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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쫓는 피해자와 쫓기는 가해자의 형국이라니... <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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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질식>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질식> 포스터.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투자 회사를 크게 운영하다가, 사기와 횡령 등의 혐의로 감옥에 갔다가 출소 후 재판을 받고 있는 얄른은 아내 베이가와 함께 에게해의 작은 시골에 온다. 그들 딴에는 새롭게 다시 시작해 보자는 의미라지만, 실상은 사람들 눈을 피해 도망치듯 그들을 아는 이가 없다시피 한 곳으로 온 것이리라. 하지만 그들의 크나큰 판단 착오였다는 게 곧 밝혀진다.

안 그래도 경제 붕괴 위기에 처한 튀르키예 전역에 족히 수십 만 명에 이르는 피해자를 양산한 야른, 이 작디작은 시골에도 그에게 투자했다가 쫄딱 말아먹은 이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이제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으니 얄른이라도 죽이고자 한다. 얄른은 신상에 위협을 느낀다.

와중에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는 얄른, 점점 더 정신줄을 잡고 있기가 힘들다. 아내에게도 변호사에게도 말할 수 없어 혼자 힘들어하는데, 투자 피해자들의 습격이 계속된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 할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도가 없을까? 그들이 원하는 건 돈일 텐데 빈털터리가 된 얄른이 해 줄 수 있는 게 뭘까? 목숨을 내놓을 수도 없고.

 

쫓기는 1억 달러 횡령 가해자

 

튀르키예는 2000년대 초 경제위기로 크게 휘청였고 2020년 전후 경제위기로 다시 한번 크게 휘청인다. 이번엔 통화 및 부채 위기인데, 리라화의 가치 급락과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출 불이행이 겹쳤다. 경상수지 적자와 민간 외화 부채가 증가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러야 할지 모를 총체적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큰돈을 벌고자 투자처를 찾거나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자 은행을 찾거나 한다. 극단적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질식>은 경제위기에 처한 튀르키예를 배경으로 수많은 사람의 투자돈 1억 달러를 횡령한 혐의의 사업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는 시골 마을로 도망치듯 왔는데 정작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이곳에도 그에게 전재산을 맡겼다가 쫄딱 망한 사람들이 넘쳐나니 말이다. 가해자가 졸지에 쫓기는 형세가 되었다.

사업가 얄른은 동업자들과 함께 투자 회사를 차려서 경제위기에 시름하는 서민들의 기대심리를 이용해 엄청난 돈을 뽑아낸 뒤 투자에 실패했다는 명목으로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비단 영화 내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영화에서 자세히 다루진 않지만, 한국의 루나 테라 대폭락 사태나 미국의 FTX 파산 사태처럼 시장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태가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경제위기가 먼저인지 일련의 사태가 먼저인지.

 

가해자를 죽이러 찾아오는 피해자들

 

영화는 투자했다가 망한 이들의 심리가 아닌 투자했다가 망한 이들이 죽이려고 쫓는 사업가의 심리가 주다. 그렇다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는 힘들다. 때론 술에 취해 때론 산책하며 때론 멍 때리며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다. 유추해 보면, ‘내가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모르긴 몰라도 절대 피해자들, 그러니까 그를 믿고 투자했다가 망해 버린 투자자들 생각은 일절 하지 않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있을 리 만무하다. 혼자 살 궁리만 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 그가 애초에 다른 동업자들과 다르게 10일만 감옥에 있다가 풀려난 게, 동업자들의 정보를 경찰에 팔아넘긴 덕분이었으니 말이다. 금융 사기의 가해자들이 생각하는 게 매한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 밖을 택한 그에게 피해자들이 찾아온다. 굉장히 영화적인 설정인 듯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게, 쫄딱 망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마당에 차라리 가해자를 죽이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얄른은 가해자로서 안전한 감옥을 두고 불안한 세상 밖을 택했다. 자업자득.

 

질식할 것만 같은 분위기

 

하루가 멀다 하고 경제 범죄, 특히 금융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피해자가 속출하지만 정작 가해자는 특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해도 잡아들일 방도가 없는 경우도 많다. 잡아들인다 해도 금방 풀려 나오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계속되는 경제 위기 속 불안한 서민의 기대심리를 악용해 엄청난 돈을 뒤로 빼돌리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인가 보다.

<질식>은 제목처럼 영화 전반에 걸쳐 질식할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답답하고 갑갑해 숨통이 조여 오는 것만 같다. 얄른의 심리 상태를 대변한 분위기겠으나, 사실 튀르키예의 경제 상황과 얄른 등에게 피해를 입은 투자 피해자들의 심리여야 하는 게 맞다. 영화는 그 아이러니를 시작부터 끝까지 유지하며 반전을 선사한다. 결국 돈이라는 거.

이 영화는 결코 재밌지 않다. 킬러가 계속 얄른을 찾아오긴 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서민이니 긴장감은 있지만 박진감은 없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얄른이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지만, 결코 미쳐 가거나 망상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이성적이니 보는 이도 덩달아 머리가 차가워진다. 일반적인 재미와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재밌으면 안 된다. 이토록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재밌으면 안 된다. 얄른 같은 이는 질식할 것만 같은 분위기에서 겨우겨우 죽지 못해 살 정도로만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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