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왜 아이들이 처연한 물음을 고민해야 하는가 <흩어진 밤>

반응형

 

[신작 영화] <흩어진 밤>

 

영화 <흩어진 밤> 포스터. ⓒ씨네소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들이닥친 사람들, 열 살 소녀 수민은 어리둥절하게 지켜만 볼 뿐이다. 한 달만에 집에 온 아빠가 그들을 상대했는데, 반응이 미직쩌근했다. 집이 쉽게 팔릴 것 같진 않다. 수민에겐 네 살 위의 오빠 진호가 있다. 그리고 진호가 닮고자 하는 똑부러지고 능력 있는 엄마도 있다. 오랜만에 한 집에 모였지만, 분위기는 어색하고 집은 팔려야 하는 상황이다. 

 

아빠 승원과 엄마 윤희는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곧 따로 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아이들은 따로 산다는 현상은 바로 알아차리고 받아들였지만, 따로 산다는 현상의 본질은 알아차리기 힘들다. 아니, 이해할 수 없어 보인다. 도대체 왜 따로 살아야 하는 걸까? 같이 살면 안 되는 걸까? 엄마 아빠는 서로 친하다고, 앞으로 더 친할 거라고 했는데.

 

수민과 진호는 아빠 엄마의 말을 기반으로 추리해 본다. 넷이서 함께 살진 못한다고 했으니, 누가 누구랑 살게 될까? 엄마랑 아빠 중에서 선택하는 것도 싫고 수민으로선 진호와 진호로선 수민과 떨어져 사는 것도 싫다. 답이 없다, 정답도 해답도 찾을 수 없다. '싫다'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 점점 '공포'에 가닿는 미래에의 불안이 다가오는 것 같다. 

 

'가족' 이야기의 다양성

 

가족의 다양성은 지금 이 시대와 이후의 시대를 규정하고 상징하고 선도하고 대표하는 개념 중 하나다. 전통적 가족 형태와 거리가 먼, 전혀 색다른 가족도 가족에 포함되는 또는 포함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하여, 결혼 후 이혼하는 게 '죽을 죄'를 짓는 것처럼 터부시되었던 예전과 달리 이젠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유로우며 독립적이고 선택적인 영역인 것이다. 

 

영화 <흩어진 밤>은 이 영역에서 간과되기 아주 쉬운 측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아주 자세히, 으레 당사자로 보이는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의 시선으로, 자못 비극적이고 처연하기까지 한 분위기로. 선행되어야 할 건 단연 연기일 텐데, 어른들도 어른들이지만 두 아이들 수민과 진호에게 시선이 쏠린다.

 

이지형, 김솔 공동감독의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 전문대학원 졸업 작품인 <흩어진 밤>은 2019년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큰일을 냈다. '한국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한 것이다. 경쟁 작품들이 <이장> <욕창> <이타미 준의 바다> <판소리 복서> <파도를 걷는 소년> <굿바이 썸머> 등이었는데, 모두 늦어도 작년에 개봉을 완료했는데 공교롭게도 대상 작품만 1년 늦게 개봉했다. 그리고, 수민 역으로 분한 문승아 배우가 배우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거뒀다. 연출과 연기의 조화가 완벽했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혼 중 '아이들'의 심정이란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안소니 홉킨스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더 파더>, 치매를 다룬 여타 영화들이 가족들 서사가 주를 이뤘던 것에 반해 이 영화는 치매 환자 본인을 1인칭 시점으로 들여다봤다. 당연한 시선이어야 하는데 모두가 간과했던 게 아닐까 싶다. <흩어진 밤>도 비슷한다. 이혼을 다룬 여타 영화들이 어른들 서사가 주를 이뤘던 것에 반해 이 영화는 아이들을 주로 카메라에 담았다. 하여, <더 파더>가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에 절대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흩어진 밤>은 문승아의 연기에 절대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었다. 두 작품 다, 두 배우 다 연기를 기대 이상으로 해냈다.

 

아이들의 심리 상태는 어떨까. 사실, 열 살이나 열네 살 나이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어느 정도 아니 거의 다 깨우칠 충분한 나이다.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데려다놓고 어렵사리 말을 꺼내며 이리저리 우물쭈물할 때 아이들이 '왜 어렵게 설명하려고 해, 엄마랑 아빠랑 따로 떨어져 살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하려는 거 아냐?'라고 외려 정리하듯 말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건, 현상이 아닌 본질이다. '왜 따로 떨어져 살아야 해?' '왜 결혼했어?' '우리(아이들) 둘은 어떻게 해?' '우리 의견은 안 물어 봐?'

 

아빠 엄마와 함께 넷이서는 절대 살 수 없다는 사실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서, 아빠 엄마 둘 중 한 명만을 무조건 선택해야 하고 오빠 또는 여동생과는 함께 살지 못 살지 알지 못하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넘어 가야 할까. 하기 쉬운 결정은 어른들이 해 버리고 하기 어려운 결정만 아이들이 짊어져야 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그게 이혼이라는 현실의 감춰진 비극이자 진실이다. 

 

흩어지지도 헤어지지도 않길

 

이 영화가 이혼이라는 현상을 비난하기는커녕 비판하려는 요지는 전혀 없는 듯하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다. 당사자들끼리 또 이해관계자들끼리 원만한 합의가 전제된다면, 어느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는 건 일상다반사 아닌가. 그런데, 당사자가 남편과 아내만이 아니라 아이들까지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헤어지길 결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아이들과 함께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것도 아이들이 열 살, 열네 살의 나이로 자아는 물론 세상을 인지할 수 있는 나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여, <흩어진 밤>이 모든 이혼 과정을 대변하진 못한다. 반면, 특정한 이혼 과정은 완전하게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영리한 기획의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를 보고 이혼에 대해 생각을 달리하게 되진 않았지만 특정한 이혼 과정에서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게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아가, 이혼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각자 나름의 상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나름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절대적인 건 절대적으로 없다.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바람과 함께 충분히 상처 받고 빨리 아물었으면 좋겠다는 복합적인 바람도 함께하게 된다. 적어도 영화 속 수민과 진호는 충분히 건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앞에선 우물쭈물하고 뒤에선 할 말 못할 말 구분 못하는 엄마 아빠와 달리,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아이들이다. 새삼,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훨씬 힘이 세다는 걸 깨닫는다. 밤은 흩어질언정 어른들은 헤어질언정, 아이들은 흩어지지도 헤어지지도 않을 테다. 

 

앞선 세대의 한국 독립영화가 폭력의 되물림을 다방면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고찰하려 했다면, 최근 몇 년간 한국 독립영화는 '가족'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하는 것 같다. 훨씬 더 풍부하겠지만, 상대적으로 깊지 못하거니와 장르적 다양성이 결여될 요량이 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어갈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보면 좋을 것 같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