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썸머 필름을 타고!>
일본의 어느 고등학교 영화 동아리 방, 8월에 열릴 학교 축제에서 상영할 영화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다들 감독이자 주연배우 카린을 칭찬하고 있는데, 맨발만 별로인 눈치다. 그녀는 대사에 "사랑해"밖에 없는 영화에 의문을 품고 있다. 대신 그녀는 사무라이 시대극을 열렬히 사랑하고 또 만들고 싶어 한다. 비록 카린의 영화에 밀렸지만 <무사의 청춘>이라는 시나리오도 써 놨다.
맨발의 절친인 천문부의 킥보드와 검도부의 블루 하와이가 맨발에게 <무사의 청춘>을 찍어 보자고 제안하지만, 맨발은 주인공이 될 만한 이가 없다며 거절한다. 그러던 중 시대극 전용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던 중 린타로를 보고 직감한다, <무사의 청춘> 주인공이 될 만한 상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린타로는 도망다니며 맨발의 제안을 극구 거절한다.
린타로가 그러거나 말거나 맨발은 절친 둘과 함께 학교 내에서 주연급 배우와 조명팀과 음향팀을 찾아 낸다. 그러곤 발 빠르게 준비해 촬영에 들어가려는데, 린타로가 다시 한번 거절한다. 린타로가 진심임을 알아 챈 맨발은 린타로가 주인공을 맡아 주지 않으면 영화를 포기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맨발은 <무사의 청춘>을 찍을 수 있을까? 갑자기 나타난 듯한 린타로의 정체는 뭘까?
순수한 열정으로 만드는 청춘의 여름 영화
제각각 개성 충만하고 나름의 위치에서 실력도 출중한 학교 친구들이 한데 모여 여름의 학교 축제에 어울릴 만한 '여름 영화'를 만드는 설정 정도로 시작된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는 린타로가 미래에서 왔다는 게 증명되며 SF적인 성격을 띄었다가 맨발과 린타로가 서로 좋아하게 되자 로맨스적인 성격도 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맨발의 두 절친인 킥보드는 SF를 좋아하고 블루 하와이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게 아닌가?
<썸머 필름을 타고!>는 고등학교 영화 동아리에서 홀로 별종인 친구가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지만 오직 순수한 열정으로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담았다. 하지만, 주지했듯 SF와 로맨스 장르의 분위기도 풍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자못 심오한 물음에 가닿게 한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정서는 <스윙 걸즈> <린다 린다 린다> 등 2000년대 중반에 유행했던 일본 하이틴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그야말로 겁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말이다. '청춘 영화'라고 해도 무방하겠지만, 20대에 들어 방황하는 이야기와 무서울 게 없었던 10대의 휘황찬란한 이야기는 구분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왜 영화를 만들고 봐야 할까?
<썸머 필름을 타고!>는 하이틴 영화 혹은 청춘 영화를 외형으로 하고 있지만 '메타-영화'를 지향하고 있다. 영화를 찍어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왜 만들어야 하고 봐야 하는지'를 계속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린타로는 미래에 영화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한다. 영상 하나 보는 데 5초면 충분하고 길면 1분이라는 것이다. 접할 게 너무나도 많아 뭐든 짧아지는 작금의 콘텐츠 지형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차피 없어지다시피 할 영화를 왜 만들어야 할까?'라는 물음과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뭔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전달되어 누군가를 움직인다'라든지 '영화는 스크린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진다고 생각해'라고 말한다. 우문현답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런데 10대 친구들이 나름대로 내 놓은 답이 이상하지도 싫지도 않다. '아빠 미소'만 지을 뿐이다. 오직 청춘이라서 할 수 있는 생각이고 세상에 휘둘리지 않아서 내 놓을 수 있는 답이구나 싶었다. 아마도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지 않을까. 영화의 카피 중에 '청춘+로맨스x시대극÷SF'가 눈에 띄는데, 뭔가 싶기도 하면서 이 영화를 정확히 설명해 주는 문구인 것 같다. '하이브리드'라고 하면 맞을까. 10대 청춘은 개개인으로 보면 하나에 깊게 꽂혀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하이브리드이지 않을까.
한없이 사랑스럽다
이것저것 다 차치하고 <썸머 필름을 타고!>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영화다. 한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에 지쳐 쓰러질 것 같지만 에너지 넘치는 10대 청춘들의 좌충우돌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샘솟고 에너지가 충만해지며 삶이 예뻐 보이기까지 한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하고 체념 어린 감동을 하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서 힘을 얻고 사랑의 감정을 전해 받는 것이다.
극중에서 맨발 감독이 스텝과 배우들을 모아 놓고 "이번 여름엔 너희들의 청춘을 내가 좀 쓸게"라며 영화 <무사의 청춘> 크랭크인을 알리는데, 굉장히 일본스러우면서 10대스러운 한편 대 놓고 '청춘(하이틴) 영화'라고 말하고 있으니 당돌하다 싶으면서도 시원하다.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차마 드러 내기 힘들었던 자못 오그라드는 그 무엇을 이리도 대 놓고 말하다니 말이다.
이번 여름, 아니 이번 청춘, 아니 이번 인생에 뭘 해 볼 수 있을까. '뭘 해야 잘했다는 얘기를 들을까'가 아니라 '뭘 해야 내가 행복하고 충만할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거라면 뭐든 괜찮을 거다. 뭐라도 한 번 해 보는 거다. <오리 날다>의 가사처럼 '날아올라 저 하늘 멋진 달이 되고 싶어도' 좋으니 말이다. 정녕 뭘 못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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