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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해당되는 글 142건

제목 날짜
  • 관능적인 동작으로 몸과 다시 교감하라! <폴 위의 그녀들> 2021.02.26
  • 포기하고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대만 여성의 삶 <고독의 맛> 2021.02.24
  • 크랙과 미국은 어떻게 가난한 흑인 사회를 파괴시켰나 <크랙의 시대> 2021.02.19
  • 이 영화가 위대한 발견을 그리는 법 <더 디그> 2021.02.17
  • 아쉬움을 뒤로한, 한국 우주 SF의 신기원 <승리호> 2021.02.13
  • 까치와 함께 집단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가족의 이야기 <펭귄 블룸> 2021.02.10
  • 화려했던 1980년대 LA의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라! <나이트 스토커> 2021.02.05
  • 21세기 인도에서 벌어지는 믿지 못할 일들 <화이트 타이거> 2021.02.04
  • 사람 냄새 나는 건강한 스포츠맨십의 NBA 전설 <토니 파커> 2021.01.29
  • 프랑스 대통령 후보이자 IMF 총재였던 이의 추락 여정 <2806호 스캔들: 진실공방> 2021.01.27

관능적인 동작으로 몸과 다시 교감하라! <폴 위의 그녀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2.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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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폴 위의 그녀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폴 위의 그녀들> 포스터. ⓒ넷플릭스

 

'봉춤'이라고 불리는 '폴댄스'라는 이름의 운동은 곡예의 일종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여러 갈래로 갈라졌는데, 그 관능성 짙은 자세와 느낌을 알아 챈 스트립 클럽에서 스트립쇼의 일환으로 폴댄스를 가져왔고, 기계체조의 일환으로 일반인이라면 하기 어려운 동작을 주로 연마했으며, 격조 높은 예술성을 지닌 채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요가나 필라테스처럼 일반인 대상으로 한 피트니스의 한 방면으로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폴댄스를 '야하게'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폴댄스 아닌 '봉춤=야하다'라는 선입견을 뚫고 다분히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의 의한 피트니스로 폴댄스를 대중에 알리고자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폴 위의 그녀들>은 할리우드 배우 실라 켈리가 만든 인기 최고의 피트니스 'S 팩터 스튜디오'의 폴댄스 초급반 6개월 과정을 따라간다.

 

여성 몸의 곡선이 S선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는 'S 팩터', 다양한 도시에서 여성들은 그곳에 왜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어떤 변화를 맞게 될까. 실라 켈리는 그들에게 어떤 새로운 삶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과연 폴댄스만 춘다고 몸과 마음과 인생이 송두리째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 그런가 하면, 변호사 직업을 가진 폴댄스 선수 에이미가 5주 뒤에 있을 금문교 봉춤 챔피언십을 준비하는 여정을 따라가는데 그녀의 삶이 참으로 기구하다. 폴댄스로 치유받고 있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몸과 다시 교감하기 위한 폴댄스

 

S 팩터의 6개월 초급자 과정의 처음은 몸과 마음을 열고 터놓는 것이다. '왜'를 먼저 정립한 후 본격적으로 '어떻게'를 시작해야 한다. 우선 실라 켈리가 밝힌 S 팩터의 이유는, 관능적인 동작으로 몸과 다시 교감하는 것이다. 하여 거울도 없고 평가도 없다. 이후 참가자들이 풀어놓는 참여의 이유는 비슷한 듯하면서 다르다. 

 

살쪘다는 수치심으로 언젠가부터 거울을 보지 않게 되었다는 참여자, 평생 자신의 몸을 부정하면서 살아왔다는 참여자, 자신을 사랑하고 싶어 참여하게 되었다는 참여자, 몸이 너무 조숙하게 태어나 놀림받지 않으려 평생 몸을 멀리했던 참여자, 최근 남편을 잃고 자신 그리고 사람들과 다시 친밀해지고 싶다는 참여자, 어린 나이에 지울 수도 잊을 수도 없는 끔찍한 성추행을 당해 몸과 마음으로 '성'을 표출할 수 없게 된 참여자 등 다른 듯하나 비슷한 점이 보인다. 

 

그들은 폴댄스를 통해 몸의 족쇄를 풀고 어떻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지 배우고 싶어 한다. 섹시해지자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섹시한 동작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고 또 자신의 몸을 편하게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체력을 기르는 등 역량 강화의 역할도 뒤따른다. 몸과 마음을 두루두루 챙기고자 하는 바람이다. 

 

한편, 대회를 준비하며 남다른 자세로 폴을 대하는 에이미도 S 팩터의 초급자들과 다름 없는 마음가짐이다.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건 부차적인 것이고, 사실 자신의 몸과의 관계를 재발견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해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잘 알지 못하는 것, 알면서도 숨겨 왔던 것, 알고 싶은 것들을 관능적인 동작의 폴댄스로 알아가고 또 정립시키려는 것이다. 

 

몸의 변화에서 삶의 변화까지

 

실라 켈리는 말한다, 우린 생명력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이 문화는 여성들의 생명력을 뺏기만 한다고 말이다. 그녀는 폴댄스를 여성들의 생명력을 되찾는 여정의 중심축으로 잡고 몸의 성적 매력을 극대화시키고자 한다. 몸의 변화가 마음의 변화를, 마음의 변화가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여정이 계속될수록 참여자들의 분위기와 표정과 몸짓이 달라지는 게 보인다.

 

S 팩터는 변화하고 치유하고 자신을 되찾아가는 게 진정한 목적이기에 폴댄스 강사뿐만 아니라 심리학자이자 상담사인 버먼 박사를 대동해 얘기를 듣는데, 그녀가 말하길 과정의 목적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참여자들의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으니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많은 참여자들이 그 어디서도 말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풀어놓는데,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이 참으로 많았다. 성적인 폭행 말이다. 하여, 여'성(性)'을 멀리하고 억누르고 감추려 했다. 그녀들은 폴 위에서 비로소 여'성(性)'을 가까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폴댄스를 기술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대하는 이들에게 '제닌 버터플라이'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태양의 서커스단에서 5년 동안 공중 곡예사로 공연했던 그녀는 세계 폴댄스 챔피언이기도 하다. 그녀 또한 폴댄스가 치유이자 해방이라고 말한다. 인생의 다른 일은 전부 잊고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 덕분에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 제닌 버터플라이가 폴댄스를 공연의 일환으로만 대할 때 실라 켈리는 폴댄스를 교육의 일환으로 확장시킨 것. 그들은 따로 또 같이 폴댄스의 지평을 넓히고 폴댄스만의 깊이를 개척하고 있다. 

 

몸을 돌보듯 마음을 돌보고, 마음을 챙기듯 몸을 챙긴다

 

내 몸 내 뼈를 좋아하고 신뢰하고 자랑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대다수가 꼴 보기 싫어하고 멀리하며 보여 주기 꺼려 할 것이다. 외형만을 중시하는 시대에 내면을 받아들이고 챙겨야 한다는 생각의 발현이 잘못 받아들여진 게 아닌가 싶다. '몸=외모'인 건 분명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몸만 중시하는 세태를 멀리해야 하는 것이지 겉으로 드러난 '몸'을 멀리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다큐멘터리가 지향하는 바가 '몸'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몸을 경시해 마음이 다친 이들을 치유하려는 목적이기에, 마음보다 몸을 우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또는 몸을 우선 챙겨 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하고 있다. 몸을 챙기듯 마음을 챙기고, 마음을 돌보듯 몸을 돌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몸과 마음, 즉 '심신(心身)'은 따로 아닌 같이 있어야만 한다. 

 

필자 또한 봉춤 또는 폴댄스를 대하거나 생각할 때 부정적인 면모 혹은 일반적이지만은 않은 면모만 떠올랐었다. 몸에 대해 보수적이고 '잘못된' 선입관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폴 위의 그녀들>로 한순간에 180도 달라지진 못하겠지만 상당 부분 돌려놨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누군가도 그리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럴 만한 충분한 힘을 가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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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팩터, 관능, 마음, 몸, 변화, 봉춤, 삶, 여성, 폴 위의 그녀들, 폴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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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고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대만 여성의 삶 <고독의 맛>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2. 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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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고독의 맛>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고독의 맛> 포스터. ⓒ넷플릭스

 

대만 타이난,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유명한 음식점의 사장 린쇼잉의 칠순 잔치가 열린다. 남동생 가족과 세 딸, 사위와 손녀가 모인다. 물론 손님들도 많이 찾아 그녀를 축하해 준다. 그런데, 정작 그녀의 남편이 보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그녀의 남편 천보창은 하필 그날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것이다. 알고 보니 보창은 불교에 귀의해 차이라는 여인과 타이베이에서 살고 있었다. 남편의 죽음 따위에 자신의 칠순 잔치를 망칠 수 없다고 생각한 쇼잉은 행사를 강행한 후 장례식을 준비한다. 

 

열흘 동안 음식점 문을 닫고 일가족이 모여 천보창의 장례식을 준비하는데, 세 딸과 손녀가 제각기 다른 성격과 인생사를 펼쳐놓는다. 첫째 딸은 아빠와 비슷한 성향을 지녔기로서니 결혼 후에도 계속 밖으로 싸돌아다니다가 유방암에 걸려 큰일을 치렀는데 재발하고 만다. 둘째 딸은 성형외과 의사로 암 전문의 남편과 함께 잘 사는 듯보이지만 딸을 미국으로 보내 의사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셋째 딸은 어린 나이에 엄마의 음식점을 물려받고자 하는데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간직해 엄마와 대립하는 형국이다. 그런가 하면, 둘째 딸의 딸인 손녀야말로 쇼잉을 가장 지근 거리에서 챙기며 그녀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것 같다. 

 

린쇼잉과 가족들에게 천보창의 죽음은, 오랜 세월 함께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생각도 하기 힘들었던 그의 살아생전보다 더 많고 큰 감정을 전한다. '곁에 있지도 않았던 작자가 애들 아빠이자 남편이랍시고 죽어서 돌아왔네' '그래도 아빠는 아빠고 돌아가셨으니까 챙길 건 챙기고 기릴 건 기려야지' 등. 평생 밖으로만 싸돌았던 남편을 뒤로하고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야 했고 엄마로서 아이들 뒷바라지까지 해야 했던 린쇼잉으로선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특히, 천보창과 진심 어린 사랑을 나눴다는 차이라는 여인의 존재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걸까.

 

2020년 대만 최고 흥행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고독의 맛>은 공학도 출신의 젊은 실력파 감독 조셉 수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2017년 동명의 단편 영화로 선보였다가 2020년 장편 연출 데뷔작으로 다시 선을 보였다. 그녀가 손녀로 할머니의 이야기를 가져온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2020년 대만에선 넷플릭스 아닌 극장에서 개봉했다가 2021년 넷플릭스로 전 세계에 소개되었다. 

 

대만 현지 영화계에선 <고독의 맛>이 몇몇 이슈를 뿌렸다. 제57회 금마장 영화제에서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여우주연상 1개 부문밖에 수상하지 못했는데, 린쇼잉 역을 맡은 천수팡(1935년생)으로 수십 년 역사를 자랑하는 금마장 영화제 최고령 여우주연상 수상자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2020년 대만에서 1억 대만 달러를 돌파한 영화가 단 두 편인데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과 <고독의 맛>이다. 그중에서도 <고독의 맛>은 2020년 대만의 최고 흥행작으로 이름을 남겼다. 

 

넷플릭스가 소개하는 대만 영화의 퀄리티가 나날이 상향되고 있는 듯한 느낌인데, 그 척도가 금마장 영화제로 대표되는 비평 면이고 대만 현지 수익으로 대표되는 흥행 면인 듯하다. 어느 한 면에서도 어중간하지 않은 확실한 영화들만 소개하는 것 같아, 보는 사람도 믿음직하고 대만 영화계 자체도 날개를 펼치는 것 같다. 대만이야말로 중국과 한국과 일본의 문화와 느낌을 고루고루 받아서 고유하게 승화시킨 동북아의 진정한 대표적 나라가 아닌가 싶다. 

 

누가 칠순 린쇼잉을 위로해 주나

 

영화는 개성 있는 캐릭터들의 다양한 감정선에 따라 다르게 감상할 수 있다. 물론, 린쇼잉이 중심이 되겠지만 말이다. 린쇼잉의 삶은 우리네 한국의 여느 동년배 여성의 삶과 매우 흡사한 것이, 평생을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만 하다가 어느덧 삶의 끝자락에 이르게 되는 모양새가 그렇다. 그럼에도 그들은 누구한테도 동정이나 응원이나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아이들한테도 말이다. 

 

영화 속 세 딸도 똑같다. 평생 옆에서 힘들게 노역하며 버젓이 키워냈 엄마의 칠순 잔치이건만, 평생 밖에서 싸돌아다니면서 돈과 마음만 축냈던 아빠가 죽어서 돌아오자 그에게 일방적인 동정표를 날리는 게 아닌가.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는 말의 의미일까, 엄마와는 오만가지 것들을 함께하며 좋은 감정이 쌓일 수도 있겠지만 나쁜 감정이 쌓일 수도 있는 반면 종종 보는 아빠와는 좋은 시간만 보내며 좋은 감정만 쌓았으니 좋은 기억밖에 남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제목 '고독의 맛'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도움을 주진 못했을 망정 피해만 끼친 남편을 원망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긍정받기는커녕 부정을 당하니 진정 고독하기 짝이 없다. 마음 챙길 겨를이 없고 마음 둘 곳이 없으며 아려 오는 마음을 어찌 할 수 없어 아프기만 하다. 누가 린쇼잉의 마음을 알아 주고 챙겨 주고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자신밖에 없는 것 같다. 

 

정리와 선택의 순간, 포기하고 내려놓기

 

인생은 매순간 정리과 선택이 뒤따른다. 린쇼잉은 지나온 세월을 뒤로 하고 오래 남지 않은 시간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정리하고 선택해야 했다. 남편이 죽을 때까지 이혼해 주지 않고 붙들고 있었던 그 감정, 그를 진정으로 사랑한 것인지 그에게 집착한 것인지 자신의 지난 세월이 불쌍해 쥐고 있던 것인지. 그가 죽을 때 곁에서 끝까지 있었던 차이라는 여인을 보곤, 그녀의 진심 어린 사랑 나아가 그들의 진심 어린 사랑을 느꼈다. 더욱더 고독해진 린쇼잉, 감정을 정리하고 '내려놓기'를 선택한다. 

 

그녀는 사면초가의 고독에서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감정을 '포기'하고 남편을 보내줬을까, 남편과 차이의 사랑과 세 딸 제각각의 인생에서 파생된 어쩔 수 없는 마음가짐이 주는 고독의 맛을 음미하며 남편을 진정으로 '용서'했을까. 남편을 용서했을 거라고 보지만, 그렇다면 그녀의 인생이 너무 슬프다. 그렇다고 감정을 포기하고 남편을 보내줬다고 하기엔, 그 또한 그녀의 인생이 너무 안쓰럽다. 하여, 영화는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지만 찝찝한 뒷맛 또한 남긴다. 우리네와 비슷한 구석이 많아 더 그렇게 느꼈을지 모르겠다. 

 

어떤 식으로든 '내려놓기'를 선택한 린쇼잉, 종국에 그녀는 '나 혼자만 희생하면 만사가 좋아' '나 혼자만 입을 다물고 귀를 닫고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모든 이가 행복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동양적인, 대만적인, 여성으로서, 그 나이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메시지를 던질 만한 이야기로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쉬움 아닌 안타까움이 드는 건 사실이다. 안타까움이 아쉬움으로 번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지 못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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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맛, 금마장, 내려놓기, 돌봄, 마음, 장례식, 천수팡, 칠순 잔치, 포기, 흥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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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과 미국은 어떻게 가난한 흑인 사회를 파괴시켰나 <크랙의 시대>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2. 1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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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크랙의 시대: 코카인에 물들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크랙의 시대> 포스터. ⓒ넷플릭스

 

1981년, 로널드 레이건은 모두에게 부와 삶의 개선을 약속하는 캠페인을 벌이며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성공한다. 주 대상은 정치에 관심 없는 백인층이었다. 레이건은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가난에서 구제한다며 자유 시장을 부추긴다.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한다. 돈의 흐름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탐욕'은 '좋은 것'이 되는 것이다.

 

도시는 활기를 되찾고 낙관주의가 팽배하고 사람들은 클럽을 찾는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미국을 위한 축하의 방식으로 말이다. 코카인은 그 일부였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 <스카페이스>가 유행시켰는데, 주류 백인층이 하는 일탈의 방식이자 상징이 되었다. 물론, 너무나도 비싸서 도시빈민가 유색인은 즐길 수 없었다.

 

한편, 빈민층을 향한 레이건 정부의 방침은 방임이었다.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부추기는 와중에 가난한 이를 챙기지 않았다. 급기야 1982년 실직자가 850만 명에 이르렀고 미국 역사상 손꼽히는 실업률을 기록한다. 사람들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빈민층 유색인들은 '생존'하기 위해 위험하고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미국에 사상 최고 물량의 코카인이 유입되기 시작한다. 정부도 어쩔 도리가 없을 정도의 무차별 유입, 하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꿍꿍이가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여하튼, 코카인 값은 하락했고 부유한 백인층 말고도 코카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런 와중에, 가루 코카인의 베이스만 추출해선 저렴하고 휴대하기 쉽지만 효과는 강력한 '크랙'을 만들어 낸다. 이제 가난한 사람도 코카인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크랙과 미국은 어떻게 흑인 사회를 파괴시켰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크랙의 시대: 코카인에 물들다>는 빈부격차가 사상 최악으로 치달은 1980년대 미국 전역에 값싸고 강력하기까지 한 크랙(코카인)이 퍼지며 일어난 변화의 과정과 그 끝에 있는 진실을 파헤친다. 미국 정부와 긴밀하게 얽혀 있고, 크랙으로 큰 변화가 일게 된 가난한 흑인 사회가 주 타깃이다. 크랙 그리고 미국 정부는 어떻게 가난한 흑인 사회를 파괴시켰을까.

 

지금은 각계각층에 있는 수많은 '한때 중독자'들이 대거 출현해 크랙에 처음 발을 들이고 난 후 돌이킬 수 없을 중독으로 빠지게 된 때를 회고한다. '하늘을 나는 기분' '오르가즘' '주변 모은 게 빙!' 같은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었다고 한다. 일단 수요는 어마어마하니 공급만 하면 되었다. 저렴하고 간편했으니, 생존을 위해 뭐든 해야 했던 가난한 흑인들이 뛰어들었다.

 

한때 중독자들이 대거 출현한 것처럼, 한때 마약 중개상들이 대거 출현해 당대를 회고한다. 그들은 가난한 흑인 사회에서도 특출나게 가난하고 힘든 경우가 많았는데, 생존을 위해 마약을 팔기 시작해 돈을 긁어 모았고 막대한 부를 쌓아 거부가 되기도 했다. 마약이라는 게 마피아라는 거대 조직에 어떤 식으로든 연류되어 있던 것과는 다르게, 크랙은 어떤 조직과도 연류되어 있지 않았고 중간에 누가 껴들지도 않았다. 요령만 있으면 누구나 큰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마약상은 LA 최연소 갑부였다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크랙은 어디서, 왜 온 걸까?

 

큰 명엔 큰 암이 뒤따르는 법. 단숨에 큰 돈을 만졌지만, 돈을 지키기 위해 무장을 해야 했다. 즉, 그들 스스로가 조직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직들이 생겨나 대치하며 폭력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서로를 헤쳤다. 가난한 흑인 사회는 더 이상 예전만큼 가난하진 않았지만, 대신 도처에 죽음이 넘쳐 났다. 매일 같이 시체가 거리 곳곳을 피로 장식했던 것이다.

 

마약으로 생겨난 너무 많은 돈이 거리에 넘쳐나 동네 전체와 모든 사람들을 타락시켰다. 심지어 경찰의 고위 간부까지 마약 비리에 연류되기도 했다. 흑인 사회의 마약상과 중독자들을 돌보고 '치료'할 주체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마약 자체에 있었다. 마약 중독자들은 모든 걸 잃었다. 돈을 벌고자 범죄를 저질렀고, 주위 사람들을 잃었으며, 본인의 건강은 물론 목숨까지 잃는 게 허다했다.

 

한때 중독자의 한마디가 귀에 꽂혀 남아 있다. "이건 흑인 사회를 상대로 벌인 화학전이나 다름없었어요. 크랙은 어디서 온 걸까요? 무엇보다도 이유가 뭘까요?" 1986년 영부인 낸시 레이건은 미국 역사상 최대의 마약 퇴치 운동인 '크랙 퇴치 운동'을 시작한다. '마약을 거부하세요'라는 위선적이고 효용성이 없을 슬로건은 마약을 거부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는 흑인이 대다수인 도심 빈민가를 돕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도 그 시기는 미 정부가 코카인 밀반입을 눈감아줬을 시기였다. 전말은 이렇다. 당시 중앙아메리카에선 내전이 한창이었는데, 미 정부는 쿠바-소비에트 연합의 지원을 받는 좌파와 마르크스주의자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부에 반대하는 콘트라 반군을 물심양면 지원한다. 하지만 의회가 반대하고 정부는 이란에 무기를 불법적으로 팔아 생긴 수익을 불법적인 콘트라 반군 전쟁 자금으로 돌렸다. 그 대신 역시 불법적인 니카라과 코카인 미국 밀반입을 눈감아줬다. 당시 미국의 지상 최대 목표는 공산주의 박멸이었고, 니카라과에서 산디니스타 정부를 몰아 내는 대신 코카인이 밀반입되어 미국 젊은이들이 중독되고 또 피해를 본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약에 관한 사회병리학적·사회정치학적 접근

 

와중에 미국 전역을 강타할 큰 일이 발생한다. NBA 굴지의 팀 보스턴 셀틱스가 왕년의 명성을 되찾고자 드래프트 최대어 렌 바이어스를 전체 1순위로 데려오는 데 성공한 찰나, 불과 다음 날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원인으로 '크랙'이 지목되었다. 이후 언론지상은 크랙으로 도배가 되었다. 문제는, 서사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갔다. '유행병'과 '전염병'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크랙 위기를 강조하며 사람들을 겁 줬다. 그리고 자연스레 '흑인'이 대두되었다. 크랙이 야기하는 문제가 바로 여기, 흑인에 있다고 말이다. 흑인이 곧 유행병이자 전염병이 되었다.

 

1980년대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유색인종의 빈민층을 중심에 둔 빈부격차 정책을 내세우고, 마약 밀반입을 묵인해 그들로 하여금 마약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해 놓곤, 대대적인 마약 퇴치 운동으로 마약을 몰아 내게 했다. 그 결과, 마약과 동일시되던 흑인 빈민층은 가난해졌을 뿐만 아니라 삶의 방향성을 잃고 건강과 목숨까지 잃게 되어 완전히 수렁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크랙의 시대, 미국의 1980년대가 남긴 지독한 자화상이다. <크랙의 시대>는 사회병리학적이고 사회정치학적인 맥락에서 마약에 관한 꽤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풀어 내 보여 줬다.

 

일련의 과정이 흥미진진하고 풍부한대 짧은 시간 내에 핵심만 간추려 설명하려니 더욱더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졌다. 시간을 2~3배로 늘려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구성해, 보다 자세하게 관련된 거의 모든 걸 설명하며 천천히 맥락을 짚어갔으면 훨씬 더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내용과 메시지가 워낙 탄탄하고 확고해 잊히지 않을 인사이트가 확 와 닿았다. 미국이라는 나라, 미국을 이끌었던 정부, 세계 어느 곳보다 풍성한 다양성을 품고 있지만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대책 없이 보수적인 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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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레이건, 마약상, 미국, 밀반입, 스카페이스, 코카인, 코카인에 물들다, 크랙의 시대, 흑인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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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위대한 발견을 그리는 법 <더 디그>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2. 1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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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더 디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디그> 포스터. ⓒ넷플릭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의 서퍽 주 입스위치, 젊은 미망인 이디스 프리티는 어린 아들 로버트와 함께 대저택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사유지에 있는 둔덕 아래에 뭔가 있을 거란 확실한 느낌을 갖고, 고고학자이지만 스스로를 발굴가라고 소개하는 배질 브라운을 고용한다. 그는 비록 정식교육을 받진 못했지만 선대부터 살아온 서퍽을 꿰고 있으며 독학으로 지독하게 쌓아올린 지식과 아주 어렸을 때부터 현장에서 쌓아올린 경험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전쟁 준비로 모조리 불려가는 와중에, 적은 인력과 비용과 시간 속에서 작업에 뛰어든 배질은 머지않아 큰 발견이 될 전초를 발굴한다. 다름 아닌 배를 발굴해 낸 것, 곧 입스위치 박물관과 대영 박물관에서 달라 붙는다. 박물관 측에서 몇 명이 와서 작업에 참여하고, 이디스는 사촌 로리를 불러 작업에 합세하게 한다. 아무리 사유지라고 해도 국가적 유물인 만큼 주인 이디스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는데, 최초 발굴자 배질에게 크나큰 공을 돌리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디스는 심장에 돌이킬 수 없는 질환이 생기고, 배질은 자부심과 돈과 열정의 경계에서 흔들리며, 로버트는 아픈 이디스에 슬퍼하며 배질을 따른다. 그런가 하면, 로리와 박물관 측에서 참여한 작업자 중 유일한 여자 페기는 알 수 없는 로맨스 관계에 빠지는 듯하다. 과연, 이들은 안팎의 난관을 넘어 영국 역사상 최대의 발견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발견을 이룩해 낼 수 있을까?

 

지금, 이 영화가 울림을 주는 이유

 

영화 <더 디그>는 앵글로 색슨 유물 발굴의 실화를 다룬 존 프레스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스위스 출신으로 호주에서 배우와 감독을 역임하는 젊은 감독 사이몬 스톤이 연출했다. 주연으로는, <쉰들러 리스트> <잉글리시 페이션트> 그리고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 등으로 잘 알려진 랄프 파인즈와 <드라이브> <위대한 개츠비> 등으로 잘 알려진 캐리 멀리건이 열연했다. 

 

탄탄한 원작, 역시 탄탄한 캐스팅으로 괜찮은 외형을 꾸린 영화는 사실 그보다 더 빛나는 걸 우리에게 선사한다. 한 컷 한 컷이 작품과 다를 바 없을 정도의 카메라 워킹, 영화의 상당 부분이 내부 아닌 외부의 뻥 뚫리고 광활한 대지임에도 어색하지 않은 조명, 그리고 전쟁 직전의 암울한 상황에서도 인류 역사의 숭고함을 위해 꿋꿋하게 나아가는 분위기를 한껏 살리는 음악까지 손색이 없다. 

 

은은하고 잔잔하게 시대와 조우하고 개인끼리 연대하며 시공간을 한순간에 뛰어넘어 지금 여기 우리 앞에 나타난 1500년 전 유물의 존재가 전쟁 직전의 암울함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21세기도 한참 지나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100년 되는 해를 향해 가는 지금에 이 영화가 울림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화려하고 웅장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위대한 발견의 막전막후

 

영화에서 발견하게 되는 앵글로 색슨 유물의 존재는 '암흑시대'라고 일컬는 시대와 맞닿는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476년 이후 시작되어 십자군이 득세할 때까지 500여 년간 계속된 '중세 초기'를 가리키는데, 그때의 기록이나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문화와 예술은 물론 주화도 없었을 거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영화에서처럼 1939년 영국에서 6세기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 발견된 것이다. 가히 역사적 가치가 드높은 전무후무하고 위대한 발견이라고 한다. 

 

그런데 영화는 '역사적 가치가 드높은 전무후무하고 위대한 발견'의 과정과 결과를 메인에 두지 않는다. 위대한 발견의 막전막후를 두고 관계자들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충분히 스펙터클하고 긴장감 있고 흥미진진하게 꾸며 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또한 위대한 발견의 과정과 결과 그 자체에 천착해 '이 유물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 유물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에 자세하게 풀어 내어 지식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방향을 가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더 디그>가 지향한 건 유물이 아닌 '사람'이다, 사람들 간의 관계가 아닌 '연대'이다. 입스위치 박물관과 대영 박물관의 압박에도 직접 택했던 배질을 끝까지 믿어 주는 이디스, 위대한 발견의 소명도 있지만 이디스의 믿음에 흔들리는 열정을 다잡는 배질, 금지된 사랑의 영역에 들어섰지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 하나로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로리와 페기, 그리고 하늘과 우주를 동경하며 엄마 이디스를 지켜 주고 싶은 마음과 고고학자 배질을 존경하는 마음이 가닿으며 이어지길 바라는 로버트까지 캐릭터들이 혼자 튀거나 나대지 않고 유기적으로 서로 잔잔하고 은은하게 이어지는 면면이 크게 와닿는다. 

 

호기심, 감성, 응어리

 

제목 속 'dig'는 '땅을 파내다' 또는 '발굴' 등의 뜻을 지닌다. 예견된 전쟁이 터지기 직전의 일촉즉발 상황에서도 고대의 유물을 반드시 발굴해야 하는 이유가, 함축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다가왔기 때문에 오히려 옛것의 의미가 부각된다. 지금 이 땅의 모든 인간이 사라질 먼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해 과거와 현재를 전해 줄 유물을 있는 그대로 발굴해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 모든 걸 앗아갈 수 있는 전쟁에 대항하는 유일무이할 방법이 아닌가. 

 

영화 속 실존 인물의 캐릭터들이 전하는 메시지와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일맥상통한다. 장면 하나하나를 허투루하지 않는 장인정신의 카메라 워킹이 인상적인데, 특히 광활한 대지의 순간순간을 카메라로 모두 잡고 싶은 열정이 보이는 듯하다. 그 열정을 뒷받침하고자 자연광이 철저하게 투영된 장면만을 보여 주려는 듯했고, 완벽에 가까운 장면을 영상으로 보여 줄 때 감동을 극대화시키고자 그에 걸맞는 음악을 입혔다. 때론 호기심을 자극하고, 때론 감성을 자극하고, 때론 저 밑바닥의 응어리를 자극한다. 

 

위대한 발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제외하곤 특별한 이야기나 특출 난 인물이나 특수한 상황이 드러나지 않는다. 위대한 발견조차도 영화의 메인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더더욱 특별한 걸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여운이 오래 지속되는 건 특별한 걸 특별하다고 강조하거나 떠벌리지 않는 용기 덕분일 테다. 특별하고 위대한 건 그 자체로 빛나며 알아봐 주지 않겠는가. 이 특별한 영화가 그럴 테고, 이 영화가 전하는 위대한 발견이 그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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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더 디그, 발견, 사람, 실화, 암흑시대, 앵글로 색슨 유물, 연대, 제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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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뒤로한, 한국 우주 SF의 신기원 <승리호>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2. 1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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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승리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승리호> 포스터. ⓒ넷플릭스

 

코로나 19 판데믹이 시작된 지도 1년이 훌쩍 지나 2021년도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 2020년 영화계를 돌이켜 보면, '황폐'라는 한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거의 매년 1000만 영화들을 양산하며 역대 최고의 관객몰이를 경신시키더니, 한순간에 역대 최악의 퍼포먼스를 보여 주게 된 것이다. 단적으로, 2020년 한국영화 최대 흥행작이 <남산의 부장들>로 채 500만 명도 동원하지 못했다.

 

2020년을 건너 뛰어 거슬러 올라간 2019년, 2020년에 우리를 찾아와 영화를 보고 즐기는 행복을 한껏 선사할 거라고 예상해 마지 않았던 기대작들 태반이 지금까지 개봉을 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언제 개봉을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그중 <승리호>는 자타공인 최대 기대작이었는데, 2020년 여름에 1000만 관객 동원은 따놓은 당상의 텐트풀 영화로 예정했다가 추석 시즌으로 미뤄졌었고 다시 무기한 연기되었다가 결국 넷플릭스와 손잡고 해를 넘겨 설날 시즌에 맞춰 공개되었다. 

 

'한국 최초의 우주 SF'라는 타이틀과 함께, 감독과 주연이 큰 수혜를 봤던 영화 <늑대소년> 이후 실로 오랜만에 함께하게 된 조성희 감독과 송중기 배우, 그리고 김태리, 유해진, 진선규, 리처드 아미티지 등이 합세한 궁극의 캐스팅까지 당최 기대를 하지 않을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문제는, 다분히 극장 스크린에 안성맞춤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졌을 영화라는 점. 과연, 안방극장에서 기대를 충족시킬 만한 퍼포먼스를 보여 줄 것인지? 과연 할리우드 역사를 함께 했던 수많은 우주 SF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

 

2092년 병들고 황폐해진 지구엔 모든 생물이 사라지고 사람들만이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갈 뿐이다. 우주 개발 기업 'UTS'는 지구를 피해 우주의 위성 궤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세워 지구의 인류에게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선택된 5%의 시민들만이 살 수 있었고 나머지 95%의 비시민들은 지구에 남아 힘겹게 살아가거나 우주에서 역시 힘겹게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우주쓰레기를 청소하는 이들이 대표적인 우주 노동자인데, 한국의 '승리호'가 타국 청소선들을 제치고 월등한 실력을 자랑한다. 

 

승리호엔 전 UTS 소속의 천재적인 실력의 소유자들인 선장 장현숙(장선장), 조종사 김태호가 타고 있고 몇 년 전까지 지구에서 마약 밀매조직 수괴이자 갱단 두목이었던 기관사 박경수(타이거 박)와 군사용 로봇으로 설계되었다가 장선장과의 인연으로 탑승하게 된 작살잡이(?) 업동이도 타고 있다. 이중 특히 김태호에겐 사연이 있는데, UTS 기동대장으로 있던 당시 뜻밖의 정으로 데려다 키우게 된 '딸' 순이를 순간의 실수로 영영 잃어버리게 되었다. 태호는 순이의 시신이라도 회수하고자 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빚만 늘어나던 그들 앞에 어느 날 강꽃님이라는 어린 여자아이가 나타나는데, 언론지상에서 외형만 인간이지 고성능 수소폭탄이니 조심하라고 떠드는 도로시였다. 처음엔 도망다니며 난리를 치더니 문득 깨닫고는 큰돈을 만질 절호의 기회임을 간파한다. 결국 도로시를 빼돌렸다고 알려진 테러 단체 검은여우단과 조우해 큰돈으로 맞바꾸기로 한다. 하지만, UTS 수장인 설리반이 본인의 궁극적인 목적을 실현하고자 지구의 완전한 파멸이 가능한 유일한 카드인 도로시 즉 꽃님이를 찾고 있다. 과연, 승리호는 어떤 선택을 할까? 꽃님이와 지구의 앞날은? 

 

터무니 없기 짝이 없는 스토리

 

영화 <승리호>는 크게 두 측면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완벽히 갈리다시피 할 텐데, 내면이라고 할 수 있을 '이야기'와 외형이라고 할 수 있는 'CG'가 그것이다. 앞엣것은 불호로,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의 괴상한 각본이었다고 감히 확신할 만하다. 반면 뒤엣것은 호로,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훌륭한 그래픽이었다고 감히 확신할 만하다. 그러니, 영화를 보고 또 대하는 방식이 아주 간단하고 단순하다. 재밌게 즐기며 환호하든, 재미없게 보며 욕을 하든 말이다. 

 

우주에서 펼쳐지는 모험이 주된 소재가 되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를 차용한 만큼 세계관은 굉장하다. UTS라는 초국적 초거대의 온리 원 우주 개발 기업이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를 독식하고 있는 와중에, 도로시라는 지구 파멸이 가능한 나노봇 인간을 둘러싼 모험과 전쟁이 펼쳐지니 말이다. 그런데, 큰 이야기를 큰 스케일로 이끄는 게 아니라 큰 이야기 속 자잘한 이야기들로 잽을 날리듯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모양새가 그리 와닿지만은 않았다.

 

계급, 환경, 다양성 등 수많은 영화를 통해 진지하고 크게 다뤄졌을 문제의 메시지를, 단타로 처리하며 모양만 갖추려고 했다는 이미지가 짙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제목이기도 할 정도로 크게 부각되어야 마땅할 청소선 '승리호'만의 서사가 부족한 점이나 영화의 유일한 빌런이라고 할 만한 UTS 수장 설리반만의 서사가 부족한 점, 무엇보다 극을 이끄는 네 캐릭터의 따로 또 같이 서사 그리고 꽃님이와의 조우 이후 서서히 탄탄하게 쌓아올려지는 연대의 서사가 부족했다는 점 등이 크게 다가왔다. 관객 입장에서, 갑자기 툭 튀어 나온 알 수 없는 이야기 속으로 한순간에 빨려 들어가 정신 없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만 하고는 빠져나온 느낌이지 않았을까.

 

말도 안 되는 업적의 그래픽

 

주지했듯 CG라는 측면만 보면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룩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제작비가 240억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정도의 퀄리티를 할리우드에서 구현하려면 2400억 원의 제작비는 들여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주연 배우의 높은 출연비를 포함 우리나라보다 대체적으로 높을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단순히 1:10으로 무 자르듯 할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월등한 그래픽 기술을 보유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승리호>는 그 집약체와 다름 아니었다.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핵심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오밀조밀 유기적이고 납득이 가면서도 안타깝기까지 한 모험 활극에 있을 텐데, 그만큼 핵심적인 게 우주 공간에서 펼쳐지는 누가 적군이고 누가 아군인지 식별하기 힘들 복잡한 전투 장면이다. 어수선한 듯 꽉 차 보이는 화려하고 웅중한 우주 공간 전투를 이 영화가 완벽에 가깝게 보여 줬다. <스타워즈>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기조 상으로 다분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연상되었다. '느낌'만으로 <승리호>를 따라가다 보면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테다.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말이 있다. 처음으로 가는 길이 제대로 닦여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그럼에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단 이 영화는 한국 영화계 역사에 길이남을 게 분명하다. 큰 시도였고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비록 반쪽의 성공을 이룩한 듯보이지만 말이다.

 

좀더 큰 서사의 일환으로 보면, 한국 우주 SF 영화의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보는 게 맞다고 본다. <승리호>를 두고, 기술력은 충분하고 이제 상상력만 충족하면 되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기술력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지만 상상력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동안 충분하지 못한 기술력 때문에 상상력이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제 기술력이 충분해졌다는 게 명약관화하니 상상력이 스스로를 제한하지 않고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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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와 함께 집단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가족의 이야기 <펭귄 블룸>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2. 1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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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펭귄 블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펭귄 블룸> 포스터. ⓒ넷플릭스

 

호주의 블룸 가족, 아빠 캐머런 블룸과 엄마 샘 블룸과 큰아들 노아 그리고 두 작은아들까지 거의 모든 게 완벽했던 그들은 2013년 태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괜찮았던 태국 여행, 하지만 한순간에 가족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어느 관광지 옥상에서 난간에 기대 있던 샘 블룸이 바닥으로 추락한 것이다. T6라고 부르는 등 한복판 척추를 다쳐 그 아래로 마비가 되어 쓸 수 없게 되었다. 

 

호주로 돌아와 일상을 영위하는 가족, 1년이 지났건만 회복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사고 전 활동적이기 그지 없었던 샘은 육체적·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으며, 육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노아가 해변에서 위기에 처한 새끼 까치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온다. 높은 둥지에서 떨어져 다쳐서는 그냥 뒀으면 죽었을 것이었다. 엄마의 반대를 무릎쓰고 '펭귄'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주며 보살피는 노아, 그러며 하루종일 실의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엄마를 그리워한다. 

 

트라우마는 더 이상 아이들의 엄마일 수 없다는 자책으로 이어지고 삶의 희망을 이어가기 힘들 정도가 되어 간다. 그녀를 극진히 간호하며 세 아이들까지 챙기는 캐머런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 아이들도 그녀에게 삶의 이유를 되찾아 주진 못한다. 그런 와중에,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펭귄을 보살피며 조금씩 살아지게 되는 샘이다. 과연 샘은, 아니 블룸 가족은 집단 트라우마를 잘 이겨 내고 다시 예전처럼, 아니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을까? 펭귄은 어떤 도움을 줄까?

 

집단 트라우마에 걸린 가족의 고통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펭귄 블룸>은 2017년 4월에 출간된 캐머런 블룸의 동명 베스트셀러 포토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다. 날개를 다쳐 날지 못했던 까치 '펭귄'을 데려와 2년여 동안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게 한 블룸 가족의 감동 어린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심금을 울렸다. 비록 펭귄은 자연으로 갔지만 종종 블룸 가족을 찾아온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감동 어리고 따뜻하기만 한 것 같은 이야기의 이면엔 치명적이다 못해 절망적이기까지 한 이야기가 곁들여 있다. 바로, 블룸 가족의 사연인데 엄마 샘이 불의의 사고 때문에 더 이상 두 발로 설 수 없게 된 것이다. 한 인간이 한순간에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진 것도 모자라, 사고의 순간에 함께 있던 평범하게 화목하고 행복했던 한 가족이 한순간에 불행의 구렁텅이로 떨어져 버렸다. 

 

'집단 트라우마'에 고통받게 된 블룸 가족, 그때 왜 하필 태국으로 여행을 가서 왜 하필 그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으며 왜 하필 그 난간에 기댔을까... 사고 후 가족 모두가 한순간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물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덜 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을 보살펴야 하는데 블룸 가족은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모두 피해를 입었기에 누가 누구를 보살펴 주기가 힘들다. 육체적으론 도와 주고 보살핀다 해도, 정신적으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피폐해질 뿐이다. 

 

까치 펭귄에게 애정을 쏟게 된 이유

 

집단적 고통을 해결하는 건 결국 외부의 힘이 작용해야 한다. 내부에서 해결하려 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가능성이 아주 농후한 것이다. 극중에서 사고 당사자 샘을 제외하곤 큰아들 노아가 가장 큰 트라우마를 겪는데, 샘으로 하여금 그때 그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게 한 이가 노아였기 때문이다. 노아는 샘이 사고를 당해 절망적으로 힘들어 하는 게 오로지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엄마가 더 이상 예전처럼 자신을 찾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으며 보살피지도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노아가 가족 누구보다도 펭귄에게 애정을 쏟는 게 이해된다. 애정은 일방적이지 않는 법, 엄마에게서 사랑을 받으며 자신 또한 엄마에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펭귄에게 사랑을 쏟고 자신 또한 펭귄에게서 사랑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 결과, 펭귄은 노아뿐만 아니라 블룸 가족 전체를 치유하기에 이른다. 샘은 사고 후 복잡한 심정으로 가족을 대할 수밖에 없을 테고 그래서 예전처럼일 수 없었다. 하지만, 펭귄은 그렇지 않다. 부담 없이 보살피며 사랑을 주면, 부담 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블룸 가족은 펭귄을 새장에 가두고 자유롭지 않으며 일방적인 보살핌과 사랑을 주지 않았는데, 물리적으로 그럴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거니와 그들이 야생동물을 대하는 방식이었을 테다. 그러했기에 펭귄은 나름의 자유의지로 블롬 가족과 자연을 오갔고, 독립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블룸 가족은 펭귄에만큼은 한 몸 한 뜻이 되었다. 펭귄이 처음 날게 되었을 때 진심으로 응원했고, 타 지역에 함께 갔다가 영역다툼으로 다쳤을 땐 진심으로 아파했다. 펭귄을 향한 이 모든 건, 그들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식으로 치환되었다.

 

트라우마 극복기

 

성공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했나, 다치면 도태되어 죽고 마는 자연 생태계의 섭리를 무시(?)하고 보살핀 블룸 가족에게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성공의 순간을 선사한 까치 펭귄을 보고 특히 샘이 큰 깨달음과 힘을 얻는다. '나도 할 수 있다'는 너무 흔하지만 지극히 어려운 명제를 말이다. 그녀는 비록 두 다리를 쓸 수 없지만, 튼튼한 두 팔이 있지 않는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건 마주하는 것밖에 없다.

 

샘은 먼저 노아와 얘기를 나눴다. 노아가 샘의 사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샘은 노아의 말을 듣고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진심 어린 말을 건넸다. 그리고 여전히 엄마 '샘'이 필요한 노아의 진심을 알았다. 이후 그녀는 사고 이후 상태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시작한다. 물론, 주위 사람들의 강력한 권고로 마지못해 시작했지만 말이다. 사고 전 서핑을 즐겼던 그녀로 하여금 물 위 카약을 홀로 타게 만드려는 것이었다. 한없이 좋아했지만 할 수 없게 되어 애써 피하던 바로 그것에 정면으로 마주한 것. 

 

샘의 인간 승리 지점이 감동의 하이 포인트일 테지만, 영화는 제목답게 펭귄의 승리 지점에서 진정한 감동을 선사한다. 펭귄이 날개를 펴고 날 때 울컥했고, 펭귄이 영역다툼에서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을 때 울컥했으며, 완전히 떠난 줄 알았던 펭귄이 돌아왔을 때 울컥했고, 펭귄이 블룸 가족들과 어우러져 일상을 영위할 때 울컥했다. 실로 오랜만에, 개인적으론 난생 처음으로 느끼다시피 하는 감동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까치 펭귄에서 눈을 떼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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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극복, 까치, 보살핌, 사고, 슬픔, 아픔, 집단트라우마, 펭귄 블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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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1980년대 LA의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라! <나이트 스토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2. 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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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나이트 스토커: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나이트 스토커> 포스터. ⓒ넷플릭스

 

미국에서 뉴욕 다음 가는 도시로 유명한 로스앤젤레스, 일명 'LA'는 1980년대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다양한 국적과 인종이 모여들어 우여곡절 끝에 독특한 문화를 이룩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공장이자 주요 항구로 상공업이 크게 발달했으며,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산업의 메카인 할리우드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런가 하면, 교황과 영국 여왕이 방문하고 1984년엔 올림픽까지 개최했다. 범죄율로 급락했다.


'나쁜 점은 없고 좋은 점만 있는 도시', '자랑스러운 도시', '대단한 10년' 같은 수식어가 함께할 만한 1980년대 LA다. 하지만, 한편에 LA는 허울이었다고 말할 근거가 있다. 한쪽에서 보면 화려하고 유며인들로 가득했지만 반대쪽으로 돌아가 보면 아주 어두운 면이 드러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나이트 스토커: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다>는 바로 그 1980년대 LA의 어두운 한 단면을 세밀하게 잘라 보여 준다. 


작품은 LA 카운티 보안관국의 패기로운 젊은 형사 길 칼리요와 전설적인 베테랑 프랭크 살레르노가 한 팀이 되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베트남 참전 용사 칼리요가 전역 후 결혼하고 대학을 나와 형사가 되어선, 살레르노와 한 팀이 된다. 비록 젊지만 똑똑하고 호기로운 데다가 성실한 칼리요를 살레르노가 은퇴한 파트너의 후임으로 점 찍은 것이다. 그들이 함께한 첫 사건이 1985년 3월 17일 일어난 살인 사건이었다. 

 

LA의 무차별 연쇄 살인마, 나이트 스토커


연쇄 살인마에겐 살인의 동기나 이유 그리고 어느 정도의 일관성은 존재한다. 잘난 여성만 죽인다던지, 성노동자 여성만 죽인다던지, 아동만 죽인다던지, 유색인종만 죽인다던지 말이다. 거기엔 강력한 트라우마와 경험에서 오는 나름의 확고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칼리요와 살레르노가 한 팀이 되어 맡은 사건이 그러했다. 1985년 3월 17일 이후 일어난 일련의 살인 사건들, 후에 타블로이드지가 '나이트 스토커'로 이름 붙인 연쇄 살인마가 일으킨 사건들은 말그대로 '무차별'했던 것이다. 


베테랑 살레르노는 채 10년도 되지 않은 이전에 유명한 연쇄 살인마 '힐사이드의 교살자'를 체포한 경험도 있기로서니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며 자신을 돌보며 지켰는 반면, 신참 칼리요는 본인과 가족의 사생활을 완전히 뒤로 하고 오로지 연쇄 살인마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얼핏 일관성 없어 보이지만 근거리에서 빠르게 다음 살인이 이뤄지는 일련의 연쇄 사건에서 실마리를 잡기 힘들었다. 범인은 각종 무기로 살인을 저질러 사방에 피가 흥건했거니와 성폭행까지 저질러 생존자도 있었지만,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생존자의 힘겨운 증언으로 마련된 몽타주와 범인이 남긴 유일한 흔적이라고 할 만한 발자국이 희망이었다. 평화롭고 안전한 자택에서 이뤄지는 살인의 현장, 1985년 당시 LA는 그야말로 안전한 곳이 없는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LA와 내부에서 느끼는 LA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였던 것이다. 무지막지하고 무차별적인 강도, 폭행, 살인 행각에 경찰은 발끝도 따라가지 못했다. 

 

두 경찰의 화려한 무용담

 

작품은, 그러나 시종일관 '나이트 스토커'를 쫓던 두 형사 칼리요와 살레르노의 무용담(?)만 늘어놓는 것 같다. 문제는 그 무용담이라는 게 얼마나 열심히 범인의 뒤를 쫓았는지 아느냐, 그런데 그곳에서 범인의 흔적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악마 같은 범인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폭행과 성폭행을 저지르고 돈을 빼앗고 죽이니 예측을 하기가 힘들다, 이런 연쇄 살인마는 처음 보는 것 같다는 식인 것이다. 이제는 전설이 된 두 경찰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조금만 웃음 포인트를 넣으면 맨날 범인의 뒤꽁무니만 쫓아가면서 항상 한 발 늦는 못난 콤비 형사라고 해도 충분하다.


그래서 이 작품이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일련의 범죄 다큐멘터리는 대부분 피해자 또는 가해자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회 또는 시대의 문제를 함께 비추던가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시스템의 문제를 비추던가 가해자가 어떻게 괴물이 되었는지를 비추던가 제대로 할 일을 하지 못한 경찰의 모습을 비추던가 범죄 자체를 상품화하려는 언론의 문제점을 비추던가 하는데, <나이트 스토커>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다'라는 부제에 걸맞게 '추적'하기만 하는 얘기를 늘어놓을 뿐이다. 단기간 내에 십수 명이 죽어나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경찰들을 말이다. 


깔짝깔짝, 콤비 형사 말고 사건 자체의 어려움이나 문제점들을 전하기도 한다. 담당 구역이 세밀하게 나뉘어 있기에 범인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활동(?)을 하게 될 때 서로 협조가 되지 않는다거나, 언론이 귀신 같이 냄새를 맡고 특종을 전하기 위해 경찰을 난감하게 만들 때가 있다거나, 경찰 내부에서 상사가 현장을 잘 모르는 생각과 발언으로 피곤하게 하고 방해를 한다거나. 그런데, 이런 건 궁극적이거나 치명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역사상 이런 어려움들을 겪지 않는 경우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말이다. 

 

매력적인 연쇄 살인마, 리처드 라미레스


나이트 스토커는 결국, LA가 아닌 같은 주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잡힌다. 주로 LA에서 활동하다가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살인 행각을 벌였는데, 그곳 담당 형사가 나이트 스토커의 신상명세를 입수했고 곧 잡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리처드 라미레스'라는 본명을 가진 그는 사실, 아무 집이나 습격해 무차별적인 강도와 폭행과 살인 행각을 벌인 것보다 체포 과정과 재판 과정이 더 유명하다. 또한 그는 베트남전쟁 참전용사인 사촌 형이 하는 민간인 학살의 무용담을 듣고 자랐고 아내를 살해하는 현장에 함께 있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그이기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는 경찰이 구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체포 과정에서 시민들의 손에 의해 죽을 뻔했던 것이다. 담당 경찰들이 경을 쳤던 리처드 라미레스의 대대적인 신상공개로 신문 1면에 난 걸 본 시민들이 그를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제지하고 추격하고 두들겨 팼기 때문이다. 경찰이 제지하고 통제한 후 겨우 그를 데리고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사탄 숭배자로, 피해자의 몸 또는 현장의 벽에 '악마의 오각성' 즉 뒤집힌 오각성 모양을 그려놓곤 했다. 그의 손바닥에도 그려져 있는데 재판 과정에서 당당하게 보여 주기도 했다. 


잘생기고 매력적이기까지 했던 그는, 재판 과정에서 화보를 찍는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전파를 탔고 전국의 몇몇 여성이 팬레터를 보내 오기도 했는데, 도린 리오이라는 여성은 급기야 옥중에서 리처드 라미레스와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그 유명한 연쇄 살인마 '테드 번디'처럼 말이다. 그가 법정을 나서며 한 말, "별 일 아니야. 죽음은 도처에 있다고. 여러분, 나중에 디즈니랜드에서 만나자고요."는 전설처럼 내려오며 그의 성향을 정확히 설명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은 위의 센세이션한 면모들도 모두 으레 전해야 할 것들처럼 전하고 스케치하듯 지나친다. 다큐멘터리다운 분석이나 통찰을 전혀 내보이지 않는다. 아니, 내보이려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대신, 그 자리를 두 형사 칼리요와 살레르노에 할애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오랜 추격을 뒤로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감동(?)을 전하는 것이다. 독특하고 신선한 다큐멘터리였지만, 정작 남는 게 없었다고 할까. '1980년대 화려했던 LA에 연쇄 살인마 나이트 스토커가 출현해 모두를 벌벌 떨게 했지만 오래지 않아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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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LA, 나이트 스토커, 리처드 라미레스, 무용담, 연쇄살인마,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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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인도에서 벌어지는 믿지 못할 일들 <화이트 타이거>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2. 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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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화이트 타이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화이트 타이거> 포스터. ⓒ넷플릭스

 

노벨문학상과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이라 일컬어지는 '부커상'은, 본래 영연방 국가의 작품만 대상으로 하다가 2005년에 이으러서야 비영연방 국가의 작품도 대상으로 하는 국제상을 신설해 수상하고 있다. 2016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바로 그 상의 수혜자인 것이다. 하여, 부커상을 수상한다는 건 당해년도의 전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점을 넘어 역사에 길이남을 만한 명성을 얻는다. 영연방이라 하면, 옛 영국 식민지 국가들을 위주로 결성된 국제기구인데 영국부터 시작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인도, 파키스탄, 남아공, 나이지리아 등 전 세계에 걸쳐 족히 몇십 개국에 이른다. 

50년이 넘는 부커상의 역사에서 인도 출신 작가가 수상의 쾌거를 안은 건 네 번뿐이다. 1981년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 1997년 수잔나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2006년 키란 데사이의 <상실의 상속>, 그리고 2008년 아라빈드 아디가의 <화이트 타이거>.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며 더 높일 수 없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앞선 두 명과 달리, 뒤의 두 명은 앞의 두 선배만큼의 국제적인 명성을 이어가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와중에, <화이트 타이거>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소개되어 다시 한 번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화이트 타이거>는 이란 출신의 미국 감독 라민 바흐러니의 최신작으로, 그는 원작자와 똑같이 미국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교를 나온 수재로 데뷔 후 수많은 영화가 각종 영화제에 초대되어 전 세계적인 관심과 갈채를 받은 바 있다. 특히 베니스영화제에 자주 초청되었고 그중에서도 오리종티 경쟁부문에서 눈에 띄었는데, 세계 영화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겠다. 넷플릭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화이트 타이거>가 그의 손에서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똑똑하지만 하인이 되어야 했던 발람


2010년 인도 뱅갈루루, 자수성가한 사업가 발람은 중국의 총리 원자바오가 인도의 기업가 정신을 배우기 위해 인도를 방문한다는 뉴스를 듣고 그 자리에서 중국 총리에게 이메일을 쓴다. 그리고 원래 하인이었던 발람의 인생이 펼쳐진다. 어둠의 인도에서 태어난 그, 아버지는 릭샤를 몰았고 형은 찻집에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찾은 공무원 앞에서 멋지게 영어를 읽어 내는 발람, 그에게서 정글의 짐승 중 가장 희귀한 종류이며 한 세대에 딱 한 번만 나타나는 '화이트 타이거'라는 극찬을 받는다. 하지만, 가족의 멸시와 무관심으로 발람은 찻집에서 일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클 만큼 큰 발람, 석탄으로 큰 돈을 번 지주 일가를 보고 그들을 모셔야 할 것 같다는 운명의 손길이 뻗쳐온다. 마침, 지주 일가의 두 번째 아들 야속의 두 번째 기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이 들려온 바 발람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릎쓰면서 번 돈을 모조리 가족에게 준다는 전제 하에 운전을 배워 야속의 두 번째 기사로 채용된다. 문제는, 단순히 기사가 아닌 하인의 신분이었던 것. 하지만, 발람으로선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야망에 찬 발람은 첫 번째 기사이자 하인이 되고자 수를 써서 자리를 차지한다. 지주 일가의 아버지와 첫째 아들은 그를 대놓고 하인 취급하지만, 미국 물을 먹은 둘째 아들 야속과 아내 핑키는 그를 최대한 존중한다. 그들은 짐승처럼 자란 발람에게 사람으로서의 의식을 주입한다. 급기야 그를 친구 취급까지 하더니, 술에 취한 어느 날엔 그를 모시고 직접 차를 몰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사고를 내 지나가는 천민 소녀를 죽이고 만다. 하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처리하려는 발람, 지주 일가는 그런 그를 범죄자로 몰고 간다. 발람은 역시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뼛속 깊이 주인을 모시는 하인이니까. 하지만, 이 상황을 참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핑키가 뉴욕으로 돌아가 버린 후 사건 양상이 달라지는데...

 

어찌 왕후 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소?

 

영화 <화이트 타이거>는 영물이라고 할 만한 '화이트 타이거'의 칭호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자랑하는 소년 발람이 천민이라는 태생과 태생의 한계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가족의 무지와 무시와 무관심을 뚫고 나온 이야기를 전한다. 발람이라고 하는 천민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1만 년 역사를 자랑하는 인도의 사회 문화 역사를 아우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충격적인 건, 인도의 그 유명한 카스트 제도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지켜지며 사람들을 철저히 구분짓고 있다는 것. 작품의 내레이션을 책임지고 있는 자수성가한 발람이 말하길, 1만 년 역사의 인도가 낳은 최대의 유산이 '닭장'이라는 것. 닭장 속 닭들은, 눈앞에서 죽어가는 닭의 피냄새를 맡고도 탈출할 마음이 들지 않을 뿐더러 당연히 행동으로도 옮기지 않는다. 아주 충실하게 주인을 모시며 곧 찾아올 죽을 날을 목 놓아 기다리고 있단다. 인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하인들도 닭장 속 닭과 하등 다르지 않다.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는 것이다. 


발람도 당연히 그럴 운명이었지만, 어릴 때 들었던 화이트 타이거라는 칭호가 그를 조금씩 끌어당긴다. 행동에 옮기는 것도 중요하고 또 매우 힘들겠지만, 보다 중요하고 힘든 건 '의식'이 바뀌는 것. 누구도 하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한 번 하인은 영원한 하인이 아니다, 하인도 주인이 될 수 있다, 탈출할 기회는 언제든 있다, 기회는 멀리 있지 않다, 주인의 돈은 정당하게 번 게 아니다, 주인은 죽어 마땅하다... 발람의 의식이 천천히 그리고 알차게 변하고 행동으로 옮겨지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소름끼치게 정교하다. 


고려의 무신정권시대 혼란기 대표적 반란인 '만적의 난'은 "어찌 왕후 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소?"라는 연설로 유명하다. 60년 최씨 무신정권시대의 기틀을 세운 최충헌의 사노비였던 만적이 주축이 되어 정권 탈취의 꿈을 꿨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몰살되고 말았다. 800여 년 전 철저한 신분 계급 시대였던 때의 이야기인 바, 경제와 문화와 영향력 등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인도의 현재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바뀔 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원작이 번역되어 나온 지도 10년이 훌쩍 지나기도 했고 영화의 초반에 몇 번 언질이 되는 바 결론을 말하자면, 발람은 주인 야속을 죽이고 엄청난 양의 정치자금을 훔쳐 스타트업의 초기 자금으로 쓴다. 이성이 지배하는 법과 질서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철저히 지켜지는 현재, 발람의 행동은 절대 용서받지 못할 짓인가? 아니면, 그 옛날 수많은 노예와 노비들이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인식 대전환으로 당연히 누려야 할 인생을 되돌려 받고자 주인을 죽이고 세상 밖으로 나갔던 것처럼 필수불가결한 일의 일환이었는가?


발람의 이후 삶을 비춰 볼 때 어느 한쪽의 생각을 100% 편들 수 없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살인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용인되지 않을 짓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인류가 지난 수천 년을 지내 오며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지켜져야 할 것으로 '인권'이 생긴 후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는 인도의 상황에서 비춰 볼 때 하인의 주인 살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발람이 주인을 살해한 후 돈을 훔쳐서는 주인과 다를 바 없이 불법적인 짓으로 돈을 불려 성공한 사업가 행세를 하는 걸 보면 인류 역사의 진보적 맥락으로만 다룰 순 없다.


인도의 터무니없는 계급 사회가 제 아무리 수천 년 전통의 힌두교가 뿌리 내린 카스트 제도에 기반하는 터라 전 세계적인 변화 추이와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해도, 바뀔 건 바뀌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도무지 용인이 될 수 없는 부분이다. 뇌 속 그 어디에도 '탈출'이 들어 있지 않은 닭장 속 닭의 존재와 너무나도 닮아 있다. 설령 작품 속 발람처럼 잘못된 길로 빠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발람은 계급 사회이자 자본주의 시대의 두 사회와 시대의 피해자로서, 자본주의의 욕망과 계급 철폐가 빙퉁그러지게 합류한 지점에서 일을 저질러 버렸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겠다. 


개인과 역사의 관점에서 논란거리가 다분하고 기득권층로선 반대의 여지가 확실한 이야기, 어떤 논조의 메시지를 던지고자 하는지 확실히 알겠다. 하지만, 상당히 완곡하고 에둘러서 그리고 현실과 시대의 세태를 제대로 비판하고 풍자하고자 블랙코미디 장르를 택했는 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발람이 천천히 변해 가는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원작의 내용과 분위기를 거의 훼손하지 않고 충실히 따른 점이 장점으로 다가올 수 있겠다. 현재 인도의 진짜 모습을 보고자, 꼭 한 번 봐야 할 영화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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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나는 건강한 스포츠맨십의 NBA 전설 <토니 파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1. 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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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토니 파커: 마지막 슛>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토니 파커: 마지막 슛> 포스터. ⓒ넷플릭스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농구 리그, 미국 NBA(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에도 '왕조'가 존재한다. 농구의 농 자를 몰라도 그 이름과 명성을 알 '마이클 조던'을 앞세운 시카고 불스가 1990년대를 완전히 지배하며 왕조로 군림했고, 샤킬 오닐 그리고 코비 브라이언트를 앞세운 LA 레이커스가 2000년대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했으며, 시간을 거슬러 1980년대에는 래리 버드의 보스턴 셀틱스와 매직 존슨의 LA 레이커스가 사이좋게 왕조를 구축했었다. 그런가 하면, 2010년대 중후반에는 5년 연속 파이널 진출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있었다. 


그리고, 왕조라고 하기엔 2% 부족하지만 왕조라고 하지 않기에는 업적이 너무나도 엄청난 팀이 있는데 서부 컨퍼런스의 절대 강자이자 NBA 역사의 다섯 번째인 통합 우승 5회를 자랑하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이하, '스퍼스')다. 이 팀은 2000년대 중반 격년 3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고, 2020 시즌까지 22년 연속 플레이오프(동부, 서부 컨퍼런스 각각 15개 팀에서 상위 8개 팀이 진출) 진출의 대업을 이룩했다. 한 시대를 완전히 평정한 '왕조'를 구축하진 못했지만, 실로 오랫동안 시대를 대표한 팀인 건 분명하다. 


스퍼스가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건 1998 시즌, 완전히 말아먹은 직전 시즌의 대가로 올타임 레전드 '팀 던컨'을 드래프트 1픽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는 2년 차인 1999 시즌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완벽히 증명하며 팀을 통합 우승으로 이끈다. 그리고 2001년에 토니 파커를, 2002년에 마누 지노빌리를 데려와 이른바 'BIG 3'를 결성해 전성기를 구가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토니 파커: 마지막 슛>은 이중 '토니 파커'의 농구 일대기를 다룬다. 


유럽에서 온 이방인 스타


미국인 아버지와 네덜란드 어머니를 뒀고 벨기에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로 이민을 가 프랑스인이 된 토니 파커, 농구 선수 출신 아버지의 지대한 영향과 마이클 조던을 향한 열망으로 농구를 시작한 그는 어릴 때부터 돋보였다고 한다. 아마추어 리그에서 2 시즌, 프랑스 프로 리그에서 2 시즌을 뛴 후 2001년 드래프트로 NBA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유럽 출신이 홀대받았거니와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세도 되지 않은 작은 가드에 주목하는 팀은 거의 없었다. 토니 파커는 30개 팀이 참여하는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28번째로 지명되어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일원이 된다. 그를 주목한 유일한 팀 샌아토니오 스퍼스의 감독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렉 포포비치였다. 팀 던컨 원 탑으론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긴 힘들 거라고 판단한 포포비치 감독의 복안은 대성공, 토니 파커는 루키 시즌부터 주전으로 뛰며 2년 차인 2003 시즌엔 팀을 두 번째 통합 우승자의 자리에 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이후 그에게 돌아간 건, 프랑스를 대표하는 스포츠 선수 그리고 국민 영웅의 자리였다. 프랑스 스포츠 하면, 지금도 그렇지만 20년 전 당시에도 단연 축구였다. 1998년 월드컵과 2000년 유로를 우승으로 이끌며 전성기를 구가했기 때문이다. 반면, 토니 파커는 혈혈단신으로 NBA에 진출하여 단시간에 주전으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세간의 관심이 그 한 명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프랑스를 이끌고 2003년에 열린 유럽 농구선수권대회에 참여했지만 4강에 머무르며 체면을 구겼지만, 이후 계속될 팀에서의 활약에 영향을 받진 않았다. 침착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했던 것이다. 


팀이 우선, 개인은 한 발 뒤


불과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되며 큰 이슈를 뿌린 다큐멘터리 시리즈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NBA를 넘어 전 세계로, 시대의 아이콘을 넘어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위인 중 한 명으로 거론될 '마이클 조던'의 일대기를 다시 없게 보여 준 위대한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업적과 유명세에 비해 토니 파커의 그것은 '볼품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고 그걸 우리가 봐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대표적 구기 종목 농구는 혼자만의 스포츠가 아닌 팀 스포츠이다. 사상 최고의 실력을 갖춘 마이클 조던조차 그의 옆에 역대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인 필 잭슨과 올타임 레전드 중 한 명인 스카티 피펜, 사상 최고의 리바운더 데니스 로드맨 등이 없었으면 그 위업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토니 파커는, 농구라는 스포츠에 가장 적합한 선수 중 하나였지 않나 싶다. 포인트 가드로서 팀의 핵심인 팀 던컨을 보좌하고 경기를 조율하며 마누 지노빌리와 함께 득점도 책임진 것이다. 


그 앞엔 오직 팀의 '승리'가 있었다. 팀이 우선이었고 자신은 언제나 한 발 뒤에 있던 토니 파커, 그 자신은 올타임에 모자라는 명성과 업적을 보였지만 팀의 4회 통합 우승에 절대적 공헌을 했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크게 칠 수 있다. 그 아무리 유명한 NBA 선수들을 총망라해 봐도, 4회 통합 우승 동안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한 이는 손에 뽑는다. 그를 두고, 20여 년 동안 누구보다도 '존경'받아 마땅한 모습을 보였다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다. 그 이름도 찬란한 마이클 조던의 다큐멘터리와 나란히 토니 파커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고 또 봐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레전드


토니 파커는 불과 2년 차에 최고의 자리를 꿰찬 후 수년간 고렉 포포비치 감독에게 호된 질타를 받는다. 포포비치 감독의 빅 픽처로, 노쇠해 가는 팀 던컨과 미누 지노발리 이후의 시대를 생각한 포석이었다. 또한 토니 파커를 시험하는 한편 그로 하여금 승부욕을 극치로 끌어올리게 하는 방법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스퍼스는 2005년과 2007년에도 통합 우승을 달성하며 서부 컨퍼런스 최강 팀을 넘어 NBA 최강 팀 반열에 오른다. 2007년 우승 당시 토니 파커는 파이널 MVP에 오르며 커리어 정점을 찍는다. 


이후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르브론 제임스와 제2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코비 브라이언트가 5년 넘게 군림하며 스퍼스의 앞 길을 막는다. 물론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강팀다운 면모를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2014 시즌, BIG 3는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고 다시 한 번 통합 우승을 차지한다. 왕조를 수립하려는 르브론 제임스의 마이애미 히트를 돌려 세운 결과물이었다. 토니 파커는 언제나 중심에서 팀의 승리를 위해 한 몸 불살랐다. 


샌안토니오 스퍼스 50여 년 역사상 열 손가락 안에 들 레전드 '토니 파커', 그는 NBA 선수 이전에 샌안토니오 스퍼스 선수였다. 많은 구기 종목 선수들이 간과하는 그리고 간과할 수밖에 없는 자세와 태도를 그는 오랜 경력 내내 유지했던 것이다. 그러며 팀을 위대한 반열에 올려 세웠고, 자신 또한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올타임급의 성적을 냈다. 


스포츠는 보고 즐기고 열광하기 위한 산물, 슈퍼스타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지사지로 선수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대부분이 슈퍼스타가 될 수 없기에 당연한 듯 팀에 헌신하며 선수생활을 영위할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눈은 거기로 가 있다.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를 떼려야 뗄 수 없듯(시카고 불스가 마이클 조던을 필요로 했다), 또 다른 의미로 토니 파커와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떼려야 뗄 수 없는(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다) 이유다. 그야말로, '건강한' 스포츠맨십과 관계가 아닌가 싶다. 이 작품에서도, '사람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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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개인, 레전드, 샌안토니오 스퍼스, 승리, 우승, 유럽, 토니 파커,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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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통령 후보이자 IMF 총재였던 이의 추락 여정 <2806호 스캔들: 진실공방>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1. 1. 2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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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2806호 스캔들: 진실공방>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2806호 스캔들: 진실공방> 포스터. ⓒ넷플릭스



2011년 5월 14일, 미국 뉴욕의 소피텔 호텔에서 성폭행 의혹이 불거져 나온다. 보안 직원이 911에 신고했던 바, 차마 이름을 밝히기가 힘들 정도의 전 세계적인 거물이 2806호에서 객실청소원을 성폭행했다는 것이었다. 피해자는 뉴욕의 변방 브롱크스에서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아프리카계 여성, 반면 가해자는 프랑스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했던 IMF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일명, DSK였다. 


신고를 받은 뉴욕 경찰은 사태의 엄중함을 알아채고 프랑스로 돌아가는 길에 있을 스트로스칸의 행방을 쫓는다. 프랑스로 돌아가면 미국으로 인도받아 처벌하는 게 불가능할지 몰랐다. 마침 그때 호텔로 스트로스칸이 연락해 온 바, 객실에 휴대폰을 두고 갔다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물건일 휴대폰을 두고 갈 정도로 정황이 없었던 걸까? 결국, 경찰은 JFK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한 스트로스칸을 긴급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의혹이었음에도, 스트로스칸의 긴급 체포 소식은 곧바로 전 세계에 타진되어 모든 언론의 1면을 장식하기에 이른다. 그의 영향력은 2011년 당시 전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들기에 충분했으므로, 고국인 프랑스와 체포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는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때이기에 IMF 수장의 충격적 소식이 주는 여파는 차원을 달리 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진보 아이콘의 추락


어느덧 10년이 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을 둘러싼 이 사건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2806호 스캔들: 진실공방>으로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제목에서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한 바, 이 시리즈는 진실공방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간접 증거뿐만 아니라 직접 증거로도 2806호에서 스트로스칸과 객실청소원 디알로 간에 성적 관계가 있었다는 건 확실한데, 서로의 주장이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디알로는 스트로스칸에 의해 강제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반면, 스트로스칸은 그 어떤 강제도 없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했다. 결국, 5일 후 스트로스칸은 자신의 무죄를 다시 한 번 강조하며 IMF 총재 직에서 전격적으로 사퇴했다. 그러며 뉴욕 최고의 변호사들을 꾸려 대응했기로서니, 보석 상태로 수사와 재판을 받은 그는 검찰이 공소를 취하하며 프랑스로 귀환할 수 있었다. 


땅바닥에 떨어진 그의 명성과 별개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때도 있었고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한 여러 사람들을 보아 하니 지금도 있는 것 같다. 그는 사회당의 유력 대권주자로, 이른바 프랑스를 대표하고 새롭게 이끌 진보의 아이콘이었다. '정치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은, 그의 '사생활'엔 아예 관심을 두지 않고 그의 정치적 정적이라 할 만한 공화당 출신의 당시 대통령 사르코지의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스트로스칸이 그동안 쌓아와 내보인 출중한 실력만을 보고 판단하려 한 것이다. 


충격적인 건, 그의 사생활을 아주 잘 아는 지인들의 발언이다. 오랜 친구와 동료, 그리고 부인은 그의 상상을 초월하는 여성 편력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를 두둔한다. 그는 그저 여자를 너무 좋아하는 것뿐이라고, 그게 도덕적으론 질타를 받을 만하지만 법적으론 문제될 게 없지 않냐고, '프랑스'에선 충분히 용인되는 고위 공직자의 사생활이라고, 스트로스칸뿐만 아니라 다들 그런다고 말이다. 


스트로스칸의 지독한 여성 편력


매우 무서우면서도 논리적인 듯한 주장이다. 스트로스칸을 정치적으로만 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논점을 흐리는 물타기로, 충분히 논리적 반박이 가능하다. 오히려 상대하기 쉬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스트로스칸의 공과 사의 모습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이들의 주장은 반박하기가 매우 힘들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우린(프랑스) 원래 이런 문화야, 스트로스칸만 그런 거 아냐, 다들 그래, 그게 욕은 먹을 만한 일일진 모르지만 잘못한 건 아니잖아?' 하면서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주장을 한 이들은 모두 한 번쯤 '문화'의 수혜(?)를 받아봤을 것이다. 모두가 모여 한마음 한뜻으로 스트로스칸의 지독한 여성 편력을 응원(?)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지지하고 있으니. 문제는, 스트로스칸이라는 거물에 가려 피해자는 엉뚱한 피해를 계속 받고 있는 것이다. 스트로스칸의 지지자들에게서 받는 협박 또는 철저한 무관심, 전 세계 언론들의 빙퉁그러진 관심 등 모두 가해자 스트로스칸을 향한 것들이 피해자 디알로까지 불뚱 튀겼던 것. 


결국, 스트로스칸은 체포 3개월 뒤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다행히 민사 합의로 스트로스칸은 디알로에게 150만 달러를 물었다. 그는 프랑스로 돌아가 철저히 언론플레이를 하며 훗날의 재기를 노렸다. 전 세계를 뒤흔든 사건은 그렇게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럼에도 그를 둘러싼 성추문은 끊이질 않았다. 사회당 내에서도 있었고, 언론인이자 작가인 트리스탄 바농의 고소도 있었다. 


그리고 6개월 뒤, 스트로스칸은 프랑스에서 긴급 체포되었다. 이번엔 불법 성매매 조직 연루와 회사 공금 유용 혐의였다. 프랑스에서 개인적인 성매매가 불법은 아니지만, 공금으로 성매매를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매춘을 알선하는 행위는 심각한 범죄이다. 그는 이 둘 모두에 연관되어 의혹이 있었던 것이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


미투 운동의 진정한 시작


공식적으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의 이력에 '빨간줄'이 간 적은 없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수많은 의혹이 그를 둘러싸고 일었지만, 조용히 묻히고 보석으로 풀려나고 민사 합의를 보고 무죄가 선고되고... 그가 막강한 권력이 있어서였을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한 사람이 휘두를 수 있는 무기는 한정되어 있지 않은가. 그를 둘러싼 거대하고도 거대한 '층'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2011~12년 당시는 '미투 운동'이 전 세계를 휩쓸기 전이다. 미투 운동 때에 이르러 권력에 의한 성 사건을 비호한 거대하고도 거대한 층이 무너져 내린 것인데, 그전까진 견고했을 테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는 스트로스칸의 잇따른 성추문 사건을 두고 미투 운동의 진정한 시작이라고 본다. 불과 몇 년 차이지만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도덕적·윤리적으로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실질적인 법의 집행이 달라졌기로서니, 스트로스칸 사건은 명백히 권력으로 찍어 누른 게 보이지 않는가. '문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권력'의 파렴치한 술수. 


스트로스칸 사건은 권력을 성적으로 휘두른 절정기에 터질 수밖에 없었던 사건인 바, 당대를 더럽고 추악하게 상징하고 문화라는 것의 최전선에 있다고 믿는 프랑스를 또한 더럽고 추악하게 상징한다. 와중에 생각하고 지켜야 할 건, 피해자를 향한 진정 어리고 올바른 시선 그리고 도움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전의 평범했던 삶으로 돌아가긴 힘들 텐데, 빙퉁그러진 관심 따윈 필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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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6호 스캔들, imf 총재, 대통령 후보,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매춘, 성폭행, 여성편력,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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