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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누가 봐도 재밌을, '전형'과는 거리가 먼 복수극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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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

 

영화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 포스터. ⓒ왓챠

 

아내, 딸과 멀리 떨어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 나가 있는 현역 군인 마르쿠스, 3개월을 더 있어야 한다는 소식을 아내한테 전하곤 얼마 안 있어 비행기에 홀로 몸을 실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 사고로 아내는 죽고 딸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둘만 남게 된 마르쿠스와 마틸드, 어느 날 통계학자 오토가 친구 레나르트와 함께 집을 방문한다. 오토는 사고가 벌어지던 순간 마르쿠스의 아내, 딸 바로 옆에 있었는데 자리에 앉아 있던 그가 마르쿠스의 아내에게 자리를 양보해 그와 마틸드는 살았고 그녀는 죽고 말았다.

 

통계학자로서 이 '사고'가 '사건'임을 간파한 오토는 레나르트와 또 다른 친구 에멘탈러에게 도움을 청했고 죄책감도 들어 마르쿠스에게 찾아왔던 것이다. 오토는 온갖 자료를 철저히 분석한 끝에 사고 당시 같은 칸에 타고 있던 수상한 남자의 행적을 쫓았고, 그가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라는 갱단 소속이라는 걸 알아냈다. 그런데, 사고 당시 같은 칸에 폭주족 조직원 이글이 타고 있었고 그는 죽어 버렸으며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 두목의 살인사건 핵심 증인으로 얼마 뒤에 증언을 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여러 정황과 자료와 통계를 보고 마르쿠스는 아내의 복수를 다짐하며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의 파멸을 향해 나아간다. 3명의 통계학자와 함께 말이다. 마틸드는 이 사실을 모르고, 엉뚱하게도 3명의 통계학자를 3명의 심리학자로 오인한다. 엄마이자 아내를 잃고 힘들어하는 마르쿠스와 마틸드를 위해 심리 상담을 해 줄 거라는 바람. 과연 마르쿠스와 친구들의 복수극은 어떻게 끝날지? 마르쿠스와 마틸드의 심리 상담은 어떻게 진행될지?

 

덴마크에서 건너온 영화

 

북유럽의 일원 덴마크에서 건너온 영화, 그곳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받아들이게 되는 문화 콘텐츠는 어떤 맛일까. 맛있을까, 맛없을까. 특이한 맛일까, 평범한 맛일까. 덴마크 국민배우이자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중년 배우이기도 한 매즈 미켈슨을 앞세운 덴마크 산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는 맛도 있으면서 특이하기까지 한 맛의 영화였다. 일면 굉장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앤더스 토마스 옌센 감독은 어디서 들어봤음직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모르긴 몰라도 매즈 미켈슨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그는 주로 각본 작업을 하며 할리우드 영화까지 진출한 바 있는데 그중 몇 편에 매즈 미켈슨이 출연했거니와, 몇 편 되지 않는 연출작엔 거의 매즈 미켈슨이 함께했다. 앤더스 토마스 옌센 감독을 알면 매즈 미켈슨 배우를 모를 수 없고 매즈 미켈슨 배우를 알면 앤더스 토마스 옌센 감독을 모를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앤더스 토마스 옌센 감독은 단편영화 연출로 출발했는데 초창기 단편영화 세 편을 3년 연속 아카데미 후보에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코미디와 드라마 장르를 기본으로 액션, 범죄, 스릴러, 멜로 등 다양한 장르를 덧입혀 오며 처절한 복수극과 가족 심리극을 다뤘는데,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로 집대성했다. 지난 작업물의 집대성이자 연출가·각본가의 전환기에 걸맞는 작업물이 아닌가 싶다. 

 

'전형'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영화는 모든 면에서 '전형'을 빗겨 간다. 한국판 포스터를 보면 '오직 복수로 심판한다'라는 문구 하나만 메인 카피로 내세워 놨는데, 실상은 전형적인 복수극에서 한참을 벗어난 영화이다. 아니, 벗어났다기보다 복수극만큼 중요한 줄기의 다른 이야기들도 함께 다뤄지고 있기에 풍부해졌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는 풍부한 영화다. 

 

영화의 풍부함에는 '심리'라는 개념이 짙게 깔려 있다. 마음의 작용과 의식 상태로서의 심리가 아닌 의식 현상과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으로서의 심리에 가깝다. 마르쿠스와 마틸드에게 하나둘 몰려드는 어울리지도 않고 조화를 이루지도 못할 것 같은 조합이, 모두 심리학적으로 상처받고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에게 찾아온 상처와 트라우마를 대한다. 외부로 거침없이 표출하기도 하지만 꽁꽁 싸맨 채 절대 표출하지 않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곤 도움을 청하기도 하지만 자신 아닌 다른 누구의 말도 모두 쓸데없다고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방식으로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이 영화가 전형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형적이지 않은 복수극의 외형보다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심리극의 내형이 보다 중심이며 또 진솔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분위기와 스타일의 두 이야기가 투 트랙을 이뤄 영화를 정확히 절반씩 끌고 가는 모습 자체가 '전형' 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지 않은가. 

 

'우연' 그리고 '치유'까지 나아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의 뼈대를 이루는 이야기 또는 개념은 '우연'이다. 복수극과 심리극 모두 우연을 두고 설왕설래한 끝에 진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토가 통계학자로서의 숫자 자부심에 촉 한 스푼을 더해 자신이 당했던 열차 사고가 결코 사고가 아닌 고의에 의한 사건이라고 주장하면서 영화가 시작되고 진행되고 결말지어지니 말이다. 

 

그러나 우연이라는 게 신의 장난처럼 우리 주인공들을 뒤흔들어 패닉으로 몰아 넣으니,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영화의 정체성과 함께 재미까지 담당하고 책임지는 기염을 토한다. '우연'이라는 개념 하에, 복수와 심리와 가족 그리고 심지어 제목까지 딸려 있는 것이다. 반드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아하' 하고 제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을 테다. 

 

어쩌면 '치유'로까지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중요한 이를 잃고, '나'라는 자아를 잃고, 내 어린시절을 잃은 사람들이 어떻게 난관을 헤쳐나가는지 또는 받아들이는지 꽤 사려깊고 진지하고 학문적으로 접근해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뜻밖의 진실성을 엿볼 수 있는 장면과 대사가 자주 나온다. 

 

하여, 이 영화를 할리우드식 액션 블록버스터급 복수극으로 생각하고 봤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평소에 익히 알던 그런 느낌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절대 후회는 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전형과 빗겨 가는 영화임에도 호불호가 갈릴 게 전혀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불호' 아닌 '호'의 감정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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