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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자기 자리를 찾고 싶은 중년의 자화상 <이것은 코미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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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이것은 코미디가 아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이것은 코미디가 아니다> 포스터.

 

스탠딩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며 영화 대본을 쓰는 40세 부근의 남자 가브리엘 눈시오, 외계인과 교신하고 있다는 여자친구 레이레의 이야기를 코미디 소재로 썼다가 여자친구한테 한소리 듣기도 한다. 자괴감이 들었는지 가브리엘은 코미디언 일을 그만두고 싶어한다. 와중에, 친한 여자친구 멜리사가 찾아와선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한다.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정자를 달라는 게 아닌가. 

 

늘 두려움에 빠져 사는 가브리엘, 레이레가 또 한소리하고 가브리엘은 반박한다. 돈도 잘 못 벌고 돈이 많지도 않은 가브리엘, 때때로 운이 지지리도 없고 자주 사고 싶은 걸 흔쾌히 사지 못한다. 여자친구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와중에, 엄마의 연락을 받아 위독하다는 삼촌을 찾아간다. 만들고 싶은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삼촌이 갑작스레 돌아가신다. 

 

힘을 쏟은 대본을 영화로 만드는 데 실패하고 스탠드업을 그만두고 코미디언이라는 이름으로 잡은 광고 일도 능력이 없다고 쫓겨난다. 와중에, 기르던 강아지 텀블링을 잃어 버린다. 되는 게 정녕 하나도 없는 가브리엘, 급기야 레이레가 세상을 떠나 버리는데... 고통과 슬픔밖에 남지 않은 가브리엘에게 더 이상 뭐가 남아 그를 지탱할까. 이 코미디같은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생각해야 할까.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멕시코 영화, '세 친구' 알폰소 쿠아론과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와 기예르모 델 토로가 작품성과 흥행성을 앞세워 전 세계 영화계를 평정하다시피 했다. 거기에 '칸의 딸' 미셸 프랑코도 가세했다. 위용을 갖추고 또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가브리엘 눈시오라는 능력자도 있다. 연출과 각본 그리고 제작은 물론 주연까지 겸비했다. 

 

그는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품들 다수에 참여했는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도 꽤 있다. 알폰소 쿠아론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마>의 제작기를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로마로 가는 길>을 공동연출하기도 했다. 다재다능함이 엿보인다. 최근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이것은 코미디가 아니다>이다. 

 

형이상학적이고 상징적인 제목의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코미디가 아닌 드라마 장르다. 하지만 주인공 가브리엘 눈시오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생각난다. '코미디'라는 장르의 핵심이자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말에서 영화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만 떼어온 것 같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또 웃프다. 

 

자기 자리를 찾고 싶은 중년의 자화상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소소한 일부터 큰 일까지 뭐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때 말이다. 40살이 내일모레인 가브리엘은 아무래도 아홉수인가 보다. 나름대로 잘 해내고 있던 스탠드업 코미디언 일을 그만두고 쏟아부은 일생의 염원인 영화 대본이 엎어지는 와중에, 매일같이 집 열쇠를 잃어 버려 돈을 주고 집 자물쇠를 딴다. 그런데, 재킷 안주머니에 열쇠가 들어 있다. 

 

서 있는 곳이 어딘지 모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며 가야 할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느낌이 물씬 든다. 온갖 종류의 비극이 가브리엘의 평범한 일상을 덮치는 것 같다. 혼란스럽고 외롭고 우울하다. 그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비탄만이 가득하다. 언제 행복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영화는 그저 자기 자리를 찾고 싶어 하는, 평범하게나마 지내고 싶어 하는 중년 즈음의 남자의 자화상을 웃프게 그려냈다. 가브리엘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화 대본을 두고 코미디라고 생각하는 데 맞서 계속 드라마라고 하는데, 이 영화 또한 보는 이들은 코미디라고 생각하겠지만 만든 이는 드라마라고 생각할 것 같다. 바로 그 두 지점이 만나 조화를 이뤄 '웃픈' 장르가 새롭게 태어난 게 아닌가 싶다.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비극의 면면을 엿보고 비극이 가져오는 코믹함을 자연스레 체득하는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우리네 일상의 이야기

 

남의 삶을 엿보고 싶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 심리, 영화는 그 심리를 충족해 준다. 하지만 거기에 영화적 장치, 즉 드라마틱하거나 판타스틱하거나 섹슈얼리틱한 장치가 없다면 굳이 보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살아가는 '비루하다고 생각하는' 일상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영화를 보기도 한다. '나도 그런데 너도 그렇구나' 하며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코미디가 아니다>는 다분히 후자스러운 이유를 가지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든 이유와 이 영화를 보는 이유 말이다. 남의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이기 짝이 없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인 것 같다. 나에겐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 진지한대 누군가가 보면 하찮고 실없는 코미디처럼 보일 것이다. 다 그렇게 저렇게 살아가는 걸까. 

 

영화는 막상 보면 지루할지 모른다, 아니 지루할 것이다. 특별한 것 없는 우리네 일상도 그렇지 않은가. 뭐 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이 시간만 속절없이 흐르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말로 표현하지 못할 여운이 남는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가사 없는 음악을 듣고 난 후의 느낌처럼 말이다. 가브리엘에게 애틋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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