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6888 중앙우편부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미국, 리나는 남자친구 에이브럼을 전쟁터로 떠나보낸다. 오래지 않아 받아본 편지, 에이브럼은 전사하고 말았다. 리나는 대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입대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녀는 여성이자 흑인, 군대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럼에도 당차게 입대하는 리나, 1944년 조지아주 오글소프 기지로 향한다.
그곳에서 리나는 동료들과 함께 채리티 애덤스 대위의 지위 아래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초반엔 남들보다 뒤처졌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한편 프랭클린 여사는 자신을 찾아온 뭇여성의 말을 귀담아듣고 대통령과 함께 긴급회의를 진행한다. 전쟁터의 군인들과 가족 간에 우편물이 전달되지 않아 사기가 저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홀트 장군은 평소 심히 못 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채리티 대위의 유일무이한 흑인 여성 부대를 이용하기로 한다. 그렇게 급조된 6888 중앙우편대대는 유럽으로 급파되어 6개월 동안 1,700만 통에 달하는 우편물을 분류해 고국으로 보내야 했다. 열악한 환경, 전무한 지원, 유색인종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멸시까지 최악의 상황에서 그들은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타일러 페리의 작품성 있는 작품
마디아 시리즈로 크게 성공하며 적어도 미국 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이자 배우 타일러 페리는 다분히 흑인들이 공감할 만한 소재의 작품들만 만들어 왔다. 대체로 작품성이 특출나진 않으며 주로 B급 코미디를 많이 연출했는데, 최근 몇 년간 넷플릭스와 작업하면서 작품성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6888 중앙우편대대>도 평균 이상의 작품성을 자랑하는 바,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유색인종 흑인의 이야기를 제2차 세계대전의 흑인 여군 영웅들 이야기에 맞물렸다. 최전방에서 포탄과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 적진을 향하는 영웅들은 아니지만 후방에서 우편물을 분류해 전방의 전사들과 고국의 가족들을 이어주는 것도 영웅의 일이다.
영화는 다분히 전형적인 구도를 띤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일하게 유럽으로 파병된 흑인 여성 부대의 이야기를 다루되, 그들을 차별하고 멸시하고 방해하고 파괴하려고 하는 이들이 있으니 백인 남성 상관이다. 부대의 책임자 채리티 대위의 직속 상관, 또 그 위의 최고 사령관까지 한통속이다.
대통령과 여사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직접적으로 명을 내렸다지만 사령관은 역으로 이용해 흑인 여성 부대에 일임해 버린 것이다. 그들을 믿거나 잘할 거라고 생각해 맡긴 게 아니라 당연히 제때 제대로 해내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나중에 해코지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이겨냈기에 역사에 특별히 남았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졌을 것이다.
유색인종, 여성, 군인이라는 삼중고
초반에는 남자친구를 전쟁터로 보내 잃은 리나를 앞세워 흑인 여성이 군인으로 재탄생하는 이야기를 다뤘다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부터는 6888 중앙우편대대를 이끄는 채리티 대위, 아니 채리티 소령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어떻게 이 오합지졸을 최정예로 키워낼 것인가, 어떻게 백인 남성 상관의 압박을 견뎌내고 또 보여줄 것인가, 어떻게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따라 해낼 것인가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하다.
그녀는 군인 본연의 자세와 태도를 기본으로 모든 걸 철저히 FM으로 시행하려 하면서도 개개인의 사연에 귀를 기울여 감정을 어루만진다. 그런가 하면 '흑인 여성'으로서의 이중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자랑스러워하고 이겨내려 한다. 결정적으로 상관의 부적절한 지시, 즉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내리는 지시에 불복한다.
이 영화의 핵심적인 장면 중 하나일 텐데,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관의 명령은 죽음으로도 따르는 게 맞지만 그녀의 그리고 그들의 본질은 흑인 여성이라는 걸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점이 군인이라는 외피를 앞서고 있다. 아니러니하게 그 점을 부대원 모두가 확고부동하게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한 임무를 해낼 수 있었을 테다.
이 정도의 만듦새라면 미국적인 색채, 그중에서도 특정 인종에만 천착하는 타일러 페리의 작품도 볼 만할 것 같다. 당하기만 할 수밖에 없어 답답한 것보다 불굴의 의지로 해결하고마는 시원함이 더 다가왔다. 차별과 멸시의 이야기는 더 이상 그들만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수많은 이가, 우리 주변에서, 그리고 나도 겪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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