격전이 사실상 액션의 전부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제작보고회에서 설경구 배우가 "총알 수로는 아마 대한민국 영화 중 최고 기록이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촬영에 사용된 총기는 36정이고 총알수는 7700여 발이라니 그렇게 말한 만도 하다.
주지한 한국 첩보물 중 <베를린> <용의자> <강철비> 등 '액션'의 비중도 높은 작품들은 좋은 흥행 성적을 거뒀을 뿐 아니라 꽤 좋은 평가도 받았다. 스토리와 연출에도 신경을 상당히 쓴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반면, 이들 작품들과 결을 같이 하는 <야차>는 스토리와 연출에서 상당히 아쉬움을 보인다. 개연성이 부족한 건 둘째 치고, 첩보물 특유의 서스펜스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부족했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었다. 분명 스케일이 큰데 '큰' 영화라고 하기가 애매모호했다.
앞으로도 한국 첩보 액션물은 꾸준히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나름의 장단점을 지닌 채 '장르 영화'의 한 축을 든든히 장식할 것이다. 부담없이 즐기면서도 더 좋은 작품이 나오길 기대하며 훈수를 둘 것이다. <야차>는 장점이 많은 영화다, 아니 장점으로 승화시킬 것들이 많은 영화라고 해야 맞겠다. 그런 만큼 위에 나열한 아쉬움들이 단순히 아쉬움에서 그치지 않고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테다. 더 단단해질 한국 첩보 액션물의 다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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