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대학교 학과장이라는 자리, 그 무게를 버텨라 <더 체어>

728x90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더 체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더 체어> 포스터.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더 체어>를 찜해 놓고 공개되자마자 득달같이 앉은 자리에서 정주행해 버린 건 두 가지 이유, 아니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바로 주인공이 다름아닌 '산드라 오'라는 점, 2005년에 시작해 17시즌째 계속되고 있는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장장 10시즌까지 주연급으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렸고 2018년부터는 미드 <킬링 이브>의 간판으로 활약하고 있다. 두 미드로 각각 골든글로브를 수상했는데, 자그마치 아시안 최초의 기록. <더 체어>는 그녀의 원탑 주연 작품이니 관심 가지 않을 수 없다.

 

작품은 아이비리그 하위권의 명문 펨브로크 대학교 영문학과 김지윤 교수(산드라 오 분)가 역사상 최초의 비백인 여성 학과장을 맡으면서 시작된다. 곧바로 그녀에게 학장의 지령이 떨어지는데, 가장 높은 축의 연봉을 받아가지만 수강인원은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세 명의 교수를 해고시키는 방안을 가져 오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비록 위대한 업적을 쌓았지만 이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김지윤 학과장으로선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들이야말로 펨브로크 대학교 영문학과의 산증인들이 아닌가.

 

첫 과제에서 헤매고 있을 때 또 다른 지령들이 떨어진다. 이번엔 해결하기 힘든 문제도 함께 말이다. 1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살아가는 게 예전과 같지 않은 교수 빌이 강의 시간에 나치 경례를 실행해 버린 것이다. 비록 강의 내용과 관련되었다고 하더라도 명백한 실수, 학생들이 SNS로 그의 행동을 문제 삼기 시작했고 시위까지 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급기야 학장은 그의 강의를 유명인에게 양도하게끔 학과장을 몰아붙인다. 그 와중엔 젊고 실력 있는 흑인 여성 교수 야즈를 종신 교수로 앉히려는 학과장과 남성 노교수들의 알력 다툼도 있다. 할 일 많고 헤쳐 나가기도 쉽지 않은 학과장의 길, 과연 김지윤 교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학교 학과장이라는 자리

 

적으면 수천 명에서 많으면 수만 명까지, '대학'이라는 배를 떠받치며 함께 가는 공동체의 인원은 무수하다. 얽히고설킨 관계들까지 모두 살피면 가히 어마어마하다 할 것이다. 그런 와중에, 학과를 이끌어야 하는 '학과장'의 책임과 권한은 엄청나다고 하는 말로 충분한 설명이 불가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주위의 대학 관계자들 얘기를 들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한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막중한, 이를테면 '귀찮은' 자리라는 것이다.

 

<더 체어>가 보여 주는 대학교 학과장의 자화상이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위에서 손쉽게 찍어 누르는 학장과 아래에서 따로 또 같이 치고 올라오려는 평교수들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모습이니 말이다. 대학이라는 고귀하면서도 유일무이한 공동체가 아닌 흔하디흔단 회사의 흔하디흔한 모양새 중 하나로 보이기까지 한다. 대학이라고 별 게 없다고, 특히 요즘 대학은 더 이상 옛날 그 학문의 요람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더욱이, 극중에서 김지윤 교수의 처지는 또 다르다. 대학 측에서 그녀를 학과장으로 앉힌 이유가 뻔히 보이는 것이다. 실적과 권위에서 무너져 내리는 영문학과의 '얼굴 마담' 격으로, 이미지 쇄신에 반드시 필요한 인종과 성별의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적임자로 김지윤 교수가 필요했다. 그녀도 잘 알고 있고, 타 교수들은 물론 학생들까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

 

제목 <더 체어>는 원제인 'The Chair'를 한국어로 풀이한 게 아니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굳이 번역해 보면 '학과장'이라는 뜻인데, 정확하기 이를 데 없지만 한편으론 생각해 볼 여지를 없애 버리기도 할 것 같다. 하여, 원제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게 좋은 선택이라 하겠다. 제목만으로도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라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대사가 생각나지 않는가?

 

김지윤 교수는 저간의 사정을 모두 아주 잘 알면서도 자리를 수락하며 포부를 밝혔다. 시대에 뒤떨어져 비인기학과의 대표 주자로 전락하고 만 영문학과에 실질적으로 활기를 불어넣겠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학과 전체가 한 목소리를 내되 올바름을 견지하면서도 좋은 퀄리티로 또 학생들의 니즈에도 맞게끔 강의를 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게 후딱 진행되겠는가.

 

한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올바름을 견지하기도 쉽지 않고 좋은 퀄리티면서도 학생들의 니즈에도 맞는 강의를 하는 것도 어렵다. 교수 하나하나가 나름의 공동체를 독자적으로 이끌고 있으니 만큼 각각의 요구를 들어서 모아 조율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럴 때 필요한 게 카리스마 리더십과 누군가의 희생일 수 있을 텐데, 김지윤 학과장은 극중 동료 교수의 말처럼 '착한사람 놀이'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 소신일 수도 있으니 뭐라 할 순 없지만 조직을 이끄는 개체로서 개인적 소신은 멀리해야 할 때도 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닐 테다. 누구나 겪을 만한 어려움을 명문 대학교 '교수' 그것도 '학과장'이나 되는 분께서 겪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면서 재밌다.

 

일상의 고군분투까지

 

이 작품이 제목의 언저리에서만 왔다갔다 했다면 다음을 기대하진 않았을지 모른다. 잘 모르는 대학의 치졸하고 치열한 이면을 들여다보는 게 그쳤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김지윤 교수의 일상생활도 나름의 이슈를 곁들여 상당히 깊숙이 보여 주려 하면서 당장의 재미와 더불어 다음의 재미까지 얻게 했다. 잠깐 들여다보자.

 

김지윤 교수에겐 한국인 아버지와 스페인계 딸이 있다. 남편과는 이혼했고 말이다. 아버지는 영어를 웬만큼 하지만 거의 한국어만 한다. 딸과는 입양으로 가족이 되었는데, 너무 똑똑하지만 어딘가 많이 비뚤어져 키우는 게 쉽지 않다. 너무나도 바쁜 김지윤으로선 딸과 정서적 교감을 충분히 나누는 데 소홀했으니 딸의 생각과 행동과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그런가 하면, 징계에 이은 파면의 위기까지 처한 교수 빌은 그녀와 썸을 타는 상황인데 공과 사의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돋보인다.

 

진지하면서도 코믹한, 어느 명문 대학교의 위기에 처한 영문학과 이야기. 특히 '학과장' 자리를 두고 펼쳐질 앞으로의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할 듯싶다. 김지윤 교수는 사랑하는(?) 학교와 학과에의 명백한 포부를 위해 학과장 자리를 지켜 낼 것인가, 쫓겨 나고 말 것인가, 쫓겨 났다가 다시 맡게 될 것인가. 그 대략의 내용은 심각하지만,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범접하기 힘든 재미를 느낄 게 분명하다. 이 재밌는 드라마를 누구든 한 번씩 섭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