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독자에게] 베스트셀러 의사가 쓴 몸 에세이 <내 몸 내 뼈>
잘 만들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나름 에세이 팀을 맡고 있으니 에세이 베스트셀러를 자주 훑어 봅니다. 최신작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점령하는 속도가 '경제경영'보단 못하지만, '인문' '역사'보단 빠르며, '자기계발'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독자들한테 사랑받는 분야로 중간은 간다고 판단할 지표라고 볼 수 있겠지요.
에세이라는 분야가 품을 수 있는 한도가 워낙 넓어, 종종 타 분야를 넘나드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요즘엔 자기계발 분야와 발을 걸치고 있는 책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인문, 가정살림, 건강 분야까지 넘나드는 책도 나오곤 합니다. 출판사에선 당연히 한 가지 분야를 상정하고 책을 만들었겠지만, 서점에서 자의적으로 추가 분야를 상정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번에 만들어 낸 에세이 <내 몸 내 뼈>(유노북스)도 '하이브리드'라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제목만 봐도 연상되는 '건강' 분야 그리고 저자와 편집자와 출판사에서 상정한 '에세이' 분야가 걸쳐져 있는 것이죠. 내용도 그러합니다. 대만 문학상을 휩쓴 작가이자 의사가 쓴 몸 구석구석의 이야기들이니까요. 신체 부위 이야기도 하고, 임상 이야기도 하고, 일상생활 이야기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몸'을 매개체로 온갖 것과 온갖 데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것이죠.
이 책 정말 재밌네요!
원고를 제대로 접하기 전에 샘플로 검토했을 때 느낌이 왔습니다, 재밌다고요. 읽을 맛이 나겠다고요. 이 책이 대만 현지에서 처음 출간된 건 2013년이고 2020년에 개정판이 나왔는데, 저자가 1982년생이라니 갓 서른이 넘었던 때 지은 것이죠. 그래서인지 책 곳곳에 이른바 젊은 감각이 넘쳐 흐릅니다. 저자가 부끄러움을 많이 탈 것 같은 성격임에도 말이죠.
사람은 유머러스해도 글로 뿜어져 나오는 형태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표현력이 약하면 전혀 다른 느낌이 표출되곤 하죠. 이 저자는 언행문일치를 선보입니다. 글을 잘 써서인 것 같아요. 현 가정의학과 의사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음에도 유수의 대만 문학상을 석권하고 문학교과서에도 글이 실릴 정도의 빼어난 글짓기 실력을 자랑하죠. 물론 번역하면 그 맛을 100% 살리기 힘들지만, 번역가의 실력도 상당해서 저자의 읽을 맛 나는 글솜씨를 상당 부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출간 계약 전 마케팅팀에게서 "이 책 정말 재밌네요, 잘 팔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예요. 그런 말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죠. 문제는, 그 말을 한 당사자는 정작 이 책을 담당하지 못하게 되었죠. 이 책의 담당 마케터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그때 그 확신에 찬 말을 듣는 건 힘들겠죠. 그래도, 좋은 책이 많은 분께 읽히길 바람입니다. 이 책은 재밌고 좋습니다.
의사 출신 작가의 에세이
우리나라에도 작가이자 의사인 분들이 계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작가는, 자기계발서나 인문서나 건강서를 낸 의사가 아닌 최소한 '에세이'를 포함한 범문학에 발을 걸친 이들을 지칭합니다. 바로 떠오르는 이는 남궁인 의사와 이국종 의사,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들이기에 기억에 남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김강 의사는 등단 후 장편소설까지 냈고 이낙준 의사는 엄청난 조회수를 자랑하는 네이버 웹소설의 지은이이며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의사 곽경훈은 에세이를 내며 어느 정도의 꿈을 이뤘죠.
한편 대만에는 소설가, 시인과 함께 문단에서 활동하는 의사 출신 문학가들이 다수 있다고 합니다. <내 몸 내 뼈>의 저자 황신언도 그중 한 명으로, 의사로서의 이성과 작가로서의 감성을 두루두루 갖춰 서로 도움을 준다고 하죠. 이를테면, 의사 일을 할 때 작가적 감성에서 도움을 받고 작가 일을 할 때 의사적 이성에서 도움을 받는 식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여타 일반적인 에세이들보다 더 풍부하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의학과 문학이 따로 또 같이 혼합하여 빛을 발하는 장면이 몇몇 있습니다. '귀'에 관한 이야기에서 저자와 할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잘 들리지 않아 답답한 저자가 아니라 할머니의 입장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할머니는 전화를 받을 때 수화기 저편의 멀고 낯선 세상과 마주하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불안하셨을까, 그런가 하면 세상의 모든 논쟁과 시비에서 벗어나 고요함에 몸을 맡기게 된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합니다. 상당한 통찰력이죠.
'폐'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폐를 얘기하자면 담배가 빠질 수 없을 텐데요. 저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생각에 잠깁니다. 세상 모든 구석에 정체되어 있는 공기를 휘저어 서로의 호흡 기관으로 들어가 소통하려는 것만 같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각자의 이야기를 깊숙이 품은 채 바깥세상이나 타인과 인생을 나눌 수 있는 신체 기관은 폐뿐이라고 말합니다. 머리로 이해하게 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만들고 싶었던 책
이 책은 4부로 구성해 신체 기관 32가지 부분을 들여다봅니다. 크게 머리와 목, 가슴과 배, 몸통과 사지, 골반과 회음으로 나눠 머리카락, 얼굴, 어깨, 허리, 엉덩이, 발가락, 배꼽, 자궁, 포피 등을 다루죠. 몸을 조각내듯 나눠 다루니, 이 책은 '몸' 에세이일까요? 위에서 나열한 의사 작가들의 에세이들처럼 다분히 의사의 일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다루는 '의학' 에세이일까요? 둘다 맞지만 또 둘다 아니기도 합니다. 이 책의 실체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평범한 에세이입니다.
에세이는 남녀노소 누구나 쓸 수 있는지라, 수많은 사람의 수많은 에세이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내 몸 내 뼈>는 작가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뿐입니다. 하여, 저자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전함에 있어 몸 자체에 대한 해부학적 이야기를 다루고 의사로서 환자와 대면한 이야기를 다루며 일상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자연스레 떠오르는 다분히 의학적으로 치우친 생각들을 다룹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기되, 생각지도 못한 정보와 지식 그리고 지혜까지 얻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에세이를 계속 만들게 될 텐데, 이 책처럼 소구점이 있어 호기심을 끄는 저자와 이야기와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을 만나고 싶습니다. 저도 독자이지만, 독자들은 어떤 책을 좋아하고 또 즐길지 알기가 힘듭니다. 그래서일까요, 출판계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네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어라"라고 말이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책을, 읽고 싶지 않은 책을 남들이 좋아하길 바랄 순 없겠죠. 남들이 읽게끔 만들 자신도 없을 테고요. <내 몸 내 뼈>는 제가 만들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내 몸 내 뼈 - 황신언 지음, 진실희 옮김/유노북스 |
'신작 열전 > 신작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챔피언스리그로 보는 현대축구의 거의 모든 것 <챔피언스리그 레전드> (0) | 2021.07.14 |
---|---|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진실 어린 치유 회고록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0) | 2021.06.09 |
춥디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찾아오길 <부디, 얼지 않게끔> (0) | 2020.12.11 |
대한민국 결않못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못하게 되었다> (2) | 2020.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