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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나만의 세계를 당신에게 소개하는 어려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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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영화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포스터. ⓒ디오시네마

 

미국 오리건주 한적한 바닷가 마을의 열댓 명 남짓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프랜, 그녀는 서류 작업 하나는 기막히게 해낸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하는 시답잖은 이야기에 끼지 못한 채 눈치만 보곤 한다. 굳이 끼고 싶어 하진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대신 그녀는 창문 밖을 바라보며 남모를 은밀한 상상에 빠지곤 한다.

아무도 없는 곳, 이를테면 바닷가나 숲 속 또는 집이나 텅 빈 사무실에서 홀로 있는 상상이다. 그것도 죽어 있는 모습을 말이다. 그런데 우울해 보인다기보다 오히려 굉장히 편안해 보인다. 신기하게 생기가 도는 것 같기도 하다. 죽음을 상상하는 모습이나 상상 속 죽어 있는 모습 모두 말이다. 그런데 그녀의 일상을 뒤흔드는 이가 나타난다.

정년퇴임을 하게 된 캐롤의 후임으로 온 로버트가 바로 그다. 그는 은근슬쩍 프랜의 영역으로 다가온다. 스스럼없이 물어보고 자신의 비밀을 공유한다.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는 등 데이트도 이어 나간다. 프랜으로선 단조롭지만 편안했던 일상을 흔드는 크나큰 변화지만 이 정도면 적당하다. 그런데 로버트가 프랜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자 정색하는데… 과연 이들의 관계는 어디로 향할까?

 

온전히 혼자라서 평온한 죽음의 순간

 

영화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는 동명의 단편영화를 원작으로 한 일종의 확장판이다. 원제는 'Sometimes I Think About Dying'으로 '나는 때때로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러니 이 영화의 본래 기획 의도에는 '죽음'만 있었을 뿐 '사랑'은 없었다. 결정적으로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정도다. 한국어 제목과 원제는 서로 비슷한 듯하지만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펼쳐져야 할 제목이다. 베스트셀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차용한 게 분명하다.

말이 나온 김에 '죽음'은, 그러니까 프랜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죽음'은 이 영화에서 절대적이다. 적어도 우리가 보는 프랜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녀가 생각하는 죽음은 보통의 죽음과 다르다, 아니 반대라도 해도 틀리지 않다. 보통의 죽음이 끔찍하거니와 절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것이라면 그녀의 죽음은 평온 그 자체다. 단조롭고 재미없고 의미 없는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게 오히려 죽음의 모습인 것이다.

그녀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별것도 아닌 얘기를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걸 애써 피하는 것도 한몫하겠으나 온전히 혼자인 죽음의 순간을 평온으로 받아들이는 게 결정적일 테다. 그녀는 혼자일 때 편안하고 편안함에서 생기를 얻으며 그 생기를 바탕으로 회사 생활과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대부분이 인정하기 힘들 테지만 그녀만의 선순환(?)이라고 할 만하다.

 

인생관,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 등 새로운 모든 건 사람으로 하여금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긍정적인 쪽으로 기대에 가득 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쪽으로 불안에 가득 차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극 중에서 프랜의 앞에 나타난 로버트가 그랬다. 다들 프랜의 성향을 알기에 굳이 말을 걸어오지 않는 반면 그는 프랜을 잘 모르기에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프랜으로선 굳이 피할 것까진 없으니 적당히 받아주기로 한다.

그런데 로버트는 자신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는 반면 그녀는 자신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기가 힘들다. 죽음을 생각하며 생기를 얻는다는 얘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여 로버트도, 프랜도 이해가 간다. '그런 말도 못 해줘?' '그런 말을 어떻게 해?' 하고 말이다. 하지만 서로를 알고 싶다면 자신만의 세계에서 나오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를 소개해주는 게 필요하다. 그게 인생관,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이다.

프랜이 어떻게 했을지는 말할 수 없지만, 아니 궁극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이 영화가 '연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러니 굳이 제목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넣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대신 이 영화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나와 일상, 나와 죽음, 나와 당신, 나와 세계로 이어진다. 의외로 심오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하여 전체적으로 충분히 지루할 수 있는데 그 자체가 이미 영화의 노림수(?)이기에 감안하고 감상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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