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책하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심리'에 해당되는 글 7건

제목 날짜
  • '소리 내면 죽는다'는 어려움과 본능 억제의 공포 <콰이어트 플레이스> 2020.01.22
  • 모두가 알 '그날'까지의 지옥 같은 나날들 <저니스 엔드> 2018.12.12
  • 신혼여행에서 헤어지는 커플 이야기, 그 고전적 매력 <체실 비치에서> 2018.10.31
  • 누구도 보기 힘든 인간 본연의 그곳에서 일어나는 살인 <살인을 예고합니다> 2018.08.27
  • 보리와 매켄로의 삶이 집약된 1980 윔블던 결승전 <보리 vs 매켄로> 2018.06.01
  • 세계 3대 추리소설이 선사하는 위대한 이야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2018.01.31
  • 정교하지 못한 기교로 '아름다운 잔혹함'을 표현한다면? <네온 데몬> 2016.10.26

'소리 내면 죽는다'는 어려움과 본능 억제의 공포 <콰이어트 플레이스>

오래된 리뷰 2020. 1. 22. 08:00
728x90



[오래된 리뷰] <콰이어트 플레이스>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2016년부터 매해 센세이션이라 할 만한 인기를 구가한 공포영화들이 선보였다. <라이트 아웃> <맨 인 더 다크>, <그것> <겟 아웃> <해피 데스데이>, <유전> 그리고 <콰이어트 플레이스>까지 이어진다. 관객뿐만 아니라 평론가들한테도 좋은 얘기를 들었다는 점과 독특하면서도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있는 소재를 가져와 군더더기 없는 서스펜스를 선사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겟 아웃>의 경우 공포영화라는 협소한 장르에 국한될 수 없을 정도의 깊이를 지니고 있거니와 그에 걸맞는 아우라를 풍기지만, 대부분 오히려 '공포'에 방점을 찍고 극대화한 것도 모자라 협소한 소재를 영화 전체를 총칭하고 설명하는 메인에 올려놓기까지 한다. 실패 없는 훌륭한 방식으로, 모자람 없이 나아감 없이 그 정도만 유지하면 문제가 없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메이저 영화의 단독 주연급 '에밀리 블런트'와 연기는 물론 각본과 연출도 심심치 않게 감행해 성과를 보인 '존 크래신스키' 부부가 처음으로 함께 한 영화로, 2010년대 공포 영화로선 보기 드문 퍼포먼스를 펼쳐보였다. 제목에 걸맞게 '소리 내면 죽는다'는 영화 콘텐츠로선 신선하고도 위험한 컨셉을 선보였는데, 영화 밖에서 영화를 보는 입장으로 같이 소리를 낼 수 없는 체험을 했다. 


소리 내면 죽는다


사건 발생 89일째, 두 부부와 아이 셋의 일가족이 폐허가 된 마트에서 물건을 넣고 길을 나선다. 막내 보가 소리 나는 장난감을 가지고 나오려는데, 아빠 리가 막는다. 아쉬워하는 보에게 첫째 리건이 몰래 장난감을 건넨다. 하지만 보는 건전지까지 챙겨서 길을 나서고, 집으로 가는 길 도중에 장난감으로 소리를 내어 괴생명체에게 죽임을 당한다. 리건은 농인으로, 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때 알아채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사건 발생 472일째, 일가족은 철통방어를 하고 집에서 지낸다. 불편하고 불안하지만 어떻게든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가족, 엄마 에블린은 임신했고 둘째 마커스는 아픈 게 낳은 듯하다. 리는 리건을 위한 인공와우 개발과 가족을 위한 방어계책에 몰두한다. 리건은 여전히 보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그런 와중, 리는 마커스와 함께 양식을 구하고자 길을 나서고 리건은 죄책감에 시달리다 집을 나가버리며 에블린 혼자 집에 있게 된다. 


에블린에게 갑자기 문제가 닥친다. 아직 예정일이 한참 남았기로서니 양수가 터진 것이다. 와중에 못을 밟고는 들고 있던 게 떨어져 깨져 괴물이 집으로 쳐들어온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지만 아이를 낳아야 하는 에블린. 한편 리와 마커스는 일이 생겨 평소보다 집으로 늦게 돌아온다. 리건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중이다. 불편하고 불안했지만, 그래도 평화로웠던 가족에게 닥친 큰 위기... 어찌해야 하나. 


본능 억제의 공포


영화는 모든 게 '소리'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공포영화의 순간을 삼키는 '놀람'이라는 주무기 대신 소리를 내면 안 되는 무소음의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와중에 느끼는 긴장감과 서스펜스가 모든 걸 집어삼킨다. 감정 아닌 몸이 우선 반응해, 보는 내내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색 체험이지만 요즘 공포영화의 특징과 이어진다. 


공포영화라면 더더욱 소리가 차지하는 비중에 월등할 텐데, 이 영화는 그러한 방식과 고정관념을 역으로 이용했다. 오감을 최소치로 억누르게 하기에 오히려 오감이 최대치로 작동하게 되는 영리함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 하겠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리는 인간의 본능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억누르기 힘든 부분이지 않은가. 


공포는 밖으로 퍼져나가는 것과 안으로 천착해 들어오는 것이 있다. 빠르고 스펙터클하고 와일드한 공포 대신, 이 영화는 조용하고 조심스럽고 축소지향적인 공포를 지향한다. 주지했듯, 공포가 소리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소리로 빨려들어간다. 극한 상황에서의 공포보다 무서운 게 일상의 공포라면, 일상의 공포보다 무서운 건 본능의 공포이며, 그보다 '어려운 건' 본능 억제의 공포이다. 


잘 만든 영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만한 부분들, 즉 자잘한 의문들이 고개를 디밀곤 할 것이다. 그 또는 그녀는 왜 그런 행동을 했어야 하는가? 영화 속 일가족이 위기를 겪는 원인의 태반이 상식을 지키지 않은 것에서 기인한다. 큰 틀에서 숨 쉴 틈을 주지 않기에 생각할 틈도 주지 않는 영화 특성상, 조금의 틈만 있었다면 수많은 불만이 표출되었을 테다. 


하여,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적어도 공포영화에 있어 디테일이 아닌 컨셉의 중요성을 설파함과 동시에 몸소 제대로 보여준 예라고 하겠다. 공포는 머리가 아닌 몸이 반응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도, 보는 내내 이건 아니라고 전하는 머리와 가슴의 말을 몸과 마음이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체험을 했다. 그러면서도, 살아남으려면 본능을 억눌러야 하는 아이러니. 


본능 억제 관련한 공포 장르는 이 영화로 정점을 찍었다 하겠다. 그런가 하니, 이 영화가 나온 이듬해인 2019년부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공포의 면면이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 2020년부턴 '심리'에 기반을 둔 불쾌한 공포가 공포영화의 주류를 형성하지 않을까 싶다.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올해 3월에 2편으로 돌아올 예정인데, 이번엔 어떻게 디테일을 압도할 컨셉으로 공포에 빨려들어가게 할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공포, 본능 억제, 소리, 심리, 컨셉, 콰이어트 플레이스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모두가 알 '그날'까지의 지옥 같은 나날들 <저니스 엔드>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12. 12. 12:32
728x90



[리뷰] <저니스 엔드>


영화 <저니스 엔드> 포스터.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지난 11월 11일은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지구에서 가장 문명화되었다고 자부하던 유럽의 강대 제국들이 벌인 가장 야만적이고 처참했던 전쟁,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의 협상국과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의 동맹국 총합 사상자가 4000만 명에 육박하는 세계 대전이었다. 


지금의 우리에게 전쟁이라 하면 걸프전쟁, 베트남전쟁, 6.25전쟁, 2차 세계대전 정도가 당장 떠오른다. 1차 세계대전은 너무나 먼 일처럼,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이 전쟁에 대해 아는 거라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자국 황태자가 세르비아 왕국의 민족주의자에게 암살되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전쟁 기간 대부분을 참호에서의 밀고 당기는 참호전으로 일관했다는 정도이다. 


이는 전쟁에서 '전장'과 '전투'에만 시선을 국한시켰기 때문에 발생한 오류일 수 있다. 전쟁엔 이밖에도 다양한 시선들이 담겨 있다. 1차 세계대전 콘텐츠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이자 영화가 있다. <서부전선 이상없다>이 그것인데, 독일의 시선으로 전쟁에 희생된 어린 병사들의 전장 일상을 담았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영광의 길>도 있다. 전쟁에서 영광 따윈 있을 수 없다는 역설을 담았다. 


<저니스 엔드>는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에 즈음에 개봉한 전쟁 영화이다. 1차 세계대전을 기억하고 반추하는 시선은 미시적일 수밖에 없고 방법은 처참할 수밖에 없고 결론은 '반전(反戰)'일 수밖에 없다. 이 영화 또한 가히 그 처참함을 기반으로 미시적으로 접근해 반전을 말한다. 


제1차 세계대전, 영국군 최전방


제1차 세계대전 영국군 최전방의 사흘을 그렸다. 영화 <저니스 엔드>의 한 장면. ⓒ(주)스톰픽쳐스코리아



때는 1918년 3월 18일, 장소는 프랑스 동부전선 최전방 생캉탱, 오랜 기간 동안 참호전을 거듭하는 와중 독일군의 총공세가 있을 거란 소식이 날아든다. 이에 영국군은 한 중대 당 6일 씩 돌려가며 최전방을 지키게 한다. 하필 그때 스탠호프 대위(샘 클라플린 분)의 C중대가 '당첨'된다. 그는 최측근 참모이자 보좌관 오스본 중위(폴 베타니 분)과 함께 대원들을 데리고 최전방으로 향한다. 


그야말로 '사시(死時)'에 '사지(死地)'로 오게 된 그들, 부디 독일군의 총공세가 다음주에 시작되기를 바랄 뿐이다. 한편, 이제 막 군사학교를 마치고 전장에 배치된 롤리 소위(에이사 버터필드 분)는 옛 친구 자청해 스탠호프 대위의 C중대로 향한다. 기대로 들떠 있는 롤리와는 다르게, 예전과는 너무나도 달라져 버린 자신을 내보이기 싫은 스탠호프는 반기지 않는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총공세의 '그때'로 성큼 다가간다. C중대는 일반 병사들이 아닌 장교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스탠호프는 투철한 책임감으로 존경받는 중대장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심한 압박감 때문에 알콜중독자가 되었고, 히버트는 벌벌 떨며 아무 일을 못하는 것도 모자라 전장에서 이탈하려 한다. 반면, 모두에게 존경받고 모두를 챙겨주는 버팀목 오스본이나 누가 봐도 군인이구나 하겠는 블로터 같은 이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아무것도 모르고 흥분 상태에 있는 롤리도 있다. 


그런 가운데 상부로부터 이보다 더할 수 없는 처참하고도 의미없지만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명령이 내려온다. 사지로 와서 공포에 떨며 죽음을 기다리는 것 같은 이들에게 더 빨리 '죽으러 가'라고 등을 떠미는 명령. 우리 모두 그 끝을 알고 있지만, 그래서 더 끔찍한 이 C중대의 끝은? 


끝으로 가는 C중대의 사흘


이 영화는 매우 섬세하고 예민하게 심리를 그려낸 '심리영화'이다. 영화 <저니스 엔드>의 한 장면.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영화는 'C중대의 끝'에 방점을 찍기보다 '끝으로 가는 C중대'에 방점을 찍는다. '끝'에 방점을 찍었다면, 그래서 그 장렬한 전장을 그려냈다면, 영화는 여지 없는 블록버스터 전쟁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C중대의 끝이 역사에 길이남을 처참한 공방전의 시작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반면, 'C중대'에 방점을 찍은 영화는 블록버스터 전쟁영화 아닌 매우 섬세하고 지나치다 할 정도로 예민하게 심리를 그려낸 심리영화로 자리잡았다. 극중 롤리 소위가 하는 말마따나 '시험을 앞둔 수험생'마냥 죽을 게 분명한 끝을 기다리는 그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다. 


많은 총이 등장하지만 총을 쏘는 장면은 없다. 으레 많은 전술전략적 고민들이 등장할 것 같지만 몇 장면 없다. 마땅히 상하 또는 동료 간의 유대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지만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중대를 이끄는 상급자들의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태반을 채우고 전장 아닌 지옥을 탈출하고 싶어 몸부림 치는 다양한 모습들이 보일 뿐이다. 전쟁에 만연한 광범위한 의미없음, 전쟁의 현실적인 비인간화를 비유적으로 비춘다.


때는 제1차 세계대전 마지막 해 독일군의 춘계공세 직전이다. 러시아가 내전으로 이탈하며 동부전선에서 크게 승리한 독일이지만, 썩어 곪고 있는 내부 사정으로 서부전선에 마지막으로 모든 역량을 집중하게 된다. 지난 3년간 소규모 국지전만 이어진 전쟁의 양상이 180도 바뀌는 시점, 당사자들이 받은 정신적 타격은 어느 정도일까. 


모두 언젠가 '그때'가 올 거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점을 떠맡고 책임질 이들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는 차라리 그때가 빨리 왔으면 하고 바란다. 이 지옥에서 어떤 식으로든 벗어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미쳐버린 것일까. 


끔찍한 상황에 처한 군인 아닌 '인간'


이 영화는 아무도 포착하지 못한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명작 '전쟁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저니스 엔드>의 한 장면. ⓒ(주)스톰픽쳐스코리아



그동안 수많은 전쟁영화들을 섭렵했고, 개중 많은 영화들이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라 해도 충분했다. 미시적 블록버스터와 거시적 블록버스터를 중심으로, 단순히 전쟁이라는 소재와 주제를 넘어 국가와 철학과 인간까지 논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특별하다. 어떤 상황에 처한 인간을 그렸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꼭 전쟁이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아니 그러 하기에 <저니스 엔드>는 전쟁영화의 한 획을 긋는 영화임에 분명하다. 전쟁이 주체가 되어 전쟁 바깥을 바라보는 여타 전쟁영화들과는 다르게, 상황과 인간이 주체가 되어 전쟁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처럼 처절하게 전쟁을 실감하게 된 영화가 일찍이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인이 아니다. 설령 군인이라고 하더라도 전쟁을 경험할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장에 선 군인들 이야기를 다룸에 있어 체험실제적 공감을 얻기 보다 다른 류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게 당연하다. 반면, 이 영화는 총알도 빗발치지 않을 뿐 더러 포탄도 간간히 터질 뿐인 참호 안이 주배경인 만큼 인간에게 집중하게 된다. '군인'으로서의 인간이 아닌, 끔찍한 상황에 처한 '인간'. 


전쟁영화만이 주는, 줘왔던 다양한 종류의 스펙터클을 기대한다면 이 영화에 실망할지 모른다. 아니, 이 영화가 주는 치밀하고 섬세한 심리 전쟁이 또 다른 종류의 스펙터클을 선사할지 모르겠다. 치열한 드라마를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를 꼭 보시길.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경탄해마지 않을 것이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군인, 심리, 인간, 저니스 엔드, 제1차 세계대전, 지옥, 춘계공세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신혼여행에서 헤어지는 커플 이야기, 그 고전적 매력 <체실 비치에서>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10. 31. 12:45
728x90



[리뷰] <체실 비치에서>


영화 <체실 비치에서>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줄리언 반스와 더불어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현존 작가 이언 매큐언, 데뷔한 지 40년이 넘은 지금도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초창기의 그는 특이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특이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전하길 즐겼다. 독보적인 방식으로 명성을 쌓은 그는 스타일을 바꾼다. 가장 평범하고 무난한 이야기를 가지고 오기 시작한 것. 


그 절정에 이른 작품이 소설 제목으로는 <속죄>로, 영화 제목으로는 <어톤먼트>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가히 그 묘사와 문체와 구조와 반전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다. 시기적으로 절대 오래된 작품이 아니지만, 이미 영국의 고전 중 하나로 칭송받고 있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들은 1990년부터 10편이나 영화화되었다. 이번에 한국에도 소개되어 천천히 은은하게 사랑받고 있는 <체실 비치에서>는 그의 2007년 작으로 출간 10년 만에 영화화되었다. 가장 평범하고 무난한 이야기를 가져온 대표적 소설이기도 한대, <속죄>처럼 압도적이지 않는 와중에도 고전적 매력을 발산한다. 


서투른 처음


영화 <체실 비치에서>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1962년 영국, 에드워드(빌리 하울 분)와 플로렌스(시얼샤 로넌 분)는 결혼 직후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온다. 떨리는 마음으로 함께 해변을 걷고 호텔에 들어와 식사를 하고 사소한 다툼을 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그러고는 신혼여행지에서의 첫날을 보내려 침대로 향한다. 하지만 둘의 첫날은 순조롭지 않다. 


그들은 우연히 반핵 운동 모임에서 첫눈에 반한다. 영국 굴지의 명문 대학인 옥스퍼드에서 클래식을 전공한 플로렌스, 그녀의 집안은 전기회사 사장 아버지에 철학교수 어머니의 중상류층이다. 반면, 비록 수석이지만 런던 칼리지에 '불과한' 에드워드는 초등학교 교장 아버지에 정신 이상자 미술가 어머니의 상대적으로 하류층이다. 


그럼에도 우여곡절 끝에 연애 결혼에 골인한 에드워드와 플로렌스, 그들은 서투른 자신과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헤어져 그 길로 각자만의 삶으로 가버린다. 왜 가장 행복했던 신혼여행 첫날을 순조롭게 보내지 못한 것도 모자라 헤어지기까지 했어야 했을까. 누구에게나 처음은 오고 누구나 서투를 때가 있는 법 아닌가. 


인간의 나약함과 슬픈 운명


영화 <체실 비치에서>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그들은 젊고 잘 교육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둘 다 첫날밤인 지금까지 순결을 지키고 있었다. 물론 요즘에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시절은 성문제를 화제에 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던 때였다."


원작 소설의 첫문장이다. 1960년대 초 아직 전 세계를 휩쓸 총체적 혁명이 시작되기 전의 영국, 모든 면에서 보수적이고 경직되어 있는 그 분위기와 체제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문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보면 한없이 찌질하고 너무나 안타까워 한편으로 나무라지만 한편으로 비웃게 되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메타포가 되기도 한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는 그 시대 영국의 가장 정직한 일원, 플로렌스가 보다 지극히 영국적이고 에드워드가 보다 덜 영국적이라 하더라도 '행위적 성(SEX)'에 있어서 무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당연히 경험이 없었을 그들, 아니 경험이 없어야만 했을 그들의 처음은 당연히 파국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는 또는 소설은 일면의 체제 비판을 문학적 아쉬움으로 승화시킨다. 보는 이들은 그 지점에서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헤어짐은 체제와 분위기에 순응한 결과라고 하지만, 한편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초세밀한 심리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엔 어쩔 수 없는 나약함과 그에 따른 슬픈 운명이 있다. 


'지금'에 끌리는 이유


영화 <체실 비치에서>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우리의 신혼여행을 생각해본다. 뿐만 아니다. 극초반의 신혼 시절을 생각한다. 신혼 직후의 지금을 생각한다. 거기엔 수많은 처음들이 있고, 사실은 자신을 향한 것일 서로를 향한 끝없는 질타가 있으며,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사랑의 쉼표가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생기지 않을 감정들이 있는 것이다. 


체제에 순응한 결과에 따른 비판이나 수많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점철된 문학적 승화보다, 이 영화에서 이상하게도 더욱 끌리는 건 '지금'이라는 단어다. 영화는 끝없이 옛날을 보여준다. 신혼여행에선 연애 시절을 보여주고, 사실 신혼여행 자체도 옛날 옛적 이야기다. 그 모든 게 결국 회한이 아닌가. 


항상 지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 행복했어도 나중의 언젠가 불행할 때 그에 반추해 지금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행복도 불행의 연장선상이 될 것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문학적 아쉬움도 그 순간의 서투르고 섣부른 선택이 부른 불행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평생을 좌우할 선택. 


'왜 그때는 몰랐을까' '왜 그때 그렇게 행동했을까' 하는 아쉬움은 누군가의 마음이라도 절대적으로 슬프고 그래서 문학적으로 훌륭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회한을 느끼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감탄만 하고 깨닫지 않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지 않으려 문학과 영화를 접한다. 그래도 쉽지 않지만.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sex, 신혼여행, 심리, 이언 매큐언, 지금, 처음, 체실 비치에서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누구도 보기 힘든 인간 본연의 그곳에서 일어나는 살인 <살인을 예고합니다>

지나간 책 다시읽기 2018. 8. 27. 12:19
728x90



[지나간 책 다시읽기] 애거서 크리스티의 <살인을 예고합니다>


<살인을 예고합니다> 표지 ⓒ황금가지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 세계 추리 소설계를 대표하는 동시에 역사상 가장 많은 소설을 판 소설가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무지막지한 재미를 선사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에는 이야기와 함께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도 있으니, 이보다 완벽한 소설가의 예는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그녀는 1920년 첫 소설을 시작으로 살아생전 60년 가까이 동안 80여 편의 작품을 썼는데, 말년에 스스로 가장 좋은 작품 10편을 선정한 바 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 등 그녀의 전성기인 1920~40년대 초중기 작품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와중에 50년대 이후 작품들이 몇몇 눈에 띈다. 


그중 하나인 <살인을 예고합니다>는 1950년작으로 그녀의 전성기 끝자락에 나온 소설이다. 이후에도 족히 30편의 소설을 내놓았지만, 최소한 50년대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서 유명세가 떨어진다. <예고 살인>이라고도 불리는 이 소설에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창조한 두 명탐정 중 하나인 제인 마플 양이 출현한다. 


적어도 마플 양이 출현한 소설 중에서는 단연 으뜸인 <살인을 예고합니다>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치명적 선언인 "이 안에 범인이 있다!"와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 에르퀼 푸아로가 선사한 기품있는 추리와 해결의 다른 버전이 함께 한다. 읽는 재미는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여타 작품들처럼 말도 안 되게 뛰어나다. 


장난처럼 시작된 살인 게임, 실제가 되다


치핑 클레그혼의 모든 집은 <노스 벤햄 뉴스 앤드 치핑 클레그혼 가제트>, 줄여서 <가제트>라고 부르는 신문을 받아보았다. 거기에는 이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관심사가 한데 뭉뚱그려져 있었다. 10월 29일 금요일,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은 그날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살인을 예고하는 광고. 


광고는 다음과 같았다. '살인을 예고합니다. 시각은 10월 29일 금요일 6:30 P.M. 장소는 리틀 패덕스. 친구들은 이번 한 번뿐인 통지를 숙지하기 바랍니다.' 이 엉뚱한 광고를 접한 이들은 어떤 이유로든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리틀 패덕스의 주인은 예순 살 가량의 블랙록 양으로, 친구 도라 버너 양과 사촌남매인 패트릭과 줄리아 그리고 난민 출신 식모 미치가 함께 살았다. 


그들은 함께 그들이 사는 곳에 있을 '살인 게임 파티'에 맞춰 올 사람들을 맞이하는 준비를 했다. 블랙록 양은 그것이 파티도 아니고 초대하지도 않았다고 했지만, 이 한적한 곳에 사는 사람들의 호기심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리틀 패덕스에는 13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약속된 6시 30분이 되자 모든 전등이 꺼진다. 


즐거운 탄성과 흥분된 비명이 터지고 곧이어 문이 열린다. 그러곤 어떤 남자가 소리치고 실제로 리볼버 총성이 울린다. 한 번, 두 번, 이건 더 이상 게임이 아니다. 그리고 세 번째 총성이 울리면서 남자가 쓰러진다. 처음 두 번의 총성은 블랙록 양으로 향해 그녀의 귀를 다치게 했고, 세 번째 총성은 남자를 죽게 했다. 리틀 패덕스는 혼란에 빠진다... 죽은 남자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는 누가 죽였는가!


'인간'을 향한 심리학적 고찰


에르퀼 푸아로 추리 해결 방식이 굉장한 귀족적 품위 하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반면, 마플 양의 추리 해결 방식은 인문학적이고 직관적이다. 인간 세계의 학문을 구성하는 가장 큰 두 축을, 애거서 크리스티는 추리 해결 방식에 대입시켜 그것들을 각각 대표하는 명탐정을 창조한 것이다. 그래서 마플 양이 나오는 이 소설은 굉장히 심리학적이다. 치밀한 추리도 추리지만 살 떨리고 공포스러운 서스펜스보다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사연의 공감과 이해가 우선된다. 


이 소설의 범인은, 이제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피해자들 속에 있다. 즉, 범인은 이 안에 있다. 경찰은 사건에 단편/단면적으로 접근한다. 경찰에게 사건은 그가 행하는 수많은 일 중에 하나이기에 사건 그 자체를 바라보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반면, 명탐정들은 사건과 함께 사람과 상황을 바라본다. 마플 양의 경우 '사람'이다. 


누구나 사연이 있다. 그 사연 때문에 살인을 했다면, 그 사연의 절대적/상대적 깊음은 얼마만 하겠는가. 그(그녀)가 행한 살인 자체, 과정, 추리보다 사연을 들여다보는 건 끝없는 딜레마를 불러일으킬 요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다름 아닌 그 딜레마가 인간으로 하여금 근원적인 물음과 고민을 계속하게 한다. 그리고 추리소설을 단순히 추리적 재미로 보는 게 아닌, 인간적 성찰의 일환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사연과 사연의 치명적 부딪힘


이 소설 <살인을 예고합니다>에서 '살인 예고'라는 충격적 이벤트와 '실제 살인'이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과 추리, 해결, 범인 등 추리소설이 가지는 기본적이거니와 중요한 사항들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이면의 사연, 즉 주요 등장인물들의 말 못할 사연들과 심지어 범인의 치명적인 사연이다. 


마플 양은 그 사연들에 집중하고 그 사연들로 추리하며 그 사연들 덕분에 해결한다. 그녀는 밝혀진 범인에게 연민을 갖는다. 원래 밝고 정이 많은 성격이었는데 그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정상적인 삶'과 '좋은 사람'에서 멀어졌다. 한편 범인은 감상적이고 나약하기도 하였는데, 마플 양은 그런 사람이 더 위험하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원한을 품으면 일말의 윤리마저 잊고, 궁지에 몰리면 두려운 나머지 잔인하게 변하고 절제를 못하는 법이라는 것이다. 


살인범이기 전에 인간... 우리는 추리소설이나 범죄영화를 접할 때 살인방법의 독특함과 그에 대응하는 추리방법의 기상천외함, 피해자의 절절한 사연과 그에 필적하는 또는 상응하는 살인범의 사연을 듣고 싶어 한다. 특히, 살인범이 된 피해자의, 과거 가해자를 향한 '정당한' 복수의 사연은 용인할 수 없는 살인의 용인하고 싶은 색채를 띈다. 거기서 우린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치명적인 '복수'의 사연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욱 인간 본성/본연을 건드리는 단순하고 정확한 욕망의 사연 말이다. 거기엔 '돈'과 도덕성 흠결의 용인이 조금씩 올라가 절정에 다다르는 운명적 욕망의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보상'의 당연성이라는 욕망은 누구든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당연하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상은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 그런 사람은 세상을 원망하며 참으로 위험하다. 그보다 훨씬 고생을 많이 한 사람도 자기 인생에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장담컨대, 그런 사람들이 훨씬 많다. 결국, 행복과 불행은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 아닐까... 불행이 불행의 꼬리를 무는 이 고리가 부디 끊기길...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마플 양, 보상, 본성, 사연, 살인을 예고합니다, 심리, 애거서 크리스티, 인간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보리와 매켄로의 삶이 집약된 1980 윔블던 결승전 <보리 vs 매켄로>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6. 1. 08:00
728x90



[리뷰] <보리 vs 매켄로>


영화 <보리 vs 매켄로> 포스터. ⓒ㈜엣나인필름



승부를 봐야 하는 스포츠계엔 필연적으로 라이벌이 존재한다. 현존하는 스포츠계 최고의 라이벌은 축구의 메시와 호날두일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최고의 남자 축구선수에게 수여하는 발롱도르 상을 5번씩 나눠가졌다. 이 둘을 제외하고는 3회 수상이 최다인 역사에서 5회면 역대 최고의 독재체제나 다름 없지만, 이들은 동시대에 이룩했다. 


남자 테니스로 눈을 돌려보자. 2010년대 세계 테니스엔 독주 체제가 없는, 그렇다고 확고한 라이벌 구도도 없는 춘추전국 시대 또는 'BIG N'에 가깝다. 2000년대엔 단연 로저 페러더와 라파엘 나달이었다. 이들은 2010년대에도 여전히 탑 오브 탑 클래스이다. 1990년대는 누가 뭐래도 피터 샘프라스와 안드레 애거시의 시대였다. 


1968년 테니스 프로화 시대, 이른바 '오픈 시대'가 시작되면서 오픈 시대 전 최강자 로드 레이버가 켄 로즈웰과 세계 테니스계를 양분했다. 그리고 대망의 1970~80년대다. 이때야말로 테니스의 전성기로 지미 코너스, 비외른 보리, 존 매켄로, 이반 렌들이 따로 또 같이 세계 테니스계를 지배했다. 


영화 <보리 vs 매켄로>는 이 레전드들 중 두 명인 비외른 보리와 존 매켄로의 1980 윔블던 결승전을 중심으로 그리는데, 세계 최초로 윔블던 5연패를 노리는 최강자 비외른 보리에게 떠오르는 강자 존 매켄로가 도전하는 형국이었다. 모든 이가 인정하는 최고의 선수들이 펼치는,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이다.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경기, 1980 윔블던 결승전


영화 <보리 vs 매켄로>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수많은 테니스 대회 중에서도 메이저로 뽑히는 4개 오픈, 윔블던, US, 프랑스, 호주, 그중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윔블던 오픈의 1980년이 시작되었다. 1976년부터 내리 4연패를 달성한 당대 최강자 스웨덴의 비외른 보리(스베리르 구드나손 분)이 단연 우승후보, 거기에 수많은 강자들이 도전한다. 미국의 떠오르는 신예 강자 존 매켄로(샤이아 라보프 분)이 눈에 띈다. 


이 둘은 너무나도 상반된 이미지와 경기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보리는 차갑게 절제되고 침착하며 냉정한 분위기에 후방 공격형, 매켄로는 '코트의 악몽'이라는 별명을 가진 비신사적 분위기에 자신만만한 전진 공격형이다. 중요한 건 누가 뭐래도 보리와 매켄로는 당대를 넘어서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이들이라는 것이다. 누가 이기고 누가 져도 이상하지 않은 이 둘의 결승전은 당연한듯, 어떤 경기가 펼쳐질까?


영화는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결승전 경기 실화를 고스란히 다룬다. 당시를 완벽히 되살린 건 물론이다. 생김새, 행동, 복장, 분위기, 실력까지 말이다. 이는 야누스 메츠 패더슨 감독의 공이 큰 듯한데, 일찍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극사실주의로 담아낸 다큐멘터리 <아르마딜로>로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비평가 주간대상을 받으며 세상을 놀라게 한 바 있다. 


남자 테니스 전설 비외른 보리와 존 매켄로에 천착하다


영화 <보리 vs 매켄로>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종종 나오는 스포츠 영화들, 배우들이 해당 스포츠를 무리 없이 완벽히 소화해내는 것부터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일까, 대부분의 스포츠 영화들은 경기 또는 선수보다 스포츠를 통해 다른 걸 보여주려 한다.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거나, 감동을 주거나. 몇 없는 테니스 소재 영화 중 하나인 <윔블던>처럼 로맨틱 코미디인 경우도 있다. 


<보리 vs 매켄로>는 다른 곳엔 눈을 돌리지 않고 오로지 보리와 매켄로에게 천착한다. 당대를 충실히 재연했을 뿐 그렇게 재연한 당대를 통해 무엇을 전하거나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감동? 감동은 이 둘의 결승전 재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1980년 당시의 보리와 매켄로가 어떤 심리 상태에 놓여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본인에게 철저한 감수를 받아 실화를 완벽하게 옮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이니 만큼 보고 납득이 가면 되는 것이다. 윔블던 4연패라는 위업을 이미 달성했지만 보리는 여전히 불안하다. 5연패를 하지 못하면 그저 잊힐 거라고, 사람들이 원하는 건 테니스 역사상 최초의 윔블던 5연패가 아닌 차갑고 견고한 영웅의 처참한 패배일 거라고. 


매켄로는 예의 그 판정에 거칠게 항의하는 비신사적인 행위 때문에 '코트의 악몽'이라는 별명뿐만 아니라 '알 카포네 이후 최악의 미국인'이라는 호칭까지 얻었다. 테니스란 신사가 하는 예의 바른 스포츠가 아닌가. 그는 매 경기마다 상대방 선수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심판의 불공정한 판정, 그리고 엄청나게 쏟아지는 야유의 관중들과 싸워야만 했다. 거기에 그는 당시만 해도 보리에 비해 터무니 없는 애송이였다. 


보리와 매켄로의 삶


영화 <보리 vs 매켄로>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영화는 보리와 매켄로의 현재보다 과거를 더 많이 오간다. 그들이 어떻게 테니스를 시작하게 되어서 어떤 성적을 올리고 어떤 고난을 극복해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가 아닌, 그들이 어떤 심리 상태로 테니스를 해왔는지 말이다. 또는 어떤 심리 상태가 그들의 삶을 지배해 왔는지. 


'스포츠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보리 vs 매켄로>는 그 지점을 정확히 캐치해 영화 내내 지독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절대 겉으로 감정을 내보이지 않고 속에서 자신과 싸우고 있는 듯한 보리는 물론, 경기에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과 싸우고 있는 매켄로조차 들여다보면 결국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는 걸 영화는 말하고 있다. 


영화 초반, 테니스 전설 안드레 애거시의 명언이 보인다. "테니스는 인생의 언어를 사용한다. 어드밴티지, 서비스, 폴트, 브레이크, 러브... 그래서 테니스 경기는 우리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의 수많은 맞는 말이 있겠지만, 이 또한 맞는 말이다. 누가 부정하겠는가, 테니스가 곧 인생이라는 말을. 


하지만 이 또한 맞는 말일 것이다. 테니스 경기는 우리 삶의 일부분이라고 말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얼핏 보리와 매켄로가 붙은 1980 윔블던 결승전일 테지만, 사실 그보다 중요한 건 보리와 매켄로의 삶이고 인생이 아닌가. 경기를 즐기는 입장에서 그들은 '도구'일지 모르지만, '도구'의 입장에서 그들 스스로는 그 자체로 '목적'인 것이다. 도구와 목적 사이에서 고민하고 싸우는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동료이다. 


우리는 모두 목적임이 분명하지만, 사실 대부분 도구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볼 시간도 없지만 그럴 용기도 부족하다. 거기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영화에서 보리와 매켄로는 외부에서 떠들어대는 것과는 다르게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것 같다, 이해하는 것 같다. 그래서 명승부가 연출되었던 것일까. 자신과 비슷한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했기에. 우리네 인생에도 한 번쯤 명승부가 연출되길.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보리 vs 매켄로, 비외른 보리, 삶, 심리, 윔블던, 존 매켄로, 테니스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세계 3대 추리소설이 선사하는 위대한 이야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지나간 책 다시읽기 2018. 1. 31. 08:00
728x90



[지나간 책 다시읽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표지 ⓒ황금가지



180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추리소설, 그 수많은 작품들 중 단연 가장 유명한 건 무엇일까? 우선, 가장 유명한 소설가는 누구일까? 아서 코난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를 들 수 있겠지만, 뭐니뭐니 해도 추리소설의 창시자라 불리우는 애드거 앨런 포가 아닐까 싶다. 아니, 그는 '유명'보다 '위대'의 칭호를 붙여야 하겠다. 


셜록 홈즈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최고의 추리소설 캐릭터이다.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해, 언젠가부터 그의 손을 떠나, 하나의 상징이자 살아 있는 인간처럼 되어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힘과 영향력이 더 막강해지니 신기할 노릇이다. 적어도 캐릭터로는 셜록 홈즈를 넘어설 게 절대 없다. 


가장 유명한 작품을 들라고 하면, 그것도 또 골치가 아프다. 정녕 수없이 많은 명작들이 있지 않은가. 앨러리 퀸, 반 다인, 존 딕슨 카 등의 정통 추리소설가 작품도 많고, 레이먼드 챈들러를 빼놓으면 섭하고,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들 몇몇은 반드시 최상위권에 위치시켜야 한다. 


그래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최고의 위치에 놓는 데 아무도 반대하진 않을 거다. 가장 대중적인 선택이고 가장 안정적인 선택이라고 비난 아닌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면에서 확실한 믿음을 주는 작품인 건 확실하다. 지극히 일반적인 추리소설 독자로서는, 추리소설이란 이 소설에서 시작해 이 소설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범인은 이 안에 있다!


소설은 밑도 끝도 없이 시작된다. 직업도 성별도 나이도 사는 곳도 다양한 남녀 8명이 각자 다른 이유로 무인도 인디언섬에 초대받는다. 그들 각자의 사정상 그들은 그곳에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녕 치명적인 전략이다. 하지만 정작 인디언섬에 도착한 그들 앞에 초대한 사람은 없었다. 대신 하인 두 명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스피디하게 사람이 죽어나간다. 남은 이들을 더욱 두렵게 하는 건, 식탁 위에 있는 인디언 인형의 개수와 벽에 붙어 있는 인디언 동요의 가사이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모양이 인디언 동요 가사와 같고, 한 명이 죽을 때마다 인디언 인형 한 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정작 그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건 다함께 있을 때 어디선가 울려퍼진 그들 각각의 '죄상'들이다. 그들 모두는 누군가를 직간접적으로 죽게 했다는 것이고, 이 섬에 모이게 한 이유는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하겠다는 확신의 발로라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같이 현실뿐만 아니라 과거의 두려움과도 싸워야 한다. 


문제는 범인, 조그마한 섬을 모조리 뒤져도 범인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으니, 범인은 다름 아닌 이 10명 안에 있다는 사실. 더구나 험악하기 짝이 없는 날씨 때문에 그들은 꼼짝 없이 이 무인도에 갇힌 꼴이 되고 만다. 만화 <명탐정 코난> <소년탐정 김전일>의 명언 "범인은 이 안에 있다!"의 진정한 시조라고 할까. 


위대한 추리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외형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또다른 걸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유사하다. 한정된 공간에 갇힌 피해자이자 용의자, 그리고 국가의 손이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범죄를 개인이 대신 심판하려는 모습까지 닮았다. 특히 이 소설은 애초에 대놓고 그런 모습을 보인다. 죄를 저질렀지만 법의 이름으로 심판할 수는 없었던 사건들의 당사자를 불러내어 확실하게 응징한다. 


물론, 이 추리 '소설'의 위대한 점은 마지막 반전의 도덕적 뒤틀림에 있겠지만 말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보여준 슬프기까지 한 반전과는 완전히 반대의 느낌이랄까. 한편, 이 '추리' 소설이 주는 서스펜스는 극렬하기 짝이 없다.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상황에서 조금씩 숨통을 조여오는 느낌이랄까. 


심리 추리의 대가 포와로 경을 굳이 불러오지 않아도 애거서 크리스티는 심리를 자유자재로 다뤄 우리 앞에 풀어놓는다. 그 자리에 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느끼는 동시에, 사람이 죽어갈수록 극심해지는 그들의 심리전쟁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건 차라리 하나의 게임이다. 찾을 수 없는 범인을 찾아야 하고, 풀 수 없는 사건을 풀어야 하며, 탈출할 수 없는 섬을 탈출해야 한다. 무엇보다 살아남아야 한다. 


터무니 없이 빨리 읽히는 와중에 수없이 많은 장면과 생각과 심리들이 소용돌이 치게 만드는 소설, 그러면서도 애거서 크리스티가 절대로 간과하지 않는 '사회 정의', 추리소설만이 주는 서스펜스와 반전은 차라리 덤이다. 이제야 이 소설을 추천하는 건, 애거서 크리스티를 보라고 하는 건, 염치가 참으로 없는 짓이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 한다. 난 소설 같은 거 재미없어서 안 봐, 하는 분이 있다면 무조건 이 소설을 봐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10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황금가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범인, 서스펜스, 세계 3대 추리소설, 심리, 애거서 크리스티, 탈출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정교하지 못한 기교로 '아름다운 잔혹함'을 표현한다면? <네온 데몬>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10. 26. 08:00
728x90



[리뷰] <네온 데몬>


콘텐츠에 있어서 '기교'가 전부여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영화같은 긴 호흡의 콘텐츠는 더욱 그렇다. <네온 데몬>은 기교에 대부분의 힘을 실은 듯한데, 그조차 정교하지 못했다.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예술성이 가미된 콘텐츠를 평할 때 전문가들이 '기교가 전부'라는 말을 하며 혹평을 주곤 한다. 엔간히 출중한 능력을 믿고 기본을 제대로 연마하지 않은 채 기교를 부리는 데에 따른 것이다. 일반인이 보기엔 괜찮다고 할지 모른다. 현란하고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머지 않아 밑천이 드러나고 말 것이다. 


영화는 은근히 긴 호흡으로 진행되기에 기교가 어쩌고 저쩌고 하기가 쉽지 않다. 노래처럼 한 번에 판단하기가 힘들다. 그런 만큼 영화에 대고 기교를 말하는 건, 대상이 되는 그 영화가 얼마나 기교에 힘을 썼는지 알 수 있다. 시종 일관 기교를 보여주려 애썼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코타 패닝'의 동생 '엘르 패닝' 주연의 <네온 데몬>이 그런 경우다. 강렬하게 시작한 영화는 시종 일관 현란한 기교로 눈을 범하려 한다. 아무래도 모델에 대한 이야기니 만큼 으레 그럴지 모르겠지만 이건 정도가 좀 심하다. 그 기교가 졸음을 선사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한숨을 토해내게 하니 말이다. 종종 그런 게 아니다. 거의 모든 기교가 그러하고, 가끔 탄성을 자아낼 뿐이다. 


정교하지 못한 '아름다운 잔혹함'


영화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아름다운 잔혹함, 오직 하나뿐인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한다. <블랙 스완>이 생각나게 하는데, 과연 잘 표현해냈을까.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영화는 얼핏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2010년작 <블랙 스완>을 생각나게 한다. 단순한 욕망을 넘어선 광적 집착이 가져오는 아름다운 파멸을 그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건 비슷한 극초반의 분위기에서 온 '눈속임'에 불과했다. <블랙 스완>은 그 특유의 분위기를 심리 스릴러 라는 장르에 훌륭히 장착해 끝까지 끌고가는 반면, <네온 데몬>은 그 분위기가 오히려 영화를 해치는 결과를 낳고 만다. 결정적인 차이는 아마 주연 배우들의 연기 내공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치명적이긴 하다. 얼마나 아름다울지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감독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2011년작 <드라이브>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른바 '아름다운 잔혹함'을 극대화시켜 보여주었는데, 잔혹함을 표현하는 데 얼마나 정교한 기교를 사용했으면 아름답다고까지 했을까 싶다. <네온 데몬>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 나지만, 그 기교가 정교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투박하지도 않았지만, 너무 친절하지 못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느낌이랄까. 


이쯤에서 줄거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모델지망생 제시(엘르 패닝 분)는 혈혈단신으로 LA에 온다. 급하게 만난 사진가 지망생(듯한) 남자친구에게 사진을 부탁해 자신의 미모만 믿고 모델에이전시로 간다. 역시나, 그녀의 꾸미지 않은 순수한 아름다움에 누구든 탄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코디네이터, 모델, 실장, 수석 디자이너 할 것 없이. 


제시도 자신이 누구보다 아름답다는 걸 잘 안다. 그 아름다움이 어느 누구라도 탄복해마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그녀는 단번에 탑모델로 올라선다. 하지만 그런 만큼 그녀를 향한 시기와 질투, 무엇보다 집착이 심해진다. 혈혈단신 그녀 주위에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데... 그녀는 믿고 의지할 만하다고 판단한 코디네이터 집으로 피신을 간다. 그렇지만 그 코디네이터는 그녀를 집착하는 다른 탑모델들과 친하다. 제시는 어떻게 될까?


이야기는 엉망, 스타일이라도 좋다면 괜찮았을 텐데...


이야기가 참으로 듬성듬성이다. 그 방면으로는 봐주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감독이 승부를 본 스타일만 남는데... 그마저 괜찮지가 못한 느낌이 든다. 이 영화, 어쩌지.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순수함'은 선도 악도 될 수 있다. 모델이 되기 전 제시는 순수했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모델이 되고선 그 순수한 아름다움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진 못했다. 겸손함이나 자신 없는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맹신이 불러온 순수한 악마만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도 화장을 지우고 모델의 옷을 벗으면 소녀로 돌아온다. 모델이라는 타이틀이 순수함의 방향타를 쥐고 흔드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선 그런 심리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패션 업계의 뒷 얘기와 심리 스릴러는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블랙 스완>이나 <버드맨>처럼, 겉으로는 화려하기 그지 없지만 그 뒤에서는 엄청난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스타일에 맞게 잘 전달해주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물론 이 감독은 다른 누구보다도 그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보여주고자 한다. 문제는 그 스타일만을 과도하게 밀고 나가는 데 있다. 영화의 메시지를 스타일로 조화롭게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따로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중간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이야기와 스타일이 아니라 이야기는 이야기고 스타일은 스타일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스타일이 엄청나다면 다른 게 엉망이더라도 크게 상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것들의 향연을 잠자코 지켜봐야 하는데,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더욱이 그 절대적 양이 왜 그리 많은지, 지친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거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난감하지 그지 없지 않은가.


기대만큼 실망이 크다


영화를 보기 전, 많은 부분에서 기대를 하게 했다. 제목, 포스터, 감독, 주연, 주제나 소재 등. 낚이지(?) 않을 수 없게 해놓고는, 결과적으로 낚인 듯.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영화는 2016 칸영화제에 상영되어 관객으로부터는 기립박수를, 평단으로부터는 혹평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나는? 평단도 관객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다고 스스로 평하는 나는, 혹평세례를 퍼붓지 않을 수 없다. 감독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나? 영화가 던지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받아내지 못했나? 너무 아름다운 가운데 너무 역겨운 상극의 이미지가 던지는, 영화의 진정한 의미를 잡아내지 못했나?


고백하자면, 제목을 보고 영화 포스터를 보고 감독을 보고 주연 배우를 보고 나서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치명적인 유혹에 넘어간 거다. 그만큼 치명적인 영화를 볼 기대를 한 것이고, 그 기대가 보란듯이 물거품이 된 것뿐이다. 그뿐이다. 이만큼의 기대를 하지 않고 봤으면, 그만큼의 실망도 하지 않았을 거다. 


하나같이 아름답다고 하는 제시가 내 눈엔 촌스럽기만 하다고 느껴졌을 때, 그 실망이 배가된 것 같다. 영화 안에서 그들이 보는 제시는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의 전형이다. 그들 자신은 절대 갖지 못할 그것. 그런데 영화 밖에서 보는 일반인의 입장은 다르지 않은가. 그녀도 꾸미지 않을 때보다 꾸몄을 때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이쁜 것 같은데 말이다. 그들은 제시를 보고 꾸미지 않았을 때의 모습을 보는 게 아니라 꾸몄을 때를 상상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물론 영화는 그런 심리조차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감독은 주구장창 스타일만 고수하며 알 수 없는 '짓거리'만 철퍽철퍽 뿌려댈 뿐이다. 난 심리 스릴러를 보고 싶었지, 비주얼 스릴러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덕분에 스스로 생각하고 유추하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다신 이와 같은 영화를 보고 싶진 않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영화라면 그냥 지나가진 않을 것 같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기대, 네온 데몬, 모델, 블랙 스완, 스타일, 실망, 심리, 아름다움, 이야기, 잔혹, 집착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블로그 이미지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by singenv

공지사항

  • 댓글에 대한 공지
  • [책으로 책하다 도서 목록]
  • <오마이뉴스> 서평/리뷰 송고 방침
  • 모든 이미지는 인용 목적으로 사용⋯

    최근...

  • 포스트
  • 댓글
  • 트랙백
  • '삶'이라는 거대한 벽, 풀리지 않⋯
  • 수많은 마약 중독자들을 살린 그,⋯
  • 홀로 이편에서 슬픔의 나락과 절망⋯
  •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두 거대 인맥⋯
  • 역사에 길이 남을 연쇄 살인마 '요⋯
  • 더 보기
  • 감사합니다~ 시즌3를 기대하고 있⋯
    singenv ㆍ 2020
  • 재미있게 읽었어요 지금 시즌2 보⋯
    개구리 ㆍ 2020
  • 감사합니다! 맞구독합니다~
    singenv ㆍ 2020
  • 구독과 하트 누르고 갑니다 맞구독⋯
    아마추어 리뷰어 ㆍ 2020
  •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래 전 서평⋯
    singenv ㆍ 2020

태그

  • 아포리즘
  • 캐릭터
  • 성장
  • 삶
  • 제2차 세계대전
  • 인간
  • 청춘
  • 일본
  • 넷플릭스
  • 욕망
  • 현실
  • 재미
  • 소설
  • 중국
  • 죽음
  • 피해자
  • 희망
  • 연기
  • 만화
  • 미국
  • 여성
  • 관계
  • 전쟁
  • 영화
  • 천재
  • 사랑
  • 책으로 책하다
  • 역사
  • 책
  • 가족

글 보관함


  • 2021/01
    (9)

  • 2020/12
    (13)

  • 2020/11
    (11)
«   2021/01   »
일 월 화 수 목 금 토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링크

카테고리

다양한 시선 (1412)N
신작 열전 (603)N
신작 도서 (303)
신작 영화 (300) N
넷플릭스 오리지널 (132)N
모모 큐레이터'S PICK (36)
지나간 책 다시읽기 (108)
한국 대표 소설 읽기 (11)
오래된 리뷰 (202)
생각하다 (231)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 연재 (5)
그대 그리고 나 (17)
서양 음악 사조 (8)
인권 선언 문서 (4)
조선경국전 (5)
중국 영화사 개괄 (5)
출판계 살리기 프로젝트 (3)
카프카의 편지 (6)
팡세 다시읽기 (14)
명상록 다시읽기 (12)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46)
감독과 배우 콤비 (10)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6)
궁극의 리스트 (8)
제9의 예술, 만화 (14)
독립영화의 힘 (4)
생생 스포츠 (10)
내맘대로 신작 수다 (17)
첫 문장-아포리즘 (8)

카운터

Total
2,071,727
Today
71
Yesterday
164
방명록 : 관리자 : 글쓰기
singenv's Blog is powered by daumkakao
Skin info material T Mark3 by 뭐하라
favicon

책으로 책하다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 태그
  • 링크 추가
  • 방명록

관리자 메뉴

  • 관리자 모드
  • 글쓰기
  • 다양한 시선 (1412) N
    • 신작 열전 (603) N
      • 신작 도서 (303)
      • 신작 영화 (300) N
    • 넷플릭스 오리지널 (132) N
    • 모모 큐레이터'S PICK (36)
    • 지나간 책 다시읽기 (108)
      • 한국 대표 소설 읽기 (11)
    • 오래된 리뷰 (202)
    • 생각하다 (231)
      •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 연재 (5)
      • 그대 그리고 나 (17)
      • 서양 음악 사조 (8)
      • 인권 선언 문서 (4)
      • 조선경국전 (5)
      • 중국 영화사 개괄 (5)
      • 출판계 살리기 프로젝트 (3)
      • 카프카의 편지 (6)
      • 팡세 다시읽기 (14)
      • 명상록 다시읽기 (12)
    •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46)
      • 감독과 배우 콤비 (10)
      •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6)
      • 궁극의 리스트 (8)
    • 제9의 예술, 만화 (14)
    • 독립영화의 힘 (4)
    • 생생 스포츠 (10)
    • 내맘대로 신작 수다 (17)
    • 첫 문장-아포리즘 (8)

카테고리

PC화면 보기 티스토리 Daum

티스토리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